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최초의 연방공화국을 세우다

177613개의 영국 식민지 대표가 대륙 회의를 구성하였고 이 대륙회의가 13개의 공화국으로 구성된 국가연합의 성립을 선언하였다. 1781년에 영국과의 독립전쟁을 승리한 미국 각 주의 대표자들은 연합헌장(Articles of Confederation, 1781~1788)을 채택하였다. 연합헌장은 각 주의 대표로 구성되는 연합의회(Confederation Congress)를 설치하였다. 17855개 주의 연합의회 의원들은 연합헌장에 상업의 증진을 위한 조항을 넣기 위한 헌법회의를 개최하였는데, 이를 계기로 필라델피아의 중앙정부의 권한 강화 등 연합헌장 개정 전반에 대해 논의하였다.

1786년 연합의회는 연합헌장을 전면적으로 개정하기 위한 논의에 13개 국가를 초청하였다. 12개 국가가 참여한 헌법회의에서 아예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기로 합의하였고, 이에 따라 필라델피아 헌법 제정 회의가 성립하였다. 1787년 헌법 초안이 완성되었으며, 먼저 연합의회가 연합헌장 13조에 따라 이 초안을 승인하였으며, 연합의회는 13개의 국가에게 이 초안의 승인을 요구하였다. 9개 국가가 이 헌법 초안을 승인하여 헌법으로서 효력을 지니게 되었으며, 그 이후 13개 국가 모두가 승인하였다. 헌법은 노예제도 자체를 언급하지 않았으나 도망간 노예를 다시 잡을 수 있는 조항이 있었고, 5분의 3인 노예는 각 주의 인구로 집계되어 하원의 비율을 정하는 데 사용되었다.
미국이 1776년 독립할 당시 유럽에서 공화제를 채택한 소국이 있었지만 이는 자유인이 거주하는 도시국가에 불과하였고, 공화제의 운명은 강력한 지배자의 자의에 좌우되었다. 따라서 진정한 자치와 민주주의에 기반한 국가 차원의 공화제는 사실상 미국에서 처음 실시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이 이러한 민주적 공화정에서 출발한 이유는 첫째는 입헌군주제를 통해 민주주의 전통을 확립한 영국의 정치체제를 계승한 것이었다. 둘째는 신교도를 탄압한 카톨릭의 스페인이나 국교를 채택한 영국이 군주제였고, 성경에서 이상 사회는 하나님 아래에서 평등한 신자들의 자치사회였으므로 신교도였던 미국의 건국자들은 자치공화제를 선호하였다. 실제로 스페인이나 프랑스의 아메리카 식민지는 주로 왕의 지배에 복종해야 하는 총독제에 운영되었지만 영국의 식민지들은 이미 오랫동안 식민지 의회를 기반으로 한 자치의 전통을 유지하였다. 미국의 건국자들은 공화제의 우수성을 확신하였으며, 유럽의 전제적 군주제를 경멸하였으므로 이러한 태도는 미국이 민주적 공화제를 다른 나라에도 확산하려는 이상주의적 대외정책에 반영되었고, 그것은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정치적 리더십이 정당화되는 명분이 되었다. 특히 토마스 제퍼슨은 미국을 자유제국으로 건설하여 미국을 인류의 피난처로 만들고 미국의 공화제를 전 세계에 확산한다는 구상을 지니고 있었다. 남미와 아시아에 미국식 대통령제가 확산된 것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 기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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