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 시대 폴란드와 아일랜드 문제

이제부터는 국제당(공산주의자동맹, 제1~3 인터내셔널)과 제국주의 문제를 살펴 봅니다.

폴란드는 10세기 중엽 단일국가로 성립했으나 1138년  볼레스와프 3세가 아들들에게 공작령으로 분배했다. 1320년 브와디스와프 1세가 폴란드를 통일시켰다. 카지미에시 3세가 후대가 없어 폴란드의 왕위는 헝가리 국왕이 계승했다. 헝가리 국왕이 1383년에 죽은 이후에는 결혼을 통해 동맹을 맺은 리투아니아의 야기에우워 왕조가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을 결성했다. 이후 약 400여 년 동안 폴란드는 번영한다. 폴란드 군대가 1610년 클루시노 전투에서 승리하고 모스크바까지 점령하였으며, 1611년 러시아가 폴란드에게 조공을 바쳤다. 폴란드는 종교적 자유를 허용하여 다른 나라와 달리 종교전쟁에 휘말리지 않았다.

폴란도의 정치적 구심은 귀족들의 연합이었는데 이 과두정이 약해지면서 1648년 코사크인 반란이 일어나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에게 잃었다. 스타니스와프 국왕이 폴란드를 넘보는 러시아와 화해정책을 추진했으나 이에 불만을 품은 귀족들이 1768년 바르 동맹을 맺고 반란을 일으켰다. 이 반란을 진압한다는 명분으로 1772년에 프러시아, 러시아, 오스트리아가 영토의 30%를 찬탈했다(1차 폴란드 분할). 스타니스와프 국왕이 귀족들의 특권을 제한하자 1792년 귀족과 동맹한 러시아가 폴란드를 침공했다. 프러시아와 러시아는  2차 폴란드 분할에 나서 대부분의 폴란드 영토를 차지했고 나머진 속국으로 전락했다. 1795년에 러시아에 대한 코시치우슈코의 봉기가 실패로 돌아가자, 러시아는 프로이센, 오스트리아와 함께 3차 분할하여 폴란드를 멸망시켰다.

1807년 나폴레옹이 바르샤바 공국으로 독립시켰으나 1815년의 빈 체제에 의해 러시아와 프러시아에 복속됐다. 러시아가 폴란드에 입헌 괴뢰국을 세웠으며, 프러시아는 아예 독일화정책을 추진했다. 1830년에는 바르샤바에서 사관생도들의 주도로 11월 봉기가 일어나 러시아 군대를 몰아내는 데에 성공하였으나 주변국이 도움을 주지 않아 러시아에게 항복하고야 말았다. 봉기가 진압되자 폴란드 입헌왕국은 러시아 제국에게 합병됐다.

오스트리아령 폴란드는 상대적으로 탄압이 덜해서, 특히 크라쿠프 자유시 등에서 폴란드 문화가 흥성했다. 여기서 보수적인 폴란드 귀족(szlachta)들이 1846년 독립전쟁을 일으켰다. 1848년 혁명에서 프러시아령 포센 대공국 폴란드인들이 봉기를 일으켰으나 실패한 후 완전히 프러시아에 병합되었다.

1863년에는 또다시 봉기가 일어나 러시아에 대항하였으나 패배했다. 이후 러시아의 지배 아래 폴란드 입헌왕국은 독립보다는 근대화에 주력하여 19세기 말에 산업화로 번창했다. 

1918년 11월에 패전한 독일과 평화협정이 맺어지면서 폴란드 제2공화국이 성립됐다. 이후 폴란드 군대가 소비에트의 붉은 군대를 상대로 대승을 거두면서 소비에트로부터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다. 

1939년 9월 1일에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자 9월 17일에는 소련이 폴란드를 침공하였다. 9월 28일에는 바르샤바가 함락되었으며, 독-소 불가침 조약에서 나치 독일과 소련이 폴란드를 분할했다. 스탈린 치하에서 카틴 학살 등이 발생했다. 독일도 폴란드에서 학살을 자행했다. 폴란드 망명정부는 서부 전선에 참여했으며 동부 전선에서는 소련의 지휘를 받으며 전쟁에 참여하였다. 

1944년 8월에는 소련이 바르샤바로 진격하기 직전에 바르샤바 봉기를 일으켰으나 실패했다. 1945년 소련은 폴란드의 20%를 자국령으로 편입하였다. 소련이 붕괴한 이후에도 이 영토는 다시 폴란드에게 돌아가지 않았으며, 대신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리투아니아의 영토가 되었다. 한편 폴란드와 독일 사이에는 오데르-나이세선이라고 하는 새로운 국경선이 확립돼 폴란드가 영토를 회복했다. 

얄타 회담에서 런던의 망명정부 대신 모스크바에 본부를 둔 공산주의 폴란드 임시정부의 수립이 승인되었다. 1945년 선거에서 친소 공산당이 집권해 1952년에는 폴란드 인민공화국의 수립이 정식으로 선포되었다. 1956년 스탈린격하 운동에 자극을 받아 포즈난 시위가 확대되면서 소련군이 개입했으며 최대 100명이 사망했다. 

아일랜드는 영국에 정복당하였지만 영국의 1648년 청교도혁명까지는 여전히 형식적으로 독립된 나라 즉 속국이었다. 그런데 청교도 혁명 당시 왕위에서 쫓겨난 왕이 아일랜드로 피신하여 영국의 왕조를 다시 재건하고자 하였다. 이에 영국의 혁명군이 아일랜드를 점령하여 아일랜드를 영국의 영토로 만들었다.

이후 아일랜드는 영국을 위한 목축지로 전락하였다. 목축지를 만들기 위하여 농민들의 경작지는 영국인 대지주 소유로 넘어갔다. 땅을 빼앗긴 아일랜드인들은 영국과 미국으로 이주를 하였다. 이들은 영국과 미국의 산업혁명 당시 공장노동자로서 힘든 삶을 살아야 하였다. 또한 아일랜드는 카톨릭국가였는데, 영국은 성공회국가였기 때문에 카톨릭 신도들이 박해를 받았다. 

당시 아일랜드 인구는 400만 명이었는데, 런던에만 12만 명의 아일랜드인들이 있었고, 맨체스터에도 4만 명이 살았다. 아일랜드인들은 영국 왕정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하여 아일랜드공화당을 만들었지만 영국정부의 탄압을 받았다. 영국의 각지에서 아일랜드공화당원들이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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