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의 제국주의론(자본주의 최고단계)

마르크스부터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자본주의 제국주의론 12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당시 멘셰비키와 개량주의자들을 포함한 각국 사회주의자들은 조국방위라는 명분으로 전쟁을 지지했다. 그러나 레닌의 볼셰비키는 자본주의의 전형적인 제국주의 전쟁에 대해 반대했다. 

제국주의론 노트(레닌선집 39권)는 1915년~1916년에 집필됐으나 후에 발견돼 1933년~1938년에 출판됐다. 《제국주의론, 자본주의 최고단계》은 1916년 집필돼 1917년 출판됐다. 레닌은 제국주의론과 제국주의론 노트를 통해 홉스의 제국주의론, 힐퍼딩의 금융자본론, 로자의 자본축적론, 카우츠키의 초제국주의론을 종합분석하고 비판했다. 

레닌은 선행하는 저술을 비판적으로 계승하여 제국주의의 개념을 정립했다. 레닌에 따르면 제국주의의 본질은 독점자본주의이며, 독점자본주의는 제국주의로 나타난다. 제국주의는 사회구성체로서 경제적 토대와 토대에 부응하는 상부구조를 포함한다. 레닌은 제국주의가 지니는 경제적 토대의 특성으로서 상품수출, 자본수출, 금융자본의 우위, 세계시장의 분할을 제기하고 상부구조의 특성으로서 타국의 지배 즉 식민지 체제를 제기했다. 

여기서 금융자본은 금융자본 중심으로 산업자본이 융합된 독점자본을 의미한다. 금융자본의 우위는 단순히 산업자본에 대한 우위만을 뜻하지 않고 정치권력의 배후로서 정치적 우위를 포함한다. 레닌이 제기한 제국주의 표지 5개는 선행연구를 비판적으로 종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레닌은 영토를 점령당한 식민지뿐만 아니라 정책결정권을 박탈당한 수준의 반(半)식민지도 정치적 지배에 포함시켰다. 

5개 표지로 구성된 레닌의 제국주의 개념은 사회구성체로서 정치경제적 종합개념이라는 점에 의의가 있다. 따라서 단순히 경제적 이윤만 얻고 정치적 지배가 없는 경우, 경제적 이윤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닌 단순한 정치적 지배만 있는 경우는 제국주의 혹은 독점자본주의라고 볼 수 없다. 

홉스, 힐퍼딩, 로자, 카우츠키는 제국주의를 정책으로 파악했는데, 레닌을 이들을 비판하면서 제국주의를 자본주의의 한 단계 즉 사회구성체로서 파악했다. 제국주의론은 당시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제국주의 전쟁에 협조하려는 카우츠키의 제국주의 평화론을 비판하면서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간의 불가분 관계, 사회주의 혁명의 필연성을 강조했다. 제국주의론은 국제사회주의 운동이 개혁과 혁명으로 분열한 배경을 설명하고 제국주의는 필연적으로 반제국주의 저항을 초래하여 민족해방전쟁이 발생한다는 점을 밝혔다. 

레닌에 따르면 자본주의국가들은 불균형적으로 성장하며 따라서 자본주의의 최고 형태로서 제국주의국가들은 불균형적으로 식민지를 분할한다. 1차 대전 당시 후발자본주의 독일의 경제력은 영불을 추월했지만 식민지는 거의 없었다. 이처럼 경제력과 식민지 지분이 일치하지 않을 경우 제국주의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 바로 이런 불균등 발전이 제1차 세계대전의 배경이 됐다. 전 세계가 이미 분할됐으므로 거대 제국주의 열강이 식민지를 확대하는 방법은 다른 경쟁자들을 희생시키는 것밖에는 없었고, 이것은 전쟁을 의미했다. 

카우츠키에 따르면 제국주의는 자본주의의 한 단계도 아니고 자본주의의 필연적 결과도 아니며 일부 금융자본이 “선호하는” 정책일 뿐이다. 또한 전쟁이 끝난 뒤에는 가장 강력한 카르텔과 국가들이 전쟁과 군비경쟁을 포기하는 국제협정을 체결해서 “초제국주의” 단계가 시작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오늘날 통찰력 있는 자본가들은 모두 자기 동료들에게 다음과 같이 촉구할 것이다. 만국의 자본가여, 단결하라!”

하지만 레닌에 따르면 자본주의에서 세력권과 식민지 등을 분할하는 근거는 오직 그 분할에 참여하는 나라들의 경제력·군사력뿐이다. 제국주의 나라들의 힘은 현재도 미래도 균등하게 변화하지 않는다. 10~20년이 지난 뒤에도 제국주의 열강 사이의 상대적 힘이 변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는가?’ ‘제국주의 간’ 동맹이나 ‘초제국주의’ 동맹은 전쟁과 전쟁 사이의 일시적 ‘휴전’에 불과하다. 실제로 1차 대전이 끝난 후 제국주의 국가들은 군비경쟁에 나서 2차 대전에 돌입했다. 

레닌에 따르면 제2인터내셔널에서 기회주의 혹은 개혁주의가 풍미한 것은 제국주의와 이들 세력의 물질적 관계에 기인한 것이다. 레닌은 이미 19세기 중후반 영국이 산업과 식민지를 독점한 것과 영국 노동운동에서 개혁주의가 득세한 것 사이에 연관이 있다고 봤다. 제국주의 국가 내에서 독점 자본가들은 세계에서 얻은 초과이윤으로 사회주의정당과 노동조합의 관료들을 매수할 수 있었다. 

레닌에 따르면 제국주의가 식민지에서 반제국주의 투쟁을 유발하기 때문에 그런 투쟁을 적극 지지하는 것이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의 의무이다. 레닌의 이러한 주장 전에는 사회주의 운동이 식민지의 민족 해방 운동을 중요한 전략적 의의가 있는 운동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레닌의 입장에 따라 코민테른이 창설됐다. 

페트로그라드와 모스크바에서 열린 코민테른 2차 세계 대회에서는 ‘민족·식민지 문제’가 핵심 주제가 됐다. 레닌은 억압 민족과 피억압 민족의 민족주의를 구별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한편으로 선진 자본주의 나라와 러시아의 노동계급, 다른 한편으로 식민지 피억압 민중 사이의 혁명적 동맹을 제안했다. 1920년 9월 코민테른이 바쿠에서 개최한 제1차 동방민족대회의 구호는 “만국의 노동자와 피억압 민족이여 단결하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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