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정당과 최상급노조의 관계 1(반체제세력의 제도화 이론을 통해 본 좌파정당의 제도화)

1) 반체제세력으로서 반체제정당의 제도화
 
사르토리(1986)는 정당체계의 분류에 있어 듀베르제(Duverger, 1964)의 수량적 기준을 인정하면서도 여기에 이념적 분극화 수준과 반체제정당의 존재라는 정성적 기준을 추가하였다. 이러한 사르토리의 분극적 다당제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적실성 있는(relevant) 반체제 정당의 설정이다. 사르토리에 의하면 정당의 수는 적실성 있는 정당을 기준으로 하는데, ‘적실한 정당이란 어느 정도의 지속성을 유지할 수 있는 득표수, 연합정부를 구성하거나 여당을 위협할 수 있는 능력을 지고 있는 정당이다(곽진영, 2004: 153).

반체제정당은 정부의 교체를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통치체제 그 자체의 변화를 목표로 한다. 반체제정당은 다른 정당들과 비교할 때 뚜렷한 이데올로기적 편차를 보이고 있으며, 자신이 속해 있는 정치체제의 정당성에 타격을 주려는 활동과 선전에 주력한다(Capoccia, 2002: 14). 반체제정당 역시 야당이지만 체제친화적인 야당과 상호배타적인 관계에 있다(사르토리, 1986: 186-187).
한편 달(Dahl, 1966)은 정당 상호간 경쟁성의 측면에 주목해 정당의 수, 선거와 의회 내에서 정치적 반대의 유형에 따라 정당체계를 세분화하였는데, 이러한 정치적 반대의 유형에 관한 달의 분류를 활용하여 사르토리의 반체제정당 개념을 변형시킬 경우 반체제정당은 권위주의체제 등 다양한 유형의 정치체제에 적용될 수 있다(김수진, 2008: 46). 이를테면 권위주의 체제의 저항세력은 그 체제의 모순에 따라 봉건제도나 파쇼에 저항하는 민주주의세력, 자본통치에 저항하는 노동운동세력, 제국주의 지배에 저항하는 민족해방세력 등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
권위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반체제세력은 제도권 바깥의 저항공간에서 성장한다. 이때 권위주의 체제가 반체제세력을 제도에서 배제하는 정책에서 포섭하는 정책으로 전환한다면 반체제세력은 제도 내에서 정권에 대한 반대세력을 동원하고 조직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 결과 반체제세력의 일부가 반체제정당으로 전환된다. 이때 권위주의 정권의 탄압뿐만 아니라 노동과 자본 간의 사회적 합의를 강요하는 국가조합주의 정책 역시 노동자정당의 형성을 억제하였다. 권위주의 정권이 포섭정책을 채택하는 이유는 반대세력을 계속하여 제도 밖에 두는 것이 자신의 체제유지에 더 위험해지기 때문이다. 즉 제도 밖에서 통제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해진 반대세력을 제도 안으로 끌어들여 자신의 영향권 아래에 두는 한편, 체제 밖의 잠재적 폭발력을 완화시키겠다는 의도이다(Dahl, 1973: 12-18).
이러한 반체제정당의 유형은 그 정당이 자신의 강령을 달성하기 위해 급진적 혹은 개량적 행동전략을 채택하는가에 따라, 또한 조직목적이 지지세력에 대한 통제 혹은 정당조직의 성장인가에 따라 4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1 선거에 참여하는 반체제정당의 유형
조직목적/행동전략
혁명적 전략
개량적 전략
지지세력에 대한 통제
선거에 참여하지 않음.
선거에 참여하지 않음.
정당조직의 성장
선동적 반체제정당
절차적 반체제정당

그런데 지지세력에 대한 통제를 조직적 목적으로 하는 경우 정당의 정체성과 무관한 불특정 다수의 지지를 얻으려는 선거에 참여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 반면 정당조직의 성장을 조직적 목적으로 하는 경우 자신의 지지세력을 조직기반으로 하여 선거를 통해 불특정다수에 대한 지지기반을 확장하려고 한다(김수진, 2008: 48). 따라서 반체제정당이 지지세력에 대한 통제를 목적으로 하는 경우 제도정당으로 전환되지 않는다. 반면 정당조직의 성장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 보통 선거에 참여하는 제도정당으로 전환되며 이들 중에서 선동적 반체제정당은 급진적 전략을 택하는 반면 절차적 반체제정당은 개량적 전략을 택한다. 선동적 반체제정당은 중간층을 확보하여 득표율을 높이는 개량적 전략보다는 급진적 전략을 택하는 반면 절차적 반체제정당은 반대로 개량적 전략을 택한다. 이처럼 반체제정당이 애초부터 모두 혁명적인 사회변혁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고, 심지어 급진적 전략을 채택했던 반체제정당이 향후에 개량적 전략으로 방향을 틀수도 있다.
민주노동당의 거대한 소수전략에서 보듯이 반체제정당은 제도권 밖의 저항세력과 결합할 때 그 영향력을 증대할 수 있다. 따라서 권위주의 체제에서 의회 밖 반대세력이 약하거나 분산되어 있으면 강력한 반체제 정당은 출현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반체제정당의 전략은 당 지도부의 의회 밖 반대세력에 대한 독립성에 좌우된다. 반체제정당이 반체제세력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에 있다면 반체제정당은 체제 전복적인 선동적 전략을 구사한다. 그 반대일 경우 반체제정당은 절차적 전략을 구사하나, 그로 인해 의회 밖 반대세력과의 결속력이 약해지고, 반체제정당의 세력은 약화된다(김수진, 2008: 71).
초창기의 반체제정당은 기존 정치질서의 가치와 조화될 수 없는 신념체계에 따라 활동하기 때문에 체제의 정당성을 잠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체제정당은 체제의 외부에서 활동함과 동시에 체제의 내부에서도 활동하며 뚜렷한 방해 행위뿐만 아니라 부드럽게 체제에 침투하기도 한다. 초기의 반체제정당은 체제의 통제와 의회 역할의 한계로 인해 제도권 내에서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며 연립정부에 참여하거나 단독으로 집권할 가능성이 없다. 반체제정당의 입장에선 권위주의 체제 아래 합법적으로 구조적 개혁을 할 수 있는 길은 사실상 봉쇄되어 있으며, 그렇다고 해서 반체제정당이 선동적 전략만을 구사할 경우 유권자에게 무책임한 정당으로 비쳐질 수 있다.
반체제정당은 현존 정치질서의 정통성을 공개적으로 부인하면서도 그 체제 내의 제도와 정치과정에 참여해야하기 때문에 선거에 참여하는 경우 대부분 급진적인 선동적 유형과 개량적인 절차적 유형 사이에서 모호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전략적 모호성은 사회주의정당이 사회민주주의정당과 공산당으로 분리되는 것에서 보듯이 전략선택을 둘러싼 당내 갈등과 분열을 심화시킨다. 이러한 전략적 모호성은 반체제정당이 정치체제를 인정하는 절차적 전략을 통해 구조적 변혁을 성취하는데 강한 회의심을 갖고 있는 반면, 반대로 정치체제를 부정하는 강력한 대중선동을 통해 급진적 구조변혁을 강행할 경우 지배세력의 공격으로 정당조직의 존립마저 위태로울 수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김수진, 2008: 47-48).
반체제세력의 일부가 전환된 반체제정당이 자본주의 국가체제 내에서 합법화되어 선거에 참여하게 되면, 기존의 제도정치라는 환경에 반응하면서 다른 제도정당과 경쟁하게 된다. 반체제정당이 이처럼 자본주의 제도에 적응하면서 점차 포섭되어가는 과정을 제도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러한 제도화 과정을 통해 반체제정당의 원래 조직의 목적과 성격이 제도정당과 유사하게 변화되어간다. 이러한 과정은 반체제운동 반체제세력 반체제정당 제도정당으로 정리될 수 있다. 결국 반체제운동 역시 다른 사회운동과 마찬가지로 체제 그 자체와 체제 내 경쟁자라는 조건 아래서 변화과정을 겪는다. 따라서 초창기 자본주의 체제 밖에 있었던 사회주의운동이나 노동운동과 같은 반체제운동의 변화과정을 사회운동의 변화과정의 관점에서 분석할 수 있다.
사회운동은 사회나 어떤 집단의 변화를 가져오거나 혹은 변화에 저항하기 위해 상당한 지속성을 갖고 비교적 조직적 체계적으로 이루어지는 다중에 의한 운동으로 정의된다(조돈문, 1996: 17). 사회운동 혹은 사회조직의 발현 양상은 어떤 주체가 자신의 경쟁자나 환경에 끊임없이 반응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사회운동은 정치적, 경제적, 이념적 변동이나 순환에 의해 변화되는 환경에 대해 그 자신이 반응할 뿐 아니라 사회운동에 종사하고 있는 구성원을 반응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각각의 주기를 지니고 있다(Frank, & Fuentes, 1987: 1504), 일부 학자는 이를 유기체적 주기에 비유하기도 한다(Ernst, & Kier, 1990). 사회운동이나 사회조직은 비록 유기체가 아니지만 그것의 최초의 성격 설정, 객관적 조건과 경쟁적 주체에 대한 자극과 반응, 적응과 재설정이라는 측면에서 유기체의 주기에 비유하여 그것의 변화과정을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찍이 허버트 블루머(Herbert Blumer)와 틸리(Tilly)는 사회운동의 발현 양상이 유기체의 주기(life cycle)에 비유될 수 있기 때문에 양자 사이에 분석적 유사성이 있다는 점을 발견하고 사회운동 과정을 주기 모델로 설명하였다(Christiansen, 2009: 1). 특히 블루머는 사회문제에 대처하는 사회운동 과정을 사회문제의 등장, 사회문제의 제도화, 사회문제에 대한 행동 조직, 행동의 공식계획의 형성, 공식계획의 실천 등 5단계로 분류하였다(Blumer, 1971: 301).
반면 오늘날 대부분의 사회학자들은 사회운동의 과정을 등장, 동맹, 관료화, 쇠퇴 등 4단계로 분류한다. 1단계에서는 사람들은 사회문제를 인식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지도자를 수용한다. 2단계에서는 사람들이 사회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하고 사회적 관심을 끌고자 뭉치고 조직을 만든다. 3단계에서는 사회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사회운동이 자발적인 현장성을 벗어나 제도화되고 안정적인 조직과 유급 관료를 둔다. 이러한 사회운동은 진압되거나 사회문제를 해결하거나 사회문제가 더 이상 심각하게 논란되지 않을 때 쇠퇴하게 된다(Christiansen, 2009: 2).
사회주의정치운동으로부터 갈라져 나온 좌파정당이나 자본주의체제 밖에 있었던 노동운동으로부터 발전해온 최상급노조 역시 하나의 사회운동의 과정이었다는 측면에서 이러한 조직의 제도화의 변화과정은 사회운동 혹은 사회조직의 주기이론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 제도화 변화과정에 주기이론을 적용할 경우 좌파정당과 최상급노조의 다양한 연혁을 장기적 관점에서 일정한 경향성으로 설명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사회조직의 주기이론은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와 같은 사회구성체가 전 단계의 사회구성체인 봉건제에서 그 맹아를 발전시켜 결국은 새로운 사회구성체인 사회주의의 맹아가 되어 사라진다고 보았듯이 사회조직과 그 운동이 주기가 있다는 점을 주목하는 것이다. 다만 사회유기체 이론과 다른 점을 강조한다면, 첫째 좌파정당과 최상급노조와 같은 사회조직 자체를 유기체로 보는 것은 아니다. 사회조직을 유기체로 보는 관점은 사회조직을 하나의 생명체로 보고 그 내부를 사령부에 해당하는 뇌수, 전달띠(매개조직)으로서 신경과 혈액, 운동기관으로서 신체말단 등의 기관으로 나누고 각 기관을 구성하고 실행하는 나사나 톱니로서 개인을 상정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사회조직과 개인의 자발성을 비자발적, 비민주적으로 파악하는 관점이다.
둘째 자연계의 유기체는 거의 절대적인 자연법칙에 따라 탄생과 성숙 및 사망이 나이에 따라 단선적으로 전형적인 양상을 보여주며 따라서 비가역적으로 진행되나 사회조직의 탄생과 성장 및 퇴장은 상대적인 사회법칙에 따르므로 일반적인 경향성을 보일 뿐 모든 경우에 있어 반드시 단선적으로 진행되지도 않으며 경우에 따라서 성장과 쇠퇴를 반복하는 등 가역적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따라서 사회조직의 주기이론 역시 다른 사회이론과 마찬가지로 절대적인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본 논문에서 검토하는 영국, 독일, 프랑스에서 사회주의정당과 최상급노조의 변화과정은 발전된 자본주의 국가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역사적 경향을 보여주고 있으므로 특정 시기만을 한정한다면 제3세계의 모든 사례에 부합하는 것이 아니며, 심지어 최근의 그리스 사태를 보듯이 특정 시점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당과 노조의 변화 과정을 장기적으로 추적한다면, 장기적 추세에서 이탈한 현상은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여 결국 이 논문이 제기하는 역사적 경향성에 포섭될 것이라는 것을 예측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당과 노조의 제도화의 변화과정을 사회조직의 주기이론을 통해 분석하는 것은 나름 유용하다고 볼 수 있다.
 
 
2) 민주화된 자본주의 국가에서 좌파정당의 제도화에 따른 정당의 성격 변화
 
(1) 자본주의 초기 반체제세력으로서 정치운동이 좌파정당으로 제도화되는 과정은 반체제세력의 제도화 이론으로 설명될 수 있다. 좌파정당과 최상급노조는 자본가와 국가에 맞섰던 체제변혁적인 정치운동과 노동운동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양자 모두 초창기에는 자본주의 제도 밖에서 반체제세력으로 존재하였다. 이러한 정치운동과 노동운동은 자본주의 초창기에 체제변혁이라는 공동의 목적을 위해 결합하게 되는데, 특히 사회주의 운동은 체제 변혁적 이론과 노동운동의 결합, 체제 변혁적 지식인과 노동조합의 결합으로 볼 수 있다.
반체제세력으로서 사회주의 정당이 제도화되느냐의 문제는 반체제세력의 제도화 의지와 역량, 그리고 지배세력의 포섭전략에 달려 있으며 특히 지배세력의 포섭전략은 반체제세력의 강력한 위협에 대한 대응전략으로서 부르주아민주주의의 허용 수준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보장될 경우 반체제세력으로서 사회주의정당은 자본주의 체제 내로 제도화된다. 나아가 유권자의 상당한 비율이 노동자이고, 이들을 대변하는 노동조합이 사회주의정당을 선거에서 지지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회주의정당은 노동자 표를 기반으로 점차 원내에 진출하게 된다. 이 시기 원내 사회주의정당은 노동자 대중정당의 성격을 지녔으며 사회주의가 노동자들에게 동일한 정치경제적 정체성을 제공하면서 사회주의정당에게 강한 노동계급 동원력을 제공하였다.
정당에서 이념의 역할과 관련하여 바이메는 대중정당의 당원이 되려는 유인을 정치적 물질적 이념적 유인 등으로 나누어 분석한 다음 이념적 유인이 대중정당 성장의 결정적 요인임을 밝혀내었다(김수진, 2008: 19). 또한 정당의 형성과정을 볼 때 중앙세력이 자신의 이념과 조직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킨 정당이 지방의 여러 세력이 연합해서 중앙조직을 만든 정당보다 강력한 정당조직을 빠르게 성장시킬 수 있었는데, 이는 느슨한 미국의 정당 조직과 중앙집권적인 유럽의 정당 조직을 비교해 보면 확인할 수 있다.
유럽의 좌파정당은 미국의 정당과 달리 강한 결속력을 지닌 중앙집중적인 조직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이념을 중시하는 당원들이 강력한 수평적 조직형태를 이루고 있으며, 관료들은 행정적 업무를 담당하고 당 지도자들은 당 밖이 아니라 당 내 당원들의 지지를 중시한다(Duverger, 1964). 또한 이들 당의 운영비는 당 내 재력가나 당 밖의 기부에 의하기보다는 당원의 당비, 지지단체인 노동조합의 지원에 의존한다.
발전한 자본주의 국민국가에서 사회주의 정치운동이 정당형태로 제도화되지 않는 경우라도 노동운동은 최상급노조로 제도화된다. 그런데 반체제세력인 사회주의정당과 최상급노조가 결합되지 않을 경우 혹은 지배세력이 이들 양 조직에 대해 강력한 분리정책을 구사할 경우 사회주의정당의 제도화는 진입장벽에 부딪힌다. 특히 사회주의 운동이 기존 체제를 위협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지 못하면 지배세력이 사회주의운동에 대해 포섭정책 대신 배제정책을 구사하고, 그 결과 사회주의정당은 제도장벽을 넘기 어렵다. 이를테면 미국의 사회당은 초창기 두 명의 하원의원을 당선시켰으나 그 이후 방첩법(Espionage Act, 1917)’, ‘치안법(Sedition Act, 1918)’, ‘스미스 법(Smith Act, 1940)’에 의해 탄압을 받았다. 유진 뎁스(Eugene Debs) 사회당 당수가 견고한 양당구조 아래서 대통령선거에 출마하여 6%를 얻었으나 당국에 의해 투옥되었듯이, 미국에서 사회주의정당은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하였다.
반면 지배세력이 반체제세력을 전혀 포섭하지 않는 상태에서 반체제세력이 강력할 경우 제도화로 나아가지 않을 수 있다. 중국과 러시아 등 현실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이러한 부르주아민주주의가 보장되지 않았기 때문에 광범위한 반체제세력이 존재했고 이들과 결합된 반체제정당으로서 사회주의정당이 체제에 편입되지 않고 체제전복으로 나아갔다. 중국과 같은 제3세계에서는 노동운동 이외에도 농민운동이나 빈민운동이 반체제제력으로서 광범위하게 존재할 수 있다. 다만 이 경우 제3세계는 이미 세계자본주의 체제에 편입되어 전근대적인 분업을 강요받고 있기 때문에 사회주의의 계급적 토대가 노동자냐 농민이냐의 문제는 본질적인 차이가 아니다.
(2) 제도권에 진입한 좌파정당들이 산업혁명 이후 빠르게 증가하는 노동자들의 지지를 얻어 원내 주요 정당으로 성장하는 과정은 사회균열을 반영하는 정당체계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정당들의 지속적인 상호 경쟁 구도가 '정당체계'이다(최한수, 1989: 161-164). 따라서 정당체계"국가의 통치권을 장악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정당간의 경쟁구도"로 정의될 수 있다(Rae, 1967: 51) 그런데 각각의 정당들이 특정 계급의 이익을 대표하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면 정당체계는 국가권력에 대한 계급간의 경쟁의 결과라는 점에서 정당체계가 형성되어가는 과정은 국가와 계급의 형성과정과 밀접하다.
자본주의 태동기에는 중세 왕정의 지배층을 대변하는 정당과 근대 자본주의 공화정의 제3계급을 대변하는 양당체제가 일반적이었으나 그 이후 노동자는 점차 자본가와 대립하면서 근대 자본주의 공화정의 제3계급에서 분화되어 별도의 정당을 모색하게 된다.
립셋과 로칸은 정당체계를 특정 사회 내에서 존재하는 균열(cleavage)이 반영된 결과로 파악하였다. 이때 래와 테일러(Rae &Taylor, 1970)에 따르면 균열이란 고유한 사회적 특징에 따른 갈등 잠재력을 가진 공동체 구성원들을 집단으로 구분하거나 결집시키는 척도라고 할 수 있다(정병기, 2009b: 49 재인용).
립셋과 로칸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지배적인 사회균열은 국가혁명과 산업혁명 시기에 발생하였다. 국가혁명 시기에 중앙 대 지방의 균열, 국가 대 교회의 균열이 발생한 반면 산업혁명 시기에는 먼저 지주와 자본가로 대표되는 농업계급과 공업계급의 균열이 발생하였고, 다시 공업계급 내에서 자본가와 노동자의 균열이 발생하였다. 립셋(1983)에 따르면 사회균열 중에서 자본과 노동의 균열 즉 계급균열은 모든 서구 정당체계를 규정하는 공통점이자, 지배적인 균열인 반면 다른 균열들은 다양한 특성들을 보여주지만 정당체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지 않았다.
서유럽 각국의 정당체계는 이 네 가지 기본 균열이 서로 중첩되거나 교차하면서 형성되었고 특히 각각의 균열이 갖는 정치적 비중과 위계구조가 상이하게 형성됨에 따라 정당체계도 그러한 특징들을 반영하게 되었다. 이러한 정당체계는 1920년대에 이르러 사실상 안정적으로 구축되었고 그 후 의회민주주의의 확립과 더불어 정치시장이 기존 정당들에 의해 완전히 장악됨으로써 신생정당이 새로 침투할 공간이 사실상 거의 없어졌다(Lipset, & Rokkan: 1967).
다만 립셋과 로칸은 이러한 사회균열 현상이 정당체계로 전환되기 위해 각 사회세력들이 반드시 넘어야 할 제도화의 장벽 즉 문턱을 설정함으로써 사회균열 이론이 사회구조 결정론으로 환원되는 것을 경계하였다.
로즈와 마카에 의하면 어떤 정당이 전국 규모의 선거에 3회 이상 참가할 정도로 지속되었다면 일단 제도화의 문턱을 넘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로즈와 마카는 어떤 신생정당이 출범할 때 민주적이고 경쟁적인 선거제도가 이미 정착되어 있었는지의 시간적 순서를 중요한 제도화 조건으로 보고 있으며, 그밖에 비례대표제 도입의 정도, 다른 사회집단과의 연계여부, 최초 선거에서의 득표력 등을 제시한다(김수진, 2008: 25).
사회주의정당 역시 정당체계에 안정적으로 정착하려면 진입장벽인 제도화의 문턱을 넘어야 한다. 민주적 시민권의 확립 정도, 의회제적 권력구조의 확립 정도가 높을수록 정당체계는 시민사회의 균열구조를 높은 수준으로 반영해주므로 노동자정당에 대한 제도적 관문은 그 만큼 낮아진다. 반면 사회주의 정당에 대한 제도권 문턱이 높을 경우 전체 노동자의 유권자 비율에 비해 사회주의 정당의 득표율이 낮게 나타난다. 또한 선거제도가 불공평할 때는 사회주의 정당의 득표율에 비해 의석점유율이 낮아진다. 이러한 왜곡현상은 다수제인가 비례제인가라는 의석배분방식, 또한 소선거구제나 중대선거구제 같은 선거구제에 따라서도 크게 영향을 받는다. 즉 비례대표제도, 대선거구제도가 발전할수록 사회주의 정당과 같은 신진정당의 진입과 성장이 수월해진다. 또한 소수세력의 연대를 제도화하는 결선투표제의 존재, 혹은 야당의 후보단일화, 소수정당의 정당결합 등 선거연합 제도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
반체제 세력으로서 사회주의정당이 좌파정당으로 정착되는 시기는 각 나라의 조건에 따라 다르다. 산업혁명이 자동적으로 노동조합의 결성을 가져오고 그에 따라 역시 자동적으로 사회주의정당이 성장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서구의 노동자정당이 원내에 진입할 당시 기존 정당의 담합구조는 나라마다 차이가 있었으나 상대적으로 견고하지 않았다. 계급균열이 정당분포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할 때 사회주의정당은 자신의 사회적 지분만큼 성장하지 못하는데, 이러한 사정은 주로 계급갈등을 희석시키는 전국적인 대립구도이다. 주로 국가독립과 통일 문제, 종교와 인종 문제, 연방주의와 지역주의 문제 등이다.
독일제국의 경우 역시 소선거구제를 채택하고 연방제였지만 오스트리아가 일찌감치 독립함으로써 소독일과 대독일의 논쟁은 사실상 해소되었다. 독일제국 의회는 황제에 대한 입법권을 제한하는 기능만 있었고 정부구성권이 없었기 때문에 의회에서 강력한 여야라는 이분법적 구도 즉 양당제가 형성되지 않아 소선거구제에서도 사회주의 정당이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영국노동당은 초기에 보수당에 맞서 자유당과의 후보단일화를 통해 원내에 진출하였으며, 자유당 내 노동자 의원을 흡수함으로써 성장하였다. 이어 노동당은 1차 대전 당시 자유당과의 연립정부를 성사시킴으로써 국유화와 같은 사회주의 정책을 대중화하고 국정능력을 인정받음으로써 주요정당으로 발전하였다. 반면 자유당은 아일랜드 독립을 반대하다 아일랜드 지역정당에 표를 빼앗기고 급기야 아일랜드 독립문제로 인해 분당됨으로써 몰락하였다. 1차 대전 직후 자유당과 노동당의 연립정부가 붕괴된 후 자유당과 노동당의 득표율은 역전되어 다시 원상회복되지 않았다.
미국은 산업혁명 이전에 이미 연방정부의 성격을 둘러싸고 대립하는 보수양당의 담합구조가 고착되어 좌파정당이 새로이 원내에 진입할 여지가 별로 없었다. 산업혁명 이후 노동자 유권자가 폭증하였지만 양당구조의 소선거구제뿐만 아니라 독립 당시부터 존재해왔던 연방주의와 연합주의의 대립, 노예제도에 기인한 흑백문제, 이민국가에 기인한 인종문제 등이 계급균열이 원내에 제대로 반영되는 것을 차단해왔기 때문에 사회주의 정당이 제3정당으로 성립하기 어려웠다. 미국 노동자들은 1차 대전 직후가 아니라 대공황 때 경제적 고통을 겪었으나, 보수정당은 뉴딜정책으로 노동계급을 포섭하였으며, 이때는 러시아혁명의 영향력이 거의 소진되었을 때이다. 특히 대통령제와 소선거구제는 서유럽 국가들과 비교할 수 없는 높은 다수결의 관문대표성의 관문을 구축하였다.
(3) 원내 주요정당으로 성장한 좌파정당들이 개량화되어 사회민주주의를 거쳐 국민정당으로 변화되는 과정은 계급정당의 딜레마(The Dilemma of Class-Based Parties)’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 아담 세보스키(Adam Przeworski, 1985: 102-104)가 제기한 민주화된 자본주의 국가에서의 계급정당의 딜레마에 따르면 노동자 계급정당은 자본주의 내 체제개선에 머무는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될 수밖에 없는데, 그 이유를 보면 우선 자본주의국가의 사회주의정당이 집권하여 혁명적인 사회주의정책을 추진하게 될 경우 일시적인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혼란이 불가피해지는데, 이러한 이행기의 고통을 참지 못한 유권자는 사회주의정당 대신 경쟁정당을 선택하게 된다. 이행기에 사회주의정당이 독재하는 현실사회주의와 달리 자본주의국가는 복수정당제와 자유선거를 전제하므로 자본주의사회의 혼란을 초래하는 혁명적 정책을 추진하는 사회주의정당은 선거를 통해 계속 집권을 유지할 수 없다. 또한 사회주의정당은 선거에 참여하게 되고, 그러면 민주주의 선거원리에 따라 다수의 지지를 받아 국가권력을 얻으려고 하는데, 이때 노동계급만의 지지로는 다수당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사회주의정당은 원래의 출발점과 달리 노동계급정당 노선에서 이탈하여 계급연합정당 노선으로 가게 되었다.
사회주의정당이 사회민주주의정당으로 변화되면서 몇 가지 특징들이 나타는데, 첫째, 원내 주요정당으로 성장한 사회주의정당들은 스스로를 부르주아 계급에 속하지 않는 국민들의 정당, 민중정당’(Partei des Volkes)이라고 강조하였다. ‘국민정당국민이 총체성과 단일성의 개념이라면 민중정당의 국민은 다수인 임금의존자 즉 노동자를 의미하는 것으로 민중정당은 노동하는 국민들의 정당으로서 심지어 프롤레타리아트의 전위(Avantgarde des Proletariats)”라고 정당화되었다(Mintzel, 1984, 25: 정병기, 2005a, 재인용).
둘째, 사회민주주의정당이 선거에서 득표율을 높이려는 경향은 1차 대전 전후에는 계급연합정당인 민중정당 전략으로 나타났지만 2차 대전 이후 수차례 집권하는 동안 국민국가를 운영하면서 노동계급의 지지를 기반으로 하여 다양한 계급의 중간층을 지지층으로 동원하려는 국민정당 전략으로 심화되었다. 이들 정당들은 다수 유권자의 지지를 받기 위해 정강을 개량주의로 후퇴시키고 자본주의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계급타협적인 정책을 추진하였다. 이처럼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노동계급 이외의 지지층을 얻으려고 우경화하는 것을 포괄정당화로 규정할 수 있다.
국민정당화의 단계에 이르러 보수정당이나 사회민주주의정당은 국가권력을 놓고 선거에서 경쟁하기 때문에 양자 모두 유권자 앞에서 자본주의 국가를 누가 더 잘 유지하느냐를 검증받는 게임에 빠지게 된다. 따라서 사회민주주의정당은 다수 유권자의 지지를 얻기 위해 좋은 자본주의 정책을 추진할 것을 유권자에게 약속하게 된다. 사회민주주의정당이 집권하여 복지국가나 부의 재분배 같은 개혁을 추진하지만 이러한 개혁은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간의 평화를 정착시키며, 소비와 수요를 촉진하여 자본주의 시장을 확대하고 안정화하도록 하는데 이는 사회민주주의정당이 애초에 타도하려던 자본주의국가를 오히려 강화시켜왔다(서순, 2014: 8).
셋째, 2차 대전 이후 서구와 소련의 체제경쟁은 자본주의 국가에 포섭된 서구 사회민주주의정당이 소련과 공산주의로부터 더욱 멀어지게 만들었다. 1951년 공산권에 반대하는 사회주의인터내셔널이 창립되었고 이들은 같은 해 프랑크푸르트대회에서 소련 등 공산권과 결별하고 사회주의는 민주와 자유 없이 실현될 수 없다고 선언하면서 민주사회주의를 기본이념으로 채택하였다. 민주사회주의는 정치적으로 프롤레타리아독재 대신에 민주주의, 경제적으로 생산수단의 사적소유철폐 대신에 계획화와 민주관리를 제기하였다.
(4) 오늘날 좌파정당이 다른 거대정당과의 경쟁을 통해 이념적 수렴화의 경향을 보여주고, 심지어 최근에는 독일사민당의 예에서 보듯이 중도보수정당과 대연정을 반복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단계에 이르러서는 반체제 세력으로서 사회주의정당이 제도화의 심화를 거듭한 끝에 외형적으로는 성장하였지만 이념정당이라는 내용적 측면에서는 성숙기를 지나 쇠퇴기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 서구의 좌파정당은 노동계급의 이해에 기반 한 사회적 타협이나 복지국가구현을 사실상 포기하고 신자유주의 노선을 수용하였다. 사회민주주의정당은 다양한 중간층을 놓고 보수정당과 경쟁하고 있으며, 그 결과 중간층을 포섭하려는 의도에서 좀 더 우경화되면서 계급득표 전략을 사실상 포기하고 보수정당과의 차별성을 희석시키고 있다(Hyman,& Gumbrell-McCormick, 2010: 321-323). 이처럼 거대정당 간의 차별성이 약화되는 것은 거대정당이 대부분 포괄정당이고 이들의 전략이 정강정책의 유연화, 전국적인 목표의 강조이기 때문에 노선과 정책이 상호 수렴하게 되기 때문이다.
사회민주주의정당은 경쟁자인 녹색당과 신좌파 등 소수정당의 제도 진입을 차단하며 기존 정치세력과 함께 카르텔정당(담합정당)이 되어간다. 카르텔정당은 선거승리 자체보다는 정부참여에 더 비중을 둔다. 따라서 이들 정당 간의 관계는 경쟁적이라기보다는 담합적이다. 이러한 담합정당은 시민사회와의 거리를 더욱 멀리하되, 그 대신 국가와 긴밀하게 결합하는데 이러한 양상은 사회민주주의정당이 중도보수정당과 반복적으로 연립정부를 구성하면서 더욱 뚜렷해진다.
국가의 정당에 대한 지원과 개입이 확대됨에 따라 의회에 진출한 거대정당들이 담합하여 자신들의 번영을 위한 제도를 구축하고 독점하려는 경향이 짙어진다. 또한 당의 관료는 전문화된 업무를 담당하는 전문가들로 채워진다. 당의 재정에서 이익집단의 기부와 정부 지원금의 비율이 높아진다. 선거가 거듭됨에 따라 당원 중심의 관료적 대중정당이 수직적 연계가 느슨한 선거전문가 정당으로 전환한다.
선거전문가정당은 선거를 통해 몰계급적인 지지를 얻으려는 포괄정당이 더욱 심화된 모습이다. 선거전문가정당에 있어 당 지도자의 권위는 당 밖의 국민적 인기에 기반하고 있으며, 정당의 중요한 결정은 갈수록 당 외부의 여론이나 언론에 의해 영향 받고 있으며, 반면 당 내 대의기관들은 무력화되고 있다(Lösche, 2009: 6-12). 이제 정당들은 인기 정치인을 당의 지도자로 내세워 미디어의 주목을 받아 지지도를 높이고자 한다.
선거전문가정당은 대중매체를 매개로 하여 지도자를 상징화하여 득표전략을 추구하는 미디어매개 인물정당(media-mediated personality-party)의 경향을 나타내는데, 이들 정당에 있어 당의 강령과 전략목표는 조직적 토대인 당원으로부터가 아니라 지도부에 의해 위계적으로 결정된다. 당 내부구조는 지도자의 정치권력 획득이라는 목표에 조응하여 구성된다(Seisselberg, 1996).
중앙집권적인 정당조직이 미약한 반면, 명망가의 미디어 활동에 방점을 둔 일시적인 선거조직을 운영하는 미국의 정당들이 미디어매개 인물정당에 해당한다. 1960년 미국 대선에서 케네디와 닉슨의 대선후보 TV 생중계 토론이 유권자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이후 미디어에 능숙한 상징화된 대선후보가 부각되었고 선거는 대중적인 인기를 끌어 모을 수 있는 후보와 그를 중심으로 한 미디어 선거전문가에 의해 주도되었다. 이러한 선거방식은 유럽을 거쳐 대부분의 발전한 자본주의 국민국가에 파급되었다. 영국 노동당의 토니블레어, 독일 사민당의 슈뢰더의 경우에서 보듯이 유럽의 사회민주주의정당 역시 인기정치인을 중심으로 한 선거전문가당의 경향을 띠고 있다.
선거전문가정당이나 미디어정당이 보편적인 현상으로 나타나면 이제 정당체계는 정치엘리트들이 특정 균열을 선택적으로 동원하고 배제한 결과가 될 수 있고 유권자의 분포 역시 이러한 엘리트에 의한 적극적인 동원과 배제의 결과로 설명될 수 있다(Schattschneider, 1975). 이러한 현상을 합리적 선택 이론의 관점에서 설명하는 견해에 따르면 정치엘리트들은 권력극대화를 위해 특정한 이데올로기 노선을 채택하고, 그 결과 특정한 사회집단으로부터 지지를 받게 된다(Anthony, 1957).
(5) 오늘날 거대정당은 여성, 소수, 환경 등 과거 소수자를 대변했던 군소정당의 지지층까지 포괄하려는 경향이 있다(마인섭, 2004: 347). 하지만 거대정당의 동조화에 대한 유권자의 반발현상도 보인다.
독일사민당, 영국노동당, 프랑스의 사회당이 탈이념적인 중도정당으로 탈바꿈되자, 정당체계 안에서 좌파노선을 표방하는 주요 정당이 사라지게 되었다. 독일의 좌파당이나 프랑스의 반자본주의당과 같은 새로운 소수 좌파정당들이 이러한 좌파정당의 공백을 메우면서 각국에서 기존 정당구조의 장벽을 넘어 제3정당으로 성장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과거 동독의 집권당이었던 독일통일사회당(SED)’1989독일민주사회당(Partei des Demokratischen Sozialismus, PDS)’으로 전환되었는데, PDS2005노동과사회정의를위한선거대안(WASG)’과 합당하면서 좌파당(Die Linkspartei)이 탄생하였다. 그런데 슈뢰더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항의해 2005년 당내 좌파들과 함께 탈당한 전 사민당 당대표이자 이론가인 오스카 라퐁텐이 좌파당 대표가 되자 사민당의 정체성 변화에 실망한 지지자들이 좌파당으로 유입되었다. 1980년 창당된 녹색당 역시 사민당 지지자를 흡수하였다.
독일사민당과 기사/기민연합이 중도의 대연정을 지속하였는데, 그 결과 과거 이들 정당을 지지했던 전통적인 유권자들은 차별적인 선택권을 박탈당하였다. 그 반사이익으로 군소정당들은 자신들의 득표율을 더 높였다. 그 결과 유권자의 균질적인 스펙트럼은 파괴되면서 거대한 국민정당이 쇠퇴하는 대신 군소정당들이 중간규모의 정당으로 성장하였다. 2009년 독일 연방하원 총선에서 사민당과 자유민주당의 득표율 차이는 8%에 불과하였다. 주 선거의 득표율을 보면 기독교민주연합, 사민당, 좌파당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Losche, 2009).
이런 흐름은 프랑스에서도 발견된다. 프랑스 사회당이 2008년 랭스 전당대회에서 중도정당과의 선거연합을 명시한 우파의 제안을 채택하자, 당 내 좌파들이 탈당하였고 사회당 정부에서 교육부장관을 지낸 장뤽 멜랑숑(Jean-Luc Mélenchon)이 독일좌파당을 모델로 한 좌파당의 결성을 주도하였다.
과거의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탈이념화된 상태에서 새로운 좌파정당이 등장하고 심지어 그리스처럼 새로운 좌파정당이 집권하였지만, 이는 좌파정당의 제도화라는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정병기(2015)에 따르면 시리자는 자본주의 체제를 사회주의적으로 극복하려고 하였으며 시리자의 집권은 제2차 대전 이후 서유럽에서 사회민주주의 왼편에 위치한 정당이 좌파의 색깔을 분명히 하면서 제1당으로서 정부를 수립한 유일한 사례다. 하지만 그리스의 시리자는 사회당이 사회민주주의를 사실상 포기함에 따라 그리스 정당체계에서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공백이 생기자 좌파노선을 자처하면서 구제금융이라는 급변상태를 배경으로 성장한 것으로 봐야 한다. 또한 실질적으로 사회민주주의 개혁노선을 걷는 시리자를 유럽에서 정통 사회주의 좌파의 부활로 규정할 수 없다.
오늘날 시리자는 기본적으로 혁명정당이 아니라 개혁정당이다(콘토야니스. 2015). 시리자는 이념적으로 자본주의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에 반대하고 있으며, 이러한 신자유주의 반대 선언도 구체적인 실천에 있어서는 신자유주의 개선에 머물고 있다. 시리자는 향후에 빠르게 공산당과 구별되는 사회민주주의 노선을 확연히 드러내면서 과거 사회민주주의 정당과 마찬가지로 제도화 심화과정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6) 서구 좌파정당의 탈계급화, 탈이념화는 산업구조의 변화에 따른 계급의식의 퇴조, 유권자 구성의 변화에 따른 좌파정당의 집권전략의 수정에 의한 것이다.
첫째, 서구의 좌파정당은 세계화 신자유주의 구조 아래서 일국적인 총수요관리정책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자 계급타협적인 케인즈주의 복지국가를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에 사회적 대타협에 근거한 코프라티즘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2차 대전 이후 20년 동안 노동계급을 기반으로 하는 국민정당으로서 사회민주주의정당은 비록 수정주의 노선을 걸었지만 계급정당 노선에서 본질적으로 이탈하지 않으면서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1970년대에 이르러 유가가 급등하고 국제경쟁이 치열해지며, 코포라티즘의 전제가 되었던 경제성장이 멈추고 재정적자가 누적되자, 자본과 보수정치는 위기극복 방안으로서 세계화와 자유화를 확산시켰고 일국 내 자본과 정부를 기본 타격으로 설정해왔던 노동조합의 공세는 큰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결국 좌파정당과 최상급노조는 자본가계급에게 사회적 대타협 전략을 더 이상 관철시킬 수 없었다.
사회민주주의 정부조차 세계자본주의의 구조적 제한조건으로 인해 케인즈주의에 근거한 수요관리정책과 재정확대 정책을 유지할 수 없었다. 서구의 좌파정당은 케인즈주의 정책을 통해 유권자에게 자본주의국가 운영능력을 검증받을 수 없게 되자, 재집권을 도모하고자 공급을 중시하고 재정을 축소하는 통화금융정책을 점차 수용하기에 이른다. 이제 사회민주주의 정부의 거시경제정책에 따라 노동조합은 임금인상의 억제를 요구받았으며, 사회복지 지출도 축소되었다. 19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확산으로 인하여 국민국가 간 경쟁이 격화되어 개별 국민국가의 정책선택이 세계경제의 조건에 제한되자, 이러한 경향은 더욱 심화되었다(Cronin, 2006; 48-49). 결국 서구의 좌파정당은 재집권을 목표로 삼으면서 친노동자적 국민정당에서 중도정당으로 전환해나가면서 한 번 더 우경화로 치달았다.
1990년대 이후 집권한 좌파정당들은 친노동자적인 복지정책과 재정정책을 사실상 포기하였고 선거에 있어 다원화된 유권자의 지지를 얻고자 탈노동적 색채를 분명히 하였다. 오늘날 사회민주주의정당들은 아직도 민주적 사회주의를 강령에서 선언하고 있지만 사회주의 노선을 사실상 포기하고 노동조합과의 동맹을 이완시키고, 사회민주주의 복지정책도 지속적으로 후퇴시키고 있다. 또한 이들 정당은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권리를 제한하고 신자유주의와 시장개방을 확산하고, 미국의 전쟁 정책에 협조하고 있다.
둘째, 후기산업사회에서 좌파정당의 특성인 이념적 정체성, 당원들의 강한 결집, 당원민주주의에 기반 한 대의기구의 강한 권한 등이 약화되고 있다. 이처럼 대중을 공통의 이념으로 동원하고 조직하는 좌파정당이 퇴조하는 이유는 공장노동자가 감소하는 대신 공공서비스와 사무직 등 중간층 노동자가 급증함에 따라 대공업노동자의 계급적 정체성과 이해관계에 근거한 포드주의가 퇴조하였다. 정규직 당원과 비정규직 당원 등 노동계급의 분열양상이 부각되는 한편 사무직과 전문직 당원들이 늘었지만 이들은 계급적 정체성이 낮고 정치적 무관심에 경도되는 경향이 있어 당에 대한 충성심이 저조하였다. 또한 사회민주주의정당은 당내 노동계급적인 기반을 잃어가고 있는데 무엇보다 저출산고령화 현상으로 인해 당원들이 고령화, 보수화되고 급진적인 젊은 노동자 당원의 비중이 줄어들고 있다. 이에 따라 사회민주주의정당은 과거와 달리 다양한 노동자들을 하나의 지지층으로 동원하는 동질적인 이데올로기 전략을 구사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국민정당화는 사회민주주의 정당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이념정당에서 볼 수 있는 이념의 퇴조현상이다. 국민정당들의 당원 수는 감소하고 있으며, 유권자의 탈정치화와 다양성이 심화되면서 투표율 자체가 낮아지고 있다. 또한 수십 년간 지속된 노사정의 사회적 대타협 즉 코포라티즘은 전반적으로 유권자들의 계급의식을 희석시켜 지지정당에 대한 충성도를 약화시켰다.
또한 2차 대전 이후 이십여 년 동안 번영과 평화가 지속된 결과 1960년대 중후반부터 삶의 질, 참여, 비핵, 여성의 권리와 인권, 환경, 교육 등 비경제적 가치를 중요시하는 탈물질주의(postmaterialism) 경향이 강해졌다(Inglehart, 1971). 그 결과 좌파정당과 좌파 정책에 대한 지지가 낮아졌고(Inglehart, 1977), 사회민주주의정당 역시 이러한 추세에 순응하면서 당의 가치를 다변화하고 있다.
 
 
3) 후발자본주의 국가에서 좌파정당의 제도화 적용 가능성
 
후발자본주의 국가에서 좌파정당은 지배세력이 반체제세력을 포용하고자 하는 정도에 영향을 주는 요인, 사회균열이 정당체계에 반영되는 것에 왜곡을 주는 요인(득표율과 의석점유율에 영향을 주는 요인), 좌파정당이 후기 산업사회에서 노동계급이 아닌 중간층의 지지를 획득하려는 경향에 영향을 주는 요인의 작용에 따라 체제변혁정당 혹은 체제개선정당, 주요정당 혹은 소수정당, 집권당 혹은 야당 등의 별현 양상을 보인다.
일반적으로 사회균열이론은 서유럽 정당체계에 잘 적용되지만, 사회균열의 역사가 짧은 미국이나 국가의 영향력이 압도적으로 강한 제3세계에는 정치엘리트에 의한 정당체계형성 이론이 더 적합하다고 알려져 있다(정병기, 2003a; 133-134). 하지만 한국이나 브라질, 남아프리카처럼 제3세계가 민주화와 산업발전을 거친 이후에는 제도화된 좌파정당들이 서유럽 좌파정당들의 성격 변화 과정을 짧은 시간에 답습하는 양상을 보인다. 즉 계급균열과 그 밖의 사회균열에 따라 정당체계가 고착화된다.
개발도상국 좌파정당의 발현 양상을 분류하면 서구 유럽의 정당 발현 양상을 짧은 시간에 답습하는 압축형, 발생기에서 짧은 성장기를 통해 바로 성숙기로 진입하는 비약형, 성장기나 성숙기에 진입하지 못하는 지체형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때 어떤 정당이 압축형, 비약형, 지체형에 속하는가는 발생기, 성장기, 성숙기에 영향을 주는 요소의 배합 정도에 따라 결정된다. 기본적으로 제도권 밖의 반체제세력, 제도화된 반체제정당, 지배세력 등 3자의 상호관계에 따라 규정되며 가장 중요한 요소는 부르주아민주주의 보장 수준, 국민국가 형성 정도, 자본주의 국제분업체제의 편입 수준이다.
일본은 2차대전 직후 민주주의 정부가 들어섬으로써 산업혁명과 시민혁명을 모두 완수하였다. 이에 서구와 마찬가지로 계급균열이 지배적인 사회균열이 되었고, 그 결과 사회당은 1947년 원내 다수당이 되었다. 이에 1955년 보수정당들인 자유당과 민주당이 합당하여 자민당 독주체제를 만들었으며, 사회당은 제2정당이 되었다. 그러나 사회당은 경제투쟁 대신에 정치투쟁과 평화투쟁에 주력함으로써 노동계급의 대중적 지위를 점차 상실하였고, 자민당을 실질적으로 견제하는 정당으로서 기능하지 못하였다(김수진, 2008: 86). 브라질 노동당의 경우 비교적 발생기, 성장기, 성숙기를 거친 압축형으로서 원내 계급정당의 딜레마에 따르면 향후 재집권과정을 통해 사회주의 이념의 퇴조 등이 더욱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동유럽과 제3세계의 신생민주국가에서 기존의 정당들이 국가와 담합하여 좌파정당이 성장하지 못하도록 각종 진입장벽을 설정하였고 그 결과 사회균열을 반영하는 서구식 좌파정당의 출현이 억제되었다. 따라서 정당의 성장과정에서 명사정당으로부터 담합정당으로 비약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김수진, 2008: 105).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흑인노동자는 1924노동쟁의조정법’, 1925임금법등에 의해 법률상 노동자의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였다. 하지만 흑인 노동조합은 1979년 합법화되었고 이후 남아프리카노동조합연맹(The Federation of South African Trade Unions, FOSATU)1979, 남아프리카노동조합회의(The Congress of South African Trade Unions, COSATU)1985년 합법적으로 결성되었으며, 사회주의 강령을 채택한 전국노동조합협의회(The National Council of Trade Unions, NACTU)1986년 출범하였다. 노동자의 숫자는 1985784만명, 1995770만명이며 조직율은 같은 기간 17.7%에서 42.7%로 증가했으며, 농업노동자와 가사노동자를 제외하면 54.1%로 증가하였다. 창립 당시 COSATU는 약 50만명, NACTU는 약 20만명이었으며, 1994년에는 131만명, 32만명으로 증가하였다.
1983년 백인지배계급이 중심이 되어 백인 유색인 인도인 등이 반흑인 지배동맹인 ‘3원의회를 선포하자, COSATU와 아프리카민족회의(African National Congress, ANC) 등이 중심이 되어 아파르트 하이드정책에 반대하는 통일민주전선(United Democratic Front, UDF)’를 출범시켰고, UDF는 백인정권이 1990년 인종차별정책을 폐지할 때까지 정치적 통일전선조직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백인정권은 ANC와의 3년간의 협상을 통해 1993년 백인의회에서 과도헌법을 비준하였고, 1994년에 최초로 흑인들에게 참정권을 허용하였다. (김영수, 1999; 5-29).
남아공의 경우 정당명부식 완전비례대표제의 특성상 유권자의 다수를 차지하는 흑인을 대표하는 ANC-SACP가 정치권력을 장악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아프리카민족회의(ANC)와 남아공공산당( South African Communist Party, SACP), 그리고 남아공노동조합회의(COSATU)1994년 이후 3자 동맹정치를 통해 집권하고 있다. 완전비례대표제는 정치조직들이 협상을 통해 의회에 진출하여 다수 집권세력을 형성하고 관료들을 지명하므로 거대 단일정당의 정치권력 독점화, 정당 지도부의 권한 집중화, 관료제의 심화로 인한 권력주체들의 정치적 소외를 야기할 수 있다(김영수, 2013: 170).
집권세력인 3자동맹 내에서도 신자유주의 정책을 불가피하다고 수용하거나, 제한적으로 찬성하거나 전면적으로 반대하는 입장 등으로 분화되어 있다(김영수, 2005;. 101-102). ANC정부는 노동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신자유주의 구조에 편입하여 남아공 경제를 발전시키려 하고 있다. COSATU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결정하고 추진하는 주체이자 저항하는 주체로서의 이중적 성격을 보유하고 있다. COSATU1994년 이후 현재까지 ANC정부의 주요 정책결정과정에 참여하고 있고, 그 정책에 대한 책임도 공유하고 있다(김영수, 2005;. 110).
1994CCOSATU-SACP마이너스 성장의 극복, 30% 이상의 실업율 해소, 자본의 국제경쟁력 강화 등을 위해 투자 인센티브의 제공과 해외자본의 유치, 법인세의 삭감, 공공서비스 지출 삭감, 국영기업의 민영화, 환율의 자유화 등 사실상의 신자유주의 정책의 도입을 공동으로 합의하였다. 이들은 ANC정부에 참여하여 이러한 정책을 통해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그 성과를 흑인들에게 재분배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웠는데,(김영수, 2005;. 107) COSATUSACP 내부에서 다수를 점하고 있는 구조개혁적 투쟁그룹들은 이를 민족민주혁명 과정의 일부로까지 인식하고 있다. 이들은 ANC정부 내부에 존재하는 신자유주의적 그룹에 대해서는 비판하고 있지만, ANC정부의 실질적 토대인 3자동맹의 필요성을 여전히 강조하고 있다(김영수, 2005;. 117).
COSATU2000년 전국대의원대회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에 반대하는 총파업을 선언하는 등 ANC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반대하는 투쟁도 전개하고 있다. COSATU는 국공영산업의 민영화와 구조조정의 중단, 예산의 고용창출, 사회적 자원의 배분, 공공서비스의 확충과 사회적 불평등의 제거, 주택문제의 해결, 소득과 부의 재분배, 토지개혁의 실현 등을 주장하고 있다(김영수, 2005;. 101-102).
노동조합과 집권당 사이의 긴장이 높아지는 가운데 정부의 관료로 진출한 노동운동의 지도자와 노동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지도부 간의 갈등도 증폭되고 있는데, 이러한 갈등들은 노동운동의 관료화와 정파적 분열을 가속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김영수, 2005;. 120).
정리하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민족회의의 경우 흑인이라는 강한 반체제세력이 제도화되지 못한 상태에서 이들을 대변하는 민족회의가 흑인이 부르주아민주주의를 보장받는 순간 짧은 성장기를 거쳐 바로 집권에 이른 비약형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민족회의 역시 원내 계급정당의 딜레마에 따라 향후 재집권 과정을 통해 이념의 퇴조 양상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아일랜드 노동당의 경우 100년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아일랜드 독립과정에서 민족문제를 둘러싼 균열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결과 1990년대까지도 민족문제를 두고 경쟁했던 양당체제를 깨지 못하고 원내에서 제3당의 지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김수진, 2008: 80).
필리핀 공산당의 경우 1930년에 창당되어 무장조직인 신인민군, 대중투쟁조직인 민족민주전선을 외곽에 두고 반체제활동을 하여왔다. 필리핀 공산당은 1992년에 합법화되었지만 당국의 탄압과 소선거구 다수대표제 중심의 선거제도 때문에 원내에 정착하지 못하고 있다. 필리핀공산당은 아직도 반체제 무장활동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반체제세력의 일부만 제도화되어 성장기로 나아가지 못하는 지체형이라고 볼 수 있다.
위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선진국이나 개발도상국이나 좌파정당의 발현양상은 시차가 있지만 결국은 다음과 같이 본질적으로 유사하다.
첫째, 자본주의 시민사회가 성숙해짐에 따라 사회주의 노동자정당은 대부분 선거참여와 집권과정을 통해 거대정당으로서 사회민주주의 국민정당으로 변화되고 사회주의 노동자정당을 고수하는 공산당은 예외적으로 소수정당으로서 명맥을 유지할 뿐이다.
둘째, 좌파정당에 대한 진입장벽이 높은 미국과 같은 나라에서는 좌파정당이 사회민주주의정당으로 변화되어도 소수정당에 머물 수밖에 없다.
셋째, 개발도상국에서 좌파정당의 발현 모습이 지체형, 비약형, 압축형 등으로 다양하지만 이 역시 성숙한 자본주의 시민사회의 사회주의 노동자정당의 발현과 마찬가지로 제도화의 정도에 따라 거대정당으로서 사회민주주의정당, 소수정당으로서 사회민주주의정당, 소수 공산당으로 분류할 수 있다.
자본주의사회의 좌파정당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집권을 향해 사회민주주의정당으로 변모하던지, 정치상황이 허용할 경우 사회주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소수정당으로 남는 경우이다. 일부 유럽에서 소수 공산당이 가능한 것은 정당의 자유가 보장되고 있기 때문이며, 3세계에서 소수 공산당이 가능한 것은 소수 공산당이 아직 제도화되지 않은 강력한 반체제세력의 지지를 얻고 있어 정부의 탄압을 견디고 있기 때문이다.
2 제도화 과정을 통한 개발도상국 좌파정당의 발현 분석
유형
사례
제도화 특성
특성
정당유형
지체형
필리핀공산당
민주노동당
반체제세력의 일부만 제도화되거나 진입장벽 때문에 계급균열이 선거에 반영되지 못함.
발생기에 고착됨
소수 공산당
소수 사민당
비약형
남아공민족회의
흑인의 시민권 획득으로 반체제세력이 선거승리
발생기에서 바로 성숙기로 감
거대 사민당
압축형
브라질노동당
반체제세력이 대부분 제도화되고 진입장벽이 낮음
짧은 시간에 서구의 형태를 밟음
거대 사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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