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이란 콘트라 사건과 중남미에서의 후퇴

1980년의 대통령 선거에서 레이건 후보는 CIA의 규제 완화를 주장하였다. 레이건 대통령은 1981년 해외정보활동을 위한 예산을 60억 달러에서 200억 달러로 대폭 증액하였다. CIA는 카터 행정부 때 해고된 비밀공작원을 재고용하여 10여 건에 이르는 대규모 작전을 추진하였는데, 당시 미국 의회에서는 비용이 500만 달러 이상 소요되거나 혹은 외국 정부 전복을 목적으로 하 는 비밀공작은 대규모 작전으로 규정했다. 이란-콘트라 공작이 그 중 하나이다(존슨, 2001: 285 - 295).
1961년 결성된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 해방전선은 197940년 동안 집권한 친미독재자 소모사를 미국으로 몰아내고 좌익정권을 수립하였다. 레이건 대통령은 새 정부가 독재를 하고 있다고 비난하였다. 의회는 레이건의 주장에 따라 1981콘트라라고 불리는 우익반군에게 무기 등을 지원할 수 있는 권한을 대통령에 부여했다. 하지만 과거 우익독재자 소모사와 관련된 반군을 지원하는 것에 대해 반대여론이 높아져 의회는 1984년 콘트라 반군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는 볼랜드 수정법안을 통과시켰다.
한편 레바논의 헤즈볼라는 인질을 억류하고 있었는데, 미국은 인질 석방을 위해 이란에게 헤즈볼라에 대해 압력을 행사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그 당시 이란은 이라크와 전쟁 중이라서 무기가 필요했기 때문에 이란은 압력행사의 대가로서 무기 판매를 요구하였다. 레이건 행정부는 국가안보장회의(NSA)의 논의를 통해 이란에게 무기를 팔았고, 그 대금을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 정부를 전복하려는 콘트라 반군에게 지원하였다. 반군들은 그 돈으로 무기를 사거나 마약을 거래하는 자금으로 사용하였다. 1986년 콘트라 반군에게 줄 무기를 실은 미국의 민간항공기가 니카라과 정부군에 의해 격추되어 이란-콘트라 사건이 세상에 드러났다.
1986년 미 의회는 콘트라 반군에 1억 달러를 지원하기로 결정하였지만 이 결정 이전에 미국 정부가 콘트라 반군을 지원하는 것은 불법이었다. 또한 그 당시 이란의 회교혁명정부에게 무기를 수출하는 건 미국 국내법과 유엔 결정에 위반되는 해우이었다. 또한 인질을 잡고 있는 테러리스트와 협상하지 않는다는 미국의 원칙도 위반한 것이었다. 1989 ‘콘트라 마약 거래에 관한 미국 상원외교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공작에 관여한 국NSA, CIA, 국무부 직원들이 콘트라 반군과 마약 밀매업자들을 위해 마약 수송 비행기의 이착륙을 도와주고, 돈세탁, 무기 밀매, 암살, 고문 등에 관여하였다.
이 사건으로 CIA가 남미에서 저지른 다른 불법공작들도 드러났다. 이 사건의 영향으로 중남미에서의 CIA의 비밀공작은 거의 대부분 중단되었다. 레이건 대통령은 탄핵 위기에 몰렸으나 임기 말기라서 탄핵 주장은 힘을 얻지 못하였다. 이란 콘트라사건이 폭로된 후 미국의 중남미 개입은 다소 주춤해졌다. 소련 붕괴 이후 좌익게릴라들은 진압당하거나 정부와 협상하였고, 중남미는 민주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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