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인터내셔널과 제국주의

 1848년 혁명이 실패한 후 마르크스는 런던 망명기간 중에 영국의 식민지 아일랜드, 프로이센과 러시아 사이에 끼인 폴란드 문제를 다뤘다. 1863년 러시아의 지배에 있던 폴란드 민중이 봉기하자, 이듬해 각국의 노동자들이 폴란드 봉기를 지원하기 위해 런던에 모였고, 이를 계기로 국제노동자협회(International Workingmen's Association)가 출범하였다. 

당시 영국의 노동조합들은 자신들의 파업을 와해시키기 위해 자본가에 의해 고용되는 폴란드와 아일랜드 이주노동자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얻고자 국제노동자협회 즉 제1인터내셔널 설립에 협조했다. 

마르크스는 루이 나폴레옹의 프랑스와 비스마르크의 프로이센이 전쟁을 할 것을 우려하였는데, 카우츠키와 달리 마르크스에 따르면 제국주의 국가 간의 전쟁은 반드시 경제적 동기에 지배당하지 않는다. 마르크스는 보불전쟁에 직면하여 방어적이라고 해도 제국주의 전쟁에 노동계급이 동조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베벨과 리프크네히트는 북독일연방 의회에서 보불전쟁을 위한 국채 발행에 기권하였기 때문에 작센인민당 내에서 비판받았다. 1870년 보불전쟁이 임박하자 리프크네히트는 독일사회민주노동자당 기관지 ≪인민국가≫를 통해 전쟁에 반대하고 양국의 노동자들이 힘을 합해 양국의 지배계급을 타도할 것을 주장하였다. 비스마르크 정부는 그와 베벨을 반역죄로 기소하였다. 두 사람은 1872년 2년 금고형을 선고받았다. 

마르크스주의 세력이 보불전쟁을 자본가들의 전쟁으로 규정하면서 전쟁을 거부하였다. 반면 슈바이처 당은 이에 찬성하였다. 그런데 프랑스가 패배하자 양당 모두 전쟁을 확대하는 것과 알자스로렌 지방을 병합하는 것에 반대하였다. 전쟁 이후 라쌀주의자들도 마르크스파와 마찬가지로 파리코뮌을 지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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