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치투쟁과 정당의 필요성

사회주의노동자당이 역사상 처음으로 대두될 무렵에 경제투쟁에 의해 정치투쟁이 자연스럽게 유도되는가 아니면 정치투쟁에 의해 경제투쟁이 조직되어야 하는가의 문제가 논의되었다. 이는 인간 혹은 노동자계급이 자신이 처한 사회적 조건 이상으로 정치적 행동에 나설 수 있는가의 문제로서 유물론적 역사관의 해석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마르크스는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서문에서 유물론적 역사관을 다음과 같이 정식화하였다.

인간은 그들 생활의 사회적 생산에서 그들의 물적 생산제력의 일정한 발전수준에 조응하는 일정한, 필연적인, 그들의 의사와는 무관한 제 관계, 생산관계를 맺는다. 이 생산 제 관계 전체가 사회의 경제적 구조, 현실적 토대를 이루며, 이 위에 법적이고 정치적인 상부구조가 세워지고 일정한 사회적 의식 형태들이 그 토대에 조응한다. 물적 생활의 생산양식이 사회적, 정치적, 정신적 생활과정 일체를 조건 지운다. 인간의 의식이 인간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인간의 사회적 존재가 인간의 의식을 규정하는 것이다.
 
사회적 존재가 사회적 의식을 규정한다는 명제를 도식적으로 이해하는 경제결정론에 따르면,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생산관계와 생산력의 모순은 격렬해지고 계급모순이 격화되므로 노동자들의 계급의식이 발전하고, 이에 따라 노동자들이 자연스럽게 정치투쟁에 나서게 된다. 따라서 그 전에는 사회주의정치세력이 굳이 노동자들을 상대로 정치투쟁을 조직할 필요가 없이 경제투쟁만을 조직하면 된다. 즉 경제결정론에 따르면 정치투쟁은 언제나 경제투쟁을 고분고분 따르기 마련이다. 같은 취지로 노동자들이 요구하기 전에는 특정집단이나 지도자에 의해 정당이 의식적으로 조직될 필요가 없다. 이러한 경제결정론은 정당을 의식적으로 조직하는 것에 대해 소극적이었다. 1890년 엥겔스의 자신의 고백에 따르면 젊은 사람들이 때때로 경제적 측면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에게도 부분적인 책임이 있다.
하지만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역사관이 일방적인 경제결정론 혹은 경제환원론으로 규정될 수 없다. 마르크스는 경제투쟁의 결정론적 요소에 치중한 것으로 해석되곤 하였으나 실제로는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의 상호작용을 강조하였다.(존 몰리뉴, 1986) 마르크스는 1871, 볼테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노동자들의 경제투쟁을 정치투쟁과 결부시키고 부분적인 투쟁을 통해 사회변혁이라는 최종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며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이를 테면 8시간 노동을 요구하는 것이 8시간 노동법 요구로 발전하는 것에서 보듯이, 노동자계급의 이익을 강화하는 정치적 운동, 계급의 운동이 어디에서나 노동자들의 고립된 경제적 운동에서부터 사회적 강제력을 지닌 일반적 형태로 성장하기 마련이다.
나아가 마르크스가 정치투쟁의 적극적인 의미를 과소평가한 것은 아니다. 정당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에서 보듯이 마르크스는 경제투쟁을 선도하는 정치투쟁의 역할을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1871년 국제노동자협회 런던회의는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행동이라는 결의서를 통해 정치의 최고행위인 혁명을 갈망하는 자는 혁명을 준비하며, 혁명을 위하여 노동자들을 교양하는 수단과 정치적 활동을 승인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다.
 
현 정부들이 노동자들에게 가하고 있는 정치적 압박은 노동자들이 정치에 몰두하지 않을 수 없게 하고 있다. 정치적 행동이 없이는 노동자들은 전투가 끝난 이튿날에는 언제나 피의 도배에 의하여 우롱당하게 될 것이다. 노동자들에게 정치를 거부하라고 설교하는 것은 부르주아 정치의 품속으로 노동자들을 떠미는 것이나 다름없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적 행동을 제기한 파리코뮌 이후에 정치의 거부는 전혀 불가능하게 되었다. 실시하여야 할 정치는 노동자정치이다.
 
정치투쟁의 주도적 역할에 대한 논의는 정당의 필요성에 대해 또 다른 차원에서 재론되었다. 마르크스가 작성한 1864년 국제노동자협회 총칙에 따르면 노동계급의 해방은 노동자들 자신이 쟁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문구는 노동계급 해방에 관한 고전적인 정식화로 인식되고 있다. 그 이후 이 문구는 엥겔스가 쓴 공산당선언 서문과 마르크스가 쓴 고타강령비판에서 "노동계급의 해방은 노동계급의 행동에 의해야 한다"는 식으로 표현되었다. 공산당선언은 노동계급의 해방은 노동계급 자체의 사업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며 비슷한 취지를 선언하고 있다.
문제는 노동계급 자신의 해방이 선도적인 정치조직으로서 정당을 그 이론적 전제로서 요구하고 있는가이다. 몬티 존스톤(Monty Johnstone)에 따르면 이러한 노동계급 자신에 의한 해방이라는 원리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당 개념에 모순되지 않는다. 할 듀라퍼(Hal Draper) 역시 이러한 몬티 존스톤의 견해에 동의하고 있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노동자계급의 해방은 노동자계급 스스로의 힘으로 쟁취되어야 하기 때문에 정당 발생의 불가피성은 이미 노동자계급 내부에 있다.
마르크스는 노동자를 즉자적 존재로부터 대자적 존재로 변모시키는 도구로서 정당을 상정하고 있다. 프롤레타리아트가 혁명적 보편성을 지녔다는 사실과 그들이 실제로 그것을 인식하고 실천으로 옮긴다는 사실 사이에는 간극이 있다. 마르크스는 이에 대해철학의 빈곤에서 프롤레타리아트가 자신의 역사적 위치를 자각하고 즉자적 존재로부터 대자적 존재로 변모되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 즉자적 존재와 대자적 존재의 간격은 프롤레타리아트가 자본주의사회에서의 자신의 역사적 위치를 자각하고 즉자적 존재로부터 대자적 존재로 변모될 때 비로소 메워질 수 있다.(김일영, 1996)
원래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생산과정에서 사회적 생산력과 사적 생산관계의 모순이 첨예해지고, 이에 따라 생산자로서 노동자의 계급의식이 자발적으로 형성되어야 한다. 하지만 문제는 부르주아의 경우 사회적 존재와 사회적 의식이 일치하나 노동자의 경우 노동계급이라는 사회적 존재가 노동자계급의식이라는 사회적 의식을 당연히 도출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는 노동자계급의식의 형성을 방해하는 부르주아의 힘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부르주아사회는 다양한 동의와 폭력의 체계를 사용하여 프롤레타리아트를 고립 분산시키고 부르주아 체제로 내화시키고 있다.(김일영, 1996)
마르크스는 자발적인 계급투쟁과 계급의식의 성장을 전제하면서도 동시에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반동적 힘을 인식하고 있었다. 마르크스는독일이데올로기에서 정신적 생산수단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의 이념은 정신적 생산수단을 가진 사람들의 이념에 종속되기 마련이다고 적절히 지적하고 있다. 그러므로 자본주의사회에서 물질적 생산수단을 가진 부르주아계급은 동시에 정신적 생산수단에 대한 통제력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는 지배적인 계급인 부르주아의 이데올로기이다.
부르주아사회의 경쟁은 부르주아와 노동자와 같은 개인들을 불러 모으기도 하지만 그들을 상호 분리시키기도 한다. 따라서 프롤레타리아트가 하나의 계급으로 조직화되는 것, 즉 정당으로 조직화되는 것은 노동자들 자신들의 경쟁에 의해 방해받고 있다. 그러므로 노동자의 계급의식은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 아니라 고된 노력을 통해 쟁취되며, 노동자들이 단결할 수 있으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이러한 방해 내지 압력요인을 극복하고 계급적 자각을 가져야만 하나의 계급으로 행동할 수 있다. 정당의 필요성은 노동계급이 스스로 충분히 자각되지 못하고, 자동적으로 단결되지 못한다는 이 같은 사실에 근거한다.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트는 스스로 독자적인 정당을 조직할 수 있을 때에 비로소 하나의 계급으로서 행동할 수 있다라고 말하였다.(김일영, 1996) 마르크스는 1871, 볼테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노동자계급의 정치운동은 노동자계급의 정치권력의 장악을 그 궁극적 목표로 삼는데, 여기에는 경제투쟁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발생하여 어느 정도 수준까지 도달한 조직이 미리 존재해야 합니다고 밝혔다.
또한 1871921일 국제노동자협회 런던회의는 마르크스의 주도에 의하여 국제노동자계급의 핵심적 원리로서 노동자정치의 적극적 전개와 독자적인 프롤레타리아트 당 건설을 강조하는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행동이라는 결의서를 채택하였다. 이 회의에서 프롤레타리아트는 스스로 독자적인 정당을 조직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하나의 계급으로서 행동할 수 있고 프롤레타리아트정당의 건설은 사회혁명의 승리와 그것의 최종적 목표인 계급의 폐지를 달성하기 위해 필수불가결하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정당의 필요성은 엥겔스에 의해 더욱 직접적으로 표현되었다. 엥겔스에 따르면 노동계급은 유산계급의 정당과 구별되고 반대되는 정당을 건설하지 않고서는 계급으로서 행동할 수 없다. 노동자들을 귀족적 정당이나 군주주의적 정당이나 혹은 부르주아적 정당이나 심지어 공화주의적 정당 등 낡은 정당의 지배로부터 해방하는 가장 좋은 수단은 다른 당들의 정책과 명확히 구별되는 독자적인 정책을 실시하는 즉 노동계급의 해방의 조건을 표현하는 프롤레타리아트 당을 창건하는 것이다.


특히 엥겔스는 프롤레타리아 자신의 조직에 의한 프롤레타리아정당은 노동계급의 투쟁과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전제조건이다고 명백히 밝히고 있다.(몬티 존스톤, 1967) 그러므로 노동자당은 이러저러한 부르주아 당의 뒤꽁무니를 따를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목적과 자기 자신의 정책을 가진 독립적인 당으로 조직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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