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를 전쟁처럼 하는 트럼프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은 현재의 한반도 정세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꽃놀이패를 쥐고 있다는 점이다. 북은 핵무장의 완성을 기점으로 대화냐 파국이냐 카드를 쥐고 먼저 전격적으로 대화카드를 내민 셈이다. 이런 정세의 조성은 트럼프의 압박전술이나 문재인 대통령의 운전자론 의한 것이 아니라는 점은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에서 이미 예고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이 시동을 건 대화의 열차에 현명하게 편승하였고, 트럼프는 그 열차에 치이고 싶지 않기 때문에 마지못해 올라 탄 것이다.
북의 속내를 추측하는 것은 예민한 일이나 조심스럽게 살핀다면 전략적 승리, 전술적 승리, 국제사회의 김정은 위원장과 북에 대한 인식변화 등으로 볼 수 있다.
첫째, 전략적 승리는 남북미가 대타협을 하여 미국은 당면한 안보 불안을 해소하고, 남북은 평화와 통일로 가는 것이다.
둘째, 전술적 승리는 트럼프가 모처럼 마련된 대화를 걷어차더라도 남, 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하여 미국을 정치적으로 고립시키는 한편 남, 중국과의 경제적 협력을 확대하여 북의 경제적 난관도 일부 완화시키는 것이다. 북이 대화에 임하는 최대한의 성의를 보여줌에도 트럼프가 호전적 태도로 대화를 거부하는 정세가 조성된다면, 중국은 물론, 남 역시 무조건 트럼프를 따라가기보다는 일정부분 북과의 관계 개선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는 트럼프가 이란 핵합의를 파기하였지만 유럽이 이란과의 관계개선을 유지하는 것과 비슷한 결과이다. 즉 트럼프가 강경책으로 스스로 고립되는 것이다.
셋째, 설사 중국과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의 강경책을 따라서 대화가 파국되더라도 온 세계가 이를 지켜봤기 때문에 북은 이미 국제사회의 신뢰를 획득할 수 있는 정상국가로서의 자격을 충분히 과시하였고, 김정은 위원장 역시 자신의 지도력을 국내외에 충분히 보여준 셈이다.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이러한 최소한의 성과에 중국의 태도 변화가 추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대화의 파국이 트럼프의 책임인 것이 명백하다는 점, 이번 정세에서 보듯이 중국이 한반도에서 자신이 가지는 지분을 유지하려면 북의 적극적인 도움이 필요하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중국 입장에선 미래를 담보하기 위해 대북 봉쇄를 일부 풀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국제무대에서 약자가 강자를 길들이게 하는 학습이 거의 불가능하지만 이번 사태가 바로 이런 예라고 할 수 있고, 그 학습효과는 문재인 대통령이나 트럼프 보다는 중국 정권에게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이 갖고 있는 패는 결국 북과의 경제협력일 수밖에 없으므로 대화가 무산되어도 민간 교류를 활성화될 것이고, 국가간 교류도 장기적으로 확대될 수밖에 없다.
김정은 위원장의 외교술에 비해 트럼프의 외교술은 미숙하고, 거칠고 근시안적이다.
첫째, 트럼프는 공화당과 민주당 그리고 주류언론 등 미국의 전통적인 기득권층을 비난하면서 정권을 차지하였기 때문에 미국의 다각적이고, 노련한 외교자원을 애써 외면하면서 볼턴 같이 미국에서도 문제 많은 이들을 정책책임자로 중용하고 있다. 따라서 트럼프 행정부는 당분간 북미관계와 같이 역사적이고 복잡한 문제를 풀 능력이 없다는 것은 미국 전문가들도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다.
트럼프 스스로도 자신의 외교 역량의 한계를 자인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미국의 전통적인 외교자원에 구원 요청을 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미국의 기득권층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어 한편으로는 지지층을 확대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 기득권 세력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둘째, 가장 큰 문제점은 이러한 조바심으로 인해 트럼프의 외교가 매우 거칠고 호전적이라는 점이다. 시리아에 대한 대규모 미사일 공격에서 보듯이 무력사용이 즉흥적이고 잔혹한 것은 물론, 국가 간의 협상에 임하는 태도 역시 일방적인 힘에만 의지하려고 한다.
트럼프는 민주당 정권이 가까스로 달성한 쿠바와의 관계정상화, 이란 핵 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강경책으로 일관하여 상대방의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고 있다. 트럼프는 과거의 공화당 출신 대통령의 정책조차 너무 유약하다며, 자신은 힘에 기반한 외교로써 미국의 위상을 최고수준에 올려놓겠다고 장담하고 있다. 최근에 트럼프는 과거의 정권들이 립 서비스로 언급하던 ‘미 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을 보란 듯이 강행하여 국내외의 비판뿐만 아니라 중동정세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남북 수뇌회담이 좋은 성과를 내고 전 세계가 북미 정상회담을 숨 죽여 지켜보고 있는 상황에서도 트럼프는 마치 약소국과 일방적인 전쟁을 하듯이 북미대화를 파국으로 몰고 가고 있다. 북에게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는 것도 부족해 대화기간에 북에 대한 핵공격 연습을 하고 급기야는 북을 목표로 하는 핵미사일을 시험 발사하였다.
셋째, 트럼프의 이러한 호전적 태도는 자신이 미국의 기득권보다 더 뛰어난 역량과 배짱으로 미국이 세계 최강국이라는 점을 부각시켜 미국의 기득권층, 주류 언론, 지지층의 인정을 받아 탄핵위기로부터 벗어나고 단기적으로는 중간선거, 장기적으로는 재선에서 승리하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헨리 키신저의 저서 “세계질서”에 따르면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대하는 태도는 대등한 관계를 전제로 하는 근대 유럽의 형태도 있지만 자신이 ‘모든 국가 위의 국가’임을 자처하며 모든 나라의 복종을 요구하는 제국주의 형태도 있다. 제국 중에서 중국은 무력보다 유교적 권위를 통해 지배하려고 하였고, 이슬람 역시 전쟁보다는 공물과 개종을 더 선호했다고 한다.
미국 역시 소련 붕괴 이후 유일하며 전능한 ‘국제경찰’을 자임하고 있으나 무조건 무력만을 앞세우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기득권층은 “당근은 보란 듯이 주고, 채찍은 은근히 휘둘러라”는 외교 술책을 선호하다고 한다. “세계 최고의 무력은 뒤에 놓고 앞에서 부드럽게 말로 하라”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에게는 당근은 없고 채찍만 있는 것 같으며, 대화를 하면서도 핵무기를 들이대면서 고압적인 자세로 일방적인 항복만을 요구하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스스로 운전자론을 내세우는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의 이러한 횡포에 입을 다무는 것은 물론 한미군사훈련을 노골화하는 등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점이다. 어차피 남의 정권은 미국의 정권의 요구에 굴복할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위기에 빠진 대화국면을 회생시키려면 트럼프가 먼저 국제무대에서 대화에 걸 맞는 최소한의 상식적인 성의와 격식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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