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론

1. 연구의 목적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20133월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자료를 재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경제활동이 가능한 2538만여명 중 임금노동자는 1774만여명에 달한다. 그 중 비정규직은 45.9%이며, 비정규직의 평균임금은 140만원으로 정규직의 49% 수준이다. 또한 비정규직 중 임시파트인 아르바이트, 호출노동과 같이 더욱 고용이 불완전한 부분이 증가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자료에 의하면 2011년 노동조합 조직률은 10.1%이며, 그 중 한국노총 소속이 44.7%, 민주노총 소속이 32.7%이며, 상급연맹에 가입하지 않은 경우가 21.3%이다. 2004년 총선에서 정당명부투표가 도입된 이후 진보정당들의 득표율을 합치면 10% - 13% 수준이었다.

이러한 노동계급의 성장과 정치적 조건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에서 사회주의노동자당은 국가보안법적 냉전논리와 정당선거제도의 장벽으로 인해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이다. 따라서 우리 정당정치는 사회균열에서 계급정당체제를 가시화했지만 정치균열에서는 계급정당체제가 아니라 국민정당체제에 가깝다. 대표적인 대중적 진보정당이었던 민주노동당 역시 일하는 사람들의 정당으로서 출발하여 전면적인 노동자계급 정당이 아니라 친노동적 국민정당으로서 성격을 보여주었다. 특히 국민정당에 수렴해 가는 진보정당이 선거에서의 득표율을 최고의 목표로 삼게 되면서 당 활동은 정당법과 선거법의 합법적 공간과 일치하게 된다. 결국 진보정당은 자본주의 제도가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부르주아 국민정당과 각축하게 되며, 좌파 지형 내에서는 노동자계급 정당의 제도권 진입을 차단하는 역할을 맡게 됨으로써 카르텔 정당체제에 귀속할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정병기, 2011)
실제로 통합진보당은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의 전직 의원들과 일부세력, 자유주의 정당인 국민참여당 등이 통합하여 출범하였으나, 통합과정에서 '진보정치대통합과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진보진영 대표자 연석회의는 통합진보정당을 건설한다는 목표를 준거로 하여 여타 진보좌파를 압박, 배제하였다. 이러한 행태는 그 의도 여부와 무관하게 정치를 제도정치로 환원시키는 보수, 자유주의 정치세력들의 발상에 호응하여 제도외부의 좌파를 고립시키는 정치적 효과를 산출하였다.(이광일, 2011)
이처럼 사회주의노동자당이 독자적으로 성립하기 어려운 조건에서 일부 사회주의자들은 마르크스주의의 고전적인 입당전술에 따라 기존의 대중적 진보정당에 제한적으로 결합하는 고육지책을 택하였다. 다만 민주노동당이 통합진보당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일부 사회주의자들이 사실상 방출된 것에서 보듯이 대중적 진보정당 안에 사회주의노동자당이 과도적으로 자리 잡을 경우 당 내 당의 형태가 되어 이 양자의 이념적, 조직적, 실천적 모순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이런 측면에서 기존 정당들의 이념과 강령, 조직을 유지 존중하면서 매우 구체적이고 명확한 공동요구들을 중심으로 선거투쟁과 대중투쟁을 포함하는 공동활동을 수행하는 공동전선 형태의 당을 건설하자는 주장(정성진, 2012)은 향후 주목할 만하다.
노동정치운동의 유형은 의회주의적 계급화해 유형, 의회주의적 계급갈등 유형, 비의회주의적 계급화해 유형, 그리고 비의회주의적 계급갈등 유형 등으로 나눠 볼 수 있다. 다만 우리처럼 사상의 자유에 입각한 정치운동의 다양한 주체를 법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국가에서는 비제도적 주체들은 선거 및 의회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정치활동을 전개하지 않으며, 이러한 주체들은 선거투쟁을 활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러한 투쟁 역시 의회로의 진출을 전략적 목적으로 상정하지 않는다.(김영수, 2004)
현재 사회주의노동자당을 지향하는 세력들은 기존의 제도권에 가담한 경우도 있고, 제도 밖에서 대중에 대한 선전선동과 투쟁을 조직하는 경우도 있다. 제도정당에 편입된 경우는 점진적으로 제도의 기득권에 익숙해지고 나아가 자신을 변모시키면서 적응하고 있다. 특히 선거로 평가되고 선거로 보상받는 시스템에서 선거정당으로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있다. 보통선거로 인해 선거권과 피선거권이 노동계급에게 확장되어도 대표와 대표되는 사람 사이의 간극은 여전히 존재하며, 오히려 절차의 제도화와 더불어 양자의 간극이 심화되고 있다. 결국 선거와 같은 제도만으로는 대표의 불일치를 해결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적 진보정당이 선거정당으로 대표되는 개량화의 길을 걸으면 이른 바 선거사회의주의한계는 분명해진다.(배성인, 2011)
다만 제도권에 진입한 진보정당이 적어도 체제 극복의 목적을 잊지 않고 제도권 안과 바깥의 활동을 병행한다면 이들의 노력도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제도권 안에서 제도권 바깥과 연대하여 제도권에 대해 더욱 효과적인 양공을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보정당 공격력의 원천은 어디까지나 제도권 바깥의 진보진영과 그 활동에서 나온다. 끊임없는 비판과 억제만이 이들의 제도권 내 체제정당화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정병기, 2011)
한편으로 제도권에 편입되든 그렇지 않든 사회주의정치세력 혹은 대중적 진보정당 내의 민주주의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특히 과거의 권위주의적 정권에서 유보되었던 민주주의적 요구가 분출되고, 사회전반의 민주주의 의식이 고양되고 있으나 진보정당 내부의 민주주의는 대중의 요구를 완전히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는 대중을 어떻게 조직의 주체로, 투쟁의 주체로 실질적으로 세울 것인가의 문제이다.
이는 단순히 투표권이나 지분을 주는 방식의 형식적 민주주의만으로는 해소될 수 없다. 이를테면 민주노동당의 경우 대의기구와 집행기구에 노동자, 농민, 빈민, 학생 등 부문할당을 적용하였는데, 특히 민주노총에서 지명하는 노동자대표가 당의 지도부와 대의원 구성에 있어 일정 비율을 보장받았다. 하지만 민주노총의 조직률이 낮은 관계로 전체 노동자의 대표성 문제가 제기되었으며, 특히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가 민주노총의 조합원을 당의 대상, 수단으로 전락시키고, 노동엘리트들의 대리정치를 심화시켰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이상과 같은 한국의 정치현실에 있어 사회주의노동자당을 추구하려는 사람들은 현실적 조건에 적용할 수 있는 실천적인 정당이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실 모든 정당은 실천적 목적에 따라 조직되고 활동되어왔으며, 정당이론 역시 거기에 착목한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실천적이었다. 역사적으로 정당이론이 논의되는 공간은 크게 보면 마르크스가 살았던 노동계급이 성장하던 자본주의 초창기, 보통선거와 평등선거 및 언론출판의 자유 등 부르주아민주주의가 발전한 금세기의 유럽, 그리고 폭압정치와 사회주의혁명 및 노동자집권을 연속적으로 경험한 러시아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자본주의 발전 수준과 그에 따른 노동계급의 양적 질적 차이, 또한 정치적 환경의 차이가 명백한 유럽과 러시아는 정당의 경험과 그 이론적 측면에서 대비되고 있다. 하지만 양자의 실천적 고민이나, 이론적 방점들이 우리에게 분명히 드러나 있고, 다소 극단적인 선택관계라서 양자로부터 다양한 관점에 기반한 우리의 실천적 방안이나 이론을 도출하기 어렵다.
반면 마르크스 시대의 정당에 관한 실천적 고민이나 이론적 착목지점은 곧바로 드러나지 않는다. 정세적인 측면에서는 마르크스가 활발하게 활동하던 19세기 중반 유럽이 혁명과 반혁명을 잇달아 경험하면서 각국의 사정과 각 계급의 요구가 일률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동계급은 분명 성장하고 있었지만 계급의식이 단일하지 않았고, 그에 따라 정치적 요구도 다양하였다. 이 시절 사회주의노동자당 역시 형성과 발전과정에 있었기 때문에 그 실천이나 이론 모두 유동적이어서 다양한 전술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었다. 이러한 유동성, 다양성이 실천적 이론적 영감을 얻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
또한 이론적으로도 마르크스의 정당에 관한 견해가 어떠한 조건에서 형성되었으며, 그에게 있어 사회주의노동자당의 건설과 활동에 관한 로드맵이 무엇인지 규명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이 논문은 우리시대의 실천적 고민을 연구의 동기로 삼아 마르크스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어떻게 돌파하면서 당 건설의 길로 나아갔는지 살펴본다. 다만 연구의 주요 대상은 혁명적인 실천의 요구가 높아 다양한 이론적 모색이 가능했던 공산주의자동맹 시절로 국한할 것이다.
또한 먼저 정당이론에 관한 일반적인 흐름을 검토한 후 그 결과를 기반으로 하여 마르크스의 이론적 실천적 흐름들을 조명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각 시대와 각국에서 어떠한 역사적 배경과 실천적 요구에 의해 정당에 관한 실천이나 이론이 나타나고 변화되었는지 또한 그 차이점은 무엇인지 살펴 볼 것이다. 이러한 지점들을 고려하여 본 연구는 다음과 같이 연구목적을 실천적으로 설정하였다.
첫째, 마르크스의 입장에서 볼 때 노동자 대중과 구별되는 사회주의노동자당이 필요한지, 필요하다면 마르크스가 활동하던 시절에 그러한 정당이 가능했는가의 문제이다. 또한 마르크스가 상정하는 혁명적인 정당은 어떤 계급을 기본으로 하는지 혹은 다른 계급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둘째, 마르크스가 처한 구체적 현실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사회주의노동자당이 건설될 수 있는가 문제이다. 만약 마르크스 시절에 사회주의노동자당이 합법적으로 불가능하였다면 마르크스는 어떤 방식으로 이 난관을 극복하려고 했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 노동정치의 유형으로서 사회주의정치세력은 다양한 조직형태와 운동방식을 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합법적인 공개정당이 불가능할 때 노동자 대중에 대한 포섭과 대중투쟁의 주도권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도 중요한 문제지점이다.
셋째, 마르크스가 정당 내에서 특히 요구되는 내부 민주주의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취했는가의 문제이다. 이 문제는 정당의 민주주의적 조직구성과 선거 혹은 투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정당의 중앙조직과 지역조직 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당의 지도부와 당원의 관계, 나아가 사회주의노동자당과 노동자대중의 관계까지 포함하고 있다. 특히 마르크스 시절에 합법적인 사회주의정당이 불가능했다면 정당의 내부 민주주의를 어느 수준까지 보장하려고 했는지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당 밖의 노동자대중을 투쟁의 주체로 세우는 것뿐만 아니라, 노동자대중을 당 내부의 주체로 세우는 것 역시 중요한 문제이다.
넷째, 마르크스가 부르주아적 기본권마저 완전히 보장받지 못하는 당시 독일의 현실에서 정당 활동에 있어 합법적인 제도투쟁의 공간을 어떻게 바라보았는가의 문제이다. 이는 부르주아적 정치적 기본권이나, 의회의 문제, 특히 선거참여와 그에 따른 대중투쟁과의 연계 문제를 포함하고 있다.
 
 
2. 연구의 대상과 방식
 
마르크스의 활동과 문헌을 보건대 마르크스의 생전에 그의 정당이론이 비록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일정한 수준으로 형성과정에 있었다. 마르크스는 정당에 관한 독자적인 저서를 남기지 않았으며, 단지 다양한 의미로 혹은 상반되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는 언급들을 여기저기에 남기고 있을 뿐이다. 나아가 정세가 변함에 따라 정당의 쟁점에 대한 그의 주장이나 태도가 변하였다. 따라서 우리는 마르크스의 문헌과 주장을 그의 실천과 그 배후에 있는 사건들과 대조하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다만 마르크스의 전 생애에 걸친 배후의 사건들까지 조명해가면서 그의 정당에 관한 주장을 고찰하는 것은 너무 벅찬 일이다. 그렇다면 마르크스의 생애에 있어 정당에 관한 풍부한 쟁점들을 제기했던 시기로 연구의 대상을 국한할 수 있다. 즉 정당에 관한 실천과 이론이 상호 조응하여 이를 대조할 수 있는 시기를 연구대상으로 삼으면 된다. 그런 점에서 이 논문은 공산주의자동맹과 그 시기인 1848년과 1849년 혁명기에 있어 마르크스의 활동과 문헌을 주요한 연구대상으로 삼고 있다.
먼저 마르크스 시대의 정당과 오늘날 근대적 의미의 정당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 근대적 의미의 정당은 정당의 문호를 모두에게 개방한 대중정당이다. 대중정당은 선거에서 득표율의 제고를 목표로 하는데, 이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를 전후로 하여 보통선거가 실시됨에 따라 정당들이 선거권이 있는 모든 성인을 상대로 입당과 지지를 호소해왔기 때문이다. 또한 대중정당은 발달한 대중매체를 중심으로 한 여론정치를 전제로 하는데, 이는 보통교육의 확대로 인해 대중의 높은 문자해독율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정당정치를 중심으로 대의제가 발달함에 따라 근대적 정당은 사적 영역에서 공적 영역으로 전환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헌법과 법률에 의해 국가가 보장하는 제도정당으로서의 성격이 짙어지고 있다.
마르크스는 선거참여를 전제로 하면서 대의정치와 정당정치에 근거한 근대적 의미의 정당을 경험하지 못했다. 이런 측면에서 근대적 의미의 정당개념을 전제로 마르크스의 정당이론을 연구하는 것은 비역사적인 태도이다. 따라서 마르크스의 시대적 한계를 고려하면서 마르크스의 정당에 관한 활동과 저작 및 발언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존 몰리뉴(John Molyneux)는 마르크스의 당 개념의 발전을 분석하기 위해 마르크스의 정치생활을 공산주의자동맹시기(1847~ 1850), 계급투쟁이 퇴조했던 중간기(1850~ 1864), 국제노동자협회 시기(1864~ 1872), 대중적 사회민주주의 시기(1872년 이후 1883년 사망할 때까지) 4개의 시기로 구분하였다. 이에 따르면 마르크스가 관련된 당 활동은 공산주의자동맹, 국제노동자협회, 독일 사회민주당의 초창기 등이다. 이러한 분류는 기본적으로 타당하나 몇 가지 고려할 지점이 있다.
첫째, 공산주의자동맹, 국제노동자협회, 독일 사회민주당의 역사적 배경이 다르다. 먼저 공산주의자동맹 시기는 1848년과 1849년의 프랑스혁명과 독일혁명의 시기를 포함하고 있다. ‘공산주의자동맹은 프랑스와 독일에 지부를 두고 두 혁명에 일정하게 개입하였다. 또한 공산주의자동맹은 파리의 의인동맹에서 발전한 것이며, 의인동맹의 지도부가 영국으로 망명하여 런던에 중앙위원회를 두었다. 따라서 공산주의자동맹은 독일과 프랑스뿐만 아니라 영국의 노동자운동에도 관여하였다.
그 당시 영국, 프랑스, 독일의 자본주의 발전정도가 달랐고, 계급대립의 양상과 노동계급의 조직화가 같지 않았다. 당연히 각국의 노동자운동과 혁명과정에서 제기되는 과제들이 서로 다른 특성이 있었다. 공산주의자동맹은 이들 나라에 상당수 회원들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여러 나라의 혁명 상황에 대해 입장들을 제시하였다. 이로 인해 이 시기에 공산주의자동맹은 정당에 관한 실천적인 쟁점들을 다양하게 제기하였다. 따라서 본 연구는 이러한 마르크스의 문헌과 발언, 태도들을 검토할 것이다.
마르크스가 주도한 국제노동자협회는 프랑스의 파리코뮌을 목격했지만 직접 당사자가 아니었다. 따라서 국제노동자협회는 혁명에 대한 실천적 고민에 이르지 못하고 사후 평가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또한 독일사회민주당이 근대적 의미의 정당에 가장 접근하였지만, 마르크스의 시기에 혁명적 상황에 직면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실천적 과제에 있어 공산주의자동맹에 비해 그 의미가 적다.
둘째, 공산주의자동맹, 국제노동자협회, 독일 사회민주당은 정당으로서 그 지위가 서로 다르다. 먼저 국제노동자협회는 여러 나라의 노동자당이 결합한 국제협의체적 성격이었다. 또한 마르크스는 1883년에 사망했기 때문에 1890년대 이후 사회민주당의 대규모 의회진출 등 근대적 대중정당으로의 발전을 목격하지 못했다. 반면 엥겔스는 1895년에 사망하여 사회민주당의 획기적 발전에 대해 평가할 수 있었다. 따라서 사회민주당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는 마르크스보다는 엥겔스가 더 구체적이다. 그런 측면에서 마르크스의 시각에서 독일 사회민주당을 종합적으로 바라보기 힘들다.
반면 공산주의자동맹은 마르크스 시절에 탄생하여 활동하다가 해체되었다. 공산주의자동맹은 비록 초보적인 정당형태에 불과했지만 혁명에 결합했기 때문에 실천적인 과제들을 제기하였다. 특히 당 내 민주주의와 조직 문제에 있어서도 마르크스가 공산주의자동맹을 음모가적 모임에서 혁명가 조직으로 전환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 집중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다.
셋째, 공산주의자동맹, 국제노동자협회, 독일 사회민주당에 대한 마르크스의 실천적 결합수준이 다르다. 마르크스가 중앙위원회를 지도했던 공산주의자동맹은 1848년 프랑스 혁명과 독일 혁명의 직접 당사자이다. 따라서 혁명의 주체로서 공산주의자동맹이 제기하는 쟁점들은 역사적 의미가 남다르다. 마르크스는 중앙위원회의 실질적인 책임자로서 공산주의자동맹을 이끌며 직접 독일혁명에 참여했고, 1848년과 1849년의 프랑스 혁명을 직접 파리에서 목격하였다. 마르크스는 프랑스혁명과 독일혁명이 제기하는 과제에 대해 실천적인 문건들을 직접 작성하여 발표하였다. 반면 마르크스는 국제노동자협회를 이끌었지만 1871년 파리코뮌 등 혁명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다. 독일 사회민주당에 대한 마르크스의 영향력과 실천적 결합은 앞의 두 경우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약했다.
이러한 점들에 비추어 마르크스의 정당에 관한 경험 중 공산주의자동맹시기가 마르크스의 정당에 관한 실천과 이론을 조명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기이다. 이 시기 마르크스의 혁명적인 문건들은 매우 실천적이기 때문에, 각 문건에 나타난 마르크스의 입장을 현실과 대조하여 그 작성의 배경을 살피고, 현실에서 타당함을 검증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공산주의자동맹이 주로 활동하던 당시 독일에서 합법적인 사회주의노동자당이 불가능하였다는 점이 현재의 우리 현실과도 흡사하다. 반면 같은 시기 프랑스와 영국에서 사회주의활동은 어느 정도 보장되고 있었고, 마르크스는 이들 두 나라에서 국제적인 활동을 하던 공산주의자동맹을 지도하면서 이들 나라에서 제기되는 문제에 대해 문헌과 주장을 남겼다. 따라서 이 시기를 연구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독일에 국한되지 않은 다양한 관점을 검토할 수 있다.
본 연구는 주로 마르크스의 활동과 문헌을 그 시대적 배경과 연관하여 이해하려는 과정이다. 이 논문은 마르크스의 주장과 문헌의 내용을 각각 독립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종합적으로 검토하며, 특히 그러한 주장과 문헌이 나오게 된 시대적 배경을 검토할 것이다.
먼저 본 연구는 마르크스의 정당에 관한 이론을 재구성하기 위해 그의 활동과 문헌들을 정당이론의 쟁점에 따라 분류한다. 각 쟁점별로 분류된 활동과 문헌에 대한 자료의 내용을 해당 시기의 역사적 배경과 대조하여 구체적으로 이해한다. 마르크스가 상충되는 주장을 한 때에는 각각 주장의 시대적 배경을 살펴 왜 그런 주장을 했는지 알아보고, 그러한 주장이 일반적인 것인지, 혹은 특정 시대를 배경으로 한 특수한 것인지를 알아본다. 나아가 공산주의자동맹 시기 이외의 마르크스의 활동과 문헌 등에 대조하여 다시 한 번 종합적으로 분석한다. 이를 위해 본 연구는 다음의 연구 방식에 의한다.
첫째, 공산주의자동맹의 공식문건을 통해 공산주의자동맹이 정당과 관련한 쟁점에 대해 어떤 견해를 표명하였는지 살펴본다. 이 문건들은 18476월의 동맹원들에게 보내는 공산주의자동맹 제1회 대회 회람문, 공산주의자동맹의 제1회 대회 후 18479월의 공산주의자동맹 중앙위원회 보고문, 엥겔스가 공산주의자동맹의 강령초안으로 작성한 18479월의 공산주의자 신앙고백 초안, 공산주의자동맹의 제2회 대회에서 채택된 184711월의 공산당주의자동맹규약, 공산주의자동맹의 발족선언문의 성격을 지닌 18482월 혁명 직전의공산당 선언, 18482월 혁명 직후 독일의 혁명 상황과 과제를 제시한 18483월의 독일에서의 공산당의 요구, 혁명 후 공산주의자동맹의 재건을 위한 18503월과 6월의 공산주의자동맹에 보내는 중앙위원회 호소문등이다.
둘째,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공산주의자동맹에 관해 직접 쓴 문헌들을 검토한다. 엥겔스가 1885년 공산주의자동맹을 회상하며 쓴 공산주의자동맹의 역사, 1852년 마르크스가 런던의 독일인 망명자에 대해 기술한 망명자 위인전, 1853년 마르크스가 공산주의자동맹원들의 체포와 재판에 대해 쓴 쾰른 공산주의자 재판의 진상등이 이러한 문헌들이다.
셋째,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1848년과 1849년 혁명에 대해 쓴 문헌 중에서 정당에 관한 것들을 들추어 본다. 1850년 마르크스가 1848년과 1849년 프랑스 혁명과 관해 쓴 1848년부터 1850년까지 프랑스에서의 계급투쟁, 1852년 프랑스 제2제정의 탄생과정에 대해 기술한루이보나빠르트의 브뤼메르 18, 엥겔스가 1850년에 농민과 노동자당의 관계에 대해 쓴 독일농민전쟁, 역시 엥겔스가 1852년 독일의 18483월 혁명에 대해 기술한 독일에서의 혁명과 반혁명등이 이에 속한다.
넷째, 공산주의자동맹 시기와 관련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서한, 마르크스에 관한 연대기와 전기 및 평전 중에서 관련된 부분, 공산주의자동맹 시기 이후의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문헌 중 정당에 관한 부분 등을 검토한다. 이를테면 공산주의자동맹의 활동을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국제노동자협회 시기나 독일 사회민주당 초창기의 활동 등과 같은 추가적 자료도 필요한 한도 내에서 활용한다.
끝으로 1848년과 1849년 프랑스혁명과 독일혁명을 전후로 하여 공산주의자동맹의 활동과 그 시기의 마르크스의 정당에 관한 활동을 추출하여 정당과 관련된 쟁점에 있어 어떠한 태도와 행보를 취하였는지 살펴본다. 또한 그러한 행보와 관련된 문헌을 비교하여 제기된 쟁점에 대한 마르크스의 입장들을 추론해 본다.
물론 이러한 연구방식의 한계를 부정할 수 없다. 먼저 대의정치와 정당정치가 발전한 근대적 관점에서 볼 때 공산주의자동맹은 제도로서 정당의 모습을 완전히 지니지 못하고 있었었다. 따라서 공산주의자동맹의 활동만을 통해 마르크스주의 정당이론의 쟁점들을 온전하게 검토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이 논문이 분석대상을 주로 공산주의자동맹과 그 시기에 한정하는 것은 공산주의자동맹과 그 시기가 마르크스의 활동과 문헌에 있어, 나아가 정당이론의 형성에 있어 이론과 실천이 접목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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