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독일공산당 해산 사건과 논리적 유사성

1) 독일의 정당해산 사례
(1) 사회주의제국당
독일연방정부는 1951년 11월 19일 사회주의제국당(Die SozialistischeReichspartei : SRP)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결정을 해줄 것을 연방헌법재판소에 신청하였다.
사회주의제국당이 헌법위반임을 확인하여 줄 것사회주의제국당과 더불어 그 모든 부분조직을 해산시킬 것사회주의제국당 또는 그 부분조직 특히 라이히전선라이히소년단 및 SRP 여성동맹에 관해서는 그 위장조직 내지 대체조직의 창설을 금지시킬 것사회주의제국당과 그 부분조직의 재산은 연방의 공공이익을 위하여 몰수할 것.
연방헌법재판소는 이 사건에 대해 먼저 다음과 같이 쟁점을 판단하였다.

첫째퇴임재판관의 후임자가 연방헌법재판소법 제5조 제3항에 규정된 시간 내에 선임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곧 연방헌법재판소가 비정규적(非正規的)으로 구성되었다고 할 수 없다.
둘째기본법 제21조 제2항이 의미하는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본질서(freiheitlichen demokratischen Grundordnung)는 일체의 폭력적자의적 지배를 배제하고 그때그때의 다수의 의사와 자유 및 평등에 의거한 국민의 자기결정을 토대로 하는 법치국가적 지배질서를 의미하는 것으로최소한 기본법에 의하여 구체화되고 있는 제인권의 존중국민주권권력분립정부의 책임성행정의 합법성사법부의 독립복수정당제반대당의 합헌적인 결성활동권과 더불어 모든 정당에 대한 기회균등 등이 포함될 수 있다.
셋째정당에 관한 한 기본법 제21조 제2항은 기본법 제9조 제2항에 대한 무조건적인 특별법적 규정이다.
넷째기본법 제21조 제1항 제12문과 동조 제2항은 직접 적용될 수 있는 법이다동조 제1항 제3문도 그것이 민주적 제 원리에 원칙적으로 위반되는 정당조직을 금지하고 있는 이상 직접 적용될 수 있는 법이다.
다섯째정당의 내부질서가 민주적 구성원리로부터 이탈하는 정도가 원칙적으로 민주주의 적대적 태도의 표현으로서만 해석될 수 있는 정도에 이르게 되면 특히 그 밖의 다른 사정까지도 동(정당의 그와 같은 태도를 뒷받침하여 주는 경우라면 기본법 제21조 제2항의 구성요건을 충족시키는 것이 될 수 있다.
여섯째정당이 소수의 간부로 구성되는 권위적인 고위층의 자의에 따라 해산될 경우 그러한 해산방식을 그 내용으로 규정한 당헌의 규정 내지 개별적인 수권은 기본법 제21조 제1항 제3문의 강제규정에 위반되므로 무효가 된다.
일곱째정당의 위헌성이 확인되면 그 정당의 소속의원의 연방의회주의회의원직은 상실된다.
이어 연방헌법재판소는 1952년 10월 23일 다음과 같이 주문을 결정하였다.
. (1) 사회주의제국당은 위헌이다. (2) 사회주의제국당은 해산된다. (3) 사회주의제국당을 위한 대체조직을 창설하거나 현존의 기구를 대체조직으로 존속시키는 것은 금지된다. (4) 사회주의제국당의 공천으로 선출되었거나 판결선고 당시에 사회주의제국당에 소속하는 의원의 연방의회주의회 의원직은 보충됨이 없이 그리고 그 보상 없이 상실된다당해 의회의 의원수의 법정 정수는 상실된 의원직의 수만큼 감소된다의회에 의한 의결의 효력은 이로써 영향을 받지 아니한다. (5) 사회주의제국당의 재산은 독일연방공화국의 공익목적을 위하여 몰수된다.
각주의 내무부장관에게는 본판결주문 . (2)와 (3)을 집행할 권한을 위임한다그 범위 안에서 그들에게는 모든 경찰기관을 직접 지휘할 권한이 부여된다재산을 몰수할 권한은 연방내무부장관에게 이양하며 동 내무부장관은 각주의 내무부장관의 협력을 구할 수 있다.
본판결이나 본판결의 집행과 관련된 제반조치에 대한 고의적인 위반행위는 연방헌법재판소법 제47조 및 제42조에 따라 6월 이상의 금고에 처한다.

(2) 독일공산당 해산 사건

통합진보당의 해산은 독일공산당의 해산을 벤치마킹한 것이나 다름없다헌법재판소와 정부가 통합진보당의 진보적 민주주의를 강령의 문언과 무관하게 해석한 점저항권에 의한 집권을 위헌으로 본 점자유민주주의를 악용하였다고 본 점대한민국을 식민지로 보고 미군철수와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한 것을 위헌을 본 점북한식 사회주의를 추종하고 통일의 모델로 본 점같은 주장이라도 다른 정당의 경우 통합진보당처럼 위헌의 목적이 없기 때문에 문제가 안된다는 점 등은 독일연방헌법재판소의 논리와 유사하다특히 아데나원 정부는 공산당을 해산시키려는 의도로 공산당 내부에 프락치를 침투시켜 증거를 모았으며이 증거가 재판에서 채택되었는데통합진보당 해산 사건에서도 정부가 프락치를 이용하여 비밀 녹음한 내용이 재판에서 증거로 사용되었다.
1950년대 중반 서독의 기독교민주당 아데나워 정부는 독일사회민주당과 경쟁관계에 있었다아데나워 정부는 친미정책을 강화하고 사회주의 세력의 추방을 주장하면서 사회주의적 색채를 띤 독일사회민주당의 정책들을 비판하였다사회민주당은 2차 대전 직후 공산당과 마찬가지로 나토에 반대하면서 사회주의적 색채를 띤 경제계획을 주장하고 있었고, 1차 대전 직후 사회민주당 좌파가 공산당을 창당하였기 때문에 아데나워의 이념공세는 사회민주당에게도 해당되었다.
아데나워 정부는 1951년 내란죄를 형법에 추가하는 등 자신의 정책에 반대하는 세력들을 공산세력으로 치부하면서 탄압하였다아데나워 정부는 1951년 11월 사회주의제국당과 독일공산당의 해산을 헌법재판소에 청구하였다사회주의제국당은 전쟁과 학살을 자행한 나치당의 조직과 인물노선을 계승한 정당이었고독일의 정당해산제도 자체가 이러한 나치당의 부활을 막고자하는 것이었다따라서 헌법재판소는 큰 논란 없이 일 년 만에 사회주의제국당을 해산시키는 결정을 내렸다.
반면 독일공산당의 경우 야당탄압이라는 논란이 일었다독일사민당은 독일공산당의 해산에 찬성하지 않았지만 공산당과 경쟁관계에 있었고 공산당을 옹호한다는 이념공세를 우려하여 공산당 해산을 반대하는 적극적인 행동에 나아가지 않았다.
당시 독일공산당은 원내 소수정당이었지만 독일공산당의 나치청산정책과 평화정책 및 통일정책은 독일인의 지지를 받았다독일공산당은 나치 잔당의 처벌과 재산몰수 등을 주장하였다또한 공산당은 미국의 독일분단 정책에 반대하면서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 국가들과의 평화조약을 체결할 것을 주장하는 등 독일의 재통일을 추구하였다.
공산당은 소련을 견제하려는 미군의 서독 주둔을 반대하고 역시 1949년 미국 주도로 발족한 나토를 강화하기 위한 서독의 재무장에 반대하였다(이성환, 2004:79). 독일공산당은 1951년 서독 재무장 반대와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국민투표 운동을 주도했는데이 운동에 1100만 명이 참여해서 그 중 900만 명이 찬성표를 던졌다따라서 독일공산당은 미국과 아데나워 정부에 있어 걸림돌이었다.
독일연방정부는 독일공산당(Kommunistische Partei Deutschlands: KPD)을 해산해줄 것을 1951년 11월 22일 연방헌법재판소에 신청하였는데그 청구요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독일공산당은 그 목적과 당원의 행동에 비추어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본질서를 침해하는 것일 뿐 아니라 폐지하려고 하였으며연방공화국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려고 기도하고 있다이것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이론과 KPD의 구체적 목표에 비추어 명백하다마르크스레닌주의를 위한 투쟁정당으로서의 KPD는 폭력혁명의 방법으로 연방공화국의 권력을 장악하려 하고 있고또한 권력을 획득함으로써 프롤레타리아 독재국가 형태를 수립하려고 하는 혁명정당이다. KPD가 그러한 목적을 추구하고 있음은 그 당헌에서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지배의 달성을 표방하고 있고 또 강령성명 그리고 그 당원의 행동에 의하여 뒷받침되고 있다. KPD는 권력을 획득한 후 독일 전역을 포괄하여 소비에트점령지역과 일치하는 지배체제를 확립하고자 하는 혁명정부의 수립을 계획하고 있다그러한 지배체제는 폭력과 전제의 전체주의적 체제인 것이며자유롭고 민주적인 기본질서의 근본가치와 합치하지 않는 것이다.
둘째이상과 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KPD는 기본법 전문(前文)에 규정된 독일재통일의 요청을 남용하고 있다이것은 KPD가 그 당헌 중에 수용하고 있는 민족전선강령에 비추어 명백하다민족전선(Volksfront)은 동독의 독일사회주의통일당(SED)이 그 조직을 지배하고 있다. KPD는 그 강령에서 혁명 또는 폭력적 투쟁수단에 의한 아네나워 체제의 전복을 주장하고 있고 이 투쟁에서 KPD는 이른바 독일민주공화국(동독), 인민민주주의소련에 의한 지지까지도 기대하고 있다.
연방헌법재판소는 이 사건에 있어서도 먼저 다음과 같이 쟁점을 판단하였다.
첫째기본법의 전문은 정치적 의미만을 갖는 것이 아니고 법적 의미도 아울러 갖는 것이다국가의 모든 정치적 기관은 전력을 다하여 독일의 재통일에 노력할 법적 의무를 지고 있다모든 정치적 기관은 그들의 제조치를 이러한 목적에 합치시켜야 하며 특히 재통일을 법적으로 방해하거나 사실상 불가능하게 하는 조치는 일체 중단하여야 한다.
둘째연방정부가 제반사정을 고려하고 헌법보장이라는 요청에 입각하여 연방헌법재판소법 제43조에 의한 청구를 신청하고자 하는가의 여부 또는 재통일에 대한 위협을 이유로 허용되는 조치들을 유보하려고 하는가의 여부는 오로지 연방정부가 그 정치적 재량을 남용한 것인가의 관점에서만 연방헌법재판소에서 심사할 수 있는 문제이다.
셋째독일공산당의 금지가 전독일총선거의 경우에 공산당의 재승인을 법적으로 반대하는 것이 되지는 않는다.
넷째서독기본법 제21조 제2항은 직접 적용될 수 있는 법이다.
다섯째정당은 그것이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본질서의 최고원리들을 인정하지 않는 것만으로 곧 위헌이 되는 것은 아니며그 밖에 현존질서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투쟁하는 공격적 태도가 첨가되지 않으면 안된다.
여섯째서독기본법 제21조 제2항은 형법 제81조와 같이 구체적 기도를 요건으로 하지 않는다당의 정치노선이 원칙적으로 그리고 영속적으로 경향상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본질서에 대항할 의도에 따라 결정되는 것으로 충분하다.
일곱째정당은 모든 종류의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본질서를 보다 쉽사리 폐지하기 위한 과도적 단계로서 이용하기 위하여 연방공화국의 현존 질서와는 상이한 자유민주주의의 사회적정치적 내용을 추구한다면 그것만으로 곧 위헌이다이 때 그 폐지가 재통일과 결부됨으로써 비로소 가능한 것이든 재통일 이후에만 가능한 것이든 그것은 문제되지 않는다.
여덟째정당을 제21조 제2항이 의미하는 위헌이 되게 하는 의도에는무조건 실행하려고 하는 의도뿐만 아니라 상황이 유리한 경우에만 실현하려고 하는 의도도 포함된다.
아홉째국가권력의 상호견제와 균형 그리고 국가기관들의 헌법위반 및 헌법침해에 대한 실효적인 법적 보장이라고 하는 기본법상의 체계에 비추어개개의 법적 위반행위에 대한 기본법 내재적인 저항권이 인정된다면 저항권의 행사에는 다음과 같은 조건들이 요구된다.
저항권은 오로지 보수적인 의미에서다시 말하면 법질서의 유지 또는 회복을 위한 긴급권으로서만 이용될 수 있다저항권의 행사를 통해서 극복하려는 부정은 명백하여야 한다법질서에 따라 이용 가능한 일체의 법적 구제수단이 유효한 구제책이 될 전망이 거의 없게 됨으로써 저항권의 행사가 법의 유지와 회복을 위하여 남겨진 최후수단이 되는 경우라야 한다.
연방헌법재판소는 1956년 8월 17일 다음과 같이 주문을 결정하였다.
⑴ 독일공산당은 위헌이다⑵ 독일공산당은 해산된다⑶ 독일공산당을 위한 대체조직을 결성하거나 현존조직들을 대체조직으로서 존속시키는 것은 금지한다⑷ 독일공산당의 재산은 독일연방공화국의 공익목적을 위하여 몰수한다.
각주의 내무부장관들에게 주문 의 ⑵ 및 의 판결을 집행할 권한을 위임한다그 범위 내에서 그들에게는 모든 경찰기관에 대한 직접적인 지휘권이 부여된다재산의 몰수는 연방내무부장관에게 위임한다연방내무부장관은 각주 내무부장관의 조력을 받을 수 있다.
본판결 또는 본판결의 집행에 관한 제조치에 고의로 위반하는 행위는 연방헌법재판소법 제47조 및 제42조에 따라 6월 이상의 금고에 처한다.
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이 사건에서 공산당의 마르크스레닌스탈린주의 강령을 근거로먼저 이러한 사회주의이론이 폭력혁명일당독재삼권분립의 폐지민주집중제 등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학문적으로 해석한 후공산당은 이러한 사회주의폭력혁명을 장기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판단하였다(법무부 2013b, 216-255).
독일연방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르면 공산당이 상정하고 있는 집권방법은 선거 혹은 저항권에 의한 자신의 집권이며통일국가의 정부수립에 있어 다른 정치세력과 연대 연합하는 연립정부의 가능성을 열어두었다공산당은 서독의 민주주의 선거는 사이비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면서 의회 밖의 대중투쟁에 주력하면서도 사회주의를 실현하는데 유리한 조건을 조성하기 위해 임시적으로 자유민주주의와 의회주의를 활용하고자 하였다.
독일연방헌법재판소에 따르면 독일공산당은 공개적으로 서독을 제국주의 점령국가들의 보호국식민지로 보고 있으며아데나워 정권이 제국주의국가에 종속되어 독점 및 금융자본과 대지주와 군사주의자들을 대변하고 있다고 보고 아데나워 체제의 전복을 주장하였다(법무부, 2013c: 308).
독일공산당은 소련과 동독을 통일국가의 표본으로 삼았고 자유선거를 통해 이를 선택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공산당은 민족전선(Volksfront)에 가입하고그 주장을 당의 정책으로 수용하였는데민족전선은 동독의 공산당에 의해 주도되고 있었으며 평화협정과 미군철수 등을 주장하였다.
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공산당에 있어 통일 전의 서독기본법을 준수하는 목적과 활동은 통일 후 사회주의혁명의 목적과 활동과 분리되지 않으며 전체로서 하나의 계획이라고 판단하였다독일연방헌법재판소에 따르면 공산당이 즉각적인 사회주의실현을 주장하지 않은 것은 이를 명시하면 오히려 대중적으로 역효과가 나기 때문이다.
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독일공산당의 저항권 주장을 자신의 폭력혁명을 정당화하려는 변명에 불과하다고 보았다독일연방헌법재판소에 따르면 다른 정당도 통일점령군 철수국유화 등을 주장하고 있지만 이들은 사회주의폭력혁명의 목적이 없다는 점에서 공산당과 다르다.

(3) 독일공산당 해산의 역사적 평가

당시 독일연방헌법재판소장은 중도보수정당인 자유민주당 중앙위원 출신인 헤르만 회프코-아쇼프였는데그는 아데나워의 공산당 해산 요구에 실질적으로 반대하였다정부의 제소가 야당탄압이라는 여론에 직면한 헤르만 회프코-아쇼프 독일연방헌법재판소장이 고심 끝에 아데나워 수상에게 공산당 해산청구를 취소할 의향을 물었으나 아데나워 정권은 정당해산 청구를 취소하지 않았다이에 헌법재판소장은 독일공산당에 대한 해산심판 절차를 진행하지 않는 방식으로 아데나워 정부의 요구에 불응하였다. 아데나워 정부는 공산당해산에 미온적인 헌법재판소 소장이 1954년 죽은 후 재판관 선출 방식을 바꿔 헌법재판소를 압박하였다.
헌법재판소는 고심 끝에 거의 5년 만에 1956년 독일공산당에 대해 해산결정을 하였다독일공산당 해산 판결과 동시에 25,000여개의 집과 사무실이 압수수색을 당하였고 만여 명의 당원들이 체포당하거나 수배되었다. 독일공산당이 해산되면서 독일공산당 의원들은 연방의회뿐만 아니라 주의회에서도 추방당하였다독일공산당의 재산은 몰수되었으며당원 55,000명이 공직에서 추방되었다. 1968년까지 공산당과 관련하여 총 25만여 명이 경찰의 수사를 받았고 그 중 7,000명에서 최대 15,000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독일공산당과 관련이 있다는 이유로 노동조직농민조직여성조직청소년조직스포츠조직 등 수백 개의 단체들이 해산되었다독일공산당을 상징하는 붉은 깃발과 붉은 카네이션을 금지하였으며마르크스 서적도 금지되었다보호관찰을 받은 사람은 반공서적을 읽고 독후감을 경찰에 제출해야만 하였다이러한 매카시즘으로 피해를 본 사람들은 수십만 명으로 추산되었다.
독일공산당을 무리하게 해산시킨 아데나워 정부는 얼마 지나지 않아 국내외 반발에 직면하였다국내에서는 나치에 대한 견제수단이었던 정당해산이 공산당에게 적용된 것에 대해 많은 비판이 제기되었다당시 아데나워 정부는 동독과 외교관계를 맺은 나라와는 수교하지 않는다는 할슈타인원칙을 견지하면서 국제적으로도 반공산당노선을 유지하였다그런데 당시 프랑스이탈리아스웨덴덴마크 등 대부분의 유럽에서 공산당은 자유롭게 활동하고 있었는데이들 나라들은 자국의 여론을 의식하여 공산당을 해산시킨 아데나워 정부가 친미노선을 내세워 유럽 외교를 좌지우지하려는 것에 반발하였다.
1966년 기민당과 사민당의 대연정이 탄생되자 사민당 출신의 빌리브란트 외무장관은 공산주의 국가와 관계를 개선하려는 동방정책을 추진하였다독일공산당의 해산과 탄압은 이러한 동방정책에 있어 국내외적으로 걸림돌이었기 때문에 빌리브란트뿐만 아니라 자민당까지 이 문제를 청산하고자 하였다결국 빌리 브란트 측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취소할 수 없지만 공산당은 당명을 바꿔 재건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공산당 측에 전달하였다이에 1968년 독일공산당과 정부 사이에 협상이 시작되었다이미 독일 하원이 공산당 당원들을 사면하는 법률을 만들었기 때문에 공산당 당원들은 공산당을 재건하고자 하였다하지만 공산당 해산 결정의 법률적 효력 때문에 공산당 자체의 재건은 불가능하였다결국 독일공산당은 이름만 KPD에서 DKP으로 바뀌었을 뿐 1969년 실질적으로 재건되었고 당원들은 재입당하고 선거에 출마하였다(Meier,1987:472).
독일에서 독일공산당 해산 결정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비판적이다. 이 결정에 참여하였고 훗날 독일연방헌법재판소 소장을 역임한 Konrad Zweigert는 독일공산당은 해산결정이 아니라 선거를 통해 국민들이 해산시키도록 했어야 하였다고 후회할 정도이다(정태호, 2914: 275). 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독일공산당 해산 결정에 있어 침해의 최소성과 법익의 균형성이라는 비례성의 원칙을 고려하지 못하였다는 비판을 받아왔다하지만 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1990년대 이후의 사건에서 정당해산제도를 당원에 대한 처벌 등의 대체수단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할 때 동원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으로 보고 있으며또한 정당을 해산했을 때 얻을 수 있는 법익보호와 정당해산으로 인한 법익침해를 고려하여 정당해산에 대해 소극적으로 임하고 있다(홍선기, 2014: 156-158).
우리헌법재판소 역시 기본권 제한의 경우에 비례성의 원칙을 적용하고 있으며정당해산의 경우 그 요건을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입장이다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에 있어 비례성의 원칙에 의해도 정당해산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하지만 통합진보당 사건에 있어 이0기 등 문제된 당원들이 구속되었고부정선거 등의 문제도 수사 중이며무엇보다 통합진보당의 정치적 영향력이 급감하여 헌법질서를 실질적으로 위협하지 않았음에도 정당을 해산하였다는 점에서 비례성의 원칙이나 정당해산요건을 자의적으로 확대하였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반면 장영수에 따르면 정부가 선거에 방치하든 제소하든 헌법상 권한을 재량껏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일단 심판에 들어가면 선거에 의하는 보충적 방안은 고려할 필요가 없다(장영수. 2015: 136-137).
오늘날 독일에서 개인이나 정당의 불온적인 의도를 처벌하지 않는다나치당이 인종차별 살인에 연루되었다는 정황이 있지만 직접적인 관련성이 부족해 나치당의 해산은 실제로 추진되지 않고 있다독일헌법질서에서 어떤 정당이 단순히 폭력을 선동하는 것만으로는 헌법을 실질적으로 또한 명백하게 위협하지 않기 때문에 정당해산의 필요성이 충족될 수 없었다독일공산당의 아데나워정부 전복 주장이 폭력적이었지만 실제로 폭력을 행사한 적이 없었다따라서 폭력선동만으로 정당을 해산할 수 있다는 독일공산당 해산결정은 홍윤기에 의하면 최악의 헌정 사례로 평가되고 있다.
연방헌법재판소는 독일공산당 해산 사건에 있어 실질적 위험의 평가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또한 연방헌법재판소는 정당해산이 헌법적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필요하더라도 여러 방법 중 독일공산당에게 가장 적은 법익침해의 수단인지 혹은 정당해산 이외의 방법이 있는지에 대한 고려 즉 비례성의 원칙에 대한 고려를 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이러한 비판을 반영하여 그 이후 연방헌법재판소는 정당해산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
이러한 입장 변화는 독일정부에서도 발견된다. DKP가 독일공산당을 계승한 대체정당이었지만 독일정부는 이 당의 득표율이 낮아 실질적인 위험이 없다고 보아 해산청구를 하지 않았다또한 독일 통일 이후에도 독일의 공산당을 계승한 민주사회주의당에 대해서도 해산청구를 하지 않았다이는 나치와 같은 전체주의 정당을 해산하려는 방어적 민주주의가 남용될 경우 자유민주주의 자체가 훼손될 수 있었기 때문에 독일정부가 해산청구를 자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독일국가민주당(NPD)의 해산심판절차 중단은 독일정부가 정당해산제도를 남용하는 것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제동을 건 사례이다. 2001년 연방정부와 연방하원 및 연방참의원은 이 당에 대한 해산심판을 독일연방헌법재판소에 청구하였다. 이 사건 절차에서 헌법보호청의 비밀정보원이 독일국가민주당의 부당수를 지낸 중앙당 당무위원이란 사실이 밝혀졌다이러한 프락치에 의한 증거가 제출되자정당 측은 정부가 정당을 해산시킬 의도로 침투시킨 프락치가 당 내에서 일부러 과격한 활동을 하거나 선동할 수 있다면서 프락치의 활동과 순수 당원의 활동을 구별해야하고이러한 프락치의 활동은 증거로 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나아가 정당 측은 정당 활동의 보장과 증거의 객관성을 위해 정부가 침투시킨 프락치의 명단을 재판에 모두 제출하여 이들의 활동은 정당의 활동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정부 측은 프락치 활동의 비밀을 위해 이러한 명단제출을 거부하였다.
이에 연방헌법재판소는 연방정부의 제소가 법치국가적 절차를 준수하였는지 논의하였는데절차의 적법성을 인정하는 재판관의 의견이 2/3의 찬성에 이르지 못하였다결국 연방헌법재판소는 본안 심사에 들어가기 전에 재판을 중지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런데 2013년 말 독일 연방상원은 독일국가민주당의 해산심판을 다시 독일연방헌법재판소에 청구하였고 연방헌법재판소는 3년만인 2017년 1월 독일국가민주당의 해산심판 청구를 기각하였다헌법재판소는 국가민주당의 목적이 헌법에 위반되지만 그 목적을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계획이나 시도가 없고 의석이 없는 원외정당으로서 헌정 질서에 미칠 실질적인 영향력이 없기 때문에 정당의 목적만 가지고 처벌하는 것은 정당활동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에 반하다고 보았다.
우리는 이승만 정권의 행정처분을 통한 통합진보당 해산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정당해산제도를 4.19혁명 직후 제2공화국 헌법에 명시하였다따라서 우리의 정당해산제도는 독일과 반대로 방어적 민주주의의 한계를 강조한 것이며즉 정당해산제도의 남용정부에 의한 야당탄압을 방지하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오늘날 독일공산당 해산은 2차 대전 직후 분단된 독일의 특수상황에서 기인한 법치주의와 입헌주의로부터의 일탈이라고 평가받고 있는데이러한 후진성은 통합진보당 해산에서도 발견된다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 해산사건에 있어 분단과 남북대립의 특수성을 강조하였는바이는 우리의 정당해산제도가 보편적인 입헌주의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냉전 이데올로기와 북한에 대한 적대성에 근거한 것으로서 필요하다면 진보정당에 대해 예방적으로 해산시킬 수 있다는 이념적 보수성을 드러낸 것이다(김현철, 2016: 384-385).
독일의 공산당과 달리 통합진보당은 자본주의나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강령이 없었다진보적 민주주의는 강령과 당헌에서 언급되고 있는데통합진보당이 주장하는 내용을 보면 선거의 원칙삼권분립사유재산의 보장과 예외적인 국공유화 등 헌법을 부정하는 내용이 없다통합진보당은 극우정당이나공산당을 계승하지도 않았고과거에 폭력혁명을 시도한 적도 없다즉 통합진보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헌법질서에 위반되는 점이 없다민주노동당과 이를 통합진보당은 냉전체제와 재벌경제로 인해 기형화된 정치와 경제를 바로 잡아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하고자 하였으나 냉전에 반대한 것은 종북으로재벌에 반대한 것은 사회주의로 낙인이 찍혀 해산 당하였다.

2) 독일공산당 사례에서 빌려온 논리들
(1) 최대강령의 객관적 해석의 가능성
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공산당 강령의 의미를 구체화하기 위해 학문적 해석이라는 객관적 방법을 사용하였으나정부와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의 진보적 민주주의 강령을 해석하는데 있어 숨은 목적” 혹은 위장이라는 이유로 강령의 문언적 의미를 배척하는 주관적 방법을 사용하였다.
독일 헌법재판소는 전체 활동에 있어서 마르크스엥겔스레닌스탈린의 이론에 따른다라는 공산당의 강령규정을 근거로 이들 사회주의이론에서 프롤레타리아 폭력혁명프롤레타리아독재공산당일당독재삼권분립의 폐지중앙집중민주주의 등의 개념을 도출하여 공산당이 이를 장기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추론한 후 다양한 합법비합법의 활동과 주장을 이러한 장기목적을 달성하는 단기적 수단으로 인정하였다. 독일공산당의 경우 강령이 마르크스레닌스탈린주의의 신봉과 실천을 선언하고 있어 헌법재판소가 독일공산당에 대한 역사적 해석”, 공산주의에 대한 학문적 해석을 통해 독일공산당이 이들 이데올로기의 일당독재폭력혁명권력분립 부정 등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해석하였다(법무부. 2013b: 216, 224, 226, 243).
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프롤레타리아독재는 착취자 계급에 속했던 국민들의 주권과 집회시위결사 및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다고 판단하였다(법무부. 2013b: 240). 이러한 제한은 공산당이 계급의 적을 제어하려는 행정 및 형사적 조치에 의할 수 있다정부가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의 민중주권을 위헌이라고 규정할 때 이와 유사한 논리를 내세웠다.
프롤레타리아독재는 노동계급이 우위에 서는 노동계급과 농민계급의 동맹에 기초하는데이는 노동계급을 지도하는 공산당으로다시 공산당의 중앙집권적 구조 때문에 정당의 수뇌부로 좁혀지는바이러한 공산당은 자유민주주의가 의미하는 정당이 아니다(법무부. 2013b: 251). 독일 기본법과 마찬가지로 헌법 8조 2항에 따르면 정당의 조직이 민주적이어야 한다독일연방헌법재판소에 따르면 정당의 조직이 민주집중제나 영도체계 등을 도입하여 비민주적이라면 그 정당이 정권장악 후 국가조직 역시 비민주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고 추론할 수 있다독일사회주의제국당 사건에서 히틀러식 1인 영도체계가 위헌으로 인정되었다. 특히 프롤레타리아독재에 있어 공산당이 구성하는 정부는 해임될 수 없기 때문에 평화적 정권교체가 불가능하고 따라서 이러한 정부는 복수정당제를 부정하는 공산당 일당독재이다(법무부. 2013b: 253).
우리 헌법재판소 역시 진보적 민주주의를 최고의 위헌목적으로 판단한 후 이로부터 구체적인 위헌적 목적을 도출하여 통합진보당의 다양한 합법비합법의 활동과 주장을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으로 보았다하지만 진보적 민주주의가 사회주의 혹은 인민민주주의와 상관이 없는 보통명사로서 다양한 세력에 의해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일의적으로 규정할 수 없다는 점에서 통합진보당의 진보적 민주주의에서 어떠한 문언적 해석역사적 해석학문적 해석을 통해서도 사회주의나 대남혁명론이 도출될 수 없었다즉 독일공산당의 경우와 달리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문언에서 사회주의 내지 대남혁명론이라는 해석이 도출될 수 없었다.
독일공산당의 경우 각종 대의기구의 결정을 통해 마르크스엥겔스레닌스탈린주의를 이론적으로 또한 실천적으로 추종한다고 밝혔으나 통합진보당의 경우 진보적 민주주의를 사회주의와 연결시키는 대의기구의 결정이 없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헌법재판소는 자문위원회의 보고서개인의 연구보고서당원의 언동 등을 인용하면서 진보적 민주주의 강령의 문언은 강령의 숨은 목적인 대남혁명론의 위장에 불과하다면서 강령 문언의 내용을 통합진보당의 목적으로 해석하는 중요 기준으로 삼지 않았다.

(2) 정당 목적의 해석 기준
정당의 목적을 해석하는 데에 있어 강령이나 당헌의 내용은 다른 기관의 문건이나 개인의 발언에 우선하여 해석해야 한다그런데 정부에 따르면 진보적 민주주의는 강령과 강령개정안 해설만으로는 해석하기에는 그 의미가 명확하지 않으므로 기타 문건과 당직자들의 발언을 종합하여 판단해야 한다(법무부, 2014a: 196). 헌법재판소 역시 진보적 민주주의가 모호한 개념이라서 해석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문제는 아래와 같이 해석을 위해 참조할 수 있는 문건이나 발언행동의 범위이다.
첫째독일기본법 제21조는 정당 해산사유로서 정당의 목적 혹은 추종자(Anhänger)의 활동이라고 규정하고 있으나 우리헌법 제84항은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경우 당원의 활동을 정당의 활동으로 인정하거나당원의 활동으로 정당의 목적을 해석할 때 독일보다 엄격해야 함에도 헌법재판소는 독일연방헌법재판소보다 넓게 해석하였다.
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정당의 목적을 해석하는 기준은 강령당헌전당대회 결정 등 당의 공식적인 입장이며개인은 당대표 등 최고지도부해산청구심판의 소송대리인으로 제한된다고 보았다따라서 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정당의 목적을 해석하는 기준으로서 주로 당 최고위원회 회의당 대표당 지도부의 언동을 인용하였다.
반면 우리 헌법재판소에 따르면 정당의 지도부가 아니라도 정당의 의사결정과정에서 일정한 영향력을 가지거나 정당의 이념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당원의 행위도 정당의 목적을 파악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다정부와 헌법재판소는 이런 입장에서 주로 자문기구의 보고서연구원 개인의 보고서토론회 발표문개인 인터뷰사적 발언 등을 통합진보당의 목적으로 해석하는 기준으로 삼았으나, 이러한 것의 증거능력과 증명력은 독일 사례에 비추어도 다툼의 여지가 많다.
독일기본법의 경우 정당의 목적과 추종자의 활동이 같은 가책성이므로 직접 상호 보완하여 해석될 수 있다독일기본법상 당원의 활동을 정당 목적의 기준으로 삼는다고 해도 가벌성이 확대되지 않지만당원의 활동이 정당해산의 기준이 아닌 우리 헌법에서는 가벌성이 확대되기 때문이다(법무부, 2014a: 51). 이와 관련하여 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독일기본법 제21조가 추종자의 활동도 구성요소로 하여 정당에게 책임을 귀속시키고 있다면서 추종자의 활동을 정당목적의 해석으로 기준으로 삼는다고 해도 가벌성이 확대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설명하고 있다(법무부, 2013d: 19). 하지만 우리헌법의 경우 정당의 목적과 정당의 활동이 같은 가책성이므로 당원이나 추종자의 활동이 정당의 목적을 직접적으로 보완 해석할 수 없다따라서 당원의 활동을 정당의 위헌성 기준으로 평가한 독일사회주의제국당 결정은 이 사건에 직접 적용될 수 없다.
둘째독일연방헌법재판소에 따르면 당의 지도부가 아닌 당원이나 기구의 활동이 정당의 활동이 되려면 정당이 그러한 활동을 할 권한을 부여하거나 그 활동을 독려하였거나 사후에 그 활동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거나 추인한 사정이 있어야 하는데정부와 헌법재판소는 민주노동당이나 통합진보당이 개인의 활동을 적극적 옹호 혹은 추인 없이 단순히 방치’ 혹은 묵인한 경우까지도 정당의 활동으로 귀속시켰다.
정부 역시 정당은 스스로 허가하지 않은 당원 개인의 행동에 대하여 정당 전체로서의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서(법무부, 2013e: 4) “당원의 행위가 정당의 계획이나 목표의 결과였거나 정당의 후원을 받아서 한 것이 아니면 그 책임은 전적으로 당원에게만 부여한다고 밝히고 있다(법무부, 2013e: 9).
그런데 정부는 교육기관교육 강사의 반복된 주장의 경우당 지도부가 이를 인식하고도 교정하지 않은 경우 사후적으로 동의한 것이라고 추인을 넓게 인정하였다(법무부. 2013b: 367-368). 즉 당원의 위헌적인 활동을 당이 묵인하였다면 그 활동을 목적의 위헌성을 판단하는 자료로 쓸 수 있다는 것이다이를테면 터키 복지당 해산 사건의 경우 문제발언을 한 당원을 당이 징계하지 않고그 발언 내용을 찬양하거나 유포한 경우 당의 의견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하지만 정부와 헌법재판소는 김장민0기타 교육위원 등의 주장을 통합진보당의 활동 혹은 목적의 해석기준으로 채택하면서 당의 추인이나 유포 여부주장의 반복성 여부 등에 대해 별도의 검토를 하지 않았다.

(3) 최소강령 혹은 이행기 강령으로서 당의 정책
독일공산당의 경우 해산 심판 과정에서 최대강령과 장기적 목표그리고 현재의 목표가 모두 연결되어 있음이 문언 등을 통해 입증되었다다만 독일공산당은 이러한 당면한 요구와 장기적인 사회주의 목적 사이의 관계를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는바그 이유는 독일연방헌법재판소에 따르면 내용면에서 맑스레닌주의와 일치하면 되고이를 명시하면 오히려 대중적으로 역효과가 나기 때문이다(법무부. 2013b: 314, 316).

i) 자유민주주의를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실현 수단으로 악용
독일연방헌법재판소에 따르면 독일공산당이 헌법 내 민주주의적 요구를 주장하는 것은 그것이 프롤레타리아독재를 실현하는데유용하기 때문이다레닌은 시민계급의 민주주의혁명이 사회주의적 혁명으로 이어진다고 봤는데 독일공산당 역시 민주주의를 그 자체 목적으로 본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폐지하려는 사회주의 혁명을 실현하려는 잠정적인 수단으로 활용하고자 하였다독일연방헌법재판소가 보기에 독일공산당의 입장은 의회 밖의 활동과 의회 내의 절차들이 지속적인 상호관계에 놓인다는 것이며의회 밖의 활동에 대해 높은 가치를 부여하면서 이를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를 폐지하려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법무부, 2013b: 271). 따라서 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독일공산당이 프롤레타리아독재의 실현을 장기적인 목적으로 한다면통일 전에 이의 실현을 유보하고 있다고 해도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를 침해한 것이라고 판단하였다(법무부, 2013b: 255, 333, 337).
독일연방헌법재판소에 따르면 독일공산당은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를 비교적 가치가 없는임시적으로 허용하면서 의회주의 등 다른 합법수단과 마찬가지로 이용할 수 있는 하지만 원칙적으로 당위성이 결여되는 체제로 보았다(법무부, 2013b: 258, 270).
독일연방헌법재판소에 따르면 독일공산당은 서독에서 자유롭고 민주적인 선거가 불가능하고민주주의 선거는 사이비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법무부, 2013b: 327). 따라서 독일공산당은 강령에서 혁명 또는 폭력적 투쟁수단에 의한 아네나워 체제의 전복을 주장하였다다만 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공산당의 정권장악 방법은 맑스레닌주의에 따라 폭력행사가 기본이고 평화적인 방법에 의하더라도 궁극적으로 프롤레타리아독재국가를 지향하기 때문에 기존의 국가기구를 파괴하는 방식에 의한다고 판단하였다(법무부, 2013b: 234).
독일연방헌법재판소에 따르면 공산당이 아데나워 정부의 전복을 위해 헌법 내 합법적인 수단을 활용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항권을 언급하는 것은 국가기관의 위헌적 행위에 반대하는 것이 위헌이지 않다는 것을 변명하기 위함이다(법무부, 2013b: 357). 또한 공산당은 헌법기관 자체에 대한 반대의 수단으로서 개별정책에 대한 반대고위직에 대한 반대를 하고 있다(법무부, 2013b: 376).

ii) 통일과 미군철수를 자유민주주의 폐기의 수단으로 남용
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독일공산당이 자신의 민족재통일강령에 비추어 독일 기본법 전문(前文)에 규정된 독일재통일의 요청을 남용하고 있다고 보았다독일연방헌법재판소에 따르면 서독이 건국된 이유는 자유민주주의를 설립하기 위함이었는데무조건적인 통일은 소련 점령지구의 통치체제에 굴복하는 것이 될 수 있는바기본법은 자유를 포기하면서까지 통일을 진행하라는 의미가 아니다(법무부, 2013b: 331).
독일공산당은 국가통일강령을 통해 모든 독일인이 참여하는 민족전선(Volksfront)’의 결성을 주장하였는데민족전선의 요구는 독일의 통일평화협정모든 점령군의 철수 등이었다(법무부, 2013b: 279). 실제로 독일공산당은 당헌에 의하여 동독이 주도하는 민족전선(Volksfront)’에 가입하였는데 민족전선은 동독의 독일사회주의통일당(SED)의 지휘 하에 있었다.
독일공산당은 당의 공식 문건을 통해 서독을 제국주의 점령국가들의 보호국식민지로 보았으며아데나워 정권이 제국주의국가에 종속되어 독점 및 금융자본과 대지주와 군사주의자들을 대변하고 있다고 보았다(법무부, 2013b: 308). 독일공산당은 서독 정부를 전복시키는 투쟁에서 이른바 독일민주공화국(동독), 인민민주주의소련에 의한 지지까지도 기대하고 있었다.
독일공산당은 독일통일의 전제로서 아데나워 정부의 전복을 선동하였고(법무부, 2013b: 287), 소련과 동독을 통일국가의 표본으로 삼아 동독 식 통일을 추진하는 국가통일을 위한 정부를 주장하였다(법무부, 2013b: 262-263). 독일공산당은 통일이 된 이후에도 당분간은 의회주의적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존속할 것이며이 문제는 자유선거를 통해 선출된 전 독일을 위한 국회의원들이 결정할 사항이라고 보고 있다(법무부, 2013b: 335). 독일공산당은 자신의 집권 혹은 통일국가의 정부에 있어 연립정부의 가능성을 열어두었는바 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이를 공산당이 연립정부를 자신의 혁명적 목표를 달성하는 발판으로 삼으려는 의도라고 보았다(법무부, 2013b: 268, 346, 348). 독일공산당은 통일 이후의 공산당의 국가건설의 내용에 대해서는 현행 헌법으로 그 위헌성을 판단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지만 헌법재판소는 통일 전후의 목적은 전체로서 하나의 계획이므로 통일 전의 기본법으로 위헌성을 판단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법무부, 2013b: 342).

(4) 같은 정책이라도 공산당은 불순한 동기에 의해 주장하는 것
통합진보당은 민중주권연방제주한미군 철수사유재산의 제한 등을 역사상 다른 정당들도 정강으로 삼은 적이 있다고 주장하였으나 정부는 같은 내용을 정강으로 삼았더라도 통합진보당이 정강을 채택한 동기가 위헌적이기 때문에 다른 정당과 달리 문제가 된다고 보았다이러한 논리는 독일에서 미군철수 등을 주장한 다른 정당들의 유사한 사례는 변명에 불과하다는 독일연방헌법재판소의 논리를 그대로 차용한 것이다(법무부, 2013c:4). 연방헌법재판소에 따르면 독일공산당은 자신들의 독점자본의 사회화 주장이 헤센주 헌법과 북 베스트팔렌주의 사회화법 등에 근거하고 있으며다른 당들도 비슷한 주장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였으나 같은 주장이라도 독일공산당은 사회주의혁명을 실현을 위해 주장하는 것이므로 다른 당의 경우와 다르다(법무부, 2013b: 335).

(5) 위헌의 목적을 창당부터 심판 결정 때까지 유지함.
독일연방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르면 공산당과 사회주의제국당은 그 전신부터 위헌정당이었으며또한 창당 때부터 시종일관 위헌정당이었다독일연방행정법원에 따르면 해산된 KDP의 후신인 DKP는 강령에서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의 이론을 수용하는 등 사회주의를 명시적으로 선언하고동독을 모범국가로 제시하면서 여전히 일부 국민의 기본권제한을 명시하고 권력분립을 부정하여 전반적으로 과거 KDP의 유산을 승계받았다는 점에서 사회변혁노동자계급의 지배라는 순화된 표현을 사용하더라도 정당의 목적은 헌법에 반한다(법무부, 2013b: 407, 409-411).
반면 통합진보당 사건의 경우 정부의 논리는 통합진보당의 위헌 시기에 대해 시기별쟁점별로 구분되지 않았다최소한 민주노동당 초창기나 통합진보당 초창기의 경우 위헌정당으로 몰고 가기 어렵다는 점에서 통합진보당이 언제부터 위헌정당이었고그 위헌성이 심판 결정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 입증되어야 하였다.
또한 독일공산당은 해산 심판 결정 당시에도 위헌적인 목적을 포기할 의사가 없었다. 독일연방헌법재판소에 따르면 독일공산당은 해산심판 당시에도 불특정 다수에게 국가저항을 권유하였고 특히 독일공산당 간부는 재판에 나와 사회주의폭력혁명론을 포기할지 않을 것을 밝혔다.
하지만 통합진보당은 해산 심판 결정 당시 헌법 준수를 약속하였다따라서 이러한 통합진보당의 약속이 허위라는 것을 입증하지 않는 한 통합진보당이 미래에 위헌적인 목적을 유지할 것이라는 점이 인정될 수 없었다.

<3> 독일공산당 해산과 통합진보 해산 논리의 비교
독일공산당
통합진보당
최대강령
맑스엥겔스레닌과 스탈린의 이론을 따른다” => 학문적 해석의 결과 독일공산당의 숨은 목적은 폭력혁명일당독재선거부정기본권제한권력분립 부정민주집중제 등임
진보적 민주주의는 학문적 해석이 불가능즉 사회주의 최대강령과 진보적 민주주의 최소강령의 구조가 아님정부가 주장하는 김일성의 진보적 민주주의는 1990년 이후 북한이 가공한 것임.
현재 목표(최소강령)
미군 철수평화협정 체결식민지 정권인 아데나워 정부의 전복통일 이후에도 과도기로서 의회주의 인정함.
대중투쟁(전민항쟁), 종속(식민지), 자주적 민주정부민중주권생산수단 사회화연방제주한미군철수평화협정
합법비합법
3차례 무장봉기함서독에서 민주선거가 불가능하다고 봄의회활동보다 원외활동을 중시함저항권은 통상적인 위헌행위에 대한 항변에 불과함.
정당명부제 확대 등 선거에 의한 집권원내외 통합전략으로서 거대한 소수 전략저항권 계승(예외적 집권상황)
통일
공산당은 동독의 집권당이 주도하는 민족전선에 가입하고 그 결정을 수뇌부 회의가 수용함. “국가 통일을 위한 정부가 동독식 사회주의국가를 지향,
1국가2체제2정부의 연방제로 남 체제는 통일 이후에도 자본주의가 유지됨북한 주도의 조국전선에 가입하지 않음북한과 조직적 연계 없음.
당원의 언동
정당의 목적이나 추종자의 활동” 판결문에 당 의장이 38차례최고위원회가 50차례 언급됨.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 청구서에 최고위원회 언동은 거의 없고 주로 연구위원 등 당원들을 언급함.
시간적 범위
1918년 창당한 공산당의 목적과 활동을 언급하지 않고 1945년부터 1951년까지만 언급함.
진보적 민주주의와 무관한 민주노동당까지 언급함민주노동당과 무관한 공안사건을 언급함

(6) 소결
통합진보당 해산이 독일공산당 해산과 유사한 점을 보면 첫째통합진보당이 진보대통합을 성사시킨 후 민주당과 전국적인 후보단일화를 추진하여 야당으로의 정권교체가 가시화되는 등 현 정권에 위협이 되었다.
둘째통합진보당은 독일공산당과 마찬가지로 통일미군철수평화협정 등을 주장하여 미국과 정부의 냉전정책에 반대하였다.
셋째, 통합진보당은 독일공산당과 달리 공개적으로 폭력에 의한 정부 전복을 주장하지 않지만 이0기 내란선동사건에서 보듯이 일부 당직자들이 폭력행사를 언급하였고두 정당 모두 폭력을 실행에 옮기지 않았지만 정부 입장에선 이런 폭력선동을 기정사실화하여 정당을 해산할 명분을 찾았다.
넷째두 정부 모두 정당을 해산할 목적으로 정보기관을 동원하여 프락치를 운영하면서 주요증거를 수집하는 등 정당해산이 정부의 기획과 공작에 의해 추진되었다.
다섯째두 사건 모두에서 헌법재판소의 해산결정에 의해 국회의원직을 박탈당하고행정절차에 의해 지방의원직도 박탈당하였다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의 지역구 의원과 비례대표 의원의 의원직을 박탈하였으며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헌법재판소가 명시하지도 않은 비례대표 지방의원들에 대해 퇴직한다고 결정하였다. 명문의 근거가 없고 독일과 달리 정당을 보호하고자 하는 우리 헌법의 취지에 비추어 지나치게 참정권과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이다(이재희. 2016).
통합진보당이 독일공산당과 다른 중요한 차이는 가통합진보당엔 사회주의 최대강령이 없다는 점기본권 보장자유선거복수정당제다수결에 의한 다수의 지배권력분립사법부 독립 등을 선언하고 있듯이 통합진보당의 강령과 정책이 헌법상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본질서를 수용하고 있다는 점통합진보당의 연방제 통일방안이 6.15공동선언 등 남북의 상호체제병존에 부합하다는 점독일공산당은 동독식 통일을 추진하는 국가통일을 위한 정부를 주장하였는데이를 통합진보당이 주장하는 자주적 민주정부와 같은 의미로 볼 수 없다는 점(법무부, 2014a: 43), 통합진보당은 내부 민주주의를 보장하는 대의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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