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우전쟁 쟁점, 종전이냐, 휴전이냐

유럽연합 가입은 가능성 높지만, 나토 가입은 어렵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시작은 유럽연합과 나토에 편입하려는 서부의 주민과 이에 반대하는 러시아계 동부의 주민이 대립하는 과정에서 친러 중앙정부가 친서방 쿠데타에 의해 전복되면서 발생한 내전이다.


유럽연합이나 나토 가입은 회원들의 만장일치가 필요하다. 먼저 우크라이나의 유럽연합 가입에 대해 러시아가 불만을 가지고 있지만 투표권이 없고 가입 반대를 종전의 전제조건으로 요구하지도 않는다. 


친러 성향의 헝가리는 명시적으로 반대하고 있으며, 슬로바키아 역시 부정적인 기류이다. 폴란드는 찬성에서 반대로 돌아섰다. 2025년 8월 취임한 폴란드 나브로츠키 대통령은 2차 세계대전 중 우크라이나반란군(UPA)의 폴란드 볼히니아 학살과 그 학살을 주도한 스테판 반데라에 대한 영웅화 즉 기억의 전쟁을 이유로 유럽연합(EU) 및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에 반대해왔다.


반대하는 나라들이 찬성으로 돌아선다고 해도 경제적 통합에 따른 이해관계의 충돌 때문에 터키의 사례에서 보듯이 최종적인 가입까진 수십 년이 걸릴 수 있다.



우크라이나에 서방군대 주둔하면 러시아 동부점령 확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러시아가 강경하게 반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가 최근 가입의사를 철회하고 대신 나토에 버금가는 집단안전보장을 유럽과 미국이 보증하는 것을 요구하고 있다. 러시아는 어느 형태이든 미국과 유럽의 군대가 우크라이나에 상주하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 


현재 나토 중에서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에스토니아, 리투니아, 슬로바키아 등이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로 있지만 모두 북방의 변경이거나 모스크바와 멀리 떨어져 있다. 반면 우크라이나는 모스크바와 가까운 편이므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서방의 군대가 상주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할 때 러시아 인근의 나토가입국들이 확전을 두려워 하고 있다. 이미 반대의사를 보이고 있는 헝거리, 슬로바키아, 폴란드 이외에도 반대 국가들이 나타날 수 있다. 만약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거나 서방의 군대가 일방적으로 우크라이나에 주둔한다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체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동부를 완전히 점령해 중간지대를 만들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 점령당한 동부지역 회복 포기


우크라이나는 지금까지 크림반도와 동부지역을 반환받을 때까지 전쟁을 멈추지 않겠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미국과 러시아가 아직 우크라이나에 속한 돈바스(도네츠크·루한스크주) 일부지역까지 러시아에 넘기는 것으로 협상을 하자 입장을 바꿨다. 미러 협상안은 우크라이나가 돈바스 나머지 지역을 포기하고 그에 상응해서 러시아가 점령한 다른 지역을 돌려받는다는 것이다. 


현재 젤렌스키 대통령까지 이미 빼앗긴 지역의 회복을 요구하지 않고 현재 상태의 전선을 동결하자는 입장이다. 12월 15일 키이우국제사회학연구소(KIIS)가 실시한 여론조사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72%는 현재 상태로 전선을 동결하고 일부를 양보하는 형태의 협상에는 동의할 의사가 있다. 다만 응답자의 75%가 안전보장이 없는 상황에서는 영토 포기나 군병력 제한 등이 포함된 종전계획을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고 답했다.


이 조사에서 미국의 지원에 대해서는 21%만, 나토의 지원에 대해서는 34%만 신뢰한다고 답해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절박한 상황을 알 수 있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미국과 나토의 지원이 없으면 단독으로 전쟁을 수행할 수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 여론조사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전쟁의지가 갈수록 약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종전 혹은 휴전의 주도권은 러시아에


러시아의 원래 목표는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거나 서방군대를 끌어들이면 최소한 동부 돈바스 전체를 점령하겠다는 것이다. 즉 러시아는 주민들의 저항과 나토와의 전면전 우려 때문에 서부를 포함한 우크라이나 전체를 점령할 의사가 없다. 


현재 러시아는 돈바스의 80%를 점령하고 있다. 러시아는 종전이나 휴전 없더라도 나머지 20%를 서방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한다고 해도 길어야 수년 내 점령할 수 있다고 본다. 미국은 서방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더라도 어차피 러시아가 돈바스 전체를 점령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차라리 돈바스를 내주고 전쟁을 끝내려고 한다. 


미국은 우크라이나가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지원을 중단하거나 축소하여 돈바스 전체가 러시아에 점령되는 시간을 줄이고자 할 것이다. 러시아는 돈바스 전체를 점령하면 일방적으로 휴전을 선언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서방의 지원이 부족한 상태에서 우크라이나가 제대로 반격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전투는 사실상 의미 없는 수준에서 소모전으로 진행되다가 사실상 휴전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른바 한국식 분단이고 추후에 쌍방이 중간지대를 설정할 수 있다.


즉 종전협상이 진척이 없으면 러시아가 돈바스 전체를 점령한 후 사실상 휴전상태에 돌입하는 것이다. 현재 종전의 쟁점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비나토식 집단안전보장과 우크라이나에 남아 있는 돈바스 일부 지역에 대한 처리이다. 우크라이나가 돈바스 나머지 지역을 내준다면 러시아가 서방의 군대가 상주하지 않는 집단안전보장을 받아들일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이는 젤렌스키의 정치적 파멸을 의미한다. 


결론적으로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군대를 주둔하냐, 우크라이나가 돈바스 일부를 양보하느냐에 따라 종전과 휴전으로 갈린다. 어차피 러시아가 돈바스 전체 점령하는 것은 시간문제이므로 주도권은 러시아가 가지고 있다.

원풍모방 박순희, 풀은 밟혀도 다시 일어선다

김장민(정치경제학연구소 프닉스)

 

노동조합은 해산됐지만 원풍동지회는 지금도 굳건

 지난 12월 13일 토요일 오전 세계노동운동사연구회(이사장 김명환 전 민주노총 위원장)는 1970년대 원풍모방 여성노동자들의 투쟁과 삶을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영등포구 도림동 ‘원풍노동자의 집’에서 열린 이번 좌담은 “노동기본권 봉쇄하의 1970년대, 민주노조운동의 발자취를 찾아서”라는 주제로 세계노동운동사연구회의 한국노동운동사 세미나팀이 주관했다.

 좌담은 김명환 이사장의 사회로 진행됐으며, 원풍모방노동조합에서 주도적 역할을 한 박순희 민주노총 지도위원 등 원풍모방동지회 회원들이 참석하여 유신시절과 전두환 시절의 생사를 건 민주노조 건설과 사수 투쟁의 생생한 사연들을 들려주었다.

 원풍모방동지회는 아직도 매년 조합원총회를 하고 있으며 보통 120명 정도 참석한다고 한다. 동지들의 우애는 지금도 굳건해 자녀들끼리도 모임을 가질 정도이고 동지들의 자녀들이 서로 결혼한 사례도 있다고 한다. 원픙모방노동조합이 해산된 이후에 조합원들이 적립한 투쟁기금을 다시 원풍모방동지회에 출자하여 원풍노동자의 집이 자리잡은 연립주택을 1984년 구입해 현재까지 사무실로 쓰고 있다.


 소모임 조직력과 사회단체와의 연대를 통해 민주노조 건설

 이날 양승화 원풍동지회 초대회장이 박순희 지도위원이 원풍모방에 입사하기 전의 민주노조 건설에 대해 구술했다. 양승화 전 초대회장은 15살의 나이를 속이고 원풍모방에 입사했다.

 1974년 원풍그룹에 인수된 한국모방은 1953년 설립됐으나 노조민주화투쟁이 발생한 1972년까지 한국노총 소속의 어용노조가 사측의 노동자 착취에 협조해왔다. 1970년대 가난한 집안의 여성들은 대부분 초등학교나 중학교만 졸업하고 생계를 위하여 혹은 오빠나 남동생들의 학비를 지원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와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당시 원풍모방은 최대 2천여 명의 직원을 거느린 대기업이었으며, 기숙사에서 숙식을 제공하는 등 상대적으로 대우가 좋은 편이었다. 많은 미성년 여성들이 다른 사람의 주민등록증으로 나이를 속여 입사하기도 했는데, 당시 가장 막내는 14살이었다고 한다. 이 막내는 시골에서 밥을 지을 쌀이 없어 쌀처럼 생긴 아카시아 꽃을 쌀 위에 얹히고 밥을 졌는데, 막상 밥을 하니 아카시아 꽃이 다 시들어 펑펑 울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공장에서 자기만 배부르게 먹어 항상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한국모방은 모든 직공이 노동조합에 자동적으로 가입하는 유니온샵을 적용하고 있어 노동조합이 직공들에 대한 장악력이 높았다. 어용노조에 대항하는 민주파는 20여개의 다양한 소모임 활동을 통해 조합원들에게 민주노조의 필요성을 일깨웠다. 1970년부터 가톨릭신자 전체모임인 성우회가 조직되고 1971년부터 영등포 도시산업선교회 등과 교류하면서 소모임은 확대되고 조합원의 의식도 높아졌다.

 1970년부터 퇴직금을 받지 못한 노동자들이 각종 민원을 제기하여 한국모방이 사회문제로 대두됐으며, 가톨릭노동청년회 등 사회단체들이 노동자들을 지원하는 한편 어용노조를 규탄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노동조합의 대의원 선거와 위원장 선거를 앞두고 사측이 미는 어용노조와 민주파의 대결이 심화됐다. 1972년 8월 17일 사측의 협박과 어용노조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민주파의 지동진 조합원이 지부장(노조위원장)으로 선출됐다.

하지만 사측은 다음날 14명을 해고하고 지동진 지부장을 구타해 이에 분노한 조합원 5백여 명은 8월 22일 명동성당에 들어가 농성했다. 9월 4일 노조간부 14명이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연행됐으나 경찰은 교선부장 방용석과 총무부장 정상범 2명만 구속하고 지부장 등 나머지 12명은 석방했다. 이후 조합원들은 파업보다 더 강력한 태업투쟁을 전개했다. 생산량이 50% 이하로 떨어졌지만 파업이 아니라 대응하기 어려웠던 사측은 임금인상과 단체협약체결이라는 노조의 요구를 수용했다.

 

 방용석과 박순희가 민주노조의 모범을 만들어

 1973년 한국모방은 부도위기에 처했으나 노동조합이 적극 나서 영업도 하고 경영에도 참여하면서 회사를 되살렸다. 구속됐다가 석방된 방용석 전 노동부장관이 1974년과 1975년 연이어 노조위원장에 당선됐고 한국모방이 원풍모방으로 이름을 바꾼 이후에도 노조는 더욱 강력해졌다. 단체협약에 따라 조합원 해고는 노사합의에 의하도록 했으며, 구속된 조합원도 석방 후에는 원직에 복직됐다.

 1947년생인 박순희 지도위원은 원풍모방에 민주노조가 정립된 이후 1974년 직포기능공 시험을 통해 입사했다. 박순희 지도위원의 집안은 대대로 가톨릭 집안이었고 선친은 당시 철도직 공무원으로 노동조합의 간부를 지냈다. 이런 배경으로 박순희 지도위원은 사회문제에 일찍 눈을 떠 1966년부터 가톨릭노동청년회에서 노동법을 공부하면서 남부연합회 회장을 지냈다.

 박순희 지도위원은 18살부터 학성모직, 대한모방에 근무했다. 1970년 전태일 열사의 분신을 접하고 추모미사에서 열사의 어머니와 친구들을 만난 후 수녀가 되겠다는 결심을 했다. 하지만 원풍모방에서 노동운동을 하라는 가톨릭노동청년회 측 신부님의 권유를 받아들였다. 이후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등에서 교육을 받았고 구로공단에서 노동운동을 준비하는 공동체에 결합했다.

 박순희 지도위원은 입사 전에 이미 지동진 지부장으로부터 노동운동을 제안받았으며, 입사 1년 만에 1975년 방용석 지부장과 함께 부지부장에 당선됐다. 노조는 조합원교육, 소모임활동, 탈춤공연 등을 통해 조직력을 강화하고 다른 노조의 투쟁을 지원하기도 했다. 특히 탈춤반은 일제시대 조선방직의 투쟁사례를 연구하여 각본을 써 전국에 공연하러 다녔다. 3월 1일 노동절에는 조합원들이 소모임 특성에 맞게 각종 공연을 했다.

 1979년 10.26사태로 비상계엄이 발령된 후 계엄사와 경찰, 사측이 합동으로 ‘정화조치’라는 명분으로 민주노조를 탄압했다.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 확대 하루 전날엔 노조지도부의 조합원 자격을 박탈한 한국노총울 규탄하고 정한주 노동부장관의 퇴진을 요구하는 궐기대회를 열기도 했다. 다음날 비상계엄이 선포됐고 노조에 대한 탄압이 더욱 노골화됐다. 그해 10월 방 지부장과 김 부지부장이 해고되고 노조 간부 30여 명이 체포됐다. 하지만 노조는 비상계엄과 탄압 중에서 대의원대회를 열어 노조집행부를 다시 선출했다.

 방용석 지부장과 박순희 부지부장은 원주 가톨릭시설에 은신하였다가 지학순 주교의 중재로 자진출두했다. 두 사람은 남산의 중앙정보부에 끌려갔고 박순희 부지부장은 16일 만에 석방됐다. 두 사람은 자유총연맹 과장, 보건직 공무원을 제안받았지만 노조로 다시 돌아왔다. 노조집행부 중 남성 4명은 삼청교육대에 끌려갔다.

 

 전두환 정권, 광주민주화운동 성금을 핑계로 노조 해체

 경상도 군인이 전라도 사람을 학살했다는 광주민주화운동 소문이 노조원들에게도 퍼지자, 경상도 조합원과 전라도 조합원 사이에 다툼이 발생했다. 이에 노조는 감시를 피해 핵심간부들을 상대로 외부인사를 초빙해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에 대해 교육했다. 그리고 조합원들이 모은 성금 470만원을 천주교 광주교구를 통해 광주시민에게 전달했다. 서울시는 이를 문제 삼아 조합의 재정에 대해 감사를 했지만 회계가 투명해 더 이상 트집을 잡지 못했다.

 전두환 군부정권은 1982년 이른바 9.27사태를 통해 원풍모방의 민주노조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군부정권을 등에 업은 사측은 1981년에도 조합원 2명을 해고하는 등 노조를 압박했다. 당시 공안기관들은 대책회의를 통해 원풍모방 노조를 해체하는 세부계획을 세우고 사측을 앞세워 실행했다.

 1982년 9뤟 27일 노동조합 모임 중에 폭력배가 섞여 있는 구사대들이 노조 사무실에 난입해 조합 간부들을 폭행하고 사직과 노조활동 포기를 강요하며 감금했다. 회사 사무실엔 사측과 안기부, 경찰이 대기하고 있었고 전경버스가 회사를 둘러싸고 있었다. 조합원의 연행모습을 촬영하기 위해 방송국 카메라들도 동원됐다. 경찰은 노사문제라며 구사대의 폭력을 방치했고 노조는 파업과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조합원들은 드럼통으로 대소변을 해결하면서 버텼고 사측과 공안기관은 가족들까지 동원하여 조합원에게 농성을 풀 것을 회유했다.

 노조의 강력한 투쟁에 구사대는 구타당한 노조위원장을 난지도 쓰레기장에 버렸으며, 경찰은 4명이 한조가 돼 노조원들을 한명씩 연행했다. 마침 추석명절이라서 경찰은 가족들의 보증을 받고 조합원들을 석방시켰다. 하지만 조합원들이 경찰의 출두요구에 불응하자, 지명수배를 하고 회사 인근에서 사측과 경찰들이 순찰을 돌면서 조합원들을 체포했다. 조합원들은 직장폐쇄에 맞서 회사진입투쟁을 감행했고 결국 200여 명이 연행됐고 조합원 559명이 해고되고 8명의 지도부들은 11월 12일 구속됐다.

 

 노동자가 꽃피는 삶을 쟁취하자

 해고된 조합원들은 결국 원풍모방으로 돌아가지 못했고 블랙리스트에 올라 다른 기업에 취직하기도 힘들었다. 조합원들의 신분이 드러난 상태에서 이력서에 원풍모방을 안 쓰면 허위기재로 입사할 수 없었고, 쓴다면 당연히 뽑지 않았다. 결국 해고자들은 원풍모방의 경력을 숨기고 생계를 위해 전전하거나 공안기관과 가족의 압력에 마지못해 결혼으로 도피하기도 했다. 방용석 지부장, 박순희 부지부장 등 노조간부들 중 상당수는 노동운동, 환경운동, 여성운동의 길을 가기도 했다.

 민주화 이후 176명의 조합원들은 재판을 통해 민주화운동을 인정받았고 약간의 생활지원금도 받았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원풍모방 조합원들에 가해진 국가폭력을 인정했고 그 이후 일부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했다.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가 강제로 해고한 21명과 불법구금을 당한 조합원들은 5.18특별법에 따라 피해를 인정받았다. 실형을 받고 복역한 7명의 조합원들은 영장 없는 불법구금으로 인한 기소를 이유로 재심신청을 했으며, 재심개시결정을 받았다.

 이날 간담을 마치면서 박순희 민주노총 지도위원은 군부독재 아래 자신들의 험난한 투쟁을 뒤돌아면서 아직도 1970년대 원풍모방의 노사관계보다 더 열악한 사업장이 있다고 탄식했다. 박 지도위원은 노동인권이 보장받지 못하는 21세기에도 여전히 “노동자가 꽃피는 삶을 쟁취하자”라는 구호와 열정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참고문헌

 원풍모방 해고노동자 복직투쟁위원회. 1988. 『민주노조10년 :원풍모방 노동조합활동과 투쟁』 풀빛.

 원풍동지회. 2019. 『풀은 밟혀도 다시 일어선다 국가폭력에 맞선 원풍 노동자 이야기』 학민사.

 황선금(원풍동지회). 2016. 『공장이 내게 말한 것들 - 민주노조의 전설 원풍노조 노동자들의 구술 생애사』 실천문학사.

현재 조선이 미국과 협상에 나설 이유가 없다.

핵공격과 고립을 피하려고 조선이 핵개발을 완료


미국은 한국전쟁 당시 액아더 사령관의 제안에 따라 조선과 중국 국경에 핵폭탄을 투하하는 것을 검토하는 등 조선에 대해 핵공격을 위협했다. 이에 조선은 한국전쟁 직후 인민군 산하에 핵무기 연구시설을 설치했다.


1950년대 후반 미국은 조선의 주요 도시와 시설에 핵 공격을 감행하는 전쟁계획을 수립했으며, 한국에 전술핵을 배치했다. 이에 조선은 김일성 주석의 지시로 1970년대 핵무기 개발에 착수했다.


소련은 조선의 핵무기 개발을 저지하고자 핵의 평화적 이용과 연구를 조건으로 영변원자로 건설을 지원했다. 이 시기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각국이 핵무기를 개발하려고 했기 때문에 핵보유국들은 이를 저지하고자 했다.


소련 역시 핵무기 확산을 억제하고자 조선에게 시범적으로 핵확산금지조약에 가입하도록 했다. 그런데 소련이 개방되면서 한국은 중소 등 공산권과 수교를 맺었지만 미일 등 서방은 조선과 수교하기는커녕 조선을 고립하여 압살하는 정책을 강화했다.


중소 등 전통적인 우방에게 외면당한 조선은 경제적 군사적 난관을 극복하고자 핵무기 개발에 속도를 높였다. 조선은 소련 붕괴 이후 무기급 플루토늄이 추출하면서 1993년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을 거부하고 핵확산금지조약을 탈퇴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미국이 북의 핵무기 개발 중단에 대한 보상을 약속하면서 제네바협상이 진행됐고 조선은 핵확산금지조약의 탈퇴를 유보했다. 1994년 제네바협상이 타결됐지만 공화당이 지배하는 미국 하원은 제네바협상에 따른 미국의 재정적 부담을 거부했고, 조선은 다시 핵개발을 재개했다.


클린턴 2기 마지막 해에 북미는 다시 어렵게 조미코뮤니케를 통해 핵협상에 합의했지만 이듬해 공화당 정권이 들어서면서 이행을 거부했다. 부시정권은 조선이 제네바합의를 위반했다고 주장하는 한편, 9.11테러 이후 조선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면서 대화를 거부했다. 


이에 조선은 2003년 핵확산금지조약을 완전히 탈퇴하고 핵무기는 물론 장거리미사일 개발에 속도를 올렸다. 이에 2004년 6자회담이 시작돼 2005년 어렵게 9.19합의안이 발표됐으나 미국이 조선의 자금을 동결하자 합의는 물거품이 됐다.


조선이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으로 대응하자, 미국은 조선의 자금을 풀어주고 다시 6자회담을 재개했지만 최종적인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다. 2008년 들어선 오바마 정부는 북을 무시하는 전략적 인내 정책을 채택했다. 조선은 2016년 오바마 정부가 끝날 때까지 중러가 포함된 유엔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을 사실상 완료했다.



미국이 조선의 핵개발을 막지 못한 이유


미국은 조선과 외교적 합의를 통해 핵개발을 막을 수 있었다. 문제는 조선의 요구대로 북미간의 수교가 되고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된다면 주한미군을 철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한미군은 중러를 겨냥한 전략적 의미가 강하기 때문에 북과의 적대적 관계를 핑계로 계속 한국에 주둔해야 한다. 따라서 미국은 조선과 전략적 합의를 할 수 없었다.


미국은 핵시설에 대한 공격을 통해 조선의 핵개발을 막을 수 있는 카드를 쓸 수 없었다. 냉전시대에는 아직 조선의 핵개발의 수준이 낮았고, 무엇보다 조선을 공격할 때 조선의 동맹인 중소의 반응을 무시할 수 없었다.


냉전붕괴 이후 중소를 의식할 필요가 없었지만 이때 조선은 서울 이북의 주한미군과 한국인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장사정포를 대량으로 배치했다. 1993년 클린턴은 조선의 핵시설을 무력화하는 족집게 공습을 고려했지만 장사정포로 인한 한미의 피해 때문에 실행할 수 없었다.


2000년대에 들어 북이 괌과 일본에 도달할 수 있는 각종 미사일을 배치하고, 2010년 이후 미국 본토에 대한 공격능력을 보유하면서 무력방안은 더욱 힘들어졌다. 현재 전략핵, 전술핵을 각종 미사일을 통해 미국 본토와 하와이, 괌, 일본, 한국 등을 조선이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이 완비해 무력방안은 검토대상도 아니다.



조선과 핵협상에 목을 매는 미국


조선이 본토에 대한 전략핵무기 공격 능력을 갖게 되자, 북핵은 한반도나 동북아 문제가 아니라 미국 본토의 생존에 관한 문제로 대두됐다. 핵전쟁의 특성상 조선의 핵무기가 미국의 워싱턴이나 전략사령부에 한반이라도 타격을 한다면 전 세계가 공멸하는 미중러의 핵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


미국이라는 호랑이가 발톱이나 이빨에 상처를 입는다면 평상시에 호랑이에게 도전하지 못했던 곰, 하이에나, 표범이 호랑이를 노리기 때문이다. 즉 조선의 핵무기가 미국의 핵심에 명중되는 순간 미국은 자신의 약점을 노리는 중러에게 대규모 핵공격을 고려해야 하고, 중러 역시 그런 상황을 고려하여 대규모 반격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미국의 최우선 과제는 조선과 핵전쟁 가능성을 없애는 것이다. 또한 더욱 위험한 상황에 가지 않도록 조선의 핵무장을 현재 수준에서 동결하는 것이다. 결국 미국의 전문가와 정책결정가들은 조선의 비핵화는 먼 장래의 일이고 당장은 핵군비통제협상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한국이나 일본은 미국이 조선과 핵군축협상을 하면 조선의 핵무장을 사실상 인정하는 것이라고 반대하고 있다. 현재 미국은 장기적으로 조선의 비핵화, 단기적으로 핵군축을 조선과 협상하려고 한다. 반면 조선은 핵군축만 협상하고 비핵화는 장기적인 의제로 상정하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장단기 구별 없이 바로 비핵화협상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 입장에선 조선과 핵협상을 하는 것은 한반도나 동북아 문제가 아니라 미국 안보문제이므로 한국이나 일본의 입장을 크게 고려할 수 없다. 



현재 조선은 북중러연대에 만족하고 있어 북미회담에 소극적이다.


과거 중러는 조선이 망하지 않을 정도로 미국과 함께 조선을 압박해왔다. 근데 미국의 대중 강경책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중러는 조선과 강력한 연대를 맺었다. 조선은 중러와의 협력으로 국제제재를 무력화시키고 경제적 난관을 극복했으며, 핵잠수함 등 핵무기 고도화에 큰 도움을 받고 있다.


반면 싱가포르 회담이나 하노이 회담에서 보듯이 미국과 협상하는 것은 조선의 위상을 높이는 선전효과를 제외한다면 실익이 없다. 트럼프가 조선과 전략적 화해를 할 처지도 안 되고 설사 그런 합의를 한다고 해도 미국의 의회와 차기 정부에 의해 원점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결국 조선 입장에선 핵무장을 완성해 미국과 힘의 균형을 맞추는 무장평화가 불가피하다고 본다. 더구나 현재 중러가 미국과 대치하는 상황에서 조선이 미국과 화해무드를 조성한다면 이는 중러의 반발을 불러일으켜 어렵게 성사시킨 중러와의 협력이 수포로 돌아간다.


그래서 조선은 사진찍기용에 불과한 북미회담 대신 북중러연대에 주력하고 있다. 물론 이는 일시적인 현상이다. 미국이 중국과의 분쟁을 조정해 미중분업을 일정부분 수용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이 마무리되면 중러는 다시 조선 대신 미국을 선택할 것이다. 그 즈음에 조선도 중러와의 협력에 더 이상 기대를 걸지 않고 미국과 대화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저지투쟁처럼 관세협상을 철회시키자

관세협상이 아니라 백화점식 미국종속 합의

 

관세협상 팩트시트는 무역, 와환, 국방, 외교 분야를 포괄한다. 거의 한미합병 수준으로 한국이 미국에 더욱 종속되는 내용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협상을 잘했다고 하지만 트럼프가 200% 요구해서 100% 얻은 것이다. 한국에게 총 쏘겠다고 협박하다가 몽둥이로 패 것이나 다름없다.

 

트럼프와 그 극우세력들이 이재명 대통령이 부정선거로 당선됐다, 좌익이다, 친중이다, 종교탄압을 한다, 미군 기지를 압수수색했다고 맹비난하면서 기를 꺾고 슬며시 이재명 대통령의 정통성을 인정하면서 백지수표를 받아 낸 셈이다.

 

국방분야를 보면 미국의 지원 아래 한국군의 연합방위 능력을 향상한다는 문구에 포괄적인 대미종속이 포함된다. 북의 핵무기 위협을 핑계로 미국의 한국에 확장억지력을 제공하는 대신 한국군을 사실상 미군에 편입시키는 것이다.

 

확장억지력은 핵전력, 전략무기, 재래식 군사력으로 구성된다. 한반도에서 핵무기 운영은 미국이 독점하고, 해군과 공군을 중심으로 하는 전략무기는 한미가 통합운영하고, 사상자가 많이 생기는 육군 중심의 지상전은 한국이 주도한다는 의미이다. 즉 한국군은 한반도와 그 인근에서 발생하는 전쟁에서 최전방을 담당하는 총알받이가 되는 것이다.

 

 

“미국의 지원 아래 한국의 연합방위능력 향상”의 흑막

 

미군의 동북아전략은 한미동맹의 현대화를 포괄하고 있으며, 우리는 이를 좋게 전시작전권 환수라고 부른다. 전시작전권 환수에는 미국이 파 놓은 3개의 함정이 있다.

 

첫째 전시작전권 환수는 원래 일정 시기에 돌려받는 것이었지만 미국의 요구로 미국이 정한 3가지 조건을 한국군이 충족할 때로 무기한 연기됐다. 1조건은 한국군의 작전지휘능력인데 주로 한미연합 지상군에 대한 전쟁수행능력이다.

 

한국군의 작전시스템이 미군과 유사시 통합되도록 하고 미국의 최첨단 무기를 구입하여 전력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현재 3단계 중 2단계를 실질적으로 완료했다. 북진을 포함한 한반도 전체에 대한 전쟁수행능력을 미국이 심사하는 것으로서 이 심사에 합격하려면 대규모 한미군사훈련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2조건은 주로 북한의 미사일에 대한 탐지, 요격, 보복 능력을 한국군이 구비하는 것이다. 탐지에서 미군의 미사일방어망에 한국의 미사일방어망이 흡수되며 군사용 인공위성 등 엄청난 군비를 투하해야 한다.

 

제3조건은 중국과 러시아 등 동북아에서 한국군이 전시작전권을 환수받을 수 있을 정도로 국제안보 상황이 안정되는 것이다. 대만 문제에서 보듯이 이 조건은 한국군이 노력해도 달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미국의 자의에 의해 영원히 전시작전권을 돌려주지 않을 수 있다.

 

둘째 원래 한국군이 전시작전권을 돌려받으면 한미연합사령부를 폐지하고 한국군은 주한미군과 별도의 사령부를 구성하는 병렬형이었지만 박근혜 때 한미연합사령부를 미래사령부로 전환하는 통합형으로 수정했다. 한미연합사령부를 육군 중심의 지상전사령부로 전환하고 주한미군은 소수 부대만 남기고 부사령관을 맡는 방식이다. 즉 피해가 많은 지상전은 한국군에게 맡긴다는 것이다.

 

셋째 한국이 전시작전권을 환수해도 나아가 한미연합사령부를 폐지해도 미국은 유엔사령부를 통해 전시작전권을 행사하게 된다. 미군은 유엔군의 모자를 씌고 한국의 군사주권을 지배하고 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에 따르면 통일부 장관과 국가안보실 제1차장이 DMZ에 가려다 유엔사가 불허해 못갔다고 한다. 대한민국이 주권국가인지 의심스럽다. 미국한테 전시작전권 환수받아도 그건 한미관계이고 미국은 유엔사를 통해 여전히 작전권을 행사할 것이다.

 

주한미군 한미연합사 유엔사 이렇게 3중으로 작전권을 제한당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임기 내 특정 시점에 작전권을 모두 환수하는 특별법을 만들어 공약을 지켜야 한다.

미국은 이미 전시작전권 환수에 대비하여 유엔사에 독일군을 참여시켰고 일본 자위대 참여도 추진 중이다. 미국은 유엔사를 한반도 뿐만 아니라 대만전쟁 등 동북아의 분쟁에 대비하는 아시아식 나토로 확장하려고 한다.

 

결론적으로 이번 관세협상에 포함된 국방분야는 겉으론 전시작전권 반환과 관련 있어 보이지만 실상은 미국이 구상하는 한미동맹의 현대화 프로세스의 한 부분이다.

 

 

내년 하반기까지 지연시킨 후 국민투쟁으로 철회시키자

 

한국의 전 분야를 미국에 종속시키는 이번 관세협상은 양해각서로 법적 효력이 없다. 국회에서 관련 법을 만들거나 협상결과를 비준한다면 우리 스스로 법적 효력을 부여하는 결과가 된다.

 

한국은 관련 법률 제정에 반대하거나, 국회에서 토론을 통해 비준을 거부하거나 국민투표 회부 운동을 하는 등 최대한 관세협상 이행을 지연시켜야 한다. 우리는 이미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국민항쟁으로 무산시킨 승리를 경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협상으로 인한 물가인상, 연방군을 동원한 폭력적인 이민자 단속, 성추문 폭로 등으로 임기 초반 최악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내년 11월 중간선거에서 하원은 민주당이 과반수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 대법원에서 관세협상이 취소되는 등 악재가 겹치면 트럼프는 하원에서 탄핵당하는 등 정치적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지금은 트럼프의 기세가 강하지만 내년 하반기 트럼프의 기세가 약해지면 전 국민적 저항으로 이재명 정권을 압박할 수 있다. 즉 관세협상을 철회하거나 재협상할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한국민중,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을 규탄하는 연대에 동참해야

약소국을 상대로 전면전을 펼치려는 트럼프

세계경찰을 자임하는 세계최강 미군이 또다시 약소국을 침략하려고 준비를 끝냈다. 미군은 남미의 베네수엘라를 공격하려고 마치 강대국과 전면전을 준비하듯 엄청난 군사력을 베네수엘라 인근에 배치했다.

핵추진 항공모함과 전술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핵추진 잠수함은 물론 해병대 상륙부대 등 전체 2~3만 명의 병력을 배치했다. 항공모함에 있는 전폭기도 모자라 푸에르토리코의 폐쇄된 공군기지를 복원하여 전폭기를 추가로 배치했다. 

미국이 베네수엘라는 침공하려는 핑계는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대통령이 마약상들을 보호하고 있으며, 부정선거로 당선된 독재자이며, 러시아와 중국의 조종을 받는 좌익정권이라는 것이다. 

미국은 이미 베네수엘라 인근 해역에서 어선 등을 마약운반선이라고 규정하고 공격하여 80명 이상을 학살했다. 최근에는 미국의 국방장관의 명령에 따라 생존자까지 확인 사살한 것이 드러나 언론과 의회의 비난을 받고 있다.


온갖 국내 악재를 약소국 침공으로 모면하려는 트럼프

사실 팔레스타인 전쟁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 세계분쟁을 해결하여 노벨평화상을 노리는 트럼프가 약소국을 상대로 학살에 가까운 전쟁을 하겠다는 배경이 궁금할 수 있다. 히틀러처럼 국내 문제에 주력하다 잘 안 풀리면 파쇼화, 제국주의화 하는 것이 국수주의 정권의 속성이다.

트럼프는 현재 여러 악재가 겹쳐 국내문제에서 고전 중이다. 관세협상으로 미국이 부자가 된다고 했지만 수입업자가 관세를 부담하면서 미국의 소비자 물가가 급등하여 트럼프의 지지층인 저소득층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 대법원의 다수 의견은 트럼프의 관세부과가 헌법에 위반된다고 보고 있으며, 내년 상반기 판결이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불법이민자를 단속하겠다고 강압단속을 하는 것도 모자라 연방군대까지 도시에 파견하여 준전시상태를 조장하고 있다.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라서 멕시코계 시민을 중심으로 이민자들이 백인들과 연대하여 폭력적인 이민단속에 물리적으로 저항하면서 도심에서 무법상태를 야기하기도 했다. 

특히 민주당이 집권한 도시에 연방군을 집중적으로 배치해 일부러 혼란을 야기하는 등 이민단속을 내년 11월 중간선거용으로 활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아프가니스탄 출신 시민이 워싱턴에서 트럼프의 연방군 배치에 항의해 연방군 2명을 사상하는 일이 발생해 시민들이 이민단속에 의한 사회혼란을 우려하고 있다. 

이밖에 트럼프가 미성년자 성착취범죄에 연루된 것으로 의심되는 조직범죄에 대한 수사결과가 트럼프의 반대에도 의회결정에 따라 전격적으로 폭로됐다. 이런 악재들로 인해 트럼프의 지지율은 임기초반 사상 최악인 40% 이하로 추락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내년 하원선거 등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할 것으로 예견된다.


국내문제 전환하려는 미국의 침공은 역사적으로 반복

카터 대통령 시절에 이란의 미국 대사관에 억류돼 있는 미국 시민들을 구출하려고 출동한 특수부대 헬리콥터가 사막에서 충돌해 군인들이 몰살당했다. 이 사건으로 세계최강 미군의 자존심이 땅에 떨어졌다.

이 사건의 여파로 인해 카터 대통령은 보통 연임하는 관례를 깨고 재임 당선에 실패하고 레이건에게 대통령직을 내주었다. 레이건은 미군의 자존심을 회복하려고 1983년 중남미 소국 그레나다를 전면적으로 침공해 친미정권을 세웠다. 침공한 이유는 그레나다 정권이 소련, 중국, 쿠바, 조선의 지원을 받는 좌익정권이라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미국은 1989년 역시 중남미 소국 파나마를 침공해 대통령을 압송하고 친미정권을 세웠다. 침공 이유는 노리에가 대통령이 마약상을 보호하고 독재자라는 것이다. 남의 나라를 독재국가, 마약상 보호, 좌익이라고 규정하고 주권을 말살하려는 것은 이번 베네수엘라 사태와 동일하다.

 

미국의 침공은 베네수엘라 민중의 저항으로 실패, 국내외 여론도 악화

전문가와 언론들은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이 베네수엘라의 저항, 국내외 여론에 의해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먼저 미국의 해병대 등이 상륙하면 민병대 등 800여만 명의 베네수엘라 무장집단의 저항으로 미군의 사상자가 엄청날 것으로 예측된다. 트럼프가 정치적 위기를 불러올 이런 희생을 감수하고 상륙작전을 펼 가능성은 제로이다.

해군과 공군을 동원한 폭격으로 베네수엘라 민중들을 학살할 수 있지만 민중들이 마두로 대통령을 지지하는 한 폭격으로 베네수엘라 정권을 붕괴시킬 수 없다. 

영국과 호주 등 미국의 맹방들은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이 국제법 위반이라면서 정보제공 등 협력을 거부하고 있다. 미군의 베네수엘라 어선 폭침으로 의회가 트럼프 대통령의 전쟁수행권한을 더욱 통제하기로 했다. 9.11테러 이후 새로운 전쟁은 의회의 승인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트럼프는 베네수엘라 침공이 전쟁이 아니라 마약단속이라고 주장하지만 의회는 전쟁법 위반이라고 보고 있다. 트럼프가 침공을 감행하면 내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하원을 장악한다면 트럼프는 불법적인 관세 부과, 성추문, 도심의 군대 배치 등의 사유에 더해 전쟁법 위반으로 탄핵위기에 몰린다. 


미국의 지배를 받는 한국의 민중, 저항의 국제연대에 동참해야

미군에 의해 민족이 분단되고 결국 동족간의 전쟁을 치루고 여전히 미국의 군사적 지배를 받는 한국 민중의 입장에서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은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다. 미국의 강압적인 패권이 하루빨리 종식되도록 미국의 침략을 규탄해야 한다.

1930년 스페인에서 극우파쇼정권에 저항했던 국제연대조직, 국제여단과, 1960년대 남미에서 친미극우정권에 저항했던 체 게바라의 연대의 저항정신을 계승하여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을 저지하는 연대투쟁에 한국의 노동자 민중들이 나서야 한다.

국민의힘을 해체하는 확실한 방법이 있다.

국민의힘이 내란정당 책임을 피할 수 없다.


국민의힘이 배출한 대통령이 위헌적인 내란으로 유죄판결을 받게 된다. 위헌적인 계엄을 해제해야 하는 국회 업무를 총괄하는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 역시 기소된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계엄해제결의를 방해하려고 일부러 회의에 불참했다. 


한동훈은 계엄을 해제할 수 있는 국회의원이 아니었으므로 한동훈이 계엄해제를 노력했다는 사실은 국민의힘이 계엄해제를 방해한 책임을 면하게 하지 못한다. 


홍준표 전 국민의힘 대선주자에 따르면 국민의힘 당원에 통일교 신자 11만 명, 신천지 10만 명, 전광훈 집단 등 수십만 명의 특정집단들이 윤석열을 대선주자로 만들기 위해 집단입당으로 했다. 특정집단이 정당을 장악하는 것은 정당민주주의를 훼손하는 것이다. 


수사기관에서 특정집단의 당적과 그 수자를 파악하고 내부경선에서 이들이 미친 영향을 조사 중이다.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에서 보듯이 특정세력에 의한 당원민주주의 훼손은 정당해산사유이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 등 주요지도부는 계엄해제를 방해한 내란의 방조범이다. 헌법재판소에서 윤석열의 내란이 위헌으로 확정된 이후에도 내란을 옹호하고 윤석열을 비호하고 있다. 


국민의힘 지도부들은 내란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민주당 등 계엄해제에 참여한 정당들에 대해 의회독재로 계엄을 초래했다고 비난하면서 국민의힘이 아니라 이들 정당들이 해산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마디로 국민의힘은 현재까지도 내란을 비호하는 위헌적인 정당이다.



내란특검의 목표도 사실상 국민의힘 해체로 잡고 있다.


내란특검은 윤석열에 대한 유죄판결을 사실상 거의 완료한 상태이다. 추경호 원내대표에 대한 국회 구속동의안이 통과돼 법원이 구속영장을 기각하기 어려울 것이다. 


일단 추경호에 대한 영장이 집행돼 추경호가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되면 계엄해제결의에 참여하지 않은 국민의힘 의원들에 대한 소환수사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 대상은 추경호와 함께 계엄해제결의가 진행되는 국회 본관 내 원내대표실에 있던 국민의힘 의원들이다. 그 다음 추경호 등 계엄해제를 반대하려는 당 지도부의 치침에 따라 당사 등에 결집한 의원들이 수사대상이다. 



계엄해제결의에 참여하지 않은 국회의원들을 부작위에 의한 내란방조로 고소하는 국민운동을 전개하자!


지난 계엄은 선포문 자체에 국회봉쇄 등 문언상 위헌이 명백하다. 경찰의 국회봉쇄와 군인의 국회진입은 누구라도 알 수 있었다. 즉 국회의원은 계엄의 위헌성을 인식할 수 있었다. 


국회의원은 취임할 때 헌법수호의무를 선서한다. 계엄해제는 국회의원만 할수 있으므로 위헌적인 계엄을 해제하는 결의에 참여할 헌법적 의무가 있다. 국회의원은 공무원으로서 직무를 성실히 수행할 법적의무도 있다. 국회의원이 헌법적 의무 법적 의무를 수행하지 않아서 계엄해제가 지연되는 위헌적 불법적 상황이 일정기간 지속됐다.


회의장 건물인 국회본관 등 국회에 있으면서 해제결의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들, 국회출입을 시도하지 않은 의원들은 부작위에 의한 내란 방조범이다. 국회출입을 시도했지만 군경에 의해 저지된 의원들은 계엄을 해제하려고 헌법적 법적 의무를 시도했기 때문에 제외된다. 


내란의 피해자는 주권자인 국민이므로 국민들은 고발이 아니라 고소를 해야 한다. 촛불행동 등 이미 누군가 고소고발을 했지만 개인. 단체. 정당이 추가적으로 고소해 법원이 중형을 선거하도록 촉구해야 한다.



국민의힘이 사라진다해도 진보정치가 약하면 다시 보수 양당체제가 된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유죄판결로 의원직을 상실한다고 해도 재판은 2028년 총선 때까지 진행될 것이다. 현재의 대법원이 윤석열을 비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국민의힘은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다시 살아난다. 


국민의힘 의원들에 대한 유죄판결이 난 후 해산청원운동 등 국민의힘 해체 여론이 힘을 받는다. 민주당과 이재명 정부도 국민의힘을 헌법재판소에 해산청구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가 국민의힘을 해산한다면 계엄에 반대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와 그 세력들, 이준석 등 구 보수계 등이 새로운 보수정당을 만들어 양당체제를 복원할 것이다.


국민의힘이 사라지면 당연히 민주당 일당체제가 되니 국민들 입장에선 견제세력이 필요하다. 진보정치가 단결해서 힘이 있다면 국민의힘 해체를 보수양당제를 붕괴시키고 수구냉전세력을 괴멸시키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  또한 중도보수인 민주당을 견제하는 진보정당이 제2당이 될 수 있다.


우리 노동자와 농민, 시민과 청년학생들이 엄동의 광장에서 수구보수집단을 단죄했지만 진보정치가 제 역할을 못한다는 것은 이 시대의 비극이다.

관세협약인가 한미합병조약인가?

이번 관세협상은 수출입, 산업이전, 외환, 금융 등 경제전반을 물론이고 국방전략, 국방산업, 무기체제, 한국군 운용 등 군사주권 전반, 한일관계와 한중관계 등 주요 외교 분야에 있어 미국과 공동운명체를 선언한 것이다. 무엇보다 한미 간 공정하고 대등한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에 일방적으로 종속되는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첫째 말이 양해각서이지, 양국의 대통령이 구체적인 사항을 명시하고 그 실현방법과 시기까지 정해놓고 있어 사실상 조약이다. 관세협상의 외양만 갖추었을 뿐 실제로는 국민투표는 물론, 국회동의도 없이 한국의 군사적 경제적 외교적 주권을 미국에 넘겨주는 셈이다. 


둘째 한국국방이 미국국방에 종속되면서 군사주권을 더욱 상실하게 됐다. 한국은 미국의 지원 아래 연합재래식 방위를 주도하기로 했는데 이 의미는 한국이 영원히 전시작전권을 돌려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일단 한국이 돌려받는 작전권은 재래식 전력에 한정된다. 구체적으로 병력 손실이 최대화되는 육군 작전권만 돌려받는다는 의미이다. 


핵전력은 미국의 핵우산 아래 종속된다. 핵무기는 개발이 금지되고 핵잠수함은 조선 이외에도 중러견제용으로 미군 작전권에 편입된다. 미국의 최첨단 무기를 대량으로 구입하여 미군과 연합운용함으로써 최첨단 재래식 작전권도 미국의 통제를 받는다. 해군은 핵잠수함과 군함이 포함된 마스가 프로젝트로 미국 해군에 편입된다. 공군은 전략무기 이외에도 우주분야를 미국과 협의하기로 했다. 국방비 증액과 주한미군 운영비 부담 역시 한국의 국방이 미국 국방에 편입되는 조건을 조성하는 것이다. 


셋째 한국산업은 첨단산업에 이어 굴뚝산업도 미국에 종속된다. 인공지능. 특허, 지적재산권, 사이버 등 첨단산업의 미국 종속을 더욱 강화시켰다. 지금까지 한국이 누려왔던 굴뚝산업의 분업을 포기하게 된다. 반도체, 자동차, 조선, 철강 등 주요산업 분야에서 한국은 미국에 기술, 노동력, 자본을 이전해야 한다. 즉 한국 국내산업 기반을 미국으로 넘기는 것이다. 




넷째 한국은 미국산 석유와 가스 등 에너지 수입을 확대하고 전망이 불확실한 알래스카 등에 에너지 투자를 확대하기로 했다. 안보산업인 에너지 산업이 미국에 종속되면 값비싼 미국 에너지를 수입하고 채산성 없는 미국 투자로 전기세 인상 등 국민부담이 증가할 것이다.


다섯째 이번 협상은 미국의 농축산물 수입을 증가하기로 해 한국의 식량주권이 침해받았다. 수입자체도 문제이지만 옥수수와 콩 등 농업생명과학제품 즉 유전자 변형 농산물에 대한 검역주권을 사실상 포기한 셈이다. 


여섯째 한국은 실물경제는 물론 외환, 금융 분야에서도 경제주권을 미국에 양보했다. 한국이 미국에 제공하는 연 200억 달러를 한국 정부가 외환시장에서 조달하지 못하도록 했다. 즉 한국은 원화를 가지고 달러를 사지 못하는 것이다. 기존의 외환보유고나 수출대금으로 미국에 달러를 제공해야 한다. 환율이 급등해도 미국의 승인이 없으면 정부가 환율방어를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할 수 없다. 당연히 국채발행도 미국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환율과 국채에 대한 자율권을 상실함으로써 이와 연동되는 금리정책도 제한받게 됐다. 즉 환율에 대한 통제권 상실로 환율에 영향을 미치는 금리정책에 대한 통제권도 제한받는 것이다.


일곱째 제2의 외환금융위기는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환율은 이미 국가부도 당시 수준으로 급등하고 있다. 한국경제가 불안정해지면서 이재명의 주식시장 부양정책으로 떼돈을 번 외국인 투자자들이 주식을 투매하고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매입해 철수하고 있다. 국내 투자자들도 국내주식에서 해외주식으로 이전하면서 달러를 매입하고 있다. 기업들은 미국 투자를 확대하기 위해 달러를 매입하거나 기존 달러를 원화로 전환하지 않고 있으며, 수출대금으로 받은 달러를 외환시장에 팔지 않고 있다. 관세협상이 타결됐다고 하지만 달러 수요가 폭증하면서 환율은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여덟째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중국과 손절할 것을 강요받은 셈이다. 한국은 핵잠수함, 대만문제, 아시아식 나토 추진으로 중국과 군사적으로 대립하게 된다. 미국은 값싼 중국산 제품을 중국 내 강제노동에 의한 상품, 미국의 지적재산권과 특허를 침해한 불공정경쟁 상품으로 규정하면 한국이 중국으로부터 이들 상품을 수입하지 말 것을 약속받았다. 중국의 저가 상품을 수입하지 못한다면 그 불이익은 한국의 소비자와 중국으로부터 원자재를 수입하는 제조업이 부담한다. 


마지막으로 한국은 한일관계 한중관계 등 중요한 외교주권을 양보했다. 한국은 미국의 압력으로 독도문제와 과거사문제 등에 대해 극우적 시각을 드러낸 일본정부와의 협력을 강화하기로 약속했다. 대만문제에 대해 미국의 입장을 지지하고 대만분쟁이 발생할 때 미국 편에 서기로 했다.

대만, 한국, 일본을 둘러싼 도련선이란

미국이 중국 봉쇄를 위해 설정, 중국이 돌파 목표로 지정


도련선(島鏈線, island chain)은 섬(島)을 사슬(鏈)처럼 이은 가상의 선(線)이다. 가장 유명한 도련선은 1950년 1월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의 비밀회담에 참석한 국무장관 딘 애치슨이 언급한 애치슨 라인(Acheson line)이다. 이틀 후 외교위원장 톰 코널리는 이를 대외에 발표하였다. 


애치슨 라인은 소련과 중국을 봉쇄하려는 미국의 극동방위선으로서 필리핀, 일본, 알류샨 열도을 연결하는 선이고 대만과 한반도는 중소 쪽으로 이 선 안쪽에 있었다. 한국은 1950년 3월 애치슨 라인에 대한 진의를 요구하고 남침을 자극할 수 있다는 반대의견을 미국 국무성에 제출했다. 


일부 학자들의 의견에 따르면 애치슨 라인이 중국이 아닌 소련을 겨냥한 것으로서 중국통일 전쟁에 미국이 개입하지 않겠다는 메세지를 보낸 것이며, 소련이 한국에서 전쟁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는 오판에 근거한 것이다. 하지만 애치슨 라인은 극동에서 전쟁이 일어날 때 전쟁으로부터 안전하게 지쳐야 할 후방의 의미라고 볼 수 있다. 즉 필리핀이나 일본을 지킨다는 의미이며, 이는 전쟁터 즉 전선이 필리핀이나 일본의 안쪽 즉 대만이나 한국이라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이와 별개로 1951년 미국 국무장관 존 포스터 덜레스(John Foster Dulles)가 중소의 태평양 진출을 차단하기 위해 가상의 도련선을 설정했다. 그런데 1982년 중국의 실권자 덩샤오핑의 지시로 중국인민해방군 사령관 류화칭(劉華清)이 도련선을 장래에 달성해야 할 중국해군의 단계적인 작전반경으로 설정했다. 



제1도련선은 대만전쟁에서 미국 접근 차단선


제1도련선은 중국 본토에서 가까운 바다로 대만을 포함하고 쿠릴 열도에서 시작해 일본, 류큐열도, 타이완섬, 필리핀, 말라카 해협에 이른다. 이른바 중국통일을 위한 해군작전범위라고 볼 수 있다. 제2도련선은 한반도와 일본을 포함하고 오가사와라 제도, 괌, 사이판, 파푸아뉴기니 근해. 서태평양 연안 지대까지이다. 제3도련선은 알류샨 열도, 하와이, 뉴질랜드 등 서태평양 전체에 해당된다.


즉 1 단계는 ‘근해 적극방위전략’의 핵심으로 대만을 병합하고 중국 근해를 중국해군이 장악하는 것이고 2 단계는 남중국해와 동중국해를 포함하고 서태평양의 관문까지 중국해군의 작전구역으로 삼는다. 주변국과의 해양분쟁에서 지배권을 획득하고 미국의 개입을 차단할 목적이다. 3단계는 서태평양을 돌파하고 태평양 전체로 진출하여 미국의 대양해군과 경쟁하겠다는 것이다. 


제1도련선 장악은 중국통일을 방해하려는 미 해군의 접근을 차단하는 것이고, 제2도련선 돌파는 한반도와 일본을 작전권 안에 넣고 태평양으로 나아가려는 중국을 봉쇄하려는 미 해군의 방해를 물리치는 것이다. 


중국은 중소분쟁으로 인해 1990년대까지 육군 중심으로 전력을 증강해왔다. 하지만 소련이 붕괴된 후 중국의 군사적 목표는 대만병합으로 설정되면서 해군 전력을 증강해왔다. 1993년에는 리펑 총리가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방어 대상에 해양 권익을 포함한다"고 밝혔다. 


1997년 스윈성(石雲生)이 해군 사령관에 취임한 뒤 연안 해군에서 근해 해군으로 변혁을 본격화했다. 이 과정에서 '해양발전전략'에서 류화칭이 설정한 제1열도선과 제2열도선이라는 개념이 다시 강조됐다. 중국은 항공모함을 근해에 배치함으로써 이미 제1 도련선을 돌파했다고 평가하고 있으며, 2030년대 제2도련선, 2040년대 제3도련선 돌파를 목표로 삼고 있다. 


이를 위해 2025년 현재 3척의 항공모함을 배치하고 있는데, 향후 최소 6척으로 늘려 모두 실전에 배치할 예정이다. 즉 미국의 항공모함 전단이 중국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차단하기 위해 중국은 항공모함 전력, 중거리 대함미사일 전력을 서태평양을 향해 배치하고 있다. 



미국, 서태평양 진출하려는 중국에 맞서 2차 대전 공군기지 재건


중국은 2023년 현재 핵추진 탄도미사일 잠수함 6척, 핵추진 공격 잠수함 6척, 디젤 공격 잠수함 48척을 운용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2035년까지 모두 80척의 최신 잠수함을 보유할 계획이다. 반면 미 해군은 고속 공격 잠수함 53척, 탄도미사일 잠수함 14척, 유도미사일 잠수함 4척을 보유하고 있으며 전부 핵추진 잠수함이다.


현재 중국은 미국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제3도련선에 대해 공개적 언급을 삼가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중국의 이러한 대양해군전략에 이미 적극 대응하고 있다. 미국은 일본 열도와 필리핀에 군사기지를 건설하면서 대만전쟁에 대비하고 있다. 


미국은 서태평양에서 괌 기지는 물론 2차대전 종전 이후 폐쇄됐던 사이판, 티니안의 미군기지를 재건하고 있다. 특히 2차대전 당시 최대 해외 공군기지이면서 일본에 핵폭탄 투하할 때 사용한 티니안 섬의 노스 필드(North Field) 공군기지를 복원하고 있는 중이다.

대미 관세협상을 중단해야 할 5가지 독소조항

현재 매년 대미 무역흑자가 600억달러인데 관세 25%를 맞는다고 해도 매년 손해를 최대 120억 달러에 불과하다. 미국이 요구하는 대미 투자 총액 5000억 달러는 거의 50년의 무역손실액에 달한다. 미국의 연구기관도 관세협상을 파기하고 5000억 달러로 수출기업 지원이나 한국경제 부흥에 투자하는 것이 낫다고 할 정도이다. 


심지어 이명박 정부 시절 대통령 비서실 외교안보수석을 지낸 천영우 마저도 조선일보에 차라리 미국과 협상을 깨라고 할 정도로 관세협상은 한국에 불리하다. 이번 관세협상에서 한국이 미국에 굴복하면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을 만만하게 보고 안보 분야에서 국방비 증액, 주한미군 분담금 증액 등 추가적 요구를 할 수 있다.


1. 한국경제 규모에 비해 3500억 달러라는 금액이 너무 많다. 이 금액은 외환보유고의 80%에 해당한다. 독일, 프랑스가 포함된 유럽연합은 6천억 달러에 불과하다. 우리보다 경제 규모가 3배 정도 크고 외환보유고는 4배나 큰 일본도 5500억 달러에 불과하다. 기업의 직접 투자는 추가로 1500억 달러나 된다. 


미국은 한국의 미국에 대한 무역 흑자가 2024년 기준 660억 달러고 685억 달러인 일본과 비슷하니 투자 규모도 일본과 비슷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대미 무역흑자를 보면 중국은 2900억 달러, 유럽연합은 2300억 달러, 멕시코는 1700억 달러, 심지어 베트남도 1235억 달러이다. 결국 미국은 동맹에 대해 수탈외교를 하고 있는 셈이다. 


2. 투자를 책임지는 주체는 유럽은 기업인데, 미국은 한국에게 일본과 같이 국가가 투자를 책임지라고 한다. 한국의 기업이 아닌 국가가 투자 주체가 되면 국가 재정이 향후 5년 이내에 매년 1000억 달러에 달하는 현금을 미국에 투자해야 하는데, 투자 총액 3500 억 달러는 외환보유고의 80%, 일년 예산의 70%에 해당된다. 한국 정부가 이 비용을 부담하면 국가부도의 제2 IMF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3. 미국이 투자 분야를 지정하면 한국이 미국 계좌에 돈을 지불하고 미국이 투자를 관리한다. 한국 돈을 미국이 마음대로 쓰는 구조이므로 대미 투자는 한국경제와 동반성장하는 전략적 투자가 아니라 그야말로 낭비에 불과하다. 이 경우 미국이 알래스카 천연가스 송유관 사업처럼 수익성이 불분명한 사업을 지정한다면 한국은 투자손실을 떠 안게 된다. 미국이 먹튀가 되는 것이다.


4. 투자는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인데, 관세협상의 투자는 잘 되더라도 미국만 돈을 벌고 한국은 돈을 벌 수가 없다. 투자 후 한국이 투자금을 회수할 때까지 한미는 수익을 50%씩 나누고 한국이 투자금을 회수하면 그때부터 수익금의 90%를 미국이 가져간다. 즉 투자손실은 한국이 부담하고 투자 이익은 미국이 독점하는 구조이다.


5. 대미투자가 100% 성공한다고 해도 한국은 노동자를 파견할 수 없으므로 투자 분야에서 임금조차 챙길 수 없다. 이번 현대자동차 밧데리 공장에서 일어난 한국인 대량 구금 사태는 미국이 한국의 투자 기업에게 인력파견을 위한 비자를 발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미국 입장은 대미 투자 사업에 전원 미국인을 고용하라는 것이다. 초기 미국의 기술인력이 부족하면 한국인력이 와서 기술연수만 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반면에 한국처럼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인 싱가포르와 칠레는 쿼터(H-1B1)를 통해, 호주는  쿼터(E-3)를 통해 각각 연간 5400명, 1400명, 1만500명의 전문인력 파견을 보장받았다. 이들 나라들은 특별비자 조건을 FTA 조항에 포함시켰다.

혈세로 수출 관세 지원 받는 현대와 삼성, 국민기업으로

관세협상, 한미 간 양극화, 한국 내 양극화를 심화시켜

관세협상은 현대자동차나 삼성반도체와 같은 대기업들이 수출을 유지하기 위해 국가 재정으로 미국에 돈을 퍼주고 투자하는 것입니다. 이번 관세협상 결과는 국민 세금으로 우리보다 두 배 이상 잘 사는 미국을 지원하니 부자 나라가 가난한 나라를 강탈하는 것입니다. 

조선업이나 자동차, 반도체 공장들이 한국 대신 미국에 들어서니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빼앗깁니다. 우리 청년들이 입사해야 할 일자리를 미국의 청년들이 차지하는 셈입니다.

한국에서 수출 대기업을 제외하면 국내 산업은 침체를 넘어서서 붕괴되고 있습니다. 영세기업과 자영업자들은 더욱 심각한 상황입니다. 지방은 물론 서울 시내와 심지어 홍대 거리도 빈 건물들이 줄지어 있습니다.

관세협상으로 미국에 지원할 돈을 국내 산업과 자영업자 지원으로 돌리면 수백만 명이 혜택을 볼 것입니다. 수출 대기업으로 먹고 사는 국민들은 수십만 명에 불과합니다. 이들 기업에서 노동자들조차도 억대 이상의 연봉을 받고 있습니다. 

관세협상은 소득이 낮은 일반 국민들에게 세금을 걷어 이미 부자인 대기업 임직원들을 지원해주는 것이다. 비록 이들이 세금을 내고 있다고 하나 국가와 국민들이 이들을 위해 희생한 것에 비교하면 그들의 세금은 새발의 피입니다.


관세협상을 계기로 수출대기업의 국민기업화를 검토해야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국민세금으로 현대자동차, 삼성반도체가 돈을 벌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한국이 대기업 수출로 먹고 살기 위해 우리 국민들이 희생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 대기업을 국민기업으로 전환할 이유는 너무나 많습니다. 

사실 삼성, 현대, SK는 특혜와 국민세금으로 키운 대기업입니다. 이들 대기업들은 그 시작부터 해방 직후 일본인의 조선재산 즉 적산을 싼값에 불하받아 기업의 토대를 만들었습니다.

수출대기업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국가가 자동차는 현대, 전자는 삼성, 휴대폰은 선경이 독점하도록 특혜를 주었습니다. 국가는 은행을 통해 싼 이자로 대출을 받도록 하는 등 각종 특혜 정책으로 이들 대기업을 지원했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국가는 이들 대기업이 1990년 초까지 노동자들에게 저임금 주면서 장시간 노동을 강제할 수 있도록 각종 노동관계법을 편파적으로 운영했습니다. 노동자들이 반발하면서 파업이라도 하면 국가가 대기업을 대신하여 경찰을 동원해 노동자들을 짓밟고 구속시켰습니다. 


수출대기업은 국민과 노동자의 희생을 보상해야

이제는 그 동안 희생만 치렀던 국민들과 노동자들이 수출 대기업에게 자신의 빼앗긴 권리를 되찾을 때가 됐습니다. 총수들의 주식을 강제 처분하도록 하고, 외국인의 주식인수를 제한하고 국민들이 이들 대기업의 지분을 인수하도록 하면 됩니다. 국민연금도 국민기업화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수출로 많은 돈을 버는 대기업은 총수 일가족, 대지주, 기관투자자, 외국인 주주의 잔치상입니다. 주가인상으로 떼돈을 벌고 주식배당으로 푼돈을 매년 벌고 있습니다. 특정인이 소유할 수 있는 주식의 비율을 제한하여 총수와 대지주, 기관투자자와 외국인들이 가진 주식을 국민 일반에게 적정가격에 매도하도록 해야 합니다. 

일반 국민들이 많은 이윤을 내고 있는 이들 대기업의 주식을 보유하면 비록 대기업 임직원만큼 월급을 받지 못해도 주식배당 등의 방법으로 혜택을 볼 수 있습니다. 수출대기업으로 생기는 양극화를 일부 해소할 수 있는 것입니다. 수출대기업을 국민기업화 하더라도 기존의 기업 총수나 전문 경영인이 계속해서 경영을 혁신하여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국민투표로 대기업을 국민기업으로, 공공서비스를 공기업으로 전환해야

국민들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산업과 기업을 사회적 소유로 하는 사회주의는 점차 현실로 다가와 피할 수 없습니다. 이런 사회주의는 과거 소련식 무력혁명이 아니라 유권자들의 요구에 의해 총투표로써 도입될 것입니다. 

의료와 교육, 대중교통과 주택건설 등은 국가와 사회가 책임지고 공기업이 담당해야 합니다. 공공서비스는 소유뿐만 아니라 경영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공공기관이 책임져야 합니다. 

의료가 민영화되면서 미국처럼 의료비가 비싸져 현재의 국가가 책임지는 의료보험을 운영할 수 없습니다. 현재의 사교육 제도가 지속되면 국민들의 교육비 부담 증가로 인해 출산과 육아를 더욱 기피할 것입니다. 

대중교통은 이미 공기업처럼 운영하고 있습니다. 주택건설을 민간시장에 맡기는 한 현재의 주택난과 집값 폭등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현대자동차나 삼성전자는 공공서비스가 아니지만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대기업입니다. 또한 지금까지 국민의 혈세와 노동자의 희생으로 성장시킨 기업입니다. 그런데 그 기업의 이윤은 소수에게만 돌아가고 있습니다. 국가와 국민의 지원을 받는 이런 대기업도 사회적 소유로 전환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