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장국가로 인정받고 경제발전을 실현하려는 조선
[김정은의 딸 김주애는 2013년 생으로 알려져 있다. 정보당국은 김정은에게 2010년 생 아들이 있고, 또한 2017년 생 막내아들이 있다고 추정하고 있다. 국내외 정보당국과 언론의 일부는 김주애가 후계자 훈련을 받고 있으며, 향후 후계자로 최종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물론 김주애가 후계자가 될 수도 있지만 필자는 후계자가 될 수 없다는 근거들을 제시하고자 한다. ]
북의 후계자 문제는 수령체제인 조선의 국가전략의 배경에서 이해해야 한다. 건국 이후 조선의 국가전략은 인민생활의 향상과 국가방위이다. 이것이 김정일 - 김정은 시대에 핵무력과 경제발전의 병진노선으로 나타났다. 현재 김정은 시대에 조선은 핵무력의 완성을 선언하고 인민생활의 향상을 제1 우선의 목적으로 삼고 있다.
여기서 핵무력의 완성은 북미 전면전을 억제할 수 있는 전략핵무기의 완성뿐만 아니라 한반도에서 제한전쟁을 억제할 수 있는 전술핵무기의 완성까지를 포함한다. 조선이 미중러 수준의 핵무장을 발전시키는 것은 향후 과제이지만 현재 조선의 핵무력이 한반도에서 어떠한 형태의 전쟁도 억제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 이후 과제는 핵무력의 고도화와 전술핵을 사용하기 어려운 수준의 국지적 도발을 억제할 수 있는 수준의 고도의 재래식 무기의 개발과 배치이다.
북은 국제사회로부터 미중러 수준의 정상적인 핵무장국가로서 인정받고 싶어 한다. 인정적인 핵무장의 유지는 북을 괴롭혀 온 안보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는 버팀목이기 때문이다. 북이 국제사회로부터 핵무장국가로서 인정받으려면 북이 핵무기와 관련 핵심기술을 다른 국가나 무장단체에 확산시키지 않고, 핵무력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신뢰를 얻어야 한다. 즉 조선이 미중러 수준의 안정적인 정상국가라는 점을 국제사회에 인식시켜야 한다.
결국 조선의 최근 핵심전략은 정상국가를 안정화시키는 것이다. 국제사회로부터 조선이 핵무장의 정상국가로 인식되려면 무엇보다 핵무력에 대한 관리능력을 인정받아야 한다. 또한 수령체제를 민주집중제의 집단지도체제 안에서 안정화시키는 것이다. 김정은 시대에 이미 노동당 당대회와 중앙위원회를 정상화시키는 등 수령체제를 집단지도체제와 순기능적으로 결합시키고 있다. 조선이 관례적으로 해왔던 수령의 신년사를 하지 않고 당 중앙위원회의 신년사로 대체한 것도 수령체제와 집단지도체제를 조화시키려는 의지로 봐야 한다.
조선은 중국 수준의 사회주의법치에 이르지 못했으나 당과 국가의 관계도 안정화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당과 국가의 역할을 구분하고 당이 국가를 지도하되 당이 국가를 대체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국가가 행정을 담당하고 국가가 행정상 실수를 하더라도 당이 행정부의 오류를 수정하는 지도적 역할을 함으로서 당이 직접 행정을 하는 부담을 덜어준다.
이러한 메커니즘 안에서 당은 언제나 무오류이고 국가행정이 실수를 해도 당은 언제나 인민의 편에서 그 오류를 잡아준다는 측면에서 당의 권위를 보호한다. 당이 언제나 인민의 편에서 인민을 보살핀다는 당의 어머니 상을 강화시키는 것이다.
정상국가의 이미지 구축과 퍼스트레이디, 퍼스트도터
수령체제의 핵심인 백두혈통에 대한 자애롭고 친밀한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도 정상국가 전략의 일환인데, 과거와 다른 것은 이러한 지도자상의 구축이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에 대해서도 시도되고 있다는 것이다. 즉 핵무장국가의 지위를 국제사회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조선의 정상국가 전략은 대외적으로 안정적이고 친밀한 지도자상 구축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먼저 여성지도자가 부각되는 국제사회의 조류에 부응하여 조선에서도 여성정치인이 의도적으로 부각되고 있다. 외교에 최선희와 의전의 현송월이 국제사회에 자주 노출되는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 이해해야 한다. 백두혈통 여성정치인으로서 김여정의 활약은 수령체제와 정상국가의 상징적 결합이자, 국내외적 선전효과를 극대화시키는 사례이다.
수령의 가족이 부상되는 것을 단지 후계자 구도에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사회주의 국가에선 퍼스트레이디(영부인)이라는 개념이 없는 것이 보편적이다. 하지만 리설주는 서방에 퍼스트레이디로서 화려하게 등장했다. 김정은과 이설주가 팔짱을 끼고 대중 앞에 서는 것은 국내외적으로 조선이 정상적이고, 안정적이며, 친밀하다는 이미지를 구축해왔다.
또한 트럼프가 자식들을 내세우듯이 김정은 역시 김주애를 내세우고 있는데, 이는 서방의 지도자정치에서 자주 부각되는 퍼스트 도터(영애)의 이미지이다. 우스개소리이지만 조선 인민의 삶이 윤택해지고 애완견을 키우는 시절이 오면 퍼스트 독이 등장할 것이다. 김주애의 부상은 일단 퍼스트 도터의 측면에서 봐야 하고 수령의 후계자로서 훈련인지는 추가적으로 검증해봐야 한다.
수령체제의 후계자론을 통해 본 김주애의 지도자 가능성
조선에서 수령은 오로지 김일성뿐이다. 김정일과 김정은은 수령의 후계자일 뿐이다. 다만 수령과 그 후계자를 집단적으로 수령으로 부르는 경우가 있지만 김정일, 김정은 개인을 수령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조선에서 김일성 수령의 후계자가 되는 것은 주체사상과 수령론에서 보듯이 국가적 차원이 이데올로기 문제이자 정치군사적 현실 문제이다. 수령론에 따르면 후계자의 요건은 ① 수령에 대한 충실성(수령의 노선과 정책 관철), ② 비범한 사상이론적 예지와 뛰어난 영도력 그리고 고매한 공산주의적 덕성, ③ 업적과 공헌으로 인민들 속에서 절대적인 권위와 위신, ④ 세대교체론 등이다.
김주애는 현재로선 세대교체의 요건만 충족했을 뿐이다. 김정은의 업적과 공헌은 당연히 김정일의 노력을 계승하여 핵무력을 완성한 것인데, 김주애도 후계자가 되려면 그러한 업적과 공헌이 있어야 한다. 김정일은 선군정치, 김정은은 인민대중제일주의와 같은 사상노선을 제시했는데, 김주애 역시 그러한 사상이론적 영도력을 입증해야 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령에 대한 충실성이다. 그런데 충실성을 구체화한 김일성체현론’에 따르면 수령의 후계자는 김일성 수령의 모든 것을 체현하고 있어야 할 뿐 아니라 김일성에게 충실한 자라야 한다. 김일성체현론’과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이른바 ‘혈통계승론’ 이다. ‘혈통계승론’에 따르면 김일성이 당건설과 혁명을 개척하고 이끌어가는 노정 에서 창시하고 발전시킨 모든 ‘혁명적 재부’인 ‘혈통’을 후계자가 계승해야 한다. 즉 생물학적인 혈통이 아니라 김일성의 사상과 이론, 혁명업적, 투쟁경험, 사업방법 등을 이어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김일성체현론은 후계자의 김일성다움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김일성다움은 단순히 사상이나 사업작풍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로 외관상 김일성다움을 의미한다. 진짜 김일성이 연상되듯이 외관상 비슷한 용모와 행동거지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정일과 김정은이 젊은 시절의 김일성이 연상되는 풍채, 의복, 말투, 흡연을 비슷하게 연출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김주애가 후계자가 될 때 생기는 문제들
김주애는 여성이므로 당연히 외모상 김일성을 체현할 수 없다. 김주애는 그냥 혈연적으로 백투혈통일뿐이며, 김일성의 화신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김주애가 여성이기 때문에 수령의 후계자 즉 북의 최고지도자가 될 수 없다는 점은 수령체제가 조선의 가부장적인 문화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더욱 확연해진다.
스탈린대원수가 소련인민의 자애로운 아버지이듯이 조선에서 수령은 인민의 아버지이고 노동당은 어머니이다. 김주애가 수령의 후계자 즉 최고지도자가 된다면 여성이기 때문에 인민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으니 당과 수령의 역할에 대한 이미지 구축에 지장을 준다. 조선이 비록 사회주의국가이지만 봉건 잔재에서 시작된 혁명이고, 가부장제는 타파됐지만 남성중심 문화는 정치군사, 문화예술에 아직도 깊이 남아 있다.
인민이 화목한 가정을 이루듯이 수령이나 수령의 후계자도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낳아야 한다. 김주애가 최고지도자가 된다면 인민의 모범이 돼야 하므로 결혼을 하고 자녀도 낳아야 한다. 서방과 달리 조선의 최고지도자는 청년기 때부터 노년기까지 당과 국가, 인민을 책임져야 하는 자리이다. 임신과 출산, 육아의 부담은 국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김주애가 최고지도자가 될 때 그 남편의 존재도 수령체제의 혼란요소로 작용한다. 조선의 가부장적 문화와 최고지도자의 남편의 지위를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 남편이라도 수령의 후계자인 최고지도자에게 절대 복종해야 한다. 북에서는 2인자라는 개념이 없다. 최고지도자와 나머지가 있을 뿐이다. 조선에선 수령론에 따라 후계자가 아닌 혈통이나 가족은 최고권력에서 철저히 배제된다. 김정은의 고모부인 장성택이 숙청된 것도 수령론에서 일탈하여 2인자 행세를 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설사 최고지도자의 형제자매라고 해도 이른바 곁가지는 잘라내는 것이다. 유일한 2인자는 후계자인데, 김주애의 남편이 김주애의 후계자가 될 수 없다. 김주애의 남편을 유령취급을 하자니 정상국가 이미지에 맞지 않고 퍼스트젠틀맨으로 대우하면 파벌형성의 위험이 존재한다. 남편의 역할이 골칫거리가 될 수밖에 없다.
김주애가 후계자가 되려면 국정운영 역량을 보여줘야
세대교체론의 근거인 ‘준비론’에 따르면 후계자가 수령의 혁명위업을 계승 완성시켜야 하기 때문에 수령 생존시에 결정되어 수령에 의해 일정기간 육성되고 준비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첫째, 수령의 영도밑에 후계자의 영도 체계를 확고히 세울 수 있고, 둘째, 수령이 뜻하지 않게 퇴임한 다음 후계자를 추대하면 수령의 영도가 일시적으로나마 중단되거나 후계체제가 공고화되지 못한 틈을 타 권력쟁탈을 노리는 야심가들이 준동할 수 있으며, 셋째, 후계자가 수령을 직접 보좌함으로써 수령의 노고와 심려를 덜어준다.
현재의 김주애는 퍼스트도터의 역할 말고는 후계자로서 역할이 전무하다. 2013년 생인 김주애가 10대 후반 혹은 20대 초반이 돼야 실질적으로 김정은의 역할을 일부 분담할 수 있을 것이다. 김주애는 아직까지 퍼스트도터라는 역할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김주애가 후계자가 될 징조는 아마도 최소한 5년 후에나 알 수 있다.
만약 김주애가 십대 후반 이후 국정운영 능력을 보여주고 혁혁한 공로를 쌓아 김정은의 후계자가 된다면 이는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무엇보다 남성 중심의 수령체제와 가부장제 문화에 엄청난 충격을 주는 것이다. 수령론과 그에 따른 김일성체현론 등 북의 국가이데올로기 일부를 수정해야 한다. 조선에서는 백두혈통의 권력상속이 아니라 백두혈통다움의 권력승계라고 주장해왔는데, 김주애가 능력과 업적을 과시한다고 해도 수령체제 혹은 주체사상에 엄청난 변화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지도체제의 변화가 성공하지 못한다면 김일성다움에 근거한 수령체제가 위기에 빠질 수 있다.
북이 다양한 후계 선택을 할 수 있는 남북미 평화구축이 절실
김일성, 김정일은 항상 국제사회가 조선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주목해왔다. 김정은은 국방문제와 민생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여 조선이 국제사회에서 정상국가로 우뚝 서기를 갈망한다. 최근 남북 2개 국가 주장도 조선을 괴롭혀 온 남북미대치와 통일문제를 전혀 다른 관점에서 남북분단을 정상적인 상황으로 전환하려는 몸부림으로 봐야 한다.
북 자신도 빨치산사회주의, 전시사회주의라는 긴장의 운명을 떨쳐버리고 싶어할 수 있다. 수령체제, 백두혈통의 권력승계는 이러한 조선의 긴장된 운명의 결과물이다. 북은 한반도에서 긴장의 불운을 제거할 때 수령체제라는 전시사회주의도 승리적으로 청산할 포부를 가질 수 있다. 김정은이 구상하고 있는 미래의 조선은 전쟁 위험도 없고 민생도 해결되고 모든 것이 안정된 선진국의 모습일 것이라 본다.
그런 미래의 조선에서 김정은과 그 지도세력들은 언젠가는 수령체제를 사회주의 집단지도체제로 전환할 의도를 가질 수 있다. 사실 김정은 체제에서 그런 기미가 아주 조금이나마 보이고 있다. 정상국가라는 구상에서 김정은은 지금까지와 다른 권력승계를 고민할 수 있다. 그것은 단순히 김주애가 후계자가 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 남한의 민중 입장에선 동족인 조선, 북이 전시사회주의의 운명에서 벗어나 다양한 선택을 구상할 수 있도록 전시사회주의의 조건들을 제거해야 한다. 한국이 미국의 정치군사적 지배에서 완전히 해방되고 동족간의 전쟁의 위험이 사라지고, 미군이 한반도에서 철수한다면 조선은 정상국가의 다양한 길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그때 수령체제는 조선에게 강요된 운명이 아니라 선택지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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