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좌파정당과 최상급노조의 관계로의 적용가능성

마르크스는 이러한 노동계급의 자기해방원리에 따라 노동자정당과 노동조합이 독자적으로 병존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마르크스가 제기한 노동계급의 자기해방 원리는 자연발생적인 노동자 운동과 사회주의 혁명 운동의 결합을 전제로 하고 있다.
레닌은 노동자정당의 노동조합에 대한 지배와, 노동조합의 노동자정당에 대한 종속을 주장하였다. 레닌에 따르면 노동자정당은 노동조합을 매개로 하여 노동자 대중의 혁명운동을 지도해야 한다. 따라서 레닌은 노동조합이 노동자정당에 의해 철저히 지도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레닌의 이러한 입장은 혁명 시기에 전위정당의 대중조직에 대한 지도로 나타났고, 혁명 이후에는 노동조합을 통한 공산당의 노동자대중의 통제로 나타났다. 그 결과 러시아혁명을 전후로 하여 노동자대중의 혁명적 자발성이 억압되었다. 이처럼 마르크스의 노동계급의 자기해방원리는 레닌의 사회민주당의 조직원리에 의해 일부분 변질되었다. 레닌의 전위정당론은 러시아 차르 체제에서의 전술적인 선택이었다. 하지만 러시아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전위정당이 일반화된다면 스탈린주의정당에서 보듯이 관료주의정당, 엘리트정당, 과두정당으로 흐를 위험성이 내재되어 있었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레닌의 이러한 권위적 지도를 비판하면서 대중의 자율을 존중하는 정치적 지도를 강조하였는데, 그에 따르면 이때의 지도는 절대적인 지도가 아니라 노동조합의 자주성과 대중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정치적 지도이어야 한다. 그람시 역시 노동자정당의 노동조합에 대한 민주적 지도를 주장하였다.
그람시는 노동자정당의 노동조합에 대한 정치적 지도를 이론적으로 체계화하였는데, 노동자정당의 의식적 지도와 노동자 대중의 자생성 사이의 균형을 강조하였다. 그람시에 따르면 노동자 대중에 대한 당의 지도는 기계적인 지도가 아니라 민주적인 지도이어야 하며, 규율과 창의성을 변증법적으로 통일시키는 지도이어야 한다.
이러한 사회주의자들의 당과 노조의 입장은 트로츠키에 의해 잘 설명될 수 있다.
트로츠키가 1923년에 쓴 조합주의 동무들과의 필요한 논의(A Necessary Discussion with Our Syndicalist Comrades에 따르면 정당과 노동조합의 관계는 상황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즉 당의 지도적 역할은 해당 국가의 일반적 조건에 따라 그 방식을 달리할 수 있다(Trotsky, 1923a). 트로츠키는 사회주의혁명의 시기에는 소비에트가 노동조합을 쉽게 대체할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서유럽의 경우 공산당이 개량화의 경향이 강한 노동조합의 독자성을 인정하되 정치적 지도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보았다(클리프· 글룩스타인, 2014: 67).
트로츠키(1941)제국주의 퇴조기의 노동조합(Trade Unions in the Epoch of Imperialist Decay)에서 독점자본주의의 노동조합은 사회민주주의당, 공산당, 무정부주의에 속했든 공통적으로 국가권력에 통합되어 함께 성장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하였다. 트로츠키에 따르면 개량주의 노동조합은 국가를 독점자본과의 유착관계에서 떼어내서 자기의 편으로 끌어들이려고 하고 이러한 노선은 제국주의 초과이윤에서 나오는 빵부스러기를 챙기려는 노동귀족과 노동관료들의 사회적 위치와 일치한다.
트로츠키(1929)공산주의와 조합주의(Communism and Syndicalism)에서 규약에 있어 당과 노동조합의 조직적, 독자성을 인정하였으나, “노동조합이 부르주아 정당과 개량주의 사회당에 대한 독자성을 주장하듯이 공산당에 대해서도 절대적인 독자성을 주장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트로츠키는 이미 1923조합주의 동무들과의 필요한 논의(A Necessary Discussion with Our Syndicalist Comrades에서 당의 노동조합에 대한 지도의 성격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고 있는데, 이 글에서 그는 당과 노조가 대의기구를 공유하지 않더라도 조직형식과 무관하게 당은 노동계급이 전위로서 자신의 이데올로기적 영향력을 노동운동의 전 분야에 행사해야 한다면서도 공산당의 지도가 노동조합의 독자성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그에 따르면 공산당은 노동조합의 전술을 비판하고 명확한 제안을 제출할 권리를 갖지만 이러한 비판과 제안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하는 것은 노동조합의 자유이다. 따라서 당은 정세에 따라 노동조합에 대해 일반적 지도력을 행사하려고 노력할 뿐이므로 노동조합이 당에 조직적으로 복종하는 관계에 있지 않다. 특히 트로츠키에 따르면 자본주의 국가에서 공산당은 국가기구의 물리력과 같은 강제 수단을 동원할 수 없기 때문에 공산당원이 노동조합의 활동가로서 역할을 할 때만 공산당은 지도력을 행사할 수 있다. 트로츠키는 당이 노동조합에 대해 올바른 정책을 펼친다면 노동조합이 당의 지도력에 대해 노동조합의 독자성을 들고 맞서지 않을 것이라면서 노조 내의 공산당 당원은 당과 노조의 입장이 충돌하는 예외적인 상황에서는 노조의 지위를 탈피함으로써 노조와 당의 독자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상을 살펴볼 때 사회주의에 있어 노동조합과 정당의 관계는 양 조직의 대표성, 자주성, 민주성이라는 관점에서 다음과 같이 고찰할 수 있다(김장민, 2014a : 19)
 
1) 대표성의 경합으로 인한 긴장적 협력관계
첫째, 마르크스는 노동조합과 노동자정당이 모두 노동계급을 대표하고 있다고 보았다. 이는 노동조합과 노동자정당이 그 자체로서 노동계급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국가 내에서 복수의 노동조합과 노동자정당이 존재할 때 특정한 노동조합과 특정한 노동자정당은 노동계급의 일정부분을 대표할 뿐이다.
둘째, 노동자정당의 정치투쟁이 노동조합의 경제투쟁보다 우위에 있는 근원적인 노동계급의 자기해방투쟁이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두 조직이 모두 노동계급의 일부이지만 당은 노동조합에 비해 더욱 선진적이며 적극적인 부분이다. 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의 조건을 개선시키기 위해 개별자본과 대립하고 있지만 노동자정당은 노동계급을 해방시키기 위해 총자본과 대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공산당은 언제 어디서나 전체운동의 이해를 대변한다. 당은 노동조합을 포함한 전체 노동계급의 경제적 정치적 이해를 대변한다. 따라서 노동자정당은 그람시의 지적대로 노동계급 전체를 혁명에서 승리할 수 있는 위치에 놓기 위해 포괄적인 행동을 발전시켜야 한다.
결론적으로 당과 노조는 모두 노동계급을 대표하면서 노동계급의 해방을 위한 실천과 전략을 구사하기 때문에 상호 협력적 관계에 있지만 노동계급에 대한 지도적 지위를 놓고 경쟁적 관계에 있을 수 있다. 당은 정치적 우위에서 노조와의 이러한 긴장적 협력관계를 조정하게 된다.
 
2) 독자적 병존
첫째, 노동자계급의 당은 다른 계급의 당과 독립적으로 존재해야 하고, 또한 노동조합과도 독립적으로 존재해야 한다. 노동조합은 역사적으로 노동관계에서 노동자의 이익을 관철시키려는 목적으로 기업별, 산업별로 조직되었기 때문에 노동조합의 역할은 임금 체제 철폐가 아닌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에서 개별 노동자의 이익보호이다. 따라서 숙련노동자와 미숙련노동자, 토착민 노동조합과 이주민 노동조합 등 개별 노동자들과 개별 노동조합들 사이에는 경제적 이익이 충돌될 수 있기 때문에 노동조합은 노동자를 단결시키기도 하지만 동시에 분열시킬 수 있다.
따라서 경제투쟁에 주력할 수밖에 없는 노동조합은 독자적인 혁명주체가 아니다(그람시. 2001: 408). 당이 작업하는 공간이며 또한 그 성격상 노동자대중 전체가 결합하게 되기 마련인 대중조직들은 결코 혁명가들의 정치적 조직, 즉 프롤레타리아트의 전위인 공산당을 대체할 수 없다.
둘째, 그람시(2001)에 따르면 노동조합과 당은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을 결합하는데 있어 서로의 차이점과 자주성을 존중하면서 공동행동으로 나아가야 한다. 노동자정당과 노동조합은 노동계급의 일부이자 시민사회의 한 부분이므로 노동계급의 시민사회에 대한 이데올로기 투쟁과 헤게모니 획득을 위해 서로 협력해야 한다. 노동조합의 경제투쟁은 부분적이고 제한적이지만 이러한 경제투쟁은 모든 노동계급의 동원과 단결을 점진적으로 달성하는데 있어서 필수적 단계이다. 따라서 노동조합의 경제투쟁을 가벼이 보지 말고, 노동조합이 정치투쟁으로 한발 나아가는 방향으로 경제투쟁을 지원해야 한다.
 
3) 상호자주성 인정
첫째, ‘노동조합에 대한 정당의 지도는 노동자정당이 노동조합의 결성과 활동을 주도한 경우와 같이 특정한 상호조건에서만 가능하며, 이 경우에도 정당의 지도는 노동조합의 대중적 자발성에 근거한 정치적, 민주적 지도이어야 한다. 즉 당의 노동조합에 대한 지도는 설득과 실천에 의한 선도적 역할이다. 양자의 관계는 민주집중제에 의한 강제적 조직적 지도가 아니다. 민주집중제는 하나의 조직 내에 적용되는 다수결에 의한 강제적 방식이라는 점에서 조직을 달리하는 당과 노동조합에 적용될 수 없기 때문이다.
룩셈부르크에 따르면 혁명정당은 자신의 지도적 역할을 인식해야 하지만 노동자계급이 자발성 없는 수동적 대중으로 남게 하거나 당 스스로가 무오류의 사상과 원천이라는 생각을 경계해야 한다(클리프, 1989: 57). 그람시의 지적대로 노조와 당의 관계는 공산주의자들이 노조 내에서 수행하는 활동을 통해 실현되는 특수한 정치적 지도의 관계이다(그람시, 2001: 408).
둘째, 마르크스는 노동자정당의 노동조합에 대한 우위와 지도의 필요성을 강조했지만 노동조합이 노동자정당에 종속되는 것을 비판하였다. 물론 노동조합은 자신의 자주성과 통일성이 보장되는 조건에서 특정 정당을 배타적으로 지지할 수 있으나 이것이 조직적 강제적인 의미에서 종속은 아니다. 양자 간의 배타적인 관계가 성립하였다고 해도 이를테면 자본주의 국가 내에서 노동자정당이 집권하거나 연립정부에 참여하는 경우 노동조합은 국가와 긴장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으므로 집권당인 노동자정당을 일방적으로 지지할 수 없고, 노동자정당 역시 이 경우 노동조합을 지도할 수 없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노동조합은 그 자체가 기존의 자본주의 노동조합의 방식대로 존재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배타적 지지나 지도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셋째, 당과 노동조합은 상호활동을 결합하는데 있어 민주적 순기능을 상호 작동하여 자신들의 관료와 과두를 통제해야 한다. 먼저 노동조합은 대중적 자발성을 발동하여 당의 관료와 과두를 민주적으로 순화시켜야 한다. 심지어 노조와 당의 관료가 암묵적인 동맹을 맺어 대중의 자발성을 억압할 수 있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하부 노동자대중은 노동조합이 소수의 숙련공의 이해가 아니라 전체 노동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도록 자주적인 활동을 강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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