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운수노조 사태>노동조합은 혁명조직도 특권조직도 아닙니다.

1. 오늘날 노동조합은 혁명조직이 아닙니다. 

민주노총도 공공운수도 의료연대 본부도 한국의 자본주의가 붕괴될 정도로 총파업을 할 수 없고, 할 의사도 없으며, 조합원이 그것을 원하지도 않습니다.

오늘날 거의 대부분의 노동조합은 전국 단위의 총연맹에 소속돼 있습니다. 개별 노동조합은 임금인상과 근로조건 투쟁을 하고 있으며, 총연맹은 법제도 개선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그 어떤 노동조합도 자본주의 타도라는 혁명을 목표로 활동하고 있지 않습니다. 노동조합의 투쟁은 협상을 위한 수단일 뿐 자본주의를 철폐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총연맹 형태의 노동조합이 혁명적 파업을 거부하는 것은 지배계급의 탄압으로 박탈당할 기득권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또한 대다수의 조합원이 노동조합에게 자본주의를 타도하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임금인상과 근로조건 개선에 힘쓰라고 요구합니다. 그래서 노동조합은 설사 투쟁을 하더라도 자본과 협상하는 것이 본연의 임무입니다. 

결국 총연맹은 착한 자본주의와 공존하고자 합니다. 총파업을 하더라도 자본주의가 붕괴되는 전에 멈춥니다. 임금제도 철폐가 강령에 남아 있다고 해도 그건 아주 오래 전의 추억을 기억하기 위한 것에 불과합니다. 선진국 노동조합도 마찬가지입니다. 

영국의 총연맹은 처음부터 혁명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독일의 총연맹은 사회주의자들에 의해 창설됐지만 1906년 만하임협정을 통해 사회주의자들이 요구하는 혁명적 파업을 거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독일사민당도 이에 사실상 동의했습니다. 

프랑스의 총연맹은 처음부터 정당과의 관계를 거부하고 혁명적 총파업 노선을 걸었습니다. 총연맹은 실제로 혁명적 총파업에 나섰다가 군대와 경찰에게 무자비하게 진압을 당한 후 사회당과 협력하여 법제도 개선투쟁으로 노선을 전환합니다. 

유럽의 사회주의 정당과 노동조합이 1904년 암스테르담 인터내셔널 대회에서 혁명적 총파업을 무정부주의적 행동이라고 비판하고 법제도 개선과 조직 방어를 위한 예외적 대중파업만 가능하다고 선언했습니다. 


2. 노동조합이 과거 혁명조직인 적이 있었습니다. 

노동조합 자체가 불법적인 때는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자본주의 체제에 대해 도전했습니다. 합법투쟁과 비합법투쟁을 가리지 않고 노조가 깨져 나가도록 투쟁했습니다. 하지만 노조가 제도권에 들어오고 법제도에 의해 기득권을 얻음에 따라 그런 투쟁을 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특정 개별 노조가 혁명적 정파에 의해 지도될 때 그 노조가 혁명적일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혁명적 정파가 오늘날 살아남아도 총연맹 형태의 거대 조직을 지도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거의 대부분의 개별 노조는 총연맹에 소속돼 총연맹의 방침에 따르기 때문에 혁명적 정파가 개별 노조를 완전히 지도할 수 없습니다. 

결국 오늘날 혁명적 정파가 개별 노조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나 그 개별 노조는 혁명조직이 될 수 없습니다. 혁명조직이 총연맹을 배제하고 개별 노조를 장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제도권에 편입된 노조는 혁명조직의 지도에 따를 의사가 없습니다. 


3. 노동조합이 혁명조직으로서 노조 관료가 혁명가로서 특권을 누릴 수 없습니다. 

일단 노동조합은 혁명조직이 아니니 혁명조직인 것처럼 특권의식을 가질 수 없습니다. 노동조합의 선출 간부나 상근 간부 역시 혁명조직의 활동가가 아니니 혁명가처럼 특권을 요구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혁명조직이나 혁명가라고 해도 특권을 당연히 누리지 못합니다. 

노동조합이 임금인상과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싸우는 조직인 것처럼 선출직이든, 임명직이든 노조관료 역시 때로는 투쟁하지만 결국은 자본과 협상을 목표로 하는 개량주의자들입니다. 그러니 노동조합이 다른 단체보다 우월한다든지, 노조관료가 다른 활동가보다 대접받아야한다는 논리는 불가능합니다. 


4. 노동조합과 노조관료에게도 일반 민주주의가 적용돼야 합니다. 

부르주아민주주의에는 부르주아의 독재를 위한 수단과 구지배계급에 맞서 쟁취한 일반 민주주의가 포함돼 있습니다. 일반 민주주의는 노동자 농민 민중이 피땀을 바쳐 얻은 소중한 결과물입니다.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평등, 집회결사와 표현의 자유, 죄형법정주의 등 인권보장의 핵심은 우리가 만들 사회주의 사회에서도 구현돼야 하는 것들입니다. 

일반 민주주의를 겪어 보지 못한 러시아, 중국, 북한에서 일반민주주의가 결여된 사회주의를 인민들에게 강요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반 민주주의를 겪은 나라에서 인민들에게 일반 민주주의가 없는 사회주의를 강요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아마도 그런 사회주의는 처음부터 인민 다수의 지지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 

자본주의에서 그것도 혁명조직도 아닌 노동조합에 일반 민주주의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생각은 잘못된 특권의식입니다. 일반 민주주의를 부르주아 민주주의 자체와 혼동하면서 혁명에는 일반 민주주의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잘못된 전제에 근거합니다. 

노동조합은 임금인상과 근로조건 개선 투쟁에 있어 일상적으로 집회결사의 자유, 인권보장 제도, 근대 사법 원리 등 일반 민주주의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오늘날 노조가 자본가로부터 양보를 얻어내는 것은 간접적으로는 투쟁 때문이지만 결국 최종적인 것은 일반 민주주의 때문입니다. 재판, 법제도 개선 등이 그런 것입니다. 


5. 의료연대 본부나 공공운수노조의 집행부와 노조관료들은 자신들에게 일반 민주주의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특권 의식을 버리길 바랍니다. 

혁명가도 일반 민주주의를 준수해야 합니다. 하물며 개량주의 노조와 노조관료가 그런 특권의식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노동조합의 상근자에게도 표현의 자유, 비판의 자유, 각종 인권보장 제도, 노동법 기준이 적용됩니다. 노조관료들이 자신들은 자본가에 대해 그런 제도를 주장하면서 자신들이 사용주 입장일 때 그런 것들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위선과 오만의 극치입니다. 아마도 노조관료들을 따르는 일반 조합원들도 이런 노조관료의 특권의식과 이중적 태도에 직면한다면 대단히 실망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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