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하노이와 달리 스몰딜로 타협가능성 높아

 싱가포르나 하노이의 빅딜은 더 이상 조미회담의 의제가 아니다.

과거 싱가포르와 하노이 북미협상의 주요 의제는 조선의 핵개발을 중단시키는 것, 즉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복원이 불가능한 불가역적인 비핵화( CVID, Complete, Verifiable, and Irreversible Denuclearization)이다. 하지만 조선은 핵무장 완성을 선언하며 비핵화는 의제자체가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미국 역시 핵태세보고서 등 공식문건에서 조선이 미국 본토를 핵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인정하고 있으며, 트럼프 대통령은 조선의 핵무장을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미국은 이미 바이든 대통령 시절부터 조선의 비핵화를 장기목표로 설정하고 당장 필요한 조미협상 의제는 조미 간의 핵전쟁을 예방하는 외교안보적 장치를 마련하고 조선의 핵무장을 현재 수준으로 동결하는 것이라고 내부적으로 정리했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뿐만 아니라 빅터 차 같은 보수적인 전문가들도 조선의 비핵화를 당면한 협상의제로 고집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합의가 가능한 조선의 핵동결은 조미 간의 우발적인 핵전쟁을 예방하기 위해 중러 수준의 비상채널을 유지하고 조선의 핵탄두 숫자를 현재 수준으로 동결하고 추가적인 핵농축을 중단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과 발사체 및 운반수단, 핵잠수함의 숫자를 제한하고, 추가적인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발사실험을 중단하는 것이다. 


핵전쟁 예방과 핵동결, 제재해제와 군사훈련 중단으로 보상, 스몰딜

따라서 미국이 조선의 의사를 존중하고 비핵화 의제를 제외하고 핵전쟁 예방과 군축으로 협상의제를 좁힌다면 조미대화의 문턱이 낮아진다. 반면 미국이 협상기조나 합의문의 서두에서 상징적으로 장기적인 비핵화를 전제로 당면한 과도기로서 군축을 협상의제로 채택하려고 할 때 조선이 이를 수용할지 미지수이다. 

조선의 입장에서 핵무장을 사실상 완수했기 때문에 조선의 협상의제의 순위가 완전히 변했다. 조선의 제1 목표는 이스라엘, 파키스탄, 인도와 같은 사실상의 핵무장국가로 인정받는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조선의 비핵화를 더 이상 조미간의 혹은 유엔, 국제원자력기구의 논의대상으로 삼지 않는 것이다. 이는 조선의 핵개발을 막기 위해 가해진 모든 제재를 해제하는 것이다. 

조선이 핵무장국가 지위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으려는 이유는 핵무장으로 반세기 넘게 조선을 괴롭혔던 국제적 고립과 제재를 끝내고 국가안보문제를 종국적으로 해결하기 위함이다. 키신저 전 국무장관이 말했듯이 핵무장국가는 모든 나라와 불가침조약을 맺은 것과 마찬가지다. 어느 나라도 단 한발이라도 맞으면 국가존립이 위태로워지는 핵전쟁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핵무장 조선은 과거 제1순위 협상의제로 내세웠던 북미불가침조약, 평화협정, 북미관계정상화를 더 이상 제1의제로 내세우지 않는다. 핵무장의 완성과 국제적 인정이 더 근본적인 해결책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조선핵무장 인정이 포괄적인 협상의제라면 개별적인 의제는 한미공동군사훈련의 완전한 중단이다. 물론 조선이 주한미군의 완전한 철수를 원하지만 첫째 핵동결을 보상으로 미국이 한국에서 철수할 리가 없고, 둘째 핵무장 상태에서 어차피 전면전의 가능성이 없으므로 주한미군 주둔 자체가 조선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주기적인 대규모 한미공동군사훈련이 조선 체제를 갉아먹고 있다. 왜냐하면 조선이 핵무장을 하더라도 한미공동군사훈련을 조선 인근에서 한다면 조선은 끊임없이 이에 대응하고 국가자원을 전쟁준비에 소모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조미간의 합의가 가능한 협상의제는 미국 입장에선 본토피격가능성을 회피하고 현재 상태로 조선의 핵무장을 동결하는 것이며, 이와 관련된 사찰과 통제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이고 조선 입장에선 모든 국제제재의 해제와 한미공동군사훈련의 영원한 중단이다.

회담을 거부해 온 김정은 위원장이 트럼프와 만날까?

조선은 미국의 구애에도 왜 만나주지 않았나?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조선이 미국의 회담제안을 거부하는 이유는 조금씩 변화돼왔다. 기존의 공식적인 입장은 미국이 한미공동군사훈련과 같은 대북적대정책을 철회하지 않는 한 조미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조선이 핵무력을 완성한 이후에는 미국이 조선의 핵무력을 인정하지 않고 비핵화를 고집하는 한 대화에 나서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비공식적인 입장은 수차례 남북 수뇌회담과 조미 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제재와 대규모 군사훈련이 지속되는 등 회담의 성과가 없다는 불만이다. 대화에 국력을 소모하기보다 핵무력을 완성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보는 것이다. 

특히 미국이 조선의 비핵화를 포기하고 핵동결을 주장할 경우 조선이 이를 거부하기 힘든데, 아직은 핵동결을 수용할 만큼 조선이 핵무기를 고도화, 다종화, 대량화를 완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즉 조선이 목표로 하는 핵무장을 완성한 후 핵동결 대화를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조선은 현재 핵추진잠수함을 건조 중이고, 핵탄두를 표준화해 대량생산 체제를 구축하고자 한다. 2026년 8월 19일 트럼프 대통령은 연내 조미 정상회담의 의지를 밝하면서 조선의 핵탄두가 57개라고 단언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조선은 현재 60~90개의 핵탄두를 지니고 있으며, 매년 6~7개의 핵탄두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조선이 영변의 핵농축시설을 확장하고, 강선과 구성 등에도 추가적인 핵농축시설을 보유하면서 조선의 핵탄두 생산능력이 향상된 상태다. 조선은 최소한의 상호확증파괴 능력을 보유하기 위해 이스라엘, 파키스탄, 인도의 보유량(90~180)보다 많고 중국(600여개)보다 적은 200~300여개를 목표로 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 갈등 이후 조중러의 군사적, 경제적 동맹관계가 격상되면서 조중러는 일종의 반미연대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 러시아와 중국은 미국의 대조선 제재를 사실상 무시하면서 조선을 지원하고 있어 조선의 경제적 안보적 상황이 과거보다 개선된 상태다. 즉 조선의 입장에선 조중러연대를 이완시키는 조미대화에 나설 필요성이 적다. 


김정은 위원장이 이번에는 트럼프를 만나줄까?

현재 트럼프는 조미정상회담에 목을 매는 반면, 김정은 위원장은 활용할 수 있는 하나의 선택지로 보고 있다. 트럼프가 더 많은 양보를 할 경우 김정은 위원장이 정상회담을 회피할 이유가 없다. 

첫째 향후 조미정상회담은 조선의 핵포기와 북미관계정상화, 평화협정 체결과 같은 빅딜이 아니라 핵동결과 제재해제 및 한미공동군사훈련 중단과 같은 스몰딜이라서 협상이 타결될 가능성이 높고 설사 결렬되더라도 양국 지도자의 리더십에 큰 상처가 되지 않는다. 

이를테면 조선이 핵동결을 수용한다고 해도 이미 건조 중인 핵잠수함의 개발을 멈출 리가 없다. 핵탄두 동결이 문제이지만 트럼프 이후 미국이 대북적대정책을 복원한다면 그때가서 핵탄두를 더 만들면 된다. 왜냐하면 동결이란 현 상태에서 멈추는 것이지 기존의 시설을 폐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설을 유지 관리한 채 새로운 핵농축프로그램만 중단하면 되기 때문이다. 

둘째 트럼프가 강력하게 요구하고 김정은 위원장이 기꺼이 수용하는 모습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굳이 조미정상회담이 필요 없는 조건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이를 수용하려면 외교적 동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셋째 현재 조중러연대가 반미연대의 성격을 지니므로 조선이 미국과 화해하는 정상회담은 조중러연대가 일부 이완되는 모습이므로 중러의  양해가 필요하다. 중러는 조선이 독자노선을 걷는 조미회담을 반기지는 않지만 반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중러입장에선 조미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나더라도 그 최대치는 핵동결과 한미군사훈련 중단 및 제재 해제 등 현상유지를 크게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조중러연대에 미치는 악영향은 미미하기 때문이다. 

넷째 설사 조미정상회담에서 아무런 합의를 하지 못한다고 해도 각자 팩트체크를 발표하고 자신이 회담을 주도했다고 과시할 수 있으며, 최소한 주기적인 만남을 통해 긴장을 완화시킬 수 있고, 김정은 위원장의 입장에선 트럼프와 주기적인 정상회담을 한다면 회담결과와 무관하게 체제의 정당성을 국내외에 과시하고 국제무대에서 시진핑, 푸틴, 트럼프와 동급의 지도자로 부상하게 된다. 


아파트와 주식 실패 사과, 재임개헌 포기, 개혁동력 회복

이재명 정부는 촛불정권, 한계가 있지만 개혁의 소임을 다해야

이재명 정부가 한국의 보수정치의 한 갈래인 민주당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시민들과 노동자들의 이해를 대변하고 민주주의를 완성하고 평화통일과 자주권을 구현하는데 일정한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 보수양당의 "정권 돌아가면서 차지하기"식 소선거구제 양당정치를 청산할 의지가 부족하다. 그 결과 양당정치의 한 축인 내란정당 국민의힘을 청산할 의지가 부족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는 결과적으로 진보와 개혁의 정치세력, 모든 시민들과 노동자들이 윤석열의 내란을 진압함으로써 탄생했다. 따라서 이재명 정부는 내란세력을 청산하고, 민주주의 장치를 확대강화하고 시민들과 노동자들의 권익을 증진시킬 역사적 사명을 부여받고 있다. 

 그런데 이재명 대통령의 정책실패와 원맨쇼 적인 국정운영 태도 때문에 지지율이 추락하고 이재명 정부는 개혁의 동력을 점차 잃고 있다. 검찰수사권 완전폐지와 3군사관학교 통합 및 전시작전권 조기 환수 등의 정책방향이 옳음에도 불구하고 친미냉전, 보수기득권의 저항이 심해지는 반면 이재명 정부를 탄생시켰던 진보와 개혁의 지지세력들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실망하고 서서히 흩어지고 있다. 


정책실패, 파퓰리즘 정치, 측근정치로 대통령 지지율 추락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이 30%대로 폭락했다. 취임한지 14개월밖에 안됐다는 점에서 조기레임덕이라고 볼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지지율 추락의 원인은 핵심 민생인 부동산과 주식 정책의 실패다. 

그 다음은 국무회의 공개와 SNS를 통한 보여주기식 파퓰리즘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피로감이다. 대통령이 작은 사안까지 관료들과 입씨름하면서 독선적이라는 인상을 심어줬고, 모든 정책실패의 책임이 대통령에게 직접 돌아가고 있다. 

마지막으로 측근정치와 팬덤정치로 여당을 장악하려고 하면서 전통적인 민주당 세력 즉 유시민, 조국, 문재인, 노사모 등과 갈등을 일으키고 불쌍스러운 잡음이 국민들에게 노출되면서 이재명 대통령이 신망을 잃고 있다. 

김민석 총리를 바로 당대표로 무리하게 밀어주면서 경선이 과열되고, 최측근인 조정식 의원을 국회의장으로 낙점했다. 조정식 의장이 개헌을 추진한다면 이재명 대통령의 재임불가에 대해 회피성 발언을 하면서 이재명이 개헌을 통해 재임하는 것 아니냐는 억측을 불러일으켰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임기단축 개헌에 대해 동의하면서 재임 여부에 대해 침묵함으로써 불필요한 의구심을 사고 있다. 


내로남불의 이재명식 부동산 정책은 국민들에게 배신감

첫째 서울 집값 폭등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 서울 아파트 가격 폭등의 원인은 표준건축비의 급등으로 인한 분양가의 급등이다. 지난 3년 동안 서울 아파트 분양가는 66%가 올랐다. 1인가구의 증가로 인해 수도권에서 주택수요가 느는 반면 공급부족으로 아파트가격이 올랐다. 특히 “얼어 죽어도 신축아파트”라는 얼죽신이 말해주듯이 신축아파트는 서울에서 거의 공급이 안 돼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또한 강남과 서초, 송파와 강동에서 시작된 가격상승이 마포와 용산 및 성동으로 번지고 나중에는 서울 전체로 확대되면서 서울 변두리도 평균값 이를테면 15억원에 접근하는 키 맞추기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아파트 가격을 잡으려면 아파트 공사기간을 고려하여 통상 5년 앞을 보고 공급을 조정해야 하는데, 민간 건설회사는 아파트 가격이 오르면 공급을 확대하고 가격이 떨어지면 공급을 줄이는 단기적 대응을 하므로 실제 수요에 부응할 수 없다. 또한 정부는 과거처럼 주택공사 등의 공공공급을 늘리고 공공임대 아파트를 꾸준하게 공급해야 하는데, 오히려 공공공급은 줄고 있다.

이런 조건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세금으로 아파트 가격을 잡지 않겠다고 약속했음에도 임기 초반부터 대출규제와 세금으로 아파트 소유를 억제하는 정책을 취했다. 이러한 정책으로 많은 시민들이 주택매입을 포기하고, 매입한 경우 은행권 대출이 막혀 고율의 비은행권 대출을 받아야 하고, 고가주택의 경우 1가구 1주택이라고 해도 고액의 세금을 부담해야 했다. 반면 이재명 정부의 한성숙 총리부터 다수의 각료가 다주택소유자로서 시세차익을 얻었고, 이재명 대통령은 자신의 아파트를 팔면서 매수자에게 부족한 자금을 근저당하는 방식으로 대출규제를 회피하고 25억의 시세차익을 얻었다. 


경박한 주가부양정책으로 주식시장 망치고 개미들 손실

둘째 인위적인 주가부양정책 실패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후보시절 코스피 주가를 5천으로 올리겠다는 공약은 그 발상부터 잘못된 것이다. 국정의 최고책임자가 실물경제를 활성화해 주식시장을 살리겠다는 원칙에서 벗어나 주가 자체를 올리겠다는 발상은 무책임한 것이다. 결국 이재명 대통령은 임기초반 주식시장 부양정책을 추진하여 기관투자를 활성화하고 이러한 메시지 때문에 외국인도 국내 주식을 사들였다. 

이재명 대통령은 본인도 집을 팔아 주식을 샀다면서 국민들에게 주식투자를 권유했다. 그 결과 주가가 오르고 개미투자자들이 나중에 높은 가격에 주식을 샀다가 기관들과 외국인들이 시세차익을 취하고 주식을 대규모로 매도하면서 개미투자자 다수가 큰 손해를 봤다. 이재명 대통령은 집대신 주식을 사라고 했지만 집을 산 사람은 큰 이득을 보고 주식을 산 개미들은 상당수가 큰 손해를 봤다. 

그 와중에 정부는 개별 주식의 일일 수익률의 ±2배를 추종하는 고위험·고수익 금융투자상품인 단일 종목 레버리지 상품을 도입함으로써 한국의 주식시장의 변동성을 극한으로 몰고 갔다. 그 결과 주식시장은 급등과 급락을 반복했고 그 과정에서 기관과 외국인들은 이익을 봤지만 개미들의 손해는 더 커졌다. 한국 주식시장은 세계에서 가장 불안정한 투기장이 됐고 국내외 언론들은 이러한 현상에 대해 일제히 비판하기에 이르렀다. 

현재의 주가가 이재명 정부에 들어 많이 오른 건 사실이지만 그 내용을 보면 개미들은 손해를 봤고 반도체에 집중됨으로써 다른 종목들은 주가가 떨어지거나 거래금액이 급감했으며, 단기성 매매가 급증하여 안정적인 장기투자자가 줄어들었으며, 주식시장읭 변동성을 우려하여 상당수가 주식시장에서 발을 뺌으로써 전체 거래규모가 줄었다. 결국 이재명 정부의 인위적인 주식부양정책으로 주식시장의 건전성이 상당히 훼손됐다. 


불필요한 재임 논쟁으로 내란정당에게 공격의 빌미를 줘

셋째 임기단축 개헌해도 재임하지 않는다고 선언해야 한다. 개헌은 모든 대통령과 국회의장이 추진했지만 실제 성공한 적이 없다. 정부여당은 정국주도권을 갖기 위해 개헌화두를 제기하고 야당은 결사반대하는 사태가 반복돼왔다. 개헌은 국회 재적 2/3의 동의가 필요해서 사실상 여야합의가 있어야 가능하다. 따라서 여야가 정쟁을 하는 경우 개헌의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한다. 

결국 개헌 논쟁은 정국주도권 다툼의 정쟁에 불과하므로 불필요한 소모전일 뿐이다. 그런데 이재명 대통령과 조정식 국회의장은 개헌 논쟁을 정국주도권 다툼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역사적 작태를 반복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우리헌법은 임기변동의 개헌의 경우 현직 대통령에게 적용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음에도 국민들이 동의할 경우 이 조항도 개헌하여 현직 대통령이 재임이 가능한지에 대해 조정식 의장과 이재명 대통령은 침묵을 유지하고 있어 불필요한 정치적 공방을 확대하고 있다. 

이에 내란정당인 국민의힘은 “이재명 대통령이 자신에 대한 재판을 소멸하기 위해 공소취소를 강행할 것이다, 임기가 종료되면 재판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임기연장의 독재를 할 것”이라는 공세를 취하고 있다. 이런 조건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임기단축의 개헌은 수용한다면서 재임여부에 대해 침묵을 지키고 있어 국민의힘 지지자가 아닌 시민들도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다. 

바이든과 트럼프는 왜 만나려고 하고, 김정은 거부해왔나?

트럼프는 왜 조미정상회담에 목을 매나?

트럼프에 대한 전쟁책임론이 확산되고 있어 국면전환용 깜짝 이벤트가 필요하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란전쟁에서 미국이 사실상 패배했다. 미국은 공격미사일부족으로 이란에 대한 공격 규모를 축소하고 있다. 또한 방어를 위한 요격미사일의 부족으로 인해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요격미사일 지원을 중단했다. 그 결과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공격 미사일을 전혀 요격하지 못하면서 피해 규모가 급증하고 있다. 중동에 있는 미군 기지들은 이란의 공격으로 쑥대밭이 되고 있으며 군인들은 미국 본토로 철수하거나 필수인력은 근처 호텔로 피신했다.

베네수엘라와 쿠바에 대한 군사작전, 중동전쟁 등이 이어지면서 미군의 정예부대들의 전쟁 피로감이 극에 이르고 있다. 링컨 항공모함이 제대로 작전을 수행하지 못해 다른 항공모함으로 교체되고 있으며, 그 결과 태평양 지역에 항공모함이 공백상태다. 중국 근해에서 구축함이 동력을 잃어 4일 동안 표류했다.무엇보다 200일 이상 바다에서 작전 중인 링컨 항모의 승조원들이 극심한 고립감, 피로감, 우울증으로 고생하고 있으며 언론보도에 따르면 수차례 투신자살 시도가 있었다. 파병 군인 가족들이 병력 귀국과 전쟁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트럼프가 수년 동안 이란을 공격했지만 미국 정보기관의 분석에 따르면 일부 부대시설을 파괴했을 뿐 원래 목표인 이란의 핵 제거는 전혀 성과가 없었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봉쇄로 인한 국제유가와 미국 내 휘발유 소비자가격 급등으로 트럼프의 국정지지도는 밑바닥을 쳤다.

호르무즈 해협의 주도권을 다투는 양상으로 전쟁이 계속되면서 전쟁 목표는 호르무즈 해협의 개방 즉 전쟁 전 상태로 돌아가는 것으로 축소됐다. 이제 미국이 동맹국의 지원을 받지 못하면서 전쟁역량의 고갈로 인해 호르무즈 해협을 장악하는 것이 불가능해지자, 미국은 전쟁을 포기하고 경제제재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경제전쟁으로 이란을 붕괴시키겠다고 장담하지만 이란은 이미 50년 동안 최악의 경제제재를 극복해왔기 때문에 경제제재가 새롭지 않다.

올해 11월 중간선거에 대한 여론조사를 보면 민주당이 하원을 장악하는 것이 확실하고 상원에서도 공화당이 소수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 비록 민주당이 상원에서 2/3를 차지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트럼프가 최종적으로 탄핵되지 않겠지만 하원에서 과반수 의결로 탄핵소추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트럼프가 중간선거를 앞두고 과시용 북미정상회담을 성사시켜 외교적 성과로 삼을 수 있다. 설사 중간선거에서 패배한 이후에 정상회담이 성사되더라도 선거패배로 인한 불리한 국면을 전환할 수 있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북미 간에 접촉이 있었을까?

미국의 외교관이 일상적으로 조선과 외교적 접촉을 할 수 있는 상대는 뉴욕의 유엔 주재 조선대표부,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유엔 제네바 사무소 주재 조선대표부,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유엔 빈 사무소 주재 조선대표부 등 조선이 다자외교를 하는 공관이다. 제네바에 인권, 군축 관련 국제기구가 모여 있어 다자외교가 빈번하다. 1994년 북미 간에 제네바 협상이 진행된 곳이다. 빈에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등 핵·에너지 관련 국제기구가 있어 조선의 핵무기 감시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기도 한다.

바이든 대통령 임기 동안 미국은 30여 차례 조선에게 대화를 요청했으나 조선은 모두 거부했다. 게리 세이모어 전 백악관 대량살상무기 조정관에 따르면 당시 바이든 정부는 공개적 또 비공개적 자리에서 전제조건 없이 대북 대화를 재개할 의향이 있다는 점도 밝혔다.

로버트 아인혼 전 국무부 비확산·군축담당 특별보좌관의 미국의 소리 방송 인터뷰에 따르면 바이든 정부가 출범 직후 2021년 2월중순부터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등 여러 채널을 통해 수 차례 북한에 접근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도 2021년 3월 16일 미·일 외교·국방장관(2+2) 회담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위험 고조를 줄이기 위해 우리는 2월 중순부터 뉴욕을 포함한 북한 정권 채널과 접촉하려고 했지만 지금까지 평양으로부터 응답을 얻지 못했다”고 말했다.

조선중앙통신은 3월 18일 미국이 여러 차례 이메일과 전화 메시지를 통해 접촉을 시도했다며 이 같은 시도는 ‘값싼 속임수’로 시간 낭비라고 비난했다. 최선희 조선외무성 제1부상 역시 담화를 통해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이 철회되지 않는 한 앞으로도 미국의 접촉시도를 무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같은 해 2021년 4월 30일 바이든 행정부는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정책이나 트럼프 행정부의 ‘일괄타결’ 과 다른 실용적인 대북정책의 방향을 발표했다. 바이든 정부의 새로운 대북정책은 한반도 비핵화를 장기적인 목표로 설정하되 실용적인 절충적인 단계적 접근을 시도하는 것이다. 이로써 조미 간의 간극이 좀 더 가까워졌으며, 바이든 행정부는 이러한 협상기조를 메일로 조선에게 보냈으며, 북한 측이 ‘전달받았다’는 답신을 보냈다. 하지만 실제로 대화에 나서지 않았다. 

조선중앙통신은 5월 31일 김명철 국제문제평론가의 논평을 통해 “지금 많은 나라는 바이든 행정부가 고안해낸 ‘실용적 접근법’이니, ‘최대 유연성’이니 하는 대조선(북) 정책 기조들이 한갓 권모술수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성 김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의 2022년 9월 20일 언론사 간담회에 따르면 미국은 그해 7월까지 수 차례 주로 뉴욕 채널을 통해 조선에게 코로나19와 관련한 물품 지원과 조미 간의 현안을 다루는 대화를 제안했지만 응답이 없었다. 김 대표는 "군축이 아닌, 외교를 통한 완전한 비핵화가 목표"라고 밝혔는데 이는 미국이 비록 단계적 접근을 하지만 협상의 최종 목표는 비핵화라는 점을 확인한 것으로서 조선의 입장과 배치된다. 2023년 8월 17일 존 커비 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의 일본 <교도통신>과의 인터뷰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여러 차례 정상회담을 제안했지만 조선은 응답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실무접촉을 생략한 채 직접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SNS 등을 통해 공개적으로 정상회담을 제안하는 탑다운 방식으로 3차례 조미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으로 취임한 직후 2025년 중순 뉴욕의 조선대표부를 통해 수 차례 자신의 친서를 김정은 위원장에게 전달하려고 했지만 조선이 수령을 거부했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인터뷰와 SNS를 통해 정상회담의 의지를 밝혀왔다. 이에 대해 조선은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의 담화 등을 통해 조미 정상 간의 친분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비핵화를 전제로 한 대화에 응하지 않겠다고 밝히고 한미공동군사훈련 등 대북적대정책의 중단을 요구해왔다. 

2026년 들어 미국이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란 전쟁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트럼프는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외교적 성과를 내고 싶어했으며, 특히 조중러연대를 조미정상회담으로 약화시킬 외교적 동기도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6월 과거 북미정상회담 사진을 소셜미디어(SNS)에 게재하고 8월 19일 을지 자유의 방패(UFS)' 연습 당일 날 “당장 시작된 훈련을 취소할 수 없으니 대폭 축소하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훈련은 방어훈련만 치루고 반격훈련을 생략한 채 일주일만에 끝났다. 

결국 대북적대정책의 한 축인 한미공동군사훈련을 대폭 감축함으로써 조선이 요구한 대화조건을 일부 조성한 것이다. 이는 조미 간의 실무접촉에 따른 조선의 요구를 들어줬거나 최소한 조선에게 대화의 진정성을 전달한 것이다. 


최근 3년 조선의 경제성장률이 한국보다 높다.

코로나 이후 3년 연속 3%대 경제성장률 유지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조선의 경제성장률은 2023년 3.1%, 2024년 3.7%, 2025년 3.5%로 역대 최대급이다. 반면 같은 기간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2023년 1.4%, 2024년 2.0%, 2025년 1.1%이다. 즉 조선의 경제성장률이 한국의 경제성장률보다 높다. 2025년 조선의 국민총소득(명목 GNI) 성장률은 9.4%이다. 다만 국민총소득의 규모는 한국의 56분의 1인 1.8% 수준이다. 1인당 국민총소득은 한국의 28분의1(3.6%) 정도다.


전 분야에 걸쳐 조선의 경제회복이 뚜렷하다.

2025년의 경우 건설업도 비주거용 건물 건설과 토목건설이 늘며 6.3% 증가했다. 농림어업은 전년 1.9% 감소에서 3.6% 증가로 돌아섰다. 다만 광업은 석탄 광업이 감소하며 전년(8.8%)보다 증가세가 1.6%에 불과했다. 전기가스수도사업은 화력 발전이 줄면서 0.4% 감소했다. 다만 통계에 잡히지 않는 지방과 기업 및 가정의 태양광 발전으로 전반적인 전력사정은 나아졌다. 

중국인의 조선관광 재개와 러시아인들의 조선관광 증가로 서비스업은 전년보다 1.8% 증가해 1994년(2.3%) 이후 최고 성장률을 기록했다. 정부 분야에서 1.0%, 도소매업 등 기타 분야에서 5.1% 성장을 기록했다. 

2025년 기준으로 조선의 산업 구조를 보면 기준 광공업(30.1%), 서비스업(29.6%), 농림어업(21.2%) 순으로 비중이 컸다. 농림어업(20.9%→21.2%)과 전기가스수도사업(7.2%→7.4%) 등은 비중이 늘었으며 광공업(30.5%→30.1%)과 서비스업(29.8%→29.6%)은 전년보다 비중이 소폭 줄었다.


미국의 대중 대러 적대정책으로 북중러 경제교류 급증

중국과 러시아는 유엔에서 미국이 주도한 조선에 대한 제재에 동참해왔다. 그 영향으로 조선과 관련된 교역과 인력파견이 급감했으며, 중러 정부는 민간차원의 소규모 교역만을 눈 감아줬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 러시아를 압박하는 정책을 취하자, 중국과 러시아는 비공식적인 대조선 교류를 증가시켜왔다. 최근 중국이 미국과 무역전쟁, 대만대치로 긴장상태에 있으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서 미국과 대리전쟁을 하고 있다. 결국 이러한 미국의 강압정책 때문에 조중러가 동맹관계로 진입하면서 군사적 관계는 물론 경제적 교류도 급증하고 있다. 


중국을 제치고 러시아가 경제성장의 일등공신

러시아 파병으로 조선의 일반 사병은 러시아의 사병과 비슷한 월 2천달러의 외화를 벌고 있으며, 하사관은 3천달러, 장교는 5천달러 이상의 월급을 받는다. 최근 조선은 러시아에 건설노동자, 공장노동자 등 인력을 파견하고 있으며 러시아의 조선 여성노동자들도 사병들과 비슷한 외화를 벌고 있다. 과거 개성공단사례에서도 보듯이 조선이 파견한 병사와 노동자들이 벌고 있는 외화의 상당액은 조선 정부에게 돌아가고 있다. 

조선은 국가의 비용으로 사병과 노동자들의 일체 생활을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외화 수입을 분배한다. 조선이 탄약과 일부 미사일 등 재래식 무기를 러시아에 수출하면서 관련된 무기산업, 중화학산업의 생산량이 증가하고 있다. 러시아인들의 조선 관광이 늘고 있어 관련된 운수업, 숙박업도 회복하고 있다. 


평양뿐만 아니라 지방의 경제사정도 좋아져

조선이 2024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지방발전 20×10 정책》으로 지방의 경공업이 발전하고 있다. 이 정책은 조선의 약 200여 '군(郡)' 중에서 매년 20개 군을 대상으로 10년 안에 현대적인 지방공업공장을 건설하여 10년 후 모든 군에서 경공업의 기반을 다진다는 프로젝트이다. 주로 가공식료품, 생필품 등에 집중돼 있어 조선 인민들의 전반적인 삶의 수준을 개선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러한 영향으로 조선의 경공업과 중화학공업이 성장하면서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제조업 성장률이 2024년 7.0%, 2025년 6.6%로 높은 수준이다. 


교역도 증가하고 무역적자도 개선 중

2025년 조선의 대외교역 규모는 31억3천만달러로 전년보다 16.0% 증가했다. 전년에 비해 수출(4억7천만달러)이 30.0% 증가했고 수입(26억6천만달러)은 13.9% 늘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와 한국개발연구원(KDI) 등의 통계 자료에 따르면, 2025년 조선의 대외무역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98.2%이다. 다만 러시아 파병이 후 러시아와의 교역이 급증하고 있다. 

반면 남북의 교역규모는 전무하다. 2016년 3억3천260만달러에 달했던 남북 교역규모는 그해 개성공단 폐쇄 조치 이후 급감해 2020년 390만달러, 2021년 110만달러, 2022년 10만 달러에 그쳤으며 2023년부터 작년까지 3년간은 실적이 아예 없었다.


전력난은 각 단위의 소규모 태양광으로 극복 중

화력발전의 감소에도 불구하고 평양과 주요 도시의 전력난이 상당한 수준으로 개선되고 있다. 조선의 공식적인 전력생산량은 눈에 띠게 증가하지 않으나 통계에 잡히지 않는 태양광 같은 소규모 전력생산이 급증하고 있다. 개인은 물론 지방과 기업에서 중국산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여 군부대, 기업, 가정에 전기를 공급하고 있다. 가정집에서 지붕, 창문 등에 태양광을 설치해 조명, 가전제품 등을 사용하고 있다. 

2018년 당시 조선 일반 가구가 사용하는 전력의 7%를 태양광에 의존했는데, 최근 미중관계가 악화되면서 경제제재로 주춤했던 태양광 패널 수입이 늘고 있으며, 조선 내부의 자체 생산량도 늘고 있다. 국가 차원에서 남는 전기를 국가 전력망에 보내고 부족할 때 회수해 쓰는 계통병렬형(연결형) 시스템을 운영하면서 전력 효율성을 개선하고 있다. 


미군 네이비 씰은 왜 조선을 두 번이나 침투했나

지난 8월 1일 뉴욕타임즈 보도에 따르면 미국 해군 네이비씰이 비밀리에  2005년과 2019년 두 차례 조선 해안에 침투했다는 사실을 지난 2025년 9월 보도한 뉴욕타임즈 매슈 콜 기자에게 미국 법무부가 올해 2월 연방 대배심소환장을 발부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국가기밀을 누설한 제보자를 찾겠다고 주장했으나, 뉴욕타임즈는 취재원을 끝까지 보호하겠다는 입장이다.

뉴욕타임스의 보도에 따르면, 미군은 2005년과 2019년 두 차례 조선에 네이비 씰 대원들을 침투시켰다. 모두 미국 대통령의 승인 아래 한국에 알리지 않은 특수작전이었다. 

조선이 핵무기 개발을 공식화하던 2005년 알려지지 않은 시기에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명령으로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 씰 팀이 핵개발과 관련된 정보를 수집하는 도감청장비를 설치하기 위해 조선에 침투했다. 대원들이 야간에 소형 잠수정(미니서브)를 타고 조선의 해안가로 침투해 임무를 수행한 후 조선에 들키지 않고 복귀했다.

2017년 1월 1일 김정은 위원장은 신년사를 통해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가 마감 단계"라고 밝혔다. 조선은 7월 1만 킬로를 비행해 미국 서부 해안도시를 폭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화성-14형'을 발사하고 9월 수소폭탄 규모인 제6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11월 29일 미 본토 전역을 사정권에 둔 '화성-15형'을 발사한 후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포했다. 

2017년 8월 미국 국방정보국(DIA) "조선이 미 본토에 닿을 수 있는 미사일에 장착 가능한 핵탄두의 소형화에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가 보지 못한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고 조선은 '로켓맨의 망발'이라며 맞받아쳤다. 

9월 19일 트럼프 대통령은 유엔총회 연설에서 "조선이 미국과 그 동맹국들을 위협한다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완전히 파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밥 우드워드의 저서에 따르면 당시 미국 정부가 참수 작전 및 선제 타격(Bloody Nose) 등 구체적인 전쟁 시나리오를 검토했다. 

미국 정부는 조선과의 전쟁으로 수백만 명이 사망할 것으로 예측했다. 제임스 매티스 당시 미 국방장관은 조선의 항구 폭격을 검토하고 참모들과 밤새 옷을 입고 자며 핵전쟁에 대비했다. 2018년 1월에는 하와이와 일본 NHK에서 "조선의 미사일이 발사됐다."는 오경보가 울려 주민들이 방공호로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기점으로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고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최초의 북미정상회담이 개최됐다. 싱가포르 회담에서 북미는 합의문을 발표했으나 2019년 하노이 북미회담에서 구체적인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북미관계는 소강상태에 빠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김정은 등 조선 최고위층을 도청하고자 했다. 중앙정보부는 조선의 해안에 침투하여 통신망에 도감청장치를 설치하는 작전을 수립했다. 트럼프의 승인 후 합동특수전사령부(JSOC)는 핵 잠수함, 네이비 씰 팀, 운송차량팀, 그리고 예비 병력으로 대기하는 해군 함정과 특수부대 병력을 태운 항공기를 동원하는 대규모 작전을 준비했다.

2019년 1월 특수부대 네이비 씰 대원들은 해군 핵잠수함에서 출발한 두 척의 소형 잠수정을 타고 전자 감청장치를 설치하기 위해 조선에 침투했다. 잠수정은 해안에서 약 100야드 떨어진 수중에 정박했으며, 대원들이 수영으로 해안에 접근했다. 

하지만 그곳에 어부 2-3 명을 태운 보트가 이미 와 있었다. 어부들은 잠수정에서 새어나오는 빛을 알아채고 그 중 한명이 다이빙 슈트를 입은 채 바다로 뛰어들었다. 대원들은 보트에 있던 어부들을 모두 사살하고 시신의 폐에 구멍을 내는 방식으로 시신을 수장시켰다. 대원들은 작전을 포기하고 잠수함으로 복귀했다.

한편 미 의회 정보·군사 감독위원회는 네이비씰의 조선 침투 당시 관련된 보고를 받지 못했으며 백악관은 관련 사항에 대해 공개적인 언급을 회피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제보자를 반드시 색출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조선 역시 지금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지만 2019년 네이비씰의 비밀침투가 발각된 직후 미국의 첩보 인공위성은 해당 지역에서 조선인민군의 급격한 활동증가를 탐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민들이 내란진압으로 준 기회를 권력다툼으로 탕진하는 민주당

지지세력만 보는 양당제의 팬덤정치가 위기를 가속화

미국이나 한국이나 양당정치는 국민을 두 패로 나눈다. 그리고 그 패거리들 중에서 극렬한 지지자들이 떼거지로 몰려다니면서 정당민주주의를 망친다. 즉 당내 선거와 투표를 통해 권력의 방향을 지배한다. 트럼프가 열성지지자들을 동원해 당내 경선에서 반대파를 제거했듯이 이재명도 지역경선에 당심이라는 명분으로 전국의 팬덤들을 동원했다. 즉 비판세력을 제거하고 후보들을 충성파로 채웠다. 팬덤들이 당을 지배하고 국가권력의 판도를 바꾸는 것이다. 

물론 윤석열은 팬덤만 보다가 내란과 비상계엄으로 자폭했고 황교안은 아직도 부정선거 팬덤정당을 이끌고 있다. 장동혁도 통일교, 신천지 등 극우 극렬당원들의 지지만 믿고 국민의힘에서 버티고 있다. 

이런 극렬세력들이 과다대표되면서 여론이 왜곡되고 극렬 언론들은 또 이걸 확대재생산하면서 정치를 난장판으로 만들고 있다. 조용한 다수는 오히려 과소대표되면서 민주주의가 위기로 치닫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조국과 같은 386정치인들, 유시민과 김어준과 같은 인플런서 등 소위 민주진영이 권력다툼에 빠진 건 민주화운동세대라는 오만과 독선, 국민의힘 등 보수세력이 내란으로 몰락했다는 안이한 정세관 때문이다. 

하지만 좀 더 구조적인 원인은 양당제의 적대적 공생관계이다. 어차피 민주당과 보수정당이 선거를 통해 번갈아 권력을 차지하므로 대국민정치보다 당내 정치에 몰두한다. 특정 정파들이 선거를 앞두고 미리 당권을 장악하기 위해 투쟁하는 것이다. 


문재인과 유시민의노욕, 조국과 정청래의 과욕, 김어준의 건방짐

문재인 전 대통령이나 유시민이 은근히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으로 이어지는 386 정치인의 대부 혹은 킹메이커처럼 장막 뒤에 있거나 링에 오르는 건 노욕이다. 386들이 운동권 비주류인 이재명 세력을 견제하고 조국에게 대권을, 정청래에서 당권을 고려하는 듯한 설익은 로맨스를 추진하다 실패했다. 그 후유증 때문에 지방선거에서 민주진영이 분열되고 평택, 서울, 경남에서 내란정당에 패배했다. 

정청래가 탄핵재판 때 얼굴 좀 알렸다고 386세력들을 등에 업고 대통령과 경쟁하는 건 본인의 정치경력에 비추어 과욕이다. 국민들에게 김어준이 킹메이커처럼 언론을 권력수단으로 활용하는 것도, 그런 김어준에 비굴한 금배지들도 다 한심하게 보인다. 


이재명과 김민석 및 송영길의 시대착오적 조합

이재명 대통령은 훌륭한 자수성가형 대통령이다. 하지만 이제는 성과를 남기고 아름다운 퇴장을 만들어가야 한다. 차기 대선주자들에게 꽃길을 만들어주고 인기에 연연하지 말고 자신의 국정목표를 무게 있게 달성해야 한다. 하지만 이재명 대통령은 마치 재선이 가능한 트럼프 대통령처럼 보여주기식 정치를 계속하고 있다. 전례 없는 국무회의 정치 쇼와 가벼운 SNS정치는 과유불급으로 역효과를 내고 있다. 

김민석은 훌륭한 정치인이다. 2002년 대선에서 정몽준 캠프에서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에 공을 세웠지만 386정치에서 이탈한 경력으로 배신자 낙인이 찍혀 있다. 김민석은 본인의 힘으로 그 낙인을 극복하고 대선주자로 나서야지 친명과 친청의 대리전에서 장수처럼 나서면 장기적으로 필패다. 현직 대통령과 운명을 같이하는 대선주자가 성공한 적이 없다.

송영길은 훌륭한 대중정치인이지만 영욕을 누릴 만큼 누렸다. 정치생명을 연장하려는 발버둥이 권력에 취한 386의 일그러진 모습을 보는 것 같다. 비록 본인은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측근이 유죄판결을 받았다. 

본인의 무죄판결도 돈봉투 자체가 부정된 것이 아니라 검찰의 위법한 증거수집 때문이다. 검찰이 이재명 정부에서 이례적으로 뒤집어진 항소심 판결에 대해 대법원에 상고하지 않았다. 송영길이 이재명을 크게 도와준 적이 있지만 이제는 국민들을 무시하는 권력다툼을 중단하고 도덕적 책임과 역사적 소임을 겸허히 수용해야 할 처지다. 


매는 버는 이재명의 정치행태

대통령의 주요 임무는 대국민메세지를 던지는 것이지 실무를 챙기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은 관료들에게 국정방향을 제시하고 청와대 참모들은 관료를 통제하면 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시대 때도 없이 관료들을 구박하는 국무회의는 역효과를 낸다. 일단 대통령이 그렇게 맨날 언론 쇼를 하면 국민들은 식상해지고, 실무 실패의 리스크를 관료가 아닌 대통령이 지게 된다. 

대통령은 관료보다 실무를 잘 안다고 국민에게 어필할 필요가 없다. 명문대 출신의 386정치인들한테 자신이 뛰어나다고 어필할 필요도 없다. 대통령의 실무 간섭이 심해지면 관료들은 창의성을 잃게 되고 국정책임은 사소한 것까지 대통령 몫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주식정책과 부동산정책의 사소한 것까지 국민들 앞에서 나섰다가 정책실패로 인해 지지율 추락의 주요 원인을 제공했다. 


측근 정치가 초래한 국회의장의 자폭 구설수

이재명 대통령과 친명세력들이 조정식 의원을 국회의장으로 발탁한 것은 중대한 인사참사다. 국회의장은 단순히 최다선 의원들이 하는 것이 아니라 상징적인 정치지도자가 하는 것이다. 

조정식 의원은 첫째 민주당 관료 출신으로 온실에서 키워진 실무형이지 산전수전을 겪은 노련한 정치지도자가 아니다. 둘째 이재명 대통령의 정무특보에서 국회의장이 됐는데, 대통령의 직속 부하를 국회의장으로 발탁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결국 조정식 의원은 과거 관례를 상투적으로 답습하여 국회의장이 주도하는 개헌을 추진하겠다는 정세에 맞지 않는 호기를 부렸다. 거기에 더해 헌법상 금지돼 있는 현직 대통령의 연임을 위한 개헌문제를 모호하게 답변하면서 야당과 보수언론에게 빌미를 주고 국민들에게 낮도깨비같은 황당함을 안겨주었다. 과욕과 일그러진 충성이 빗어내 참사이다. 


앞으로 총선까지 2년이 개혁의 적기

2026년 6월 지방선거 이후 2028년 4월 총선까지 근 2년 동안 선거가 없다. 그렇다면 2027년 말까지 지지율에 신경 쓰지 않고 과감한 개혁을 추진하고 선거가 있는 2028년부터 지지율 관리를 하면 된다. 

첫째 내란세력을 청산할 수 있는 시간표는 2028년 총선 전까지다. 다음 총선에서 내란세력 청산 구호는 약효가 떨어지고 핵심 이슈는 이재명 정부에 대한 중간심판이다. 둘째 유권자들이 내란에 가담한 국민의힘의 어두운 과거를 기억하고 있을 때 내란잔당들이 재집권할 수 없는 정치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정권을 교대로 차지하는 양당제를 혁파하여 제3의 집권가능한 대안정당이 가능한 정치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보여주기 정치를 중단해야 한다. 문재인과 유시민은 원로로서 정치에 개입하면 안 된다. 조국은 밑바닥에서 더 경험을 쌓아야 대국민정치 감각을 체득할 수 있다. 김어준은 민주당의 조선일보같은 작태를 중단해야 한다. 정청래는 개꿈을 버리고 대통령과 협력해야 한다. 

민주당은 대미의존정치를 극복할 수 없다. 이재명 대통령이 노동친화적 행보를 하지만 경제를 핑계로 친자본정치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국민들이 내란진압을 준 기회를 제대로 활용한다면 각종 개혁에서 나름대로 성과를 낼 수 있다. 양당제에선 정치를 잘해도 계속 집권하지 못한다. 국민들이 집권정당에 싫증을 내고 이러저러한 이유로 정권을 교체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마치 다음 정권도 자기 것인양 국민심판을 두려워하지 않고 권력다툼에 빠질 것이 아니라 설사 차기 정권을 내준다고 해도 개혁을 제대로 완수하고 차차기 때 그 성과를 인정받겠다는 겸허한 자세로 임해야 한다. 

조선을 침범한 미국의 정찰기와 전략전폭기

1. 냉전시대 미국의 조선영공 정기 정찰

기밀 해제된 미 중앙정보국(CIA) 문서에 따르면 미 공군의 초고속 고공정찰기 SR-71 블랙버드는 1969년부터 동해에서 서해로 조선 상공을 여러 번 횡단하는 정찰비행을 반복적으로 수행해왔다. 1981년 8월 26일 블랙버드가 DMZ를 따라 조선인민군의 대규모 군사훈련을 감시하던 중 한강 하구의 조선 북안의 촉대리 부근 기지에서 소련제 SA-2(S-75) 지대공 미사일 2발의 공격을 받았다. 

하지만 정찰기의 전자 방어시스템(DEF)이 조선의 레이더 신호를 탐지해 즉각 자동 전자 교란(Jamming)을 시작했다. 요격미사일은 마하 3 이상 속도로, 8만 피트(약 24km) 고도로 비행하던 SR-71을 쫓아가지 못하고 정찰기에서 수  마일 떨어진 공중에서 자폭했다.

1983년 3월에도 조선은 격추를 시도했지만 요격용 미사일이 민가로 떨어졌다. SR-71은 1998년 고비용, 최신 미사일에 의한 격추 위험, 인공위성의 발전 등의 이유로 퇴역할 때까지 4천 번의 미사일 공격을 받았지만 단 한 대도 격추되지 않았다.

U2 고고도정찰기는 1976년 오산기지에 배치돼 50년 넘게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다. 이 정찰기는 글로벌 호크와 달리 전자장비 이외에도 광학카메라까지 장착하고 있으며 0.1미터의 물체를 식별할 수 있다. 또한 최고 25킬로 상공까지 오를 수 있어 보통의 대공미사일로 격추하기 힘들다. 다만 최고속도가 마하 0.7에 불과하고 동체가 약해 소련, 중국, 쿠바의 영공을 침범했다가 최신 S-75(SA-2) 지대공 미사일에 의해 격추된 적이 있다. 한국에선 단순 사고로 3차례 추락했다. 

조선은 2023년 7월 10일 국방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이 정찰기가 조선의 동해와 서해 상공의 영해를 침범해왔다고 주장했다. 반면 미군은 이 정찰기가 휴전선 이북에서 200킬로 내의 평양과 원산까지 정찰할 수 있어 조선의 영공에 진입할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2026년 현재 미국과 한국은 고고도 무인정찰기인 RQ-4 글로벌 호크를 운영하고 있다. 글로벌 호크는 야간이나 기상악화에 영향을 받지 않고 최장 36시간 동안 최고 20km 고도에서 전자장비로 반경 200km 내의  0.3m 크기의 지상 이동 목표물(MTI)을 정찰할 수 있다. 미국은 이 무인정찰기의 성능으로 인해 조선의 영공에 진입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글로벌 호크는 조선의 도발 징후가 있을 때 의도적으로 위치식별 장치(트랜스포더)를 켠 채 군사분계선 인근을 정찰하면서 조선을 압박한다. 조선은 2023년 7월 10일 담화를 통해  미군의 RC-135, U-2S 정찰기, 글로벌 호크 등이 조선의 영해 위 영공을 침범해왔다고 주장하며 격추하겠다고 위협한 바 있다. 


2. 북핵 개발과 미군전폭기의 조선 침투

2004년 2월과 6월 베이징에서 6자회담 및 실무회의가 열렸으나, 미국의 선(先)핵포기와 조선의 선(先)동결-보상 요구가 맞서며 성과 없이 중단됐다. 9월 최수헌 조선 외무성 부상은 유엔 총회 연설을 통해 “영변 원자로의 폐연료봉 재처리를 완료했으며, 이를 이미 핵무기화 했다.”고 선언했다. 

9월 9일 조선의 양강도 일대에서 대규모 폭발과 버섯구름 모양의 연기가 관측되어 국제사회가 핵실험 가능성을 제기했으나, 조선 측은 삼수발전소 건설을 위한 발파 작업이라고 해명했다.

2005년 2월 10일 조선 외무성은 성명을 통해 자위권을 위해 핵무기를 제조·보유하고 있음을 전 세계에 공식 선언하고, 6자회담 참가 중단을 발표했다. 조선은 4월 영변원자로 가동을 중단한 후, 핵폭탄 수 개를 만들 수 있는 분량의 사용후 핵연료봉을 인출하여 재처리에 들어갔다. 

7월 6자회담이 재개돼 9월 19일 조선이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계획을 포기’하는 대신 체제 안전 보장과 에너지를 지원받는 9·19 공동성명이 타결됐다. 하지만 미국 재무부가 조선의 통치 자금이 묶인 마카오의 BDA 은행을 돈세탁 우려 기관으로 지정하고 자금을 동결하자 조선이 반발하면서 9·19 성명의 이행은 곧바로 중단됐다. 

미국은 조선에게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는 협상에 나서도록 최첨단 무기를 통해 압박해왔다. 특히 미국의 스텔스 전투기 F-117 나이트호크는 군사훈련 기간 중 수 차례 조선 영공에 침투했다. 일본의 극우 잡지 ‘사피오’(SAPIO) 2005년 8월 24일자 기사에 따르면 2005년 6월 F-117 전투기 15대가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 머물고 있는 ‘특각’ 상공에서 급강하와 급상승을 반복했다. 2004년 일본의 문예춘추도 F117이 조선 영공을 침입한 적이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F-117 조종사 마이클 드리스콜(Michael Driscol) 대위가 2008년 4월 23일 ‘에어포스타임스’(Airforcetimes)와의 인터뷰에서 “2007년 F-117를 조종하면서 조선 영공을 휘젓고(buzzing) 다녔다.”고 밝혔다. 

미국이 스텔스 전폭기를 침투할 때마다 조선은 긴급대응에 나섰지만 탐지가 어려워 격추할 수 없었다. 조선은 경비 문제로 스텔스 전투기를 탐지할 수 있는 고성능 레이더를 비상시에만 작동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이 영공 침입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국가의 체면 때문에 공식적으로 항의하지 못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2008년 에어포스타임스 기사에 따르면 F-117 퇴역 이후 F-22 랩터가 조선의 영공을 침입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2007년 7월 26일 자유아시아방송(RFA)이 인용한 홍콩 봉황 TV의 보도에 따르면 F-22 전투기가 8대가 괌 기지를 떠나 일본 상공에서 공중급유를 한 다음 북한 북쪽 영공에 들어갔다 안전하게 돌아왔다. 

홍콩 봉황 TV는 정확한 날짜까지는 밝히지 않았으나 이 보도의 취재원인 대만 삼군대학 교관 송조문에 의하면 F-22 전투기가 군사 목표물 위에서 선회를 했고 모의 공격을 시도했다. 당시 한국군 관계자의 증언에 따르면 미국의 스텔스기가 한국에도 사전통보를 하지 않고 갑자기 나타난 적이 몇 번 있었고 그때마다 조선에서 예민한 보도가 나왔다.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의 조선 자금 동결 문제가 다뤄진 2007년 2.13 북미협상 당시에도 미국은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일본의 오키나와 가데나 공군기지에 F-22전투기 12대를 전진 배치해 조선을 압박했다. F-22가 미 본토 이외의 장소에 배치된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랩터는 미국 본토  랭글리 기지, 알래스카, 하와이를 모기지로 하여 상시 배치돼 있으며, 이 랩터들이 괌이나 가데나 기지에 전진 배치되고 있다. 한국에는 2016년 오산기지, 2018년 광주기지, 2024년 군산기지에 임시로 배치됐지만 최대 2주 이내로 국한됐다.

현재 괌에 F-22 18기가 전진 배치되어 있으며, 유사시에는 공중급유를 받아가며 초음속 순항으로 다른 전투기나 전략폭격기 보다 훨씬 빠른 시간에 조선을 타격할 수 있다. 

조선의 핵무장 이후 미국의 전략폭격기가 한반도 상공에 자주 진입하고 있다. 2017년 북미 간에 핵전쟁 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9월 23일 미국 국방부의 발표에 따르면 B-1B 재래식 무기 전략폭격기 랜서(죽음의 백조)가 동해상의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조선 쪽 국제공역을 비행했다. 이 비행에는 호위용 F-15C 외에도 급유기·전자전기·구조헬기 등 실제 타격 임무를 수행하는 공격 편대군이 참가했다. 다만 공격 편대는 조선의 방공용 지대공미사일 SA-5(S-200)의 최대사거리 (250~300㎞) 밖에서 비행했다.

한반도에 자주 나타나는 랜서와 달리 미 공군의 B-2 스피릿(Spirit) 스텔스 전략 폭격기(침묵의 암살자 혹은 유령)가 공식적으로 한반도 상공에 출격하여 훈련을 수행한 것은 2013년 3월 28일 단 한 차례이다. 이날 두 대의 스피릿이 미 미주리주 화이트맨 공군기지에서 이륙해 공중급유를 받으며 만 km 이상을 날아와 서해 직도 사격장에 모의 핵폭탄(inert munitions)을 투하하는 훈련을 마친 뒤, 미국 본토로 복귀했다. 

당시 조선의 3차 핵실험 및 정전협정 백지화 선언 등으로 한반도 긴장이 극도로 고조되자, 미국이 강력한 확장억제 의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이례적으로 출격 사실을 공개했다. 스피릿은 핵무기 전략폭격기이므로 한미가 한반도비핵화를 추구하고, 이 핵전략폭격기가 한반도에 진입하면 조선이 이에 대응하는 핵무기 개발이 정당화되기 때문에 한반도 근처에는 오지 않는다. 특히 미국이 고도의 비밀을 유지하는 가장 비싼 군용기이다. 

반면  B-52H 핵무기 전략폭격기 스트래토포트리스(하늘의 요새)는 수차례 한반도에 진입했으며, 특히 2023년 청주기지에 착륙하고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항공우주·방위산업 전시회 개막식에서 낮은 고도로 축하 비행을 선보이며 비행 모습이 공개됐다

한국전쟁 이후 미군의 조선 침투와 미군의 사상자

2025년 8월 18일 한미동맹재단과 주한미군전우회는 한국전쟁 이후 조선(북한)과의 전투로 사망한 주한미군 103명을 추모하는 도서 『6·25전쟁 이후 전사한 주한미군 공훈록』을 출판했다. 

미군과 조선인민군은 1955년 미군 훈련기 격추사건부터 1994년 헬기 격추사건까지 10여 차례 교전했으며, 1968년 한 해만 군사분계선 부근에서 조선인민군과의 전투로 미군 13명이 전사하고 42명이 부상을 당했다. 전투는 미군의 도발에 의한 것과 조선인민군의 도발에 의한 것으로 분류된다. 조선의 도발에 의한 것들에 비해서 미군의 도발에 의한 것들은 냉전구조 아래에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미군의 도발은 대부분 항행의 자유라는 명분을 내세워 해상과 공중에서 조선의 영토 코 앞까지 진출하여 조선을 압박하다가 발생한 사건들이다. 

1955년 8월 17일 미 공군 소속의 소형 훈련기(LT-6)가 비무장지대 남측 선을 따라가다 중부전선 김화 동쪽 약 12마일 지점 상공에서 조선 영공을 침범하여 조선인민군의 대공포에 의해 격추됐다. 

조종사 범퍼스 중위(Guy H. Bumpus)는 머리에 부상을 입고 조선인민군에 잡혔으나 관측관 찰스 브라운 대위(Charles W. Brown)는 격추 당시 사망했다. 조선인민군은 유엔사령부와 협상 끝에 8월 23일 시신과 포로를 비무장지대를 통해 돌려줬다. 

1965년 4월 28일 미 공군 소속의 RB-47 정찰기가 신호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동해의 조선 원산항에 접근했다가 조선 공군 MiG-17 전투기 두 대로부터 기관총 사격을 받았다. 이에 정찰기는 기체 후방에 장착된 20mm 원격 제어 기관포(Tail Cannon)로 반격했다. 

미군 정찰기는 동체와 날개 등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으나 탑승자 6명 전원이 부상 없이 일본의 요코다 공군기지로 귀환했다. 조선은 미군기가 영공을 침범했다고 주장했으나 미군은 원산으로부터 약 80마일 떨어진 공해상에 있었다고 반박했다. 

당시 미국과 한국은 베트남 전쟁에 대규모 병력을 파견하기 시작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선과의 전쟁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미국은 이례적으로 조선인민군에 대해 보복을 하지 않고 오히려 정찰노선을 원산으로부터 150마일 밖으로 후퇴했다. 

1968년 1월 23일 미 해군 정보수집함 USS 푸에블로호가 원산 앞바다에 접근했다가 조선 해군 초계정 4척과 미그기 2대의 공격을 받았다. 미군 승조원 1명이 사망하고 여러 명이 부상을 입었으나 푸에블로호는 50구경 기관총 2정만 갖추고 있었지만 저항하지 못하고 나포됐다. 

미국은 핵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호를 동해에 전개하고 공군 전폭기를 한반도 주변에 배치했지만 결국 28차례에 걸친 협상 끝에 결국 영해 침범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문서에 서명했다. 사건 발생 11개월 만인 1968년 12월 23일, 승조원 82명과 시신 1구가 판문점을 통해 미국 측으로 인도됐다. 

푸에블로호 선체는 조선에 의해 해체 후 육지도로로 운송돼 평양 대동강 변의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에 전시되고 있다. 푸에블로호는 미 해군 역사상 유일하게 외국에 나포된 현역 군함(USS)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1969년 4월 15일 미 해군 소속의 EC-121 정찰기가 조선과 소련 지역의 전파정보를 수집할 목적으로 일본 아쓰기 해군 비행장에서 이륙해 동해 조선의 청진시 남동쪽 해상으로 접근했다. 정찰기는 조선인민군의 MiG-21 전투기로부터 미사일 공격을 받아 해상에 추락했다. 

격추 지점에 대해 조선은 영공이라고, 미국은 공해상이라고 주장하며 서로 비난했다. 하지만 당시 베트남 전쟁에 전력을 집중하던 닉슨 행정부는 군사보복 대신 기동부대 파견과 정찰기 호위 조치만 취한 채 사건을 마무리했다.

이 사건으로 오버스트리트 해군소령 외 탑승자 31명 전원이 사망하여 냉전 시기 미군과 공산권의 군사적 충돌 중 단일사건으로는 가장 많은 미군 사망자가 발생했다. 

단일사건으로 가장 많은 사망자가 나온 전투는 제3차 중동전쟁(6일 전쟁) 중이던 1967년 6월 8일 일어났다. 이날 이스라엘 공군 전투기와 해군 고속어뢰정이 국제수역에 있던 미 해군 정보수집함 USS 리버티호를 기습 공격해 미 해군 승조원 34명이 사망하고 171명이 부상했다.

1977년 7월 14일 미 육군 CH-47 치누크 헬기가 평택의 캠프 험프리스를 이륙해 비무장지대에서 정찰 중 비무장지대 동쪽 끝자락에서 북쪽으로 기수를 틀었다. 한국군 초소에서 항로를 이탈했음을 알리기 위해  경고사격을 했으나 헬기는 조선 영공으로 진입했다. 

조선인민군이 사격을 하자, 헬기는 기체 점검을 위해 조선영토에 잠시 착륙했으나 조선인민군이 접근하자 남쪽으로 이륙했다. 헬기는 조선인민군의 대공사격으로 군사분계선 북방 약 4km 지점에서 격추됐다. 승무원 3명이 사망하고 부조종사 글렌 슈완케(Glenn M. Schwanke) 준위는 부상을 입은 채 생포됐다. 카터 대통령은 사고 직후 조선에 사과했고 조선은 7월 16일 판문점을 통해 생존자와 승무원 3명의 유해를 송환했다.

1979년 12월 판문점 부근 군사분계선에서 정찰임무를 수행 중이던 미군 병사가 짙은 안개로 북쪽 지역으로 넘어가 북이 설치한 지뢰를 건드려 부상당했다. 이를 구하려다 동료도 지뢰폭발로 사망했다.

1994년 12월 17일 주한미군 OH-58C 카이오와 헬기가 강원도 인제군 비무장지대(DMZ) 인근에서 정찰 비행 중 조선의 강원도 금강군 지역으로 침범했다. 조선인민군이 휴대용 대공 미사일 또는 고사포를 발사하여 헬기를 격추했다. 헬기 불시착 과정에서 조종사는 사망하고 부조종사는 생포됐다. 

조선은 12월 22일 조종사의 유해를 판문점을 통해 송환했으나 부조종사를 간첩 협의로 억류했다. 미국 정부는 토마스 허버드 국무부 부차관보를 평양에 특사로 파견했다. 특사가 조선에 영공침범 사실을 인정하고 유감의 뜻을 표명하는 합의서에 서명한 후 부조종사는 2월 30일 판문점을 통해 귀환했다.

베트남 전쟁과 제2한국전쟁, 대만전쟁과 제3한국전쟁

1. 조선의 특수부대 양성과 베트남에서 남북 간의 대리전쟁

1956년 8월 조선 내의 친중파와 친소파가 손을 잡고 김일성 수상을 숙청하려다 김일성의 빨치산 세력의 저항으로 실패했다. 이 8월 종파사건 이후 조선은 친중파와 친소파를 제거하고 중국군을 철수시키는 등 주체노선을 정립했다. 

특히 1950년대 말부터 중소분쟁으로 조선은 중소 어느 쪽에도 의존하지 않는 자주국방을 추구했다. 또한 쿠바 미사일 위기로 소련군이 쿠바에서 전면 철수하자 쿠바와 비슷한 처지에 놓일 수 있는 조선은 더욱 위기감을 느꼈다. 이에 1962년 12월 조선로동당 제4기 제5차 전원회의는 전 인민의 무장화, 전국의 요새화, 전군의 간부화, 전군의 현대화를 내용으로 하는 '4대 군사 노선'을 채택했다. 조선은 새로운 군사노선에 따라 한국을 기습공격할 수 있는 대규모 특수부대를 양성했다. 

한편 한국은 미국의 요청으로 1965년 10월부터 1973년까지 8년 동안 해병 청룡부대와 육군 맹호부대, 백마부대 등 연인원 약 32만 5,000여 명의 정예부대를 파병했다. 한미가 베트남 전쟁에 주력부대를 투입함에 따라 조선과의 전면전이 사실상 곤란한 상황에 놓였다. 반면 조선이 북베트남을 지원하는 공산권에 합세하여 한국과 주한미군을 교란하고 한국군의 추가파병을 막고자 소규모 침투를 반복했다. 

한국과 조선은 베트남에서 대리전쟁을 치렀다. 조선은 1966년부터 1973년까지 북베트남을 지원하기 위해 공군 조종사와 공병부대 등을 비밀리에 파병했다. 약 60~80명의 전투 조종사와 40여 명의 정비·지원 병력이 파병됐다. 조선인민군 조종사들은 미그(MiG)-17, 미그-21 전투기를 몰고 주로 하노이 영공을 방어했으며 미군 전투기와 공중전을 치렀다. 

최소 14명에서 수십 명의 조선인민군 조종사가 사망했고 유해는 조선으로 송환됐지만 베트남 하노이 인근 박장성에 조선인민군 전사자 묘지가 조성됐다. 2019년 김정은 위원장의 베트남 방문에 앞서 2월 17일 조선의 실무 대표단이 박장성의 전사자 묘역을 참배했다. 

또한 조선은 2개 공병여단 약 3,000~4,000명을 보내 북베트남 군사기지와 지하 갱도 건설을 지원했다. 이 밖에도 심리전 부대를 보내 한국군을 대상으로 한 투항 권고 방송을 진행하기도 했다. 조선은 소총과 각종 무기 10만여 정과 군복 100만 벌 등 전쟁 물자를 제공했다. 조선이 파병한 이유는 공산권 국가들과의 협력을 강화해 이들의 지원을 받는 한편 파병을 통해 현대전 전술을 익히고 미군의 전술을 파악하고자 했다. 


2. 베트남 전쟁의 한미전력을 분산시키려는 조선의 게릴라 침투

‘제2의 한국전쟁(The Second Korean War)’은 미군이 인정한 것으로서 1966년 10월부터 1969년 12월까지 비무장지대(DMZ)와 후방 지역에서 발생한 교전을 말한다. '제2의 한국전쟁' 중 한국군 299명, 미군 75명이 전사했으며 국군 550명, 미군 111명이 부상당했다.​ 당시 조선은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을 저지하고 미국의 전력을 분산시키고자 했다. 

조선은 소규모 특수부대를 침투시켜 청와대를 습격하거나 울진·삼척 지역에서 게릴라 전투를 감행했다. 또한 미군의 푸에블로호 나포와 정찰기 공격 등 해상과 공중에서 미군의 도발에 대해 강경한 대응을 유지했다.

한국은 1·21 사태에 보복하려고 실미도 684부대를 비밀리에 운영했다. 이외에도 한국은 준전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향토예비군 창설, 육군3사관학교 개설, 남산터널과 같은 대규모 방공호 건설, 간첩을 색출하기 위한 주민등록제도 도입, 고교와 대학에 교련 과목 신설 등을 시행했다. 

1963년 7월 29일 새벽 5시 40분경에 군사분계선 남방 100m 지점에 매복한 조선인민군이 휴전선을 경비하던 미 2사단 병력을 기습하여 2명이 사망하고 1명이 부상당했다. 1966년 린든 B. 존슨 대통령의 방한에 맞춰 11월 2일 조선인민군이 순찰을 돌던 미 2사단 병력들에게 총격을 가해 미군 병사 6명과 카투사 1명이 사망했다.

1967년 5월 22일 조선인민군이 서부전선의 미 2사단 초소 2곳을 공격하여 미군 2명이 전사하고 19명이 중상을 입었다. 1967년 8월 7일 야간에 판문점 남방 대성동 자유의 마을 앞에서 미군 군용 트럭이  침투한 북한군의 매복 공격으로 미군 3명이 전사하고 17명이 부상당했다. 1967년 8월 28일 판문점 인근에서 지원임무를 맡던 미 제76공병대 병력이 기습을 받아 미군 2명, 국군 2명이 전사하고 25명이 부상을 당했다. 

1968년 1월 21일 청와대 인근에서 군경과의 교전 후 뿔뿔이 흩어진 조선인민군 124군 소속 부대원들이 비무장지대(DMZ)를 통해 북측으로 탈출하고자 했다. 이에 주한미군 제2사단의 책임구역인 서부전선 DMZ 철책 지대에 퇴로차단 및 소탕 작전명령이 내려졌다. 

124군 소속 부대원들은 자신들이 남침한 미 제2사단 담당 철조망 구역을 통해 월북을 시도하면서 임진강과 DMZ 일대에서 미군 순찰조 및 매복조와 여러 차례 교전이 발생했다. 1월 26일 124군 소속 부대원들은 미 2사단 72기갑연대 소속 중대와 교전했으며, 이때  살바도르 모히카 이병(18세)가 전사했다. 모히카 이병 외 총 3명의 미군이 전사했다. 

1968년 4월 14일 야간에 판문점 경비교대를 위해 트럭을 타고 이동하던 미군이 대성동 마을 입구에서 매복 중이던 조선인민군의 기습을 받아 미군 2명과 카투사 한국군 2명이 전사하고 2명이 중상을 입었다.

1969년 3월 15일 비무장지대 내에서 군사분계선 표식 작업을 하던 미 2사단 23연대 소속 병사들이 조선인민군의 총격으로 사망하거나 부상당했다. 이 전투 직후 미군 사상자를 구조한 헬기는 이륙 후 조선인민군의 공격으로 추락했다. 군의관인 벤자민 스펜서 박 주니어 대위를 포함한 탑승자 7명 전원이 사망했다. 

베트남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조선의 소규모 침투가 이어졌다. 남침용 땅굴이 연달아 발견되는 가운데 1974년 11월 20일 경기도 연천군 비무장지대 내 제1 땅굴을 수색하던 한·미 공동조사반이 부비트랩(위장 폭발물)을 건드려 미군 중령과 한국군 소령이 사망했다.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관측 시야 확보를 위해 미루나무를 제거하던 미군 소령 등 2명이 조선인민군의 폭행으로 사망했다. 미국이 데프콘 3를 발령하고 항모전단과 전략폭격기를 한반도 인근에 배치했다. 미군이 삼엄한 경비 아래 미루나무를 제거하는 폴 바니 작전을 감행하자 조선이 사과문을 보냈다. 사건 이후 남북 공동경비구역 내 군사분계선(MDL)이 설치되어 남북 공동경비구역이 사라지고 남북이 각자 영역을 담당했다. 


3. 대만전쟁과 제3한국전쟁 가능성

베트남 전쟁에 남북 모두 파병했듯이, 대만전쟁에 남북이 각각 미국과 중국을 위해 파병한다면 남북은 베트남 전쟁 때처럼 대만에서 대리전쟁을 하게 된다. 다만 미국은 한국군 주력이 대만전쟁에 참전하게 되면 대북방어에 구멍이 생겨 조선이 도발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미국은 대만과 한국에서 두 개의 전쟁을 치룰 수 없기 때문에 조선의 도발을 유발할 한국군의 파병에 소극적이다. 미국은 한국이 직접 파병하기보다 후방의 지원기지를 제공하기를 선호한다. 한국군이 직접 파병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조선은 한국군과 주한미군을 한반도에 묶어 두기 위해 베트남 전쟁 때처럼 국지적인 소규모 전투를 감행할 우려가 있다. 

중국 역시 대만전쟁이 일어나면 조선이 한국에서 군사적 긴장을 조성해 미군의 전력을 분산시키길 원할 수 있다. 특히 중국과 조선은 상대방이 침공받으면 자동적으로 참전하는 상호방위조약을 맺고 있다. 조선은 대만전쟁이 일어나면 한국에서 전면전이 일어나는 것을 원하지 않지만 핵무기를 통해 전면전을 억제할 수 있다고 자신하면 소규모 침투를 시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