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영환 열사를 죽음으로 몬 정승오 해성운수 대표 구속 재판 방청기

1. 재판 전 남부지방법원 앞 기자회견(09:30)


새로 당선된 엄길용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의 인사말, 김종현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장의 규탄 발언, 방영환 열사의 따님인 방희원님의 엄벌을 간청하는 발언이 있었다. 노동당 이백윤 대표와 전장호 서울시당 위원장, 유용현 국장, 함계남 노원중랑위원장, 김장민 영등포구로금천 위원장과 당원들이 참석했다. 재판 시간이 촉박한 탓인지 노동당 대표는 발언하지 않았다. 양규서 함계남 부부의 자녀 꼬민이도 참석했다. 많은 기자들이 보도하러 왔다. 


기자회견 후 법정으로 이동했다. 법원이 법원 경비인력을 동원하여 검색을 엄격히 했다. 노조 조끼를 입고 들어갈 수 없다는 1차 실랑이가 있었다. 처음 판사가 재판 참관을 5명만 된다고 법원 직원을 통해 전달하자 꿀잠 김소연 동지가 항의하여 10명으로 조정됐다. 이후 판사가 다시 전체 방청이 가능하다고 하여 전체 들어갔다. 좌석은 30석 미만이라서 10명 미만이 서 있었다. 


2차로 노조 조끼를 입고 재판정에 들어갈 수 없다고 제지했다. 양규서 국장이 그런 규정이 어디 있냐고 강하게 항의했다. 대책위원회 쪽은 대부분 노조 조끼를 벗었고, 김장민, 함계남, 양규서, 이한국 당원은 조끼를 입고 입장했다. 다른 당직자들은 처음부터 조끼를 입지 않았다. 얼굴을 알고 있는 양천경찰서 정보과 사복 경찰 2명과 그 외 사복 경찰, 해성운수 쪽 인사들이 입장했다. 



2. 재판 과정


재판장이 입장하자 전원 기립한 후 앉았다. 재판장이 개정한 후 정승오 해성운수 대표가 입장할 때 내가 “아직도 반성하지 않냐?”고 외치자 정승오가 나를 째려봤고, 양규서 국장이 “뭘 째려보냐”고 외쳤다. 


먼저 검사가 정승오의 범죄사실을 읽었다. 놀라운 점은 정승오가 단순한 직원이 아니라 자신에게 충성한 관리직원 70대 배차부장에게 전치 4주의 폭행을 했다는 점이다. 정승오의 변호사가 모욕과 특수협박만 인정했다. 근로기준법상 폭행, 집회방해, 보복운전에 대해 부정했다. 임직원에 대한 폭행에 대해 인정했으나 합의했다고 했다. 최저임금법 위반과 명예훼손은 별도의 재판으로 진행된 바 있어 언급되지 않았다. 합의금 3천만원을 공탁했다며 보석을 신청했으며 이에 대해 내가 "어떻게 처음부터 보석을 신청하냐? 뻔뻔하네"라고 외쳤다. 


변호사는 방영환 열사의 사망시기를 2022년으로 잘못 발언했다. 과거 근로계약에 따라 3시간 반짜리 월급으로 100만원을 줄 수밖에 없다고 했다. 분신 원인이 정승오 범죄 이후 분신 직전의 사측에 대한 노동위원회 기각과 민사소송 패배로 인한 좌절, 민주노총의 징계에 대한 불만 등이므로 방영환 열사의 분신이 정승오와 무관하다고 했다. 변호사는 민주노총의 명예훼손과 질서를 해쳤다는 이유로 방영환 열사를 민주노총이 징계를 추진하고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고 했다. 모 인터넷매체가 민주노총의 책임이 50%라고 보도했다고 인용했다. 방영환 열사의 유서에서 공공운수와 택시지부에 대한 불만을 표현했는데, 이를 민주노총이라고 표현했다. 


중한 범죄가 아니고 일부 범죄를 자백하고, 증거인멸, 도망 등의 사유가 없다는 필요적 보석 사유를 밝혔다. 임의적 보석 사유에 있어 방영환 열사의 유서에 공공운수와 택시지부에 자신의 죽음에 대해 알리지 말라고 했으나 민주노총이 협상권한을 받았고 노조가 3억 5천 밑으로 합의할 수 없다고 고집한다고 밝혔다. 정승오가 방영환 열사에게 중대한 부상을 입히지 않고 사망과 직접 관련이 없어 위자료로 적당한 3천만원을 공탁했다고 말했다. 


반면 검사는 정승오의 지속적인 괴롭힘, 폭행, 법령 위반이 열사의 분신에 직접적인 원인이고, 정승오가 상습적으로 다른 노동자도 폭행하면서도 전혀 반성이나 사과를 하지 않는 등 반인륜적 태도를 가지고 있고 범행을 부인하고 있어 도망의 우려가 있다고 봤다. 피해자 측 변호사의 발언이 있었고 이어 엄벌을 간청하는 방희원 따님의 발언이 있었다. 따님의 발언 이후 내가 응원하는 박수를 쳤다. 


재판은 40여분에 끝났고 25일로 하는 다음 기일 지정이 있었다. 내가 퇴장하면서 “보석은 절대 안 된다.”, 사망연도 2023년도 모르냐“며 정승오의 변호사를 비난했다. 


전반적으로 재판장이 사회적 파급이 큰 사건이라서 긴장하고 신중한 편이었다. 나 말고는 방청객 발언이 없었고 남성화 공공운수노조 해복투 위원장이 손을 들고 발언을 신청했으나 허락되지 않았다. 내 발언에 대해 법원 경리가 가벼운 제지만 했고 재판장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노동, 시국 재판의 성격상 너무 조용한 재판이었다. 대책위원회가 너무 순해 보였다. 



3. 재판 이후 소란


나는 두 차례 만남을 가진 방희원 따님과 기자회견과 법정 엘리베이터 앞에서 간단한 인사만 했다. 대책위원회가 따님에게 나와 소통하지 말 것을 요구하고 노동당도 나에게 같은 요구를 하는 등 예민한 반응을 보여 대화를 할 수 없었다. 


양규서 동지가 법원 실내에서 재판 참관 사진을 찍자고 했으나 경리들이 제지했다. 건물 밖에서 남성화 위원장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는데, 그때 박상길 부위원장 겸 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이 “X새끼들, 사진 찍어 주지마”라고 소리쳤다. 나와 거리가 20미터인데 기자와 유족들이 들을 정도로 큰 소리였다. 내가 다가가 항의하자 박상길 부위원장이 욕설을 심하게 했다. 나는 욕설로 대응하지 않고 이 기회에 내 불만을 토로했다. 


나는 “3억 5천만원 요구가 창피하지 않냐, 왜 처음부터 대책위원회를 협상을 해왔냐, 법정투쟁을 그것밖에 못하냐, 민주노총이 죽였다는데 왜 가만히 있냐”라고 비난하자 흥분한 박 위원장이 욕설을 계속하면서 멱살을 잡고 밀어붙이면서 때릴 듯이 주먹을 치켜들었다. 속이 시원하냐 노동당 조끼를 벗으라고 소리쳤는데,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기자들이 촬영까지 했으니 큰 불상사다. 


나는 이틀전 이삼형 택시지부 정책위원장 겸 대책위원회 협상대표에게도 욕설을 들었다. 대책위원회 핵심인 이들은 사측과의 협상이 타결되지 못하는 이유는 사측이 열사의 죽음이 민주노총 때문이라면서 자신의 책임을 부정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사측이 그런 사실을 안 것은 나와 방영환 열사의 지인들이 방영환 열사의 유서를 공개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열사가 택시지부의 탄압을 받았고, 공공운수노조와 노동당이 방관하면서 고립에 동조한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열사의 유서에 “공공운수노조와 택시지부에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고 표현된 것이다. 자신들의 잘못이 문제이지, 그런 잘못을 비난한 열사의 유서나 그 유서를 공개한 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이다. 괜한 화풀이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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