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모국에 대한 미국의 대외 정책에 개입하는 이민자들

오늘날 전 세계 유대인은 1700만 명 정도이다. 미국 유대인 인구는 약 650만 명으로 이스라엘 인구보다 100만 명 정도 더 많다. 19세기 중반 미국으로 건너온 30여만 명의 독일계 유대인과 그 이후 미국에 정착한 250만 명의 동유럽의 유대인이 미국 유대인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미국을 장악한 유대인들이 미국의 힘을 통해 세계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미국 대통령은 유대인이 아니지만 대통령의 참모 중에서 유대인은 꼭 빠지지 않는다. 린든 존슨(Lyndon B. Johnson)이나 빌 클린턴(William Clinton) 정부하에서 유대인이 각료급 공직에 대거 포진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비서실장인 람 이매뉴얼(Rahm Israel Emanuel)의 부친은 이스라엘 건국 전 대영(對英)항쟁을 벌였던 무장단체 이르군(Irgun)에 참여했던 정통파 유대인이다. 이매뉴얼은 1991년 걸프전 때 이스라엘군에 자원입대하기도 했다. 모나 서트펜(Mona Sutphen) 오바마 대통령 비서실 차장 등 유대인 정치인들은 대부분 미국의 외교 정책를 사전에 제안하고 평가하는 씽크탱크이자 외교인사들의 사교클럽과 같은 역할을 하는 외교평의회(CFR·Council on Foreign Relations) 핵심 회원이다.
 
키신저는 M&A(인수합병)전문의 기업사냥꾼인 헨리 크라비스(Henry Kravis), 네오콘의 이론가인 리처드 펄(Richard Perle)과 함께 이례적으로 미국의 외교평의회(CFR), 유럽과 북미(北美)지역의 유력인사 모임인 빌더버그그룹(Bilderberg Group), 북미·유럽·아시아의 엘리트로 구성된 삼변회(TC·Trilateral Commission) 3개 기구 모두 참여하였다. 리처드 펄은 레이건 대통령 시절 국방차관을, 1987~2004년 국방정책자문위원단장을 지냈다. 그는 아프간전쟁, 이라크전쟁의 발상을 기획하였다.
 
루이스 브랜다이스(Louis Brandeis)가 윌슨 대통령 시절인 1916년 유대인으로는 최초로 연방대법관에 임명된 이후 여덟 명의 유대인 연방대법관이 탄생하였다. 오바마 대통령 시절 종신직인 9명의 미 연방대법관 가운데는 3명이 유대인이었다.
 
미국에서 유대인들은 경제, 문화예술, 언론의 분야에서 더욱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미국 중앙은행 FRB는 초대(初代) 의장인 찰스 해믈린(Charles Hamlin)을 비롯해 역대 의장의 절반이 유대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 의장인 벤 버냉키, 그의 전임자로 18년간 FRB의장을 지낸 앨런 그린스펀(Alan Greenspan)도 유대인이다. 페이스북의 창업자인 마크 주커버그(Mark Zukerberg)와 더스틴 모스코비츠(Dustin Moskovitz), 구글(Google)의 창업자인 세르게이 브린(Sergei Brin)과 래리 페이지(Larry Page)도 유대인이다.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는 “20세기 말 아시아 외환위기는 신흥공업국의 경제를 국제 유대자본에 예속시키려는 국제 유대자본의 음모라고 주장하였는데 유대계 금융투자가인 소로스가 그 주범으로 지목되기도 하였다.
 
미국의 할리우드 영화계 역시 유대인들이 장악하고 있다. 배우 말론 브란도가 유대인이 할리우드를 장악하고 있다는 발언을 했다가 이틀 만에 눈물을 보이면서 사과 기자회견을 할 정도이다. 할리우드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을 갖고 있는 영화제작자 제리 브룩하이머(Jerry Bruckheimer)<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와 TV 수사극 시리즈 등을 만들었다. 그는 <포브스>()가 매년 선정하는 세계의 100대 부호이다.
유대인 언론인 중 토머스 프리드먼(Thomas Friedman)은 세계화를 선도적으로 주창한 <렉서스와 올리브나무>를 저술하였고 퓰리처상을 세 번(1983, 1988, 2002)이나 수상했다. 언어학자인 노엄 촘스키도 각종 저서와 연설로 진보적인 세계여론을 주도하는 인물이다. 그는 이스라엘을 일방적으로 지지하지 않고 팔레스타인의 타협을 주장한다.
 
유대인들은 미국의 이스라엘 정책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매년 30억달러 이상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원조가 이뤄진다. 1985년 레이건 행정부가 요르단에 15억 달러 상당의 무기를 수출하려던 계획을 저지시켰고,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무기수출도 당초 계획의 10% 수준으로 막았다.
 
미국 이스라엘 공공문제위원회(American Israel Public Affairs Committee, AIPAC)1947년 설립되었으며 1953년 공식 로비단체로 등록되었다. AIPAC은 로비단체여서 이스라엘로부터 재정지원을 받을 수 없다. 하지만 650만 재미 유대인 가운데 2만여 명이 재정기부를 하고 있으며 100달러 이상의 후원금을 내는 회원이 30만여 명에 달한다. 2011년 총회에서는 유산을 AIPAC에 상속하자는 캠페인도 벌였다. 처음 시행하는 캠페인이지만 사흘 동안의 총회 기간에 AIPAC이 서약받은 상속액수는 2억달러를 넘었다.
 
AIPAC의 설립자들은 2차 대전 당시 미국이 초기에 참전하도록 미국 내 유대인들이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면 유대인 학살을 저지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심정으로 이 단체를 만들었다고 한다. AIPAC의 공식적인 활동 목표는 이스라엘의 국익 증진이 아니라 미국과 이스라엘의 동맹 강화이다. 2011년 총회 슬로건은 더 나은 미국·이스라엘 동맹관계였다. 2011년 총회에서 공화당 소속의 존 베이너(John Boehner) 하원의장은 양국의 관계를 궁극의 동맹(ultimate ally)’이라고 강조하였다.
 
AIPAC 총회에는 회원과 관련단체, 전문가, 정치인 등이 수만 명 참석하며 각종 강연과 토론이 이어지며,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이나 이슬람의 테러 등의 영상을 반복해서 상영을 한다. 토론 주제들은 중동 국가들의 핵무기 개발 저지 방안, 중동국가들의 민주화 시위, 반 유대인 정권들의 체제 전환, 미국의 중동정책 등이다. AIPAC은 미국 수백 개의 대학 학생회 간부들을 총회에 초청하여 미래의 친 유대인 정치인들을 발굴한다.
 
AIPAC 총회에 미국 대통령이 참석하여 개막 연설을 하며 연방 하원의장이나 각 당의 원내 대표 등 중요 정치인들뿐 아니라 모든 상원의원과 하원의원들이 초대된다. 각종 강연과 토론에 초청된 정치인들을 경쟁적으로 친 이스라엘 발언을 하거나 과거 이스라엘에 불리하게 한 발언을 번복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오바마 대통령이 2011년 개막식에 참석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협상은 1967년 중동전쟁 이전의 국경선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는 과거의 발언에 대해 이스라엘이 전쟁 승리로 얻은 영토를 반환하라는 취지가 아니며 양국 동맹은 철통같다고 수정하였다.
 
의원들은 이스라엘에 유리한 법안과 정책들을 발표하는데, 이를테면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이란 등이 핵무기 개발을 하지 못하도록 제재를 강화하는 내용들이다. 중동 국가의 핵무기 개발에 도움을 준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북에 대한 제재의 필요성도 제기되었다. 에너지 확보를 위해서 이란 등 중동국가에 접근하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는 발언도 이어지는데, 2011년 총회에서는 이란과 교역하는 중국의 기업들에게 대해 유엔과 미국 정부가 제재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미국이 유엔에서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승인 안건에 반대하도록 노력하겠다는 정치인들의 발언도 총회 때마다 자주 반복되는 풍경이다.
 
AIPAC은 공식적인 로비단체이기 때문에 정치인들에게 후원금을 제공할 수 없으나 다른 유대인 후원단체가 후원금을 줄 정치인들을 선택하는데 있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AIPAC435개 연방 하원 선거구 모두에 사실상 지부를 두고 있다. 연례총회 마지막 날에는 AIPAC에 우호적인 활동을 벌인 의원들을 성적순으로 발표한다.
 
4년 임기의 회장은 미국 대선보다 1년 먼저 선출해서 미국 대선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2008년 대선 직전에는 오바마 대통령 후보의 측근인 온라인 미디어업계의 실력자 리 로젠버그(Lee Rosenberg)가 의장에 당선되었으며, 조지 W 부시(George W. Bush) 대통령이 당선되기 직전에는 그와 가까운 텍사스 출신이 의장에 당선되었다.
 
다른 나라의 이민자들도 AIPAC과 같은 로비단체를 만들어 자신들의 모국에 관한 미국의 정책 결정에 영향력을 미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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