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민주주의에 의한 국민주권 개선방안

I. 서론
 
민주주의는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이를 쉽게 표현한 것은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인민의 정치이다. 이러한 정의는 또한 국민주권의 내용으로서 민주주의 목적과 방식, 대의기구의 민주적 구성 원칙을 잘 설명하고 있다.
오늘날 국민주권이 보통선거와 평등선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국민 다수의 주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고 있는가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대의제를 강조하는 국민주권과 직접민주주의를 강조하는 인민주권의 긴장을 해소하는 방안으로서 국민발의와 국민투표, 국민소환, 국민의 국정참여 등 직접민주주의의 활성화를 검토할 수 있다. 다만 직접민주주의는 다수의견의 단순한 확인이 아니라 합리적이며, 민주주의 목적에 부합한 의견의 형성이 중요하다. 특히 국민투표에 있어 다수결만을 강조할 때는 민주주의의 자살이 가능하다는 점을 환기시킬 필요가 있다. 독일의 경우, 히틀러가 국민투표를 통해 정권을 장악했다는 역사적 경험이 있어 연방차원의 국민투표는 연방의 재구성과 개헌 등 일부에 한정돼 있지만, 주 차원의 주민발안, 주민투표는 폭넓게 시행되고 있다.
민주주의 자살을 막으려면, 다시 말해 민주주의 방식이 민주주의 목적에 부합되려면 민주주의 방식이 그 순기능을 발휘하도록 하는 제도적 환경이 요구된다. 따라서 의사결정과정에서 표결까지 이르는 숙의 과정을 주목해야 한다.
상설적인 민관합동위원회는 정보의 제공, 이해관계의 조절, 합의 도출 혹은 합의가 안 될 경우 최후수단으로서 다수결에 의한 결정이라는 과정을 통해 민주주의의 숙의 기능을 증진시킬 수 있다. 하지만 현재의 민관합동위원회는 이런 순기능을 발휘하기에는 여러 문제점들을 지니고 있다.
전자정부와 전자서명, 전자투표의 발전은 직접민주주의의 기술적 환경을 발전시키고 있다. 전자기술의 발전이 단지 투표의 기술적 편의성만을 개선시키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과 결합한 전자기술은 정보공개의 촉진, 민주적 시민교육의 역할, 쌍방향 소통의 보장 등 민주주의의 숙의기능을 확대시킬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논의들은 국가와 중앙정부 차원은 물론, 지방자치 영역에서도 검토돼야 한다.



II. 형식적 국민주권의 한계
 
국가의 주권, 혹은 통치권이 누구에게 있는가에 대한 논의가 주권론이다. 주권론은 역사적으로 군주주권, 시민주권, 국민주권으로 발전해왔다. 중세 말의 절대군주는 상공인들에게 물품세와 통행세 등을 징수하는 한편, 봉건제의 붕괴를 막기 위해 상업과 시장에 대한 통제를 포기하지 않았다. 이에 상공인들은 도시하층민과 농민의 도움을 받아 시장경제를 억압하고 있는 봉건제를 타도하였다.
근대 자본주의 혁명에 성공한 상공인들은 절대군주의 상비군을 국민군으로, 신분제 의회를 국민의회로 전환함으로써 국민국가를 만들었다. 국민국가 초기에 상공인들은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가진 반면, 노동자, 도시빈민, 농민, 몰락한 봉건계급은 같은 국민이지만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부여받지 못하였다. 따라서 그 당시 상공인, 즉 시민의 대표를 국민의 대표로 의제하는 시민주권의 본질은 시민독재였다.
국민국가가 발전함에 따라 선거권과 피선거권, 즉 시민권의 주체가 확대되었다. 국민국가는 영토전쟁을 수행하는 동안 징병제를 채택하는데, 이때 병역의무의 대가로 시민권이 주어졌다. 또한 공장제 생산방식의 채택으로 양산된 도시노동자들이 참정권 확대 투쟁에 나섰다. 특히 양차 대전은 공장제 생산방식과 노동계급의 급속한 확대를 가져왔다.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는 소련의 보통선거 채택에 자극받는 한편 노동계급의 반발을 완화하고자 모든 국민에게 시민권을 부여하였다.
모든 성인 국민이 유권자로서 보통선거와 평등선거, 비밀선거와 자유선거를 누린다. 국민주권에 따르면 주권은 개별 국민이 아닌 추상적인 전체 국민에게 있다. 하지만 현실에 있어서는 국회와 대통령 등 대의기구가 통치권을 행사하고 있다. 국민주권에 따르면 자유위임이므로 이들은 자신을 뽑아 준 유권자의 의사에 구속당하지 않는다.
오늘날 대의제와 대중정당, 대중언론과 여론정치는 과거의 시민독재를 엘리트 정치의 모습으로 재연하고 있다. 대중정당은 대중언론에 드러난 여론을 실시간으로 반영하지만, 그 배후에서 엘리트들은 자본의 힘으로 언론, 통신, 교육을 장악하여 이념과 여론을 지배하고 있다. 일반 국민은 돈이 없으면 입후보가 곤란하고, 입후보하더라도 선거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 이러한 대중민주주의는 형식적 국민주권의 한계를 은폐하고 있지만, 거꾸로 실질적인 국민주권의 요구를 내포하고 있다.
오늘날 국민주권이나 인민주권은 모든 국민을 주권자로 보나 그 지위와 주권의 행사방법이 다르다. 인민주권에 의하면, 주권은 성인 국민으로 구성되는 전체 유권자 집단에게 있다. 유권자는 누구나 주권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 지분이 동일하므로 보통선거와 평등선거를 전제로 한다. 유권자가 모든 통치권을 행사하기 때문에 전체 유권자를 정점으로 하여 모든 국가권력기구가 통일적으로 구성된다. 따라서 인민주권은 권력통합에 가깝다.
유권자는 지역과 부문에서 그 구성원의 수만큼 전체 주권의 지분을 보유하고 행사할 수 있으며, 스스로 다양한 주권자 단체를 조직할 수 있다. 또한 선거구는 주거, 직장, 학교 등 해당 유권자의 생활 형태에 따라 정해지므로 투표율이 높다. 또한 유권자는 평상시에도 다수결로서 자신들의 대표자들을 통제할 수 있다. 따라서 유권자는 언제든지 대표자를 해임할 수 있으며, 대표단의 결정과 다른 결정을 함으로써 대표단의 결정을 무효로 할 수 있다.
이론상으로는 사회주의 헌법이 인민주권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1988년 소련헌법 제1조에 따르면 소련은 노동자, 농민, 지식인 및 국내의 모든 민족과 준 민족의 의사와 이익을 대변하는 전인민의 사회주의 국가이다. 2조에 의하면 소련의 모든 권력은 인민에게 있으며, 인민은 소련의 정치적 기초를 이루는 인민대의원소비에트를 통해서 국가권력을 행사한다. 또한 제33조에 따라 소련에서는 균등한 연방 시민권이 설정돼 있으며 제34조에 따라 출신성분, 재산, 민족, 종교, 직업 등에 구속됨이 없이 법 앞에서 평등하다.
북조선의 1998년 헌법에 따르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주권은 노동자, 농민, 근로인테리와 모든 근로인민에게 있다. 근로인민은 자기의 대표기관인 최고인민회의와 지방 각급 인민회의를 통하여 주권을 행사한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자본가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모든 인민이 근로인민이다. 따라서 노동자, 농민, 지식인 등을 거명하는 것은 이들이 건국의 지지층이라는 역사적 의미에 불과하다.
유권자가 대표자를 소환하고, 직접 중요결정을 하는 등 일상적으로 주권을 행사한다는 인민주권론의 주장은 이론일 뿐이다. 김영수(1989)에 따르면 과거 사회주의 국가에서 국민투표를 헌법에 명시한 국가는 소련과 불가리아를 제외하면 흔하지 않으며 국민발의는 그 입법례 자체가 좀처럼 찾기 어렵다. 1988년 소련 헌법 제5조에 의하면 국가생활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전 인민적 토의에 제출되며, 소련 인민대의원 대회의 결정에 따라 전 인민적 투표에 의하여 결정된다. 그러나 현실에 있어 이러한 국민투표가 제대로 운용되지 못하였다. 사회주의 헌법은 국민이 대의원을 선출하고 대의원이 국가권력기구를 선출하는 민주집중제를 선택한 결과 국민이 대의원 기구를 통하지 않고 국가권력기구를 직접 통제하는 것은 사실상 막혀 있었다. 사회주의 사회에서 대의원이 아니라 국민이 주요 공직자를 해임하는 국민소환의 사례를 찾기 힘들다.
인민주권이 강조하는 직접민주주의의 장점을 살리려면 유권자는 높은 수준의 정치소양을 가져야 하며, 다양한 정보와 충분한 토론이 제도적으로 보장돼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선동정치와 우중정치에 휩싸일 가능성이 높다. 직접민주주의는 소수자의 의제를 국민적 쟁점으로 부각시킬 수 있으나, 소수자가 승리할 가능성이 반드시 대의제보다 높은 것은 아니다.
인민주권의 국가기관이 국민들의 의사와 기본권을 더 존중할 것이라는 것도 추론에 불과하다. 민주집중제에 따라 구성된 권력통합적 국가기구는 권력분립적 국가기구에 비해 월권행위를 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사회주의국가에서 특정집단이나 개인이 행정부와 입법부는 물론 사법부까지 장악할 수 있다.
오늘날 직접민주주의가 현실적으로 곤란하기 때문에 대의기구를 통한 간접민주주의가 불가피하다. 직접민주주의가 상정하는 민주주의적 소양을 지닌 완전한 시민은 허구이며, 실재하는 유권자는 독재자를 선택하는 등 민주주의를 스스로 부정할 수 있기 때문에 직접민주주의만을 최고선으로 볼 수 없다. 직접민주주의제도를 전반적으로 정착화 하는 사회적 비용도 무시할 수 없다. 따라서 대부분의 나라는 대의제를 기본으로 하면서 직접민주주의를 동시에 채택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대의제 및 자유위임을 강조하는 국민주권과 직접민주주의 및 기속위임을 강조하는 인민주권은 상호 보완되어야 하며, 다만 어느 제도에 방점을 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III. 헌법 차원에서 직접민주주의의 도입
 
1. 국민이 주도하는 국민투표
 
1) 현행 국민투표 제도의 문제점
 
국민투표는 중요한 국정사항에 대한 전체 국민의 의사를 확인하기 위해 실시하는 총유권자 투표이다. 보통 헌법에 근거가 있거나 정책과 법안에 대한 국민투표를 레퍼렌덤(referendum)이라고 부르며, 헌법에 근거가 없거나 신임을 묻는 투표를 플레비사이트(plebicite)라 부른다.
레퍼렌덤은 오늘날 민주주의 국가에서 일반적으로 운용되고 있다. 스위스 국민은 보통 해마다 연방차원에서 4-6개 정책현안, 캔톤과 코뮌 차원에서 약 20개 정책현안에 대해 국민투표 혹은 주민투표를 한다. 이탈리아는 1970년대에 3, 1980년대에 12, 1990년부터 1998년까지 31회의 국민투표를 실시하였다. 통일 이후 독일의 거의 모든 주는 국민발의제와 국민표결제를 도입하였다. 안성호(2005)에 의하면 미국은 중앙정부 차원에서 직접민주주의를 운영하지 않지만 지방정부의 90%가 주민투표제를, 58%가 주민발안제를, 69%가 주민소환제를, 36%가 주민청원제를 채택하고 있다.
플레비사이트는 레퍼렌덤과 달리 그 민주적 기능에 관해 많은 논란이 있다. 프랑스에서는 1804, 1852년에 각각 나폴레옹과 나폴레옹 3세가 국민투표를 통해 황제에 등극하였다. 샤를 드골 대통령은 195969년 집권 기간 중 다섯 차례나 국민투표를 실시하였다. 드골 대통령은 1969년에 지방제도와 상원제도의 개혁과 자신의 재신임을 연계하여 국민투표를 실시하였으나 부결되어 하야하였다.
1933년 독일의 국제연맹 탈퇴결정, 자르(Saar) 지방을 둘러싼 프랑스와 독일의 영토분쟁 해결도 국민투표에 의해 결정됐는데, 이는 정부에 의한 결정에 대해 신임을 묻는 성격의 플레비사이트라고 볼 수 있다. 특히 1934년 히틀러가 국민투표를 통해 총통에 당선되었다. 2차 대전 이후 독일은 헌법개정과 영토변경 이외에는 국민투표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미국도 연방 수준에서 국민투표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우리헌법은 헌법개정안에 대한 국민투표를 명시하고 있다. 또한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는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72). 72조는 바이마르헌법(73), 프랑스 제5공화국 헌법(11)에 비해 국민투표의 대상을 축소하여 대통령이 국민투표를 남용하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12> 국민투표 실시 현황
국민투표 사항
국민투표 실시 배경
투표율/찬성율
625차 개헌
군정을 종식하고 군사정권을 합법화시킴
85.3/78.8
696차 개헌
박정희 정권의 3선을 허용하는 신임투표임
77.1/65.1
727차 개헌
헌정중단(유신)을 추인하고 장기집권을 허용함
91.9/91.5
75년 신임투표
유신헌법에 대한 투표로 독재를 정당화함
79.8/78.0
808차 개헌
전두환의 헌정중단을 추인하고 정권출범을 승인함
95.9/91.6
879차 개헌
여야합의의 최초의 민주헌법임
78.2/93.1
 
1962년 이후 1987년까지 6번의 국민투표가 있었지만 87년의 대통령직선제의 헌법 개정을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국민투표는 국회를 해산하고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비상계엄 등의 상태에서 실시되었다. 그 결과 군사쿠데타와 같은 헌정중단을 추인하고 그 책임자를 대통령에 취임하도록 했거나 장기집권을 정당화시켜주었다.
한편으로 헌법 제72조가 플레비사이트를 포함하는지 논란이 되고 있다. 이 조항의 유래는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국가의 중요한 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1972년 유신헌법 제49조이다. 과거 박정희 전 대통령이 75년 유신헌법 개정과 자신의 재신임을 연계하였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87년 대통령선거 당시 국민투표에 의한 중간평가를 공약으로 제시했으며,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3년 수도이전이나 재신임을 국민투표로 하겠다고 주장했으나, 양자 모두 무산되었다.
72조의 국민투표의 대상으로서 기타 國家安危에 관한 중요정책의 범위가 모호하고, 정족수가 불분명하다. 국민투표의 실시여부는 대통령이 결정하고, 국민투표의 의제도 대통령이 선택하도록 하고 있으며, 특히 국민투표의 구속력이 명시되지 않았다. 대통령은 요건과 효력이 불분명한 국민투표 부의권을 활용하여, 국회의 심의와 표결을 회피하고 자신의 독단적인 결정을 합리화시킬 수 있다.
국민투표는 그 시작부터 끝까지 대통령을 중심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국민투표의 찬반운동이 공정하게 진행되기보다는 정부 주도로 찬성운동으로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점에서 헌법 제72조는 정책투표에 신임투표를 결합하는 국민투표를 포함하지 않는 것으로 봐야 한다. 나아가 대통령의 독단을 허용하는 헌법 제72조는 삭제돼야 한다.
국민투표가 제대로 정착되려면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이 중심이 되는 국민투표제도를 정립할 필요가 있다. 헌법 제1조의 국민주권 규정에 국민투표, 국민소환, 국민발의의 근거를 삽입해야 한다. 예를 들어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헌법과 법률을 발의하거나 중요정책을 결정할 수 있으며 대통령과 국회의원 등 선출직 공직자를 소환할 수 있다는 제13항을 신설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구체적인 국민투표나 국민소환, 국민발안의 내용은 관련 헌법조항에 추가적으로 규정해야 한다. 헌법안의 국민발의에 대해서는 헌법 제10헌법개정에 관련 내용을 구체적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
 
2) 국민투표 발의권자
 
현재 국민은 어떠한 국민투표도 발의할 수 없다. 과거 제3공화국 헌법에서 국민에 의한 헌법개정안 발의가 규정됐으나 이 규정은 이후 삭제되었다.
국민투표와 같은 직접민주주의는 대의제 자체를 부정하는 수단이 될 수 없다. 우리 헌법 역시 대의제를 기본으로 하고 직접민주주의를 예외적으로 채택하여 대의제를 보완하고 있다. 스위스에서 국민투표의 결과를 보면 직접민주주의와 대의제가 대립되는 양상은 심각하지 않다. 1947년에서 1995년까지 국민투표의 결과와 연방의회의 최종 의결의 일치도가 평균 77%에 달한다. 또한 연방의회 내의 합의 수준이 높을수록 국민투표에서 정부의 입장이 관철될 가능성이 크다(안성호, 2005: 206-208).
국민투표는 국민의 권리이지, 대의기관의 권리가 아니다. 따라서 행정부 수장과 국회는 대의제 안에서 견제와 협력의 관계를 유지해야 하며, 상대방을 배척하는 수단으로 국민투표를 활용할 수 없다. 만약 대의제 안에서 행정부 수장과 국회가 타협점을 찾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국민이 판단하여 국민투표에 부의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1977년 소련헌법 제115조에 따르면 양원의 결의가 일치하지 않을 경우 양원이 조정위원회를 구성하여 1차로 조정하고 이러한 조정도 실패할 경우 최고 소비에트의 결정에 따라 국민투표에 의해 최종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
향후에 대통령이 스스로 자신의 신임을 묻는 국민투표는 정치적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인정해서는 안 된다. 국민투표가 부결되더라도 대통령의 퇴진은 자신의 정치적 판단에 따라 자의적이 될 수밖에 없고 대통령의 퇴진을 둘러싸고 헌법불안이 야기될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1969년 실시된 프랑스 국민투표가 부결되자 드골대통령이 퇴진하였지만 1988년 칠레에서 실시된 대통령임기연장의 국민투표가 부결됐으나 피노체트대통령은 사임하지 않았다.
따라서 국민투표의 발의권자를 국민으로 한정할 경우, 독재자는 대의기구를 무력화시킬 목적으로 국민투표를 악용할 수 없다. 반면 국민투표의 발의요건에서 발의할 수 있는 유권자의 규모를 정하기 때문에 국민투표의 남용은 문제되지 않는다.
 
3) 국민투표 발의대상
 
국민이 최고 주권자라는 점에서 어떠한 안건을 국민투표로 할 것인지는 주권자인 국민의 판단에 맡기면 되지 이를 헌법에서 제한할 사항이 아니다. 다만 일부 헌법학자에 따르면 법률제정권을 국회에 전속시키고 있는 헌법 제40, 52, 53조를 고려할 때, 국민투표를 통한 구체적인 입법은 우리 헌법의 대의제와 모순된다(김선택, 2000). 또한 법률의 제정은 조문의 작성, 법률체제의 조정 등 숙의와 전문적 검토과정을 포함하고 있어 이를 단 한 번의 국민투표로 결정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어렵다.
실질적인 국민주권이론에 의할 때 국민에게 입법권을 포함하는 최종적인 결정권을 주어야 한다. 예를 들어 국민의 주권이나 국가권력과 직접 관계되는 법률안이나 조약의 경우 국민투표를 통해 확정할 수 있다. 따라서 헌법에 근거규정을 마련한다면 법률안에 대한 국민투표가 이론상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와 관련하여 1977년 소련헌법 제137조에 따르면 소련을 구성하는 각 공화국의 법률은 그 공화국의 국민투표에 의해 결정될 수 있다.
국회가 입법한 사항의 경우도 그 시행 전에 입법예고기간을 거쳐 국민투표로 재검토할 기회를 부여할 수 있다. 스위스의 경우 연방의회 결의로 성립된 연방법이 관보에 실린 지 90일 이내에 국민투표의 실시를 요구받는 경우, 그 효력이 정지되고 법률안은 국민투표에 회부된다. 대통령이 국회가 의결한 법률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면 국회는 이를 재의결할 수 있는데, 이 경우 재의결 대신 국민투표로 문제된 법률을 확정할 수 있다.
국민발의에도 불구하고 의회가 일정기간 입법하지 않을 경우, 미리 국민발의 대표자나 입법대리인으로 정해 놓은 국회의원을 통해 법안을 발의하고 국회 상임위원회의 검토를 거치되, 국회 본회의 대신 국민투표로 최종적으로 법률안을 확정할 수 있다. 같은 논리로, 주민 발의한 사항을 지방의회가 입법화에 소극적인 경우가 다수 발생하는데, 이때 주민발의로 결정된 내용을 조례로 만들어 주민투표로 확정할 필요가 있다. 또한 양립할 수 없는 여러 정책 가운데 하나를 택일하게 하는 국민투표 역시 가능하다. 이는 여러 개의 정책에 대해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를 순차적으로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이를테면 19929월 뉴질랜드가 소선거구제를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선거제도를 바꿀 것인가를 국민투표에 부친결과, 55% 참가 84.7% 찬성으로 선거제도를 개혁했으며, 또한 같은 투표에서 전환할 선거제도에 대해 국민투표로 물은 결과 유권자들은 독일식 혼합선거제도에 70.5%, 단순이양비례대표제에 17.4%, 호주와 같은 우선투표제에 6.5%, 단순히 의원 수만 확대하자는 데 5.6%로 찬성하였다. 뉴질랜드는 이후 전 국민적인 토론을 거쳐 1993년 국민투표에서 독일식선거제도를 도입하였다.
 
4) 필수적 국민투표
 
헌법개정안 이외에 반드시 국민투표를 거치도록 한 입법례는 1954년 제2차 개정헌법 제7조의 2에서 주권의 제약과 영토의 변경을 가져올 중대 사항에 대한 국민투표제를 규정한 것이다. 이 조항은 3차 개헌에서 삭제되었다. 중요한 헌법사항에 대한 국회의 결정을 추인하는 이러한 국민투표는 최고주권자로서 국민의 지위를 고려할 때 당연하다. 향후에 이와 같은 헌법조항을 부활시킬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군사동맹에 가입하거나 전투부대의 파병, IMF 국가부도사태와 같이 국가의 존망이 걸린 안보, 재정문제를 국민투표를 통해 결정해야 한다.
스위스의 국민투표는 제123조의 의무적 국민투표와 제140조 등의 선택적 국민투표로 구분된다. 스위스는 헌법상 국민에게 중요한 재정 부담을 주는 정책이나 중요한 안보문제에 대해 필수적인 국민투표제를 운용하고 있다. 스위스는 비무장평화유지군을 파견해왔는데, 2001년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해외에 파견하는 평화유지군의 무장을 요구한 정부안을 찬성 51%, 반대 49%의 근소한 차이로 승인하였다. 같은 날 스위스군이 나토군과 합동훈련을 하는 정부안이 국민투표에서 동일한 득표율로 승인되었다(안성호, 2005: 204-205).
또한 1977년 개정된 연방헌법에 따라 국제조직에 가입하는 결정은 헌법 개정과 같이 반드시 국민투표에 회부해야 한다.
스위스는 지역차원에서 재정주민투표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러한 직접민주주의는 공공지출과 과세 수준을 낮추는 순기능이 있다(안성호, 2005: 199-200). 캔톤과 코뮌에서 정부가 추진하는 일정 금액 이상의 투자 사업을 의무적으로, 혹은 의회나 주민의 요구로 주민투표에 부친다. 예를 들면 2002년 취리히 캔톤은 Swissair를 인수할 새 항공사에 24천만 달러의 재정지원을 하겠다는 캔톤 정부의 제안에 대해 국민투표를 실시하였는데, 유권자의 43%가 참여하여 56%가 찬성하여 통과되었다.
 
5) 국민투표의 구속력
 
스위스 연방에서 국민발안의 대상은 오직 헌법뿐이며, 이 경우 10만 명의 서명이 필요하다. 하지만 국민발안의 대상을 헌법사항에만 국한할 필요가 없으니 헌법사항과 법률사항에 대한 국민투표가 모두 가능하다. 다만 양자의 요건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 선거관리위원회가 발의자 수 등 발의요건의 적법성을 일차적으로 심사하며, 이에 대한 불복이 있는 경우 헌법재판소가 최종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국가형태나 정부형태와 같이 헌법적 사항에 대한 국민투표가 통과되면 헌법적 효력을 지닌다. 이 경우 헌법 개정 국민투표와의 경계가 불분명해진다. 이러한 국민투표는 헌법 개정에 해당하므로 헌법상의 개정절차인 국민투표에 따라야 한다. 따라서 국민투표안에 국회가 헌법을 개정해야 하는 시한을 미리 정해 놓아야 할 것이다.
법률적 사항에 대한 국민투표라면 법률의 효력을 가지며, 이는 신법우선의 원칙, 특별법 우선의 원칙에 따라 이후에 적법한 개정이 가능하다. 국민투표의 효력에 대해 일사부재의의 원칙이 적용돼야 하나 그 시간적 한계가 문제된다. 국민투표제도를 대의제를 보완하는 직접민주주의라고 볼 때 국민투표의 안건이 된 특정사항 당시의 국회의 조건을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일사부재의의 시간적 한계는 국민투표 부의 당시의 국회의 임기가 끝날 때까지라고 볼 수 있다. 즉 국회가 새로이 개원되면 이에 대한 새로운 국민투표가 가능하다고 보겠다. 유럽의 경우를 보더라도 유럽연합이나 유엔의 가입에 대하여 수차례 국민투표를 실시한 사례가 있다.
국민투표로 채택된 법률안에 대해 이후 사정이 변경될 경우 국회에서 개정하는 것은 다른 법률과 마찬가지로 가능하고, 헌법재판소의 위헌법률심사도 가능하다.
프랑스의 드골대통령이 1962년 대통령직선제법률안을 국민투표에 붙여 77.2% 참가, 61.7% 찬성으로 가결되었을 때 헌법개정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이 위헌으로 지적되어 헌법평의회에 제소되었던 바, 헌법평의회는 국회가 제정한 법률에 대하여는 위헌심사가 가능하나 국민투표를 통해 결정된 법률에 대하여는 헌법평의회가 위헌심사를 할 수 없다고 결정한 사례가 있다.
이 경우 대통령 선출방법이 헌법사항이라면 이러한 국민투표는 헌법 개정이므로 헌법안에 대한 국민투표절차를 거쳐야 할 것이고, 법률안에 대한 국민투표절차를 거치고 양자 간에 실질적인 차이가 있다면 헌법위반을 피할 수 없다. 다만 이에 대한 헌법위반의 심사회피는 정치적 사법판단으로 볼 수 있다.
 
 
2. 국민소환
 
국민소환은 국민에 의한 탄핵이다. 대의제와 국민투표, 국민발안 등 직접민주주의와 예방적 권력통제가 발전한 나라에서는 국민소환은 매우 예외적 상황이다. 기속위임을 전제로 하는 사회주의 헌법에서는 선거인단에 의한 대표자의 소환이 일반적인 원칙이다. 이와 관련하여 소련의 1988년 헌법 제103조에 의하면 대의원은 국가적 이익을 지침으로 삼으며 선거자들과 사회단체의 위탁들을 실현해야 한다. 이는 기속위임을 전제로 하지만 국익을 위하는 경우 일정한 재량도 인정하는 셈이다.
소련의 1988년 헌법 107조에 따르면 인민대의원은 선거인단이나 사회단체의 신임에 보답하지 못한 경우 법에 규정된 절차에 따라 다수의 선거인단이나 그를 선거한 사회단체의 결정에 의해 언제든지 소환될 수 있다. 동독의 1974년 헌법에 의하면 대의원은 선거인들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며 선거인들의 제안, 지시와 비평을 존중하며, 이에 위반할 경우 선거인들에 의해 소환된다. 인민회의는 최고국가기구의 구성원들을 소환할 수 있다.
북조선의 헌법에 따르면 각급 주권기관의 대의원은 선거인단들과 밀접한 연계를 가지며 자기 사업에 대하여 선거인단 앞에 책임진다. 또한 선거인단들은 자기가 선거한 대의원이 신임을 잃은 경우에 언제든지 소환할 수 있다. 최고인민회의는 국방위원회 위원장, 상임위원회 위원장, 내각총리, 중앙재판소장 등을 선거하거나 소환·해임할 수 있다. 지방인민회의는 해당 위원장, 판사, 참심원 등을 선거하거나 소환한다.
사회주의 국가의 소환제도는 민주집중제의 방식에 따라 선거인단에 의한 소환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국민이 최고대의기관을 선출하고 이 최고대의기관이 차상급 대의기관을 선출한 경우와 같이 간접선거의 경우 국민은 소환권을 행사할 수 없는 결과가 된다. 예를 들어 국민이 인민회의 구성원을 선출하고 인민회의가 주석단을 선출한 경우 국민은 주석단의 선거권자가 아니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인민회의 의원을 소환할 수 있지만 주석단을 소환할 수 없는 결과가 된다.
실제로 상당수 사회주의 헌법은 국민이 간접선거로 선출된 대의기관의 구성원을 소환할 수 있는지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경우도 일정한 법률적 요건에 따라 국민소환이 가능하도록 해석할 필요가 있다.
우리헌법은 국민소환제도를 명시하지 않고 있으나, 국민주권의 원리에 따라 별도의 헌법개정에 의하지 않고 향후 법률제정에 의해 가능하다(이경주, 2005). 다만 일부 헌법학자들은 우리헌법이 대의제를 기본으로 하고 직접민주주의는 명시적인 헌법적 근거가 있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채택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우리헌법이 국민에게 의원 선출권만을 부여하고 임기를 보장하고 있는 점에서 의원에 대한 해임권은 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장영수, 2005).
이와 관련하여 헌법재판소는 주민소환제도의 위헌성을 다투는 사건(2007헌마843 )에서 주민소환제도 자체의 합헌성을 전제로 하여 주민소환의 청구사유에 제한을 두지 않은 것, 주민소환투표의 청구기간을 제한한 것, 서명요청 활동, 발의요건, 권한행사의 정지 및 권한대행, 주민소환투표 결과의 확정요건 등에 대해 합헌으로 결정하였다.
국민소환은 주민소환과 마찬가지로 대의제를 보완하는 직접민주주의 제도라는 점에서 주민소환의 합헌결정은 국민소환의 합헌성을 주장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이다. 다만 지방자치제도를 자치행정의 분배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지방자치행정기관에 대한 주민소환과 입법부 구성원에 대한 국민소환은 그 성격이 다르다. 또한 국회의원의 선출방식과 임기 등은 헌법에 명시된 반면 지방자치기관 구성원의 선출방식과 임기 등은 헌법이 117조와 118조에서 개별 법률에 위임하고 있어 위헌성 여부가 문제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국민소환과 관련하여 200812월 김재윤 의원외 13명이 국민소환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하였다. 이 입법안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이 법은 국회의원이 헌법상의 의무를 위반하거나 그 밖의 위법·부당한 행위를 한 경우, 국민이 해당 의원을 해임함으로써 대의제 민주주의를 보완하고 국민주권을 실질화함을 목적으로 한다.
지역구 국회의원에 대한 소환발의를 위하여 50인 이상의 지역구 소환투표권자로 소환추진위원회를 구성한다. 관할선거관리위원회는 소환추진위원회의 구성 사실과 소환대상자의 소명요지를 함께 공고하여야 한다. 소환추진위원회는 30일 동안 소환발의를 위한 서명요청활동을 할 수 있다.
소환발의는 해당 국회의원 지역선거구 내의 소환투표권자 총수의 10분의 1 이상의 서명 또는 기명날인이 있어야 한다.
관할선거관리위원회는 소환발의가 적법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지체 없이 소환투표안 및 소환투표일을 공고하여야 한다. 소환투표는 이 공고일부터 20일 이후 첫 번째 토요일에 실시한다. 투표운동은 소환투표일을 공고한 날부터 소환투표일 전일까지 할 수 있다.
지역구 소환투표권자 총수의 3분의 1 이상의 투표와 유효투표 총수 과반수의 찬성이 있는 때에는 소환대상자는 즉시 국회의원직을 상실한다. 전체 소환투표수가 지역구 소환투표권자 총수의 3분의 1에 미달하는 때에는 개표를 하지 아니한다.
비례대표 국회의원의 소환을 위하여 100인 이상의 소환투표권자로 비례대표소환추진위원회를 구성한다. 비례대표소환추진위원회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공고가 있는 날부터 60일 동안 소환을 위한 서명요청활동을 할 수 있다.
비례대표 국회의원에 대한 소환은 소환투표권자 총수를 비례대표 국회의원 총수로 나눈 수의 서명 또는 기명날인이 있어야 한다. 다만, 특정한 특별시·광역시 또는 도에서 받은 서명 또는 기명날인의 수가 소환에 필요한 서명 또는 기명날인 총수의 3분의 1 이상을 초과하는 경우 그 초과되는 부분은 계산에 산입하지 아니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제출된 비례대표소환명부의 적법성을 심사한 후 열람시킨 뒤 이의신청을 받은 후 확정한다. 소환명부가 법정 요건을 충족한 경우에는 소환대상자는 소환결과를 공표한 날부터 비례대표 국회의원직을 상실한다.
 
비례대표국회의원 소환은 투표의 방식이 아니라는 점에서 지역구 의원과 다르지만 이를 다투는 방식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피고로 하여 대법원에 소를 제기하는 것이며, 구체적인 소송절차는 공직선거법 규정을 준용한다는 점에서 지역구 의원의 국민소환과 다르지 않다.
유권자가 직접 선출한 공직자를 해임하는 국민소환제도를 국가차원에서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 논란이 될 수 있다. 국가원수에 대한 탄핵은 그 실효성으로 인한 헌법 공백이 논란되고 있다.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는 스위스와 독일뿐 아니라 대통령제를 운용하고 있는 미국 역시 지방자치 차원에서만 국민소환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반면 대만과 베네수엘라 등에서는 대통령에 대한 국민소환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대통령에 대한 국민소환은 설사 헌정불안의 우려가 있다고 해도 실질적 국민주권론에 따라 가능하다.
국민소환의 대상자는 대통령, 국회의원 등 선출직 국가공무원뿐만 아니라, 국회에서 동의절차를 거친 헌법재판소 재판관, 대법관, 국무총리 등 이에 준하는 절차를 거친 고위직 공무원으로 확대해야 한다. 의원내각제의 경우 수상은 임기와 상관없이 의회해산과 내각불신임에 따른 총선거에 의해 실질적으로 소환될 수 있으나, 의회의 판단이 아닌 국민에 의한 소환을 따로 인정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또한 국민소환의 사유를 헌법과 법률 위반에 한정하자는 의견도 있으나 국민소환의 효과는 해임에 그치고 탄핵과 달리 정치적 책임을 묻는 과정이므로 주민소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불법부당, 직권남용을 포함하여 제한 없이 열어 놓을 필요가 있다. 국민소환의 발의 과정에서 그 사유에 대한 국민적 판단이 진행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미국의 경우 주민소환을 사법절차로 보는 경우 사유를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콜로라도 주의 헌법은 소환제에 관련된 배경의 합법성, 타당성, 충분성에 관한 사항은 등록된 유권자의 독자적이고 배타적인 판단에 관한 것이며, 그것은 심사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규정하는 등 정치적 절차로 보는 주도 상당수 있다.
국민소환은 헌법재판소에 의한 탄핵심판, 즉 사법절차가 아니므로 국민소환의 효력은 해임에 그친다. 국민소환의 결과 제한되는 공직담임권의 범위를 해당 법률에 명시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소환된 지역구 국회의원이 바로 해당 지역구의 보궐선거에 나서는 것은 최고주권자의 결정에 반하는 것이므로 허용될 수 없다. 국민소환은 최고주권자인 국민의 결정이므로, 대의기관에 불과한 대통령의 사면은 금지돼야 한다.
소환발의에 필요한 발의자는 해당 선거구의 유권자의 10% 내외에서 인구규모를 고려하되, 국민이 직접 선출하지 않은 공직자의 경우 따로 법률로 정한다. 소환발의를 위해 서명을 받는 기간은 서명자의 수와 연동돼 있다. 국민소환에 대한 관계자의 책임을 분명히 하기 위해 소환준비위원회를 구성하도록 한다. 근거 없는 소환개시는 제도적으로 제한할 수 있으므로 소환반대서명은 허용할 필요가 없다. 소환발의가 성립하여 소환절차가 개시되면 권한행사를 정지한다.
 
 
3. 직접민주주의 일반법으로서 국민투표법 개정
 
직접민주주의에 관한 헌법조항과 법률을 체계적으로 마련해야한다. 헌법은 국민투표와 국민소환, 국민발의가 가능한 대상과 요건 및 효과를 포괄적으로 규정한다. 현재 국민투표법은 헌법 제72조의 규정에 의한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과 헌법 제130조의 규정에 의한 헌법개정안에 대한 국민투표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현행 국민투표법을 전면 개정하여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일반적 법률로서 국민투표, 국민발안, 국민소환에 대해 그 대상과 발의정족수, 서명기간, 투표운동, 의결정족수 등을 구체적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 특히 국민투표, 국민소환, 국민발의가 공정하게 진행되려면 자유로운 투표운동을 보장하는데 역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IV. 주민자치와 직접민주주의
 
1. 주민투표 대상의 확대
 
첫째, 기관위임사무와 단체위임사무를 지방자치단체의 고유사무로 전환하여 주민투표의 대상인 자치사무를 확대해야 한다. 지방세의 항목설정, 세율에 대한 권한을 지방자치단체에게 부여하는 것을 전제로 이에 대한 주민투표를 인정해야한다. 지방의회 의원의 세비와 같이 중요한 지출에 대한 주민투표도 인정해야 한다.
현행 지방자치법 제14조와 주민투표법 제7조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주민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거나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지방자치단체의 주요결정사항으로서 그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로 정하는 사항은 주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 다만 예산, 회계, 계약, 재산관리, 지방세, 사용료, 수수료, 분담금 등 각종 공과금의 부과 또는 감면에 관한 사항과 행정기구의 설치, 변경에 관한 사항과 공무원의 인사 정원 등 신분과 보수에 관한 사항을 제외하고 있다.
둘째, 의무적인 주민투표 사항을 규정한다. 예를 들어 지방자치단체의 통폐합은 주민투표를 반드시 거치도록 해야 한다. 스위스의 경우 일정 금액 이상의 재정투표를 의무적으로 시행하고 있으며, 이밖에도 시민권 신청자에 대한 승인을 코뮌의 주민투표로 결정한다. 미국의 주에서 의무적 주민투표는 행정체제개편, 지방채 발생, 지방세율의 인상 등이다.
셋째, 모든 주민투표 사항에 대해 주민의 발의를 인정한다. 현재 주민투표의 발의자는 자치단체장이나 청구자는 사안별로 주민, 지방의회, 중앙행정기관의 장으로 세분화돼 있다. 해당 지역과 관련 있는 국가정책에 대한 주민투표 청구권자가 중앙행정기관의 장으로 돼 있는 것을 주민으로 변경한다. 주민 이외에 단체장, 지방의회, 중앙행정기관의 주민투표의 발의는 남용의 우려가 있으므로 원칙적으로 금지한다.
넷째, 법률에 정한 경우 주민투표에 의한 입법을 허용한다. 주민투표법 제15조에 따라 주민투표는 특정한 사항에 대하여 찬성 또는 반대의 의사표시를 하거나 두 가지 사항 중 하나를 선택하는 형식으로 실시하여야 한다. 주민투표법은 현안에 대해서만 규정하고 조례에 대한 주민투표는 규정하고 있지 않다. 입법안은 심의가 필요한 안건인데, 주민투표 자체가 심의를 대체할 수 없다. 따라서 지방의회에 계류된 구체적인 조례안 자체에 대한 주민투표는 어렵다.
조례의 주민발의가 성립한 경우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조례의 제정안·개정안 또는 폐지안을 지방의회에 부의해야 하나 이에 대한 구체적 처리방안이 명시돼 있지 않다. 또한 주민발의에 성공해도 지방의원들의 소극적인 태도로 인해 실제 반영되는 비율이 낮다. 주민발의의 대상이 된 조례안에 대해 의회가 일정 기간 동안 입법을 해태할 경우 주민투표로서 직접 입법할 수 있는 주민표결이 필요하다. 다만 이 경우에도 지방의회의 관련 상임위원회에서 법체제와 자구수정에 대한 심의를 거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주민투표의 결과는 지방의회의 의결과 동일한 효력이 있다. 따라서 조례의 경우 신법우선과 특별법 우선의 원칙, 그리고 일사부재의의 원칙이 적용된다.
 
 
2. 주민발의와 주민소환의 확대
 
현재 결의안과 같이 조례사항이 아닌 것은 주민발의의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주민들이 지방의회에서 이를 다룰 것을 요구할 수 있는 방안이 없다. 지방의회의 의결이 필요한 경우 이를 주민들의 요구에 의해 지방의회의 안건으로 상정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어야 한다. 즉 주민발의의 대상을 조례사항 이외의 기타 안건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지방자치법 제20조에 따라 주민은 지방자치단체의 장 및 지방의회의원을 소환할 권리를 가지나 비례대표 지방의회의원은 제외한다. 제주특별자치도의 사례를 따라 교육감에 대한 주민소환도 인정해야 한다. 일본의 경우 선거관리위원, 감사위원, 공안위원, 회계책임자에 대한 주민소환을 인정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미국처럼 판사, 경찰책임자 등 선출직 지방공무원 모두를 대상으로 주민소환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현행법상 지방의회 해산청구는 인정되지 않으나 이를 지방의원 전부에 대한 주민소환으로 허용하고 이러한 주민소환이 성사되면 보궐선거를 실시할 수 있다. 독일은 주 단위에서 주민투표가 활성화되고 있으며, 법률의 제정과 개폐 이외에도 의회해산에 대한 주민투표가 가능하다.
주민소환은 사법절차가 아니라 정치적 책임을 묻는 제도로서 소환이 확정되면 그 직을 상실하는 효과가 있을 뿐이다. 따라서 현행법이 사유를 제한하지 않은 것은 타당하다. 다만 주민총회와 주민투표, 주민발안이 잘 운영되고 있는 스위스의 경우 사후적 주민통제수단인 주민소환의 역할은 크지 않다. 또한 주민의 정치적 심판에 대해 사면을 허용할 필요가 없다. 이밖에도 임기 시작과 만료를 기준으로 1년간 주민소환을 금지하고 있는데, 이 기간을 6개월 정도 단축할 필요가 있다.
 
 
3. 주민 직접민주주의 일반법으로서 주민투표법
 
첫째, 주민투표와 주민소환, 그리고 주민발의에 필요한 유권자 서명의 규모를 축소할 필요가 있다. 현재 주민투표의 실시를 청구하려면 유권자의 5-20% 이상의 서명이 필요하고 주민소환의 투표를 청구하려면 10-20% 이상의 서명이 필요하다. 다만 조례제정의 청구는 1-2% 범위 이상의 서명이 필요하다. 외국의 경우 소환투표의 발의는 자치단체의 인구규모에 따라 10%에서 30%까지 다양하다.
주민투표나 주민소환의 요건을 완화하여 똑같이 유권자의 10% 이내에서 각 조례가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주민소환을 하고자 하는 공직자를 선출한 지방선거의 투표율이 보통 40-50%에 불과하고 재보궐선거의 경우 이에 더욱 미달하고 당선율까지 고려할 때 10% 내로 제한하는 것이 타당하다. 주민발의의 경우 2% 이내로 더욱 완화시켜야 한다.
둘째, 현재 주민투표와 주민소환을 하려면 유권자의 1/3 이상이 투표에 참가해야 하는데, 이러한 제한을 삭제할 필요가 있다. 공직선거법은 모든 선거에 있어 투표율 제한이 없다. 또한 지방선거의 재보궐선거는 30% 미만의 투표율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30% 미만의 투표율로 당선된 지방공직자를 주민소환하려면 항상 33%의 투표율이 필요하다는 모순이 생긴다. 투표율의 하한선은 독일의 경우 25-30%가 일반적이며 작센주의 경우 예외적으로 50%이다. 또한 주민투표의 투표율이 낮아 무산된 경우에는 지방의회가 해당 사항을 다시 논의하여 법제화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셋째, 투표운동에서 공무원의 중립의무를 규정하고 처벌규정을 강화한다. 또한 투표에 영향을 미치는 지원을 금지하는 규정이 필요하다.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주민들에게 과도한 보상금이나 사업과 무관한 지원을 함으로써 주민투표에 영향을 미친다면 사업의 공정성과 효율성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넷째, 서명요청 활동기간은 매우 중요한 요건이므로 주민투표법에서 일괄적으로 규정하되 현행보다 늘려야 한다. 주민투표와 주민소환, 그리고 조례의 주민발의가 남용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주민투표나 주민소환, 조례의 주민발의가 서명요청 활동기간 내에 성사되지 못했을 경우 청구인대표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주민이 민주주의 권리를 행사한 이유로 불이익을 당하는 것은 민주주의 본질상 용인될 수 없다. 다만 청구인대표자 요건을 강화하여 제도의 남용을 예방할 수 있다. 이를테면 각종 주민서명의 청구인대표자 수를 해당 행정구역의 규모에 맞게 탄력적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
 
 
V. 국정에 대한 시민참여
 
1. 민관위원회의 권한 강화
 
1) 시민참여와 숙의민주주의
 
민주주의체제에서 시민은 주요 결정 과정에 자유롭게 참여하여 자신의 요구와 선호를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시민참여는 민주주의 핵심이다. 시민참여는 시민들의 선호에 대한 정부의 대응력을 높일 뿐만 아니라, 시민은 참여 과정을 통해 민주주의에 필요한 자질을 함양할 수 있다(조석주, 2006). 특히 부패의 위험이 있는 행정에 대해서는 다수의 감시원칙에 따라 다수의 시민 또는 시민단체가 참여할 필요가 있다.
최근 시민참여의 방식으로서 숙의가 강조된다. 숙의민주주의란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들의 심층적인 토론이 정당한 의사결정이나 자치의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견해로 정의된다(박찬표, 2010:480). 숙의민주주의는 새로운 정보를 수용하고, 충분한 토론을 감내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전환할 수 있는 사려 깊고 성숙한 시민을 전제로 한다. 숙의 민주주의는 가치 다원적 사회에서 그 의미가 크다.
숙의는 정보의 소통을 통해 복잡한 문제에 대한 이해 수준을 높이거나, 사회적으로 상충된 입장을 조율하여 기존의 의견이 변화될 기회를 제공한다. 따라서 숙의는 집단의 판단을 향상시킴으로써 민주적 절차와 정당성을 강화한다. 정치적 정당성은 다수결이라는 형식적 정당성뿐만 아니라, 성의 있는 설득과정이라는 실질적 정당성까지 의미하기 때문이다.
대규모 집단의 숙의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방식으로서 모집단을 대표하는 표본집단의 숙의로서 모집단의 의사를 결정하는 숙의적 여론조사가 가능하며, 대표적인 것이 시민배심원제와 같은 각종 위원회제도이다. 특히 행정위원회로서 민관위원회는 전문가와 관련 행정관료, 시민들로 구성된 것으로서 의결, 심의, 자문의 회의기구이다. 정부조직법 제4조에 따라 국가행정기관은 관련 법령에 의해 자문기구를 운영하고 있다. 또한 지방자치법 시행령 제42조에 따라 지방자치단체는 고유사무의 경우 조례에 의해 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국가 위임사무의 경우도 국가 행정기관의 관련 법령에 근거하여 조례로 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국가청렴위원회의 각종 심의 의결위원회의 공정성 투명성 제고 방안.”에 따르면 200512월 현재 각 부처에 설치된 위원회 총 381개중 행정위원회를 제외한 의결 및 심의 조정위원회 등 자문위원회는 339개이다. 광역자치단체는 60여개, 기초단체는 40여개의 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다양한 민관위원회의 지위를 분류하면, 국가기관과 지방자치기관의 위원회, 그 설치가 의무적인 것과 임의적인 위원회, 그 결정이 당사자를 구속하는 것과 자문에 그치는 위원회 등이 있다.
중앙정부의 필수적인 민관위원회 중 인권위원회, 노동위원회, 물가안정위원회, 지방세심의위원회, 건축분쟁조정위원회,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등은 법적 구속력 있는 의결위원회이다. 특히 공정거래위원회, 행정심판위원회, 중앙토지수용위원회 등은 입법 혹은 사법의 기능을 담당한다. 도시계획위원회, 중앙약사심의위원회, 건축위원회, 문화재위원회 등은 행정관청이 권한을 행사하기 전에 일정한 사항을 사전에 조정하는 심의위원회이다. 기초자치단체의 주민자치위원회는 지방자치단체에 대해서는 필수적인 자문위원회이지만, 읍면동 주민의 자율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일부 구속력 있는 결정을 할 수 있다.
각종 행정위원회는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개혁해야 한다.
첫째, 다양한 민관위원회 운영을 대부분의 행정결정 과정으로 확대한다. 인허가 등을 담당하는 각종 부서에 외부 인사들이 참여하는 전문위원회를 설치하여 자문, 심의, 의결기능을 부여하는 등 의사결정의 전문성과 민주성을 높인다. 북유럽 국가들의 경우 단위부서까지 민관운영위원회를 두고 있다. 스위스 연방은 법률의 초안을 마련하기 위해 시민사회 대표를 포함한 10- 20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400여개의 전문가위원회를 설치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민관위원회를 활성화시키는 주민참여자치기본조례의 법률적 근거를 강화한다.
둘째, 정보제공, 의견수렴, 의사결정 등 민관위원회의 역할을 분명히 하고, 일정한 조건아래 시민참여 절차에 구속력을 부여한다. 시민참여가 단순히 정책결정과정뿐 아니라 집행과 평가까지 연결돼야 한다. 시민참여 제도는 형식적 구속력 부여뿐만 아니라 시민운동과 결합할 때 순기능이 극대화된다.
셋째, 민관위원회의 민주적 운영이 강화되어야 한다. 정보제공, 의견제출, 청문회와 공청회 등 각종 행정절차에 대한 시민참여를 보장한다. 중요사항의 사전 공지와 열람, 의결내용과 회의록의 사후 공개를 의무화한다. 이해관계가 대립하는 사항의 공개여부에 대해 당해 위원회가 결정하지 못할 때는 상급의 위원회가 의결하도록 한다. 비공개 사유 자체를 축소하고, 비공개할 때는 그 사유는 공개하도록 한다. 또한 공개하지 않은 내용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공개하도록 한다. 또한 행정기관이 안건을 사전에 정하는 것이 아니라 위원회가 자체적으로 안건을 정하고 서류검토 중심의 회의를 개선한다. 위원장은 행정기관장 또는 내부공무원으로 지정하기보다는 해당 위원회에서 호선하도록 한다.
넷째, 위원의 자격과 선임 절차를 개선하여 이해관계자, 시민사회단체 인사, 주민대표의 참여를 확대한다. 기존의 위원회는 위원을 내부 공무원과 외부에서 위촉한 민간위원으로 구성하되 민간위원은 관련 부서에서 임의로 선정하거나, 관련단체에 할당하는 등 위원을 비공개로 모집해왔다. 따라서 특정한 이해관계를 대표하는 자를 위원으로 포함하여 불공정 시비가 많았다. 특히 주민선출, 인사청문회, 배심원 명부 중 추첨 등 다양한 민주적 방식을 활용하여 민간위원을 선정한다. 민간위원의 회의 참여를 보장하기 위해 회의수당을 지급하거나 노동관계법에 공무휴일 혹은 공무휴게 제도를 도입한다.
마지막으로 민간위원의 전문성과 책임성을 강화한다. 각종 민관위원회의 구성과 운영에 관한 일반원칙을 법률과 조례로 정할 필요가 있는데, 위원의 자격요건을 완화하여 민간위원 참여를 늘려 주민의 요구를 반영하되, 관련 교육을 확대하여 민간위원의 전문성을 보완한다(김창선, 2005).
 
2) 참여예산의 구속력
 
첫째, 지방자치단체 예산에 대한 분석을 통해 일정한 비율, 예를 들어 5% 이내에서 구속력을 부여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조례는 단체장의 예산편성권을 침해하는 것이므로 지방자치법 등을 개정하지 않는 한 위법하다. 지방자치법 제127조에 따라 지방자치단체의 예산편성권은 단체장에게 있으며 의결권은 지방의회에 있다. 따라서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주민참여예산제도를 통해 수렴된 주민의견을 검토하고 그 결과를 예산편성에 자율적으로 고려할 뿐이다. 현재 많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참여예산제도를 운용하고 있으나 법적 구속력이 빈약하다.
브라질의 경우 진보적인 지방자치단체장이 보수적인 지방의회에 맞서 지역사회와 예산을 협의해 나감으로써 법적 구속력의 부재라는 제도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었다. 특히 브라질의 포르투 알레그레시의 경우 집행부의 노력과 공개적이고 투명한 참여시스템이 존재하였지만 무엇보다 시민들과 시민단체들의 적극적인 참여의지가 강해 참여예산제도가 성공하였다. 하지만 우리의 풀뿌리 민주주의는 단체장이 참여예산의 결과를 존중하도록 할 만큼 강하지 못하다(박광우, 2006).
포르투 알레그레시에서는 2000년 기준으로 주택, 학교, 병원, 대중교통 등 공공투자 분야에서 전체 시정부 예산의 25% 수준을 지역주민들이 참여하여 결정하였다.
둘째, 지방세를 확대하고 참여예산제도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예산편성에 대한 자율을 강화한다. 단체위임사무와 기관위임사무 중 지역주민과 실질적인 관련이 있는 영역은 고유사무로 전환하여 재정자치권을 확대한다. 우리의 경우 전체 예산 중 주민참여예산으로 운영할 수 있는 비율이 낮다. 고유사무가 협소하고 재정자치권이 보장되지 않아 지방자치단체가 자율적으로 예산을 편성할 수 있는 여지가 많지 않다. 2002년 기준으로 전국의 248개 자치단체 중에서 60% 정도는 자치단체 수입만으로 인건비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일정한 한도 내에서 참여예산제도를 의무화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현재 지방재정법 제39조에 따라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지방예산편성과정에 주민이 참여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하여 시행할 수 있다. 동법 시행령 46조에 따르면 주요사업에 대한 공청회, 간담회, 설문조사를 할 수 있으며 사업공모도 가능하다. 그 밖에 주민참여 예산의 범위, 주민의견 수렴절차, 운영방법 등은 조례로 정한다.
셋째, 지방자치단체장이 자신의 예산편성권 중 일부를 주민들과 협의하여 편성하겠다는 자발적인 노력이 중요하다(김판석, 2010). 이런 점에서 주민들이 참여예산제도의 의지가 있는 단체장을 당선시켜야 한다. 실제로 참여예산제도가 일정한 성과를 내고 있는 지역을 보면 단체장의 협조가 중요함을 알 수 있다. 울산시 동구의 경우 주민참여예산협의회에서 조정하여 예산참여시민위원회 전체총회에서 통과된 예산편성안을 그대로 의회에 상정한 바 있다. 다만 총회에서 두 차례 예산편성안이 부결되면 협의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구청장이 직권으로 예산편성안을 의회에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넷째, 주민참여예산제도는 대의제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대의제의 한계를 보완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 단체장과 지방의회가 주민들과 소통하여 대의기구의 위상을 강화할 수 있다. 그러므로 참여예산의 편성은 여론조사나 일회성의 주민행사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주민참여예산제도를 사회투자, 복지 등 공공영역으로 한정하여 민원의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을 차단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현재 주민들의 활발한 참여를 보장하기에는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에 대한 정보공개가 제한적이므로 예산 관련 정보를 대폭 공개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참여의지가 있는 주민들에 대한 지방재정 관련 교육을 확대하여 참여예산제도가 성공할 수 있는 제반환경을 만들어가야 한다.
 
 
2. 실질적인 시민배심제의 도입
 
배심제란 법관이 아닌 자가 재판의 착수, 심리, 판결에 관한 결정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민사사건의 경우 당사자의 합의에 따라 배심을 배제하는 경향이 있다. 형사사건에서 기소 여부를 판단하는 대배심의 입법례는 줄어들고 있으며, 보통의 입법례는 유무죄, 사실관계, 형량을 판단하는 소배심이다. 재판관이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배심원의 만장일치의 결정을 채택하는 미국의 배심과 시민이 법관과 함께 재판부를 구성하여 다수결로 사실관계를 확정하고 법률문제를 확정하는 독일의 참심이 있다.
독일의 참심제는 판사 1~3명과 시민대표 2명이 참여하여 재판부를 구성하는데, 참심원은 법관 등으로 구성된 선임위원회가 지방자치단체의 추천을 받아 선발하고, 임기는 4년으로 하며 연임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참심원으로 선임이 되면 1년에 8~10회 정도 재판에 출석하며 교통비와 일정액의 수수료를 받는다. 참심원은 판사와 당해 사건에 대하여 협의하여 유무죄와 형량을 결정하며 최종의 평결은 판사와 참심원 전체의 3분의 2의 찬성으로 결정된다.
1988년 소련헌법 제151조와 153조에 따르면 법원은 법관들과 인민참사원들로 구성되며 재판은 이들의 협의에 의한다. 인민참사원들과 법관들은 해당 소비에트에 의해 선출된다. 북조선의 재판소구성법에 따르면 중앙재판소의 판사와 인민참심원은 최고인민회의의 상임위원회에서, 도재판소와 인민재판소의 판사와 참심원은 해당 인민회의에서 선출한다.
배심제는 미국에서 실질적으로 발달하였다. 미국의 건국 지도자들은 식민지시대 영국 판사의 전제적 운영에 대한 경험을 통하여 판사, 배심, 의회의 권한을 분산시키고 서로 견제하도록 하여 민주제와 인권을 보호하려고 하였다. 미국에서 법률관계의 해석과 확정은 법관의 몫이지만 사실관계에 따른 유무죄는 배심에 의해 결정된다. 거의 대부분의 주에서 12명 배심원 전원이 만장일치로 평결을 하여야 한다. 다만 피의자를 기소할 것인가의 여부를 묻는 대배심은 과반수로 결정한다.
배심제도는 일반인의 상식과 통념을 기준으로 하여 판단을 하게 함으로써 재판의 신뢰성과 구체적 타당성을 확보해준다. 그 결과 국민이 사법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높일 수 있으며, 준법정신을 높일 수 있다. 반면 배심제는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들어가며, 배심원의 법률적 전문성 부족이 지적되고 있다. 한편으로는 여론재판이 될 우려가 있는 반면 배심원에 대한 매수가능성도 지적되고 있다.
반면 참심제는 법관의 의견에 끌려가기 쉬워 민중 참여의 뜻을 제대로 반영하기 어려운 면도 있다.
한국은 2008년부터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에 따라 특정한 형사사건에 한정하여 국민참여재판을 운영하고 있다. 이 법에 따르면 만장일치에 도달하지 못할 경우 예외적으로 다수결을 인정하지만 배심의 결정은 법관을 구속하지 않는다. 유죄여부뿐만 아니라 양형에 대한 의견도 낼 수 있다. 최근에는 검사의 기소독점주의를 완화하여 기소배심의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한국의 국민참여재판은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
첫째, 배심제를 채택하고 있는 대부분의 나라와 마찬가지로 국민참여재판의 결과를 재판에 의무적으로 반영하도록 해야 한다. 국민참여재판제도를 배심제로 전환하려면 관련 사법절차가 먼저 구비돼야 한다. 영국, 미국과 달리 배심에 의한 양형선택을 인정한다면 양형에 대한 합리적인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 예를 들어 판결 전 조사제도등을 도입하여 배심원에게 범죄에 대한 객관적 사실을 제공해야 할 것이다. 반면 검사에 의한 피고인신문은 피고인의 미숙한 대응으로 배심원들이 선입관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개선되어야 한다.
둘째, 배심에 의해 기소를 결정하거나 기소를 중단하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현재 검사만이 기소여부를 결정한다. 이러한 기소독점주의의 폐단이 심각하지만 이를 개선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안이 없다. 1954년 형사소송법 제정 당시 모든 죄에 대한 재정신청을 인정했지만, 유신헌법 체제에서 대상범죄가 대폭 축소되었다. 2007년부터 당사자가 고소하는 모든 사건에 대해서 재정신청이 가능해졌다.
현재 기소독점주의의 예외로서 재정신청은 법원이 검사의 불기소결정을 취소하고 직접 기소 결정을 하는 것이다. 다만 법원에 의한 기소결정이 나더라도 검사가 그 이후 공소유지를 담당하므로 큰 의미가 없다. 공소유지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지만 기소독점주의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제도는 아니다.
모든 범죄에 대해 기소배심을 하기 어렵다면 검사의 자의적인 기소가 우려되는 특정 범죄에 대해 검사의 기소가 없다고 해도 기소배심을 통해 기소하게 할 수 있다. 주로 국가적 법익과 사회적 법익을 침해하는 범죄가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때 배심에 의해 기소된 사건만을 담당하는 공익검사를 두거나 공익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다. 또한 검사의 부당한 기소에 대해 기소배심에서 검사의 기소를 중단시키는 제도가 필요하다.
셋째, 장기적으로 법관과 검사에게 전권을 부여하는 한국의 사법제도를 근본적으로 민주화해야 한다. 우리의 경우 사법영역이 대의민주주의와 참여민주주의의 불모지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이동희, 2010). 국민의 사법참여는 국민주권을 실질적으로 구현하여 사법의 민주적인 정당성을 강화한다.
한편 시민배심원제도는 이해관계자가 아닌 일반시민이 배심원으로 선정돼 현안을 결정하는 제도이다. 시민배심의 절차는 시민배심원의 선정과 소집, 배심절차에 대한 합의, 배경지식과 쟁점의 공유, 자문의견의 청취, 이해관계인의 진술, 증언과 감정, 숙의를 통한 결정 등이다. 특히 정책전문가인 자문위원과 이해관계자인 증인의 공정한 선정이 중요하다.
시민배심원제도는 공공이슈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할 수 있으며, 갈등관리에 대한 시민사회의 학습이 가능하다. 김소연(2006)에 따르면 국내의 경우 울산 북구에서 음식물쓰레기처리장 건설을 둘러싸고 벌어진 주민과 지방자치단체 사이의 갈등을 배심원제도를 통해 해결한 사례가 있다. 그러나 배심원제가 갈등이 상당히 심화된 상태에서 기존의 역학관계에 의해 이미 방향이 정해진 것을 사후에 추인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우려도 있다(김장민, 2007). 따라서 배심원제를 사전에 제도화하고 갈등이 심화되기 전에 개입하여 민주적인 운영을 통해 실질적인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중요하다.
수원시는 2011년 제정된 시민배심법정조례에 따라 미리 배심원단을 모집하고 시범운영을 거친다. 시민법정은 시장이 위촉하는 판정관과 부판정관 1명씩을 포함해 시민배심원, 심의대상 민원의 이해당사자 5인 이내로 구성한다. 시민배심원은 예비배심원 100명 중에서 뽑는다. 사안이 있을 때마다 10~20명 정도를 배심원으로 위촉해 평결한다. 집단 민원이나 각종 사업과 관련하여 시민 100명 이상이 신청한 것을 심의 대상으로 한다. 시민배심원단의 평결결과는 시민법정에서 공표되며 이를 최대한 반영해야 한다. 즉 평결결과는 법적 구속력을 갖지 않는다.
 
 
3. 추첨에 의한 지방의원
 
대부분의 나라에서 직접민주주의와 대의제도를 이질적인 것으로 보고 대의과정에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것을 제한하고 있다. 즉 시민은 의회에 참여하여 토론과 결정에 관여할 수 없다. 다만 회의를 참관하거나 의회의 명령에 의해 회의에 참가하여 특정 사항에 한해 발언할 수 있을 뿐이다. 심지어 우리의 경우 실질적인 입법이 진행되는 국회 상임위원회의 경우 참관 자체가 보장되지 않고 있다. 대의과정에 대한 참관, 의견 제출을 넘어서서 시민들이 대의기구 구성원으로서 대의기구에 참여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추첨이라는 우연적 방식을 통해 대의기구 구성원 일부를 선출할 수 있다. 추첨제는 선거가 정치엘리트들이 대의기구를 독점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라는 문제의식에 근거하고 있으며, 추첨을 통해 자연스럽게 전체 집단을 균등하게 대표하게 할 수 있다고 본다. 추첨을 통한 위임권력의 창출은 명령위임원칙자유위임원칙사이의 미묘한 긴장을 해결할 수 있다(손우정, 2008).
대의기관을 추첨된 사람으로만 채우는 것은 추첨이 선출을 대체하는 것인데, 추첨이 선출보다 우수한 대의기구 구성방법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추첨의 장점이 입후보, 선거운동, 투표 등으로 구성되는 선거제도가 지니는 민주주의적 장점보다 우수하다고 볼 수 없다.
대의기관을 추첨으로만 구성하려면 추첨된 사람들이 전체를 대변할 수 있는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일단 추천된 집단이 전체 집단을 균등하게 대표하도록 상당한 규모가 되어야 한다. 추천 대의기구의 의결과 전체 구성원의 투표를 병행시켜 양자의 유사성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추첨제는 전체 구성원 개인이 누구나 대표로서 선출될 수 있는 민주주의적 소양과 의지를 구비할 것을 전제로 한다. 일부 진보정당에서 대의원의 일부를 추첨에 의해 선출했지만, 사실상 상징적인 의미에 불과한 수준이어서 기존의 대의제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없었으며, 현실에서도 추첨대의원들의 회의 참석율이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오늘날 대의기관이 전문화되고 있는 점을 고려하여 추첨된 자에게 관련 정보와 교육이 보장돼야 한다. 그밖에도 추첨된 공무에 종사하는 것에 대한 불이익을 배제하고, 적절한 보상이 따르는 등 대의기관 구성원에 준하는 지위와 신분을 보장해야 한다.
추첨제에 대한 제도적 환경이 선행되지 않은 조건을 고려하면 국회와 같은 중요한 대의기관에 추첨제가 당장 도입될 수 없다. 따라서 추첨제는 사회적 논란을 유발하지 않으면서 그 제도의 순기능을 검증할 수 있는 일부 대의기관부터 실험적으로 도입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읍면동을 지방자치단체로 전환하고 주민들이 추첨을 통해 읍면동 동네의회의 일부 의원을 선출할 수 있다.
 
 
4. 고용과 산업 및 경제의 민주적 참여
 
1) 국가경제위원회
 
국민들이 경제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과정에 참여하도록 한다. 참여경제에는 국가의 주요 구성원들이 경제사회적 의제에 대해 총괄적인 대타협안을 합의하는 형태와 국가의 경제계획에 국민들이 참여하는 형태가 있다. 국민들의 경제참여를 보장하기 위해 행정부에 속하지 않는 독립기관으로서 국가경제위원회를 설치한다.
국가경제위원회는 노동자, 농민, 영세상공인, 기업인 등 각계각층의 공익적 단체의 대표자들로 정하며, 전문가들로 구성된 산하위원회를 둔다. 위원장은 위원 중에서 대통령이 임명한다. 국가경제위원회는 다음과 같은 권한들을 가진다.
첫째, 국가경제위원회는 국가의 예산안과 경제계획에 대한 의견서를 정부에 제출한다. 노동자 대표, 자본가 대표, 공익 대표 일부와 이들이 추천하는 전문가를 각각 동수로 하여 이 의견서를 작성하는 소위원회를 구성한다. 정부는 예산안과 경제계획에 국가경제위원회의 의견서를 반영해야 한다. 이를 통해 정부는 5년 단위와 20년 단위의 종합적인 경제계획안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는 이 경제계획안을 국회에 제출하여 승인을 받는다.
경제계획에 참여하는 형태는 경제계획에 구속력이 없는 전문가의 견해를 반영하는 형태와 구속력 있는 결정과정에 참여하는 형태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시행한 바 있는 자본주의 국가의 경제계획은 북조선이나 쿠바 등 사회주의 국가가 시행하는 계획경제와 다르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시행된 바 있는 계획경제는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가 금지되고, 중앙기관이 원자재 교환과 생산목표량을 결정하는 경제체제이다. 하지만 국가경제위원회는 계획경제를 수립하는 곳이 아니라 국가의 경제계획에 대한 의견을 제출하는 기관이다.
북조선의 인민경제계획법에 따르면 국가계획위원회가 작성하는 전략계획, 각 부문별, 지역별 생산활동 지도단위들이 작성하는 작전계획, 각급 생산현장들이 작성하는 전투계획 등을 종합한 것이 국가경제 생산계획이다. 먼저 각급 생산현장들이 예비숫자를 작성하여 국가계획위원회에 제출한다. 국가계획위원회가 예비숫자에 기초하여 예비계획목표를 작성하고, 그것을 각급 생산현장들에 내려 보낸다. 각급 생산현장들은 예비계획목표를 놓고 군중토의를 진행하고, 군중토의 내용을 반영한 개별적인 생산계획 초안을 만들어 국가계획위원회에 제출한다. 국가계획위원회가 개별적인 생산계획초안을 검토하여 종합적인 생산계획초안을 작성하고 내각과 인민위원회가 이를 검토한다. 최종적으로 최고인민회의 또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가 종합적인 생산계획을 승인한다. 국가계획위원회는 종합적인 생산계획에 따른 개별적인 생산계획을 각급 생산현장들에 내려 보내 세부화, 구체화하도록 한다.
쿠바와 소련식 생산계획 작성을 단계별로 보면 먼저 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의 중앙집단에서 예비계획목표(통제숫자)를 정하여 중앙계획국으로 보낸다. 중앙계획국은 예비계획목표에 기초하여 생산계획 초안을 작성하여 경제계획개발부에 보낸다. 경제계획개발부는 각급 생산단위들에 생산계획 초안을 보내고, 각급 생산단위들은 이 초안에 필요한 노동력, 자본, 에너지, 원자재를 산출하여 경제계획개발부에 제출한다. 이를 제출받은 경제계획개발부는 중앙계획국과 함께 생산계획 초안을 조정하여 생산계획을 확정한다. 확정된 생산계획은 당중앙위원회 정치국에 제출되어 승인을 받고, 각급 생산단위들에 내려 보낸다.
독일은 1963년부터 법률에 따라 연방대통령이 임명하고 5년 임기로 연임이 가능한 5명으로 구성된 경제전문가위원회를 설치하였다. 이 위원회는 모든 경제정책기관들에 대하여 자문을 하고, 전반적인 경제현황에 대한 분석과 미래에 대한 전망을 담은 매년 평가보고서를 발간하고 있으며, 정부는 경제계획에 이를 반영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 국민경제자문위원회는 헌법 제93조 및 국민경제자문회의법(1999. 8. 31 제정)에 의거하여 설립되었다. 주요 기능은 국민경제 발전을 위한 전략 및 주요 정책방향의 수립, 국민복지의 증진과 균형·발전을 위한 제도의 개선과 정책의 수립, 국민경제의 대내외 주요 현안과제에 대한 정책대응방향의 수립, 기타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하여 대통령이 부의(附議)하는 사항에 관한 자문 등이다. 의장은 대통령이며, 위원은 경제부처 장관, 민간 전문가 등이다. 국민경제자문위원회는 자문의 역할에 한정되고 있으며, 그나마 실질적으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 노사정위원회가 간헐적으로 운영된 바 있으나 실질적인 논의기구로 자리 잡은 적은 없다.
둘째, 국가경제위원회는 경제사회분야의 대타협안을 도출한다. 이 타협안은 법률적 효력이 없으나, 국가경제위원회가 의결할 경우 정부는 입법안으로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 물론 국회는 이 입법안을 심의하여 의결, 수정, 폐기할 수 있으나 대의제가 제대로 작동하는 한 최대한 존중할 수밖에 없다. 또한 이 타협안을 노동자단체와 경영자단체가 법률제정 없이 자율적으로 준수할 수 있다.
대타협안을 도출하는 대표적인 사례는 스웨덴모델이다. ‘스웨덴 모델의 특징은 스웨덴 특유의 노사관계, 경제정책, 보편적 복지, 조합주의적 의사결정구조 등이다. 스웨덴의 경우 노사 중앙조직이 전국적인 단체교섭을 통해 노사 간의 쟁점들을 일괄 타결하므로 노사관계에 대한 국가의 개입이 최소화된다. 또한 정부의 정책 결정과 집행과정에 이익단체들이 적극 참여한다.
이러한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주요 이익단체들이 전문가 집단과 함께 관련 제도를 모색하는 국가연구위원회(statens offentliga utredning; SOU)를 운영하고 있다. 또한 각종 공공기관의 이사회에 해당 부문 이익단체들의 대표가 관여할 수 있다. 이러한 조합주의적 의사결정구조는 사민당 집권기간에 보다 확고하게 뿌리내려 공식적 제도를 통해서 뿐 아니라 비공식적 회동을 통해 노조와 재계 대표들과 정부관료들이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에 관해 의견을 교환하는 관행이 정착되었다(신정완, 2000a: 169).
스웨덴식 대타협제도가 우리나라에서 노사정으로 나타났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 직후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협약을 도출하고자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가 출범되었다. 노사정은 대통령 자문기관으로서 노사정 3자가 모여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협약(90개항)’일자리 만들기 사회협약(55개항)’ 등을 체결하였다. 하지만 노동자 대표가 불참하더라도 정부의 의지대로 정책이 다수결로 결정될 수 있다. 또한 비정규직과 영세상공인 등이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할 수 없었다. 의제 역시 노동문제에 한정되었고 더구나 결정의 구속력이 없었다.
셋째, 국민과 노동조합, 기업, 사회단체는 국가경제위원회에 경제계획과 경제정책에 대한 의견과 입법제안을 청원의 형태로 제출할 수 있다. 국가경제위원회는 이러한 청원을 심사해야 한다. 국가경제위원회는 심사결과 필요한 정책제안이나 입법제안을 정부에 제안할 수 있으며, 이 경우 정부는 이를 반영하여 정책을 결정하거나 입법안을 제출해야 한다.
 
2) 산업위원회
 
국가경제위원회 산하에 산업위원회를 설치한다. 산업위원회는 해당 산업의 노동자 대표, 해당 산업의 자본가 대표, 공익을 대변하는 대표 등으로 구성한다. 노동자 대표는 산업별 노동조합의 대표자, 동 노동조합에 소속되지 않은 노동자 중 일정한 조건을 만족하고 추첨에 의한 자로 구성한다. 공익을 대변하는 대표는 노동자 대표, 자본가 대표, 지방정부 등 3자가 합의하여 추천하는 경제사회 분야의 전문가, 관련된 시민사회단체 대표, 정부의 해당산업 정책책임자 등으로 구성한다. 산업위원회는 산업차원에서 사회적 대타협안을 제시하거나 국가경제위원회에 해당 산업에 관한 경제계획이나 그밖의 경제정책 수립에 대한 의견을 제출한다. 관련된 소위원회를 두도록 한다.
 
<13> 국가경제위원회와 산업위원회 및 직장위원회의 권한과 관계
 
국가경제위원회
산업위원회
직장위원회
지역협의회
구성단위
국가 단위
산업 단위
직장 단위
지방자치단체 단위
구성원
전국조직의 대표
부문 대표
노사
직장위원회 대표자
권한
사회적 정책
부문정책
고용 전반
지역 현안
의견 및 청원
행정부가 결정하거나 법안 제출
국가경제위원회 검토
산업위원회 검토
자치단체 혹은 국가경제위원회의 검토
결정권
국회가 결정
국회
노사 합의
지방의회가 결정
직장위원회와 산업위원회 및 국가경제위원회는 유기적 관계를 맺도록 한다. 직장위원회는 읍면동, 시군구, 시도 단위의 지역협의회를 둔다. 읍면동 지역협의회의 구성에 있어 개별 직장위원회가 노사와 공익대표 등을 추천하도록 하고 이들이 모여 읍면동협의회를 구성하도록 한다. 시군구협의회는 읍면동협의회가 노사와 공익대표 등 3인을 추천하도록 하여, 시도협의회는 시군구협의회가 노사와 공익대표 등 3인을 추천하도록 한다.
읍면동협의회와 시군구협의회 및 시도협의회는 각각 해당 지방자치단체에 경제사회정책에 대한 의견서를 낼 수 있고, 각 협의회가 의결할 경우 해당 지방자치단체는 이를 반영한 조례안을 지방의회에 제출해야 한다.
 
 
3) 직장위원회
 
현재 직장에 설치된 노사협의회는 일정사항에 대한 정보와 의견을 교환하는 기구에 불과하므로 이를 기업에 관한 주요 사항을 결정하거나 협의하는 직장위원회로 전환한다. 직장위원회는 노동조합 대표, 사업장의 대표자, 공익대표 등 3자를 동등하게 참여시켜 구성된다. 공익대표는 노동조합의 대표, 사업장의 대표자, 해당 지방정부 등 3자가 합의하여 추천하는 경제사회 분야의 지역 전문가, 지역 시민사회단체 대표, 지방정부의 경제사회정책 총괄책임자 등으로 구성한다.
직장위원회의 권한은 독일의 공동결정제도를 좀 더 강화한 형태를 취한다. 독일의 노사공동결정제도는 노사가 사회복지, 인사정책 등에 관하여 공동결정을 하는 제도이다. 직장위원회는 보고, 협의, 동의, 공동결정, 합의 등의 제도를 둔다. 고용 중의 노동자의 노동조건에 대해서는 합의에 의하도록 한다. 그밖에 고용정책, 노동조건의 기준 설정, 집단해고에 대해 직장위원회가 동의하도록 한다. 생산설비의 도입과 전환, 해체 등 고용과 관련된 경영사항의 경우 노동조합이 일정한 비율 이상의 주식을 소유했을 경우에만 공동결정을 하도록 한다. 해당 사업장과 무관한 경영사항은 공동결정에서 제외하고, 직장위원회에 보고하도록 한다. 다만 노동조합을 대표하는 이사가 이사회에서 결정에 참가하거나 노동조합이 주주의 입장에서 주주총회를 통해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도록 한다.
직장위원회는 노동자자주관리를 실현하도록 노력한다. 노동자자주관리는 노동자가 총회 혹은 자신의 대표기관을 통해 기업의 경제활동 전반을 통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노동자자주관리를 실현하는 기금을 조성한다. 이를 위해 기업의 이윤과 노동자의 상여금 일부를 적립하여 일정한 비율 이상의 주식을 노동자 전체가 총유의 방식으로 소유하도록 하되 그 관리는 노동조합이 한다. 주식의 이윤배당 역시 주식에 의하도록 한다. 노동자는 퇴사할 경우 자신의 상여금에 의해 적립된 주식만을 일정한 평가가액으로 반환받을 수 있다. 이러한 제도를 통해 노동자의 경영권 개입이 정당화된다.
직장위원회가 제대로 운영되려면 노동조합이 강화되어야 하고, 노조와 지역의 시민사회단체의 연대를 통해 자본 측에 압박을 가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직장위원회는 지역협의회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VI. 직접민주주의와 전자민주주의
 
오늘날 직접민주주의를 실시하기에는 유권자의 규모가 너무 크다. 직접민주주의를 기계적으로 적용할 경우, 투표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계층이 있기 때문에 또 다른 정치적 불평등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낮은 투표율과 낮은 회의참가율은 불균등한 대표성을 심화시킨다. 스위스에서 최소투표율제도가 논의된 적이 있지만, 최소투표율제는 소극적 다수를 투표에 참여하도록 유도하기보다는 투표가 무효가 됨으로써 적극적인 투표자를 처벌하고 실망시키는 부작용이 있다.
직접민주주의가 발전된 스위스의 경우 지난 60년 동안 연방의 국민투표율은 48.5%, 캔톤의 주민투표율은 44.9%, 코뮌의 주민투표율은 46.4%이다. 스위스 코뮌의 주민총회 역시 그 참가자가 유권자의 10%를 넘는 경우는 드물다. 미국 뉴잉글랜드 지역의 타운들 역시 주민총회를 운영하고 있지만 대다수가 10% 내외의 참여율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전자기술의 발달은 유권자나 회의참가자가 어디에 있건 실시간으로 투표하거나 회의에 참여할 수 있는 기술적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 또한 전자기술은 기존의 지면정보제공의 한계를 극복하여 다양하고 전문적인 정보를 제공하여 토론을 활성화한다. 특히 현장에서 총회와 전자투표를 실시하면 총회에 참가하지 못한 유권자가 총회에 제한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전자투표는 쌍방향 의사소통시스템을 기반으로 하여 인터넷투표, 휴대폰을 포함한 전화투표, 디지탈TV투표 등이 있다. 특히 모바일전자기기와 유비쿼터스 환경이 날로 발전함에 따라 원격 전자투표의 형태는 더욱 다양해질 것으로 보인다(박해영, 2008). 특히 공공밀집지역에 간단한 전자사무가 가능한 무인전자단말기를 설치하는 멀티미디어스테이션이 확산되고 있는데, 이를 간이전자투표소로 활용할 수 있다. 이 경우 투표자의 신분확인은 비밀번호, 디지탈서명, 지문인식, 홍체인식, 스마트 카드 등의 공인 인증제도를 활용할 수 있다. 따라서 국민발의와 국민소환에 있어 인터넷서명이 가능해진다.
일본에서 컴퓨터를 이용한 전자투표가 공직선거에 처음으로 실시된 것은 20026월 오카야마(岡山)현 니이미(新見) 시장 및 시의회 선거이다. 전자투표는 유권자들이 시내 43곳의 투표소에 설치된 투표기에 전자투표 카드를 삽입, 화면에 나타난 출마자 가운데 지지 후보를 터치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동유럽의 에스토니아는 2007년 총선에서 인터넷투표와 모바일투표를 허용하였다. 미국의 캘리포니아주는 2006년 현재 40%의 지역에서 10만여 대의 전자투표기를 사용하여 인터넷투표를 운영하고 있다. 캐나다도 2013년 중간선거부터 전자투표 제도를 도입하였다.
스위스 유권자들은 과거 과반수이상이 우편투표제를 활용하였으며, 지금은 전자투표를 하고 있다. 다만 이러한 제도가 심의민주주의 전통을 훼손한다는 비판이 있다. 스위스에서 유권자는 미리 비밀번호와 수신 전화번호를 우편을 통해 받은 다음, 투표당일에 안건에 대한 찬반 의견을 자신의 휴대전화를 통해 문자로 보낸다.
우리정부 역시 전자정부를 구축하고 전자적 국민 참여를 추진하고 있다. 특히 전자주민투표와 전자선거가 가능한 전자선거시스템이 구축되었다. 2000년에 공직선거법에 전자투표와 전자개표에 관한 근거조항이 만들어졌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전자선거를 시범단계, 전자투표기단계, 유비쿼터스 투표단계 등 3단계로 추진해왔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전자선거시스템은 선거관리업무시스템, 대국민 포털시스템, 후보자포털시스템, 통합선거인명부시스템, 전자투표시스템, 전자개표시스템, 인터넷선거시스템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밖에도 온라인 국민 참여 기반조성의 일환으로 주민투표지원시스템, 위탁선거지원시스템, 민간선거지원시스템 등을 포함하고 있다. 특히 터치스크린전자투표기는 선거인이 카드를 투입하여 화면에 전자투표용지를 표출시켜 투표하면 그 결과를 전자저장매체와 투표기록지에 실시간으로 저장·인쇄하는 기기 및 운영체계를 말한다. 다만 미리 받은 투표권 카드를 넣거나 기타의 기술적 방식으로 본인여부를 확인하는 인증이 필요하다.
현재 주민투표와 민간위탁선거에 전자투표가 활성화되고 있지만 공직선거법상 투표에는 아직 적용되지 않고 있다. 전산조직에 의한 투표 및 개표에 관한 규칙에 따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선거를 제외한 주민투표와 주민소환투표, 정당 및 단체의 선거, 위탁받은 민간투표는 전자투표 방식에 의할 수 있다. 이 규칙 제2조에 의하면 이러한 투표와 선거에 있어 선거인명부의 작성과 조회, 투표용지 작성, 투표와 개표 등을 전산방식에 의할 수 있다.
과거 민주노동당 등 일부 정당은 공직후보선출과 당직자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전자투표를 운용하였다. 현재 정당법에 따르면 대의기관의 결의는 공인전자서명을 통하여도 의결할 수 있으며, 그 구체적인 방법은 당헌으로 정한다. 일부 정당은 정당법에 따른 공인인증서명을 위한 기술적 환경을 구축하지 못하고 있으나 선거관리위원회에 선거사무를 위탁하는 방법으로 기술적 장애를 일부 극복할 수 있다.
한편 2011년 국회의원들은 모든 정당이 같은 날 국회의원 후보를 선출하고, 유권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투표소에서 투표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완전국민경선제를 내용으로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하였는데 이 법안에 따르면 각 정당은 이러한 완전국민경선제의 선거업무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위탁하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전자투표 방식을 포함하는 기계장치를 이용하여 투표사무와 개표사무를 관리할 수 있다.
현재 전자민주주의의 기능으로서 정보제공과 여론수렴은 상당한 수준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투표수단, 토론기능은 아직 실험단계라고 볼 수 있다(주성수: 2009: 240-243). 전자민주주의와 전자투표가 발달하려면 다음과 같은 전제조건들이 함께 성숙돼야 한다.
첫째, 정치적 안정과 선거에 대한 신뢰가 정착돼야 한다. 전자투표에 대한 기술적 신뢰는 완전무결할 수 없고, 설사 기술적으로 완전하다고 해도 국민적 수준에서 이해 가능하도록 이를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따라서 정권교체가 자연스런 정치과정으로 표출되지 않고, 선거 때마다 부정선거 시비가 끊이지 않는 정치후진국에서 전자투표를 도입할 경우 선거행정과 전자기술의 사회적 신뢰가 낮아 정치적 혼란이 초래될 수 있다.
둘째, 어느 누구라도 전자투표가 가능한 기술적 환경에 접근할 수 있도록 제반 사회적 조건이 일반적으로 구축돼야 한다. 거동이 불편하거나 생계 등의 문제로 투표에 참가할 수 없는 유권자가 전자투표를 활용하는 경우처럼, 전자기술을 투표를 가로막고 있는 사회적, 경제적 한계를 극복하는 데 적용할 수 있다.
컴퓨터의 구입과 인터넷회선의 설치와 같이 전자투표에 접근하는데 사적인 비용이 부가된다면, 이러한 경제적 부담능력에 따라 전자투표의 이용가능성은 새로운 불평등을 초래할 수 있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이러한 기술적 환경을 제공해준다면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곳에 널리 분포돼야 한다. 또한 전자투표 방식은 종이투표와 비교하여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그 과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단순해야 한다. 지적능력이나 기계의 숙달능력에 따라 전자투표의 접근가능성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
셋째, 전자투표 과정과 집계의 조작, 투표비밀의 침해, 투표기록 보관의 안전성, 정전이나 사고에 대비한 시스템 안정성, 검표의 기술적 가능성 등 기술적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그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획득할 수 있는 국민적 설명가능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전자투표의 한계는 투표과정과 개표과정이 물리적으로 현시되지 않으므로 조작의 논란에 휩싸일 수 있고, 실제로 전자적 조작이 가능하며, 이에 대한 근본적 차단이나 검증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기술적 방법에 의해 비밀투표의 원칙이 훼손될 수 있다. 고도의 전문가만이 알 수 있는 전자시스템과 그 작동방식은 국민적 신뢰를 얻을 수 없다. 사회적 신뢰를 얻으려면 기술적 보안과 그 설명방식이 단순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전자민주주의는 다양한 방식으로 국민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민주주의의 새로운 지평을 지향해야 한다. 전자민주주의는 단순히 종이투표를 전자투표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적, 장소적 한계를 극복하는 정보제공과 원격토론, 전자서명에 의한 청원 등으로 그 영역을 넓혀 과거에 불가능하였던 숙의민주주의의 기술적 조건들을 보완해야 한다.
 
 
 
VII. 요약과 향후 과제
 
보통선거와 평등선거를 내용으로 하는 형식적 국민주권은 과거 시민계급의 특권정치를 엘리트정치로 전환시켰을 뿐이다. 엘리트정치는 대중정당과 대중언론을 통해 여론정치의 외형을 띠고 있지만, 제도적 장벽을 쌓고 다수의 주권자들을 정치로부터 소외시키고 있다. 주권자는 선거의 투표자라는 소극적 지위를 벗어나 일상적인 주권자로서 위상을 강화해야 한다.
대의제는 국민발의와 국민투표, 국민소환, 국민의 국정참여 등을 받아들여 직접민주주의와의 간격을 좁힐 수 있다. 물론 히틀러의 경우처럼 국민투표가 대중선동에 의해 독재에 악용되거나, 국수주의적 침략정책에 동원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 점에서 다수결을 악용한 민주주의의 자살을 차단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숙의 기능은 민주주의의 자살을 차단하고 다수결의 내용이 민주주의의 목적에 부합하도록 한다. 숙의는 충분한 정보제공과 합리적 설득을 통해 소수에게 다수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다수결의 궁극적 정당성을 부여한다. 소수가 절대로 다수가 될 수 없다면 토론은 사라지고 의사결정권, 즉 권력이 민주주의를 대체할 것이다.
전자기술은 직접민주주의가 가능하도록 기술적 한계를 극복할 뿐 아니라 민주주의의 숙의기능을 강화한다.
끝으로 오늘날 민주주의는 시민들의 생활양식으로 발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가 시민들의 생활과 밀접한 기업 및 시장과 같은 경제 분야에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주식회사는 사단법인이지만 재산의 지분에 따라 의사결정권이 배분된다.
하지만 경제의 민주주의는 사유재산의 일정한 한계를 요구하고 있다. 또한 수요 와 공급, 자유경쟁에 따라 가격과 지배력이 결정되는 시장에 민주주의를 적용할 경우 자유경쟁도 제한되어야 한다. 경제민주화의 관점에서 자본주의의 돈의 통치를 사람의 통치로 전환할 수 있는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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