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NVAS, 우크라이나 친미 시위대의 배후

 반미국가에서 CIA와 진 샤프의 비폭력 체제전환을 기획

반미정권과 친미정권의 민주주의, 인권, 부패의 차이 크지 않아

2004년 오렌지혁명에 당시 개방과 서방화의 영향으로 시민들의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져 10년 동안 집권한 쿠츠마 대통령의 권위주의 통치에 대해 불만이 쌓였다. 유럽과 미국에 접근하면 그들처럼 잘 살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감이 대중들에게 팽배해 있었고 그래서 서부 우크라이나를 중심으로 정권교체에 대한 기대가 높았다.
 
이런 와중에 부정선거 쟁점은 반정부 정서에 불을 질렀고, 친미세력들은 이를 십분 활용했다. 쿠츠마의 실책, 친서방세력의 공격, 젊은 시위대들이 오렌지혁명의 동력이라고 볼 수 있다. 오렌지혁명은 2014년 유로마이단과 달리 비폭력저항운동이 지배했다. 그런데 이 비폭력저항운동을 통한 체제전환의 배후에는 미국의 체제전환 프로그램이 있다.
 


미국은 중동, 중남미, 아시아의 친미 독재정권을 묵인하는 대신 제3세계의 반미정권을 민주주의와 인권, 독재와 부패 등 미국식 민주주의 가치를 명분으로 하여 친미정권으로 교체해왔다. 우크라이나에서도 쿠츠마 대통령이나 야누코비치 대통령 같은 친러정권이 유셴코 대통령이나 포로셴코 대통령 같은 친미정권보다 정권의 정당성이 부정당할 정도로 민주주의, 인권, 부패 등에서 큰 차이가 있지 않았다.

권위주의 정권 전복의 주인공은 친미 엘리트와 젊은 시위대
 
우크라이나인들은 폴란드 식민지 시절, 2차 대전 직후와 소련 붕괴 직후 캐나다와 미국으로 대규모로 이주했다. 주로 개신교도, 유대인 등으로 우크라이나에 동화되기 어려운 사람들이었다.
 
해외 우크라이나인은 캐나다 다음으로 미국에 많이 거주하고 있다. 미국에 백여만 명 정도의 우크라이나계 미국인이 있다. 이주민 일부와 후손들은 소련이 붕괴된 후 우크라이나가 서구화되면서 우크라이나로 돌아왔으며, 이들은 미국의 지원 아래 친미, 반공, 반러시아 세력으로 성장했다.
 
유셴코 대통령의 부인 카테리나 유셴코 역시 우크라이나계 미국인이었다. 유셴코의 부인은 제3세계를 담당하는 외교관이었으며, 미국-우크라이나 친선재단을 설립하여 유셴코를 비롯한 엘리트 친미세력을 육성했다. 이런 배경으로 친러 세력은 그녀를 유셴코를 배후 조정하는 미국의 고위첩자로 비난해왔다.
 
우크라이나 등 색깔혁명, CIA-진 샤프-CANVAS에 의해 기획 주도돼

소련의 몰락을 전후로 한 색깔 혁명은 주로 인권과 민주주의, 부패 척결 등 미국이 경쟁력이 있고 중요시하는 가치를 목표로 하였다. 특히 공산주의나 권위주의 국가에서 일어난 비폭력 혁명을 말한다. 혁명참여자들이 오렌지를 상징으로 애용하여 오렌지색은 2004년 우크라이나 혁명의 상징이다.
 
1989년 체코슬로바키아의 벨벳 혁명, 2000년 유고슬라비아의 불도저 혁명, 2003년 조지아의 장미혁명, 2006년 벨라루스의 청바지 혁명, 2011년 러시아의 눈꽃혁명과 중국의 재스민혁명, 2014년 홍콩의 우산혁명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토니 카탈루치(Tony Cartalucci)는 색깔혁명을 미국식 체제를 확산시키는 프로그램으로 보면서 이 색깔혁명을 기획해 온 칸바스(CANVAS)와 오트포르!(otpor!)를 'CIA의 쿠데타 대학'(CIA-coup college)으로 평가했다.

우크라이나 민주화 시위를 주도했던 청년들의 배후에 있는 단체는 ‘비폭력행동전략센터’(Center for Applied NonViolent Actions and Strategies. CANVAS)이다. 오트포르는 우크라이나 2004년 오렌지혁명의 주역인 청년운동 그룹 PORA (때가 왔다)을 지도했다. 2014년 쿠데타 때 비폭력저항운동은 CANVAS의 지원을 받았다. 

조지아 혁명 준비 단계부터 결합했던 슬로보단 지노비치 역시 Otpor부터 활동했으며, 오트포르는 조지아의 학생운동 그룹 크마라(Kmara, 충분하다!)을 2002년부터 훈련시켰다. 크마라는 2003년 장미혁명 때 에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Eduard Shevardnadze) 대통령을 사임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냉전 직후 미국의 체제전복 선동은 나치 따라 하기
 
1930년대 말 나치의 유럽과 중남미에서의 선전활동은 미국의 선전활동에 영향을 미쳤다. 1942년 연합군의 전략활동국은 군사작전의 일환으로서 선전, 정보 수집, 유언비어 유포, 사보타주 등을 담당하였다.

각 군의 심리작전반은 전쟁정보국 혹은 전략활동국의 통제를 받았으며, 선전 방송, 삐라 살포 등 심리전을 수행하였다. 이 조직들은 현지인을 동원하여 후방을 교란하는 유언비어 살포, 태업, 파업, 철시 등을 조직하였다.

2차 대전이 끝난 후 이러한 기구들은 1946년 중앙정보단으로 통합되었고 이후 1947년에 창설한 CIA에 편입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교란은 방송을 통해 민심이반과 체제저항을 선동하는 것이다. 동유럽 방송은 사회주의 국가의 민주화와 인권에 대한 것이었으며, 중동의 경우 서구화라는 목적이 추가되었다.
 
최악의 결과를 낸 미국의 헝가리 봉기 선동
 
1956년 헝가리 봉기 당시 ‘자유유럽방송’의 헝가리 지국은 "만약 봉기가 일어난다면 미국의 지원이 있을 것"이라고 암시하는 내용을 방송하여 반소 민족주의자들을 부추겼다. 마치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미국이 전두환의 학살을 저지시켜 줄 것이라는 일부의 기대와 유사한 것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봉기가 발생하자, 흐루쇼프는 20만 명의 병력과 2,500여 대의 탱크와 장갑차를 동원하여 헝가리 학생과 노동자들의 저항을 진압하였다. 물론 미국은 소련과의 전쟁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헝가리 사태에 개입하지 않았다. 이 사태로 인해 무려 3만 명에 이르는 헝가리 학생과 노동자들이 죽었다.

조지아와 우크라이나 역시 러시아와 전쟁을 하면 미국이 개입해 줄 것이라는 헛된 희망 끝에 엄청난 희생을 치렀다. 헝가리 봉기의 참사는 CIA 내부에 선전방송의 무책임성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심리전을 이용한 미국의 비밀공작은 전반적으로 쇠퇴하였다.
 
북, 쿠바, 베네수엘라 등 반미 국가에서 체제전복 선동 계속

오늘날 미국이 각국에서 실행하고 있는 체제교란 작전은 공공외교로 포장된다. 공공외교의 목적은 외국 국민의 인식과 감정에 변화를 일으켜 미국의 국익을 위한 행동에까지 이르게 하는 것이다. 지금도 CIA나 국무부는 한국에서 북에 라디오나 삐라를 뿌리는 단체에게 재정을 지원하고 있다.
 
또한 미국은 공공외교라는 명목으로 마련한 예산으로 외국의 언론기관을 장악하고 언론인들을 매수한다. 미국은 자신에게 반대하는 정권에 대해 공산주의 정권이라는 여론을 확산시켜 국제적으로 고립시켜왔다.
 
2005년 11월 ≪로스앤젤레스타임스≫의 보도에 따르면 미군은 2003년 설립되어 미군의 선전 활동을 대행해 오던 링컨그룹을 통해 이라크의 언론인들을 매수하였다. 링컨그룹은 미군이 작성한 기사를 이라크의 신문에 게재하도록 하였다. 링컨그룹의 지원을 받은 렌던그룹은 이라크 출신 망명자들을 매수하여 미국의 언론에 거짓 증언을 하도록 하여 부시정부의 이라크 침공을 정당화하였다.
 
비정규전, 가짜 게릴라, 기간산업 파괴, 폭력 시위 등 혼란 유발
 
미국은 정규군에 의한 침공이 어려운 경우 쿠바의 피그만 침공에서 보듯이 미군기나 군함을 반란군처럼 위장해 반미국가를 공격하거나 가짜 게릴라를 침투시켰다.  미국은 쿠바에선 사탕수수 공장, 주요 기간 시설, 관광지를 파괴해 사회혼란을 유발했다. 

미국은 게릴라전에 실패하면 비밀공작을 통해 쿠데타를 유도하였다. 특히 중동과 중남미에선 제3세계 출신 미국 이민자들을 활용했다. 1953년 CIA의 커밋은 이란의 모사데그 정부를 전복시키기 위하여 언론과 군대를 매수하였다. CIA는 이란 출신 갱단을 매수하여 모사데그 지지 시위를 하면서 이슬람 사원을 파괴하도록 하였다.

또한 깡패들로 하여금 “모사데그를 지지한다”고 거리에서 외친 후 폭동을 일으켜 모사데그가 폭력적인 공산주의자라는 여론을 만들었다. 그밖에도 시위대끼리 충돌하도록 하여 이란인들이 모사데그의 지도력에 의문을 품도록 하였다.

내란과 분리 운동 조장, 친미 인사 선거 지원

미국은 국가 전체에 대한 전복이 필요가 없는 경우, 국가의 일부 지역이 독립운동을 하도록 부추겨 분단을 조장하였다. 파나마 운하를 차지하기 위하여 콜롬비아에서 파나마를 독립시키는 내란을 사주하고 지원한 것이 대표적이다.
 
멕시코와 하와이에 백인 이주민을 보낸 후 이들이 토착정권에 대해 반란을 일으킨 후 백인 보호를 명분으로 이들 나라를 점령하여 영토를 빼앗아 오거나 식민지로 만들었다.
 
1964년 칠레 선거 당시 CIA는 아옌데의 당선을 막기 위해 기독사회민주당 선거운동 자금의 절반이 넘는 260만 달러를 지원하였다. CIA는 1970년 선거기간 동안 아옌데에 대한 흑색선전을 하였으며 아옌데의 경쟁자에게 제3자를 통해 선거자금을 제공하였다.
 
CIA는 1955년 인도네시아 선거에서 공산당에 반대하는 회교정당(Muslim Masjumi Party)에 400만 달러를 비밀리에 지원하였다. 미국 정부와 정보기관은 소련을 붕괴시키고 미국을 추종하던 엘친의 당선을 위해 선거자금은 물론 선거전문가까지 모스크바에 파견하여 비밀캠프를 운영했다.
 
권위주의 정부는 미국식 민주주의 확산과 대러 봉쇄의 희생양
 
미국은 냉전기간 동안 민주주의와 인권 운동을 통해 체제전환 혹은 체제진화를 추구하는 ‘소프트 파워’ 전략을 중국, 동유럽, 쿠바에 구사하였다. 특히 진 샤프가 정립한 ‘스워밍’ 전술은 비폭력전술로서 야당의 시위를 지원하여 적대적 정부를 민주적으로 제거하는 방식이다.
 
미국은 이 전술에서 인터넷이나 휴대폰 메시지 등 다중의 최첨단 네트워크를 활용하였다. 이런 방식은 세르비아의 밀로셰비치를 하야시키는데 적용되었다. 또한 이 방식은 2004년 우크라이나에서 친미정권을 탄생시켰던 오렌지혁명에도 활용되었다.
 
진 샤프는 포드재단, 미국 의회, CIA가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미국 국립민주주의기금(National Endowment for Democracy)의 자금을 받아 1983년 알버트 아인슈타인 연구소를 설립하였다.
 
진 샤프가 비폭력 시위로 체제전환 하는 전술을 체계화하고 확산
 
그는 그후 전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비폭력으로 정부를 전복하는 활동을 자문해주고 있다. 진 샤프는 1989년 중국의 천안문 사태 직전에 중국을 극비리에 방문하여 민주화 세력을 지원하였다. 그가 1990년 쓴 저서 『시민을 토대로 한 방어 전략』은 발트 3국의 독립시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과거 독립시위를 주도한 리투아니아의 국방장관은 “이 책은 “핵폭탄보다 더 갖고 싶은 책이다”라고 할 정도로 리투아니아의 독립운동에 영향을 미쳤다. 진 샤프의 1993년 저서 『독재에서 민주주의로 - 해방을 위한 개념 체계』 역시 공산정권이나 반서방정부를 타도하는 비폭력적 전술을 제시하고 있다.

미국 국방부는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진 샤프의 개념을 받아들여 소프트 파워 전략을 구체화한 ‘전방위 지배전략’을 수립하였다. ‘전방위 지배전략’에 따르면 미국은 상대방의 특성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또한 전방위적으로 적대국가를 무력화하는 전술을 활용해야 한다. 냉전시대는 방송, 삐라가 주요수단이었지만, 1990년 이후에는 인터넷, 휴대폰, SNS가 주요 수단이 됐다.
 

▲ CANVAS로부터 교육과 훈련 및 지원을 받은 각국의 비폭력저항운동 단체들은 CANVAS의 상징인 주먹을 자신의 상징으로 활용하고 있다. 일부 단체들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이 간접적인 영향만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 https://landdestroyer.blo

 

오트포르!, 우크라이나 등 동유럽 친미정권 수립 프로젝트의 배후

CANVAS는 2005년 슬로보단 지노비치(Slobodan Djinovic)와 스르자 포포비치(Srdja Popovic)에 의해 설립됐으며, 오트포르!(otpor!)의 후신조직이다. Otpor!는 세르비아어로 저항이라는 뜻이다. 오트포르!는 1998년 스르자 포포비치와 이반 마로비치(Ivan Marovic)에 의해 베오그라드(Belgrade) 대학생을 중심으로 설립돼 2000년 대통령선거에서 자유와 민주, 부패척결을 내걸고 밀로셰비치(Milosevic) 반대운동을 하면서 성장했다.
 
CANVAS는 위크리크스(WikiLeaks)에 의하면 CIA의 자금을 받으며 특히 밀로셰비치 퇴진운동을 위해 CIA로부터 자금과 훈련을 받았다. 이들은 2003년 정당을 건설해 선거해 참여했으나 참패했다.
 
CANVAS의 홈페이지(https://canvasopedia.org/)에 따르면 이 단체는 전 세계 50여국의 민주주의 시위에 관여해왔다. 이 조직은 진 샤프가 설립한 알버스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연구소의 지원을 받고 있으며, 진 샤프의 비폭력이론을 활용하여 자신들의 전술과 메뉴얼을 발전시켰다.

CANVAS, CIA와 국무성 및 보수재단 지원으로 반미국가 전복
 
이들을 지원하는 단체는 Democracy Research Guide, International Center on Nonviolent Conflict Resources, International Republican Institute and the National Democratic Institute for International Affairs, US National Endowment for Democracy, Freedom House 등이다.
 
CANVAS 인사들은 미국 국무성이 후원하는 미국 내 민주주의 증진 행사에 참석하곤 했다. 이 단체의 지도자인 스르자 포포비치는 대학 때부터 진 샤프의 이론을 공부했다. 스르자는 『독재자를 무너뜨리는 법』을 저술했으며 홈페이지 대부분의 팜플랫과 메뉴얼을 작성하고 있다.
 
그는 밀로셰비치 퇴진운동에 기여했으며 한때 세르비아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칸버스의 신시아 시크만(SINISA SIKMAN)에 따르면 칸버스의 전신인 오트포르! 역시 CIA의 자금을 받았다. 슬로보단 지노비치는 미국에서 펀드를 조직하는 매개고리이다.
 
주요한 재정지원단체는 제3세계에 미국식 민주주의를 확산시키는 사업을 하는 워싱턴의 International Republican Institute이다. International Republican Institute의 이사진에는 John McCain, Lindsey Graham, Brent Scowcroft 등 보수인사들이 포진돼 있다.
 
CANVAS, 미국식 혁명수출 조직으로 테러단체에 등록되기도
 
CANVAS는 전 세계 각국에서 비폭력저항으로 체제전환을 하는 운동을 기획하고 관련자들을 교육 및 훈련시키고 있다. 이런 운동은 2003년 조지아, 2004년과 2014년 우크라이나, 2011년 이집트와 시리아에서 성공했으며, 벨라루스, 베네수엘라, 이란, 아제르바이잔, 티벳 등에서도 나름 영향을 미쳤다.
 
2011년 이집트의 ‘April 6 Youth Movement’의 지도자인 아델(Adel)은 2009년 칸바스에 와서 5일 동안 시위 조직에 관한 교육과 훈련을 받았고 2011년 2월 9일 알자지라 방송국과의 인터뷰에서 훈련의 구체적인 내용을 밝혔다.
 
위키리스크가 폭로한 정보조직 스트래트포(Stratfor)의 이메일에 따르면 칸바스는 베네수엘라에서 스트래트포와 함께 정치공작을 수행했다. 깁손(Gibson)과 호른(Horn)의 분석기사에 따르면 러시아에선 마이클 맥폴(Michael McFaul) 미국대사가 칸바스의 자금을 지원했으며, 이 자금은 골드만삭스의 자본과 관련돼 있다.
 
벨라루스, 이란, 베네수엘라의 대통령은 칸바스를 혁명수출조직으로 비판했다. 아랍에미레이트는 칸바스를 테러그룹 명단에 올려 놓고 있다. 이들의 지도를 받은 각국의 비폭력저항운동 그룹들은 다양한 주먹 이미지를 깃발의 상징으로 활용하고 있다.


관련 동영상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lpXbA6yZY-8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