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결론 : 국제노동자협회에서 노동계급자기해방 원리의 형성

마르크스가 주도한 국제노동자협회의 활동을 주체의 측면에서 보면, 국제노동자협회는 노동조합과의 성공적인 연대투쟁을 통해 노동조합의 필요성과 파업의 중요성을 경시해왔던 프루동주의와 라쌀주의를 극복하였다. 국제노동자협회는 영국의 노동조합주의를 비판하면서 노동자들이 각국에서 대중적인 노동자당을 건설할 것을 제안하였다. 나아가 국제노동자협회는 스스로 다양한 정파조직들을 포괄하여 대중적이며 국제적인 노동자정치조직으로 발전하고자 하였다.

5. 일국과 국제적 차원에서 노동조합과 노동자당의 성립

국제노동자협회가 초기의 연합조직에서 중앙집권적인 연방주의 모델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분열이 발생하였다. 마르크스는 파리코뮌 이후 국제노동자협회를 국제적인 노동자당의 맹아로 여겼으며, 특히 총평의회를 그러한 당의 집행부로 설정하려 했다. 이는 국제노동자협회의 중앙조직인 총평의회의 지도력과 지부의 자치권 사이의 긴장으로 나타났다.

4. 파리코뮌 이후의 노동계급 자기해방 원리의 발전

1871318일 파리의 노동자봉기가 성공하였으며, 26일 선거를 거쳐 28일 파리코뮌이 선포되었다. 하지만 파리코뮌은 3개월도 견디지 못하고 부르주아 진압군에 의해 전복되어 부르주아국가기구를 파괴하고 노동자정부를 수립하는데 종국적으로 실패하였다. 애초에 노동자봉기는 강력한 구심력이 없었기 때문에 부르주아 군대와 부르주아 의회를 파괴하지 못하였고, 파리코뮌이 성립한 이후 프랑스 정부가 도피한 베르사유로 진격하여 혁명을 전 프랑스로 파급하려는 의지도 없었다. 독일군의 지원을 받는 진압군이 파리로 진격하자, 파리코뮌의 지휘 하에 있던 군대는 싸우지도 않고 항복하였으며, 그 결과 노동자봉기는 진압되었다. 파리코뮌이 성공하려면 파리뿐만 아니라 프랑스 전체가 노동자정부로 전환되어야 했다. 하지만 다른 코뮌을 실현하고자 하는 노동자봉기가 리용, 마르세유, 보르도 등에서 발생하였으나 지도세력이 없었기 때문에 실패하였다.

3. 국제노동자협회에서 노동조합의 정립

대중조직으로의 발전
 
마르크스는 국제노동자협회라는 하나의 틀 속에서 다양한 정파들이 공존하도록 노력하였다. 각국의 노동자단체들은 국제노동자협회의 규약에 반하지 않는 한 자신들의 강령을 유지한 채 협회에 가입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