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미국의 아프리카 노예 제도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나?

스페인 왕실은 귀족군인이나 개척자에게 식민지를 개척하도록 하고 그 대가로 이들에게 엔코미엔다(encomiebda)라는 특권을 부여하였다스페인에서 시작된 엔코미엔다 제도에 따르면 강자가 약자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약자에게 공물과 강제노동을 강요하였다주로 스페인 귀족들에 의해 파견된 개척자들은 스페인 왕실을 대신하여 식민지의 특정 지역과 그 원주민들을 통치하면서 엔코미엔다에 따라 그 지역의 원주민들에게 금속옥수수가축 등 공물을 바치도록 하였다또한 원주민들에게 개종을 강요하고 개종을 거부할 경우 가혹한 강제노동에 종사시키거나 처형하였다.

엔코미엔다 특권은 세습되었기 때문에 귀족이나 식민지 지배자들은 엔코미엔다를 통해 막강한 부와 권력을 축적하였고 유력인사들은 이를 바탕으로 하여 식민지에서 독자적인 권력기반을 구축하였다한편으로는 개척자들의 가혹한 통치로 인해 원주민들의 인구수가 줄어들면서 강제노동과 공물에 근거한 식민지 통치가 위협받게 되었다특히 식민지에 파견된 선교사들은 원주민들의 참혹한 현실을 본국에 고발하면서 개척자들의 엔코미엔다를 비판하였다.
이에 따라 스페인 왕실은 식민지 개척자들의 권력을 견제하고 식민지의 노동력을 보호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1510년 이후 스페인 왕실은 식민지에서 선교를 확대하고자 하는 교회와 협력하여 개척자들의 엔코미엔다 특권을 제한하려고 하자 스페인 내부에서 이에 관한 논쟁이 불거졌다스페인 왕실은 왕실로부터 봉급을 받고 왕실의 통제를 받는 관리들을 식민지에 보내 직접 통치하는 대신 현지 개척자들의 엔코미엔다 특권을 점차 축소하였다.
스페인 왕실은 1542년 기존의 노예를 해방하도록 하고 새로운 노예도 금지하는 인디아스 신법을 공포하면서 귀족들의 엔코미엔다 제도를 공식적으로 철폐하였다하지만 인디아스 신법 이후에도 신대륙에서 원주민에 대한 강제노동이 사실상 유지되었다특히 유카탄 반도 등 일부 지역에서는 특례가 인정돼 18세기 말까지 엔코미엔다 제도가 유지되었다.
식민지를 개척한 귀족들이 인디아스 신법 이후에도 원주민에 대한 강제노동과 공물 납부를 포기하지 않자 1550년 스페인의 카를로스 1세는 아메리카 대륙의 인디오들의 지위와 권리에 대한 확실한 판단을 위해 위원회를 구성하고 바야돌리드(Valladolid)에서 회의를 개최하게 되었다.
이 회의에서 철학자인 세풀베다(Juan Gines de Sepulveda)는 아우구스티노의 '죄에 대한 징벌로서의 노예이론을 전개하면서 "인디오들은 우상숭배식인인신공양의 풍습이 있기 때문에 이성이 없다고 봐야 하고 이들을 군사적으로 정복하고 강압적으로 통치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반면식민지에 파견되었던 바르톨로메 데 라스 카사스는 "인디오들도 과거 문명을 쌓은 이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설득과 교육으로 개종시켜야 하며 설사 가개종하지 않는다고 해도 악의적으로 복음의 전파를 막는 이들만이 처벌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특히 라스 카사스는 "교황이나 군주가 타 문명을 지배할 정당성을 가지지 못하므로 아메리카에 대한 군사적 정복은 부당하고 인디오들의 토지 소유권은 자연법과 국제법에 따라 하느님 앞에서 존중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며칠 동안의 논쟁 끝에 교황 특사는 식민지 귀족들의 특권을 제한하고자 하는 스페인 왕실의 요구에 부응하여 라스카사스의 의견을 수용하였다카를로스 1세는 1550년 바야돌리드 논쟁 이후 선교를 적극적으로 방해하지 않는 한 개종하지 않더라도 아메리카 인디언을 노예로 만드는 것을 금지하고 그들의 토지소유권을 존중하도록 하였다교황 역시 이러한 입장을 지지하였다.
이후 원주민들은 형식상 백인들과 동등해지고 이들의 혼혈인 메스티소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식민지 지배자들은 원주민들을 더 이상 광물 채취와 농장 운영에 강제로 동원하지 못하게 되었다이에 식민지 지배자들은 아프리카에서 원주민들을 잡아다가 노예로 삼아 강제노동에 종사시켰다.
콜럼버스 일행이나 카리브 해 섬의 스페인 이주자들은 처음에 섬의 원주민들을 노예로 부렸다하지만 원주민들은 아프리카 흑인에 비해 중노동을 견디지 못하고 유럽인 전파한 각종 전염병에 취약하였다이에 식민지의 관리나 원주민을 동정한 신부들은 원주민 대신 아프리카 흑인을 데려와 노예로 사용하도록 허용할 것을 스페인 왕조에 탄원하였다스페인 왕이던 카를로스 5세가 이를 허용하자 스페인이 노예 수입이 공식적으로 시작하였다.
한편 로마 교황과 스페인 왕이 원주민을 노예로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자 식민지는 인력난에 시달렸고 이에 아프리카 흑인을 수입하는 노예무역이 번성하였다초기의 흑인 노예는 남미와 서인도 제도의 사탕수수 농장에 밀집되었으나면화 농장이 성행하던 북미 지역으로 확산되었다스페인이 장악한 노예무역은 스페인으로부터 식민지 영유권을 빼앗은 영국으로 이전되었다.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가 출신의 스페인의 카를로스 2세는 병약하였고 후계자가 없었다이에 카를로스 2세는 병으로 요절하기 전에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가의 계승자로서 신성로마제국 황제이자 헝가리와 보헤미아의 왕오스트리아 대공을 겸하고 있던 레오폴트 1세를 자신의 후계자로 삼으려고 하였다하지만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 14세는 합스부르크의 공주 앤의 아들이자합스부르크 출신의 카를로스 2세의 배다른 누나로서 스페인의 공주인 마리 테레즈의 남편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후손이 스페인 왕위 승계 순위에서 더 앞선다고 보았다.
카를로스가 후계자를 정하지 못한 채 1700년 사망하자 결국 마리 테레즈의 요구대로 스페인의 왕위는 프랑스 부르봉 왕가의 필리프에게 넘어가 필리프는 스페인의 필리페 5세가 되었다결국 이에 반발한 신성로마제국과 오스트리아는 프랑스와 전쟁을 시작하였다또한 프랑스의 부르봉 왕가가 스페인의 왕위를 계승하면 스페인과 프랑스가 사실상 합해져 유럽의 최강자가 되기 때문에 영국을 중심으로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등이 오스트리아에 합세하였다이 전쟁은 스페인과 프랑스가 지배하고 있었던 아메리카 대륙에서도 이어졌다.
위트레흐트 조약(1713)으로 스페인의 펠리페 5세는 스페인의 왕좌를 지켰으나프랑스의 왕위는 계승할 수 없게 되었고따라서 두 왕국이 합쳐질 위험은 사라졌다또한 스페인의 해외 영토는 분할되었다포르투갈은 브라질에 있는 아마존 강과 오야포크 강(Oyapock) 사이의 땅에 대한 영유권을 인정받았다북 아메리카에서 프랑스는 영국에게 루퍼츠랜드와 아카디아뉴펀들랜드에 대한 권한을 영국에 양도하였다세인트키츠 섬의 거의 대부분의 지역도 또한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에 전적으로 양도되었다프랑스는 또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이 이로쿼이족에 대한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의 종주권과 교역할 수 있는 먼 지역의 인디언들은 그 어떤 나라와도 무역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도록 강요받았다특히 펠리페 5세는 소위 아시엔토(asiento)라 불린 스페인령 아메리카에서의 독점적인 노예 무역권을 영국에게 30년간 양도해야만 했다그 내용은 잉글랜드가 향후 30년 동안 노예 11만 4,000명을 에스파냐의 식민지 포르토벨로 또는 베라크루스의 노예 시장에 공급하는 독점권을 갖는다.”라는 것이었다.
원래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는 노예무역을 금지하였으나 17세기가 되자 영국에서도 노예무역이 합법화되었고 아시엔토의 이양 이후 노예무역은 급속히 발전하였다. 18세기 중반 스페인의 사탕수수 농장을 인수 받은 영국은 자메이카를 중심으로 노예 농장을 확대하였는데노예 수가 1750년 295000명까지 늘어났다.
상인들은 본국의 럼주와 총포화약을 싣고 아프리카 서해안에 도착해 흑인 노예와 물물교환을 한 뒤 다시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가 노예를 비싼 값에 되팔았다이때 생긴 돈으로 식민지에서 생산된 사탕수수 같은 물건을 배에 가득 싣고 귀환하는 것이 바로 잉글랜드의 삼각 무역이었다처음에는 노예를 데려올 때 다른 부족을 노예로 잡은 추장에게 럼주나 화약을 대가로 건넸지만 시간이 갈수록 노예 상인들이 직접 노예를 약탈하는 일도 적지 않았다.
두 달 이상 걸리는 항해 기간 많은 흑인 노예들이 사망하였다노예가 병들 것을 우려하여 가끔 갑판으로 끌고 나와 강제로 춤을 추게 하는 등 운동을 하도록 하였으나 노예들은 항행 기간 내내 노예들은 쇠고랑을 차고 화물창고와 갑판 사이의 공간에 다닥다닥 붙어 앉았다. 1727년 퀘이커교도가 허용할 수 없는 관행이라고 노예무역을 금지할 것을 청원하였다. 1802년 덴마크가 노예무역을 금지했고, 1807년 미국도 공식적으로 이를 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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