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당과 노동조합의 관계 : 소련과 공산권

러시아의 1905년 혁명 당시 노동조합원은 255555명에 불과하였으며, 차르체제에서 노동조합결성은 사실상 불법이었기 때문에 19172월 혁명까지 대중적인 노동조합활동은 보잘 것 없는 수준이었다. 1905년 혁명 중에 노동조합이 합법화되고 사회민주당은 공개적으로 활동하였지만 1906년에 사회민주당뿐만 아니라 사회민주당과 관련이 있는 노동조합의 활동도 다시 불법화됐다. 따라서 그 당시 러시아에서는 현실에 존재하는 당과 노동조합의 관계가 아니라 당과 노동조합의 이상적 관계라는 추상적 수준에서 논쟁이 진행됐다.

1905년 혁명이 실패한 후 노동조합과 의회 등 합법적 공간에서만 활동하자는 청산주의자와 반대로 모든 합법적 공간을 거부해야 한다는 소환주의자들이 대립했으나 레닌은 양자를 모두 비판했으며, 이러한 입장은 1912년 러시아사회민주당 제6차 전국협의회 결의문에 반영됐다.
레닌의 입장은 사회민주당이 비록 불법화되었지만 전위정당으로서 가장 중요한 조직이고, 합법적인 노동조합은 당의 목적에 이용될 수 있는 전선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레닌의 이러한 노동조합전선론에 따르면 당은 노조를 통제하고, 노조는 선진계급을 통제하고, 선진계급은 다시 근로대중과 농민대중을 통제한다.
또한 레닌은 1921노동조합, 현재 상태와 트로츠키, 부하린의 잘못에서 노동조합이 당과 대중을 연결하는 매개고리(전달띠: Transmissionsriemen)라고 규정했다.
 
정당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전위들로 조직되며, 이 전위들이 사회주의로의 이행과정에서 불가결한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를 실현한다. 당과 대중은 서로 일방 통행하는 관계가 아니라 쌍방 통행하는 관계이다. 노동조합은 당과 대중을 연결하는 매개고리이다. 노조는 일상 활동을 통해 대중을 자본주의가 공산주의로 이행하는 과정의 주도 계급임을 설득하고, 전위들을 대중과 연결시킨다.
 
레닌은 사회민주당 당원들은 조합 내에 강고한 당세포를 조직하여 당 중앙의 지령에 따라 노동조합을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이러한 당세포를 통한 노조의 통제라는 입장은 1912년 볼세비키 프라하 협의회 결의문에 반영됐다.
레닌은 사회주의 혁명이후 노동조합이 공산주의의 학교라고 보았으며, 이는 마르크스의 입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이다. 집권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전위들은 충분히 조직되지 못한 대중과 사회 경제적 저발전 수준의 국가에서 자신들의 이념을 선전해 내고 대중을 묶어낼 수 있는 대중 조직이 필요했던 것이다. 레닌의 이러한 인식은 사회주의 혁명이 달성된 이후 노동조합이 공산당이 노동자대중을 장악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의미로 변질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노동조합을 당의 도구로 보는 입장은 소련 성립 이후에 더욱 정식화되었으며, 소련의 노동조합은 서유럽의 노동조합과 전혀 다른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1919년 코민테른 1차 대회 선언문을 작성한 트로츠키는 사회주의혁명의 시기에는 소비에트가 노동조합을 쉽게 대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1937년 소련의 노동자 84.6%162개의 노동조합에 의해 조직되었고, 노동조합의 기본단위는 노동자회의와 직장위원회였다. 상급단체로 산업별노동조합과 전연방노동조합중앙평의회가 있었다. 소련에는 자본가가 없었기 때문에 파업이 불필요해지고, 대신 노동조합은 공장감사와 노동보호의 전국체제를 통제해왔다. 노동조합은 공산당, 국가경제기관과 협력하였다. 노동조합은 중앙정부로부터 각각의 직장에 이르기까지 생산회의에 참석하고, 5개년계획의 작성에 참여하였다.
동유럽 공산주의 국가의 노조는 혁명에 성공한 공산당의 지도와 대중의 참여를 유도해 내는 매개고리로서 규정되어 국가관료화한 정당의 통치기구로 격하됨으로써 노동자 대중의 참여가 오히려 저지되는 결과를 빚었다. 동유럽의 노동조합은 소련의 경우처럼 정부의 노동성이 담당해왔던 행정적 기능을 담당하였다. 또한 노동조합총동맹은 사회보장제도의 운영을 담당하였다. 예를 들어 루마니아 헌법에 따르면 국가사회복지부의 활동의 조직, 지도 및 통제는 노동총동맹에 의해 국가사회복지평의회를 통해서 시행됐다.
동독의 노동자 대변구조는 노동조합 일원체계였다. 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유일한 대중조직으로서 민주집중제의 원칙에 따라 상급단체인 동독자유노련(FDGB)에서부터 사업장 수준에 이르기까지 통일사회당(Sozialistische Einheitspartei Deutschlands: SED)의 지도 아래 중앙집권적으로 조직되어, 당과 국가의 전달띠(Transmissionsriemen)로 기능한 것이다. 지역별산업별로 조직된 단위노조의 재정을 비롯한 모든 결정권은 단일 통합노조인 노련에 집중(Gill 1989, Pirker et al. 1990 참조)되어 있었다. 일정한 범위에서 기업노조의 공동결정권이 법적으로 인정되었으나, ‘문서상의 권한에 불과해 종종 상징적 의례(symbolisches Ritual)”로 치루어졌으며, “노동자들의 일상적 이해대변은 전 사회 차원의 이해대변에 철저히 종속되어 왔다(Gill 1989, 379, 381). 작업과정 상의 문제를 둘러싸고 경영진과 기업노조지도부 간 갈등이 있을 때는 기업에 파견된 기업당조직(Betriebsparteiorgane)’이 계급적 관점과 전체 사회의 이익에 입각하여 조정했고, 경영진과 기업노조지도부는 그 결정에 따라야 했으며, 기업당조직은 현장 감독기관으로서 실제 많은 사업장 영역에 개입했다. 따라서 구동독의 사업장 노조는 노조조직상 상급노조의 위계체계에 종속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업장 수준에서도 경영진 외에 당기관에 종속된 상태였다.
코민테른을 통한 소련 연방의 헤게모니는 노조-정당 관계의 설정에서도 대부분의 서유럽 공산당과 공산주의 정파노조들을 실질적으로 구속하였다. 코민테른은 서구 노동조합운동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채 서구의 노동운동을 지도하려고 했다. 코민테른은 개혁주의와 카우츠키주의에 경도된 중간주의를 비판하는 연장선에서 암스테르담 노동조합 인터내셔널의 지도자들을 비판하였다. 또한 코민테른은 기존의 노동조합과 별개의 노동자동맹을 만들려는 초좌파주의를 비판하였다. 레닌은 1920년 좌익소아병에서 사회민주주의자는 대중이 있는 곳이라면 비록 그곳이 반동적인 곳이라도 후진적 노동자 대중을 반동적 지도자와 노동귀족의 영향력 아래 내버려 둘 수 없기 때문에 무조건 활동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1920년 코민테른 2차 대회에서 라테크는 보수적인 노동조합에 반대하여 별도의 혁명적인 노동조합을 건설해야 한다는 주장을 비판했다.
하지만 라테크는 더 나아가 서구의 노동조합운동에 있어 관료의 통제권을 박탈하고 노동조합 자체를 혁명의 편으로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고 이러한 주장은 영국과 미국의 대표들에 의해 비판받았다. 라테크의 주장은 서구의 노동조합운동의 현실을 경험하지 못한 소련의 희망에 불과했다. 영국과 미국의 대표들은 노동조합의 관료를 통제하는 것은 혁명 이후에나 가능한 것이고, 그 전에는 노동자 대중이 관료의 통제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싸우는 한편 관료에 저항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코민테른은 2차대회에서 서구의 암스테르담 인터내셔널에 대항하여 적색노동조합을 독립적으로 구성할 것을 각국의 사회주의 세력에게 요구하였으나 이는 노동운동을 분열하게 만들었다. 코민테른은 당과 노동조합의 관계를 어느 정도 중앙과 지방의 관계로 보면서 노동조합은 자본주의의 근거지를 공격하고 사회주의적 생산의 기초를 다지는 일을 책임진다고 선언하였다. 심지어 1921년 코민테른 3차 대회는 노동조합의 개혁적 지도부를 제거하고 노동조합을 혁명적 프롤레타리아의 진정한 근거지로 만들 것을 주장했다. 이는 당과 노동조합의 질적 차이를 경시하는 것이자, 노동조합에 대해 과도한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다.
1922년 코민테른은 아무 전제조건 없이 적색노동조합 인터내셔널과 암스테르담 인터내셔널이 연합총회를 하지고 제안하면서 노동관료와의 동맹을 모색하였다.
하지만 1928년에 이르러 코민테른은 서구의 사회민주당이 객관적으로 사회파시즘으로 변질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사회민주당과 공동전선을 거부하였다. 이러한 방침은 독일공산당 등에 관철되었다.
결론적으로 코민테른은 국제노동자 혁명의 도구에서 소련의 외교정책 도구로 급속히 변질됐다. 코민테른의 주요목적은 영향력 있는 정치세력이나 지도자들과 우호적 관계를 맺고 이들이 서방의 러시아 개입에 반대하도록 포섭하는 것이 됐고, 이러한 방침은 각국의 노동조합 활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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