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적 시민사회 (Civil religion)

시민종교란 국가의 성립과 유지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사회적 통합을 강화하면서 공동의 목적을 위해 시민들의 자원을 동원하고자 하는 신념, 상징, 의식, 제도의 종합을 의미한다. 시민종교는 세속화된 종교이므로 내세에 대한 묘사나 신의 강림이나 체험 같은 신학적 종교의 신비적 성격에서 탈피하였다.
마키아벨리는 로마사 논고에서 종교가 국가의 안정과 국민의 단결을 강화시키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로마의 왕 누마 폼필리우스가 새로운 법률들을 도입할 때 종교의 권위를 이용하였다는 점을 높게 평가하였다. 마키아벨리는 이탈리아인의 통일과 단결을 위해 종교가 역할을 할 수 있지만 당시의 부패한 카톨릭은 그 역할을 할 수 없음을 지적하고 그 역할을 하려면 교회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역설하였다.

스피노자 역시 종교와 국가의 관계를 언급하였는데, 특히 신학정치론에서 고대 유대에서 신의 권위에 의존하는 공화국의 원형을 언급하면서 기독교의 개혁을 주장하였다.
루소 역시 사회계약론에서 "종교가 바탕이 되지 않고는 결코 국가가 건설된 적이 없다"고 말하면서 종교를 기반으로 한 공화국을 역설하였지만 복종을 강요하는 기독교는 공화국의 정신적 토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루소는 시민이 자기의 공적 의무를 고백하고 거기에 헌신하도록 하는 세속화된 종교, 즉 시민종교의 필요성을 언급하였다. 이러한 시민종교는 정부가 공식적으로 장려하는 종교로서 자연종교 형식을 지니나 그 내용은 사회계약을 존중하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시민종교는 사회적 감정을 제도적으로 훈육하는 것으로서 자신의 공동체, 즉 국가에 대한 애정을 제도화한 것으로서 애국주의나 민족주의를 고취하는 것이다. 루소는 이 시민종교를 신학적 종교와 분리함으로써 신학적 종교의 편협함, 불관용을 극복할 수 있다고 보았다. 루소의 희망과 달리 하지만 시민종교가 파시즘과 같은 극단적인 애국주의로 표출되었다는 역사적 역설을 부정할 수 없다. 루소를 찬양하였던 프랑스대혁명의 주체들, 특히 과격한 자코뱅파들은 구체제와 완전히 단절하려면 공화국에 새로운 종교가 필요하다고 보았고, 이들은 실제로 이성의 여신을 시민들이 숭배하도록 하였다.
루소의 논의는 프랑스의 종교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에 이어졌는데, 그는 개인주의와 지식인에서 지적, 도덕적 공동체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는 응집을 위해 그러한 역할을 할 종교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현대의 그러한 종교는 이성, 개인주의, 사상의 자유를 교리로 지니게 될 것이라고 예측하였다.
벨라(Robert Neely Bellah)는 시민종교를 현대사회의 공공성을 지지하도록 하는 심정, 습관, 문화의 관점에서 개념 짓고 미국사회를 시민종교의 관점에서 분석하였다. 벨라는 사회는 그 구성원들을 통합시키기 위해 경외심과 헌신을 불러일읔키도록 하는 성스러운 존재를 갖는다면서 시민종교를 '모든 사람들의 삶에서 발견되는 종교적 측면'이라고 진단하였다.
특히 벨라는 미국과 같이 종교가 다양하고 세속화된 사회에서도 특정한 신앙적 종교에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 이상적 이미지를 표상하는 상징적 표현과 행태를 지닌다고 보았다. 즉 미국의 시민종교는 기독교를 역사적 배경으로 삼지만 종교적 다원주의 사회인 미국에서 시민종교의 신은 기독교의 하나님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시민종교는 다양한 시민들을 통합시키는 공통적 가치와 실천사항을 학습시키고 실천하도록 한다. 미국에서 기독교의 상징이나 역사가 하나님 대한 경외와 헌신을 유발하듯이 국가적 상징과 역사적 사건들은 국가에 대한 경외와 헌신을 유발하는데 활용되고 있다.
벨라는 미국의 대통령 취임선서는 종교적 행태와 언구를 내용으로 하고 있으며, 벨라에 따르면 대부분의 취임연설들은 미국의 과거와 미래를 성서의 사건들과 연결시킴으로써 성스러운 감정을 조성하고 정당성을 부여한다. 추수감사절이나 현충일 같은 기념일들은 특정한 신학적 종교와 분리되면서 가족, 사회, 국가의 가치를 신성시하는 세속적인 종교의식으로 변모하였다.
현대 사회에서 다양한 신학적 종교가 한 사회 내에서 존재하고 대부분의 신학적 종교들이 사회를 통합할 수 있는 신성한 권위를 상실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시민종교가 필요해진다. 국가는 이성화된 신의 정의를 전파하는 공동체로서 역사 속에서 상징적인 사건들을 겪으며 개인적. 집단적 정체성을 확인시켜주고 공감대를 형성해 준다. 시민종교의 관점에서 민족주의란 그 구성원들이 스스로를 하나의 통일된 집단에 속하다고 의식하고 있으며, 그 구성원들이 일상의 생활에서 경험하는 공적인 상징과 공통의 역사에 절대적 감정 즉 신앙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미국은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되어 있어 이들을 통합하려면 개별적인 차이를 초월하는 공통적인 것이 절실하기 때문에 시민종교가 더욱 발달하였다. 미국인이 공통으로 갖는 미국적 정체성, 즉 다른 나라와 다르다는 인식은 미국은 신에 의해 선택된 사람들이 낡은 과거와 단절하고 건국한 새로운 공화국이라는 미국의 예외주의에서 극명하게 표현된다. 미국인들이 미국을 언덕 위의 집이라면 새로운 에덴동산에 비유하거나 국가적 행사에서 습관적으로 신이여 미국을 축복 하소서라고 발언하는 것은 이러한 의식의 발로이다.
미국의 이러한 선민의식은 자신의 건국과 서부개척, 그리고 대외적 팽창을 신이 부여한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이라고 미화하기도 한다. 이러한 선민의식은 미국의 제국주의 성향을 다른 나라의 제국주의와 다른 것으로서 즉 신의 사명을 수행하는 신성한 의무로서 정당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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