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집권전략위원회 보고서」

집권전략위원회는 의사결정기관이 아니라 자문기관으로서 그 활동을 집권전략위원회 보고서형태로 2009년 정책당대회에 보고하여 승인받았다. 집권전략위원회 보고서집권전략위원회 보고서승인의 건이라는 안건으로 제출된 문건으로서 승인대상인 집권전략 10대 과제’, ‘10대 과제의 해설’, 집권전략위원회 회의 보고 등으로 구성되었다. 집권전략위원회 보고서2011년 진보적 민주주의 강령 개정 이전의 문건이므로 2011년 강령의 직접적인 해석 기준이 될 수 없고, 통합진보당의 진보적 민주주의가 아니라 진보적 민주주의 일반에 대한 해석의 기준이 될 뿐이다.
 
1) ‘집권전략 10대 과제
 
보고서 승인의 건은 과반수로 통과되는데, 문서 성립의 진정성을 확인하고 내용에 대해 의문 나는 점이 있으면 질의하고, 사실과 다른 내용을 담고 있다면 그 부분을 수정하는 것이다. 집권전략위원회 보고서승인의 건에 있어 쟁점은 그러한 보고서가 적절한 절차에 의해 해당 위원회에서 논의된 내용을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는가의 문제이지 그 내용의 타당성을 토론하지 않는다. 즉 내용의 적부를 심의하지 않고 그 존재만 승인된 것이므로 내용에 대한 의사결정이 아니다. 따라서 그러한 문건과 문건의 내용을 당의 의사결정기관이 인식하였다는 것일 뿐 당론이 되려면 별도의 토론과 표결이 필요하다. 집권전략 10대 과제는 당내 토론의 내용을 보고한 것에 불과하여 민주노동당의 목적으로 해석될 수 없다.
정부는 집권전략위원회 보고서를 민주노동당의 집권전략인양 제시하고 있지만 회의결과에서 보듯이 집권전략위원회 보고서는 집권전략위원회 내부 토론과정을 정리하여 향후 민주노동당이 집권전략을 수립할 때 참고하고자 작성된 것이다. 따라서 이 자체를 민주노동당의 집권전략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특히 2009년 정책당대회 결과 공지를 보면 백승우 사무부총장이 집권전략위원회 보고서를 채택하였을 뿐 당의 집권전략을 채택한 것이 아니라면서 당의 집권전략은 추후에 논의해 결정하기로 하였다고 답변하였는바 이를 보아도 집권전략위원회 보고서는 당의 입장이 아니다.
 
 
2) ‘10대 과제의 해설
 
진보적 민주주의가 언급된 부분은 승인대상인 집권전략 10대 과제의 내용이 아니라 별도로 첨부된 ‘10대 과제의 해설이다. ‘10대 과제의 해설은 승인 안건에 포함되지 않았으므로 이에 대해 대의원대회에서 토론하거나 수정 의견을 받지 않았다. 따라서 ‘10대 과제의 해설는 승인 안건을 보충하는 의미로서 효력을 지닌 참고자료이다. 따라서 ‘10대 과제의 해설를 통해 보고 안건의 의미와 다른 새로운 내용을 추가하거나 반대되는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 정부가 민주노동당이 전민항쟁을 저항권으로 위장하여 집권의 방법으로 논의하였다면서 제시하고 있는 ‘10대 과제의 해설의 내용은 역사적 사례를 아래와 같이 분석한 부분일 뿐, 민주노동당의 집권방안으로서 논의한 것은 아니고, 그 내용도 헌법상 예외적인 상황에서 가능한 저항권을 일반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성공적인 저항권행사로 거국연립정부가 성립되는 경우 진보정당이 이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이때 비상정부적 성격의 거국연립정부가 사후에 총투표로써 승인받으면 합법적 집권이 가능하다. 저항권에 의한 정권교체가 성공된 경우 몇 가지 공통적인 요인이 있다.
첫째, 비상정부가 수립되거나, 새로운 헌법에 의해 정부가 출범하더라도, 체제변혁으로 나타나지 않는 경우 대부분 현행 헌법정신을 수호하고자 하는 민주주의 혁명이다. 저항권의 행사방식도 간헐적인 유혈충돌이 있더라도 기본적으로는 수십만 이상이 참여하는 대규모 평화시위와 행진에 머문다. 시민의 희생을 강요하는 공권력의 무자비한 탄압이 없는 이상 무력행사는 대중적인 동의를 얻지 못한다.
저항권 행사의 중심세력은 정당과 다양한 시민사회단체를 포괄하는 민주주의 진영이다. 다만 진보정당이 저항권 행사의 동력인 대중투쟁의 지휘부라면 비상정부의 주체가 될 수 있다. 이후 진보정당이 비상정부가 추진하는 총투표나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하면 집권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저항권 상황에서는 진보정당이 민중전선체의 지도부로서 대중투쟁을 주도하면서, 중도정당을 압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저항권이 성공하면 현재의 정부는 불법화되고 저항권을 행사한 세력에 의해 새로운 비상정부가 탄생한다. 이 비상정부는 이후 헌법절차에 따라 정상적인 새로운 정부를 구성하게 된다. 예를 들어 604.19의 민주혁명의 결과 대통령과 각료가 총사퇴하여 허정을 수반으로 하는 비상정부가 출범하였다. 이때 탄생한 정부가 저항권 행사를 유발시켰던 정부와 얼마나 단절되는가는 저항권의 동력이 얼마나 강하고, 저항권의 결과가 어떻게 처리되느냐에 따르다.
예를 들어 4.19혁명은 민중들의 혁명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관여로 인해 비상정부가 과거의 정권과 완전히 고리를 끊지 못하였다. 비상정부 이후 정식으로 수립된 정부 역시 친미종속적인 보수정권의 성격을 변화시키지 못하였다. 이러한 미완의 저항권에 의해 탄생한 새로운 정부는 정권의 불안정성과 정국의 혼란에 의해 5.16군사정변에 의해 반동정권으로 전복됐다. 만약 5.16군사쿠테타에 대한 국민들의 헌정수호투쟁이 발생하였다면 이는 저항권의 전형적인 모습이었을 것이다.
셋째, 저항권 행사가 체제변혁의 혁명적 저항권으로 발전하지 못하는 요소들이 있다. 대부분의 공권력이 무력대결 직전에 대중투쟁에 굴복하였다. 필리핀이나 4.19혁명에서 보듯이 대중투쟁에 굴복하느냐는 군부의 중립여부, 미국의 개입, 헌법중재기관의 역할 등에 달려 있다. 중도진영이 주도하는 민주주의 혁명은 군부, 외세와 일정부분 타협한다. 친미국가에서는 이러한 타협에 의해 외세의존적인 중도정권이 반복되는 경우도 많다.
넷째, 집회와 시위, 시민불복종운동 차원을 넘는 전면적인 대중투쟁이 유발되는 계기가 있다. 독재정권의 부패와 부정이 대중투쟁을 유발하고, 대중투쟁은 선거와 같이 정권교체기에 저항권으로 발전한다. 저항권은 부정선거에 대한 항의, 직접선거의 쟁취 등 선거권 확보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3) 회의결과 보고
 
첫째, 집권전략위원회 구성 과정과 운영을 보면 집권전략위원회는 자주계열의 장악이나 북한의 지령과 무관하다(법무부, 2013a:2). 집권전략위원회는 2003년 임시당대회에서 그 설치가 결정되었고, 총선 직후 추진되었다가 인선문제로 2005년에나 출발하였다. 평등계열이 초기의 집권전략위원회를 주도하였다. 그런데 2005년 말 집권전략위원장인 김혜경 대표가 사임함에 따라 상임부위원장을 맡고 있던 최00 최고위원(전 정책위원장)이 위원장으로 승계되었다. 00이 집권전략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시기, 2008년 분당 전까지 김윤철 진보정치연구소 연구기획실장, 장석준 진보정치연구소 연구기획국장, 강병익 진보정치연구소 상임연구위원 등 평등계열의 전문위원(기획위원겸)이 상근직으로 있었다.
둘째, 14차 회의 내용을 보면 김혜경 위원장 시절의 집권전략위원회는 유명무실했으며, 00 위원장 시절에 주요 내용을 논의하여 결정하였다는 정부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0순과 김장민이 집권전략위원회에 결합하기 전에 김혜경 민주노동당 대표가 집권전략위원장을 맡았는데 김혜경 위원장 시절의 집권전략위원회는 당헌과 당규의 개정방향에 대해서도 논의하였는바 이는 정부의 주장과 달리 최00 위원장 시절보다 훨씬 권한이 포괄적이고 강력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부의 주장과 달리 김혜경 위원장 시절에 토론회, 강연회, 다른 단체와의 간담회, 인터뷰 등을 활발하게 추진한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김장민 연구위원의 624일 증언과도 부합한다.
정부의 주장과 달리 김혜경 위원장 시절에 집권전략위원회가 평등계열 중심으로 운영되면서 각종 분과와 소위원회를 두고 강력한 조직으로서 많은 활동을 하면서 보고서의 초안을 잡았다. 그 당시 전체회의에서 보고서의 방향을 잡으면 그에 근거하여 전문위원인 김윤철 진보정치연구소 연구기획실장과 장석준 연구기획국장이 초안을 제출하였으며, 실무적 보좌는 신장식 비서실장, 방석수 기획조정실장 등 여러 명이 담당하였다.
그 당시 회의록을 보면 정부 주장과 달리 분과와 소위원회는 김혜경 위원장 시절에 이미 운영되었다. 민주노동당의 성격, 집권의 목표, 집권의 경로, 집권방법 등 보고서의 핵심내용이 김혜경 위원장 시절에 논의된 것을 알 수 있다. 그 당시 집권전략위원회는 2009년에 완성한 집권전략위원회 보고서의 주요 의제를 대부분 포괄하고 있었는데, 이를테면 민주노동당의 사회운동정당으로서의 정립, 정당명부제와 결선투표 등 선거중심의 집권방법 수립, 집권의 경로로서 20% 지지율 획득과 제1야당으로의 부상 등 중간단계 설정, 노동자 농민 등 대중조직과의 연계 및 지역집권전략, 통일방안으로서 낮은 단계의 연방제 검토 등이다.
김혜경 위원장 시절에 배철호, 정영태, 문명학 등이 추가로 전문위원이 되어 정치활동소위원회에 소속되어 주요 내용을 논의하였는바, 이들은 모두 평등계열이라는 점에서 집권전략위원회 보고서의 내용이 자주계열의 입장만 반영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특히 장석준 전문위원은 선거일정에 따른 집권경로에 대한 도표를 제시하고 있는바, 이는 집권전략위원회 보고서에 거의 그대로 반영되었다. 김윤철 전문위원은 계급연합의 의미로서 중간층의 확보방안과 연합전술, 연립정부의 참여 등을 언급하였는바 이 역시 2009집권전략위원회 보고서에 반영되었다. 따라서 집권전략위원회 보고서의 주요 내용이 자주계열이 대남혁명노선을 추종한 증거라는 정부의 주장은 부당하다.
평등계열이 주도하는 집권전략위원회에서 중소상공인의 조직방안이 논의되었는바, 이는 중소상공인과의 결합이 자주계열의 인민민주주의혁명전략의 1단계라는 정부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평등계열이 작성한 문건은 진보적 민주주의를 도입한 정책당대회의 신설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바 이는 평등계열이 주도한 2003년 당발전특별위원회 보고서에서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 보고서는 원내 활동 이외에도 당 밖의 시민운동, 민중운동 등 사회운동과의 결합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이 문건은 해외사례까지 소개하면서 노동자단체, 농민단체와의 공동체가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는바 이 역시 집권전략위원회 보고서에 원내 활동과 원외 대중운동의 결합, 시민사회단체 및 민중단체와의 연대체 구성 등으로 반영되었다.
셋째, 정부는 집권전략위원회 회의결과를 토대로 하여 최00 새세상연구소 소장, 0순 진보정책연구원 부원장, 김장민 연구위원이 집권전략위원회를 주도하면서 북한의 대남혁명전략인 진보적 민주주의를 집권전략위원회 보고서에 담았다고 주장하였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일단 최00이 집권전략위원회와 강령개정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으면서 민주노동당의 진보적 민주주의 강령 도입을 주도한 것은 맞다. 다만 최002012년 통합진보당 사태 당시 탈당하여 민주당에 입당하였고, 그후 지방선거와 총선에서 민주당에 공천을 신청하였다. 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긴 최00이 도입한 진보적 민주주의가 대남혁명론을 추종한다고 해석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0순은 집권전략위원회 자체에 그다지 결합하지 않았다. 0순 부원장은 계속해서 당 밖에 있다가 20088월에 집권전략위원회 기획단장이 되었는데, 이때는 이미 집권전략위원회가 3년 넘는 활동을 마치고 마무리를 하던 때이므로 박0순 부원장이 집권전략위원회를 주도하였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오히려 공계진 전 금속노조연구원장이 당 정책위원회 부의장으로서 약 2년 동안 집권전략위원회 기획단장을 맡으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법무부, 2013a:8). 회의록을 보면 박0순은 200812월과 20095월 두 차례 집권전략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하였을 뿐이다. 0순이 참석한 200812월 전체회의는 집권전략위원회의 존치여부만을 다루고 특별한 내용을 논의하지 않았다. 20095월 전체회의는 마지막 회의였으며, 0순은 특별한 의견을 제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200710월 집권전략위원회 토론회에서 발표한 박0순의 발제문은 집권전략위원회 보고서에 반영된 것이 없다.
김장민은 집권전략위원회 전체회의와 기획위원회 회의에 참석하여 실무자로서 토론내용을 정리하고 이를 문서화한 것뿐이다. 특히 김장민은 20073월경부터 2008년 총선 직후까지 수원에서 경기도당 교육국장으로 상근을 하였고, 이 기간 동안 정0, 0석 등이 상임기획위원을 하였다. 따라서 20071023일 집권전략위원회 토론회에서 발표한 김장민의 글이 사실상 집권전략위원회의 입장이 반영된 마무리 단계라는 정부의 주장은 부당하다.
 
 
4) 2017년 집권을 위하여에 포함된 집권전략위원회 토론자료
 
2017년 집권을 위하여‘10대 과제’, ‘해설’, ‘토론자료와 기타 집권전략위원회에 제출된 보고서를 묶은 책자이다. <토론자료>는 대의원대회나 중앙위원회, 최고위원회 등에 아예 보고되지 않은 별도의 참고자료이다. <해설서>는 안건에 첨부되는 반면 <토론자료>는 아예 최고위원회, 중앙위원회, 대의원대회의 자료집에 들어 있지 않았다. <토론자료>는 김장민 집권전략위원회 기획위원이 집권전략위원회의 그간의 토론내용을 반영하여 작성한 것이다. 20092차 중앙위원회 회의록에서 최00 위원장은 이 토론자료는 연구 논문성 자료집이라고 답변하였다. 즉 당이나 집권전략위원회의 의견이 아니다. 특히 이 자료는 2011년 진보적 민주주의 강령 도입 전에 완성된 것이니 강령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헌법재판소는 이 토론자료의 내용을 통합진보당의 진보적 민주주의를 해석하는데 직접적으로 인용하였다.
 
 
5) 집권전략위원회 토론회 자료집 한국사회의 성격과 변혁전략
 
200710월 집권전략위원회가 주최한 <한국사회의 성격과 변혁전략 토론회>에서 박0순 당시 진보운동연구소 소장, 김장민 집권전략위원회 기획위원, 김종철 중앙위원, 김인식 중앙위원,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원장 등이 발제하였다.
첫째, 정부는 김장민이 이 토론회에서 집권전략위원회를 대표하여 집권전략위원회의 입장을 공식적으로 발표하고 진보적 민주주의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집권전략을 사실상 마무리하였다고 주장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이 토론회는 1980년대부터 한국의 진보운동과 학계에서 논의되어왔던 사회구성체 논쟁을 정리하고 오늘날의 한국사회의 성격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듣는 자리이었다. 발제자들의 주장은 민주노동당이나 집권전략위원회의 입장과 무관한 개인의견이었다. 이날 토론회에서 발제자들은 사회주의나, 사회민주주의, 진보적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주장을 전개하였다. 이 토론회에서 진보적 민주주의를 주장한 사람은 박0, 민경우 등 2명에 불과하였다.
둘째, 식민지반봉건이나 식민지반자본주의와 같은 사회구성체 논쟁은 북한이 제기하거나 주도한 것이 아니다. 사회구성체 논쟁은 마르크스의 사적 유물론, 레닌의 제국주의론, 1930년대 중국사회 성격, 일제 강점기 사회성격 등에서 유래되어 그 이후에도 우리사회에서 꾸준히 제기되어왔던 관점이다.
식민지반봉건사회라는 단어는 1930년대 중국사회의 사회구성체 논쟁에서 시작되었으며(김대환, 1988), 이것이 일제 강점기의 사회구성체 논쟁에 수용되었다. 일제 강점기에 대해 식민지반봉건사회로 규정한 학자는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이사장을 역임한 안병직 교수가 대표적이다. 주종환 동국대 교수도 일제 강점기에 대해 식민지반봉건사회론을 주장하였는데, 특히 주종환 교수는 훗날 일제 강점기 한국사회가 자본주의적 요소를 이미 잉태하고 있어 식민지반자본주의사회라고도 규정할 수 있다고 술회하였다. 반면 박현채는 일제시대 자본주의 발전이 저지되었지만 자본주의 맹아는 이미 발전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회구성체는 기본적으로 자본주의였다는 점에서 식민지자본주의사회를 주장하였다.
식민지반봉건사회론자들은 일제 강점기 뿐만 아니라 산업화 과정에 있던 대한민국에 대해서도 식민지반봉건사회론을 유지하였다. 안병직 교수 역시 이와 같은 입장이었으나 1980년대 이후 산업화된 우리사회에 대해서는 산업화 이전과 달리 식민지반봉건사회가 아니라 중진자본주의 사회로 규정하였다. 반면 박현채는 식민지반봉건사회론을 비판하면서 1980년대 이후 국가 주도로 중공업이 성장한 한국사회를 국가독점자본주의라고 규정하였다. 이에 식민지반봉건사회론자들은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의 비판을 일부 수용하여 산업화된 대한민국에 대해 식민지반자본주의 사회라며 자신들의 견해를 일부 수정하였다. 박현채 역시 종속성을 강조하는 식민지반봉건사회론의 영향을 받아서 한국이 산업화가 된 이후에도 신식민지의 성격을 지니는 식민지종속형자본주의의 유형에 속한다면서 산업화된 한국의 사회구성체에 대해 국가독점자본주의론에서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론으로 자신의 입장을 수정하였다.
결국 대외종속성은 식민지 혹은 신식민지라는 개념의 차이일 뿐 양자 모두 인정하였다. 쟁점은 한국 경제가 재벌중심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독점자본주의 국가이냐이다. 그런데 레닌이 제국주의론에서 제기한 5개의 표지에 따르면 독점자본주의 국가는 제국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오늘날 한국이 독점자본주의 국가로서 제국주의 국가이냐가 다시 문제된다. 집권전략위원회 토론회에서 김인식 다함께 운영위원이 이런 측면에서 한국을 동남아 등에 진출한 아류 제국주의 국가라고 평가하였다.
이처럼 식민지반자본주의론은 북한에서 수입된 것이 아니라 식민지반봉건사회론이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의 비판을 받아 수정된 것이며, 북한이 1988년 주장하기 이전부터 이미 대한민국의 학자와 진보진영이 사용해왔다. 이러한 점은 1988년 출판사 일송정에 의해 출간된 정치노선이라는 서적 등에 의해서도 확인된다. 한국사회의 사회구성체 논쟁은 1980년대 이후 박현채 선생 등에 의해 본격화되었고(박현채, 1989) 19891월에 조희연, 박현채가 사회구성체 논쟁을 집대성하는 시리즈를 발간한 적이 있다.
셋째, 정부는 이날 토론회에서 논의된 남한의 사회구성체론이 북의 주장을 추종한 것이라고 주장하였으나 1980년대 후반 식민지반자본사회론의 사회구성체 논쟁은 북한의 1970년대 식민지반자본주의사회론과 다른 맥락이다. 정부와 헌재의 주장에 따르면 북한은 1970년대 이전에는 남한사회의 사회구성체를 식민지반봉건사회로 규정하면서 남한혁명을 반제반봉건 민주주의혁명으로 지칭해오다가 197011월 제5차 당대회에서 남한사회의 사회구성체를 식민지반자본사회로 새롭게 규정하고 남한혁명을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혁명으로 공식 채택하였다. 이어 1990년에 이르러 김일성의 진보적 민주주의를 긍정적으로 재평가하였고, 이것이 식민지반자본사회론과 결합되어 대남혁명론으로 정립되어 소위 NL계열들에게 널리 전파되었다. 또한 일부의 주장에 의하면 사회구성체논쟁 이전에 통혁당이 한민전으로 개칭되면서 이미 1985년에 식민지반자본주의사회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따라서 1980년대 사회구성체 논쟁이 북한을 추종한 것이라면 처음부터 식민지반자본주의라고 하지 식민지반봉건이라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넷째, 정부는 1990년대 이후 사회성격 논쟁이 과거의 사회구성체 논쟁과 같은 의미로서 북한의 식민지반자본주의론을 계승한 것이라고 주장하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사회주의 국가가 붕괴된 후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근거한 사회구성체 논쟁은 희석되고 다양한 관점으로 사회의 성격을 수식하는 사회성격론으로 이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사회구성체라는 개념은 마르크스주의에서 유래한 생산력과 생산관계를 포함한 생산양식 개념을 전제로 하였다. 사회구성체는 생산양식 등 경제토대와 정치적 상부구조를 종합한 것이다. 식민지반자본주의에서 식민지는 사회구성체이고, 반자본주의는 생산양식이다. 레닌이 말하는 국가독점자본주의는 생산양식이고, 제국주의는 국가독점자본주의와 그에 수반하는 정치적 상부구조를 종합하여 지칭한 것이다. 반면 사회성격은 마르크스나 레닌의 생산양식의 개념에 구애받지 않고 어떤 사회의 특징을 천민적’, ‘예속적이라는 수식어를 사용하여 표현하는 것에 불과하다.
다섯째, 정부와 헌법재판소는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의 강령 등에서 한국사회의 성격을 수식하는 예속적’, ‘종속적이라는 단어가 식민지를 의미하는 것이고, 왜곡된 자본주의, 기형적 자본주의는 반자본주의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보면서 이러한 입장은 근본적으로 북한의 식민지반자본사회론과 다를 바 없다고 판단하였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일단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은 어떠한 당의 문건에서도 한국사회를 식민지나 반자본주의사회로 규정한 바 없다.
정부가 지적하는 2009년 민주노동당 집권전략위원회 보고서한국사회는 현상적으로는 중위의 발전된 자본주의 국가를 보이고 있으나 본질적으로는 민족분단국가로서 예속적 천민적 자본주의 사회구성을 이루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천민자본주의는 자본주의의 윤리적 근거를 확립한 막스 베버가 유대자본의 정경유착을 비판하는 표현으로서 사회구성체 논쟁과 무관하다.
정부는 2007년 집권전략위원회 토론회에서 김장민이 식민지반자본주의론에 동조하였다고 하였는데, 김장민은 이 토론회에서 식민지반자본주의사회론을 비판하면서 한국사회를 식민지반자본주의’, 혹은 국가독점자본주의로 보지 않고 왜곡된 자본주의 분단국가로 보았다. <왜곡된 자본주의 분단국가>는 특정한 사회구성체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독점자본이 기형적으로 발전되고 남북이 분단되어 있는 한국사회를 설명할 수 있는 수식어들을 결합시킨 것에 불과하다.
0순이 이날 토론회에서 진보적 민주주의와 식민지반봉건사회론을 주장한 바 있으나 이러한 주장은 남한을 식민지반자본주의 사회로 규정하는 북한의 입장과 다른 것이다. 정부는 박0순의 견해를 민주노동당의 입장처럼 주장하였으나 당시 박0순은 민주노동당 당직을 맡기 전이므로 박0순의 견해를 민주노동당의 입장으로 볼 수 없다. 특히 박0순은 민주노동당 당직을 맡은 이후에는 식민지반봉건사회론을 폐기하고 21세기 진보적 민주주의에서 보듯이 신자유주의 종속체제를 주장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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