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러 권력지형에 따른 국제정세의 가변성

 미중러 권력지형에 따른 국제정세의 가변성


1) 미국의 권력지형과 대외정책


미국이 국익을 추구하는 대외정책의 기본방향은 국내 문제에 주력하는 고립주의, 해외 문제에 개입하려는 팽창주의가 있다. 또한 경제적 이익이나 영토 확장 등 단기적인 국익을 추구하는 현실주의, 장기적으로 민주주의, 인권, 기독교 등 미국의 가치를 추구하는 이상주의가 있다. 이상주의자들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식 국가를 건설하는 네이션빌딩에서 보듯이 미국식 체제를 확산시키기 위해 많은 돈과 인명을 희생한다. 국제연맹과 국제연합이 대표적인 이상주의와 개입주의(팽창주의)의 산물이다.

고립주의는 보통 국내 문제에 주력하고 단기적 이익이 없는 해외 문제에 대한 개입을 기피하는 현실주의 입장을 지닌다. 하지만 고립주의자라도 영토 확장, 미국인의 생명이나 재산과 관련돼 분명한 국익이 있다면 언제든지 팽창주의 입장으로 돌변할 수 있다. 이때 고립주의자들의 대외팽창은 철저히 미국의 국익을 추구하는 국수주의적 입장을 보여준다. 트럼프와 같은 고립주의자들도 단기적인 미국의 국익이 분명하다면 해외 전쟁에 개입하며 이때는 쿠바 침공이나 필리핀 침공처럼 잔인한 식민지정책도 마다하지 않는다. 

즉 일반적으로 현실주의 - 고립주의, 이상주의 -팽창주의의 관계를 보이나 뚜렷한 국익 앞에서는 그 경계가 무너진다. 미국이 1차 대전에서 유럽을 구하고 국제연맹을 시도하다가 실패했다. 2차 대전에서 유럽과 아시아를 지배하고 국제연합을 주도했다. 

미국이 2차대전 이후 국제연합을 주도함으로써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세계경찰의 임무를 자임하는 것이 세계를 지배하는 미국의 국익이라고 인식했다. 즉 대외정책에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정치군사적으로 코리아전쟁, 베트남전쟁, 아프가니스탄 및 이라크 전쟁에서 연이어 패배하여 군사적 개입에 대한 회의감이 고조되고, 중국의 경제적 추격 속에서 미국의 국가경쟁력에 대한 투자가 우선순위로 부상하면서 세계경찰로서 비용부담이 증가했다. 

이에 미국의 국익은 국내 문제 해결이라는 현실주의와 해외 전쟁은 돈과 인명만 희생시키고 미국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고립주의의 전통적 결합이 설득력을 지니게 됐다. 굴뚝산업의 쇠퇴, 불법 이민의 폭증 등에 불만을 지닌 화이트 칼라, 백인 저소득층이 대표적인 고립주의와 현실주의 입장이다. 

트럼프는 이 부분을 치고 들어 온 것이기 때문에 트럼프의 부상은 비주류 괴짜의 일회성이 아니라 공화당과 민주당 양당의 기득권 주류에 대한 불만이라는 물적 토대를 지니고 있다. 공화당이나 민주당 모두 기존의 개입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가운데 트럼프가 “다시 미국으로” 기치 아래 국내 문제 해결을 내걸고 돌풍을 일으켰다. 현재 트럼프의 대항마로 기대되는 헤일리 전 유엔 대사를 포함하여 공화당 주류가 개입주의를 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내부 경선에서 트럼프의 대항마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플로리다 주지사 디샌티스가 돌풍을 이어가지 못하는 것도 미국 주류의 입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부통령 펜스가 반 트럼프를 외치며 도중하차한 것에서 보듯이 미국 대선은 공화당 대 민주당이 아니라 트럼프 대 주류의 구도이며, 공화당 지지자들은 민주당 정권을 전복하기 위해 트럼프를 지지하고 있고 공화당의 기득권 지도층은 불만에 가득찬 상태에서 끌려가고 있다. 남성, 백인 보수층에 기반을 둔 공화당은 유색인종이 확산되는 유권자 분포도에서 민주당에게 밀리는 형국이었는데, 민주당에 기울어졌던 백인 하층이 공화당을 지지하면서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미국 대선은 전쟁에 대한 싫증과 불만, 고금리와 고물가, 이민 등 국내 문제, 우크라이나 전쟁과 팔레스타인 전쟁의 출구전략 등을 쟁점으로 한다. 트럼프는 공화당과 민주당의 주류와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고 이는 미국 일반 유권자의 다수 민심이다. 공화당 주류가 입장변화를 하지 않는 한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가 될 것이다. 

현재 트럼프의 지지율이 바이든보다 높으나 양당제 아래에서 선거막판은 인물대결보다는 정당대결이라서 큰 격차를 내기 어렵다. 미국이나 한국 모두 양당제에서 각 당은 35% 수준의 고정지지층을 지니면서 30% 미만의 부동층이 양분되기 때문에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5% 이내에서 승부가 갈린다. 실질적으로 2-3%를 놓고 싸운다. 또한 미국의 대선은 각주의 선거인단 승자독식이므로 고어나 힐러리 후보처럼 전체 지지율이나 득표율이 높다고 해도 선거인단 확보에서 패배할 수 있다. 따라서 몇 개의 경합주에서 승부가 난다. 

양당제의 과열로 인해 2024년 대선에서 경합주(스윙스테이트)가 네바다, 조지아, 애리조나, 미시간, 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 등 6개로 축소된 상황에서 11월 초 여론조사에 따르면 선거인단이 10명인 위스콘신 주에서 바이든이 2% 차이로 승리한 반면 선거인단이 67명의 나머지 5개 중에서 트럼프가 승리했다. 지지율 격차도 평균 6% 수준으로 안정적이다. 2020년 대선에선 바이든이 6곳 모두에서 승리했다.

민주당이 선수를 바꾸기도 어렵다. 정치전통에 따라 바이든이 출마를 포기하지 않는 한, 설사 바이든의 패배가 분명해지더라도 현직 대통령인 바이든이 민주당 후보가 된다. 고령의 바이든이 고금리, 전쟁 출구 등의 문제에 전격적으로 나서지 않는 한 트럼프가 당선될 가능성이 높고, 바이든이 입장을 전환한다고 해도 시기를 놓쳐 승산이 높지 않다. 바이든의 입장에선 국내외 정책을 소신대로 끌고 가서 명예롭게 패배하거나 노선변화를 통해 재임이라는 도박을 할 수 있다.

미국의 양당제는 국회와 여론을 양분시켜 탄핵제도 역시 정쟁의 수단으로 삼고 있다. 클린턴, 트럼프의 사례에서 보듯이 상원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없는 탄핵도 하원에서 정치공세의 방법으로 활용되고 있다. 공화당은 하원에서 바이든 일가의 우크라이나 커넥션을 중심으로 한 탄핵 표결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상원에서 최종적으로 부결되더라도 바이든 일가의 부패 의혹이 공론화되면 대선에 유리하다고 보고 있다. 

트럼프는 대선불복, 반역, 탈세 등 모든 형사문제를 자신이 보수적으로 구성한 연방대법원에 상소하면서 시간을 끌고 있다. 따라서 대선 때까지 사법 문제로 낙마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트럼프는 대선구도가 본격화되면 고금리, 이민, 전쟁 출구에 대한 공세를 강화할 것이다. 트럼프가 당선되면 오바마 - 바이든의 정책을 번복할 것으로 보인다. 금리를 낮추고 이민정책을 강화하며 우크라이나 전쟁과 가자전쟁을 매듭지울 것이다. 러시아, 북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중국을 더욱 압박하고 시오니즘을 지지하면서 이란과 대치할 것으로 보인다. 



2) 중러의 권력지형과 대외정책


시진핑과 푸틴의 공통점은 강한 리더십으로 미국과 어깨를 겨뤄 민족주의를 고무하면서 장기집권의 정당성을 확보했다는 점이다. 시진핑은 당 규약의 정년제와 헌법의 연임금지 조항을 폐지하면서 2022년 10월 당 주석에, 2023년 3월 국가 주석에 3차례 연임했다. 

미국에 굴욕당한 엘친은 강경파 푸틴을 후계자로 삼으면서 미국에 복수했다. 푸틴은 초기에 엘친의 정책을 계승하면서 유럽연합과 나토가입 등 유럽화 정책을 추구했으나 미국에게 철저히 배제당한 이후 미국과 겨눌 수 있는 강한 러시아로의 복귀라는 민족주의 노선을 분명히 하고 있다. 

푸틴은 1999년부터 지금까지 대통령-수상을 번갈아 가면서 러시아의 최고지도자로서 군림하고 있다. 30여년을 집권한 스탈린보다 더 오래 집권했지만 러시아에서 인기는 여전히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2024년 11월 선거에서 승리하면 6년 임기를 두 차례 거쳐 84세인 2036년까지 집권할 수 있다. 바이든이 재선에 성공한다면 86세까지 집권하므로 푸틴의 사실상 종신 집권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미중러 경쟁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고려할 때 최소한 올해 선거에는 출마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지도력이 불안한 반면 중러의 지도자는 장기집권의 목적을 사실상 달성했기 때문에 훨씬 안정적이며 선택의 폭이 넓다. 이제부터 굳이 민족주의에 호소할 필요 없이 탄력적인 정책을 구사할 수 있다. 즉 국내 지지기반을 무리하게 확장하기 위해 굳이 강경책을 쓸 필요가 없다. 중러는 현실주의 입장을 강화하면서 미국이 거부하지 않는다면 미중러 협력시대를 유지하려고 할 것이다. 미국이 강경책으로 나온다면 중러협력을 강화하고 북, 이란과 같은 미국의 도전국을 지원하겠지만 그건 미국의 화해제스처를 쓸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일시적인 조치가 될 것이다. 

서방의 나토에 대항하여 공동의 군사훈련까지 한 바 있는 상하이협력기구는 2023년 7월 인도 모디 총리 주재로 정상회의를 열어 이란을 9번째 회원으로 승인했다. 3월에는 사우디가 대화 파트너 지위를 획득했다. 2023년 중러는 6차례 군사훈련을 실시했으며 이는 20년 만에 가장 많은 횟수이다. 주요 지역은 한반도, 대만, 동중국해이며 인도가 들어 있는 쿼드를 겨냥해 서태평양도 포함됐다. 

중러가 주도하는 경제공동체 브릭스는 2023년 8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정상회의를 열고 사우디, 이란, 이집트, 에티오피아, 아르헨티나, 아랍에미리트연합 등 6개국을 회원으로 승인했다. 이러한 행보는 중러의 협력이 중동, 아프리카, 중남미로 확대되고 있으며, 인도를 반중기지로 삼으려는 미국의 시도가 무산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중러는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라는 미국의 진영논리에 대응하여 서방식 민주주의와 대비되는 인민의 지지를 기반으로 하는 장기집권을 정당화하는 파트너 의식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민주주의 동맹에 맞서 상하이협력기구, 브릭스 등에서 주도권을 강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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