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보궐 이후 진보정치의 향방

 1. 민주대연합이냐 진보정당 성장론이냐?

민주노동당 초반까지 진보진영이 당선 가능한 중도보수 후보에게 표를 몰아줘야 한다는 민주대연합론이 공공연히 주장되었다. 민주주의 개혁 완수,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수구보수가 당선되면 안 된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중도보수가 3차례나 권력을 잡았지만 국가보안법, 표현과 결사의 자유, 노동기본권, 남북관계는 본질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진보와 중도보수가 힘을 합해 촛불을 통해 집권하였지만 김대중, 노무현에 비해 개혁과제에 이렇다 할 성과가 없다. 특히 남북관계, 한미관계는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다시피 하면서 한발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수구보수와 큰 차이가 없다. 결국 시간이 걸리더라도 진보정당을 강력한 원내정당으로 성장시켜 민중운동과 협력하여 독자적으로 사회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민주노동당 후반부터 이명박, 박근혜로 이어지는 수구보수의 장기집권을 막아야 한다는 요구가 있어왔다. 또 한편으로 진보진영과 중도보수가 선거연합을 통해 수구보수를 낙선시키면 서로 좋은 것이라는 인식이 진보진영 내부에서 팽배하였다.
후보단일화는 민주대연합과 달리 일종의 절충론이었고 의석 확대를 위한 실리 추구였다. 2009년 재보궐선거, 2010년 지방선거, 2012년 총선에서 원내 진보정당은 중도보수와 선거연합과 후보단일화를 전국적으로 추진하였다.
이러한 성과에 고무되어 민주노동당 내에서 민주당과의 선거연합을 반대하던 세력들은 후보단일화는 물론 연립정부까지 거론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좌우 대부분 의석확대를 위해 중도보수정당인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에 찬성하였고, 민주당과의 공조에 열성을 쏟았다.
그러한 과정에서 통합진보당이 탄생했지만 국회의원 배지를 놓고 상호 멱살잡이를 하였다. 통합진보당의 당권파는 여론의 질타를 받다가 이어 강제 해산되었다.
아무 원칙도 없이 여러 세력이 뒤섞인 정의당은 득표 전략에 골몰하였지만 쇠퇴의 길에 들어섰다. 이처럼 민주대연합도 해보고, 야권연대도 해봤지만 진보정당이 제대로 정립되지 못하면 표와 의석만 쫒다가 자멸과 붕괴의 수순으로 갈뿐이다.
진보정당이 강해야 중도보수를 사회개혁으로, 남북관계 개선으로 견인할 수 있다. 진보정당이 강해야 노동자 민중이 진보정당을 자신의 구심점으로 삼아 사회변화의 주체 집단으로 역할할 수 있다.
2. 진보정치는 계속 제도 탓을 할 수 있는가?
진보정치와 노동정치는 괴사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이 역동적일 때는 소선거구제와 거대양당 독점이라는 외부 조건이 진보정치와 노동정치의 성장을 방해해왔다. 지금은 진보정치와 노동정치의 내부 문제가 더 심각하다.
따라서 2024년에 연동형 비례대표 의석수가 47석으로 확대되지만 현재 조건이라면 진보정치와 노동정치의 원내 진출은 별다른 성과를 내기 힘들다.
정치란 이합집산을 하기 마련인데, 진보정치의 분열은 내부 구조화되었다. 보수정치는 권력의 파이를 키우기 위해 통합을 한다. 반면 진보정치는 통합을 하더라도 나눠먹을 제도적 파이가 그다지 크지 않으므로 통합을 강제하는 이해관계의 동력이 부족하다.
진보정치인들은 과거 악연으로 인해 꼴 보기 싫은 사람 안 보려고 한다. 그리고 자기만족의 골방정치를 고집한다. 그런 골방정치를 정당화하는 명분이 노선 차이이고, 다수의 패권이다.
하지만 진보정치와 노동정치에 불리하게 한국사회의 구조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노동자의 규모는 늘고 있지만 노동자의 단결, 사회적 영향력은 쇠퇴하고 있으며 이는 진보정치를 쇠약하게 만들고 있다.
수천 명, 수만 명이 한 공장에서 협업적으로 종사하면서 그러한 단결력으로 정치사회적 대응을 결집할 수 있는 노동자군대, 즉 공장노동자가 급감하고 있다. 반면 현장에서 단결과 협업을 요구하지 않는 분산적 사무노동, 서비스노동이 증가하고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관리직과 노무직 등 노동자 사이의 균열이 확장되면서 진보정치를 견인하는 노동정치의 동력이 약화되고 있다. 저출산고령화사회로 진입함에 따라 현장의 노령화는 투쟁력 약화, 생활인으로의 전락, 활동가 결핍 등의 문제를 야기한다. 청년인구의 급감과 취업난은 노동조합과 정당에서 세대교체의 실패, 신규노동자의 보수화를 심화시키고 있다.
3. 진보정치와 노동정치를 소생시킬 주체는 어디인가?
진보정당들은 각자 나름 열심히 하면서 우공이산을 중얼거리며 내부적으로는 자신을 위로하고 있다. 하지만 진보정치에 있어서는 각 세력의 양적 확장이 전체 진보정치의 질적 성장으로 연결될 가능성은 별로 없다.
정의당은 외형적으로 진보정치의 대표주자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진보정치를 소생시킬 자체 역량이 부족하다. 정의당은 국민참여당과의 통합 문제에서 서로 대립했던 세력들, 국민참여당 세력이 오로지 통합진보당의 당권파에 반대하여 출범하였다.
중도보수도 아니고 진보적 자유주의도 아니고 사민주의도 아니다. 이런 것들이 무질서하게 혼합된 상태에서 최근의 페미니즘 문제에서 보듯이 환경, 생태, 여성 등의 의제와 부문이 추가되었다.
정의당을 노동정치로 구현하고자 했던 세력들은 정의당 내에서 조직이나 의제, 정치력, 원내 진출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였다. 정의당에서 노동정치는 의제일 뿐 조직측면에서 낡은 정치로 치부되고 있다.
노동계가 조직적으로 배출한 김종철 대표 사퇴 파동으로 인해 더욱 그러한 추세로 가고 있다. 노회찬과 심상정 이후 원내 정치의 동력을 만들어낼 차세대 리더가 없다.
소선거구제와 진보정당 분열 조건에서 정의당은 2024년에 총선 지역구 선거에서 심상정 의원까지 포함하여 1명이라도 당선될 보장이 없다. 정의당이 진보정치와 노동정치를 소생시키려면 제도정치 내의 진보정치 몫이 자신들 것이라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정의당은 노동정치를 중심으로 다양한 가치를 보완하는 방향전환을 해야 하고, 진보통합을 전당적 목적으로 설정해야 한다. 하지만 정의당의 주요 인사들은 그럴 의사와 역량이 없다.
진보당은 득표율을 보더라도 제도정치라는 형식에 있어 진보정치를 소생시킬 정치적 능력은 없다. 하지만 자주, 민주, 통일이라는 남한의 의제 일부를 대표하고 있으며 진보정치 중에서 조직력이 가장 강하다.
민주노총 지도부 역시 진보당과 가깝기 때문에 진보당과 민주노총이 팀플레이를 할 수 있는 조건을 가졌다. 진보당은 주홍글씨처럼 제도정치에서 시민권을 박탈당한 상태라서 아무리 조직을 확장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다.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조직으로 정치부족을 극복할 수 없다.
진보당은 이석기 의원 등 몇 가지 문제에서 유권자에게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피해자 포지션 설정이 진보당에 대한 인식개선으로 연결될 가능성은 별로 없다.
진보당은 정의당과 마찬가지로 진보정치의 파이를 독점하려는 의사를 고수하고 있다. 진보당의 경우 제도정치에선 성과가 없지만 노동조합을 통한 조직 확장은 나름 성과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진보당이 현 조건을 고수한다면 조직사업으로 한쪽 담을 쌓는 동안 정치사업의 한계로 인해 다른 쪽 담이 무너지는 악순환을 극복할 수 없을 것이다.
자칭 사회주의 정치세력은 진보정치를 소생시킬 제도적 역량이나 내용적 역량도 턱 없이 부족하다. 사회주의는 첫째가 이론이고 둘째가 이론에 부합한 조직과 활동이다.
문제는 자칭 사회주의 정치세력은 이론이 미성숙하거나 주관적으로 분열되어 있다. 따라서 이론이 조직과 활동의 원동력이 되지 못하고 있다. 이론은 과거 이론을 계승하면서 이를 현재의 조건에 맞게 혁신되어야 한다.
하지만 사회주의세력들은 소련식 사회주의의 붕괴와 현실사회주의의 한계를 이론적으로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일부 세력은 과거의 이론을 조롱하며 유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다른 일부 세력은 남한 현실에 과도한 수준의 정파이론을 자부하고 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