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노동계급 자기해방의 주체로서 당과 노동조합의 정립

독일에서의 노동조합은 1848년 혁명 당시 최초로 조직되었으나 혁명의 실패 이후 정부의 탄압으로 붕괴되었다. 노동조합은 1862년 다시 부활하였으며, 1865년에는 최초의 전국적인 연합조직인 인쇄공총연합이 탄생하였다.
1863년 페르디난트 라쌀(Ferdinand Lassalle)은 독일 최초의 대중적인 노동자정당인 전독일노동자연맹(Allgemeiner Deutscher Arbeiterverein, ADAV)를 창설하였고 1867년 노동조합의 투쟁의 결과로 단결금지법이 철폐되자, ADAV는 노동조합운동을 강령에 받아들이고 노동조합의 결성에 나서게 된다. 1864년 라쌀이 사망한 이후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리프크네이트와 베벨에게 프티부르주아 민주주의를 타파하고 자주적인 노동자조직을 결성할 것을 독려하였고, 그 결과 1868년 마르크스주의에 의해 지도되는 최초의 노동조합중앙조직인 국제노동조합연합이 결성되었다(Schneider, 1991: 43-44).

마르크스주의 조직과 라쌀주의 조직은 상호 병존했으나 1875독일사회민주노동자당(Sozialdemokratische Arbeiterpartei Deutschlands: SDAP)’ADAV가 통합되어 독일사회주의노동자당(Sozialistische Arbeiterpartei Deutschlands: SAP)’이 출범하였고 같은 해 마르크스파의 국제노동조합연합과 라쌀파의 노동조합이 통합하여 자유노동조합이 출범하였다.
1868년 영국의 노동조합대표자회의, 1881년 미국의 미국캐나다노동조합연합, 1886년 프랑스의 노동조합협동조합전국연맹 등 전국적인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1870년 네덜란드, 1871년 덴마크, 1876년 미국, 1879년 프랑스와 스페인, 1880년 영국, 1898년 러시아 등 각국에서 마르크스주의에 따르는 노동자계급정당들이 생겨났다. 이처럼 한 국가 내에서 그리고 국제적인 단위에서 최상급노조와 노동자정당이 성장함에 따라 이 양자의 관계가 점차 대두되었다.
존 몰리뉴(John Molyneux)는 마르크스의 당 개념의 발전을 분석하기 위해 마르크스의 정치생활을 공산주의자동맹시기(1847~ 1850), 계급투쟁이 퇴조했던 중간기(1850~ 1864), 국제노동자협회 시기(1864~ 1872), 대중적 사회민주주의 시기(1872년 이후 1883년 사망할 때까지) 4개의 시기로 구분하였다(몰리뉴, 1986; 23).
1848년 공산주의자동맹과 1864년 국제노동자협회 시기 사이에 노동조합은 당국의 탄압을 피하고자 공제회, 교육단체, 성가대, 스포츠클럽 등의 형태를 지니고 있었다. 이런 조건에서 마르크스는 먼저 노동조합의 결성을 주장하였고, 노동조합이 발전하고 있는 과정에서 노동자정당이 독자적으로 존재할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마르크스는 1846철학의 빈곤파업과 노동조합(Les grèves et les coalitions des ouvriers)’이라는 항목에서 노동자계급이 공동의 경제조건 아래서 자본의 지배에 의해 즉자적 계급으로 형성되었지만 정치적 투쟁을 통해 자본가에 대항하는 대자적 계급으로 발전할 것을 강조한 바 있다(Marx, 1968b: 67).
또한 마르크스는 1866국제노동자협회 임시 중앙평의회 대의원들을 위한 개별 문제들에 관한 지침들(Instructions for the delegates of the Provisional General Council. The different questions)노동조합 - 그 과거, 현재 미래(Trades' unions. Their past, present and future)에서 노동조합은 노동조건의 개선을 쟁취하려는 노동자의 자연발생적인 초보적 투쟁조직으로서 정당과는 별개의 조직으로 유지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즉 마르크스에게 있어 노동자들의 경제투쟁과 노동조합의 형성이 자본주의에 대한 즉자적 반응이었다면, 정치투쟁과 노동자정당의 형성은 대자적 행동이었다. 또한 마르크스에게 있어 이런 대자적 행동을 더욱 추동하는 것은 공산주의 사상과 공산주의자이었다. 마르크스는 일찍이 공산당선언을 통해 공산주의자들은 프롤레타리아를 계급으로 엮는, 노동자계급 투쟁의 가장 단호한 추진자이고, 나머지 프롤레타리아 대중보다 앞서 있다고 밝힌 바 있다(Marx, 1989: 474).
국제노동자협회의 성립과 해소는 일국적 차원과 국제적 차원에서 노동자정당과 노동조합이 정립되는 과정이었다(김장민, 2014c ; 58). 마르크스가 작성한 1864년 국제노동자협회 총칙에 따르면 노동계급의 해방은 노동자들 자신이 쟁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그 당시 국제노동자협회에는 정당의 성격을 지니는 노동자정치조직과 함께 영국과 프랑스 및 독일 등에서 출현한 노동조합이 병존하였는데, 아직까지 당과 노동조합이 명확하게 구분되지 못하였다(Stekloff, 1928).
국제노동자협회가 출범할 즈음 영국의 노동조합주의는 노동자계급의 해방이나 정치에는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고 노동조합운동을 일상적인 경제요구를 쟁취하는데 한정하려고 하였기 때문에 독자적인 노동자정당 건설에 반대하였다(김상복, 1991: 20). 프루동과 바쿠닌은 노동자정당 건설에 소극적이면서 노동조합의 경제적 요구나 제도개선 투쟁을 경시하였고, 특히 바쿠닌은 노동조합을 정치적 변혁의 수단으로만 이용하려고 하였다. 이에 반해 라쌀은 노동자의 임금인상과 파업투쟁을 경시하면서 노동자정당 건설에 주력하였기 때문에 노동조합의 건설에 소극적이었다.
반면 마르크스의 노동계급 자기해방의 명제는 필연적으로 부르주아 정당에 대립하는 노동자정당의 건설을 요구하였다. 마르크스는 1871년 국제노동자협회 런던대회가 채택한 결의문 노동자계급의 정치행동을 통해 이러한 바쿠닌주의자들과 영국의 노동조합주의를 비판하였다. 마르크스는 이 결의문에서 노동자계급은 유산계급의 이전부터의 정당조직 전체에 대립하여 스스로를 특별한 정당으로 조직함으로써 유산계급의 폭력 전체에 대하여 계급으로서만 행동할 것이다고 주장하였다. 엥겔스 역시 1881723레이버 스탠다드잡지에서 영국의 노동자계급은 거의 25년 동안 소위 대자유당의 후미가 되는 것에 만족해 왔다고 비판하면서 노동자정당의 건설과 의회진출을 주장하였다(Marx, 1988a: 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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