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경선 무산에 대한 평가 : 주체 없는 연대 없다.

대선이 진행 중이나 각 세력의 대선 대응 방향과 관련 있는 범위 내에서 간략한 평가를 해본다.

 

1. 민주노조의 쇠퇴와 진보/좌파의 위기

1) 민주노조 세대는 퇴장하고 신 세대는 노동해방과 사회민주화에 관심이 적다.

민주노조 내의 87년 세대는 경제성장의 혜택과 투쟁의 성과로 인해 귀족노조라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근로조건이 개선되었으나 고령화로 인해 급속도로 현장에서 퇴장하고 있다. 87년 세대의 공백을 비정규, 청년, 여성 노동자들이 채우고 있지만 이들은 자신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실현하기 위한 자기중심적 투쟁을 산발적으로 겪었을 뿐이다.

노동해방과 사회민주화라는 민주노조운동의 전통을 계승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민주노총이 지지하는 사회주의/진보 정당들이 힘 있는 활동이나 득표가 곤란한 조건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부담 없이 중도보수 심지어 수구보수 정당을 선택하고 있다.

2) 노동정치는 노동자의 정치적 선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정당 내에서 사회주의를 전면에 내걸었거나 내건 좌파 정치세력들은 변혁당, 노동당, 기본소득당, 노동자연대, 해방연대 등으로 나눠져 있다. 사회주의는 맑스가 선언했듯이 노동자의 단결을 통해 노동자권력을 쟁취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주의는 분열을 이론적으로 정당화하지 않는다. 과거 민주노동당에 속했던 진보세력들은 노동당, 민중민주당, 진보당, 정의당으로 분화돼 있다.

노동자들은 사회주의와 사민주의, 진보/좌파를 엄격하게 구분하지 않고 다 같이 노동정치로 보고 있다. 각 세력들이 자신들이 정통이라고 주장하면서 노선이 다르기 때문에 분열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각 세력의 자기중심적 평가이고 노동자 대중의 평가는 분열이다.

3) 민중경선은 민주노조와 노동정치를 강화하려는 취지였다.

현장의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조합원 단결을 통해 자본가와 싸워야 한다는 것을 체득하고 있다. 따라서 조합원들과 조합 활동가들은 노동정치가 단결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현재 전체 노동정치는 주도권 다툼, 과거의 악연으로 인해 통합하기 어려운 조건이다. 민중경선은 이런 현실을 반영하여 전체 노동정치가 최소한 대선에서 하나의 요구, 하나의 투쟁, 하나의 노동자후보를 선출하여 연대연합을 강화하자는 취지였다.

4) 노동정치로부터 멀어지면서 민주노총의 지지만을 원하는 세력에 의해 민중경선은 무산됐다.

민중경선은 실질적으로 민주노총의 공식적인 지지후보를 정하는 절차이다. 선거법, 선거인단 명부 관리의 어려움을 고려할 때 농민과 빈민 등 민중진영의 선거인단 참여는 어렵다. 이런 조건에서 최근 한국사회의 계급구성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왜소화되고 비조직화된 민중진영은 민주노총이 지지한 후보에 대해 대승적으로 지지결의를 밟으면 된다.

그런데 이번 민중경선은 민주노총 조합원이 아니라 국민 일반의 여론조사를 압도적으로 반영해야 한다는 정의당 주장으로 인해 무산됐다. 지지율 3% 전후로 전혀 당선가능성이 없는 심상정 후보 측에서 민주노총 지지후보를 정하는데 민주노총 조합원을 중심으로 세우자는 것을 거부한 것은 정의당과 심상정 후보의 노동정치에 대한 본심을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2. 민중경선 추진의 성과

민주노총 지도부가 특정 정파의 지도부가 아니라 민주노총 전체의 지도부라는 점을 인정받았다. 설사 민중경선 추진이 진보당의 입장이라서 민주노총 지도부가 추진했다고 해도 그런 입장은 전체 민주노총과 노동정치를 위한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정의당은 자신들이 노동정치를 지향하며 민주노총의 단결에 참여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하여 모처럼 민주노총과 노동정치의 중심에 섰다.

진보당은 민중경선에서 정의당에게 패배할지라도 민주노총 단결과 진보정치의 연대에 나서겠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고, 이는 조직 확대 중심의 경직적인 당 발전 전략을 수정한 긍정적인 변화이다. 노동당과 변혁당은 만년 소수정파로서 피해의식에서 벗어나 유연한 태도를 보여주었다.

한상균 전 위원장을 비롯한 민중경선 추진 서명운동본부는 사실상 민주노총과 5개 정당을 협상테이블까지 견인하였다. 무엇보다 비록 후보단일화에 실패했지만 처음으로 실질적인 협상 단계까지 감으로써 이후 노동정치의 연대연합이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3. 민중경선 무산의 한계

1) 민주노총은 노동정치의 압도적인 자원이지만 스스로 노동정치를 조율할 수 있는 힘을 소진하였다

그 이유는 주체적으로 민주노총 지도부부터 현장 간부에 이르기까지 민주노총의 단결을 최우선 순위에 두지 않기 때문이다. 객관적으로 경제발전으로 인해 과거 조합원들이 개량화되고 신규 조합원들은 경제투쟁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진보정치의 분열과 현장의 실망, 민주노총의 영향력 쇠퇴는 상호 영향을 미친다.

2) 정의당은 노동정치에 대한 소속감이 다른 세력들의 우연한 결집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자신의 발전을 노동정치를 강화하는 쪽이 아니라 양당 독점체제에 반대하는 몰계급적인 제3세력을 규합하는 쪽으로 정한 것으로 보인다. 진보당은 좀 더 일찍 민중경선에 대해 전향적인 태도를 정하고 민주노총 지도부를 전략적으로 추동했어야 했다. 노동당과 변혁당은 겉으로는 민중경선에 대해 유연한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2012년 대선에서 심상정과 이정희 후보가 사퇴한 조건에서도 다 합쳐 0.2%의 지지를 얻은 사회주의 득표력에도 불구하고 노동정치 안에서 자기발전하려는 전략이 부재하다. 경선에서 패배가능성과 함께 이러한 전략 부재로 인해 민주노총조합원 총투표에 반대하지 않았지만 모호한 태도를 취하였다.

3) 한상균 전 위원장의 경우 민주노총의 단결과 노동정치의 연대를 도모하기 위해 헌신적으로 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자기 전략이 부재하였다

현재 기존 정당들은 민주노총 조합원의 지지를 얻고 싶지만 후보단일화 같은 노동정치의 연대에 소극적이다. 그렇다면 한상균 전 위원장이 단순한 호소가 아니라 자신의 실력으로 연대연합전략을 관철 할 수 있는 전략과 조직을 고민했어야 했다.

진보당과 정의당에 버금가는 강력한 제3당 즉 노동자당을 형성하면서 민중경선과 상관없이 완주하겠다는 대담한 태도를 지녔다면 노동자 표를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에게 빼앗길 수밖에 없는 정의당의 태도가 달라졌을 것이다. 강력한 제3당을 형성하면 비록 이번에 후보단일화에 실패하더라도 정의당과 진보당을 연대연합으로 추동하게 할 동력을 마련할 수 있었다.

물론 제3정당이 가능한 동력을 검토하면, 범좌파정당 밖에 없다. 이미 현장이 분화되고 조직화된 조건에서 민주노총당은 실체없는 허상이다. 노동당과 변혁당의 통합에 개입하여 범좌파를 결집시키고 노동자당으로 확대했어야 했다. 본인의 소신과 상관없이 객관적으로 범좌파로서 인정받고 있고,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 과정이나, 이번 민중경선 추진 과정에서도 범좌파에 조직적 기반을 두고 있었다.

한국사회의 현실, 노동정치의 현실, 민주노총의 과제에서 강력한 범좌파정당은 필수적이다. 이 범좌파정당이 전체 노동정치를 견인해야 한다. 현재의 분산된 좌파들은 혁명은커녕, 노동현장과 제도정치에서 개량주의자들을 견제하지도 못한다. 좌파를 제대로 세우고 이들을 노동정치의 중심에 세우는 것은 좌파 자신의 발전전략이자, 혁명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우리사회를 좀 더 건강하게 만들고 노동자의 권리를 더 강하게 보호하는 길이다.

4. 이후 대선 과제

1) 민주노총은 후보단일화에 실패하였으나 공동요구안, 공동투쟁의 노동정치 연대사업을 지속해야 한다. “침묵이 약이라고 후보문제를 방치할 것이 아니다

민주노총의 지지를 얻고자 하는 후보들에게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각자 소신대로 선택할 수 있고 그 차별성이 무엇인지 알려 줄 수 있는 기회를 요구해야 한다. 중앙 차원, 지역 차원의 후보공동토론회 등을 요구해야 한다. 후보들은 자신들의 정체성과 지지기반을 어디에 둘 것인지 분명히 해야 한다. 이런 공동사업들은 비록 후보단일화에 실패하였지만 현장에서 개량주의 침투를 나름 제한하고, 이후 노동정치에 대한 연대의 여론을 강화하고, 개량주의로 흐르는 진보정치인들을 견인할 수 있다.

2) 정의당은 자신의 발전토대를 노동정치에 둘 것인지에 대해 분명히 해야 한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정의당이 탈노동, 탈민주노총으로 간다면 정의당 내의 민주노총 세력은 심각한 자기평가와 거기에 따른 전망을 고민해야 한다.

진보당은 비록 정의당에게 모멸감을 느꼈겠지만 조직뿐만 아니라 정치를 앞세우는 태도변화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 국가권력은 조직 확대로 장악할 수 없다. 정치조직의 목적은 생존이 아니라 자신의 꿈을 대중적으로 인정받고 실현하는 것이다.

3) 사회주의는 노동자대중을 사회주의자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의 지지세력으로 만드는 것이다

노동당과 변혁당은 사회주의가 무엇인지 스스로 진지하게 물어봐야 한다. 사회주의는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실현하는 것이다. 노동자 대중의 동의와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는 사회주의는 이유를 불문하고 이론과 실천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심지어 자신이 좌파, 사회주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사회주의를 해야 한다.”는 식의 당위적 태도에 동의하지 못하고 있다.

노동자를 최우선으로 두면서도 민주노총에 대해 냉소적인 태도를 지니는 것은 아마추어적 태도이다. 조직노동자의 지지도 못 받는데, 미조직노동자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그냥 구호일 뿐이다. 굳이 사회주의자가 되라고 강변할 필요 없이 사회주의자가 노동자대중의 이해와 요구에 맞는 정책과 행동을 보여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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