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재보선의 평가와 전망, 그리고 노동정치의 선택


I. 4.7 재보선의 평가

 이번 재보궐선거 결과는 정권심판인가?

이번 재보궐선거는 정권자체의 심판이 아니다. 최근 국정운영의 난맥에 대한 채찍에 불과하다. 민주당의 안희정, 오거돈, 박원순의 성추문, 김경수 등 광역단체장의 개인적 탈선, 윤석열에 대한 무능한 대응, 집값 파동 등에 대한 일반 유권자의 불만이 표출된 것이다.
따라서 이번 재보궐선거 결과가 대선에 직접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판단은 성급한 것이다. 수구보수가 이긴 것은 정당여당의 실책이 가장 큰 요인이다. 수구보수 자체의 역량은 부가적인 요인이다.
무엇보다 수구보수를 중도보수로 각색해온 김종인 대표 체제가 중기적으로 성과를 냈다. 김종인은 수구보수가 끌어들인 전문경영인에 불과하다. 일선에서 물러난 김종인이 향후에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여 장기적으로 수구보수의 리더가 될 것인지 불투명하다.
수구보수들에게 대선과 지방선거까지 김종인에게 경영을 맡기는 것이 하나의 선택지는 될 수 있다. 이 경우 공천권 문제와 김종인의 총선 당선 문제가 있으므로 2024년 총선까지 김종인 체제가 유지될 수 있다.

자만에 빠진 여당은 독선으로, 위기에 처한 야당은 연합으로
수구보수가 이번 선거에서 승리한 또 다른 이유는 문재인 정권의 폐쇄성으로 인해 권력에서 소외된 안철수 대표 등 중도보수가 수구보수와 연합하였기 때문이다. 노빠와 문빠라고 불러지는 민주당의 핵심 지지층은 조직력으로 두 번이나 정권을 창출하였지만 정권 말기에는 매번 권력독점으로 인해 권력 재창출에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사실 야당에는 안철수, 손학규 전 대표 등 중도보수 이외에도 오세훈, 나경원 등 광역단체장에 당선될 정도의 유력인사가 상대적으로 풍부하다. 민주당 인사와 달리 이들은 치명적인 상처가 없다. 하지만 이들 모두 대선카드론 역부족이라서 후보연합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내야 한다.

수구보수와 중도보수의 야권연합, 대선 앞두고 뺨치고 달래는 김종인
그런데 안철수가 내부 경선을 통해 야당의 대선 단일후보가 될 가능성이 없다. 따라서 안철수는 야당의 들러리가 되던지 독자출마를 선택해야 한다. 이 경우 수구보수는 마땅한 후보가 없고 윤석열 전 총장을 데려와도 안철수, 손학규와 같은 중도보수를 들러리로 만들어야 하는 과제가 있다.
대표에서 물러난 김종인이 안철수에게 견제구를 날렸지만 곧 대선 그림을 그리며 회유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번처럼 대선을 앞두고 중도보수가 단체장 선거에서 들러리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안철수, 손학규 등의 입장에선 대선은 협상카드가 아니라 최종 지점이라서 들러리를 거부하고 독자출마나 출마 포기를 선택할 가능성이 더 높다.

진보정당, 진보적 가치와 사회적 약자 대변 기능 상실
진보정치는 허경영 후보보다 공약 인지도 순발력, 득표력이 취약하다는 점이 밝혀졌다. 진보당과 노동당은 존재의미가 사라지고 있음이 다시금 확인되었다. 정의당은 구조적으로 표류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변혁당은 제도정당으로서 진입을 계획하고 있으나 시도조차 불투명해지고 있다.
노동당은 단 한명의 후보조차 발굴하지 못해 제도정당으로서 역할이 실종된 상태이다. 진보당은 조직적으로 진보정당의 위상을 갖추고 있으나 정치적으로 무의미한 당이다. 진보당은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득표율을 기준으로 보면 가성비가 0.3%~0.8%인 정당이다.
득표율과 국회 의석을 향해 갈지자로 비틀거리며 맹목적으로 달려 온 정의당은 대중적 진보정당으로서 이념, 사회적 의제, 득표율, 정치력 측면에서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정의당은 각종 가치와 이미지로 모자이크하여 노선이 모호한 정당이다. 노회찬 전 의원 과 심상정 의원 이후 리더가 난망하다.

보여주기식 정치로 진보색을 잃어가는 정의당
정의당은 연이은 페미니즘 논쟁과 대표의 성추문 이후 내홍을 겪다 당의 결정에 따라 단 한명의 후보를 내지 못하였다. 유권자는 물론, 당원에게도 밝히지도 못하는 당 대표의 성추문 때문에 모든 선거를 포기한다는 결정은 독단에 갇힌 소수정당이나 가능한 논리이다.
정의당은 대선, 총선, 지방선거 등 전국적인 선거 전에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같은 결정을 할지 스스로 물어봐야 할 것이다. 내일의 더 큰 득표율을 위해 오늘의 선거를 포기한다는 유권자에 대한 보여주기식에 불과하다.
정의당의 이념도 행보도 강에서 바다로 가는 것이 아니라 산으로 가고 있다. 이대로 가면 2024년 총선에서 우후죽순으로 나오는 비례용 선거연합정당으로 인해 정의당은 진보층을 전부 흡수하지 못한 채 2-3석으로 쇠약해질 것이다.

진보의 틀에서 벗어나는 녹색정치와 여성정치
녹색계열은 유럽의 사례를 보더라도 진보가 아니라 녹색일 뿐이다. 녹색당이 중도보수와 선거연합을 하거나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지난 총선에서 녹색당이 당원총투표로 중도보수와 비례연합정당을 급조하려고 한 것에서 보듯이 녹색은 한국에서도 그냥 녹색일 뿐이다.
10여년 전부터 녹색정치의 가성비는 진보당보다 훨씬 효과적이지만 향후 진보 녹색과 중도보수 녹색으로 분화될 것으로 보인다. 유럽도 녹색정치가 진보와 중도보수로 분화되고 있다. 이번 선거에 녹색에 이어 여성정당이 출현하였다.
노동자가 아니더라도 특정계층이나 특정 의제를 대변하는 정치세력이 제도정당으로 가고 있다. 과거 사회당 계열은 창당과 재창당, 통합과 탈당을 반복하더니 기본소득당이라는 의제정당을 만들었다.
기본소득당은 2020년 총선에서 중도보수와 함께 선거연합용 비례대표정당을 만들어 원내 진출에 성공하였다. 이처럼 특정계층이나 의제정당은 반드시 진보정치에 얽매이지 않는다. 여성정치도 향후에 녹색보다 파급력이 작지만 진보와 중도보수가 분화하는 비슷한 경로로 갈 것이다.

민주노총은 정치세력화를 포기한 것인가?
진보정당 중에서 진보당이 유일하게 후보를 발굴하였으니 당연히 전원 민주노총 후보가 되었다. 따라서 민주노총은 이번 선거에서 정치세력화나 후보단일화라는 복잡한 문제를 피해 갈 수 있었다. 단지 조합원 후보나 지지후보를 추인하는 기구였다. 대선과 지방선거는 이번 선거와 다르다. 민주노총은 민주노총 정치세력화와 후보단일화 문제를 피해 갈 수 없다.
조직력과 우호적인 민주노총 지도부 덕분에 민주노총의 자원을 독점할 수 있다는 진보당의 꿈은 악몽의 결과로 나섰다. 진보당의 0%대 가성비는 민주노총의 0%대 가성비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은 조직적으로 자성하지 않는다.
민주노총에게 선거는 한 번 시도해보고 안되면 부르주아정치판이라고 폄하하는 대상이 돼선 안 된다. 민주노총이 제1노총이라고 자부할지 모르지만 전체 노동자를 위한 정치적 역할은 한국노총보다 못하다.
민주노총이 제도정치에서 제 역할을 못하면 조합원에게 그대로 피해가 간다. 나아가 진보정당이 제도정당으로서 제 기능을 못한다면 진보적 가치가 부각되지 못한다. 또한 사회적 약자는 제도정치에서 대변자를 갖지 못한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의 손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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