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론

2004년 총선 당시 민주노동당이 10명의 국회의원을 당선시키면서 화려하게 원내에 진출하였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은 4년 만에 2008년 총선을 앞두고 분당하였고, 분당한지 4년 만에 2012년 총선에서 다시 통합진보당으로 통합되었다. 통합진보당은 야권연대에 힘입어 13명의 국회의원을 당선시켰다. 하지만 2012년 총선 직후 통합진보당은 다시 분당되었고 2014년 헌법재판소에 의해 해산되었다.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은 배타적 지지라는 매우 밀접한 공식적인 관계에서 시작하였지만 민주노동당이 창당 10년 만에 여전히 자신을 지지했던 민주노총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다.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의 창당을 주도하였지만 2008년 분당을 막지 못하였고, 그 후 재통합을 시도하였다. 하지만 민주노총은 통합진보당 창당 과정에서 국민참여당과의 통합 문제로 민주노동당과 심각한 대립을 하였고, 이 시기에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관계는 실질적으로 파탄되었다. 민주노총 전현직 지도부는 20119월 민주노동당 임시당대회에서 진보신당과의 통합이전에 신자유주의 도입세력인 국민참여당과 통합을 먼저 추진하는 것을 중단할 것으로 호소하였다. 이날 당대회에서 전직 민주노총 위원장이자, 민주노동당 창당 대표이자, 민주노동당 대선후보를 3번이나 지낸 권영길 의원과 김영훈 민주노총위원장이 민주노동당 지도부에 맞서 국민참여당과의 선통합안건의 반대발언자로 나섰을 때 통합을 찬성하는 정파 소속의 민주노동당 대의원과 민주노총 현직 간부, 민주노총 대의원들이 야유로 응대하였다. 이 장면은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내분의 극점으로서 한국의 좌파정당 운동과 민주노조 운동 그리고 이 양자의 관계에서 수치스런 기록이었다.
민주노동당은 국민참여당과 통합하여 통합진보당을 창당하면서 민주노총에 대한 할당제도를 폐지하여 자기가 먼저 민주노총과의 관계를 정리하였다. 민주노총은 이제 통합진보당의 지도부, 각종 대의기구에서 공식적 지분을 상실하고 당에 대한 자신의 위상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를 통합진보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로 어정쩡하게 연장하였다.
이미 무력해진 민주노총은 2012년 총선 전후 통합진보당의 분열과 분당에 의해 또 다시 상처를 받았지만 이 과정에서 이렇다 할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였다.
민주노총은 통합진보당의 끝없는 몰락에 직면하여 결국 배타적 지지를 철회함으로써 통합진보당과의 공식적 관계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민주노총은 그 후 검찰과 헌법재판소에 의한 통합진보당 해체 과정을 지켜보는 신세로 전락하였다.
이와 같이 민주노총이 자신이 만든 민주노동당에게 유린당한 쓰라린 역사적 경험은 향후 한국에서 좌파정당과 최상급노조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이냐의 문제를 제기할 수밖에 없다. 특히 이 논문이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과거의 관계를 다루고자 하는 미래지향적인 문제의식은 사회변혁이라는 사회주의적 관점에서 향후 한국의 좌파정당과 최상급노조는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대하여 응답을 하려면 먼저 주요 국가에서 좌파정당과 최상급노조는 어떤 관계를 맺어왔고 현재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고찰하는 것이 합리적인 수순이다. 한국이나 서유럽 모두 노동계급의 정치세력화를 도모하려는 노동조합은 노동계급의 이해관계를 대변해주는 좌파정당을 필요로 했고, 최상급노조는 이러한 좌파정당과의 관계를 전략적으로 발전시키고자 하였다.
이러한 입장에선 민주노동당의 소멸이 뼈아프고, 향후 노동계급을 대변해주는 좌파정당의 복원이 절실하다. 그런데 향후 좌파정당은 민주노총과의 관계를 파탄시킨 민주노동당의 전철을 밟지 않아야 하며, 그러려면 먼저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관계에서 제대로 된 역사적 시사점을 얻어야 한다.
그래서 이 논문은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관계 파탄에 주목하고자 한다. 물론 양자의 관계 파탄을 다루려면 그에 필요한 범위 내에서 민주노동당의 탄생과 성장 및 변화, 그리고 소멸에 대해 언급할 수밖에 없다. 10여년 남짓한 민주노동당의 역사를 다루는 핵심적인 부분은 화려하게 등장한 민주노동당이 왜 10여년 만에 소멸되었는가이며, 그 배경을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이 논문은 민주노동당의 조기 소멸 즉 조로화를 서유럽 좌파정당의 성격 변화와 비교하여 서술할 것이다.
어느 나라에서나 좌파정당과 최상급노조가 자본주의의 모순과 폐해에 맞서 사회변혁 혹은 사회변화를 추구하는 제도권 내의 중요한 주체였고, 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양자의 관계는 출범 목적의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항상 협력과 긴장 사이에 놓여 있었다. 사실 본 논문이 연구대상으로 삼는 발전한 자본주의 국민국가에서 오늘날 좌파정당과 최상급노조의 관계가 과거와 달리 점차 이완되고 있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이 논문이 좌파정당과 최상급노조의 미래지향적인 관계 설정이라는 문제의식 아래 서술하려는 큰 주제는 후기자본주의에 진입한 민주화된 국민국가에서 좌파정당과 최상급노조의 관계는 왜 이완되었는가?”이며, 나아가 이러한 결과가 서유럽에서는 좌파정당이 창당된 이후 1세기에 걸쳐 진행되어온 반면 한국에서는 왜 민주노동당 창당 10여 년 만에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관계가 파탄되었는가?”이다.
이 논문은 이러한 큰 주제 아래 다음과 같은 소주제를 제기한다.
첫째 좌파정당과 최상급노조의 관계가 성립하기 이전의 노동자정당과 노동조합의 관계에 있어 사회주의자들이 제기한 쟁점들은 무엇인가?
둘째 발전한 자본주의 국민국가에서 사회변혁을 위한 좌파정당과 노동조합의 전략적 관계는 왜 이완될 수밖에 없었는가?
셋째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관계는 왜 그토록 빨리 파탄되었으며, 민주노동당에서 가장 큰 지분을 지녔던 민주노총은 왜 민주노동당의 분당과 소멸을 막지 못했는가?
넷째 민주노동당의 조로화와 그로인한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관계 파탄을 서유럽의 경우에 비교할 때 좌파정당과 노조의 관계 측면에서 어떤 시사점을 얻을 수 있는가?
이 논문은 이들 소주제들을 각각 제3, 5, 6, 7장에서 독립적으로 다룬다. 또한 이 논문은 이들 소주제를 규명하기 위해 필요한 이론들, 즉 반체제정당으로서 좌파정당의 제도화, 계급균열에 따른 좌파정당의 정당체계로의 편입, 선거에 참여하는 계급정당으로서 좌파정당의 딜레마, 좌파정당의 민중정당화 및 국민정당화, 좌파정당과 최상급노조의 관계 모델 등을 제4장에서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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