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남미 우익 독재정부에 대한 지원

파나마의 군사령관인 노리에가는 친미노선에서 이탈하고 과거 마약 관련 작전의 경험을 살려 중남미 마약조직과 거래를 하며 비밀자금을 만들었다. 미국 검찰은 노리에가를 마약 혐의로 기소하였다. 미국의 요청에 따라 파나마 대통령이 노리에가를 해임하였지만 의회는 오히려 대통령을 해임하고 노리에가를 국가수반으로 추대하였다. 미국은 노리에가가 집권할 경우 파나마 운하의 지배권을 상실할 수 있고, 노리에가를 방치할 경우 중남미의 친미 정권들이 연이어 이탈할 것을 염려하여 파나마를 침공하였다. 파나마 내 미국인 보호, 파나마 민주헌정 회복, 마약범죄자 체포 등이 침공의 명분이 되었다. 침공 당시 미군은 미국인에 대한 파나마 군경의 폭행에 대한 보복으로 무차별 폭격을 하여 약 300여명의 민간인이 사망하였다. 미국은 노리에가가 과거에 관여한 미국의 공작을 감추기 위해 노리에가를 미국의 특별 교도소에 수감시켰다.
쿠바의 바티스타 대통령은 1933'중사들의 반란'을 일으켜 실권을 잡은 후 1940년 쿠바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바티스타는 야당을 탄압하다 1944년 대선에서 패배해 미국으로 도피하였다. 하지만 쿠바가 부정부패와 재정파탄으로 혼란에 빠지자 미국의 지원을 받아 19523월 쿠데타를 일으켜 다시 정권을 장악하였다. 그는 재집권 이후에도 부정부패와 독재를 일삼아 카스트로의 혁명에 불을 붙였다.
아옌데 정권을 붕괴시킨 피노체트는 17년의 통치기간 중 수많은 반인륜적 범죄행 위를 저질렀다. 쿠데타 직후 칠레에서는 5천 명의 시민들이 살해당했고, 이후 한 달 동안 목숨을 잃거나 행방불명된 사람들이 수천 명에 달했다. 피노체트의 집권기간 동안 앞서 언급한 쿠데타 직후 사망자 5천 명과는 별도로 1만여 명의 사망자가 추가로 발생했다. 적어도 20만 명이 고문을 당했으며, 100만여 명이 자신들의 조국인 칠레를 떠나 국외 망명길에 올라야 했다.
미국은 아르헨티나에서 민주인사들을 상대로 더러운 전쟁’ (1976-1983)을 일으킨 군부를 지원하였다. 닉슨 대통령과 키신저는 3만여 명의 학살에도 군부정권을 지원하였다. 또한 미국은 볼리비아의 좌익정부를 1971년 전복한 우고 반제르 군부, 파라과이의 알프레도 스토로에스네르 우익 정권(1954-1989)을 지지하였다. 특히 스토로에스네르는 35년간 집권하면서 공산당 당수를 전기톱으로 살해하도록 지시하였다.
스페인의 프랑코 정권은 파시스트 색채로 인해 미국과 소련 모두에게 외면을 받았다. 하지만 냉전 시기 프랑코 정권이 반공정책을 강화하자, 1950년대 후반부터 미국과 서방은 스페인에 대한 제재를 해제하였다.
미국은 1903년 이후 쿠데타의 소용돌이에 빠진 엘살바도르 내전에 개입하여 우익군부의 집권을 돕는 한편 좌익에 대한 탄압을 지원하였다. 콜롬비아에서도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미국은 멕시코에서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독수리작전을 주도하여 민주화를 요구하던 인사들과 학생들을 천여 명이 살해되도록 하였다.
1968년부터 2000년 사이에 집권한 페루의 후지모리 대통령은 미국의 지원을 받아 수십만 명을 투옥하였다.
이밖에도 미국은 파라과이, 우르과이, 온두라스 등에서 군사독재를 지원하고 이들의 인권유린을 묵인하였으며, 심지어 자문단을 보내 고문 방법 등을 교육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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