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좌파정당과 최상급노조의 관계 비교분석을 위한 유사 사례의 도출

1)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관계 분석에서 반체제세력의 제도화 이론의 유용성
 
한국의 정당정치는 민주화 이후 정치엘리트들의 정략적 제휴와 대립에 장단을 맞추어 이합집산을 거듭하면서 이들을 정점으로 하는 담합적 정당체계를 구축하였다. 한국사회의 남북대립 이외에 동서의 지역균열, 계급균열, 민주대 반민주 균열은 1980년 광주민주화항쟁을 거치면서 더욱 반체제적 성격을 강화하였고, 1987년에 이르러 드디어 폭발하였다. 그러나 6.29선언과 그 이후 정치일정이 보여주듯이 1987년의 폭발은 ‘5년 단임제를 핵심으로 하는 제6공화국 헌법이라는 정치엘리트들의 협약으로 귀결되었다. 그 결과 기존 지배세력과 3김들이 민주화의 성과를 나눠 가졌고, 특히 노동자세력은 철저히 배제되었다. 1991년 노태우 정권의 3당 합당은 담합정당의 극단적인 형태였으며 이로 인해 반민주 대 민주의 균열은 해소되었다(김수진, 2008: 89-120). 이후 이러한 담합정당의 모습은 김대중과 김종필의 연합으로 인한 1997년 대선 승리에서 반복되었다. 특히 한국식 담합정당의 배경에는 지역대립과 지역연합이라는 후진적 행태가 구조화되어 현재까지 청산되지 못하고 있다.

한국에서 좌파정당은 민주노동당으로 나타났지만 민주노동당이 국민참여당과 통합함으로써 국민정당화의 경향을 드러냈으며, 통합진보당이 해산됨으로써 좌파정당은 소멸되었다. 하지만 현재 한국사회에서 민주화운동, 통일운동, 노동운동 등 과거 반체제세력들이 대부분 제도화되었다는 점에서 향후 어떤 형태이든 이들의 지지를 받는 좌파정당이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민주노동당의 소멸을 극복하여 다시 나타날 좌파정당이 사민주주의 소수정당에 머무는 지체형이 될 것인지, 혹은 분단과 천민자본주의라는 모순을 급격히 극복하며 비약형으로 도약할 것인지, 아니면 제도장벽과 진입장벽을 서서히 무너뜨리고 압축형으로 성장할 것인지는 유동적이다.
특히 한국의 경우 분단과 대외종속이라는 국민국가적 과제가 민족민주혁명 방식으로 갑자기 해소되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반체제세력이 팽창하여 좌파정당이 비약형에서 보듯이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급성장할 수 있다. 물론 이 경우에도 브라질이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보듯이 세계자본주의 체제에 편입되어 있는 이상 좌파정당이 선거를 통한 재집권을 추구하는 한 우경화를 피할 수 없다.
한편 한국사회가 내부적으로 저출산고령화사회와 후기산업사회로 진입하였고 외부적으로 자본주의 국제분업체제로의 편입이 심화되고 있는데, 이러한 객관적인 한계를 수용하는 좌파정당은 원내 의석을 확대하려는 자신의 요구에 따라 자신의 정체성을 점차 상실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좌파정당이 주요정당으로 성장하기도 전에 사회주의적 성격을 상실하는 조로화의 경향을 보일 수 있으며, 또한 좌파정당이 원내 소수정당으로 고착되는 지체형에 머물 수도 있다.
민주노동당이 신자유주의 정책을 도입했던 중도우파세력인 국민참여당과 통합하는 과정에서 내분으로 붕괴된 것은 이러한 조로화현상의 일환으로 이해될 수 있다. 물론 반대로 과거 통합진보당이나 현재 정의당의 희망적인 성장전략에서 보듯이 국민정당노선의 채택, 중도우파와의 정치연합을 통해 서구의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경로를 답습하는 압축형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한국에서 반체제세력의 제도화 양상에 따라 향후 좌파정당의 발현형태는 지체형, 비약형 등 다양해질 수 있으나 자본주의 선거제도에 순응하는 제도정당이 사회변혁을 완수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사회주의 세력의 목표가 집권이 아닌 사회변혁인 한 사회주의세력이 스스로를 제도정당으로 탈바꿈하여 사회변혁을 완수하겠다는 전략은 필연적으로 실패한다는 것이다.
 
 
2)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관계 모델
 
한국에서 노동계급의 정치세력화가 민주노총의 정치세력화로 치환되는지 논란이 될 수 있으나 국민국가 안에서 노동계급의 대표성은 결국 최상급노조로 귀결된다는 점, 한국노총은 그 보수적 성격을 논하지 않더라도 출범 당시부터 노동계급의 정치세력화 즉 독자적인 노동계급의 정당을 지향하지 않았으므로 민주노조운동의 역사적 계승자로서 민주노총의 정치세력화가 한국 노동계급의 정치세력화라고 규정할 수 있다.
한국에서 최상급노조의 역사를 간단히 살펴보면 1920년 조선노동공제회는 최초로 등장한 전국적인 노동자단체로서 노사협조적인 개량주의적 단체였다. 하지만 사회주의의 영향을 받은 이 단체의 구성원들이 1922년 조선노동연맹회을 구성하였으며, 이 단체가 1924년 조선노농총동맹에 흡수되었으나 다시 1927년 조선노동총연맹으로 독립하였다. 조선노동총연맹은 조선공산당의 강력한 영향 아래 사회변혁을 추구하였으며, 이러한 경향은 1945년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까지 이어지다가 남북분단 이후 사회변혁을 추구하는 최상급노조는 1987년 민주화시기까지 단절된다.
반면 1945년 좌파에 대항하여 결성된 대한독립촉성전국청년총연맹이 1946년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를 견제하려는 미군정청의 비호아래 대한독립촉성전국청년총연맹(대한노총)으로 전환되는데, 이 단체는 이승만과 김구 등을 고문으로 하여 반공과 노사협조를 지향하였다. 1948년 이승만 대통령은 스스로 대한노총의 총재가 되어 그해 대한노총을 대한노동총연맹으로 전환토록 하였다. 1959년 대한노총에서 전국노동조합협의회가 떨어져 나왔으나 반공과 노사협조 노선은 변함이 없었으며, 양 조직은 19604.19혁명 이후 민주화 분위기 속에서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으로 통합하였다. 한국노총은 5.16군사정변으로 일시적으로 해산되었으나 바로 군사정부에 의해 재구성되었으며, 1987년 민주화 이전까지 군사정부의 비호아래 있었다.
한국노총의 한계에 비판적이던 민주노조운동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연대와 통합을 거듭한 끝에 1990년 전국노동조합협의회를 구성하였는데, 한국노총과 다르게 단체결성권, 단체협상권, 단체행동권 등을 갖지 못한 불법노조였기 때문에 사회변혁적 경향이 강하였다. 전노협은 1995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으로 이어졌는데, 민주노총은 비로소 합법적인 노동총연맹의 지위를 획득하고 총자본과 국가에 대해 투쟁과 협상을 병행한다는 노선을 천명하였다.
이러한 민주노총의 조직화는 노동시장 영역에서 계급적 노동운동의 조직기반이 확립되었음을 의미하였고 이는 바로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로 이어졌다. 민주노총은 1995년 창립선언문과 강령 및 규약을 통해 노동자의 정치세력화와 민주세력과의 연대 및 노동자정당 건설을 선언하였고 19972월 대의원 대회에서 “1998년 지방선거 참가, 1998-99년 정당건설, 2000년 국회의원 선거 참가라는 정치일정을 확정하였고 당면해서 대통령선거에 적극 대응하기로 결정하였다(민주노총, 2012c).
한국에서 출현하였던 최상급노조의 노선을 살펴보면 일본 지배기와 군사정권에 맞섰던 민주화 투쟁시기에는 사회변혁을 추구하는 경우가 있었고, 반대로 총자본과 국가에 종속되어 있는 전체주의 노선도 존재하였지만 민주화가 어느 정도 진행된 이후에는 이러한 노선은 사라졌다.
민주노총 역시 199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민주노조운동의 변혁적 이상을 선언적 의미에서는 계승하고 있지만 법외노조인 전노협 시기의 강경노선을 벗어나면서 총자본과 국가와의 협상에 의한 노동계급의 지위향상을 추구하되 구체적인 사안에서는 조합원의 경제적 실리를 도모하는 등 코포라티즘 노선을 견지하고 있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1998년과 1999년 파업투쟁을 전개하면서 내부 반발을 무릅쓰고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하여 사회적 타협안에 동의하는 등 사회개혁투쟁과 이를 위한 사회적 조합주의를 지향하였다. 민주노총 스스로의 주장에 따르면 이러한 사회적 조합주의는 남아공의 코사투의 활동에서 착안한 것이었으나 현실에 있어서는 신자유주의 압박 아래 저성장과 고실업의 한국적 상황에서 산업별 노조 결성, 중앙교섭 지향, 경영참가와 정책참가 등으로 변질된 양날개론으로 나타났다. 이는 민주노총 내 반발을 불러일으켰는데, 좌파적 관점에서 탈계급화되고 탈정치화된 사회개혁투쟁으로 인식되었다(조효래, 2001).
한국의 경우 아직은 노사 모두 다수결 민주주의에 의해 갈등을 해결하는 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노사문제는 갈등을 중심으로 전개되면서 대부분 국가권력의 비호를 받는 자본가 측이 우위에 서 있으며, 강력한 노조가 존재하는 경우에는 노사협상 혹은 국가의 중재에 의한 타협에 의해 문제를 해결 하고 있다. 따라서 대부분의 노사 문제는 다수결민주주의보다는 힘의 대결을 전제로 한 타협을 지향한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시민사회운동과 당의 관계에 대한 정상호의 분류에 따라 정부수립 이후의 노조와 당의 관계를 살펴보면 먼저 한국의 선거제도는 기본적으로 시민사회운동이 독자적으로 원내에 진출할 수 없는 소선거구 다수대표 제도였으며, 이러한 조건에서 제도권 내에 있는 한국노총은 민주화 이전에는 수구보수여당과, 민주화 이후에는 수구보수정당 혹은 중도보수정당과 정책연대를 하거나 한국노총의 지도부가 이들 정당의 비례대표의원으로 활동하였다.
반면 민주노조운동은 제도권 밖에 있었던 민주화운동 시기에는 비정치모델을 추구하였는데, 그 이유는 기존의 의회 내 정당들이 모두 보수정당이었기 때문에 민주노조의 사회변혁적 경향과 부합하지 않았고, 보수정당의 입장에선 아직 합법성을 취득하지 못한 민주노조운동과 공식적인 관계를 맺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반면 제도권에 진입한 민주노조로서 민주노총은 창립 직후 권영길 위원장을 대통령선거에 출마시키고 독자정당 창당으로 나아갔다. 민주노총에 의해 창당된 민주노동당은 헌법소원을 통해 정당명부비례대표제를 관철함으로써 소선거구 다수대표 제도를 일부 이완시켜 원내에 정착하였으며, 그 이후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은 1 1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공식적인 지지관계를 맺어왔다. 이처럼 시민사회운동의 관점에서 본다면 민주노총이 독자정당 창당에 성공하였다는 점에서 미국의 경우보다는 유럽의 경우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의 관계는 하나의 민주노조와 하나의 좌파정당이라는 관점에서 양적 형태를 기준으로 발렌수엘라의 사회민주주의 모델이며, 민주노총이 민주노동당 창당을 주도했기 때문에 노동조합과 정당의 형성과정을 기준으로 볼 때 영국형이다. 또한 민주노총이 민주노동당을 배타적으로 지지하고,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에게 대의원을 할당했기 때문에 양자는 영국의 경우와 같이 공식적 협력관계이며, 양자의 관계에서 초창기에는 민주노총이 우위에 있었으나 점차 그 관계가 역전되었다는 점도 영국의 경우와 유사하고 비공식적인 협력관계를 맺고 있는 독일이나 프랑스와는 다르다.
독일처럼 노조에 대한 정당의 우세한 영향력을 기반으로 한 사회적 대타협인 코프라티즘이 있는 경우를 사회민주주의 모델로 보고 이를 영국과 구별하는 정병기의 입장에서 보면 민주노총이 사회적 대타협을 내심 지향했지만 민주노동당이 소멸하기 전에 노사정의 사회적 대타협에 결합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는 점에서 코프라티즘 노선은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의 관계에서 실제로 실현될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하였다.
 
 
3) 유사 사례의 비교분석의 대상으로서 독일 영국 프랑스 모델
 
노조와 정당의 관계는 역사적으로 변해왔기 때문에 양자의 관계가 어떻게 처음에 설정되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는 모두 연속적으로 살펴야 한다. 대부분의 유형에서 노조는 정당과 긴장관계를 유지하면서 점차 독립성을 확보하였다. 정병기는 양 조직이 긴장관계에서 갈등을 유지하고 있는지 아니면 협력관계에서 갈등을 해소하고 있는지의 기준도 제기하고 있으나 노조와 정당의 관계는 동일한 양자의 관계에서도 협력과 갈등 모두 나타날 수밖에 없고 단지 구체적인 사회적 조건과 역사적 조건에 따라 강조점이 다를 뿐이라고 볼 수 있다.
오늘날 발달한 자본주의 국가에서 최상급노조와 좌파정당의 내용적 관계를 보면 미국에서 양자는 과거나 현재 모두 공식적으로 무관하고 상호 인력이나 조직을 공유하지 않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도 무관하다. 다만 노조는 자신의 이해를 관철하기 위해 정당의 의사결정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지만 선거 때 지지선언과 지원 등을 무기로 간접적으로 압력단체처럼 작용하고 있을 뿐이다.
반면 유럽에서는 대부분 아직까지 상호 인력이나 조직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공식적이든 실질적이든 양자는 밀접한 관계가 있고 특히 노조는 인적 자원을 공유함으로써 정당의 의사결정에 관여할 수 있으므로 압력단체 이상의 위치에 있다. 특히 유럽의 최상급노조는 우호적인 정당을 매개 고리로 삼아 국가적 차원의 정책타협을 추진한다. 유럽의 이러한 경향은 유럽의 대부분의 좌파정당과 최상급노조가 국가를 통한 자본주의 모순 개선이라는 사회민주주의 노선을 수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날 발달한 자본주의 국가에서 양자의 관계는 미국형의 압력단체적 관계와 유럽형의 사회민주주의적 관계를 기본으로 하면서 각국의 사정에 따라 방점이 다를 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코시는 오늘날 노동조합이 기본적으로 정당에 대하여 자율성을 갖고 있다는 전제에서 양자의 관계에 대해 압력형과 정치적 압력형으로 구분하는데, 압력형에는 미국의 비지니스형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아미앵헌장으로 상징되는 전투적인 노동조합주의가 포함될 수 있다. 정치적 압력형은 과거와 달리 노동조합과 정당이 형식적으로 지배종속관계를 갖는 경우는 드물고 자율성을 기본으로 내용적으로 상호영향력을 행사하는 절충형이 대부분이다(Cauchy, 2002).
유럽에서 최상급노조와 좌파정당의 관계에 있어 양자의 발생사를 기준으로 보면 영국노동조합대표자회의는 영국노동당을 창당하였고, 반대로 독일사민당은 독일노동조합연맹의 전신인 자유노조의 창설에 관여한 반면 프랑스 노동총동맹은 정당과 독립적으로 창설되었다. 오늘날의 시점에서 양자의 양적 관계를 보면 영국은 강력한 1 : 1의 관계이며, 독일은 지배적인 1 : 1의 관계이나 프랑스는 공산당과 사회당 등 당이 분열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최상급노조도 분열되어 경쟁적 유형이므로 1 : 1의 관계는 공산당과 프랑스 노동총동맹의 경우에만 잔존하고 있다. 또한 오늘날 영국은 과거보다 느슨해졌지만 아직도 공식적인 협력관계를 보이고 있고 다만 더 이상 노조 우위형으로 분류할 수 없다. 독일과 프랑스는 공식적인 협력관계를 청산하였지만 실질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으며 더 이상 정당 우위형으로 분류할 수 없다.
사회민주주의 유형에서는 사회적 타협노선인 코프라티즘이 형성되는데, 이는 전체주의 국가에서 발견되는 코프라티즘과 다른 것이다. 이러한 코프라티즘이 가능하려면 노동조합과 좌파정당이 동맹을 맺은 상태에서 좌파정당이 집권하고 나아가 사회 전체의 다양한 이해집단이 정부나 의회에 참여하여 스스로 정치적 합의를 도출할 수 있는 역량이 있어야 한다. 또한 노사정의 합의가 유지되려면 경제구조가 동질적이고, 거시경제 지표가 안정적이며, 중간 정도로 경제가 성장 중이어야 하며 정부와 관료가 이러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고 실행할 수 있는 역량이 있고 이해당사자들이 이러한 사정에 대한 신뢰를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또한 노동조합이 자신과 밀접한 집권정당의 정치적 성공을 위해 헌신하려는 노력도 중요하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의 관계는 주지하다시피 유럽형의 사회민주주의적 관계를 기본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유럽에서 양자의 관계와 비교할 수 있다. 특히 좌파정당과 최상급노조의 관계가 1 : 1의 관계에서 시작하였다는 점에서 영국, 독일, 프랑스와 유사하고, 민주노총이 민주노동당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영국과 유사하다. 반면 민주노총이나 민주노동당 모두 초창기에 사회주의의 영향을 받으면서 개량주의를 경계하고 사회변혁을 추구하였으나 잠차 개량주의노선으로 변질되었다는 점에서 독일과 유사하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의 관계가 영국 모델처럼 노동조합에 대한 정당의 의존형 모델이지만 영국의 노동당과 달리 민주노동당의 경우 노동계급 이외에 농민, 빈민, 청년학생, 통일운동세력 등이 창당 때부터 참여하여 노동자정당과 민중정당의 성격을 동시에 지녔다고 볼 수 있다.
사실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 양자가 지향했던 코프라티즘이 한국적 상황에서 실제 가능한 조건들을 구비했는지를 확인조차 못한 셈이다. 이를테면 제 2차 대전 직후부터 20여 년 동안 유럽 사민당정부는 자본주의 혼합경제와 복지국가를 결합한 사민주의 복지국가를 확립하였는데, 이는 유럽 합의정치의 전통이 노동자와 자본 간의 타협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이러한 타협이 가능했던 것은 포드주의 아래서 동질적인 노동계급이 노동조합과 정당으로 결집되어 조직적으로 협상할 수 있었고 노동자와 자본이 배분할 수 있는 경제성장의 성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유럽의 경우 코프라티즘의 과정에서 양자는 협력과 갈등을 반복하면서 점차 상호독립적인 관계로 나아갔는데,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이 코프라티즘을 경험하지 못하였다는 점은 코프라티즘을 지향했던 양자의 관계가 한국에서는 역사적으로 검증되지 못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럽의 경우 노동조합과 결합하고 있는 정당이 집권할 경우 보통 초기에는 소득정책이나 노동정책에 있어 공동보조를 취하지만 결국은 국제경제체제의 한계로 인해 혹은 노동계급 이외의 일반 유권자의 지지를 얻고자 노동조합과의 협약을 파기하여 긴장관계로 전환된다. 이 과정에서 정당이 노동조합으로 하여금 자본가 집단과 사회적 합의를 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노동조합의 지도부가 정당의 요구에 끌려갈 때는 노동조합 내부의 반발로 내분이 일어나기도 한다. 또한 집권한 좌파정당이 다수 유권자의 지지를 얻으려고 할수록 노동조합의 요구를 부담스러워 한다.
결국 독일, 영국, 프랑스에서 보듯이 좌파정당의 집권을 전후로 하여 양자의 관계는 더 이상 공식적인 협력관계를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이 부분은 향후 한국에서 좌파정당과 최상급노조의 관계를 전망하는데 매우 중요한 지점이다. 양자의 밀접한 관계가 형성되고 유지되는 것도, 그러한 관계가 해소되는 것도 특정한 역사적 조건과 상호 이해관계의 변화 속에서 가능하기 때문이다. 본 논문은 양자의 관계 변화의 조건들을 밝히고자 기본적으로 사회민주주의적 관계 속에서 구체적인 조건들을 달리하면서 유사한 경험을 공유한 독일, 영국, 프랑스의 사례를 추적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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