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국가의 탄생과 협력체제

 소련의 스탈린과 미국의 루스벨트는 2차 대전을 독일과 일본에 맞서는 반파쇼전쟁으로 규정했다. 따라서 2차 대전 직후 냉전이 시작되기 전까지 소련은 반파쇼의 진보적 세력과 연대를 강조했다. 그런데 4선의 루스벨트는 재임 중 병사했으며 부통령으로서 대통령에 오른 트루먼은 스탈린을 히틀러만큼 증오한 반공주의자였다. 그리스 내전에서 시작한 냉전은 마샬플랜, 나토, 바르샤바 조약기구, 베를린 봉쇄, 대만 분쟁, 한국전쟁, 베를린장벽으로 악화됐으며, 중소분쟁 당시 미국이 중국의 편에 서면서 일부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스탈린 체제를 청산한 흐루쇼프는 프롤레타리아독재 종료, 유럽에서 의회를 통한 혁명, 미소평화공존 등을 주장하며 긴장완화를 조성했다. 이러한 데땅트 분위기에서 유럽에서 흐루쇼프의 영향을 받아 유로코뮤니즘이 형성돼 아프가니스탄 전쟁까지 잔존했다. 흐루쇼프 시대에는 유럽에서 자본주의 즉시 폐기보다는 국가독점자본주의라는 사회구성체(사회성격)을 고려하여 반독점을 내걸며 진보적 세력과의 연대를 강조했다. 

사회주의국가는 소련의 자국중심의 코민테른 운영, 중소 갈등 등 사회주의 종주권 논쟁 등의 영향으로 중앙집권적인 국제당 건설에 나설 수 없었다. 정보협력기구인 코민포름은 2차 대전 직후부터 스탈린 사망 때까지 존속했다. 

미국은 1949년 유럽에서 나토를 창설했으며, 미군과 핵무기를 배치했다. 1951년 영국을 제외한 서유럽 국가들은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를 창설했으며, ECSC는 1957년 유럽경제공동체, 1987년 유럽정치협력(EPC)를 거쳐 1993년 유럽공동체, 2009년 유럽연합으로 발전했다. 

동유럽의 사회주의국가들은 나토에 대응하여 1955년 흐루쇼프의 제안에 따라 바르샤바조약기구(우호협력상호원조조약)를 창설했으며 소련군과 핵무기가 배치됐다. 알바니아가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에 대한 소련의 군사 개입에 항의하여 탈퇴했고, 1989년부터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 동독, 폴란드가 탈퇴했다. 소련 붕괴 이후 우크라이나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동유럽 국가들이 나토에 가입했다. 

1991년 러시아는 구소련의 중앙아시아국가들과 독립국가연합을 창설했지만 군사동맹에 이르지 못했다. 1996년 러시아, 중국과 중앙아시아 국가 등이 상하이 5국을, 2001년 상하이협력기구를 출범시켰고, 인도, 파키스탄, 이란 등 9개국이 정회원이다. 상하이협력기구는 군사동맹은 아니지만 중국과 러시아, 일부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공동으로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경제상호원조회의, 즉 코메콘(COMECON, Council for Mutual Economic Assistance)은 1949년 마셜플랜에 대응하고자 소련의 주도 아래 창립되었다. 10개 국가가 회원이며, 12개 국가가 준가맹국 혹은 협력국, 참관국이었다. 코메콘의 무역체계는 달러를 사용하지 않는 물물교환, 즉 구상무역이었다. 

따라서 소련과 공산권 나라들은 달러를 얻기 위해 서방과 교역을 할 필요가 적었다. 코메콘은 석유와 석탄을 중심으로 1970년대에 가장 활성화되었다. 나아가 데탕트 시절에 동유럽과 중부유럽은 서유럽과의 교역을 증대시켰다.

소련은 1954년부터 1991년까지 연평균 총국민소득(GNI)의 0.20~0.25%를 공산권 국가와 개발도상국가에 대한 대외 원조로 사용하였다. 이를 추계하면 총 780억 달러이다(김동혁, 이상준, 2018). 이러한 대외원조는 주로 코메콘을 통해 집행되었다. 소련이 대외원조 기금의 대부분을 부담하였지만 동유럽도 일부 부담하였다. 유상 차관의 경우 제3세계는 1% 이하의 이자를 부담하였으며 동유럽은 2-3% 수준이었다. 

코메콘의 회원국인 베트남 정부의 비공식 추계에 따르면, 1965~75년의 전쟁 기간 매년 약 7억불의 원조가 소련으로부터 왔다(최우영. 2011). 또한 1987년 코메콘의 대외 원조의 3/4은 쿠바, 베트남, 몽골에게 집중되었는데, 쿠바 20억불, 베트남 40억불, 몽골 10억불 정도였다. 소련과 동유럽은 제3세계의 원자재나 농산물을 시장가격보다 비싸게 사는 방식으로 지원을 하였다. 쿠바는 설탕의 80%를 동유럽에 시세보다 비싸게 팔 수 있었고, 몽골의 지하자원도 시세보다 비싸게 팔렸다(Glenn, 1992). 

흐루쇼프 이후 소련은 오일을 수출하고 상대방이 만든 상품을 대가로 받았다. 1970년대부터 소련의 원유와 천연가스가 시장 가격 이하로 코메콘 국가에게 제공되었다. 특히 소련은 제3세계에 동유럽보다 낮은 가격에 원유를 공급하였다. 고르바초프 때 동유럽에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한 파이프라인 프로젝트가 추진되었다. 소련은 손실을 감수하면서 국제유가 보다 낮은 가격으로 사회주의 블록 국가들에게 석유를 제공하였기 때문에 그만큼 재정이 악화되었다.

 1980년에 들어 코메콘은 침체에 빠졌다. 1980년대 후반 코메콘이 붕괴되면서 공산권 국가들은 교역을 하기 위해 달러가 필요해졌다. 이들은 달러 부족으로 필요한 물자를 구입하지 못하거나 재정적자에 시달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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