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국가형태와 정부형태를 중심으로 본 통일헌법의 쟁점

I. 서론
 
다양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통일이 늦어질수록 통일비용과 분단비용이 더 많이 드는 것으로 밝혀졌다(조동호, 2011: 47). 통일비용은 통일로 인해 남한이 부담해야 할 비용으로, 북조선경제의 재건을 위한 투자비용이 대부분이다. 통일비용을 북측에 실물자본으로 조달하면 이로 인한 남측 경제성장율은 10년간 줄잡아 GDP 대비 11.25%에 달해 경제 제2도약의 전기를 만들 수 있다.
분단 비용이란 남북 분단과 전쟁 위험으로 인해 지출되는 손실을 말한다. 분단비용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방위비로 국내총생산의 3%를 차지하고 있으며, 주요 선진국에 비해 1.5배에서 3.5배까지 높다.
특히 주한미군은 국방비 증가의 주요 요인이다. 우리는 주한미군 경비로 2017년 기준으로 거의 1조원에 달하는 방위비 분담금을 매년 미국에게 지불하고 있으며, 추가로 주한미군 기지 무상공여와 미군기지 이전사업비 등을 부담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주한미군이라는 고리를 통해 우리에게 고가의 무기를 강매하고 있는데 2017년까지 10년 동안 36조의 무기를 우리에게 팔았다. ‘국방계획 2020’에 따르면 2020년까지 약 15년 동안 총 600조원이 들고 이중 무기구입 비용이 250조 가량이다. 독일이 통일 전에 140만 대군을 유지하다가 통일 후 36만 명으로 군인 수를 줄였는데, 우리도 통일이 되면 군비 지출을 GDP1% 수준으로 줄일 수 있다.
통일은 남북이 하나 되는 새로운 국가를 이루는 것이고, 따라서 통일국가의 제헌헌법을 만드는 과정이다. 제헌헌법은 제헌의회에 의해 초안이 제출되며 국민투표를 통해 최종적으로 승인된다. 제헌헌법은 국가의 제도 전체와 그 구성원들을 새롭게 짜는 계기가 된다. 실제로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 페루의 오얀타 우말라 등은 제헌헌법을 통한 국가개혁을 공약으로 내걸고 집권하였다. 우고 차베스는 제헌헌법을 근거로 49개의 개혁적 법안을 마련하고 각 분야의 선거를 거쳐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 지방정부를 한꺼번에 개혁시켰다(김병권 외, 2007:100-108).

통일의 방식을 살펴보면 흡수형과 합의형으로 나눠 볼 수 있다. 베트남처럼 전쟁을 통해 무력으로 흡수할 수 있으며, 한국과 미국의 강경파처럼 대화와 공존을 거부하면서 봉쇄와 압박을 통해 북한을 붕괴시켜 흡수하는 방식이 있다. 반면 남북예멘은 합의를 통해 체제 수렴을 통해 통일하였으며, 중국 역시 합의를 통해 홍콩과 마카오에 대해 공존을 보장하는 통일을 실현하였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보면 서독은 동독과 상호 교류하면서 체제공존의 합의형 통일을 추구해왔지만 결과적으로 국제정세와 서독의 노력에 의해 동독의 체제가 붕괴되어 흡수통일을 성공시켰다. 남북 예멘 역시 합의형 통일을 실현시켰지만 통일 이후 남북 내전을 거쳐 통일이 정착되었다.
우리는 내전을 거치고 현재 남북대립에 직면해있지만 향후에는 일방의 흡수통일이 아니라 합의를 통한 평화통일을 지향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예멘과 독일의 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이 글은 이들 양국이 어떠한 방식으로 통일을 완수하였는지를 통일헌법의 제정 과정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본다.
첫째, 양국의 통일헌법 제정과정에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되는 부분은 분단 당사자의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뿐만 아니라 통일에 대한 주변국의 동의와 협조를 이끌어 내는 방식이다.
둘째, 이들 양국이 상호 대립과 협상을 병존해가면서 통일국가의 형태로서 연방제를 채택하게 된 역사적 배경과 동력이 무엇인지 살핀다.
셋째, 현재 남한은 3권 분립을 전제로 하는 대통령제를 채택한 자본주의 국가이고 북조선은 권력통합을 전제로 하는 회의제 정부형태의 사회주의 국가인데, 이러한 이질적인 체제를 통합해가는 정치적 리더십으로서 통일국가의 정부형태가 어떻게 결정되었는지를 살핀다.
 
 
II. 독일과 예멘의 통일 과정
 
1. 독일의 통일과정
 
서독을 점령한 연합국은 서독의 주들에게 민주주의 연방공화국 헌법을 제정할 것을 지시하였다. 그리하여 각 주들이 참여한 의회평의회가 구성돼 1949독일연방공화국기본법이 제정되었다.
기본법 전문은 통일의 완수를 선언하였으며, 따라서 기본법 제3조는 기본법이 통일국가를 이루기 전의 과도기 헌법임을 선언하였다. 146조는 통일이 된 후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는 방식을 규정하였다. 그전까지는 기본법 23조에 따라 기본법이 적용되는 주를 추가로 서독에 편입시키는 방식으로 통일을 할 수 있게 하였다. 연방헌법재판소는 이러한 조항들에 대해 헌법적 효력이 있다고 판시하였다.
기본법 제정 당시 계획경제와 사회적 시장경제질서가 대립하여 명문을 두지 않았지만 사회적 시장경제질서로 해석되고 있다. 기본법이 특정한 경제질서를 명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동독을 흡수통일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동서독과 2차 대전 이전의 독일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어왔다(김철수, 2004:137-151). 1963년까지 수상을 역임한 초대 수상 아데나워는 서독이 과거 독일국가를 계승하여 유일하게 대표하고 있다고 봐서 동독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았을 뿐더러 동독과 국교를 맺은 국가와 단교하는 할슈타인원칙을 고수하였다.
반면 브란트 수상은 지붕역할을 하는 형식적인 전체국가 아래 양독이 실질적인 부분 국가로서 존재한다며 할슈타인원칙을 폐기하는 동방정책을 추구하였다.
동독의 울브리히트 주석은 과거의 독일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양독은 별개의 국가이므로 통일은 국가연합 방식이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나아가 동독의 호네커 주석은 동독은 서독과 다른 사회주의민족이라면서 통일의 필요성을 부정하였다.
1972년 양독이 양 독일 관계의 기초에 관한 조약’(기본조약)을 체결한 이후 상호 주권을 인정하고 상주대표부를 교환하는 등 관계를 정상화하자 서독의 연방헌법재판소는 1973년 기본조약에 대한 판결을 통해 양독이 전체국가의 지붕 아래 있는 부분국가라는 관점에서 기본조약을 부분국가 간의 조약으로 보았으며, 서독의 기본법이 동독이 미치지 않는다고 보았다.
브란트 수상은 1970년 소련, 폴란드 순으로 불가침조약을 체결하였고 기본조약에 대한 국제적 지지를 얻고자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 등 과거 연합국인 4대국가 회의를 성사시켰다. 이 회의에서 4대국은 “4대국의 독일에 대한 권리와 책임은 기본조약체결과 양독의 유엔가입 이후에도 존속한다고 선언하였으며 양독과 평화조약을 맺을 것을 확약하였다.
또한 브란트 수상은 기본조약을 반대하는 연방의회를 해산하고 총선을 실시하였다. 브란트 수상은 재집권 후 기본조약을 정식으로 조인하였고 연방의회에서 기본조약에 대한 비준법률안이 통과되었다. 같은 해 양독은 유엔에 동시에 가입했으며, 이후 양독 사이에 17개의 조약이 체결되었다. 또한 교류가 급증하여 82년까지 3만 명의 동독인이 서독을 이주하였다.
19895월 동독에서 시민혁명이 지방의회 선거의 부정으로 촉발되었으며, 그 결과 119일 분단장벽이 무너지면서 호네커 정권이 붕괴되었다. 121일 동독 집권당의 개혁세력이 시민혁명을 반영하는 신헌법을 마련하였다. 이듬해 318일 총선에서 서독의 집권당인 기민당이 동독에서 다수당이 됨으로써 사실상 정치적 통일이 완료되었다.
서독의 경제적 지원을 기대하였던 소련은 1989년 동독이 붕괴될 조짐을 보이자 양독의 통일을 무력으로 방해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였다. 또한 19901월 양독과 4대국이 회의를 열어 통일 문제에 대한 양독의 자결권을 인정하였다. 912일에는 2+4 국가들이 독일과 관련한 종결규정에 관한 조약을 체결하였으며 이 조약은 현 영토 확인과 무력포기, 대량살상무기 포기, 병력 감축, 소련 철군 등을 포함하였다(김철수, 2004:273-289).
19905월 동독의 총선결과에 힘입어 제1차 국가조약인 화폐 경제 사회동맹을 창설하는 조약이 체결되었다. 이에 따라 동독의 경제헌법이 실효되고 서독의 경제헌법인 사회적 시장경제질서가 도입되었다. 8월 양독의 연방의회 구성을 준비하기 위한 선거조약이 성립됐으며, 바로 동독 인민의회는 기본법 23조에 따라 동독이 서독에 편입되는 것을 의결하였다(김철수, 2004:267-273). 831일 제2차 국가조약인 독일통일달성에 대한 독일연방공화국과 독일민주공화국간의 통일조약이 체결돼 동독헌법은 실효되었다(김철수, 2004:290-303). 920일 의회에서 통일조약이 가결됐으며, 103일 동독헌법은 효력을 상실하고, 독일민주공화국은 소멸하였다.
 
 
2. 예멘의 통일과정
 
1차 세계대전 승전국인 영국은 북예멘만 독립시키고 남예멘은 남아라비아연방에 편입시켜 계속 지배하였다. 북예멘은 왕정과 공화정의 대립을 거쳐 1970년 예멘아랍공화국이 되었다. 예멘아랍공화국은 이슬람국가로서 계획경제와 사유재산을 모두 인정하였다. 남예멘은 민족해방전쟁을 거쳐 1967년 남예멘인민공화국이 되었다. 예멘인민민주공화국은 노동자의 주권을 선언하면서 인민경제를 실시하였지만 사유재산도 일부 허용하였다.
남북의 예멘은 1972년 무력 충돌하였으나, 아랍 국가들의 중재로 카이로 협정을 체결하고 통일헌법 제정을 위한 공동헌법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하였다(장명봉, 1998: 100-103). 남북 예멘은 이슬람 사회주의로 통일을 추진하였지만 1979년 다시 국경 전쟁을 겪었다. 남북 예멘은 전쟁을 중단하기 위해 정상회담을 개최하였고 4개월 내에 제헌헌법 초안을 마련하기로 합의하였다.
198111월 북예멘 대통령 살레흐가 남예멘을 처음 방문하였으며, 12월에는 남북국가연합을 명시한 아덴협정을 맺었다. 1981122일 남북 간의 합의에 따라 양국의 정상은 6개월마다, 공동각료위원회는 3개월마다 회동하기로 하고, 사무국을 두어 구체적인 집행을 하도록 하였다. 123013차 공동헌법위원회는 통일헌법안의 최종안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1986년 남예멘에서 사회주의체제를 고수하려는 강경파가 쿠데타를 일으켜 통일 작업에 차질이 발생하였지만, 구소련의 개혁과 개방의 영향으로 다시 통일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양측은 1988년 초 국경에서 군대를 철수하였으며, 4월 양국 정상회담을 통해 통일을 위한 국민투표 일정을 확정하였다. 이어 국경 지대 유전의 공동 개발과 양국의 국민왕래에 합의하였다.
1989년 동구가 붕괴되자, 남예멘은 소련식 체제가 종식됐음을 선언하였다. 198911월에는 양국 정상이 아덴회담을 갖고, 통일 예멘공화국을 수립하기로 합의하였고, 통일 헌법에 서명하였다. 1990419일부터 22일까지 양국의 정상뿐 아니라 의회, , 군대, 각료의 대표들이 회동하여 통일이후 30개월 동안 적용될 과도기 합의서에 서명하였다.
520일 군대가 통합되고, 다음날 양국 의회의 승인에 따라 양국 정상은 522일 남예멘의 아덴에서 재통일을 선언하고 예멘공화국을 수립하였다. 과도기합의서는 양국의 헌법이 상실될 때부터 통일헌법이 효력이 발생할 때까지 헌법적 효력을 지녔으며, 과도기조직으로서 대통령평의회, 의회, 대통령평의회 자문회의 등을 남북이 1:1 대등원칙으로 조직하였다. 의회에서 인구 250만 명의 남예멘은 111명을 차지했으며, 인구 950만 명의 북예멘은 159명을 차지했으며 부족대표 31명을 따로 두었다(장명봉, 1998: 108-111).
19915월 헌법안이 국민투표에 회부돼 유권자의 72%가 참가하여 98%가 찬성함으로써 통일헌법의 공식적인 절차가 완료되었다. 제헌헌법은 공화주의, 민주주의, 민족주의원칙을 선언하였다. 헌법은 율법이 법의 근원임을 밝혀 이슬람을 국교로 명시했으며, 국민주권을 선언하였다. 자주적인 국가경제를 선언하고, 계획경제를 일부 완화하였다. 하지만 외국인과 대지주의 토지를 국유화하는 등 공공부분의 사회주의적 관계는 존치시켰다.
19915월 남북예멘합동회의에서 인구비례로 5명의 대통령평의회를 선출했는데, 의장은 북예멘의 살레흐 대통령, 부의장과 위원 2인은 북예멘, 위원 1인은 남예멘에서 당선되었다. 또한 북예멘 국가자문평의회와 남예멘 최고인민회의, 그리고 임명직 의원을 합쳐 301명의 통일 의회를 구성하였다. 각료회의의 총리는 남 최고인민회의 의장, 부총리는 남북이 각각 2명씩, 각료는 북이 19, 남이 16명이 담당하였다.
19934월 남북 예멘의 집권당이 이후 연정을 할 것을 약속하고 통일 후 첫 총선을 치렀는데, 북의 국민회의가 121, 남의 예멘 사회당은 56, 예멘개혁통합당인 이슬람개혁당이 62석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국민회의가 제2당인 이슬람개혁당과 연정을 시도하자, 예멘사회당이 이에 반발하여 연정이 붕괴되었다.
19945월 남예멘의 대통령이었던 부대통령 알리 살림 알베이드가 남예멘으로 귀환하여 남예멘분리를 선언함으로써 내전에 돌입하였다. 하지만 7월 북예멘이 최종 승리하였다. 예멘공화국은 통일 후 비동맹중립, 이슬람 세계와의 연대강화를 기본으로 온건한 노선을 추구하였다. 1997년 국민회의는 총선에서 승리함으로써 단독으로 내각을 구성하였다(장명봉, 1998: 137-139).
 
 
3. 코리아반도 통일에 주는 시사점
 
첫째, 남북 간의 합의는 통일헌법 차원에서 구속력이 보장되어야 한다. 예멘과 독일은 통일과정에서 각종 합의를 하였고 거기에 헌법적 구속력을 부여하였다. 양국의 사회주의 정권은 자본주의 정권이 기존의 합의를 준수하리라는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통일에 반대하지 않았다.
특히 예멘은 무력분쟁을 화해하는 과정에서 통일헌법의 합의 - 과도기설정 - 통일헌법의 시행이라는 규범적 합의를 이끌어 냈다. 물론 예멘의 경우 통일 이후 내전이 발발하여 결국 무력으로 통일이 완수됐다는 한계도 있다. 하지만 이미 합의에 의한 통일이라는 대전제가 있기 때문에 내전은 확대되지 않고 종식될 수 있었다.
1989년 동독의 시민혁명이 독일 통일의 계기가 되었지만 이미 양독은 1972년 통일을 위한 기본조약을 체결하였다. 또한 급격한 통일 과정은 국가조약과 통일조약에 의해 규범적 효력을 부여받았다.
독일의 경우 급작스런 통일로 동독 국민뿐 아니라 서독 국민들도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충격을 피할 수 없었다. 반면 예멘은 통일헌법을 확정하고도 30개월의 과도기를 두면서 통일의 충격을 완화시켰다.
합의에 의한 통일을 통해 통일의 충격을 줄이자면 남북이 통일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합의했던 사항들이 정치적 선언에 그치는 것이 실제적인 효력을 가져야 한다. 정치적 논의가 통일헌법의 규범적 내용으로 발전해야 남북의 교류와 협력, 통일노력이 성과가 있다.
남북합의를 바탕으로 평화통일을 이룰 수 있도록, 기존의 남북 간 합의사항의 정신을 헌법에 통일국가의 기본원칙으로 천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밖에도 통일의 방식과 절차나 국민투표와 같은 통일헌법의 제정에 대한 근거규정을 고려할 수 있다. 통일 전 서독 기본법은 독일 국민의 자유로운 결정으로 헌법이 제정됨과 동시에 기본법이 효력을 상실한다고 규정함으로써 통일헌법 제정을 제시하고 있다.
남북이 정기적으로 만나 제헌헌법을 논의하는 등 통일을 준비하는 상설적인 공동기구를 설치해야 한다. 예를 들면 7.4 공동성명 이후 운영됐던 남북조절위원회를 확대 발전시킬 수 있다. 남북 의회나 행정부에서 동수를 선출하고, 약간 명의 해외를 추가할 수 있다. 나아가 통일과정에서 발생하는 교류문제나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재판소나 합의제기관을 둘 수 있다.
둘째, 통일에 우호적인 국제정세를 적극적으로 조성해야 한다. 체제대립으로 치달았던 예멘과 독일의 통일은 소련의 붕괴, 동구의 민주화시기에 가능하였다. 독일과 예멘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통일 과정에서 국제정세를 적극 활용하면서 국제사회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아랍제국 건설의 이념이 예멘통일에 도움을 준 반면, 독일통일은 주로 서독의 전략적인 노력에 의해 동독과 소련, 영국, 프랑스, 미국 등 주변국가의 동의를 얻어냈다. 서독이 2+4 회담을 성공적으로 성사시킨 것은 높이 살만하다.
분단을 강요하고, 통일을 방해하던 외세의 개입을 차단하려면 국제정세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정전상태가 종식되고 북미관계가 정상화돼야한다. 현재의 6자 회담을 통일에 이해관계가 있는 주변국의 회담으로 발전시켜 통일에 대한 동의와 협조를 이끌어 낼 수 있다고 본다. 통일 후의 코리아반도가 특정체제와 특정외세의 도구가 되지 않는다는 신뢰를 주변국에게 주기위해서는 외국의 군대를 철수하고, 중립적인 외교안보노선을 택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한미동맹은 북을 적대시하고 있고, 중국과 소련에게 통일한국의 대미의존성에 대한 우려를 주고 있기 때문에 통일을 저해하고 있다. 종속적인 한미관계를 정상화시켜야 한다. 미국은 남한에 대한 기득권을 고집해서는 안 될 것이며, 중국 역시 경제교류와 지정학적 이점을 무기로 코리아반도에 대한 과욕을 가져서 안 된다.
통일국가로 가는 과정에서 중국과 소련, 특히 일본과의 불가침조약은 필수적이라고 본다. 통일 후 미국, 중국, 소련의 균형을 이용한 동북아안보체제는 잘못하면 우리가 강대국의 희생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회피해야 할 것이다. 자위에 필요한 무력을 구비한 비동맹노선이 최선이다. 독자적인 안보가 곤란하다면 기존의 아세안을 포함하되, 미국, 중국, 일본을 제외한 동아시아 비동맹안보체제도 고려해 볼만하다.
셋째, 남북의 정치경제체제가 상호 수렴되고, 사회문화적 이질성을 제거해야 한다. 통일을 가속화하고, 통일의 충격을 최소화시키기 위해서는 통일 전이라도 남북 양 체제를 가능한 접근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정치체제나 경제체제에서 유사점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남한은 이후 통일국가의 체제수렴을 고려하여 유럽식의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하면서 대통령제를 폐지하고 회의정부제나 내각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경제분야에서 북조선이 사유재산의 범위를 확대하는 대신, 남은 경제계획의 필요성을 강조하거나, 주요 기간산업이나 토지를 국유화하는 등 국가의 역할을 확대할 수 있다. 남한은 무상교육과 무상의료, 주거기본권을 강화하는 등 복지체계를 강화하는 등 복지부문을 접근시킬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남북의 교류 확대를 통해 이질성을 완화해야 한다. 정당과 사회단체의 교류를 통해 정치적 이질성을 완화시키고, 독일처럼 일반 주민들의 왕래도 보장해야 한다. 표준어의 공동 작업을 하거나, 일부 교과서를 공동으로 편찬하는 등 학문, 문화, 예술분야의 동일성을 확대시켜야 한다. 특히 북조선의 경제건설을 지원하여 남북의 격차를 줄여야 통일의 충격을 줄일 수 있다.
넷째, 분권적 국가형태를 도입하여 통일 이후에 남북의 체제대립을 완화시킬 완충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만약 남북의 2개의 지역국가로 된 불완전한 연방제를 실시한다면 예멘의 내전에서 보듯이 남북의 경쟁과 대립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남한과 북조선을 7~8개의 지역국가로 분할하여 연방제를 실시한다면 남북 양자의 대립을 완화시킬 수 있다.
통일 전이라도 남한에서 먼저 5개 정도의 지역국가로 이루어진 스위스 식 연방제를 한다면 통일 이후 남북의 중앙집권적 지역국가 간의 갈등을 분산시킬 수 있다. 이러한 취지를 살려 통일 전에 남한에서 연방제를 도입하지 않더라도 중앙정부의 권한을 자치단체에 대폭 이양하여 향후 지역정부가 될 현재의 중앙과 지방자치단체간의 균형과 견제의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고 본다. 현재의 지방자치는 지방분권 수준에 그치나 연방에 근접할 정도로 지방자치를 강화하자는 것이다.
 
 
III. 통일 국가 형태로서 연방제
 
1. 연합제와 연방제의 접근
 
통일이란 하나의 국가를 이루는 것인데, 국가연합은 남북이 여전히 국가로서 남아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통일방안이라고 볼 수 없다. 굳이 국가연합의 의미를 부여한다면 통일을 준비하는 단계일 뿐이다. 통일의 준비단계까지 통일방안으로 넓게 언급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준비기가 꼭 국가연합일 필요가 없고, 나아가 국가연합 자체가 통일방안으로 오인될 수 있다는 점에서 통일방안으로서 국가연합은 부적절하다.
국가연합의 상태에서 대외 주권행사를 협의체를 구성하면 국가통일과 같은 효과를 가질 수 있다고 하나 여전히 이를 하나의 통일국가로 인정할 수 없다. 통일을 하자면서 이미 한반도에 두 개의 주권국가가 존재한다는 전제를 내세우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기 때문이다. 남북이 국가연합을 성사시킨다고 해도 불안한 평화상태 혹은, 분단이 고착화될 수 있다.
더구나 남북은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에 따라 서로를 국가가 아니라 실질적인 통치권을 지닌 정부로 보면서 양자의 관계를 국가 간의 관계로 보지 않고 통일 과정에 있는 잠정적인 특수한 관계로 보고 있다. 현재 남북은 국제적 관계에서는 서로를 국가로 보지만 민족 내부에서는 서로의 국가성을 부정하는 이중적 지위를 지니고 있다.
남북은 20006.15 공동선언을 통해 남의연합제안과 북의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모두 통일을 지향하는 국가형태로서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북은 6.15 공동선언을 계기로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반드시 높은 단계의 연방제인 고려연방제로 발전해야 하는 과도기 방안이라고 본 과거의 입장을 수정한 셈이다.
우리 민족이 장기적으로 스위스 식 연방제를 실현해야 한다고 볼 때 먼저 정부연합제 혹은 낮은 단계의 연방제의 통일을 이루어 내야 한다. 물론 통일의 첫 국가가 연합제이나 낮은 단계의 연방제이냐는 민족구성원과 당국자의 의사, 그때의 정세에 달려 있다.
위에서 살핀 바와 같이 남북은 상호간에 국가성을 부정하기 때문에 남의 연합제국가연합이 아닌 정부연합'’이다. 그러므로 낮은 단계의 연방제와 연합제가 ‘1국가2체제2정부라는 면에서 합치된다. 따라서 연합제는 국가연합보다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에 더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남북 2개의 정부로 구성된다는 점에서 최소한 7~8개의 지역국가로 구성되는 일반적인 연방제와 다르고 오히려 연합제와 유사하다. 이는 남북 사이에 처음부터 7~8개의 지역국가로 구성된 연방국가를 창설할 수 있는 조건들이 아직 성숙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높은 단계의 연방제는 연방정부가 국방, 외교까지 포함한 통치권을 가지며 남북의 두 지역정부는 연방정부의 지도 밑에 주로 내정에 관한 권한만을 행사하게 된다. 이에 비해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연합제에 근접한 것으로서 남북 쌍방이 각기 외교, 국방, 내정에 관한 권한을 가지며 중앙정부는 쌍방이 합의한 것을 집행하는 것이다.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두개 제도, 두개 정부의 원칙에 기초해 그 위에 민족통일기구를 두는 방법으로 남북관계를 통일적으로 조정한다. 처음에는 남북의 두 지역정부에 권한을 많이 부여하면서도 하나의 통일국가로서의 테두리를 일정하게 갖춘 낮은 연방제에서 시작하여 조건이 성숙됨에 따라 통상적인 연방국가를 완성할 수 있다.
연합제 혹은 낮은 단계의 연방제의 통일국가는 국제법상 하나의 국가가 될 수 있다. 남북쌍방이 가입한 유엔에는 새로 형성된 통일국가의 이름으로 가입할 수 있다. 일시적으로 통일국가와 남북이 모두 유엔에 가입할 수도 있는데, 과거 소련과 함께 그 가맹공화국인 우크라이나와 백러시아가 유엔회원국으로 가입한 선례도 있다.
 
 
2. 연방제 통일 과정
 
통일의 준비기란 남북 나아가 해외까지 포함한 3자가 통일방안을 논의하고 합의하여 채택하는 시기이다. 그렇다면 통일의 준비기에는 통일방안을 논의하는 기구가 구성돼야 하고, 여기에서 통일방안과 통일헌법을 마련하는 것이다. 남북 쌍방이 동등한 권한에 기초해 통일 연방국가를 이루는 협약은 국가와 국가사이에 이루어지는 국제법상의 협약이 아니라 하나의 민족으로서 민족적 단합과 통일을 실현하려는 정치적 협약이다. 이러한 정치적 협약의 당사자는 남북의 정부이지만 이들 정부는 각각 의회의 동의나 총투표와 같은 내부의 민주적 절차를 거쳐야 한다.
통일방안을 논의하는 기구는 정기적인 남북수뇌회담과 각료회담, 국회회담, 남북정치단체연석회의가 될 수 있다. 이러한 기구에서 합의한 바에 따라서 별도의 민족통일기구를 구성할 수도 있다. 그런 측면에서는 현재 6.15공동위원회는 매우 시사적인 기구이나 현재로서는 민족통일기구의 상에 접근하기에는 미흡한 부분이 많다.
제일 이상적인 것은 남북수뇌회담에서 통일방안의 기본원칙이나 민족통일기구 구성의 기본원칙을 정하고 각료회담, 국회회담, 남북정치단체연석회의에서 살을 붙여 민족통일기구를 구성하는 것이다. 민족통일기구는 이를테면 통일 한반도의 통일헌법의 제헌위원회가 되는 것이다. 민족통일기구는 이를테면 남북의 정부대표자 각 10, 남북 의회가 합의로 지명한 각 15, 남북의 대법원 혹은 헌법재판소가 지명한 각 5, 해외동포 10인 등 총 70명으로 구성할 수 있다.
민족통일기구가 제안한 통일코리아반도의 제헌헌법의 채택절차에 대해 살펴보면, 이는 통일의 당사자인 남북의 현재 지위와 향후 지향하는 통일국가가 어느 수준의 연방제를 채택했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통일헌법이 지향하는 국가가 연방제가 아닌 단일국가라면 국가의 통일성을 높이기 위해 남북총투표 방식을 취할 수 있다. 그러나 1국가 2체제 2정부의 연방제를 지향한다면 연방헌법 제정의 당사자는 지역국가, 즉 남북이므로 각각 총투표를 실시해야 한다.
결국 남북의 대표자가 합의한 통일헌법은 민주적 절차에 따라 각각 치러지는 남북 내부의 총투표에서 둘 다 모두 과반수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하는 것이다. 이는 통일헌법이 남북 각각에게 헌법적 효력을 갖는 것이기 때문에 그 내부에서 정한 헌법 개정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측면에서 통일헌법은 남북 어느 쪽이든지 과반수의 동의를 얻지 못하면 효력을 발휘할 수 없다. 이를테면 북의 유권자 30%만 찬성했는데, 인구가 많은 남의 유권자 60%가 찬성하여 이를 합하면 남북 인민의 과반수가 넘었다고 해도 통일헌법은 채택할 수 없는 것이다.
<7> 통일의 과정
시기분류
통일헌법의 주요과제
통일국가의 준비
제헌헌법(초안)을 마련할 상설적인 공동기구 구성(수뇌, 각료, 정당)
체제공존과 수렴을 위한 법제도적 장치 마련, 통일외교 추구
통일국가의 성립
다양한 수준의 연방제 선택의 문제(정부형태와 연계됨)
대통령서명-국회동의-남북 별도의 총투표에 의한 제헌헌법의 확정
통일국가의 발전
체제수렴을 향한 통일헌법의 개정과정(각 분야의 이질성 극복)
1체제의 연방제 혹은 단일국가는 선택의 문제
 
 
IV. 통일국가의 정부형태로서 회의정부제
 
1. 회의정부제의 운영원리
 
국민주권에서 전체 주권은 모든 국민에게 속하는 반면 인민주권에서 주권은 총 유권자집단에 속한다. 즉 인민주권에서는 주권을 가지는 자와 주권을 행사하는 자가 일치한다. 인민주권의 경우도 유권자가 수백만 명이 넘을 경우 기술적인 문제로 간접민주주의를 원칙으로 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국민주권과 마찬가지로 국가통치방식으로서 대의제를 원칙으로 할 수밖에 없다.
인민주권에서는 총유권자 집단이 자신들의 대표, 즉 의회를 통해 구체적인 통치권을 행사한다. 즉 대통령과 같은 별도의 최고 집행기구를 선출하지 않는다. 따라서 의회가 최고권력으로서 행정부나 사법부를 구성할 권리를 갖는다. 물론 이는 구성과 해산의 정당성에 국한하는 것이며, 운영상에 있어서는 독자적인 지위를 보장한다.
인민주권에서 전체 유권자의 의사는 분열될 수 없기 때문에 최고기구인 의회는 단원제가 원칙이다. 다만 연방제를 채택할 경우 중앙과 지방이 각각의 의회를 갖는 것은 당연하나, 중앙차원에서 양원제는 필연적이지 않다. 최고회의형태처럼 하나의 회의구조에서 중앙권력과 지방권력의 대표자들을 배치할 수 있다.
의회의 상설적인 최고기구는 각료, 위원회 등으로서 집단지도체제이다. 집단지도체체는 소수로 구성되기 때문에 다수결보다는 합의제에 따르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인민주권의 사상을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정부형태가 회의정부제이다. 회의제는 특정인에게 권력을 집중시키지 않고, 구성원이 동등하게 토론 결정한다는 점에서 전체 주권을 유권자 인구비율만큼 동등하게 분할 소유하고 있다는 인민주권의 이념에 부합된다. 보통 합의제 기관의 선임자가 최고지도자, 즉 국가수반이 된다. 1의 유권자인 셈이다.
 
 
2. 회의정부제의 운영사례
 
영세중립국 스위스의 연방 제도는 진보주의적 공화국의 국가이념을 배경으로 1848년 형성되었고,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는 26개의 캔톤은 1979년에 조직되었다 . 이로 인해 스위스는 지금도 각 지방 캔톤과 국민이 강한 정치적 독립과 자치권을 유지하고 있으며, 국민들의 정치적 권한이 강하게 유지되는 직접 민주주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연방의회는 7명의 각료 중 1명을 매년 윤번제로 대통령으로 선출하며, 대통령은 연방각의를 주재하고 대외적으로 국가를 대표한다. 대통령은 7명의 연방각료가 1년을 임기로 순환하여 담당한다. 이는 한사람이 오래 국가 원수직을 담당하면서 올 수 있는 독주를 막기 위함이며, 국가원수는 7인을 대표해서 일을 한다. 연방각의는 연방의회에서 4년 임기로 선출된 7인의 연방각료로 구성되며 안전보장, 외교관계, 조세, 금융, 병역 등 업무를 조정, 감독한다.
연방의회는 선거구 주민을 대표하는 하원(200)26개 캔톤을 대표하는 상원(46) 등 양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양원은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보유한다. 하원의장이 양원 합동회의 의장이며 의원의 임기는 4년이다. 상하 양원 의장은 매년 마지막 회기 첫날에 선출되며, 임기는 1년이다.
연방법, 결의, 각의보고서 등의 각종 안건들은 양원에 각각 나누어 회부되고, 각각의 양원은 이를 해당 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총회에서 결정한다. 이후 양원은 합동회의를 개최하여 안건을 최종 의결한다. 양원간 의견이 대립되는 경우 각각 13명의 대표로 조정위원회를 구성하여 심의한 후 양원 합동회의에서 다시 의결한다.
연방정부는 단지 연방헌법에 의해 규정된 권한만 행사할 수 있다. 다른 모든 사안들은 캔톤에서 담당하고 있다. 연방주의 주에 해당되는 캔톤(Canton)은 국민과 함께 연방법을 제정할 수 있으며, 연방법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은 과제들을 독자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 각 캔톤 정부도 독자적인 행정부, 의회, 법원을 구성운영하고 있다. 국회로 하여금 어떤 법을 개정하거나 새로 제정할 때 이와 이해관계가 있는 단체나 캔톤과 합의한다.
북예멘, 즉 예멘아랍공화국은 의회제공화국이다. 입법의회는 임기 53-5인의 공화국평의회를 선출한다. 윤번제로 역임하는 공화국평의회 의장이 대통령이자 국군총사령관이다. 공화국평의회 의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최고국방위원회를 둔다. 공화국평의회 의장은 의원의 20%에 대한 임명권을 지니며 입법의회의 결의를 통해 입법의회를 해산할 수 있다. 공화국평의회 의장이 공화국평의회의 동의를 얻어 수상을 임명한다. 수상이 평의회의 동의를 얻어 각료를 임명한다. 최고헌법법원은 가장 권위 있는 샤리아 학자들로 구성하되, 공화국평의회 의장이 지명하고 입법의회에서 선출한다.
남예멘, 즉 예멘인민민주공화국은 인민민주주의공화국이다. 노동자들이 공화국의 모든 정치적 권한을 행사한다. 최고인민회의는 최고국가권력기관이며 직접 총선거를 통해 선출된다. 대통령평의회는 최고인민회의의 한 기구로서 최고인민회의가 개최되지 않는 동안 최고인민회의 결의사항을 수행한다. 최고인민회의는 의원 중에서 대통령평의회 의장과 2-6인의 위원을 선출한다. 대통령평의회 의장은 국가를 대표한다. 대통령평의회가 총리와 각료를 제청하면 최고인민회의에서 선출한다.
통일예멘, 즉 예멘공화국의 공화국평의회가 대통령 권한을 행사하며, 의회가 5명의 대통령평의회 위원을 선출한다. 대통령평의회는 의장을 선출 선출한다. 대통령평의회는 국민투표를 통해 의회를 해산할 수 있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1927년 제4차 개헌을 통해 집단지도체제인 국무위원제도를 채택했는데, 주석은 수석국무위원을 일컫는 말이다. 스위스의 연방각의에서 대통령과 비슷한 지위를 갖는다. 주석은 국무위원의 호선으로 선출하며, 국무를 총괄하지만 각의에 해당하는 의정원을 주재하는 정도의 권한만 갖는다.
192710월 임시약헌을 만들면서 김구가 주석을 맡게 되는데, 이때 주석의 권한이 강화된다. 즉 임시정부 대표권, 국군통솔권, 국무위원회 소집권, 긴급명령권 등 국가수반의 권한이 부여된다.
북조선은 1998년 헌법 개정으로 주석제를 폐지하고 최고인민회의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에게 국가원수의 지위를 부여하였다. 이는 일반적으로 사회주의 국가에서의 국가원수제도의 특징이라고 할 집단적 국가원수제의 유형에 속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이른바 합의제 대통령의 기능을 수행한 것으로 알려진 구소련의 최고회의 간부회의 기능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최종고, 2001:73).
중화인민공화국의 주석은 국가의 최고권력기관인 전국인민대표대회에 의해 선출되거나 해임된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주석은 국가를 대표하며 특사령과 계엄령을 포고하며 전쟁상태와 동원령을 선포한다.
 
 
3. 통일국가의 정부형태로서 회의정부제
 
1) 낮은 단계의 연방제 헌법
 
2체제의 통일국가인 낮은 단계의 연방제가 과연 체제통합을 이루어 1국가1체제의 연방국가로 발전할 것인지, 아니면 연방제를 폐지하고 1국가1체제의 단일국가로 발전할 것인지는 속단할 수 없다. 이는 통일 이후 국민이 민주적 절차로서 선택할 문제이자 체제경쟁의 결과이다. 다만 통일헌법은 이러한 체제경쟁이 소모적인 분쟁으로 악화되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체제가 다른 남북 2정부의 연합이다. 남북의 대립을 극복하고 장기적으로 체제를 통합하여 일반적인 연방제로 발전할 수 있는 고유한 연방원리가 필요하다. 따라서 연방헌법은 물론 남북의 헌법도 남북통합을 가속화시키는 내용이어야 한다. 남북정부가 각각 자신의 의회의 동의를 받아 통일국가의 주요 사항을 합의하고 그 합의를 민족공동위원회의 성격을 지니는 연방의회가 승인하도록 한다.
즉 남북정부의 회의체가 연방상원의 성격을 지니고 민족공동위원회가 연방하원의 성격을 지니는 것이다. 양원제를 채택할 경우 인구비례에 의한 하원과 동등비례에 의한 상원이 대립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갈등을 실질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남북정부 간 회의체에 상원의 기능을 부여하는 것이다.
연방의회의 1/2은 남북의 인구비례에 의한 지역구 의원으로, 나머지 1/2은 남북과 해외의 3자가 동등하게 1/6씩 정당명부 비례대표의 방식으로 선출할 수 있다. 상호 체제 존중의 연방제 의회 안에서는 지역정부의 단체대표성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비례대표의원이 필요하다고 본다. 또한 이러한 접근은 인구수가 서로 다른 남북이 의회의 구성방법을 놓고 대립하고 있는 상황을 타개하는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남북정부는 체제공존과 체제수렴의 의무가 있으므로 상호간의 적대적인 법률을 발견했을 경우 각각의 정부는 내부 의회의 결의를 통해 연방헌법재판소에 해당 법률의 취소를 구할 수 있다. 또한 남북정부는 헌법이 정한 연방의 권한을 제한하는 조약을 체결할 수 없다. 연방의 헌법에 반하는 기존의 조약은 대통령평의회, 남북정부의 제소에 의한 연방헌법재판소의 무효확인 결정 즉시 효력을 상실한다.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미국, 러시아, 중국 등 강대국을 중심으로 하는 군사동맹에서 탈퇴하는 중립화 노선을 지향해야 한다. 따라서 한미동맹이나 조중동맹, 조러동맹은 장기적으로 폐지되어야 하며 주한미군을 비롯하여 모든 주둔군은 철수해야 한다. 따라서 낮은 단계의 연방제에서는 외국군이 주둔할 명분이 없으며 자본주의제국주의와 사회주의 팽창주의, 패권주의 모두를 경계할 수 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강대국들은 비동맹중립을 천명한 작은 나라들을 지배하고자 하였다. 이런 국제정치의 현실은 적절한 군사력을 보유하지 않는다면 비동맹 중립노선을 지킬 수 없음을 말해 준다.
낮은 단계의 연방제 헌법에서 군사권한을 연방정부 혹은 지역정부에 어떻게 부여할 것인지가 가장 중요다. 통일과정에서 남북의 군사적 대립을 종식시키면서 1차적으로 군축을 단행할 수 있다. 통일헌법을 채택함과 동시에 기존의 군대를 존치한 채 양측의 합동지휘부를 설치할 수 있다. 남북이 강대국과 맺은 동맹을 폐기하고 외국군의 철수가 완료되면 남북은 2차 군축을 추진하면서 연방군사령부를 설치할 수 있다. 그러면 남북은 기존의 중무장군대는 연방군으로 배치하고 경무장의 국경수비대, 치안경비군, 수사 경찰을 운영할 수 있다.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모병제를 원칙으로 하되, 법률로 정한 비상사태의 경우 징병제를 한시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2) 회의정부로서 대통령평의회
남북이 통일을 협의하는 과정에서는 남북공동체의 형태는 남북공동위원회 등의 협의회가 될 수밖에 없지만 통일헌법은 특정 정부형태를 선택해야 한다(강현철, 2006:186). 통일헌법의 정부형태는 현재 이남의 대통령제, 프랑스와 핀란드, 루마니아의 이원정부제, 내각제, 스위스나 예멘의 회의정부제를 상정할 수 있다.
정부형태는 통일국가형태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특히 남북이 체제가 다른 상태에서 남북 통일국가는 연방제를 취하더라도, 각 지역정부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처럼 정치경제사회문화 체제가 다르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국가연합의 경우 두 국가가 의사결정을 할 때 강제력이 없는 협의제에 의하기 때문에 정부형태를 논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
다만 남북과 같이 국가는 아니지만 실질적인 통치권을 가지는 두 개의 권력체가 높은 수준의 연합제를 구성하여 국제법상 하나의 국가를 이룰 경우, 이는 통일국가의 초기형태로서 낮은 단계의 연방제에 접근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높은 수준의 연합제에 있어 두 권력체는 합의에 의해 통일국가를 운영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정부형태는 회의제를 운영해야 한다. 사실 코리아반도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분단국가가 통일을 준비하는 시기에 정상회담, 각료회담, 의회회담 등을 정기적으로 운영하는 회의제 형태의 다양한 공동위원회를 제안하거나 운영한 바 있다.
낮은 단계의 연방제의 경우 남북의 대표자들이 합의를 통해 통일국가를 이끌어가는 회의정부제가 유력하다. 현실적으로 남북의 지도층들이 머리를 맞대고 중요 문제를 합의하여 처리하는 회의정부제를 채택할 수밖에 없다. 회의정부제는 스위스나 예멘에서 보듯이 1민족1국가2체제2정부의 연방제 뿐 아니라, 체제통합의 연방제, 나아가 단일공화국에서도 가능한 정부형태라는 점에서 매우 안정적인 정부형태라고 볼 수 있다.
반면 국가통합의 결속력이 낮기 때문에 대통령제나, 비상시기에 대통령에게 권한이 집중되는 이원정부제는 곤란하다. 권력의 독점이 예상되므로 권력에서 소외당한 측이 연방에서 이탈할 가능성이 높기기 때문이다. 의원내각제 역시 회의정부제로 볼 수 있으나 수상에게 강력한 권한이 주어져 권력의 집중과 소외가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잦은 내각의 교체는 통합력이 허약한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
현재는 일부 사회주의 국가가 최고인민회의 형태의 회의정부제를 운영하고 있다. 북이 주장하는 고려민주연방공화국의 정부형태는 최고민족연방회의연방상설위원회를 설치하는 회의정부제로서 현재 북의 정부형태와 일치하나 우리의 정부형태와는 상충된다.
예멘의 통일과정에서 남북예멘과 통일국가 예멘이 대통령평의회 형태의 회의정부제를 운영한 바 있다. 대통령평의회는 의회에 통치권이 집중되는 단일성 집단지도체제로서 회의정부의 일종이다. 따라서 연방의회는 연방의원 중에서 대통령평의회의 구성원을 선출하고 법률에 따라 자격을 지니는 연방대법원과 연방헌법재판소의 구성원을 선출할 수 있다. 연방의회는 재적과반수의 발의와 재적 2/3의 결의로써 연방대법원과 연방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취소할 수 있다.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정부형태로서 대통령평의회를 채택할 필요가 있다. 이때 연방의회는 의원 중에서 5인의 대통령평의회를 선출하되 3인은 무작위로 선출하고 나머지 2인은 남북 측 대표에서 각 1인으로 한다. 대통령평의회의 임기는 4년이다. 평의회 위원들은 의장을 호선하며 의장의 임기는 1년으로 한다. 대통령평의회는 조약체결, 선전포고, 비상사태 선포 등 대통령의 권한을 과반수 결정으로 행사한다.
평의회 의장은 국가를 대표한다. 의회는 재적과반수로 평의회를 해임할 수 있다. 평의회는 의원 중에서 총리와 장관을 추천한다. 추천된 총리는 30일 이내에 국정계획의 대강을 제출하고, 의회는 이를 평가하여 총리와 장관을 인준한다. 총리와 장관은 내각을 구성한다.
대통령평의회는 총리와 장관의 해임을 의회에 제출할 수 있으며, 의회 역시 총리와 장관의 해임결의안을 제출할 수 있다. 의회의 총리와 장관의 해임은 재적 과반수 출석에 출석 과반수 찬성에 의한다. 평의회와 내각, 의원은 법률안을 제출할 수 있다. 평의회는 과반수 결정으로 의회를 해산할 수 있다. 의회를 새로 구성할 경우 대통령평의회를 새로 선출한다.
대통령평의회는 연방군을 통솔한다. 대통령평의회는 연방군을 관장하기 위해 대통령평의회 의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국방위원회를 구성 운영한다. 국방위원회는 대통령평의회 의장과 평위원 1, 연방국방장관, 지역정부의 국경수비대장, 의회가 선출한 위원 3으로 구성한다.
연방정부가 회의정부제로 운영될 수밖에 없다면 남북 지방정부의 정부형태도 역시 회의정부제로 변경하는 것이 타당하다. 연방의 주권과 지역정부의 지분권 행사방법을 통일하는 것이 통일국가의 본질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남북정부의 헌법은 연방헌법에 반하지 않는 한 구체적인 기본권과 경제질서를 규정할 수 있다. 지역정부는 연방 법률의 한계 내에서 외교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V. 결론
 
예멘과 독일의 통일은 모두 교류와 협력의 증진을 기반으로 협상의 결과물이었다. 우리의 입장에서는 통일과정 자체만 봤을 때 독일의 흡수통일보다 예멘의 합의통일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동족간의 전쟁을 겪고 오랜 분단을 통해 이질감이 심화된 상황에서 정치적 격변으로 인한 통일은 남북 모두에게 상당한 후유증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합의에 의한 통일이 가능하려면 남북관계가 신뢰와 상호존중의 바탕에서 장기적으로 발전하는 관계이어야 한다. 특히 7.4 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6.15 공동선언, 10.4 공동선언 등 기존의 남북합의에 통일헌법 차원의 구속력을 부여해야 한다.
합의에 의한 평화통일이 되려면 독일과 예멘의 사례에서 보듯이 남북대립을 종식시키는 국제적 합의와 통일에 대한 국제적 동의가 필요하다. 우리는 미국 일변도의 종속적인 외교안보 정책에서 벗어나 이러한 국제정세를 만들어 가야한다.
통일의 충격을 최대한 줄이자면 남북의 이질성과 경제적 격차를 줄여야 한다. 특히 극단적인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로 양분된 정치경제적 구조를 가능한 접근시켜야 한다.
현재 남북의 헌법을 그대로 두고 연방제로 통일한다고 해도 남북의 정부형태는 서로 다르고, 이에 따라 연방국가의 정부형태와도 충돌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연방국가의 정부형태를 의원내각제로 한다면 북의 지역정부는 회의정부제, 남의 지역정부는 대통령제가 되므로 연방의 통치권과 지역정부의 지분권의 행사에 있어 혼란이 초래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먼저 연방국가의 정부형태를 결정하고 필요하다면 남북은 이에 부합하도록 내부의 헌법개정절차를 별도로 완료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스위스 식 연방제를 모델로 하지만 일단은 남북의 2개 지역국가로 구성된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통일국가의 형태로 상정할 수 있다. 이러한 연방제는 예멘의 내전에서 보듯이 체제경쟁과 갈등으로 갈 수 있기 때문에 일방의 지배를 차단하는 합의제 정부형태로 보완되어야 한다. 따라서 정부형태로서 집단지도체제인 회의정부제가 최선이다.
스위스의 각료회의를 변형시킨 대통령평의회는 합의를 중시하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에 적합한 정부형태이다. 대통령평의회는 북한이 현재 채택하고 있는 정부형태와도 유사하고, 남한의 대통령제의 요소도 지니고 있어 남북 모두가 동의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진보정당이 통일헌법의 구상을 염두하고 자신의 정체성에 맞는 내용을 담은 대통령제의 제헌헌법을 주창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다. 또 한 가지 고려할 점은 회의정부제는 토론과 합의, 책임 있는 집행을 강조하는 진보적인 민주주주의 의사결정방식에도 부합하는 정부형태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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