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중러 밀착, 우리의 선택 다극화냐, 반미연대냐

 국제사회에선 밀림처럼 힘이 정의이다. 하소연할 경찰도 법원도 없다. 미국의 국제경찰 노릇도 미국이 자신의 국익을 폭력적으로 관철하는 방식일 뿐이다. 약자들은 생존하기 위해서 몸부림치고, 강자들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노심초사한다. 약육강식의 국제사회에서 모든 나라들은 변화하는 국내외 정세에서 국익을 위해 냉혈한이 돼야 한다. 


첫째 국가 이데올로기는 국가를 위해 생겨난 것이고 이것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국가생존을 위해 필요하다면 국가 이데올로기를 포기하거나 수정한다. 국가에게 이데올로기의 순결함이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중국은 국익을 위해 시장사회주의를 창안했고 외형상 자본주의 경제를 육성하고 있다. 

소련의 고르바초프 역시 중국과 같은 개혁과 개방 전략을 채택했지만 도입 시기가 늦었고 경제적 성과가 인민들에게 보여주기 전에 정치개방을 서두르면서 소련은 멸망했다. 조선은 내부적으로 중소의 틈바구니에서 주체사상을 창안했지만 대외적으로 일본제국주의 및 미국 제국주의에 맞서는 무기로 삼았다. 조선의 수령체제도 당을 정상화하고 당과 국가를 분리하고 수령보다는 당과 국가를 앞세우는 변화를 겪고 있다. 


둘째 국제사회에서 영원한 적도 우방도 없다. 서로 싸우던 제국주의 국가들이 미국의 지도 아래 나토라는 동맹을 유지했지만 미국과 유럽 사이의 갈등이 깊어가고 있다. 프롤레타리아국제주의라는 것도 소련이 사회주의경찰 노릇을 할 때 잠깐 유효했다. 소련은 중국과 핵전쟁을 하려고 했고, 미국은 한반도에서 자신과 전쟁한 중국편을 들었다. 소련의 미소평화공존을 규탄하던 중국이 미국과 수교했다.

중국은 간디 시절부터 인도의 독립을 지원했으나 인도는 독립 이후 중국과 수차례 국경분쟁을 하고 중국을 겨냥해 핵무기도 배치했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려고 인도의 핵무기를 묵인하고 국경분쟁을 부추겼으나 중국이 꾐에 넘어가지 않았다. 인도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도구에서 벗어나 미중러 수준의 강대국으로 도약하고자 한다. 

중러는 해방 직후 조선을 지배하려 했고, 소련붕괴 직후 미일이 조선과 수교하지 않은 조건에서 한국과 일방적으로 수교하고 조선을 정치경제적으로 고립시켰다. 중러는 유엔에서 미국과 함께 조선을 제재했지만 지금처럼 미국과 맞설 필요가 있을 때는 조선을 내세웠다. 


셋째 최근의 중러와 인도의 경제적 협력, 북중러의 안보적 협력은 철저하게 자신의 국익을 추구하려는 결과물이지만 이러한 다자협력에 참가하는 각 나라의 이해관계는 동일하지 않다. 이러한 다자협력의 본질에 대해 반미연대의 징조로 보거나 본격적인 다극화 시대의 진입으로 평가하는 입장이 있다. 

하지만 미국의 압박에 저항하는 다자협력의 본질은 항상 요동치고 있으며 심지어 언제든지 파열될 수 있다. 따라서 각국은 이러한 현상을 냉철하고 평가하고 자신들이 행보를 결정하고자 한다. 미국과 유럽, 일본에 끌려가는 이재명 정부도 이러한 다자협력에 대한 대응을 고심하고 있지만 한국민중의 입장에서도 제대로 된 평가와 대응이 필요하다.

우선 중러를 중심으로 하는 다자협력은 미국의 강압외교의 부산물이다. 즉 북중러나 인도가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이 강압외교를 거둬들이면 언제든지 다자협력은 와해될 수 있다. 미국과 동등한 수준의 강대국으로 인정받고 있는 중러는 자신들의 국익이 보장된다면 미국과 맞설 생각이 없다. 

중러의 전략은 미국과 사이좋게 국제사회의 기득권을 분담하고 싶은 것이다. 인도는 미국의 하위동맹으로서 중국의 적대국가로 남는 것이 아니라 미중러와 대등한 지위를 보장받고 싶어한다. 결국 중러와 인도는 미국으로부터 자신들을 인정받는 공동번영 즉 진정한 다극화를 원하고 있다.

물론 조선도 중러나 인도처럼 미국으로부터 강대국으로 인정받고 다극화의 한 축으로 끼고 싶어 한다. 그럴 경우 조선은 한국과 일본에 대해 군사적 외교적 우위를 획득할 수 있다. 문제는 미국이 조선을 다극화의 주체로 인정하기는커녕 제대로 된 국가대접도 해주지 않는 점이다. 조선에게 다극화는 너무 먼 희망이고, 당장은 자신을 부정하려는 미국에 맞서는 반미연대가 급선무이다. 


넷째 북중러의 정치군사적 협력에서 최소한의 공감대는 미국의 태도가 바꾸지 않으면 다극화가 아니라 반미연대로 전환될 수 있다는 경고이다. 중국은 대만전쟁을 피하고 싶고 경제에 주력하고자 하기 때문에 반미연대에 전혀 관심이 없다. 과거의 미중분업을 복원하고 경제력을 기반으로 장기적으로 전쟁 없이 미국을 극복할 심산이다. 

전술적으로 반미연대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쪽은 러시아와 조선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자신이 원하는 쪽으로 끝날 때까지만 한시적으로 반미연대가 필요하다. 미국에게 적대국으로 대접받는 조선은 북중러의 협력을 좀더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반미연대로 해석하고 싶어 한다. 조선은 미국에게 적대청산을 요구하고 핵무장을 인정받는 과정에서 반미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섯째 한국민중에게 필요한 건 다극화가 아니라 반미연대이다. 미국에게 지배당하고 있는 한국이 다극화의 주체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극화는 한국의 전략이 될 수 없다. 다만 다극화가 실현될 때 한국이 어떤 전략을 취할 것인지를 고민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에게 다극화는 불리한 구도이다. 다극화란 미중러가 사이좋게 세계를 분할하는 것이고 이는 현상유지이기 때문이다. 즉 남북분단을 고착화하고 미중러는 평화공존을 누리되 남북은 전쟁상태를 지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현상유지가 아니라 현상을 파괴해야 하고 그러려면 미국에 대해 중러보다 더 강경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 조선도 현상을 깨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다극화보단 반미연대에 방점을 두고 있다. 다극화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면 강대국의 지배분점전략에 취약해질 수 있다. 

남북, 특히 한국민중은 미국의 지배에 맞서고 자신의 이익을 실현하려면 미국과 평화적으로 공존하겠다는 소극적 태도가 아니라 한반도에서 미국을 몰아내겠다는 적극적 태도가 절실하다. 그래서 조선도 중러를 반미연대로 유도하려고 하고 있으나 중러는 당연히 페이스 조절을 하고 있다. 조선이나 한국민중이나 중러가 반미연대를 할 리가 없다는 점, 미국에 반발하는 다자협력을 언제든지 깨고 미국을 포함한 다극화전략으로 복귀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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