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당과 노동조합의 관계 : 레닌과 로자

레닌(Vladimir Ilich Lenin)
 
첫째, 레닌 역시 마르크스와 마찬가지로 노동조합과 당의 독자성, 노동조합의 경제투쟁과 당의 정치투쟁의 구별을 인정하였다. 레닌의 노동조합에 관한 저작은 주로 당과 노동조합의 관계, 노동조합의 활동방식으로서 개혁과 혁명을 둘러싼 경제주의 논란 등을 다루고 있다.
레닌은 1902년에 쓴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혁명적 정당의 정치활동과 서유럽의 노동조합의 역할은 분명히 다르다고 지적했다. 레닌은 "서유럽과 달리 노동조합을 포함한 모든 정치적 결사가 금지된 러시아에서 경제주의자들은 노동조합을 당과 혼동하는 실수를 저질렀다"고 주장하면서 "모든 노동자에게 개방되어 있는 대중조직으로서 노동조합은 고도의 의식을 갖춘 직업적 혁명가만 가입하는 당과 구별된다"고 지적하였다.

레닌은 1903년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 제2차대회의 결의초안에서 대회는 노동자의 경제투쟁과 노동조합을 발전시켜 경제투쟁과 노동조합운동의 사회민주적 성격을 맨 처음부터 강화하는 것을 인정한다고 선언하였다. 레닌이 경제투쟁의 독자적인 중요성을 인정한 것은 경제투쟁이 정치투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기 때문이다.
둘째, 레닌은 노동조합의 당에 대한 중립성을 부정하고 노동조합과 당의 협력을 강조하였다. 독일 사회민주당에 의해 설립된 자유노동조합이 사회민주당의 자신에 대한 정치적 개입을 중단하라고 요구함으로써 촉발한 노동조합의 중립성 문제에 대해, 레닌은 1907년 정치투쟁과 경제투쟁을 각각 사회민주주의(정당)과 노동조합의 분업으로 구분한 제2인터내셔널의 대회의 결정을 비판하면서 노동조합은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사상적 지도를 받아들이고 그것과 조직적 연계를 구축해야 한다1907년 러시아사회민주당 런던대회에서의 볼세비키의 결의안을 옹호했다.
레닌에 의하면 유럽에서 프롤레타리아의 투쟁이 아직 발전하지 않았고, 노동조합에 대한 부르주아의 공작이 행해지지 않았던 초기에는 프롤레타리아의 투쟁기반을 넓히는 수단으로서 노동조합의 중립성을 주장해도 좋았다. 하지만 혁명적 프롤레타리아 당이 성장하기 시작하였을 때 노동조합들은 일정한 반동적인 모습들, 일정한 직능적 편협성, 일정한 정치적 무관심의 경향, 일정한 침체성들을 불가피하게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이는 노동자계급의 당이 창설되고, 자본주의가 제국주의 단계로 돌입하여 계급모순이 한층 더 격해지는 조건에서 부르주아는 노동조합의 활동을 제한하고 사회주의와의 모든 결합으로부터 노동조합을 떼어 놓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레닌은 1902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서 노동조합의 중립성을 옹호한 적이 있었으나, 1907년의 슈투트가르트 국제사회주의자대회를 계기로 노동조합의 중립성에 대해 반대하면서 노동조합과 당의 긴밀한 접근을 강조하였다. 레닌은 1908노동조합의 중립성에서 다음과 같이 노동조합과 사회민주당의 결합을 강조하였다.(Lenin, 1972c)
 
노동조합과 혁명적 사회민주주의의 견고한 결합이 필요하다는 이론과 달리 조합의 중립성 이론은 프롤레타리아의 계급투쟁을 무디게 하는 것을 뜻하는 개선수단을 어쩔 수 없이 선택하게 된다. 중립주의가 중시하는 것은 노동자의 상태개선을 위해 노동자들을 통합하는 것이지, 노동자의 해방사업에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투쟁을 위해 그들을 통합하는 것이 아니다. 부르주아는 노동조합의 활동을 제도를 기초로 하는 사소한 활동을 제한하고, 조합을 사회주의와의 결합에서 떼어놓으려고 한다. 중립성은 이러한 부르주아적 지향의 사상적인 외피이다.
 
셋째, 레닌은 당의 노동조합에 대한 지도적 지위를 강조하였다. 레닌은 먼저 무엇을 할 것인가를 통해 경제주의자들을 비판하면서 정치투쟁의 우위를 강조하였다. 모든 나라의 역사는 노동자계급이 오직 그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노동조합주의 의식, 즉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단결해 고용주들과 싸우고, 정부로 하여금 노동입법 등을 통과시키도록 노력한 것이 필요하다는 확신만을 발전시킬 수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레닌에 의하면 계급투쟁은 정당의 투쟁 속에서 가장 목적의식적이며, 포괄적일뿐만 아니라 정형화된 방식으로 표현되고 있다.(Lenin, 1972b) 계급적 정치의식은 외부로부터만, 즉 경제투쟁의 외부로부터만, 다시 말해 노동자와 고용주의 관계의 영역 외부로부터만 노동자들에게 도입될 수 있다. 현대의 과학적 사회주의의 창시자인 맑스와 엥겔스도 그들의 사회적 지위를 보면 부르주아 지식인에 속했다. 같은 식으로 러시아에서도 사회민주주의라는 이론적 교리는 노동자계급 운동의 자생적 성장과 독립돼 나타났다. 따라서 노동자들 사이에서 사회민주주의 의식이 그 자체로는 존재할 수 없다.
레닌에 의하면 당은 노동자 대중조직을 매개로 하여 노동자 대중운동이 계급의식적 운동으로 발전하도록 지도해야 한다. 레닌에 의하면 과학적 사회주의 혁명이론과 민주집중제에 기초를 둔 프롤레타리아적 규율로 무장하고 모든 기회주의, 수정주의 경향과 비타협적으로 투쟁하는 혁명적이고, 전투적인 새로운 유형의 당이 노동자계급과 모든 근로대중을 지도함으로써 사회주의혁명과 노동자계급의 권력은 실현될 수 있다.(김상복, 1991: 166)
레닌은 사회민주당 강령 초안과 해설에서 당의 임무는 노동운동과 결합하여 그들을 인도하고, 그들이 이미 수행하기 시작한 투쟁 속에서 그들을 지원하는 것이다고 지적하고 당의 임무로서 노동자의 계급적 자각을 발전시키는 것, 노동자의 조직화를 돕는 것, 노동운동에 있어 투쟁의 임무와 목표를 제시하는 것 등을 강조하였다.(Lenin, 1972b) 레닌은 1차 대전 중에 독일 자유노동조합이 정치적 문제에 중립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했을 때, “노동조합이 사회민주당의 이데올로기적 지도를 받아들이도록 고무시키고 노동조합과 조직적 유대를 세우는 것이 주된 과제라고 비판하였다.
 
 
로자 룩셈부르크(Rosa Luxemburg)
 
로자 룩셈부르크 역시 마르크스나 레닌과 마찬가지로 노동조합의 독자성을 인정하였으며, 나아가 사회민주주의의 공식입장, 즉 노동조합과 당의 결합을 인정하였다. 룩셈부르크에 따르면 노동조합의 당에 대한 관계는 부분의 전체에 대한 관계이기 때문에 양자는 통일적으로 파악되어야 한다.
룩셈부르크에 의하면 노동조합은 본질적으로 자본주의적 임금법칙을 관철하는 수단으로서 일정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공격수단이 아니라 자본주의 경제의 압력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조직적인 방어수단에 불과하다. 룩셈부르크에 따르면 노동조합은 사회주의와 결합할 때에만 노동자의 해방에 기여할 수 있다. 노동조합의 경제투쟁과 노동자당의 정치투쟁은 쌍방향으로 발전하면서 상호작용한다. 경제투쟁은 정치투쟁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노동자계급 역량의 마르지 않는 저수지이다. 룩셈부르크는 대중스트라이크, 당과 조합 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孝橋正, 1983: 83)
 
독일에서 사회민주당은 정치활동, 노동조합은 경제활동을 독립적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어왔다. 당의 활동이 의회투쟁에서 끝나는 듯하였다. 이러한 당과 노동조합의 동권론은 당을 소시민적 개량주의 정당으로 변질시키고 있다. 지금까지 정당과 노동조합의 관계는 재검토되어야 한다. 혁명적 대중행동 속에서 정치행동과 경제행동은 하나의 계급투쟁에 있어 단지 두 국면일 뿐이다. 노동조합의 투쟁은 목전의 이익을 포함하는 것이며, 당의 투쟁은 장래의 이해를 포함하는 것이다.
 
로자 룩셈부르크에 따르면 당의 노동조합에 대한 지도는 노동조합의 자발성을 존중하는 정치적 지도이다. 룩셈부르크의 1899사회개혁 혹은 혁명에 따르면 계급은 외부의 지도에 의해 비로소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운동과 투쟁을 통해 각성되고 의식화된 노동자들이 사회주의자가 되며 하나의 계급으로서 조직된다. 사회민주주의 투쟁은 기본적인 계급투쟁이라는 일련의 창조적 행위의 산물이다. 노동자계급 중에 선진 노동자와 후진 노동자가 있다. 선진노동자의 임무는 혁명정당을 건설하여 후진 노동자를 지도하는 것이다. 당의 정치적 지도와 대중의 자발적인 투쟁의 통일이 혁명의 길을 개척한다.(Rosa Luxemburg, 1964)
혁명은 당의 지도 없이 자발적 행동으로 시작되지만, 그 이후에는 당의 지도가 필요하다. 대중파업이 자연발생적인 것이지만 당의 지도를 필요로 한다. 다만 그 지도가 인위적이고 기술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 지도여야 한다. 즉 투쟁에 슬로건과 방향을 부여하고, 노동자대중에 내재하고 있는 유동적 힘을 전면적으로 발휘시키는 투쟁의 전술이 필요하고, 또한 당의 전술이 현실의 세력관계에 선행하는 것이어야 한다.
오늘날의 혁명은 바리케이드 전투를 통해 단기간에 국가를 전복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노동자 대중이 스스로 교육하며 조직하고, 또한 지도해가면서 국가를 전복하고 자본주의를 타도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로자 룩셈부르크는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당의 영향력이 당 조직의 힘이나 당 자체의 선도적 행동에 의해서가 아니라 당의 사상, 강령 및 슬로건을 통해 행사되어야 한다고 봤다. 그녀는 노동자들의 투쟁능력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이 행동지령을 내리거나 실제로 투쟁을 조직하는 것에 반대했다. 그녀에 따르면 당의 주요 과제는 선전업무를 주로 하는 정치적 지도이다.
그녀가 반대한 것은 당의 지도 자체가 아니라 당에 의한 계급대중의 일방적 지도이다. 지도하는 당이 어떤 종류의 당인가라는 점이 레닌과 달랐다. 룩셈부르크가 작성한 스파르타쿠스 강령에 의하면 스파르타쿠스 동맹은 노동자계급 위에 군림하여 노동자계급을 이용하여 권력을 장악하려는 당이 아니라 노동운동을 지도하는 노동자계급의 한 부분일 뿐이다.(조효래, 1989: 56)
룩셈부르크는 정당이 의식적으로 혁명을 조직하기 보다는 파업과 같은 자발적인 대중투쟁을 통하여 혁명이 밑으로부터 발생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녀에 따르면 대중파업은 의식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현상이며, 다만 정치투쟁과 경제투쟁은 서로를 조건지우면서 확산을 가속화한다. 대중들 사이에서의 활동의 결과로서만 당은 이들로부터 그들의당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며 이러한 조건이 실현되었을 때만 당은 노동계급을 자신들의 뒤로 이끌 수 있다.
대중파업은 지도부의 계획에 따라 실행되는 경직된 행동의 도식이 아니라 혁명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 수많은 혈과에 의해 혁명의 몸 자체와 결합되어 있는 피와 살이 약동하고 있는 생명의 일부분이다. 대중파업은 노동자 대중의 투쟁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대중의 자발적인 운동양식이며, 투쟁 현상이다. 대중파업은 하나하나의 투쟁에 있어 예측할 수 없는 요인들이 동시에 작용하고, 누구에게도 혁명의 교사인 것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에 자연발생성이 중요하다.
로자 룩셈부르크에 따르면 정당의 노동조합에 대한 우위성 역시 양자의 민주적 관계를 전제로 해야 한다. 룩셈부르크는 사회주의정당의 지시기관들은 보수적 역할을 하게 되는 경향을 지적하였다. 중앙집중주의를 주장하는 사회민주주의의 입장에 동의하면서도 당의 중앙조직은 내재적으로 보수적이라고 보았다.
룩셈부르크는 이러한 관료제적 구속만큼 젊은 노동운동을 권력에 굶주린 지식엘리트의 노예로 만드는 확실한 방법은 없을 것이다라고 지적하였다. 룩셈부르크는 1904러시아사회민주주의의 조직문제에서 혁명적인 노동운동에 의해 저질러지는 과오들이야말로 가능한 최선의 중앙위원회의 무오류성보다 역사적으로 더욱 가치 있고 유익한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1918러시아혁명론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프롤레타리아독재는 민주주의 적용방식이지, 민주주의 폐기가 아니다. 또한 그것은 계급의 독재이지, 정당이나 파벌의 독재가 아니다. 특히 계급의 활동이므로 계급이란 명목 하에 이루어지는 소수지도자의 활동이 아니다. 거기에는 광범위한 공공성에 있어서 국민대중의 아주 활발하고 자유로운 참가에 있어서 어떤 것에도 방해받지 않는 민주주의에 있어 계급의 독재이지 않으면 안 된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레닌의 전위정당론을 과도집중제라고 비판하였다. 룩셈부르크는 러시아에서 일부 선진적인 분자들에 의한 전위정당이 일정부분 불가피한 점을 인정하고 레닌이 왜 중앙집권적인 전위정당에 치중했는지 수긍하였다. 하지만 룩셈부르크는 전위정당을 지나치게 절대화하면 노동자계급 자체의 순조로운 발전과 창의성을 저해할 수 있다고 보았다.
당시 독일의 사회민주당의 지도부는 조직의 역할을 과도히 강조하고 대중의 자발성을 경시하였다. 룩셈부르크는 당과 당 지도부의 명령이 없이는 노동자들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신성불가침의 계율에 대해 반대하였다. 룩셈부르크는 관료적 중앙집권제가 혁명적 사회주의를 망치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노동자의 혁명적 주동성과 자기희생을 강조하였다. 이는 그 당시의 독일사회민주당의 현실을 비판하고자 함이었다.(Harman, Chris,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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