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견례는 성공, 관세협상은 이견, 안보문제는 다음에
양국 대통령은 8월 25일 낮 12시 42분부터 오후 1시 36분까지 백악관 오벌오피스(집무실)에서 약 54분간 공개회담했다. 이후 양국 정상은 비공개회의로 전환하여 캐비닛룸에서 확대 회담을 가진 뒤 오후 3시 1분까지 업무오찬을 가졌다. 오찬 식사는 야채 전식, 상추, 닭고기, 아이스크림, 커피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양국정상회담은 공개로 60여분 비공개로 80여분 총 140분가량 진행됐다. 양국은 정상회담 이후 공동성명이나 합의문을 내놓지 않았다. 언론용 회담과 오찬시간을 제외하면 양 정상이 핵심의제에 대해 밀도 있는 논의를 할 수 있는 시간 자체가 부족했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이 가졌던 의미는 양 정상의 상견례, 관세협상 추인, 한미동맹 현대화 논의이다.
상견례에 있어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돌발발언으로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군기잡기’에 나섰으나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 ‘띄워주기’로 대응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안보분야에서는 일본과 정상회담을 먼저 하면서 미국의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라는 요구에 빠르게 호응하면서 트럼프의 비위를 맞췄다. 이 대통령은 친중이라는 오해를 불식시키며 지난 G7정상회의에서 불발된 상견례를 결과적으로 화기애애하게 끝냈다.
트럼프는 회담 전에 교회와 미군부대 수색, 이재명 정부의 숙청 등 충격적인 발언으로 회담의 기세를 잡으려고 했다. 공개회담에서도 내란 특검에 대한 조롱, 주한미군기지의 토지 소유권 요구 등 돌출발언을 이어갔다. 반면 이재명 대통령은 이런 이슈를 간단히 해명하고 트럼프에 대한 칭찬을 이어갔다. 특히 트럼프가 가장 관심이 있는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공개회담은 트럼프에게 언론홍보용이었고 이재명 대통령은 트럼프의 의중에 충실히 대응했다. 결과적으로 언론에 우호적인 장면을 보여주고, 트럼프의 환심을 사서 관세와 안보에 관한 미국 측의 소나기를 피한 셈이다. 특별히 미국으로부터 얻은 것은 없지만 예상하지 못한 타격을 피했다는 점에서, 내용은 없지만 원만하게 진행된 정상회담이라고 볼 수 있다. 합의가 없었다는 점을 회담 실패로 볼 수 없는 이유이다. 이후 관세협상의 세부 사항, 안보 분야의 큰 틀이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관세협상 이견 좁히지 못하고 악마는 디테일에
이번 회담에서 예정된 핵심의제는 한미 양국의 실무자들이 타결한 관세협상을 추인하고 실무선에서 이견이 있는 부분을 양 정상들이 최종 조율하는 것이다. 하지만 비공개회담에서 양 정상은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실무자들의 협상결과를 추인하고 이후 세부적인 부분과 이견이 있는 부분은 계속 논의해가는 것으로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한·미 양측은 이번 회담 후 공동성명이나 보도자료 발표를 위해 10여 차례 회의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미국은 상호관세에 합의했음에도 품목관세에 대해 명문화하는 것에 소극적이었다. 상호관세는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근거를 두고 있으나 연방법원에서 ‘위법’으로 판정될 가능성이 있다. 반면 무역확장법 232조를 활용하는 품목 관세는 이미 철강에 트럼프 1기 때부터 적용되고 있어 법적 안정성이 강하다.
한국 정부가 ‘자동차 관세 15%’와 반도체·의약품 최혜국 대우 명문화를 요구했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3,500억 달러 대미 투자 펀드의 경우 한국은 이 중 1,500억 달러가 조선업 전용이라는 점을 문서에 포함하자고 제안했지만 미국은 거부했다. 미국 정부 역시 구글 정밀지도 반출, 쌀과 소고기 등 농산물 수입 분야에서 한국정부의 양보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다만 기존의 3,500억 달러 이외 한국 기업들이 미국에 1,500억 달러를 추가적으로 직접 투자하기로 했다.
3,500억 투자와 관련하여 구속력 없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할 예정이나 아직 실무자들이 협의 중이고 양국 정상 사이에 구체적인 논의가 없었다. 미국은 지분 투자를 요구하는 반면 한국은 대출이나 보증 등의 방식을 선호하고 있다. 원자력발전소 해외 건설과 관련된 웨스팅하우스와의 불공정계약 문제도 실무자간의 공유만 있었을 뿐 구체적인 논의가 없었다.
관세협상의 세부적인 논의는 향후에도 계속된다. 관세협상 과정을 보면 한미 간의 이견이 실무자들 사이에 좁혀지지 않았고 양국 정상들 사이에도 극적타결이 없었다. 관세협상과 한미 정상회담 과정에서 실무자 간에 성사된 합의문을 공개할 필요가 있다.
위성락 안보실장은 지난 7월 7일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 겸 국가안보보좌관과 만나 관세협상과 정상회담에 관련된 의제를 협의했다. 그런데 위 실장은 다시 7월 20일 긴급하게 미국으로 출국하여 21일 루비오 장관을 만나기 위해 백악관을 방문했다. 이 자리에는 미국 NSC(국가안전보장회의) 베이커 보좌관과 니담 국무장관 비서실장이 참석했지만 회담 직전에 트럼프 대통령이 루비오 장관을 긴급호출하여 대면회담이 무산됐다. 위성락 실장은 추후에 루비오 장관과 유선협의를 했다고 밝혔다.
7월 25일 한·미 재무·통상 수장의 ‘2+2 통상 협의’가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의 긴급 일정으로 이날 돌연 취소돼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4일 인천공항에서 되돌아왔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 등 한국대표단은 7월 30일 백악관을 방문하여 트럼프 대통령과 40분 동안 면담한 후 관세협상을 최종적으로 마무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물론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협상 타결 다음날인 7월 31일 언론 브리핑에서 협상성과를 미국 입장에서 부각시켰다. 미국 측은 3,500억 달러 한국투자에 대한 수익 중 90%를 미국이 가져갈 것이라고 밝히고 알래스카에 대한 한국 투자, 농산물과 쇠고기 개방 등을 언급했다.
너무 조용한 미국, 관심을 끌 추가적인 내용이 없어
8월 25일 정상회담에 대한 한국 측 브리핑을 보면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이 약 15분 동안 간략히 진행됐고 나중에 대통령실 위성락 안보실장, 김용범 정책실장, 강훈식 비서실장이 37분 동안 보고했다.
트럼프는 정상회담 직후 관세협상에 관해 기존 합의를 그대로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번 한미정상회담 직후 백악관은 공개회담 영상을 홈페이지에 올렸으나, 회담과 관련된 어떠한 브리핑을 하지 않았다. 7월 30일 관세협상 타결 직후 트럼프 대통령과 백악관은 언론플레이를 했기 때문에, 정상회담에서 추가로 여론전을 할 내용이 없었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은 공동성명보다는 개인적인 언론플레이를 선호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1월 20일 취임 후 이 대통령까지 약 20회의 양자 회담을 했는데, 공동 성명이 발표된 것은 3번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와 백악관 회담을 마친 뒤 공동 성명(Joint Leaders’ Statement)을 발표했다.
그 외에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과의 회담 뒤엔 발표문(readout)이 나왔고,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과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의 경우엔 보도자료(article)가 나왔다. 또 트럼프 대통령의 중동 순방 때는 3건의 팩트 시트가 발표됐다.
이번 이 대통령 방문은 국빈방문이 아니라 실무방문이라서 공항영접이나 숙소 측면에서 의전홀대 논란이 있었다. 정상회담 당일 오전에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 발포 행사가 있어 정상회담이 늦춰졌다. 정상회담 다음날 백악관은 3시간에 걸친 이례적인 마라톤 각료회의를 언론에 홍보하는 등 한미정상회담은 미국 언론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언론에 공개된 정상회담에서도 한국특파원을 제외한다면 미국 언론들은 한미현안에 대해 거의 질문하지 않았다. 정상회담 다음날 이재명 대통령이 필라델피아에 있는 한화 필리조선소를 방문해 한미 조선 협력 프로젝트 ‘마스가(MASGA)’를 부각시켰으나 백악관 인사들은 참석하지 않았다. 회담이 끝난 후에도 언론의 관심은 “이 대통령의 현명한 대처로 트럼프에게 말 폭탄을 당하지 않았다.”는 보도 수준에 그쳤다.
관세협상과 우크라이나 전쟁에 밀린 한미동맹 의제
안보분야에선 양국의 대통령은 물론 실무자 사이에서도 실질적인 논의가 진행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관세협상이 급선무라서 뒤로 밀린 측면도 있지만, 미국 측이 우크라이나 전쟁 종결에 주력하면서 안보 분야에 대해 이번에는 본격적인 의제 테이블에 올려놓지 않았다.국방비 증액에 대해 이재명 대통령이 한미동맹 현대화와 관련하여 먼저 언급했으나, 미국 측이 특별히 반응하지 않아 구체적인 추가 협의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무기 구매도 한국 측이 긍정적인 의사를 밝혔으나, 역시 구체적인 내용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반적으로 미국 측은 안보 분야에 대해 이번 회담에서 구체적으로 다룰 의사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전략적 유연성에 따른 주한미군의 규모와 역할조정, 방위비분담금 증액 문제도 구체적으로 논의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향후 한미 양국의 국방장관 회담에서 이런 문제들이 논의된 후 추후 정상회담에서 최종적으로 합의할 것으로 보인다.
친미정권의 잇따른 퇴진에 트럼프도 강공을 자제
결과만 보면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가 통상뿐만 아니라 안보분야에서 한국을 강하게 압박할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그 이유를 보면 첫째 트럼프를 언론에 띄어주되 핵심 사안을 양보하지 않는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전략이 성공한 측면도 있다. 둘째 우크라이나 전쟁 종결 문제에 정신이 팔려 있는 트럼프 측이 한미동맹 현대화 등 핵심의제를 다음 기회로 넘기고 본격적으로 다루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박근혜, 윤석열 등 친미정권들이 최근 8년 사이 잇따라 집회와 탄핵에 의해 퇴진당한 배경에는 국회 의원 다수와 국민들이 이들 정권의 한미일 군사동맹 추진 특히 한일동맹 추진에 분노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윤석열 탄핵사유에 외교정책을 넣다가 미국의 반발로 빼는 해프닝까지 있었다. 따라서 트럼프는 한국여론을 고려해 무작정 이재명 대통령을 압박할 수 없었다.
다만 트럼프와 미국 행정부는 향후 양국 국방장관 정례협의회 등을 통해 관련 의제를 제기하여 한국여론을 살피면서, 향후 특히 한미동맹 현대화 문제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재명 정부를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향후 관련된 이재명 정부의 대응전략도 중요하지만, 미국의 강압적인 외교에 대해 항의하는 한국의 국민여론이 더욱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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