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남아 도는 상품을 수출할 나라가 필요

미국은 독립 당시 영국의 해외 시장 일부에 불과하였다. 남부는 흑인 노예를 기반으로 한 목화 농장이 발전하였는데, 1790년 목화송이에서 씨만 추출할 수 있는 조면기가 개발되자 기계 속도에 부응할 수 있는 노동력이 필요해져 흑인 노예는 더욱 증가하였다. 그 결과 남부의 경제는 면화와 담배를 재배하는 농장을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한편 1812년 영국과의 전쟁으로 영국으로부터 공업 제품의 수입이 줄어들자, 국내 공업을 발전시킬 필요가 높아졌다. 당시 북부는 기후 조건 등으로 인해 애초부터 흑인노동을 기반으로 한 농장이 불가능하였기 때문에 국내 수요에 부응하고자 상대적으로 공업이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미국은 유럽의 기술을 도입하여 운송수단을 발전시키고, 지하자원을 개발하였지만 결정적인 어려움은 넓은 영토에 물자를 생산하고 소비할 인구가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이에 미국 정부는 기아에 시달리던 아일랜드 등 유럽으로부터 이민을 받아들여 서부를 개척하는 한편 도시에 저임금 노동자를 공급하였다.

1830년대에 공산품과 농산품을 운송하는 운하가 주요 운송수단을 자리 잡았고, 1850년대에 철도가 운하를 능가할 정도로 건설되었다. 남북 전쟁 당시 북부의 산업은 영국과 경쟁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하였다. 북부의 자본가들은 영국의 상품이 미국에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 보호관세를 주장하였다. 또한 이들은 늘어나는 공장을 가동할 새로운 노동력이 필요하였는데, 노예제는 노동력의 자유로운 이동을 가로막고 있었다. 반면 남부의 농장주들은 자신들의 면화와 담배를 영국에 수출해야 하고 농장주들을 위한 소비재를 수입해야하므로 자유무역을 주장하였다.
북부는 보호관세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강력한 연방정부를 주장하였다. 반면, 남부는 강력한 연방정부가 들어서면 백인 인구가 압도적인 북부가 연방정부를 장악하고 연방정부는 남부에 노예제 폐지를 강제할 것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남부는 각 주의 자율성을 강조하고 작은 연방정부를 주장하였다.
북부는 이미 노예제를 폐지하였고 자유 흑인들이 도시에서 노동자로서 살아가고 있었는데, 남부의 흑인들이 북부로 도주하기도 하였다. 흑인들의 도주와 반란, 백인들의 보복 등이 자행되었고 심지어 일부 백인들은 노예해방을 실현하기 위해 무장반란을 일으켜 남북의 대립은 격심해졌다.
인구나 산업, 병력 등에서 우월한 북부가 전쟁에서 승리하였다. 전쟁 이후 노예의 해방, 해외 이민의 증가로 인해 북부에 매년 100만여 명의 노동력이 유입되고 북부의 산업은 이들의 저임금을 기반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하였다. 1860년 미국 수출의 2/3가 면화였지만, 남북전쟁 이후에는 공산품의 수출이 조금씩 늘어났다.
특히 남북전쟁 이후 1869년 중반 대륙횡단철도가 완성되는 등 철도는 미국 대륙 곳곳에 건설되었다. 따라서 이 시기 철도는 가장 큰 산업이었는데, 1910년까지 동부 뉴욕과 서부 로스앤젤레스까지의 5천 킬로의 80배의 길이에 해당하는 철도들이 부설되었다. 철도의 확대로 인해 자본가들은 전국에 빠르고 쉽게 상품을 팔 수 있었고 그 결과 경쟁이 극심해져 자본의 집중이 진행되었고 대기업이 탄생하였다.
미국은 유럽이 장기불황(Long Depression, 1873- 1896)으로 고전할 때 서부 개척으로 인한 시장의 확대로 인해 불황을 피할 수 있었다. 1890년대까지 펜실베이니아와 오하이오의 제철업, 미시간의 자동차산업, 텍사스와 캘리포니아의 석유산업 등이 발전하면서 미국의 경제규모는 영국을 넘어서게 되었다. 철로와 해운 그리고 냉동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미국의 농산물도 내륙은 물론 다른 대륙까지 수출되었다.
하지만 서부의 개척이 끝나면서 미국 경제는 더 이상 새로운 국내 시장을 찾지 못한 채 불황에 빠져들기 시작하였다. 1890년대 들어 불황이 심화되자 여러 지방에 흩어진 철도회사들이 과잉투자와 과잉경쟁으로 줄줄이 도산하였고 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거대철도회사로 합병하였다. 미국정부는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보호무역 정책을 강화하였으며, 기업들은 합병과 카르텔로 위기에 대응하였다. 그 결과 철도뿐만 아니라 통신, 철강, 운행, 담배, 기계제작 등 전 분야에 걸쳐 합병이 이루어져 미국의 산업은 50여개의 대기업이 지배하게 되었다.
1900년을 전후로 한 대표적인 거대기업은 미국 내 석유 공급과 수요를 독점한 록펠러의 스탠더드 오일, 에디슨 종합전기와 톰슨휴스톤 전기회사가 합병하여 탄생한 제너럴일렉트릭, 철강왕 카네기, 철도왕 스탠포드, 담배왕 듀크, 월스트리트의 왕 JP모건 등이었다. 특히 록펠러와 모건은 거대 금융을 기반으로 대기업들을 합병해났는데, 유에스철강, 제너럴일렉트릭, 뉴욕센트럴철도 등이 대표적인 기업이었다. 이 시기에 금융과 산업을 장악한 소수의 자본가들은 정치자금을 제공하면서 미국 정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연방정부와 주정부는 대기업에게 유리한 정책을 채택하였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저임금과 고강도 노동에 시달렸다. 독점기업의 지나친 폭리와 노동착취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기 시작하였고 그 결과 1890년 최초의 독점금지법인 셔먼법이 제정되었다.
한편 이들 대자본들은 미국의 수요가 자신들의 엄청난 량의 상품을 다 감당하기 힘들어지자 해외시장에 눈을 돌리기 시작하였다. 미국의 정치인들 역시 이들 대자본의 요구를 수용하게 되었고, 그 결과 미국의 대외정책은 유럽 열강의 제국주의 정책을 수용하게 되었다. 미국은 1890년을 전후로 하여 수출이 급증하기 시작하여 이미 1900년 전에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전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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