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전선언과 주한미군의 국제법적 운명

혹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주한미군의 주둔을 용인했다면서 평화조약(종전조약)이 체결된 이후에도 주한미군의 지위는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북이나 중국, 러시아의 입장은 굳이 먼저 주한미군의 철수를 언급하지 않았더라도 종전 이후에는 한국과 미국이 스스로 주한미군의 위상변화와 감축을 추진해야 하기 때문에 주한미군 논의는 종전 이후로 미룬 것에 불과하다. 미국의 전문가에 따르면 북이 핵무기 철거의 대가로 요구하는 미국의 적대적 정책이란 북을 주적으로 삼는 한미동맹과 한미연합사, 유사시 북을 핵공격하겠다는 핵우산과 핵 억제력 확장, 각종 전략무기의 순환배치와 기동, 대북 군사훈련 그리고 이 모든 것의 물질적 기반과 명분이 되는 주한미군을 의미한다는 점을 볼 때 한반도 평화실현의 최종단계에서 주한미군의 철거를 북이 포기하였다는 것은 협상의 단계적 발전을 염두하지 않은 경솔한 판단이다.
종전 이후 주한미군의 지위를 유엔군, 미국 태평양사령부 소속 미8군 등, 한미연합사령부의 관점에서 살펴본다.
첫째, 종전이 되면 유엔군은 공식적으로 해체되므로 주한미군은 더 이상 유엔군의 모자를 쓸 수 없다. 종전선언 이후 유엔총회 혹은 안보리결정으로 유엔군은 해체되고 종전조치에 착수한다. 휴전협정에 따라 관련국의 정부수반이 종전을 선언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게 되면 군사사령관간의 협정인 휴전협정은 실효된다. 이에 따라 그동안 유엔군이 관할하였던 정전관리사항이 남북간의 협의로 전환하는데, 이에는 비무장지대의 관리, 북방한계선의 법적 협의 등 민감한 부분이 포함된다. 지금껏 미군은 유엔군의 가면을 쓰고 남에 대한 군사적 지배를 희석시켜왔지만 종전 이후 한반도에 존재하는 미군은 적나라한 미국의 한국 강점을 폭로시키므로 주한미군은 한반도, 중국, 러시아, 미국에서 철수 여론에 직면하게 된다.
둘째, 종전이 되면 한미연합사에 속하지 않고 미군의 독자적인 지휘체계에 있는 미8군 등은 주둔 명분을 상실한다. 미군은 더 이상 한국에서 전쟁을 수행하지 않으므로 북을 주적으로 삼는 전투부대를 한국정부와의 협의 밖에서 운영할 수 없다. 즉 미국은 남에서 더 이상 전쟁수행권이 없기 때문에 남에 미군을 주둔시키고자 한다면 오로지 한미동맹에 근거한 한미연합사로 배치해야 할 것이다. 같은 이유로 전쟁수행권이 없어진 미국은 전시작전권을 한미가 합의한 2023년 이전에 조속히 한국에 이양할 수밖에 없다.
셋째, 종전이 되면 남에 있는 미군은 오로지 한미동맹 즉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른 한미연합사에 소속하게 되는데, 한미연합사의 성격은 전시작전권 환수 합의와 종전선언으로 근본적으로 변하게 된다. 이미 한미 양국사이에는 2023년을 기점으로 남은 전시작전권을 환수하고, 미국은 보병의 희생을 피하고 인계철선(Trip Wire)의 딜레마를 극복하고자 주한미군 구성에 있어 육군을 대부분 철수시키고 해군과 공군 위주로 편재하기로 합의된 상태이다. 육군에 대한 지휘권을 한국군에게 반납하는 대신에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해군과 공군의 지휘권은 보유하여 효율적인 전략적 기동성을 확보하려는 것이 미국의 향후 주한미군 전략이다. 이 경우 미군은 육군으로서 신속기동군을 순환배치하고 항모강습단과 전략무기를 주기적으로 기동하게 될 것이다. 결국 종전선언과 상관없이도 한미간에는 이미 주한미군의 실질적 감축이 예정되어 있는 셈이다.
종전조치는 한미 당국의 주한미군 감축을 더욱 가속화시킨다. 한미동맹은 ‘외부의 적’을 북한으로 설정하고 이에 따라 한미연합사는 매년 엄청난 규모의 전쟁연습을 북을 상대로 진행해왔다. 종전이 되면 최소한 공식적으로 북을 상대로 하는 대규모 전쟁연습은 불가능해진다. 군사훈련의 규모나 공격성은 상당히 축소되므로 미국은 지금처럼 남에 대규모 상비군을 유지하거나 훈련을 하더라도 일본이나 본토에서 대규모 증원군을 불러 올 수가 없다.
결국 한미동맹이나 한미공동지휘부를 유지하더라도 북이나 중국, 러시아의 반발로 인해 주적 개념이 모호해지고 대규모 전투부대의 배치가 어려워진다. 따라서 북, 중국, 러시아가 강력하게 주장하지 않아도 종전이후 한미군사관계는 연합지휘체계를 유지하면서 최소한의 전투부대를 배치하는 형태가 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나 매티스 국방장관이 지금 당장은 주한미군의 철수가 의제가 아니지만 종전이 되면 즉 평화조약이 체결되면 한미당국이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할 수밖에 없다고 공언하는 이유는 이러한 배경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한반도평화가 실현된 이후에도 주한미군이 변함없이 주둔할 것이라는 전문가나 당국자의 주장은 주한미군의 정치적 지배에 기대어 온 냉전세력들의 희망에 불과하다. 문정인 특보가 주적을 상정하는 한미동맹이 종전 이후에는 상호협력적 대등적 집단안보협력체계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언급은 정책구상자의 이런 고민을 솔직히 드러낸 것이다. 그런데 진보진영 일부에서조차 북이 주한미군을 용인하였다면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구상에서 주한미군 철수에 대한 기존의 요구를 희석시키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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