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대선결과와 한국의 정치지형 변화

 역대 선거 결과와 한국의 정치지형 변화

 

김장민(정치경제학연구소 프닉스 연구위원)

 

 

I. 역대 대통령 선거결과와 한국의 정치지형 변화

 

한국도 미국이나 영국 같은 보수양당체제처럼 정권교체가 일반적인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정당지도부의 관심과 달리 일반 유권자의 시각에서 보면 이념이나 외교안보에서 두 거대 정당은 큰 차이가 없다. 따라서 국내 문제 특히 경제문제가 일반 유권자들의 관심이다. 또한 특정 정당에 계속 권력을 주는 것에 염증을 느끼는 심리가 정착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거대 양당은 40% 내외의 고정지지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20% 내외의 부동층에 의해 당선자가 결정된다. 다만 미국은 전국적인 총투표가 아니라 주별 투표의 승자독식에 의한 대통령선거인단에 의해 당선자가 결정된다는 점이 한국과 다르다.

 

한국의 경우 대선 구도는 자유주의(호남 + 부산 경남 일부) 대 보수주의(영남 대부분) 2자구도로 고착화됐다. 인구 구조와 지역투표로 인해 호남 출신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되기 힘들다. 따라서 거대 양당의 후보들은 대부분 영남출신으로 수도권에서 인지도가 높은 정치인들이었다. 2007년 정동영 후보가 참패한 이후 호남 출신 대통령 후보는 없다. 호남 출신의 유일한 대통령인 김대중은 뛰어난 역량과 지명도에도 불구하고 충청권의 김종필과 연립정권을 공약으로 제시하면서 간신히 당선됐다. 신한국당에서 이회창과 경선했던 이인제가 출마하지 않았다면 김대중은 당선되기 어려웠다.

 

김영삼 정권은 노태우, 김종필과 합당함으로써 탄생했다. 이는 일본식의 자유당과 민주당의 합당처럼 보수독재의 영구화를 노린 것이다. 김영삼 정권의 성과는 전두환과 노태우 처벌, 하나회 등 정치군인 퇴출, 금융실명제, 그리고 강력한 보수후보로서 이회창의 발굴이다. 김대중 정권의 성과는 연립정부 전략으로 호남정권 수립, 최초의 자유주의 정권 재창출, 6.15공동선언 등 남북관계 개선이다. 김대중은 일본과 미국에 망명하는 동안 양국의 정치인들의 신뢰를 획득하였으며, IMF 구제금융 사태를 계기로 집권하고 이후 찬미친일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한국에 도입했다. 노무현 정권의 실패는 호남 대선후보 발굴이나 노무현의 비극적 최후가 자유주의 세력의 동정을 얻으면서 김대중 - 노무현으로 이어지는 자유주의 추종그룹을 형성했다.

 

한국의 정치구도를 반영하는 대선결과를 보면 전반적으로 한국정치가 발전하고 있다. 1987년 대선 이후 군부독재 세력은 정치세력으로서 퇴출당했다. 이 부분은 하나회 등 정치군인을 일소하고 12.12 쿠데타와 광주학살을 처단한 김영삼 대통령의 성과라고 볼 수 있다.

 

군부독재 - 보수 문민정부 - 자유주의 정권으로의 정권교체가 반복되면서 한국정치에서 보수세력이 천천히 약화되고 있다. 보수정치는 박근혜 탄핵 이후 전통적인 지도자와 지지층을 확고히 하지 못하고 있다. 보수와 극우의 분열상도 보수정치의 취약 지점이다. 보수정치는 특정한 인물보다 영남지역, 기독교와 친미세력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윤석열의 경우처럼 지도자를 외부에서 빌려오는 형태이다. 전통적 보수가 단절되면서 과거 민주화 인사나 관료, 기업인 등을 새로운 지도자군으로 영입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역동적이라고 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리더십의 혼란 상태이며 그에 따라 결집력이 파괴적이지 못하다.

 

반면 자유주의세력은 양김 - 노무현 - 문재인 - 이재명 등 과거 자유주의 세력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다. 자유주의세력은 김종필의 도움과 이인제의 보수표 분열 덕분에 최초로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이후 자유주의 세력은 노무현, 문재인에서 보듯이 (호남+영남 일부)의 과거 민주화 운동 세력을 토대로 하여 연립정부가 아니라 1 : 1의 구도에서 자유주의 정권을 독자적인 힘으로 재창출하고 있다. 자유주의 세력은 2012년 대선에서 정권교체에 성공하지 못했지만 보수와 11의 구도에서 동등한 세력을 과시했다. 특히 박근혜 탄핵 이후 자유주의세력이 대선에서 최초로 보수를 압도한 바 있다.

 

역대 대선에서 사회주의를 전면에 내건 후보들은 유권자들의 외면을 받았다. 사회주의를 내용적으로 순화시킨 대중적 진보정당들은 원내에 진입하여 소수정당으로서 간신히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진보정당의 대선후보는 비판적 지지를 점차 극복해왔다. 비록 무소속이지만 백기완 후보는 1987년 대선에서 투표일 이틀 전에 양김의 후보 단일화를 요구하며 사퇴한 바 있지만 1992년 대선에서 완주하여 1%를 얻었다. 민주노총이 1996년과 1997년의 총파업 투쟁으로 전국적인 정치투쟁을 이끌고 노동조합의 정치참여를 제도적으로 쟁취하고 나아가 자신의 위원장인 권영길을 내세워 1997년 대선에서 국민승리라는 정당을 만들고 대선에 조직적으로 참여한 것은 서구의 노동운동사에 비견되는 역사적 사건이다.


19

87

노태우

민주정의당

36.64

김영삼

통일민주당

28.03

김대중

평화민주당

27.04

김종필

신민주공화당

8.06

19

92

김영삼

민주자유당

41.96

김대중

민주당

33.82

정주영

통일국민당

16.31

박찬종

신정치개혁당

6.37

19

97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40.27

이회창

한나라당

38.75

이인제

국민신당

19.21

권영길

건설국민승리21

1.19

20

02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48.91

이회창

한나라당

46.59

권영길

민주노동당

3.9

김영규

사회당

0.09

20

07

이명박

한나라당

48.67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26.15

이회창

무소속

15.08

문국현

창조한국당

5.83

권영길

민주노동당

3.02

금민

한국사회당

0.08

20

12

박근혜

새누리당

51.55

문재인

민주통합당

48.02

김순자

무소속

0.15

김소연

무소속

0.05

20

17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41.09

홍준표

자유한국당

24.04

안철수

국민의당

21.42

유승민

바른정당

6.76

심상정

정의당

6.17

김선동

민중연합당

0.08

20

22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47.83

윤석열

국민의 힘

48.56

심상정

정의당

2.37

김재연

진보당

0.11

오준호

기본소득당

0.05

이백윤

노동당

0.02

허경영

국가혁명당

0.83

 

1997년 대선 당시 권영길 후보는 IMF 대량해고에 맞선 총파업에 대한 노동자민중의 지지, 김종필과 연합한 김대중의 당선가능성 때문에 비판적 지지의 압박을 적게 받았다. 2002년 대선과 2007년 대선에 있어 자유주의정권에 대한 심판 여론이 높았다. 2002년의 경우 노무현의 당선으로 자유주의 정권이 재창출됨으로써 선거 후 권영길에 대한 비판의 여지가 없었고, 2007년의 경우 처음부터 자유주의세력의 후보인 정동영의 낙선이 예상돼 비판적 지지 여론이 형성되지 않았다.

 

반면 2012년 대선의 경우 정권교체를 해야 한다는 광우병 촛불집회의 여론으로 인해 비판적 지지 압박이 높았다. 특히 앞선 4월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이 민주당과 전면적인 후보단일화를 했기 때문에 후보단일화 여론이 높아 완주하기 어려운 조건이었다. 결국 심상정은 본선에 가지 않았으며, 이정희는 1TV 토론 직후 사퇴했다. 민주당은 선거연합을 한 통합진보당의 부정선거 논란, 폭력사태, 종북 논쟁, 분당, TV 토론에서 이정희 후보의 박근혜에 대한 공격으로 인한 역풍, 이석기 의원 사태 등을 목격하면서 이후 진보당 계열과의 선거연합에 부정적인 입장을 지니게 된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민주당은 2020년 총선에서 진보당 계열뿐만 아니라 녹색당과도 선거연합을 거부했으나, 2024년 총선에서 진보당이 원내 정당이라는 선거연합 대상에 포함됐다.

 

2017년 대선은 문재인의 높은 당선가능성 때문에 비판적 지지 압박이 없었다. 그 결과 심상정 후보는 6%라는 놀라운 득표력을 보여줬다. 2022년 대선의 경우 박빙으로 인해 비판적 지지의 압박이 있었으나 문재인 정권 심판의 성격이 있어 비판적 지지의 압박이 일부 완화된 측면이 있다. 다만 선거 이후 윤석열의 당선을 심상정 후보 탓으로 돌리는 야당 여론이 팽배했다.

 

2020년 총선에서 정당명부 의석 중 30석 이내에서 정당 득표율의 50%를 의석점유율에 반영하는 연동형비례대표제가 최초로 도입됐다. 거대양당은 소선거구제에서 이미 득표율보다 더 많은 의석을 획득하는 구조이나 연동형비례대표제로 인해 정당명부 의석을 추가로 획득할 수 없었다. 이에 거대양당은 비례대표 위성정당을 창당했다. 특히 민주당의 경우 스스로 연동형비례대표제의 취지를 훼손한다는 비판 여론을 피하고자 친민주당 인사 이외에도 일부 시민진영, 진보정당 인사를 위성정당 후보로 내세워 당선시켰다. 민주당은 진보당과 녹색당에 대한 선거연합을 물 밑에서 논의하다 종북논쟁, 이념논쟁, 페미니즘 논쟁을 우려해 이들 양당과 논의를 중단시켰다.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통합진보당 사태를 겪은 문재인 정권의 판단이라고 볼 수 있다.

 

2024년 총선을 앞두고 위성정당 문제를 잉태하고 있는 연동형비례대표제를 없애려는 양당의 시도가 있었지만 민주당 내 일부 의원들의 반발이 있었고 이재명 대표가 결단의 방식으로 존치시켰다. 민주당은 비례 위성정당의 참여 기준으로 친민주당 인사, 시민진영, 원내 진보정당을 제시했다. 정의당은 지역구만 사안에 따라 후보단일화를 하겠다며 거부한 반면, 진보당은 비례, 지역구 모두 후보단일화를 하겠다고 수용했다. 그 결과 새진보연대, 진보당은 비례대표 당선권에 최소한 2명씩 보장 받았으며, 호남을 제외하고 후보단일화에 나섰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의 사례에서 이미 봤듯이 2024년 총선에서 일부 진보진영이 민주당과 연대를 한 조건에서 2027년 대선에서 선거연합이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박빙의 승부가 예상될 때 민주당으로 야권후보를 단일화하라는 비판적 지지의 압박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진보정당이 차기 대선에서 비판적 지지의 압박을 최소화하려면 평상시 진보정당이 정치투쟁과 정책선전을 통해 자신의 독자적 존재의 필요성을 유권자에게 각인시켜야 한다. 특히 대선 직전의 2026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과 전면적인 후보단일화에 신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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