II. 연구대상과 선행연구 및 연구방법론

1. 연구대상
 
이 논문의 연구대상은 발전한 자본주의 국민국가인 서유럽의 영국, 프랑스, 독일에서 좌파정당과 최상급노조의 관계이며, 이러한 선행연구의 결과에 유념하여 연구대상을 한국에서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관계로 확장한다.
첫째 이 논문은 연구대상을 국민국가 안의 좌파정당과 최상급노조로 한정하는데, 이는 당과 노동조합의 관계가 실질적으로 작동하는 무대는 국제적인 정당연합체와 국제적인 노동조합연합체가 활동하는 국제관계가 아니라 구체적인 노동과 자본의 관계가 국가권력의 영향을 받으며 전개되는 개별적인 국민국가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정당은 노선이나 정치적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사람들이 국민의 지지를 바탕으로 정치권력에 참여하거나 영향력 확대를 위해 결성한 정치집단이다. 하지만 마르크스 시대의 정당과 오늘날 근대적 의미의 정당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 마르크스는 선거참여를 전제로 하면서 대의정치와 정당정치에 근거한 근대적 의미의 정당을 본격적으로 경험하지 못하였다. 근대적 의미의 정당은 정당의 문호를 모두에게 개방한 대중정당이다. 대중정당은 선거에서 득표율의 제고를 목표로 하는데, 이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를 전후로 하여 보통선거가 실시됨에 따라 정당들이 선거권이 있는 모든 성인을 상대로 입당과 지지를 호소해왔기 때문이다. 또한 대중정당은 발달한 대중매체를 중심으로 한 여론정치를 전제로 하는데, 이는 보통교육의 확대로 인해 대중의 문자 해독율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특히 정당정치를 중심으로 대의제가 발달함에 따라 근대적 정당은 사적 영역에서 공적 영역으로 전환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헌법과 법률에 의해 국가가 보장하는 제도정당으로서의 성격이 짙어지고 있다(김장민, 2014b ; 5).
이 논문이 연구대상을 모든 정당이 아니라 좌파정당에 한정하는 것은 노동자의 정치세력화가 정당건설이라고 한다면 그 정당은 일반적으로 우파정당이나 중도정당이 아니라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혹은 사회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정당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연구대상으로 삼는 좌파정당은 원외 정당이나 선거에 참여하지 않고 체제를 부정하는 비합법정당이 아니다. 오늘날 발전한 자본주의 국민국가에서 이러한 정당은 이 논문의 연구대상인 최상급노조와 실질적인 관계를 갖지 않는다.
또한 본 논문은 개별적인 노동조합들을 연구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최상급노조를 연구대상으로 한다. 원래 노동조합이란 사상, 신조, 정당지지 여부와 관계없이 조합원의 요구를 동력으로 삼아 단결하고 투쟁하는 노동자의 대중조직이다. 노동운동 초기의 노동조합은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었지만 오늘날 노동조합은 법제도적인 의미로 축소되어 있다. 또한 과거의 노동조합들은 각각 개별적인 정치적 성향을 지닐 수 있었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노동조합들은 전국단위의 최상급노조에 소속되어 있기 때문에 최상급노조의 정치적 성향을 따르고 있다.
둘째 이 논문은 각국의 당과 노조의 역사적 배경에 주목하여 독일사민당과 독일노동조합연맹(Deutscher Gewerkshaftsbund, DGB)의 관계, 영국노동당과 영국노동조합대표자회의(Trades Union Congress, TUC)의 관계, 프랑스공산당과 프랑스의 노동총동맹(Confédération Générale du Travail, CGT)의 관계를 민주노동당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의 관계와 유사한 연구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 논문이 사례분석의 대상을 영국, 프랑스, 독일로 삼은 것은 한국의 산업화와 민주화가 비록 서유럽과 동일하지 않지만 짧은 시간에 이들 서유럽의 자본주의 국민국가와 유사하게 발전하였다는 점. 이들 국가의 경우 좌파정당과 최상급노조가 탄생과 성장, 성숙과 쇠퇴의 과정을 거쳐 역사적 주기분석이 가능하다는 점을 주목한 것이다. 또한 이들 국가의 경우 국민국가의 규모나 정당과 노조의 유형에서 유사점이 있고 특히 이 논문의 주요 연구대상인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관계처럼 좌파정당과 최상급노조가 비교적 장기간에 걸쳐 1개의 최상급노조가 1개의 좌파정당을 지지하는 1 ; 1의 관계를 유지해왔다.
이탈리아나 스웨덴에서 좌파정당과 최상급노조의 관계 역시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하지만 전자는 다양한 좌파정당이 출몰하여 1 : 1의 관계라고 볼 수 없는 점에서, 후자는 비교적 작은 나라에서 노동조합의 조직율과 사회적 영향력이 월등이 높았다는 점에서 한국의 상황과 직접 비교하기 힘들다.
이 논문이 서유럽과 한국을 비교하는 것은 서유럽 좌파정당의 탄생기, 성장기, 성숙기, 쇠퇴기라는 발현 유형을 한국과 같은 후발 자본주의의 개발도상국에 참조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반체제세력으로서 좌파정당의 제도화 과정이라는 서구의 유형은 개발도상국이 커다란 장애가 없이 자본주의 국민국가로 단선적으로 발전해나갈 때 비교적 유사하게 적용될 수 있다. 하지만 민주화되지 않은 개발도상국의 경우 좌파정당이 서구 반체제세력의 제도화 초창기의 모습에 장기적으로 지체될 수 있고, 노동계급이 정치경제적 시민권을 점진적으로 획득하는 경우에는 서구의 과정을 압축적으로 보여 줄 수 있으며, 짧은 시간에 노동계급에게 정치경제적 민주화가 안겨지고, 제도 진입의 문턱이 제거될 때는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한국의 경우 민주노동당이 원내에 진출한 이후 10년 만에 소멸되었지만, 노동자 유권자의 비중, 노동자의 조직화와 정치의식의 정도 등 계급균열과 제한적인 비례대표제의 실시 등 제도진입의 문턱 수준을 고려할 때 이러한 좌파정당의 중단은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시간의 문제일 뿐 노동계급의 조직적 지지를 받는 좌파정당이 복원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국가보안법 등 좌파정당을 억압하는 법제도, 소수정당에게 여전히 불리한 강력한 소선거구제, 분단으로 인한 냉전 이데올로기의 잔존 등을 고려할 때 좌파정당 복원의 모습은 단기간에 서구식 사회민주주의 거대정당으로 성장하는 압축형보다는 상당기간 원내 소수정당으로 머무는 지체형이나, 지체형에서 정치경제적 격변기에 갑자기 주요정당으로 부각되는 비약형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 논문은 독일, 영국, 프랑스의 좌파정당 사례를 기본으로 하고 여기서 도출된 보편적 발현형태인 탄생기, 성장기, 성숙기, 쇠퇴기를 개발도상국에 있어 좌파정당의 구체적인 조건에 대응시켜 지체형, 압축형, 비약형으로 변형시켜 한국에서의 좌파정당의 발현 연구에 참조한다.
 
 
2. 선행연구 검토
 
첫째, 이론상으로는 노동계급의 정치세력화의 본질적 내용에 대해 다양한 논의가 가능하지만 오늘날 민주화된 자본주의국가에서 정치세력화를 하고자 하는 노동조합은 체제에 정면으로 도전하지 않으며 그렇다고 단순한 압력단체에 만족하지 않으며 제도정당을 통해 정치세력화를 도모한다.
물론 노동조합이 반드시 정당만을 통해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장귀연(2005) 등이 분류하는 노동조합의 비즈니스 노선은 미국 노총처럼 독자적인 정당을 건설하기보다는 조합원의 경제적 실리를 추구하기 위해 정치자금을 제공하거나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방식으로 정당에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한다. 하지만 노조가 스스로 정치조직으로 나서지 않는 이러한 모습 자체를 노동계급의 정치세력화라고 볼 수 없다. 그런 측면에서 기존의 정당에 입당하여 의회에서 노동정책 실현에 영향을 미치려는 한국노총의 방식 역시 정치세력화라고 할 수 없다. 즉 본 논문은 노동계급의 정치세력화를 독자적인 정치세력화 즉 노동자정당 건설로 한정한다. 김동춘(2012) 역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주체를 노동자정당으로 한정하되, 노동자정당이 의회활동뿐만 아니라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다양한 비제도적인 활동을 하는 것까지 포함하고 있다.
여기서 노동자정당의 성격에 대한 논의가 있을 수 있으나 레닌이 마르크스의 주장을 구체화한 사회주의 지식인과 노동운동의 결합이라는 사회민주당의 조직원리로서 설명된다. 한국의 경우 구해근(2002)에 따르면 산업화 이후 노동운동은 1970년대 경공업 여성노동자 중심의 노동운동으로 출발해 1980년대 중화학공업 대기업 남성노동자 중심의 노동운동으로 전환되었으며, 학생운동 출신의 노동운동가와 노동계급이 결합함으로써 발전하였다. 이러한 노동운동은 1980년대에 이르러 사회세력으로 성장했지만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에 이르러서야 제도정치에 편입되었다.
그런데 노동자의 정치세력화가 자주적인 민족통일국가 즉 국민국가를 거친 서구에서는 노동자정당으로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이나 민족분열이나 영토분열 혹은 식민지 상태를 극복하지 못한 제3세계에서는 노동자들이 농민이나 빈민 혹은 양심적인 지식인들과 함께 민중정당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장귀연(2002)은 한국에서 분단과 전쟁 및 군부독재 등 냉전효과로 인해 정치영역이 시민사회영역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탈구현상을 지적하는데, 이러한 탈구현상은 한국에서 노동자정당의 출현 시기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한국의 노동자정당의 성격에도 영향을 미친다. 임현진(2009) 역시 한국의 상황에서 진보정당을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뿐만 아니라 분단극복, 경제사회적 약자의 대변 등을 포함하는 민중정당으로 확장한다.
한국의 경우 민주노동당은 강령이나 인적 구성을 볼 때 한국 역사상 최초로 원내에 진입한 좌파정당으로서 부분적으로 사회주의 노동자정당의 성격을 지녔지만 노동운동과 통일운동 및 기타 진보적 부문운동이 결합한 민중정당이었다. 따라서 본 논문은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제도적 산물로서 정당을 노동자정당에 한정하지 않고 민중정당으로 확장하며 이러한 노동자정당과 민중정당을 통틀어 편의상 좌파정당으로 부르고자 한다.
본 논문에서의 좌파정당은 의회 내에서 제도나 정책을 변화시킬 수 있는, 즉 원내에 진출한 정당에 한정하는데, 그 이유는 오늘날 최상급노조는 원내에 진출한 정당의 입법에 영향을 미쳐 자신의 이해관계를 관철하려고 하기 때문에 한 나라 안에서 최상급노조와 일정 수준 이상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맺고 있는 좌파정당은 원내에 진출한 좌파정당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초기에 반체제세력이었던 좌파정당이 시민권을 획득하여 제도정당이 되는 과정에 대해서는 반체제세력이 어떻게 체제 안으로 포섭되는가에 관한 달(Dahl, 1973)의 연구가 있다. 사르토리(Sartori,1986)는 이와 관련하여 반체제정당 개념을 발전시켰으며, 또한 카포치아(Capoccia, 2002)는 반체제정당의 성격과 전략을 더욱 구체화하였다. 반체제정당, 즉 좌파정당이 증가하는 노동자 계급의 지지를 받아서 의회 내에 정착되는 과정은 정당체계를 계급균열 등이 반영된 것으로 파악하는 립셋(Lipset)과 로칸(Rokkan)1967년 사회균열이론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 노동자계급의 형성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정당이 좌파정당으로 안착되는 시기가 지체되는 원인에 대해 립셋과 로칸은 문턱 혹은 진입장벽을 언급하였는데, 특히 1995년 메이어(Mair)와 카츠(Katz)는 신생정당의 진입을 억제하는 기존 정당의 카르텔구조(담합)를 지적하였다. 서유럽에서 사회민주주의정당으로 변모된 좌파정당이 오늘날 노동자 중심성을 잃어가면서 국민정당으로 우경화되는 과정은 키르히하이머(Kirchheimer, 1966)의 포괄정당이론이나 아담 세보스키(Adam Przeworski, 1985: 102-104)가 제기한 민주화된 자본주의 국민국가에서 계급정당의 딜레마(The Dilemma of Class-Based Parties)’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
한국에서도 좌파정당이 수차례 탄생하였으나 기존 보수정당의 담합구조에 의해 진입이 차단되는 경우가 많았다. 장귀연(2002)은 한국에서 노동자정당이 늦게 나타난 이유에 대해 탈구현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에 대해 최장집은 1987년 체제에서 계급정치에 입각한 정당정치 확립이 실패한 이유로서 냉전반공주의와 발전주의 헤게모니를 온존시킨 신자유주의적 민주화의 근본적인 한계를 지적하는 한편, 그 결과 구축된 협애한 보수독점의 정당체계와 그 부수적 결과로서 지역주의 정당체계의 확립을 지적한다. 즉 헤게모니의 변화 없는 민주화가 곧 노동 없는 민주주의를 가져왔다는 것이다(김수진, 2008: 91).
한편 노동계급의 정치세력화 논의에 있어 최상급노조와 좌파정당의 결합이라는 양날개론이 제기되어 왔는데, 서구의 노동자정당이나 한국의 민주노동당이나 대부분 이러한 양날개론에 의해 그 창당과 활동이 설명된다. 양날개론에 따라서 한 국민국가 안에서 노동계급의 정치세력화가 가능하려면 김창우(2007)가 지적하듯이 강력한 조직력과 협상력을 보유할 수 있는 산업별노동조합을 기반으로 한 최상급노조가 노동조합협의체 이상의 전국적인 노동운동센터로서 기능을 해야 하지만 민주노총의 경우 이 두 가지 조건을 갖추지 못해 민주노총의 노동계급의 독자적인 정치세력화 즉 노동자정당 건설은 애초부터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본 논문은 오늘날 민주화된 자본주의 국민국가에서 노동계급의 정치세력화를 선거에 참여하고 국가권력에 접근하고자 하는 정당운동으로 보고 있다. 다만 이러한 정당이 초기에 얼마나 노동자 계급정당의 성격을 지니는지, 혹은 그 성격이 얼마나 빨리 변화되는지는 각 나라의 정치적 사회적 조건에 따라 다르다고 보고 있다.
둘째, 좌파정당과 최상급노조의 관계를 어떻게 분류할 수 있는지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있지만 오늘날 당과 노조는 기본적으로 독립적 관계에 있다. 공덕수(2000)는 노조독립형, 정당의존형, 노조의존형으로 분류하는데, 이러한 분류는 당과 노조의 역사적 형성과정에서 어느 조직이 다른 조직의 창설을 주도하였는지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정병기(1994)는 정당 우위의 사민주의형, 노조 우위의 영국형, 프랑스의 공산주의형으로 분류하나 프랑스의 공산주의형은 1920년 프랑스공산당 창당 이후부터 소련의 붕괴까지 확연하였던 유형으로 오늘날 프랑스는 여러 개의 최상급노조가 병존하고 CGT는 프랑스공산당과 더 이상 공식적인 관계를 맺지 않고 있다. 사회민주주의 모델 역시 2차 대전 이후 약 20년간 풍미하였던 코프라티즘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분류는 주로 20세기 중후반의 상황에 부합한다. 발렌수엘라(Valenzuela, 1991)는 전국적인 최상급노조와 좌파정당이 복수로 존재하는가에 주목하여 양자가 1 : 1의 관계를 맺는 경우를 사회민주주의 유형으로 후자를 경쟁적 유형으로 분류한다.
이외에도 공덕수(2000) 국가 코포라티즘적 통제형을, 발렌수엘라는 국가후원형과 정부와의 대립형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러한 분류는 노동조합과 정당의 국가에 대한 관계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관련하여 정병기는 국가, 자본, 노동조합 등 3자의 사회적 대타협에 근거한 사회 코포라티즘 모델을 사회민주주의 모델로 규정하고 있는데, 같은 코포라티즘이라도 국가, 총자본, 총노동의 역학관계는 다양할 수 있다. 민주화된 자본주의 국가에서 강력한 국가통제형, 국가후원형, 정부와의 대립형은 사실상 찾아보기 힘들다.
셋째, 언제부터 민주노총의 정치세력화가 실패한 것으로 규정할 수 있는지, 즉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관계가 언제 파탄되었는지에 대해 의견이 다를 수 있으나 민주노동당 소멸, 배타적 지지의 철회 등 형식적 외관보다는 양자의 관계가 파탄에 이르게 된 계기를 고찰할 필요가 있다. 2008년 분당으로 민주노총의 정치세력화가 실패할 위기에 직면하였으나 조현연(2009)처럼 이 자체를 실질적인 실패라고 보기에는 성급하다. 2008년 분당에도 불구하고 민주노동당이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라는 목표와 그를 달성하려는 의지를 실질적으로 견지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정병기(2016)는 민주노총이 통합진보당에 대한 배타적지지를 철회한 2012년을 민주노총의 정치세력화가 실패한 시기로 보고 있으나 이러한 결과에 이르게 된 실질적인 계기를 고찰해야 할 것이다.
한편 2014년 헌법재판소에 의한 통합진보당의 해산을 민주노총 정치세력화의 실패로 규정하는 것은 일단 통합진보당을 민주노총 정치세력화의 산물로 인정하는 것을 전제하는 것인데, 이러한 입장은 통합진보당의 본질적 한계를 간과한 것이다. 통합진보당이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주창한 것은 사실이나 통합진보당 자체가 노동계급이나 민주노총을 대변한 것이 아니었다. 또한 통합진보당의 노동부문의 대의원들 역시 민주노총에 의해 선출되거나 지명된 것이 아니라 통합진보당의 지도부에 의해 노동운동의 특정 정파들을 중심으로 자의적으로 지명된 것이었기 때문에 노동자의 정치세력화의 대표성을 지니지 못하였다.
민주노동당은 각종 선거에서 소선거구제로 인해 득표율만큼 원내 의석을 차지하지 못했지만 기존의 보수정당 구도를 깨면서 좌파정당의 가능성을 입증하였다. 민주노총 정치세력화의 과정을 보면 민주노총은 1997년 국민승리21을 직접 창당하고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을 주도하고 2008년 이후 민주노동당의 분당을 복원하려고 노력하였으며 2011년 통합진보당 창당에 결과적으로 동의하였으나, 2012년 통합진보당 분당 사태를 계기로 배타적 지지를 철회하였으며, 이 과정을 민주노총의 제1기 정치세력화라고 볼 수 있다.
민주노동당에 있어 노동자정치세력화의 진정한 의지는 20119월 임시당대회에서 민주노총을 배척하고 국민참여당과의 선통합을 추진할 때 실질적으로 상실되었다. 이 당대회에서 안건의 찬반을 놓고 민주노동당 지도부와 민주노총 지도부가 대립하고, 양 조직의 구성원들 역시 찬반으로 갈려 몸싸움 직전까지 가는 상황에 이르렀는데, 이날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의 관계는 실질적으로 파탄난 셈이었다.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의 배신에도 불구하고 민주노동당을 계승한 통합진보당에 대해 수동적으로 배타적 지지를 유지하다가 통합진보당 부정선거 시비와 폭력사태 및 분당을 기점으로 배타적 지지를 더 이상 유지할 명분을 상실하였다.
넷째,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관계가 파탄된 이유, 다른 한편으로 민주노총 정치세력화의 실패 원인을 어디에서 찾는지에 대해 여러 입장이 있으나 이에 관해서는 당과 노조의 제도화라는 거시적 측면은 물론 민주노동당의 노선 일탈과 행태상의 오류 등 미시적 측면도 고찰해야 한다. 민주노총의 정치세력화 실패의 원인을 객관적으로 고찰하는 송재영(2016)은 노동계급의 대중적 기반의 한계 특히 노동자조직 수준의 양적 질적 한계로부터 찾고 있다.
민주노동당 내부의 모순을 극복하지 못하는 행태나 시스템의 한계를 지적하는 주관적 고찰을 살피면, 조현연(2009)은 노동자의 정치세력화 실패의 기원을 2008년 분당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대선 패배 직후 분당은 책임에 대한 응답이라는 신뢰정치의 실종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며, 그 구체적 원인으로서 민주노동당의 정파구조 특히 지배 정파의 패권형태와 종북적 노선을 지적한다. 정영태(2011) 역시 민주노동당의 실패 즉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실패를 정파구조와 그로 인한 파벌갈등에서 찾는다. 김윤철(2010)은 원내외 2원 구조와 정파대립을 극복할 수 있는 당내 리더십의 결핍과 당내 경쟁력 있는 시스템 부재의 문제를 가장 중요한 분당 요인으로 지적한다.
노중기(2014)는 제1기 정치세력화의 실패 원인으로서 민주노동당이 1987년 체제의 민주화 프로젝트를 고수함으로써 1997년 이후 형성된 신자유주의 대동맹에 전략적으로 대응하는 데 실패하였다고 주장하면서 노동운동 주체의 3가지 전략 실패를 지적하는데 이는 산별노조 건설의 실패, 배타적지지로 인한 당과 노조의 관계 왜곡, 종북논쟁과 민주대연합 논쟁에서 보듯이 민주노동당 당권파의 퇴행적 민족주의와 편협하고 경직적인 노동중심주의 등이다.
정병기(2016)는 제1차 정치세력화의 실패는 노동조합 이해의 결함과 자본주의 정당정치질서라는 구조적 요소의 경시에서 비롯되었다고 진단하면서 특히 민주노총이 이념적으로는 사실상 사회주의를 지향하면서도 실천적으로는 자본주의 제도권의 의회정당 노선을 추구함으로써 출발부터 실패의 가능성을 배태하였다고 지적한다. 정병기는 이러한 변혁적 이념과 개량적 실천의 모순을 서유럽 노동자정당의 태생적 한계로 규정하면서 이러한 한계 때문에 이들 정당은 출발부터 결국 사회민주주의로 변화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데, 이러한 주장을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에 적용한 셈이라고 볼 수 있다.
반면 본 논문은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당과 노조는 발전된 민주주의 국민국가 안에서 개량화될 수밖에 없다는 명제를 수용한다. 따라서 본 논문은 정병기가 지적하는 개량주의라는 태생적 한계를 애초에 회피할 수 있었던 대상으로 보기보다는 자본주의 제도정치에 진입하는 한 상수로 인정하고 그러한 개량화가 당과 노조에 어떻게 전개되고 그 전개 수준에 따라 양자의 관계에 어떠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를 고찰한다. 당과 노조의 제도화 그 자체를 노동자의 정치세력화의 실패로 부각시키기보다는 양자가 같이 제도화됨에도 불구하고 양자의 관계가 이완되거나 파탄된 점을 노동자정치세력화의 위기 내지 실패로 주목한다.
본 논문은 서유럽과 마찬가지로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관계가 이완되거나 파탄되는 원인을 양자의 제도화 수준의 차이로 설명하고 있다. 즉 양자는 모두 제도화의 심화과정을 거치지만, 특히 좌파정당은 카르히하이머(Kirchheimer, 1966)가 지적하듯이 선거에서 몰계급적인 지지를 확대하려는 포괄정당의 성격을 지니게 되고, 그에 따라 좌파정당의 노선이 쉐보르스키(Przeworski, 1985)의 주장처럼 사회주의에서 사회민주주의로 개량화되고, 더 나아가 민첼(Mintzel, 1984)이 주장하듯이 집권에 집착하면서 아예 탈이념화하려는 국민정당으로 변화된다. 반면 최상급노조는 조합원의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한계 내에서 개량화가 지체되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 발전한 민주주의 국민국가 안에서 양자의 이해관계가 충돌되기 때문에 과거와 같이 밀접한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
끝으로 본 논문은 개량화가 더딘 최상급노조가 좌파정당의 제도화를 지연시킬 필요성을 강조하는데, 이는 상수로 주어진 당과 노조의 개량화에 최대한 저항하면서 양자를 사회변화의 주체로서 견지하도록 하려는 저자의 의도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정병기 역시 의회주의에 치중되는 정당세력화의 한계를 극복하려면 다양한 정치사회경제문화적 노동정치들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3. 연구방법론과 자료
 
첫째 이 논문은 좌파정당의 성격이 변화됨에 따라 좌파정당과 최상급노조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가를 살펴본다. 이는 양자의 관계를 규명하려는 관찰자의 시점이 조합에 있거나, 혹은 양자와 무관한 제3자적 시점이 아니라 정당에 있다는 것이며, 다시 말하면 정당을 축으로 하여 양자의 관계를 고찰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이 논문은 사회운동의 주기이론을 좌파정당의 변화과정에 적용하여 정당의 시기를 발생기, 성장기, 성숙기, 쇠퇴기로 구분하고 각각의 단계에서 좌파정당이 최상급노조와 어떤 관계를 맺는가를 서술한다.
둘째 이 논문은 좌파정당과 최상급노조의 조직 자체의 성격과 양자의 관계가 변화되는 과정을 반체제세력의 제도화라는 큰 틀에서 고찰하고 있다. 이를테면 사회주의 정당과 노동조합의 발생과정은 반체제세력의 제도화 이론을 통해 살펴보고, 노동계급에 기반 한 사회주의 정당이 원내에서 성장하는 과정은 사회균열에 따른 정당체계 관점에서, 사회주의 정당의 사회민주주의 정당으로의 변화는 계급정당의 딜레마국민정당화라는 측면에서, 사회민주주의 정당에서의 이념의 퇴조현상과 기득권세력화는 이념정당의 탈이념화와 카르텔정당화관점에서 설명하면서 좌파정당의 이러한 단계들을 전체적으로 제도화 심화과정으로 본다. 이 논문은 이러한 좌파정당의 제도화 심화과정에서 변화해가는 양자의 관계와 이에 대한 노동조합의 대응을 추적한다.
이 논문은 사회주의운동 일부가 자본주의국가 안에서 지배 권력에 포섭되어 노동자 계급정당과 민중정당 그리고 국민정당을 거쳐 탈이념적인 중도정당으로 변화되어가는 제도화 심화과정을 사회문제의 인식, 운동주체와 조직의 형성, 운동조직과 기존제도의 상호반응, 사회운동 목적의 달성 혹은 실패라는 사회운동의 주기이론관점에서 고찰하고 있다.
셋째 이 논문은 연구방법으로 유사한 사례분석을 활용한다. 먼저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관계 모델과 유사한 사례를 찾기 위해 좌파정당과 최상급노조의 관계 모델에 대한 이론을 검토하고 그러한 이론에 따라 각국의 유형을 분류하여, 한국적 상황과 유사한 사례를 찾는다. 그 결과 한국은 독일과 영국 그리고 프랑스와 유사하게 당과 노조의 관계가 사회변혁의 관점에서 사회민주주의 노선으로 변화되었으며, 특히 1 : 1의 사회민주주의 모델로 분류될 수 있음을 밝힌다. 그리하여 이 논문은 비로소 독일, 영국, 프랑스의 사례분석을 통해 당과 노동조합의 관계에서 문제되는 쟁점을 도출하고 관련하여 역사적 시사점을 얻고자 한다.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관계에 대한 연구는 선행연구 이외에도 다양한 원 자료를 활용한 1차적 연구에 방점을 두고 있다. 이러한 자료는 주로 양 조직의 각급 기관에서 작성한 것과 관련자들이 토론회 등에서 발표한 것들이다. 특히 이러한 자료는 저자가 민주노동당의 집권전략위원회와 강령개정위원회, 진보정치대통합추진위원회, 그리고 정책연구소에 재직하면서 수행하였던 전 당원 설문조사, 당원여론조사, 민주노동당에 관한 국민여론조사, 민주노동당 의원들과 민주노총 활동가들에 대한 인터뷰, 그리고 직접 작성하였던 공식보고서 등을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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