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최상급노조의 정치경제적 성향과 좌파정당과 최상급노조의 관계

1) 최상급노조의 정치경제적 성향
 
좌파정당과 최상급노조의 관계를 살펴보기 전에 먼저 이러한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최상급노조의 정치경제적 성향을 고찰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노동조합은 개별적인 노동조합이나, 개별적인 직종별 혹은 산업별 노동조합에 소속되어 있던 과거의 노동조합과 달리 국민국가 차원 최상급노조에 소속되어 최상급노조의 노선에 따르고 있다. 최상급노조는 강력한 국민국가 및 총자본과 대면하면서 때로는 협상하고 때로는 단체행동을 통해 대립하기도 한다. 최상급노조의 노선은 이처럼 총자본 혹은 국민국가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설정되므로 초창기의 개별적인 노동조합과 달리 선택할 수 있는 노선의 폭이 넓지 않다.

일반적으로 노동조합 노선을 조합원의 경제적 실리를 추구하는 비즈니스 노선, 사회적 타협을 통해 제도개선과 경제적 실리를 추구하는 코프라티즘 노선, 사회변혁을 통해 노동자 지위의 근본적 변화를 추구하는 변혁적 노선, 국가와 총자본에 적극 협조하는 전체주의적 노선으로 분류할 수 있다(장귀연, 2005).
주로 유럽의 경우를 분석한 정병기(2005)는 정치문화와 노사관계를 기준으로 노동조합의 정치적 성향을 타협적, 갈등적, 다수결 민주주의적 관계로 구분하였다. 이에 따르면 독일과 스웨덴은 타협적 합의민주주의 정치문화의 영향으로 코포라티즘적 노사관계를 보이고 있으며, 반면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갈등적 합의민주주의 정치문화의 영향으로 대립적이고 노사관계를 지니고 있으며, 영국과 아일랜드는 다수결 민주주의 정치문화의 영향으로 경제적 노동조합주의 노사관계를 띠고 있다고 보고 있다.
전체주의 노선은 나치와 같은 파시즘 사회, 노동조합의 자율성을 외형상 보장하는 것처럼 보이나 국가권력의 정당성을 위해 노동조합을 동원하는 파퓰리즘 사회, 노동조합을 국가권력에 종속시키는 군사독재, 노동조합이 국가와 사실상 일체화되어 있는 구 공산주의국 등에서 나타난다. 이러한 전체주의 노선의 노동조합은 자본과 임노동의 갈등 구조에서 단체행동을 무기로 노동자의 권익을 집단적으로 추구하는 본래의 노동조합이라고 볼 수 없다.
코프라티즘 노선은 사회적 타협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종종 파업과 같은 단체행동을 하며, 심지어 비니니스 노선에서도 개별 자본가의 양보를 얻어내기 위하여 개별 기업 혹은 산업별로 파업이 동원되며, 경우에 따라서는 노동관계에 밀접한 영향을 미치는 법제도 문제 때문에 총파업이 일어나기도 한다. 따라서 비즈니스 노선과 코프라티즘 노선에서도 노동조합이 타협 이전에 단체행동을 통해 자본과 국가를 압박하는 전술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이들 노선이 반드시 자본이나 국가에 대해 협조적인 것은 아니다.
장귀연은 비즈니스 노선의 대표로 미국의 노동조합, 코포라티즘 노선으로는 중북부 유럽의 사민주의 성향 국가들(스칸디나비아 국가들, 독일, 네덜란드 등)의 노동조합을 들고 있다. 하지만 장귀연 역시 인정하듯 어느 최상급노조든 하나의 노선만으로 설명되기 힘들고, 조합원의 경제적 실리 추구, 자본 및 국가와의 타협을 통한 노동계급의 사회 정치 경제적 지위향상, 자본주의 모순 극복이라는 다양한 목표를 추구하면서 특정 시기와 특정 경우에 있어 그 강조점이 다르다고 볼 것이다.
오늘날 민주화된 자본주의 국가에서 합법성을 획득한 전국적인 최상급노조가 사회주의나 무정부주의와 같은 변혁적 노선을 공식적으로 천명하기 어렵기 때문에 변혁적 노선은 19세기말 유럽 노동조합이나 과거 식민지 국가의 노동조합, 혹은 오늘날 일부 제3세계 국가에서 가능한 노동조합의 노선이다.
결국 민주화된 자본주의 국가에서 전국적인 최상급노조가 선택할 수 있는 현실적인 노선은 비즈니스 노선과 코프라티즘 노선을 기본으로 하되 경우에 따라 선언적인 의미에서 사회변혁노선이 함께 가미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코프라티즘 노선으로 평가받는 서유럽의 노동조합도 19세기에는 변혁적 노선을 채택했는데, 이처럼 동일한 노동조합이라도 초창기의 노선이 사회의 정치경제적 조건이 변하는 것과 함께 변화될 수 있다.
미국의 권력분산적인 연방제 안에서 견고한 소선거구제 양당제로 인해 전국적인 단위의 노동자의 정치세력화가 봉쇄되고 있다. 또한 최상급노조는 정당정치에 직접 참여하기보다는 자신의 이해관계와 정책을 관철시키기 위해 기존의 보수정당을 지지하거나 압박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에서 최상급노조가 전국적인 총파업을 통해 총자본과 국가를 압박하면서 노사정의 사회적 타협의 주체로 나서는 일은 찾아보기 힘들다.
반면 유럽의 경우 대부분 중앙집권적인 국가권력구조 안에서 좌파정당이 존재하기 때문에 전국적인 단위의 노동자의 정치세력화가 실현되었거나 추진되기 때문에 노동조합은 특정 좌파정당을 지지하기도 하지만 직접 정당정치에 참여하거나 전국적인 규모의 사회적 타협의 주체로 나선다. 따라서 유럽의 경우 각 국가마다 차이가 있으나 최상급노조가 총파업 등을 통해 직접 총자본과 국가를 압박하여 양보를 얻어내려는 코프라티즘적 경향을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다고 봐야 한다.
 
 
2) 좌파정당과 최상급노조의 관계 모델
 
노동조합은 역사적으로 노동자들이 시민권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등장하였으며, 오늘날에도 본질적으로 시민사회운동의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실제로 다양한 시민사회운동과 대면하면서 다양한 연대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노동조합과 당의 관계는 시민사회운동과 당의 관계라는 큰 범주에서 비교하여 고찰할 수 있다.
정상호(2007)는 정치적 기회구조를 기준으로 시민사회운동이 독자적인 정치세력화에 나서는지를 기준으로 시민사회운동과 당의 관계를 분류하였다. 이에 따르면 시민사회운동이 의회에 쉽게 진입할 수 있는 선거제도 이를테면 정당명부비례대표 선거제도가 존재하는 경우, 시민사회운동이 동맹할 수 있는 정당이 없는 경우라면 시민사회운동은 당연히 독자정당 모델을 선호하며, 나아가서 자신의 요구를 수용할 의사가 있는 정당이 있는 경우라도 즉 동맹할 수 있는 정당이 있더라도 시민사회운동은 독일의 녹색당처럼 독자정당 모델을 추구한다. 반면 의회진입이 어려운 소선거구 다수대표 선거제도가 존재하는 경우 시민사회운동은 자신과 동맹할 수 있는 정당이 있는 경우 정당과 연대하는데, 이런 경향은 주로 미국의 시민사회운동에서 발견된다. 시민사회운동은 자신의 의회진입도 어렵고, 자신과 동맹할 수 있는 정당도 없는 경우 비정치모델을 추구한다. 비정치모델의 경우 단순히 사회의 압력단체로서 존재할 수 있지만 자본주의 초기에 원내진입이나 시민권 획득이 차단되었던 노동자단체처럼 급진적 성향을 띨 수도 있다.
한편 이정희(2004)는 시민사회운동이 정당을 대하는 태도를 기준으로 양자의 관계를 먼저 협력모델, 경쟁모델, 갈등모델로 구분하고 협력모델에서 다시 양자의 일방이 우위에 있는 관계와 대등한 관계로 세분하였다.
노동조합의 노선이 역사적으로 변해왔듯이 노동조합과 정당의 관계 역시 역사적으로 변해왔다. 정영태(1995)에 의하면 노동조합이 합법성을 획득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이 보통선거권을 얻지 못하는 경우 노동조합이 19세기 말 러시아처럼 조직적으로 이념적으로 통일되어 있다면 혁명적 사회주의 정당과 결합하지만 19세기 프랑스처럼 분열되어 있다면 혁명적 생디칼리즘(syndicalism)과 결합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처럼 보통선거권과 노동조합의 권리가 보장되지만 좌파정당이 존재하지 않을 경우 노동조합은 기존 정당들과 사안별로 결합한다. 반면 보통선거권은 보장되어 있으나 노동조합의 권리가 제한되어 있을 경우 노동조합은 청원이나 장외투쟁을 하게 되는데, 이러한 분류에 따르면 한국노총이 전자에, 민주노조운동이 후자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 노동자들은 19세기와 달리 대부분 선거권과 노동기본권을 보장받고 있으며 노동조합은 합법적인 최상급노조의 형태로 존재한다. 따라서 노조와 당의 관계는 전국적인 최상급노조와 노동자정당의 관계를 의미한다(장경섭, 장귀연, 이재열, 2002).
공덕수(2000)에 따르면 노동조합과 정당의 관계는 이념과 제도 및 사회 문화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의 역량에 좌우되는데, 노동자들의 역량에는 노동조합 조직율, 노동조합의 통합수준과 집중도, 노동자에 우호적인 정당의 통합수준, 노동조합과 정당의 조직적 연계 등이 포함된다. 이러한 기준에 근거하여 공덕수는 노동조합과 정당의 관계를 노조독립형, 정당의존형, 노조의존형, 국가 코포라티즘적 통제형으로 구분하고 있다.
또한 발렌수엘라(1991)는 노동조합의 형성과정, 전국적인 최상급노동조합의 수, 노동조합과 정당의 연결 모습, 정치체제 등의 기준을 근거로 노동조합과 정당의 관계를 사회민주주의 유형, 경쟁적 유형, 압력단체 유형, 국가후원 유형, 정부와의 대립 유형 등으로 분류하고 있다. 노동조합과 정당이 역사적으로 반체제운동의 일환으로서 동시에 성립한 사회민주주의 유형에서는 양자의 밀접한 관계가 상당히 지속적이다. 정부와 대립하면서 당면한 이익보다는 장래의 이념적 비전을 노동자들에게 어필하면서 성장한 야당일수록 노동조합에 대한 조직적 영향력을 증대시켜왔다. 사회민주주의 유형은 노동자의 노동조합 가입률이 높고 하나의 전국적인 최상급노동조합이 존재하거나 복수의 최상급노조가 존재하더라도 그 수는 제한적이며 이들 복수의 최상급노조들은 언어, 종교 등의 측면에서 독립적이고 안정적이어서 상호 경쟁적인 관계에 있지 않다. 사회민주주의 유형에서 노동조합이나 정당은 온건한 사회주의적 지향을 지니고 있어 점진적인 개혁을 선호하는 편이다.
이러한 유형 중에서 국가 코포라티즘적 통제형이나 국가후원 유형은 민주노조를 전제로 할 때 고찰대상이 되지 않는다. 또한 정부와의 대립 유형은 과거 노동자의 기본권과 민주주의가 정립되지 않았던 자본주의 초기나 혹은 전체주의 혹은 독재국가에서 나타나는 것으로서 민주주의가 발전한 자본주의 국민국가에서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정병기(1994)는 유럽 좌파의 노조-정당 관계를 공산주의형, 사민주의형, 영국형으로 분류한다. 이러한 분류는 그 내용을 보면 역사적으로 초기에 프랑스와 같이 노조와 정당의 독립적인 관계, 독일과 같이 정당의 노조에 대한 우월한 관계, 노조의 정당에 대한 우월한 관계 등으로 분류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며, 저자 역시 같은 취지로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좌파정당과 전국적인 규모의 최상급노동조합의 관계를 고찰함에 있어서 양자가 처음에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 또한 그 관계가 역사적으로 변화되어 특정 시점에서 어떤 관계에 있는지의 문제는 다른 차원이므로 분류기준이 달라야 한다. 이를테면 유럽에서 사회주의정당과 노동조합의 관계는 독일의 사례에서 보듯이 마르크스가 정립한 제 1 인터내셔널의 입장 즉 정당의 우위를 기본으로 한다. 이 경우 정당은 노동조합에게 조합원의 구체적 이해관계를 뛰어 넘어 전체 노동계급의 단결에 기여하도록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 또한 정당이 노동조합에 관한 정책에 있어 높은 수준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다면 이러한 정당은 노동조합의 통합에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하지만 2 인터내셔널 시기의 수정주의와 대중파업 논쟁을 거치면서 사민주의 진영에서는 절대적 정당 우위 지형이 1905년 만하임협정을 계기로 사라지고 영국형보다는 약한 독립주의를 형성하게 된 반면, 정치투쟁과 경제투쟁의 변증법적 관계의 입장에 섰던 공산주의는 파업의 중요성을 인정하는 가운데 여전히 정당의 우위 지형을 유지하였다. 특히 프랑스의 CGT와 이탈리아의 l'Union syndicale 및 스페인의 CNT의 사례에서 보듯이 서유럽의 라틴 국가 노동조합들은 전통적으로 구체적인 노동현안을 해결하는데 주안점을 두면서 특정 정당들로부터 독립적인 관계를 유지하려는 태도를 취하였다. 특히 프랑스의 아미앙 헌장은 이러한 입장을 잘 드러내고 있다(Bergounioux, 1983: 21).
정리하면 양자의 관계는 노동조합의 형성과정, 전국적인 최상급노조의 수, 노동조합과 정당의 연결 모습, 정부와의 관계에 따라 형성되는데, 첫째, 노동조합과 정당의 발생사적 관계를 기준으로 독일처럼 정당이 노동조합 창설을 주도한 경우와 영국처럼 노동조합이 정당을 만든 경우 및 프랑스처럼 양자가 역사적으로 무관한 경우로 분류할 수 있는데, 정병기는 이를 각각 정당 우위의 사민주의형, 노조 우위의 영국형, 프랑스의 공산주의형으로 분류한다. 공덕수 역시 노동조합과 정당의 관계를 노조독립형, 정당의존형, 노조의존형으로 분류한다.
둘째, 오늘날 양적 관계 기준으로 볼 때 전국적인 최상급노조와 좌파정당이 각각 1 : 1의 관계를 맺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나누어 볼 수 있는데, 발렌수엘라는 전자를 사회민주주의 유형으로 후자를 경쟁적 유형으로 분류한다.
셋째, 오늘날 내용적 관계를 기준으로 양자가 독립적인 압력단체로서 상호작용하는 관계인지 혹은 공식적 협력관계인지를 제시할 수 있다. 또한 양자가 공식적 협력적이라면 누가 우위에 있는지의 역학적 관계를 기준으로 정당 우위형, 노조 우위형, 대등형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 민주화된 자본주의 국가에서 대부분 양자는 과거의 우열관계를 벗어나 협력과 갈등관계를 거쳐 점차적으로 상호 독립적인 관계로 전환되고 있다.
넷째, 노동조합과 정당의 대국가적 관계를 기준으로 본다면 공덕수는 국가 코포라티즘적 통제형을, 발렌수엘라는 국가후원형과 정부와의 대립형을 제시하고 있으며 정병기는 독일에서 보듯이 국가, 자본, 노동조합 등 3자의 사회적 대타협에 근거한 사회 코포라티즘 모델을 사회민주주의 모델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민주화된 자본주의 국가에서 전국적인 최상급노조를 전제로 할 때 국가 코포라티즘적 통제형과 국가후원형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정부와의 대립 유형은 과거 자본주의 초기나 전체주의 국가에서 나타나는 것으로서 민주주의가 발전한 자본주의국민국가에서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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