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인상 때문에 물가가 오른다고?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실질임금의 단기적 하락

한국의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의 경우 경제성장, 생산성 향상, 지급능력, 임금인상 투쟁으로 인해 장기적으로 물가인상보다 임금인상율이 높아져 실질임금이 상승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단기적으로 인플레이션 시기에는 물가가가 먼저 오르고 임금인상은 노동자들의 투쟁에 의해 비로소 나중에 오른다. 더구나 임금인상율이 물가인상율보다 낮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재 미국은 물론 한국도 대기업 정규직이라고 하더라도 임금이 물가를 따라 잡지 못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삼성전자가 9% 임금인상을 단행하는 등 수익성이 좋은 대기업은 물론 중앙일보와 JTBC는 6%, 동아일보는 4.7% 임금인상에 합의했다. 조선일보 역시 파격적인 임금인상안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 보수언론들은 5% 최저임금 인상률 때문에 자영업자가 죽어나간다고 비판하고 있다. 

최저임금을 기본으로 하는 직무급 도입으로 인한 실질임금의 장기적 하락

주목할 것은 현재 최저임금은 영세사업장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공공기관과 대기업의 비정규노동자뿐만 아니라 직무급이 적용되는 일부 정규직에게도 적용되고 있다. 정부는 공공부문의 비정규직부터 시작해 모든 공공부문에 시범적으로 최저임금을 1호봉으로 하는 직무급을 도입하고자 한다. 

장기적으로 총자본의 이익을 위해 직무급을 민간부문에도 점차적으로 도입하고자 한다. 결국 다음 노동세대는 최저임금부터 시작하는 임금삭감에 직면하고 있고, 이는 청년노동자에게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임금인상 파업 때문에 경제가 멍든다는 자본과 권력

현재 물가인상에서 보듯이 물가는 임금이 인상돼서 오르는 것이 아니라 수요회복을 따라가지 못하는 상품 공급, 전쟁으로 인한 원자재와 에너지 가격 폭등, 다국적 기업의 폭리, 원화 하락으로 인한 수입 가격 상승 등이 원인이다. 

독점기업들은 비용 상승을 바로 가격에 반영하고 심지어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정유회사를 비난하는 것처럼 매점매석을 통해 평상시보다 더 많은 폭리를 취하고 있다. 자유경쟁시장에서 개별 기업들은 다른 기업의 눈치를 보느라 바로 가격을 올리지 못하지만 결국은 담합을 통해 즉시 가격인상을 하거나 비용상승이 일반적으로 수용되는 과정에서 순차적으로 가격을 올린다. 

자신의 이윤을 고수하면서 임금만 붙잡으려는 자본

반면 고용된 노동자들은 분산되어 서로 경쟁하면서 노동력을 공급하고 있기 때문에 개별적으로 임금인상을 실현할 방법이 없다. 결국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통해 임금협상 나아가 파업을 통해 임금인상을 관철하고자 한다. 

이때 자본과 권력이 임금인상으로 물가가 오른다고 하거나 노동자의 임금인상 투쟁 때문에 기업이 손해를 보고 결국 전체 국가경제를 멍들게 한다고 비판한다. 자본가들은 물가인상 때 자신의 이윤을 줄이지 않거나 혹은 정유회사처럼 더 많이 챙기면서 노동자에게 국가경제를 위해 임금인상율을 낯춰 실질적으로 임금삭감을 받아들이라고 강권하는 셈이다. 

문제는 역사적으로 자본가뿐만 아니라 일부 학자나 혁명을 운운하는 자들도 임금인상 혹은 임금인상 투쟁이 무익하다고 주장해왔다는 점이다. 

임금인상 등 경제투쟁에 반대하는 자칭 혁명가들

우편향을 보면 노동조합 결성이나 임금인상 투쟁과 같은 경제투쟁보다는 생산자협동조합 건설에 주력해야 한다는 우경 무정부주의 프루동류가 있다. 이들은 식자, 인쇄, 재봉, 간단한 금형과 같은 소생산에 종사하는 숙련공 즉 직공이었다. 이들은 봉건제 장인 제도와 자본제 공장제 사이에서 몰락하는 소부르주아였다. 

이들은 자신들도 공장주가 되고 싶었기에 소생산자들의 협동조합을 만들고자 했다. 이들 중 일부는 자본주의 국가와 협상을 통해 지원금을 받아 초기자본주의를 소생산자협동조합의 연합체로 역전시키고자 했다. 라살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국가를 통한 혁명 즉 입헌 군주와 협상하여 보통선거권을 전면적으로 도입하면 소생산자들의 국가권력 쟁취가 가능하다고 봤다.  

좌편향을 보면 바뵈프, 블랑키, 바쿠닌과 같은 좌경 무정부주의가 있다. 이들은 노동조합 건설, 임금인상 투쟁과 같은 경제투쟁을 거부하고 소수 엘리트의 무장봉기 즉 정치투쟁만을 강조했다. 소수의 혁명가들이 군중들이 모인 현장에서 선도투쟁을 전개하여 군중들을 급진적으로 조직한다는 것이다. 

이들 좌우 편향 모두는 아직 공장제가 전면적으로 도입되지 않아 노동자 대중이 형성되지 못해 혁명의 주체가 소부르주아, 엘리트 혁명가에 국한됐던 시대적 한계를 반영하고 있다. 

총연맹 형태에서 임금인상 파업은 총자본과 국가공권력에 맞서는 투쟁

또한 마르크스가 지적했듯이 노동자의 경제투쟁은 자신의 이해관계에 맞는 즉 존재에 부합하는 즉자적인 대응이자, 그래서 개별 자본가와 대립할 수밖에 없는 대자적인 투쟁이다. 이러한 경제투쟁은 8시간 노동제와 같은 제도투쟁으로 발전하고 결국 국가의 결정권을 장악하려는 즉자대자적인 정치투쟁으로 나아갈 수 있는 맹아이다. 

더구나 오늘날 노동조합은 전국단위의 총연맹 형태이다. 따라서 최저임금 인상 투쟁은 물론, 총연맹 혹은 전국단위의 가맹, 대기업의 임금인상 투쟁은 그 자체가 이미 총자본과 국가공권력과 맞서는 높은 수준의 경제투쟁이자, 낮은 수준의 정치투쟁이다. 

임금인상 투쟁에 반대하는 이론들

리카도와 밀의 임금기금설에 따르면 모든 노동자의 임금 지불에 충당되는 기금은 총자본 중에서 일정하므로 개별 노동자의 평균 임금은 임금기금의 총액을 근로자 총수로 나눈 액수와 같다. 따라서 평균 임금이 오르면 고용이 감소된다. 

마르크스 시대의 존 웨스턴에 따르면 단기적으로 총생산량이 불변이고 전체 노동자에 대한 배분 즉 총임금이 고정돼기 때문에 개별노동자가 임금으로 구매할 수 있는 상품량 즉 실질임금도 불변이다. 그래서 임금이 올라도 상품 구매량은 오르지 않기 때문에 임금인상율만큼 명목가격의 상승 즉 인풀레이션만 발생한다. 

마르크스는 웨스턴을 비판하는 『임금·가격·이윤』에서 자본가가 총이윤 중에서 임금에 배분하는 비율은 항상 고정적인 것은 아니라고 임금기금설에 대해 비판했다. 부자에 대한 과세에서 보듯이 사회적 부를 자본가와 노동자가 어떻게 배분하냐는 경제논리보다는 계급투쟁에 의해 좌우된다.

자본가와 노동자가 가져가는 비율이 변하지 않는다?

또한 개별 기업이 자유경쟁시장에 놓여 있을 때 자신의 노동자의 임금을 올려도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격을 올리는 대신 자신의 이윤을 줄일 수 있다. 

역시 마르크스 시대의 라살의 임금철칙설에 의하면 실질적인 평균임금은 노동자의 생계유지와 자손번식을 위해 관습적으로 필요로 하는 생활필수품의 양이다. 따라서 임금인상이 되면 장기적으로 멜더스의 인구론에 따라 노동자의 생활향상으로 인한 노동자인구증가→노동공급증가→임금하락으로 이어진다. 

마르크스는 라살을 비판하는 『고타강령비판』에서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사회적 부, 즉 실질적인 평균임금이 최저생계비에서 벗아날 수밖에 없다는 라살의 주장이 임금기금설의 아류로 취급했다. 라살이 주장하듯이 관습적으로 필요로 하는 생활필수품의 양은 노동계급의 투쟁 등으로 인해 노동자의 지위가 향상될 때 오히려 상승한다. 

발전된 자본주의국가에서 장기적으로 보면 노동자의 생활수준이 향상됐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더구나 선진국에서 보듯이 오늘날 임금인상이 된다고 출산율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므로 맬더스의 인구론을 기계적으로 적용할 수 없다. 

투쟁과 협상에 의해 노동자의 실질임금이 오를 수 있다.

1970년대 이후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이 높아지고 실질임금이 꾸준하게 증가하고 있으며 이는 산업화 이후에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실질임금이 오르고 있다. 즉 실질임금이 고정돼 있다는 임금기금설이나 임금철칙설은 현실과 다르다. 


임금인상과 물가인상은 필연적인 관계가 없다. 임금이 오른다고 물가가 같이 오르지 않는다. 심지어 2002년과 2004년 사이에 임금인상율이 하락하여 실질임금이 줄어들어도 물가는 오히려 올랐다. 

물가가 오르면 임금을 올려야 하지만 임금이 올라도 물가는 오르지 않는다. 

한국은행 자료에 의하면 임금이 먼저 오를 때 물가가 오르는 비율이 생각보다 낮고 일정하지 않다. 특히 물가반영율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반면 물가가 먼저 오늘 때 임금에 대한 반영율은 높다. 이는 노동자의 임금인상 요구가 정당하고 지금까지 나름 잘 대응해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임금이 올라도 물가가 오르지 않는 것은 노동자의 계급투쟁이 성공한 경우 이외에도 경제성장기에 생산성이 오르면 자본가도 이윤 감소 없이 임금인상을 받아들인다. 농업부문에서 공업부문으로 다시 고부가가치나 서비스 산업으로 산업구조가 발전하면 노동자나 자본가나 다 소득과 이윤이 늘어난다. 

하나의 산업에서 기술발전이나 기타 비용절약으로 생산성이 높아질 수 있다. 경제위기를 탓하며 고임금노동자의 임금인상을 저지하거나 미조직 비정규노동자에 대한 노동착취를 강화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임금기금설과 달리 실질 임금이 오른다고 고용이 줄어들지 않는다. 최저임금인상율과 고용율은 상관이 없다. 한계에 몰린 일부 자영업자의 경우 이외에 임금이 오른다고 고용을 감축하지 않는다. 물론 양적 성장이 한계에 도달하면 구조조정과 같이 인력감축이 따라 올 수도 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