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예외주의는 어떻게 제국주의로 나타났는가?

) 미국 체제의 특징으로서 예외주의(American exceptionalism)
 
첫째 미국인들은 자신의 나라가 세계 최초의 민주적 공화국이라고 자부하고 있다. 일단 미국은 1776년 당시 영국, 프랑스, 독일과 달리 군주제가 아니라 공화국이었으므로 민주주의가 유럽보다 발전한 나라였다. 이미 비록 군주제이지만 입헌군주제의 채택으로 실질적인 민주주의 체제를 운영해왔던 영국인들이 오늘날 미국의 건설하였고, 영국의 왕실 역시 영국의 민주주의 제도, 즉 선거와 투표를 중심으로 한 의회제도를 자신의 미국 식민지에 적용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 건국 당시 스위스나 다른 소국가에서 공화국 제도를 도입한 적은 있지만 상당한 영토와 인구를 지닌 나라에서 공화국 제도를 도입한 것은 미국이 처음이라고 봐야 한다. 여기서 공화국 제도를 운영했다는 의미는 의회제도를 운영했을 뿐만 아니라 공화국 제도에 수반되는 국민적 합의에 의한 성문헌법의 제정, 언론의 자유, 배심제와 같은 민주적 재판, 인권을 보호하는 형사제도 등 식민지 모국인 영국의 제도를 대부분 차용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따라서 미국은 건국 당시부터 개인의 자유와 평등, 사유재산의 보장 등 공화국적 가치를 강조하였다. 다만 미국이 의원내각제가 아닌 대통령제를 선택한 배경은 영국의 미국 식민지들이 이미 건국 당시 주지사와 같은 대통령제와 유사한 행정조직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국가의 주지사에 해당하는 대통령제를 자연스럽게 수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국가의 최고지도자로서 국왕에 유사한 자, 즉 일정기간 국왕처럼 국가를 대표하고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는 대통령제를 고려했다는 점에서 군주제도와 유사한 점이 있다.

둘째 미국은 스위스 등 소국가를 제외한다면 연방정부와 주정부가 권력을 상호 공유하고 또한 상호 견제하는 연방제를 처음으로 도입하였다. 미국이 연방제를 도입한 배경에는 영국의 미국 식민지 경영방식과 관련이 있다. 영국은 미국 대륙에 식민지를 건설할 때 지역별로 쪼개 식민지 경영을 특허회사, 귀족 등에게 맡기거나 왕실이 직접 경영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독립적으로 운영되던 식민지들은 영국에 대항하여 독립전쟁을 하였을 때 연합하게 되었는데, 이후 독립하면서도 식민지 각각의 독립성을 보장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미국은 독립 당시 주정부가 거의 독립적인 주권을 가진 국가연합이었으나 건국헌법에 의해 연방국가로 전환되었다. 하지만 건국 당시에도 사실상 주정부의 권한이 강한 국가연합적 성격을 띠고 있었다. 연방정부의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는 북부가 남북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연방정부의 권한이 월등하게 강해져 오늘날의 연방국가가 되었다. 또한 미국이 주 정부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연방국가를 채택하게 된 것은 영국의 지방자치 전통이 미국 식민지에 전래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이 연방제도를 도입함에 있어 그 당시 이미 연방제도와 유사한 국가연합 제도를 운영하고 있었던 스위스 보다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존재하였던 인디언들의 국가연합 제도에 시사받았다고 볼 수 있다.
 
셋째 미국은 유럽의 가톨릭, 영국의 성공회를 피해 온 청교도들에 의해 건국되었고, 이들 청교도들은 다양한 교파를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에 건국 당시부터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였다. 이러한 종교의 자유는 건국 당시 기독교 내 종교의 자유를 의미하는 협소한 것이었지만 점차 모든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국교를 금지하여 종교와 정치를 분리하였다. 하지만 미국의 청교도 정신은 종교의 형태가 아니라 건국정신의 형태로 미국의 헌법과 국가적 가치에 깊이 스며들었기 때문에 기독교적 상징은 시민종교 형태로 정립되었다. 즉 미국 자체는 에덴의 동산을 본 따 만들어진 것이며, 성서는 미국의 헌법, 찬송가는 미국의 국가, 주기도문은 국기에 대한 맹세 등으로 표현되었다. 미국인들은 사회를 선과 악으로 나누고 자신의 행동을 사탄과 맞서는 천사의 의로운 행동으로 간주한다.
전 세계에 미국적 가치를 전파한다는 것은 청교도 정신의 전파 즉 기독교 선교를 의미하였다.
 
넷째 미국 예외주의는 그밖에 미국이 주로 유럽과 다른 정치, 경제, 사회 부문의 특징을 지칭한다. 미국은 이민사회이므로 다양한 인종과 다양한 문화를 기반으로 한 다원적인 사회이다. 따라서 미국 내에서 법률적으로나 관행적으로나 개인의 개성도 존중되지만 민족, 인종, 언어, 문화의 다양성도 보장되기 때문에 미국은 다원성이 보장된 사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도 미국에서 사회주의 정당이나 급진적인 노동운동이 의미가 없을 정도로 미미한데, 그러한 이유에 대해 여러 가지 분석이 있어왔다. 특히 양당제가 견고하여 사회주의정당과 같은 제3정당이 나올 수가 없다. 독일의 사회학자 좀바르트는 1906미국에는 왜 사회주의가 없는가라는 저서를 출판하기도 하였다. 마르크스는 가장 발전된 자본주의 국가에서 사회주의혁명이 발생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특히 자본론에서 발전된 국가는 덜 발전된 나라에게 그 미래상을 보여준다.”고 밝혔는데, 이 때문에 많은 사회주의자들이 미국에서 사회주의운동이 저조한 것에 주목하였다. 레닌과 트로츠키도 같은 문제를 다뤘다(립셋. 2006: 36).
미국의 계급문제가 사회주의로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미국에서 하층 계급은 흑인, 히스패닉과 아시사인처럼 이주한지 얼마 되지 않은 이민자들이기 때문에 계급문제가 인종문제로 왜곡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사회주의정당이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는 강력한 소선거구제와 예비경선제도가 민주당과 공화당 이외에 소수정당이 제도권에 진출하는 것을 막기 때문이다. 노동운동에 사회주의 운동이 자리 잡지 못한 이유는 유럽에서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가톨릭이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반면, 미국에서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기독교는 미국인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또한 임금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은 백인들이 기존의 노동조합을 장악하고 온건한 노동운동을 펼치고 있다 그리고 전통적으로 자본과 국가가 노동조합에 사회주의 사상이 침투하지 못하도록 강력하게 통제해왔다.
미국의 대통령선거 제도 역시 독특한데, 정당별로 예비경선을 거친 후 본 경선에 나서는데, 양자 모두 전국을 순회한다. 또한 각 당의 후보자는 당원 투표와 당 간부의 투표로 정해진다. 반면 대통령선출의 경우 국민투표에 의해 선출된 선거인단이 형식적으로 대통령을 뽑는다.
정당제도 역시 영국이나 유럽과 다른데, 중앙당과 당 대표, 중앙당의 관료 조직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의원과 같은 선출된 공직자, 지역 풀뿌리 조직들이 전국적인 협의회를 구성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정당의 정책은 의회 밖의 정당조직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연방과 주의 의회, 주지사와 대통령 등에 의해서 마련된다.
미국은 건국 초기부터 국가나 주 정부가 대중교육에 많은 투자를 하여 문맹률이 낮고 학교 교육을 발달하였다. 미국은 최근 2010년 이후에도 GDP7% 정도를 교육에 투자하고 있으며, 특히 공교육비 투자는 5% 대에 이르러 소국가를 제외한다면 최고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은 개인의 자유와 함께 개인의 책임도 강조하기 때문에 개인 문제는 개인이 책임져야 한다는 사회적 풍조가 강한데 이는 미국의 복지수준이 유럽보다 낮은 이유이기도 하다. 이밖에도 보장돼 무차별 난사 등 총기사고가 빈발하나 총기보유는 헌법상 자유이기 때문에 총기 규제가 어렵다. 백인과 흑인 사이의 인종갈등이 심하다. 또한 인구에 비해 수감자, 변호사 등이 비정상적으로 많다.
 
 
) 외교정책의 특징으로서 예외주의
 
첫째 미국의 예외주의는 미국이 영토를 확정짓고 국내 문제에 주력하는 미국 역사 초기에는 고립주의 외교노선으로 나타났다. 미국인들의 예외주의는 기독교적 소명의식과 청교도적인 선민의식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미국인들의 정체성과도 깊이 연결되어있다. 예외주의는 신대륙으로의 이주배경, 국가형성 과정, 국내적 팽창과정을 역사적 배경으로 하여 배태된 일종의 종교적 신념으로 볼 수 있다. 건국 이전부터 미국인들은 예외주의를 발전시켜왔다. 미국은 독립 이전부터 식민지 사회가 형성되어 있었고, 이미 미국적 특징을 간직하고 있었던 것과 같이 예외주의도 미국의 초기 역사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영국인들은 미국에 1607년경부터 정착했고, 첫 정착지는 버지니아였다. 버지니아에 온 이들은 그냥 돈을 벌기위해 온 사람들이었을 뿐이었고, 영국의 해외 개발 사업을 위하여 조직된 버지니아 사를 통하여 큰돈을 노리고 새 땅으로 온 것이다. 그러나 이런 천민자본주의가 경제적 기반이었던 남부에서 미국인의 예외주의 역사의식이 형성될 수는 없었다.
경제적 이유 때문에 버지니아에 온 사람들이 아닌, 단지 오로지 신앙적인 자유를 찾아, 오직 종교를 위한 목적으로 신대륙을 택한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이 다름 아닌 주로 뉴잉글랜드 지역으로 온 청교도(Puritan)'이다. 이들이 바로 미국의 예외주의를 탄생시킨 주인공들이었다. 청교도들은 영국에 남아 있는 사람들보다 자신들의 신앙에 대한 우월감을 지니고 있다고 자부하였다. 청교도들에겐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는 특권의식인 예외주의 의식이 있었다. 청교도가 미국에 정착하기 시작한 것은 1620년부터인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1630년대 제2차 이민의 물결을 몰고 온 존 윈스럽(John Winthrop) 이었다. 그는 신대륙에 영국인들도 바라볼 위대한 언덕위의 도시(A city upon a hill)’를 건설하자고 외쳤다.
예외주의는 영국으로부터 미국이 독립하면서 더욱 분명해졌고, 특히 부패하고 희망 없는 유럽의 사회문제에 휘말리지 않는 것은 미국의 외교정책에 가장 중요한 일로 떠올랐다는 것이다. 1796년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은 임기를 마치는 고별연설(Farewell Address)의 형식으로 외교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말했는데, 그것은 미국인들이 유럽의 문제에 휘말리지 말 것을 당부하는 말이었다. 조지 워싱턴을 비롯한 미국의 건국의 아버지들에게 그 당시에 유럽은 도덕적으로 부패한 대륙으로 보였기에 그들의 문제는 절대 해결될 수 없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에 비하면 미국은 희망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고립주의는 존 아담스(John Adams)나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에 의해서도 항상 강하게 주장되었고, 마침내 제임스 먼로(James Monroe) 대통령에 의하여 1823년 소위 먼로 덕트린(Monroe Doctrine)으로 자세히 이뤄지게 되었다.
더욱이 신대륙은 유럽의 영향을 벗어나 있어야 하는 한 곳이었고, 미국은 다르다는 의식이 확고해 졌다. 유럽에 대해 외교적인 고립을 주장하는 미국이 당면한 또 다른 문제는 북미대륙 내에서의 내부적 팽창이었다. 미국이 대륙에서 팽창하는 것은 미국적 체제의 승리를 위해 필요했다. 미국은 건국 초부터 팽창주의 노선을 택했다. 그리고 이런 미국인들의 예외주의 역사의식은 19세기에는 신에 의한 명백한 운명이라는 내부적 영토 팽창을 정당화 시켰다.
 
둘째 미국의 예외주의는 미국이 세계적인 강대국으로 부상한 이후 대외팽창의 정당성을 부여하였는데, 이는 약소국에 대해서는 비기독교국가에 대한 기독교국가화라는 네이션빌딩으로 나타났고 적대국이나 경쟁국가에 대해서는 타도되어야 할 악마화로 나타났다.
미국 예외주의는 미국을 분석한 프랑스의 알렉시 드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1835년에 펴낸 미국 민주주의라는 책에서 유래되었다. 토크빌은 미국과 러시아에 대해 어떤 섭리에 의해 언젠가 세계의 운명을 떠안게 될 예외적 위치에 있다고내다봤다.
미국인에게 미국 예외주의는 미국은 다른 국가와는 차별성을 가지며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탄생한 국가라는 신념을 의미한다. 이는 외교정책의 실행에 있어서 도덕주의, 이상주의의 모습으로 표현되었고, 구세주의(Messianism) 정서와 결합하여 미국적 가치를 해외에 강제로 적용하려는 정책적 노력과 정당화 시키는 도구로 기능하였다. 예외주의는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세계의 미국화를 정당화시켰다. 미국의 예외주의는 세계의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를 지키는 사명감을 가진 나라가 미국이라는 것이다. 결국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있는 미국은 지구적 평화와 번영을 보장할 수 있는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 미국식 민주주의이고, 또한 국제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는 길은 미국화 외에는 없다고 믿고 있다. 또한 미국이 국제사회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에는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동의하고 있다. 미국은 다르기 때문에 국제정치를 주도해야 한다고 믿는 역사의식이라는 것이다. 예외주의는 미국인의 민족적 자부심을 드러내는 말로 사용되면서, 외부에선 '미국의 우월주의'를 나타낸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미국 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이분법적 접근도 미국 예외주의에서 나왔다. 미국인들은 전쟁을 이교도와 악마를 물리치는 신의 의도를 관철하는 십자군 전쟁으로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조지 부시(Bush) 전 대통령 시절 공화당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은 이 개념을 신봉하며 대외 정책에 활용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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