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민주노동당의 조로화와 민주노총의 정치세력화 실패

민주노총의 정치세력화가 현상적으로 실패한 계기는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의 분열, 노동자정치세력화에 대한 민주노동당의 회피와 통합진보당의 외면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좌파정당과 긴장적 협력관계를 유지할 역량이 부족했던 노동운동의 한계로 인해 실패하였다.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의 의회주의를,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의 기득권 경향을 견제하지 못하였다. 노동자정당과 노동조합의 결합은 상호의존성을 증대시켜 양자의 단점도 상호작용하였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 양자는 의회주의 몰입, 정파지배구조 등 부정적 동조화로 인해 양자의 장점을 상승시키기는커녕 자신들의 조로화와 미성숙을 극복할 수 없었다. 민주노동당 조로화의 상징적인 사건은 민주노동당이 민주노총과 다른 진보정당의 반대를 무릅쓰면서 국민참여당과의 선통합민주당과의 획일적인 후보단일화를 시도한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민주노동당이 2009년 정책당대회에서 채택하여 통합진보당 이후에도 고수한 진보대통합을 통한 야권연대방침의 파행적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원래 이 방침은 보수양당 중심의 소선거구제 아래서 진보정당이 의회에 진출하려면 진보대통합이 불가피하다는 진보정당 내부의 필요와 2008년 촛불정국 이후 형성된 야권 단결에 의한 정권교체라는 외부의 필요를 접목한 것이다. 민주노총이 민주노동당의 조로화를 견제하지 못해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관계가 파탄된 이유를 크게 보면 대표성, 자주성, 민주성, 변혁주체의 문제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민주노총은 전체 노동계급을 대표하거나 대변하려는 의지와 역량이 부족했으며 이로 인해 민주노총의 정치세력화에 있어 사민주의 모델에서의 양날개론은 그 전제조건을 형성하지 못하였고 민주노총은 정규직 대기업중심 노조운동, 노동운동의 연대성 약화, 분파주의 경향, 현장조직력 약화 등을 극복하지 못하였다(이상학, 2005). 물론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은 비정규직 노동자와 중소기업 노동자를 조직화하여 민주노총의 조직율을 높이고 당원을 확대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전체 비정규직 노동자 중 그나마 노동조건이 괜찮아 조직결성이 가능한 비율이 높지 않았다. 그렇다면 노조조직화 전략과 함께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한 사회의제 투쟁전략이 병행되어야 했는데, 당과 노조 안에서 조직투쟁과 의제화투쟁의 병행전략에 대한 혼선이 존재하여 효과적으로 추진되지 못하였다.
1997년 이후 신자유주의 파고에 대응한 민주노조운동의 전략은 산별노조와 좌파정당 건설이었으나 이러한 전략은 1987년 체제의 민주화대항헤게모니에 머물렀으며 특히 경제주의, 의회주의, 조합주의적 실천의 한계 속에 갇혀 신자유주의에 대항하는 노동자 헤게모니 연대로 확장되지 못하였다(노중기, 2012: 81). 민주노총 조합원은 기업별 노조 안에 갇혀 사회투쟁보다 기업 내 기득권에 안주하려고 하였다. 민주노총 역시 개별적인 노사관계를 둘러싼 단체협약개선투쟁에 경도되었고, 기업주와의 협상에 매몰되어 있는 조합간부들의 관료화를 저지하지 못하였다.
둘째, 양자는 노동조합과 정당이라는 차이를 인정하는 속에서 상호 자주성을 존중하는 한편 노선과 활동에 있어서 조직적으로 제도적으로 결합함으로써 서로가 발전할 수 있는 공동운명이라는 측면을 고려하지 못하였다(민주노총, 2006a).
선거 시기에만 정치에 개입하는 민주노총의 정치세력화는 노동자정권수립과 관계없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민주노총은 당원가입, 세액공제, 후보발굴, 선거운동 등 당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동원부대로 대상화되었다. 극소수의 민주노총 조합원만이 국회나 지방의회에 진출하는 상황에서 대부분의 조합원들은 대중투쟁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민주노동당의 의회활동만 바라보았다. 그 결과 노동계급의 정치투쟁이 의회 내로 협소해졌다(김영수, 2007: 100).
이러한 노동정치의 대리주의는 노동조합의 약화로 더욱 심화되었다. 이를테면 노동조합이 강력하다면 노동조합 스스로 국가 단위의 정치적 행동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지만 노동조합이 분산되고 조합원에 대한 동원력이 약화될수록 노동조합은 직접행동보다는 친노동자적인 정당을 통해 자신의 정책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조합원을 유권자로 동원하고자 한다(송태수, 2006: 30).
민주노총이 조합원의 정치활동을 민주노동당이 대리하도록 방치하였다면 민주노동당은 노동운동의 문제를 민주노총에 떠넘기고, 특히 국민이나 미조직노동자가 지적하는 민주노총의 한계에 대해 공개적으로 논의하려는 의지가 부족하였다. 반대로 민주노동당은 정치문제에 있어 민주노총을 동등한 정치적 주체로 인정하지 않고, 배타적 지지로 인해 어차피 자신의 결정을 따라 올 것이라고 보았고, 민주노총 역시 통합진보당에 대한 관성적 지지에서 보듯이 민주노동당의 결정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였다.
민주노총 일반 조합원 당원은 대부분 당의 지역조직 활동에 거의 결합하지 않았는데 특히 대도시의 경우 이런 현상이 일반적이었다. 당이 조합원 당원에 대한 정치사업은 민주노총에 일임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지만 정작 민주노총의 경우에 사업장 단위에서까지 정치사업을 추진할 조건을 형성하지 못하였다. 물론 민주노총은 조합원 정치교육을 통해 조합원들의 정치의식을 높여 자발적인 정치주체를 형성하고 그 결과 정치투쟁을 고양하고, 민주노동당 집단입당을 확대하려는 계획을 수립하였다. 그 일환으로 민주노총은 중앙 교육사업과 현장 교육사업을 입체적으로 진행하고자 정치교육을 담당할 강사를 육성하고 교육교재를 개발하여 각 사업장별로 최소한 분기마다 전체 조합원에 대한 정치학교를 열고자 하였다. 하지만 사업장 차원의 독자적인 교육사업과 정치사업을 담당할 사업장의 정치위원회 자체가 제대로 구성되지 않았다. 그 결과 사업장의 정치사업은 선거지원에 머물렀으며, 그나마 상황이 좋은 단위노조에서는 당원확대사업이 진행되었다.
직장분회가 사업장에 있는 당원들에 대한 정치사업을 유일하게 할 수 있는 통로였지만 직장분회는 사실상 당 조직이 아니라 민주노총 조직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따라서 당의 지역조직이 직장분회를 통제하면서 사업장 조합원 당원들의 정치사업을 주도할 수 없었다. 민주노동당은 지역별 조직체계를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업별 노조의 사업장에 갇혀 있는 민주노총 조합원 당원에 대한 정치사업을 하기 어려운 조건이었다. 일부에서 조합원 집단가입, 현장분회 등의 활동이 있었지만 현장과 지역을 토대로 한 노동자정치활동의 모범을 창출하고 이를 전면화해내지 못하였다.
총연맹 차원에서도 조합원 당원에 대한 교육사업과 정치사업을 추진할 예산이나 인력 등이 부족하였다. 총연맹은 정치위원장과 담당국장 1인 등 2명의 상근인력으로 전체 연맹의 정치사업을 감당하기 쉽지 않았다. 이에 민주노총은 450여명에 달하는 민주노동당의 중앙과 지역 상근자의 30% 정도를 민주노총 조합원으로 순환근무할 것을 검토하기도 하였으나 실제로 집행되지 않았다. 다만 겸직이 가능한 지역 당 조직의 간부의 경우 민주노총 지역간부를 겸하는 경우가 많았다(민주노총, 2006a).
민주노동당은 양자의 소통에 있어 상대적으로 소극적이었고, 당으로서 대중조직에 대한 선도성을 발휘하지 못하였다. 심지어 양자는 제도화의 성과를 분배하는 문제과정에서 서로를 견제하기도 하였다. 이를테면 양 조직 모두 의회주의에 경도되어감에 따라 민주노동당의 정파지도자와 민주노총의 지도부는 당직과 공직을 놓고 당내 선거에서 경쟁하였다. 이러한 쟁탈전은 자주계열 대 평등계열의 경쟁에서 자주계열 내의 경쟁으로, 다시 구 전국연합 계열 내의 경쟁으로 분화되는 등 민주노동당을 균열시키는 폐해를 초래하였다.
셋째, 민주노총은 당원의 다수가 민주노총 조합원임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 내의 조합원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민주노동당 내의 당원 민주주의로 현실화시키지 못하였다. 오히려 민주노총이 민주노동당의 의사결정과정에 미치는 영향력은 갈수록 쇠퇴해졌다.
민주노동당뿐만 아니라 민주노총 역시 과두와 관료 및 정파의 폐해를 통제할 수 있는 민주주의 제도를 정착시키지 못했으며, 자신의 혁신을 담당할 자주적인 의식주체를 형성하지 못하였다. 민주노총 조합원은 물론 민주노동당 당원들조차 좌파정당에 걸맞는 정치의식을 지니지 못하였다. 활동가의 정치간부화를 모색하고 관료제를 희석할 수 있는 윤번제, 호선제, 추천제 등이 논의되었으나 실제로 실행되지 못하였다, 선출제는 절차적 민주주의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오히려 과두와 정파의 지배구조에 활용되었다.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에서 당원교육과 조합원 교육에 있어 민주적이며, 자발적인 정치주체를 형성한다는 전략이 부족했으며, 오히려 산발적이고 개별화된 교육은 정파의 현장 선전과 침투 수단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활동가들은 명망가로부터 자주성을 확보하지 못한 채 대중조직과 당에서 관료로 변질되었다. 초기에는 민주노총의 정파 대립이 민주노동당에 투영되었지만 나중에는 민주노동당의 정파갈등이 민주노총 내에서 재생산되었다.
넷째,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 내에서 그리고 이들 밖의 비제도권에서 양 조직의 성급한 제도화를 견제할 수 있는 급진적 주체의 형성이 미흡하였다. 민주노총 스스로 과도하게 제도화되었기 때문에 민주노동당의 의회주의 몰입을 지연시킬 제도권 밖의 역량을 구비하지 못하였다.
민주노동당은 원내 진출 이후 자신의 우측에 민주노총, 전농, 전여농, 전빈련, 한국청년단체협의회(한청), 한총련 등 배타적 지지의 대중단체를 포괄하였으며, 좌측에 정치투쟁전선으로서 민중연대를 포진시키고 있었다. 민주노동당은 의회에서 적극적인 제도정치 개입을 통해 대중투쟁을 지원하고 그 파급력을 최대화하면서 투쟁으로부터 얻은 제도적 성과를 다시 부문대중들과 공유하는 것을 자기활동의 방향으로 삼았다. 이러한 3자 동맹은 배타적 지지로 연결되어 있었으며 진보적 대중정당은 대중조직과 전선체를 좌우 양날개로 삼는다라는 자주계열 나름의 양날개론에 근거한 것이었고, 이러한 시도는 민중연대를 계승한 진보연대민중의 힘에서도 지속되었다.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자주계열은 민주노동당 초기에 전국연합과 통일연대를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대신 평등계열과 함께 하는 대중투쟁조직으로서 민중연대 건설에 나섰지만 강령의 노선 문제, 중앙집권적 단일조직 문제, 민주노동당지지 문제 등으로 강력하고 상설적인 민중투쟁조직, 즉 상설연대체로 발전시키지 못하였다. 이후 민중연대를 발전적으로 계승하려는 진보연대, 민중의 힘 등 상설연대체 시도가 있었지만 고질적인 노선 갈등과 정파적 주도권 문제로 인해 상설적인 민중투쟁조직은 갈수록 약화되었다. 이러한 제도권 밖의 대중투쟁조직의 약화는 노동자, 농민, 빈민, 학생 등 부문조직, , 대중투쟁조직이라는 3자동맹의 정치투쟁의 약화로 이어졌으며, 이는 반대로 민주노동당이라는 제도권으로 대중투쟁조직이 동조화되는 현상으로 나타났다. 그 결과 빠르게 제도화되는 민주노동당을 견제할 수 있는 비제도권의 역할은 실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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