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이 내란진압으로 준 기회를 권력다툼으로 탕진하는 민주당

지지세력만 보는 양당제의 팬덤정치가 위기를 가속화

미국이나 한국이나 양당정치는 국민을 두 패로 나눈다. 그리고 그 패거리들 중에서 극렬한 지지자들이 떼거지로 몰려다니면서 정당민주주의를 망친다. 즉 당내 선거와 투표를 통해 권력의 방향을 지배한다. 트럼프가 열성지지자들을 동원해 당내 경선에서 반대파를 제거했듯이 이재명도 지역경선에 당심이라는 명분으로 전국의 팬덤들을 동원했다. 즉 비판세력을 제거하고 후보들을 충성파로 채웠다. 팬덤들이 당을 지배하고 국가권력의 판도를 바꾸는 것이다. 

물론 윤석열은 팬덤만 보다가 내란과 비상계엄으로 자폭했고 황교안은 아직도 부정선거 팬덤정당을 이끌고 있다. 장동혁도 통일교, 신천지 등 극우 극렬당원들의 지지만 믿고 국민의힘에서 버티고 있다. 

이런 극렬세력들이 과다대표되면서 여론이 왜곡되고 극렬 언론들은 또 이걸 확대재생산하면서 정치를 난장판으로 만들고 있다. 조용한 다수는 오히려 과소대표되면서 민주주의가 위기로 치닫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조국과 같은 386정치인들, 유시민과 김어준과 같은 인플런서 등 소위 민주진영이 권력다툼에 빠진 건 민주화운동세대라는 오만과 독선, 국민의힘 등 보수세력이 내란으로 몰락했다는 안이한 정세관 때문이다. 

하지만 좀 더 구조적인 원인은 양당제의 적대적 공생관계이다. 어차피 민주당과 보수정당이 선거를 통해 번갈아 권력을 차지하므로 대국민정치보다 당내 정치에 몰두한다. 특정 정파들이 선거를 앞두고 미리 당권을 장악하기 위해 투쟁하는 것이다. 


문재인과 유시민의노욕, 조국과 정청래의 과욕, 김어준의 건방짐

문재인 전 대통령이나 유시민이 은근히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으로 이어지는 386 정치인의 대부 혹은 킹메이커처럼 장막 뒤에 있거나 링에 오르는 건 노욕이다. 386들이 운동권 비주류인 이재명 세력을 견제하고 조국에게 대권을, 정청래에서 당권을 고려하는 듯한 설익은 로맨스를 추진하다 실패했다. 그 후유증 때문에 지방선거에서 민주진영이 분열되고 평택, 서울, 경남에서 내란정당에 패배했다. 

정청래가 탄핵재판 때 얼굴 좀 알렸다고 386세력들을 등에 업고 대통령과 경쟁하는 건 본인의 정치경력에 비추어 과욕이다. 국민들에게 김어준이 킹메이커처럼 언론을 권력수단으로 활용하는 것도, 그런 김어준에 비굴한 금배지들도 다 한심하게 보인다. 


이재명과 김민석 및 송영길의 시대착오적 조합

이재명 대통령은 훌륭한 자수성가형 대통령이다. 하지만 이제는 성과를 남기고 아름다운 퇴장을 만들어가야 한다. 차기 대선주자들에게 꽃길을 만들어주고 인기에 연연하지 말고 자신의 국정목표를 무게 있게 달성해야 한다. 하지만 이재명 대통령은 마치 재선이 가능한 트럼프 대통령처럼 보여주기식 정치를 계속하고 있다. 전례 없는 국무회의 정치 쇼와 가벼운 SNS정치는 과유불급으로 역효과를 내고 있다. 

김민석은 훌륭한 정치인이다. 2002년 대선에서 정몽준 캠프에서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에 공을 세웠지만 386정치에서 이탈한 경력으로 배신자 낙인이 찍혀 있다. 김민석은 본인의 힘으로 그 낙인을 극복하고 대선주자로 나서야지 친명과 친청의 대리전에서 장수처럼 나서면 장기적으로 필패다. 현직 대통령과 운명을 같이하는 대선주자가 성공한 적이 없다.

송영길은 훌륭한 대중정치인이지만 영욕을 누릴 만큼 누렸다. 정치생명을 연장하려는 발버둥이 권력에 취한 386의 일그러진 모습을 보는 것 같다. 비록 본인은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측근이 유죄판결을 받았다. 

본인의 무죄판결도 돈봉투 자체가 부정된 것이 아니라 검찰의 위법한 증거수집 때문이다. 검찰이 이재명 정부에서 이례적으로 뒤집어진 항소심 판결에 대해 대법원에 상고하지 않았다. 송영길이 이재명을 크게 도와준 적이 있지만 이제는 국민들을 무시하는 권력다툼을 중단하고 도덕적 책임과 역사적 소임을 겸허히 수용해야 할 처지다. 


매는 버는 이재명의 정치행태

대통령의 주요 임무는 대국민메세지를 던지는 것이지 실무를 챙기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은 관료들에게 국정방향을 제시하고 청와대 참모들은 관료를 통제하면 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시대 때도 없이 관료들을 구박하는 국무회의는 역효과를 낸다. 일단 대통령이 그렇게 맨날 언론 쇼를 하면 국민들은 식상해지고, 실무 실패의 리스크를 관료가 아닌 대통령이 지게 된다. 

대통령은 관료보다 실무를 잘 안다고 국민에게 어필할 필요가 없다. 명문대 출신의 386정치인들한테 자신이 뛰어나다고 어필할 필요도 없다. 대통령의 실무 간섭이 심해지면 관료들은 창의성을 잃게 되고 국정책임은 사소한 것까지 대통령 몫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주식정책과 부동산정책의 사소한 것까지 국민들 앞에서 나섰다가 정책실패로 인해 지지율 추락의 주요 원인을 제공했다. 


측근 정치가 초래한 국회의장의 자폭 구설수

이재명 대통령과 친명세력들이 조정식 의원을 국회의장으로 발탁한 것은 중대한 인사참사다. 국회의장은 단순히 최다선 의원들이 하는 것이 아니라 상징적인 정치지도자가 하는 것이다. 

조정식 의원은 첫째 민주당 관료 출신으로 온실에서 키워진 실무형이지 산전수전을 겪은 노련한 정치지도자가 아니다. 둘째 이재명 대통령의 정무특보에서 국회의장이 됐는데, 대통령의 직속 부하를 국회의장으로 발탁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결국 조정식 의원은 과거 관례를 상투적으로 답습하여 국회의장이 주도하는 개헌을 추진하겠다는 정세에 맞지 않는 호기를 부렸다. 거기에 더해 헌법상 금지돼 있는 현직 대통령의 연임을 위한 개헌문제를 모호하게 답변하면서 야당과 보수언론에게 빌미를 주고 국민들에게 낮도깨비같은 황당함을 안겨주었다. 과욕과 일그러진 충성이 빗어내 참사이다. 


앞으로 총선까지 2년이 개혁의 적기

2026년 6월 지방선거 이후 2028년 4월 총선까지 근 2년 동안 선거가 없다. 그렇다면 2027년 말까지 지지율에 신경 쓰지 않고 과감한 개혁을 추진하고 선거가 있는 2028년부터 지지율 관리를 하면 된다. 

첫째 내란세력을 청산할 수 있는 시간표는 2028년 총선 전까지다. 다음 총선에서 내란세력 청산 구호는 약효가 떨어지고 핵심 이슈는 이재명 정부에 대한 중간심판이다. 둘째 유권자들이 내란에 가담한 국민의힘의 어두운 과거를 기억하고 있을 때 내란잔당들이 재집권할 수 없는 정치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정권을 교대로 차지하는 양당제를 혁파하여 제3의 집권가능한 대안정당이 가능한 정치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보여주기 정치를 중단해야 한다. 문재인과 유시민은 원로로서 정치에 개입하면 안 된다. 조국은 밑바닥에서 더 경험을 쌓아야 대국민정치 감각을 체득할 수 있다. 김어준은 민주당의 조선일보같은 작태를 중단해야 한다. 정청래는 개꿈을 버리고 대통령과 협력해야 한다. 

민주당은 대미의존정치를 극복할 수 없다. 이재명 대통령이 노동친화적 행보를 하지만 경제를 핑계로 친자본정치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국민들이 내란진압을 준 기회를 제대로 활용한다면 각종 개혁에서 나름대로 성과를 낼 수 있다. 양당제에선 정치를 잘해도 계속 집권하지 못한다. 국민들이 집권정당에 싫증을 내고 이러저러한 이유로 정권을 교체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마치 다음 정권도 자기 것인양 국민심판을 두려워하지 않고 권력다툼에 빠질 것이 아니라 설사 차기 정권을 내준다고 해도 개혁을 제대로 완수하고 차차기 때 그 성과를 인정받겠다는 겸허한 자세로 임해야 한다. 

조선을 침범한 미국의 정찰기와 전략전폭기

1. 냉전시대 미국의 조선영공 정기 정찰

기밀 해제된 미 중앙정보국(CIA) 문서에 따르면 미 공군의 초고속 고공정찰기 SR-71 블랙버드는 1969년부터 동해에서 서해로 조선 상공을 여러 번 횡단하는 정찰비행을 반복적으로 수행해왔다. 1981년 8월 26일 블랙버드가 DMZ를 따라 조선인민군의 대규모 군사훈련을 감시하던 중 한강 하구의 조선 북안의 촉대리 부근 기지에서 소련제 SA-2(S-75) 지대공 미사일 2발의 공격을 받았다. 

하지만 정찰기의 전자 방어시스템(DEF)이 조선의 레이더 신호를 탐지해 즉각 자동 전자 교란(Jamming)을 시작했다. 요격미사일은 마하 3 이상 속도로, 8만 피트(약 24km) 고도로 비행하던 SR-71을 쫓아가지 못하고 정찰기에서 수  마일 떨어진 공중에서 자폭했다.

1983년 3월에도 조선은 격추를 시도했지만 요격용 미사일이 민가로 떨어졌다. SR-71은 1998년 고비용, 최신 미사일에 의한 격추 위험, 인공위성의 발전 등의 이유로 퇴역할 때까지 4천 번의 미사일 공격을 받았지만 단 한 대도 격추되지 않았다.

U2 고고도정찰기는 1976년 오산기지에 배치돼 50년 넘게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다. 이 정찰기는 글로벌 호크와 달리 전자장비 이외에도 광학카메라까지 장착하고 있으며 0.1미터의 물체를 식별할 수 있다. 또한 최고 25킬로 상공까지 오를 수 있어 보통의 대공미사일로 격추하기 힘들다. 다만 최고속도가 마하 0.7에 불과하고 동체가 약해 소련, 중국, 쿠바의 영공을 침범했다가 최신 S-75(SA-2) 지대공 미사일에 의해 격추된 적이 있다. 한국에선 단순 사고로 3차례 추락했다. 

조선은 2023년 7월 10일 국방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이 정찰기가 조선의 동해와 서해 상공의 영해를 침범해왔다고 주장했다. 반면 미군은 이 정찰기가 휴전선 이북에서 200킬로 내의 평양과 원산까지 정찰할 수 있어 조선의 영공에 진입할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2026년 현재 미국과 한국은 고고도 무인정찰기인 RQ-4 글로벌 호크를 운영하고 있다. 글로벌 호크는 야간이나 기상악화에 영향을 받지 않고 최장 36시간 동안 최고 20km 고도에서 전자장비로 반경 200km 내의  0.3m 크기의 지상 이동 목표물(MTI)을 정찰할 수 있다. 미국은 이 무인정찰기의 성능으로 인해 조선의 영공에 진입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글로벌 호크는 조선의 도발 징후가 있을 때 의도적으로 위치식별 장치(트랜스포더)를 켠 채 군사분계선 인근을 정찰하면서 조선을 압박한다. 조선은 2023년 7월 10일 담화를 통해  미군의 RC-135, U-2S 정찰기, 글로벌 호크 등이 조선의 영해 위 영공을 침범해왔다고 주장하며 격추하겠다고 위협한 바 있다. 


2. 북핵 개발과 미군전폭기의 조선 침투

2004년 2월과 6월 베이징에서 6자회담 및 실무회의가 열렸으나, 미국의 선(先)핵포기와 조선의 선(先)동결-보상 요구가 맞서며 성과 없이 중단됐다. 9월 최수헌 조선 외무성 부상은 유엔 총회 연설을 통해 “영변 원자로의 폐연료봉 재처리를 완료했으며, 이를 이미 핵무기화 했다.”고 선언했다. 

9월 9일 조선의 양강도 일대에서 대규모 폭발과 버섯구름 모양의 연기가 관측되어 국제사회가 핵실험 가능성을 제기했으나, 조선 측은 삼수발전소 건설을 위한 발파 작업이라고 해명했다.

2005년 2월 10일 조선 외무성은 성명을 통해 자위권을 위해 핵무기를 제조·보유하고 있음을 전 세계에 공식 선언하고, 6자회담 참가 중단을 발표했다. 조선은 4월 영변원자로 가동을 중단한 후, 핵폭탄 수 개를 만들 수 있는 분량의 사용후 핵연료봉을 인출하여 재처리에 들어갔다. 

7월 6자회담이 재개돼 9월 19일 조선이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계획을 포기’하는 대신 체제 안전 보장과 에너지를 지원받는 9·19 공동성명이 타결됐다. 하지만 미국 재무부가 조선의 통치 자금이 묶인 마카오의 BDA 은행을 돈세탁 우려 기관으로 지정하고 자금을 동결하자 조선이 반발하면서 9·19 성명의 이행은 곧바로 중단됐다. 

미국은 조선에게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는 협상에 나서도록 최첨단 무기를 통해 압박해왔다. 특히 미국의 스텔스 전투기 F-117 나이트호크는 군사훈련 기간 중 수 차례 조선 영공에 침투했다. 일본의 극우 잡지 ‘사피오’(SAPIO) 2005년 8월 24일자 기사에 따르면 2005년 6월 F-117 전투기 15대가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 머물고 있는 ‘특각’ 상공에서 급강하와 급상승을 반복했다. 2004년 일본의 문예춘추도 F117이 조선 영공을 침입한 적이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F-117 조종사 마이클 드리스콜(Michael Driscol) 대위가 2008년 4월 23일 ‘에어포스타임스’(Airforcetimes)와의 인터뷰에서 “2007년 F-117를 조종하면서 조선 영공을 휘젓고(buzzing) 다녔다.”고 밝혔다. 

미국이 스텔스 전폭기를 침투할 때마다 조선은 긴급대응에 나섰지만 탐지가 어려워 격추할 수 없었다. 조선은 경비 문제로 스텔스 전투기를 탐지할 수 있는 고성능 레이더를 비상시에만 작동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이 영공 침입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국가의 체면 때문에 공식적으로 항의하지 못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2008년 에어포스타임스 기사에 따르면 F-117 퇴역 이후 F-22 랩터가 조선의 영공을 침입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2007년 7월 26일 자유아시아방송(RFA)이 인용한 홍콩 봉황 TV의 보도에 따르면 F-22 전투기가 8대가 괌 기지를 떠나 일본 상공에서 공중급유를 한 다음 북한 북쪽 영공에 들어갔다 안전하게 돌아왔다. 

홍콩 봉황 TV는 정확한 날짜까지는 밝히지 않았으나 이 보도의 취재원인 대만 삼군대학 교관 송조문에 의하면 F-22 전투기가 군사 목표물 위에서 선회를 했고 모의 공격을 시도했다. 당시 한국군 관계자의 증언에 따르면 미국의 스텔스기가 한국에도 사전통보를 하지 않고 갑자기 나타난 적이 몇 번 있었고 그때마다 조선에서 예민한 보도가 나왔다.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의 조선 자금 동결 문제가 다뤄진 2007년 2.13 북미협상 당시에도 미국은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일본의 오키나와 가데나 공군기지에 F-22전투기 12대를 전진 배치해 조선을 압박했다. F-22가 미 본토 이외의 장소에 배치된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랩터는 미국 본토  랭글리 기지, 알래스카, 하와이를 모기지로 하여 상시 배치돼 있으며, 이 랩터들이 괌이나 가데나 기지에 전진 배치되고 있다. 한국에는 2016년 오산기지, 2018년 광주기지, 2024년 군산기지에 임시로 배치됐지만 최대 2주 이내로 국한됐다.

현재 괌에 F-22 18기가 전진 배치되어 있으며, 유사시에는 공중급유를 받아가며 초음속 순항으로 다른 전투기나 전략폭격기 보다 훨씬 빠른 시간에 조선을 타격할 수 있다. 

조선의 핵무장 이후 미국의 전략폭격기가 한반도 상공에 자주 진입하고 있다. 2017년 북미 간에 핵전쟁 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9월 23일 미국 국방부의 발표에 따르면 B-1B 재래식 무기 전략폭격기 랜서(죽음의 백조)가 동해상의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조선 쪽 국제공역을 비행했다. 이 비행에는 호위용 F-15C 외에도 급유기·전자전기·구조헬기 등 실제 타격 임무를 수행하는 공격 편대군이 참가했다. 다만 공격 편대는 조선의 방공용 지대공미사일 SA-5(S-200)의 최대사거리 (250~300㎞) 밖에서 비행했다.

한반도에 자주 나타나는 랜서와 달리 미 공군의 B-2 스피릿(Spirit) 스텔스 전략 폭격기(침묵의 암살자 혹은 유령)가 공식적으로 한반도 상공에 출격하여 훈련을 수행한 것은 2013년 3월 28일 단 한 차례이다. 이날 두 대의 스피릿이 미 미주리주 화이트맨 공군기지에서 이륙해 공중급유를 받으며 만 km 이상을 날아와 서해 직도 사격장에 모의 핵폭탄(inert munitions)을 투하하는 훈련을 마친 뒤, 미국 본토로 복귀했다. 

당시 조선의 3차 핵실험 및 정전협정 백지화 선언 등으로 한반도 긴장이 극도로 고조되자, 미국이 강력한 확장억제 의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이례적으로 출격 사실을 공개했다. 스피릿은 핵무기 전략폭격기이므로 한미가 한반도비핵화를 추구하고, 이 핵전략폭격기가 한반도에 진입하면 조선이 이에 대응하는 핵무기 개발이 정당화되기 때문에 한반도 근처에는 오지 않는다. 특히 미국이 고도의 비밀을 유지하는 가장 비싼 군용기이다. 

반면  B-52H 핵무기 전략폭격기 스트래토포트리스(하늘의 요새)는 수차례 한반도에 진입했으며, 특히 2023년 청주기지에 착륙하고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항공우주·방위산업 전시회 개막식에서 낮은 고도로 축하 비행을 선보이며 비행 모습이 공개됐다

한국전쟁 이후 미군의 조선 침투와 미군의 사상자

2025년 8월 18일 한미동맹재단과 주한미군전우회는 한국전쟁 이후 조선(북한)과의 전투로 사망한 주한미군 103명을 추모하는 도서 『6·25전쟁 이후 전사한 주한미군 공훈록』을 출판했다. 

미군과 조선인민군은 1955년 미군 훈련기 격추사건부터 1994년 헬기 격추사건까지 10여 차례 교전했으며, 1968년 한 해만 군사분계선 부근에서 조선인민군과의 전투로 미군 13명이 전사하고 42명이 부상을 당했다. 전투는 미군의 도발에 의한 것과 조선인민군의 도발에 의한 것으로 분류된다. 조선의 도발에 의한 것들에 비해서 미군의 도발에 의한 것들은 냉전구조 아래에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미군의 도발은 대부분 항행의 자유라는 명분을 내세워 해상과 공중에서 조선의 영토 코 앞까지 진출하여 조선을 압박하다가 발생한 사건들이다. 

1955년 8월 17일 미 공군 소속의 소형 훈련기(LT-6)가 비무장지대 남측 선을 따라가다 중부전선 김화 동쪽 약 12마일 지점 상공에서 조선 영공을 침범하여 조선인민군의 대공포에 의해 격추됐다. 

조종사 범퍼스 중위(Guy H. Bumpus)는 머리에 부상을 입고 조선인민군에 잡혔으나 관측관 찰스 브라운 대위(Charles W. Brown)는 격추 당시 사망했다. 조선인민군은 유엔사령부와 협상 끝에 8월 23일 시신과 포로를 비무장지대를 통해 돌려줬다. 

1965년 4월 28일 미 공군 소속의 RB-47 정찰기가 신호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동해의 조선 원산항에 접근했다가 조선 공군 MiG-17 전투기 두 대로부터 기관총 사격을 받았다. 이에 정찰기는 기체 후방에 장착된 20mm 원격 제어 기관포(Tail Cannon)로 반격했다. 

미군 정찰기는 동체와 날개 등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으나 탑승자 6명 전원이 부상 없이 일본의 요코다 공군기지로 귀환했다. 조선은 미군기가 영공을 침범했다고 주장했으나 미군은 원산으로부터 약 80마일 떨어진 공해상에 있었다고 반박했다. 

당시 미국과 한국은 베트남 전쟁에 대규모 병력을 파견하기 시작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선과의 전쟁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미국은 이례적으로 조선인민군에 대해 보복을 하지 않고 오히려 정찰노선을 원산으로부터 150마일 밖으로 후퇴했다. 

1968년 1월 23일 미 해군 정보수집함 USS 푸에블로호가 원산 앞바다에 접근했다가 조선 해군 초계정 4척과 미그기 2대의 공격을 받았다. 미군 승조원 1명이 사망하고 여러 명이 부상을 입었으나 푸에블로호는 50구경 기관총 2정만 갖추고 있었지만 저항하지 못하고 나포됐다. 

미국은 핵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호를 동해에 전개하고 공군 전폭기를 한반도 주변에 배치했지만 결국 28차례에 걸친 협상 끝에 결국 영해 침범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문서에 서명했다. 사건 발생 11개월 만인 1968년 12월 23일, 승조원 82명과 시신 1구가 판문점을 통해 미국 측으로 인도됐다. 

푸에블로호 선체는 조선에 의해 해체 후 육지도로로 운송돼 평양 대동강 변의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에 전시되고 있다. 푸에블로호는 미 해군 역사상 유일하게 외국에 나포된 현역 군함(USS)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1969년 4월 15일 미 해군 소속의 EC-121 정찰기가 조선과 소련 지역의 전파정보를 수집할 목적으로 일본 아쓰기 해군 비행장에서 이륙해 동해 조선의 청진시 남동쪽 해상으로 접근했다. 정찰기는 조선인민군의 MiG-21 전투기로부터 미사일 공격을 받아 해상에 추락했다. 

격추 지점에 대해 조선은 영공이라고, 미국은 공해상이라고 주장하며 서로 비난했다. 하지만 당시 베트남 전쟁에 전력을 집중하던 닉슨 행정부는 군사보복 대신 기동부대 파견과 정찰기 호위 조치만 취한 채 사건을 마무리했다.

이 사건으로 오버스트리트 해군소령 외 탑승자 31명 전원이 사망하여 냉전 시기 미군과 공산권의 군사적 충돌 중 단일사건으로는 가장 많은 미군 사망자가 발생했다. 

단일사건으로 가장 많은 사망자가 나온 전투는 제3차 중동전쟁(6일 전쟁) 중이던 1967년 6월 8일 일어났다. 이날 이스라엘 공군 전투기와 해군 고속어뢰정이 국제수역에 있던 미 해군 정보수집함 USS 리버티호를 기습 공격해 미 해군 승조원 34명이 사망하고 171명이 부상했다.

1977년 7월 14일 미 육군 CH-47 치누크 헬기가 평택의 캠프 험프리스를 이륙해 비무장지대에서 정찰 중 비무장지대 동쪽 끝자락에서 북쪽으로 기수를 틀었다. 한국군 초소에서 항로를 이탈했음을 알리기 위해  경고사격을 했으나 헬기는 조선 영공으로 진입했다. 

조선인민군이 사격을 하자, 헬기는 기체 점검을 위해 조선영토에 잠시 착륙했으나 조선인민군이 접근하자 남쪽으로 이륙했다. 헬기는 조선인민군의 대공사격으로 군사분계선 북방 약 4km 지점에서 격추됐다. 승무원 3명이 사망하고 부조종사 글렌 슈완케(Glenn M. Schwanke) 준위는 부상을 입은 채 생포됐다. 카터 대통령은 사고 직후 조선에 사과했고 조선은 7월 16일 판문점을 통해 생존자와 승무원 3명의 유해를 송환했다.

1979년 12월 판문점 부근 군사분계선에서 정찰임무를 수행 중이던 미군 병사가 짙은 안개로 북쪽 지역으로 넘어가 북이 설치한 지뢰를 건드려 부상당했다. 이를 구하려다 동료도 지뢰폭발로 사망했다.

1994년 12월 17일 주한미군 OH-58C 카이오와 헬기가 강원도 인제군 비무장지대(DMZ) 인근에서 정찰 비행 중 조선의 강원도 금강군 지역으로 침범했다. 조선인민군이 휴대용 대공 미사일 또는 고사포를 발사하여 헬기를 격추했다. 헬기 불시착 과정에서 조종사는 사망하고 부조종사는 생포됐다. 

조선은 12월 22일 조종사의 유해를 판문점을 통해 송환했으나 부조종사를 간첩 협의로 억류했다. 미국 정부는 토마스 허버드 국무부 부차관보를 평양에 특사로 파견했다. 특사가 조선에 영공침범 사실을 인정하고 유감의 뜻을 표명하는 합의서에 서명한 후 부조종사는 2월 30일 판문점을 통해 귀환했다.

베트남 전쟁과 제2한국전쟁, 대만전쟁과 제3한국전쟁

1. 조선의 특수부대 양성과 베트남에서 남북 간의 대리전쟁

1956년 8월 조선 내의 친중파와 친소파가 손을 잡고 김일성 수상을 숙청하려다 김일성의 빨치산 세력의 저항으로 실패했다. 이 8월 종파사건 이후 조선은 친중파와 친소파를 제거하고 중국군을 철수시키는 등 주체노선을 정립했다. 

특히 1950년대 말부터 중소분쟁으로 조선은 중소 어느 쪽에도 의존하지 않는 자주국방을 추구했다. 또한 쿠바 미사일 위기로 소련군이 쿠바에서 전면 철수하자 쿠바와 비슷한 처지에 놓일 수 있는 조선은 더욱 위기감을 느꼈다. 이에 1962년 12월 조선로동당 제4기 제5차 전원회의는 전 인민의 무장화, 전국의 요새화, 전군의 간부화, 전군의 현대화를 내용으로 하는 '4대 군사 노선'을 채택했다. 조선은 새로운 군사노선에 따라 한국을 기습공격할 수 있는 대규모 특수부대를 양성했다. 

한편 한국은 미국의 요청으로 1965년 10월부터 1973년까지 8년 동안 해병 청룡부대와 육군 맹호부대, 백마부대 등 연인원 약 32만 5,000여 명의 정예부대를 파병했다. 한미가 베트남 전쟁에 주력부대를 투입함에 따라 조선과의 전면전이 사실상 곤란한 상황에 놓였다. 반면 조선이 북베트남을 지원하는 공산권에 합세하여 한국과 주한미군을 교란하고 한국군의 추가파병을 막고자 소규모 침투를 반복했다. 

한국과 조선은 베트남에서 대리전쟁을 치렀다. 조선은 1966년부터 1973년까지 북베트남을 지원하기 위해 공군 조종사와 공병부대 등을 비밀리에 파병했다. 약 60~80명의 전투 조종사와 40여 명의 정비·지원 병력이 파병됐다. 조선인민군 조종사들은 미그(MiG)-17, 미그-21 전투기를 몰고 주로 하노이 영공을 방어했으며 미군 전투기와 공중전을 치렀다. 

최소 14명에서 수십 명의 조선인민군 조종사가 사망했고 유해는 조선으로 송환됐지만 베트남 하노이 인근 박장성에 조선인민군 전사자 묘지가 조성됐다. 2019년 김정은 위원장의 베트남 방문에 앞서 2월 17일 조선의 실무 대표단이 박장성의 전사자 묘역을 참배했다. 

또한 조선은 2개 공병여단 약 3,000~4,000명을 보내 북베트남 군사기지와 지하 갱도 건설을 지원했다. 이 밖에도 심리전 부대를 보내 한국군을 대상으로 한 투항 권고 방송을 진행하기도 했다. 조선은 소총과 각종 무기 10만여 정과 군복 100만 벌 등 전쟁 물자를 제공했다. 조선이 파병한 이유는 공산권 국가들과의 협력을 강화해 이들의 지원을 받는 한편 파병을 통해 현대전 전술을 익히고 미군의 전술을 파악하고자 했다. 


2. 베트남 전쟁의 한미전력을 분산시키려는 조선의 게릴라 침투

‘제2의 한국전쟁(The Second Korean War)’은 미군이 인정한 것으로서 1966년 10월부터 1969년 12월까지 비무장지대(DMZ)와 후방 지역에서 발생한 교전을 말한다. '제2의 한국전쟁' 중 한국군 299명, 미군 75명이 전사했으며 국군 550명, 미군 111명이 부상당했다.​ 당시 조선은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을 저지하고 미국의 전력을 분산시키고자 했다. 

조선은 소규모 특수부대를 침투시켜 청와대를 습격하거나 울진·삼척 지역에서 게릴라 전투를 감행했다. 또한 미군의 푸에블로호 나포와 정찰기 공격 등 해상과 공중에서 미군의 도발에 대해 강경한 대응을 유지했다.

한국은 1·21 사태에 보복하려고 실미도 684부대를 비밀리에 운영했다. 이외에도 한국은 준전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향토예비군 창설, 육군3사관학교 개설, 남산터널과 같은 대규모 방공호 건설, 간첩을 색출하기 위한 주민등록제도 도입, 고교와 대학에 교련 과목 신설 등을 시행했다. 

1963년 7월 29일 새벽 5시 40분경에 군사분계선 남방 100m 지점에 매복한 조선인민군이 휴전선을 경비하던 미 2사단 병력을 기습하여 2명이 사망하고 1명이 부상당했다. 1966년 린든 B. 존슨 대통령의 방한에 맞춰 11월 2일 조선인민군이 순찰을 돌던 미 2사단 병력들에게 총격을 가해 미군 병사 6명과 카투사 1명이 사망했다.

1967년 5월 22일 조선인민군이 서부전선의 미 2사단 초소 2곳을 공격하여 미군 2명이 전사하고 19명이 중상을 입었다. 1967년 8월 7일 야간에 판문점 남방 대성동 자유의 마을 앞에서 미군 군용 트럭이  침투한 북한군의 매복 공격으로 미군 3명이 전사하고 17명이 부상당했다. 1967년 8월 28일 판문점 인근에서 지원임무를 맡던 미 제76공병대 병력이 기습을 받아 미군 2명, 국군 2명이 전사하고 25명이 부상을 당했다. 

1968년 1월 21일 청와대 인근에서 군경과의 교전 후 뿔뿔이 흩어진 조선인민군 124군 소속 부대원들이 비무장지대(DMZ)를 통해 북측으로 탈출하고자 했다. 이에 주한미군 제2사단의 책임구역인 서부전선 DMZ 철책 지대에 퇴로차단 및 소탕 작전명령이 내려졌다. 

124군 소속 부대원들은 자신들이 남침한 미 제2사단 담당 철조망 구역을 통해 월북을 시도하면서 임진강과 DMZ 일대에서 미군 순찰조 및 매복조와 여러 차례 교전이 발생했다. 1월 26일 124군 소속 부대원들은 미 2사단 72기갑연대 소속 중대와 교전했으며, 이때  살바도르 모히카 이병(18세)가 전사했다. 모히카 이병 외 총 3명의 미군이 전사했다. 

1968년 4월 14일 야간에 판문점 경비교대를 위해 트럭을 타고 이동하던 미군이 대성동 마을 입구에서 매복 중이던 조선인민군의 기습을 받아 미군 2명과 카투사 한국군 2명이 전사하고 2명이 중상을 입었다.

1969년 3월 15일 비무장지대 내에서 군사분계선 표식 작업을 하던 미 2사단 23연대 소속 병사들이 조선인민군의 총격으로 사망하거나 부상당했다. 이 전투 직후 미군 사상자를 구조한 헬기는 이륙 후 조선인민군의 공격으로 추락했다. 군의관인 벤자민 스펜서 박 주니어 대위를 포함한 탑승자 7명 전원이 사망했다. 

베트남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조선의 소규모 침투가 이어졌다. 남침용 땅굴이 연달아 발견되는 가운데 1974년 11월 20일 경기도 연천군 비무장지대 내 제1 땅굴을 수색하던 한·미 공동조사반이 부비트랩(위장 폭발물)을 건드려 미군 중령과 한국군 소령이 사망했다.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관측 시야 확보를 위해 미루나무를 제거하던 미군 소령 등 2명이 조선인민군의 폭행으로 사망했다. 미국이 데프콘 3를 발령하고 항모전단과 전략폭격기를 한반도 인근에 배치했다. 미군이 삼엄한 경비 아래 미루나무를 제거하는 폴 바니 작전을 감행하자 조선이 사과문을 보냈다. 사건 이후 남북 공동경비구역 내 군사분계선(MDL)이 설치되어 남북 공동경비구역이 사라지고 남북이 각자 영역을 담당했다. 


3. 대만전쟁과 제3한국전쟁 가능성

베트남 전쟁에 남북 모두 파병했듯이, 대만전쟁에 남북이 각각 미국과 중국을 위해 파병한다면 남북은 베트남 전쟁 때처럼 대만에서 대리전쟁을 하게 된다. 다만 미국은 한국군 주력이 대만전쟁에 참전하게 되면 대북방어에 구멍이 생겨 조선이 도발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미국은 대만과 한국에서 두 개의 전쟁을 치룰 수 없기 때문에 조선의 도발을 유발할 한국군의 파병에 소극적이다. 미국은 한국이 직접 파병하기보다 후방의 지원기지를 제공하기를 선호한다. 한국군이 직접 파병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조선은 한국군과 주한미군을 한반도에 묶어 두기 위해 베트남 전쟁 때처럼 국지적인 소규모 전투를 감행할 우려가 있다. 

중국 역시 대만전쟁이 일어나면 조선이 한국에서 군사적 긴장을 조성해 미군의 전력을 분산시키길 원할 수 있다. 특히 중국과 조선은 상대방이 침공받으면 자동적으로 참전하는 상호방위조약을 맺고 있다. 조선은 대만전쟁이 일어나면 한국에서 전면전이 일어나는 것을 원하지 않지만 핵무기를 통해 전면전을 억제할 수 있다고 자신하면 소규모 침투를 시도할 수 있다. 

한국의 대만전쟁 참전과 조중의 대응

1. 대만전쟁에 대한 각국의 마지노선

대만전쟁에서 중국이 패배한다고 해도 대만만 독립할 뿐 종전 이후 중국의 위상은 설사 지도부가 퇴진한다고 해도 크게 변하지 않는다. 또한 독립한 대만이 미국의 반중기지가 된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대만 독립이 관련국들에게 특별한 이익을 주는 것도 없다. 즉 대만전쟁에 국운을 걸고 참전할 이유가 없으며, 관련국들은 종전 이후 중국과의 관계를 단절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첫째 대만전쟁 때문에 미중이 공멸하는 핵전쟁을 하거나 워싱턴이나 북경을 때리는 전면전을 할 리가 없다. 미국은 5천개, 중국은 5백개의 활성화된 전략 및 전술 핵탄두를 가지고 있다. 핵무장국가끼리 전술핵전쟁은 전략핵전쟁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미중은 전술핵전쟁도 하지 않는다. 중국은 이미 미국에게 대만전쟁이 일어나도 핵무기를 쓰지 않겠다고 비공개로 구두 전달했다.

둘째 미국이 대만전쟁 때문에 한반도에서 북미전쟁을 동시에 전개할 의사도 없고 그런 능력도 부족하다. 특히 제2의 한국전쟁이 일어날 경우 재래식 전력이 열등한 조선이 전술핵무기를 사용함으로써 전략핵전쟁으로 비화될 수 있기 때문에 북미전쟁은 대만전쟁보다 더 위험하다.

셋째 대만전쟁이 일어나면 미군이 주일미군기지를 사용해야만 하기 때문에 중국은 일본의 미군기지를 공격해야 하고 일본도 반격해야한다. 미일동맹으로 인해 중일은 해상전투도 불가피하다. 일본은 과거 대만을 지배한 적이 있으며, 대만이 중국에 점령되면 중국과 접경하게 되므로 독자적인 참전 이익이 있다. 

넷째 필리핀은 물적 지원만 하고 호주는 병력 일부만 투입한다. 필리핀은 1951년 상호방위조약을 맺고 있지만 실효성이 약화돼 필리핀은 후방기지의 역할만 하려고 한다. 다만 대만과 100킬로 떨어진 바시 해협을 방어하면서 추가로 공격기지를 미국에 제공하면 중국의 공격을 받게 된다. 필리핀은 중국의 공격을 받더라도 종전 이후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반격하거나 병력을 투입하지 않을 것이다. 

호주는 대중동맹을 맺고 있으므로 비록 중국군과 직접 싸우지 않아도 기지제공, 후방 투입 등 직접 전쟁에 참여하고 중국은 다윈 등 호주의 미군기지와 시설에 미사일 공격을 할 수 있다. 이때에도 호주는 도시로의 확전을 우려해 미사일 발사 등 반격을 하지 않을 것이다. 

다섯째 러시아의 경우 중러 간에 동맹관계가 아니니 참전 의무가 없고, 미국과 극동에서 전쟁할 이익도 없어 극동에서 경계를 높이고 에너지와 식량 및 자원을 지원하는 수준에서 중국을 도울 뿐이다.


2. 전면적인 대만전쟁은 어떻게 시작되나?

첫째 저강도 수준의 대만전쟁은 이미 진행 중이다. 전쟁은 가능성이 1%라도 대비해야 한다. 미중 지도부 간에 정치적으로 대만전쟁 공방이 있고, 경제적으로 미중과 대만(반도체기지) 등의 경제분쟁이 있고, 전쟁에 대비하하는 작전계획과 전쟁시나리오를 작동 중이다. 실제로 쌍방은 대만 주변에 군사력을 증강시켜 대치와 훈련을 반복하고 있다. 

둘째 대만전쟁은 대만정부의 독립선언으로 시작된다. 대만은 독립선언을 하기 전에 미국과 비공식적으로 접촉해 지지를 요구한다. 이에 대해 미국이 공식적, 비공식적 반대를 하면 대만이 독립선언을 포기한다. 

하지만 미국이 중국을 끝까지 시험하려면 공식적으로 “하나의 중국을 지지하지만 대만의 자주적인 결정이 존중돼야 한다.”면서 사실상 지지를 할 수 있다. 이때 중국이 대만에 쓸 수 있는 카드를 최소한에서 최대한으로 보면 다음과 같다.

항공모함 등을 동원한 대만 봉쇄, 대만과 중국 사이의 금문도, 마조열, 펑후 제도 등에 대한 폭격 나아가 상륙작전, 대만본토에 대한 폭격, 대만 지휘부에 대한 폭격과 참수작전, 대만본토 상륙 등이다. 


2. 미국은 대만전쟁에 어느 정도 개입하나?

첫째 미국은 대만관계법 등에 따라 전쟁물자, 식량. 에너지 등 전반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 미국의 다수 여론 역시 대만전쟁에 병력을 투입하지 말고 무기와 물자만 제공하라는 것이다. 즉 우크라이나 전쟁의 지원방식을 선호한다. 

둘째 미국이 대만전쟁에 대규모 전투병력을 파견하지 않을 가능성이 압도적이다. 왜냐하면 미국은 대만과 동맹을 맺은 상태는 아니므로 대만이 침공을 받더라도 파병할 의무가 없고 대만방어로 인한 이익보다 인적 피해가 더 심각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연구기관과 국방부의 워게임에 따르면 대만전쟁이 발생하면 미국의 항공모함, 주일미군기지 등이 파괴되고 수주일 동안의 전투만으로도 최대 수만명의 미군이 사망한다. 일본의 경우 최소한 주일미군기지와 항만, 공항은 전쟁터로 변하고 해군도 괴멸할 정도의 피해를 입는다.

중국의 해군전력 대부분이 피해를 보고 해안기지도 파괴되며 대규모 대만 상륙작전 때문에 사망자는 미군보다 더 많다. 대만 통일에 실패하면 중국 지휘부가 퇴진해야 한다. 대만의 반도체, 해상로 차단 등으로 미중과 주변국이 막대한 경제적 피해를 입는다.

바이든은 대만전쟁에 참여하겠다고 공언했으나 트럼프는 전략적으로 모호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미군이 참전했을 때 피해를 감안하면 미국은 중국과 전쟁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


3. 미국이 참전을 유보하면서도 대만전쟁을 자꾸 언급하는 이유는?

첫째 미국은 중국에게 대만에서 중미 간에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공포를 심어주어 중국이 경제발전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체제에 긴장을 주려고 한다.

둘째 미국은 중국이 대만 침공에 성공하면 그 다음엔 주변국에 지배력을 확장할 것이라는 불안감을 심어줘 주변국이 미국의 중국봉쇄라는 반중전선에 합류하도록 하고자 한다.


4. 한국의 대만전쟁 참전과 미국의 요구

첫째 한국은 대만전쟁과 한국전쟁을 동시에 수행할 의사와 능력이 없기 때문에 대만전쟁이 한국전쟁으로 확산될 수 있는 동기를 유발할 의사가 없다. 

둘째 한국은 과거 대만전쟁이 한국과 무관하다는 입자이었으나 최근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여 일부 개입하는 것으로 입장을 전환했다. 일단 한국은 주한미군의 대만 투입에 어쩔 수 없이 묵인해야 한다. 주한미군이 태평양사령부나 주일미군사령부로 배속되면 한미연합사의 작전권에서 벗어난다. 따라서 미국은 한국의 동의를 받지 않고 주한미군을 대만전쟁에 투입할 수 있다. 

또한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어느 수준이든 참전해야 하는데 최소한부터 최대한까지 나열하면 아래와 같다. 

예비로 보관하고 있는 식량과 에너지 등 민간용품 긴급지원, 탄약과 포탄 및 드론 등 재래식 무기를 생산하고 보관하는 탄약창, 전투에 참여하다 고장 난 선박과 비행기 등을 보급 및 정비하는 후방기지, 서해와 제주의 항구 그리고 군산과 오산 및 평택의 활주로를 중국을 공격하는 미군기에게 개방, 해상운송 호송 그리고 일본과 필리핀 및 호주 후방에 한국군의 투입, 한국에 대만전쟁에 직접 참전하는 대중 레이더망 배치, 미군기지에 대만전쟁에 참여하는 미사일부대 배치. 한국군이 직접 중국군과 전투 등이다.

셋째 미국이 한국에게 요구할 수 있는 현실적인 협력은 한국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대비하는 것과 대만전쟁의 후방지원이다. 미국이 한국에 핵잠수함을 허용한 것도 평상시 한미동맹을 중국봉쇄로 격상시키고 중국의 대만봉쇄를 풀기 위한 후방 호송 등을 위한 것이다.

미국 입장에서 중국이 한국을 군사적으로 공격할 필요가 있을 정도의 한국의 참전은 회피돼야 한다. 이 경우 한중간의 전쟁뿐만 아니라 조중동맹으로 인해 남북미전쟁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스틸 신임 주한미국대사 등이 한국의 직접 참전을 요구하는 것은 평상시 중국을 겨냥하는 한미일 공동군사훈련 등을 강화하고 한국과 중국을 디커플링시키려는 정치적 압박일 뿐이다.


5. 한국이 참전할 때 조중의 대응

첫째 중국입장에서 한국이 참전하면 한국에 대한 반격이 불가피하다. 중국의 반격을 최소한에서 최대한까지 나열하면 아래와 같다. 

경제적 관계 단절, 외교단절 및 선전포고, 주한미군 기지 공격, 미군이 사용하는 항구, 공항 미사일 공격, 레이다 기지 공격, 대만전쟁과 관련이 있는 한국군 기지 공격 등이다.

둘째 중국입장에서 한국전쟁은 대만전쟁에서 미일의 전력을 분산시킬 수 있는 카드이다. 즉 이란이 예멘, 헤즈불라 등을 동원해 미국과 이스라엘의 전력을 분사시켰듯이, 중국도 조선을 카드로 사용하려고 한다. 

셋째 2026년 왕이 외교부장이 방북 후 발표한 의제에는 하나의 중국에 대한 지지표명이 들어 있었지만 조선 측 발표에는 언급이 없었지만 조선의 입장에선 대만전쟁이 일어나면 과거 중국의 한국전쟁 지원과 조중우호조약에 따라 어느 정도 참전해야 하고, 동시전쟁을 두려워하는 미국을 상대로 무력을 과시할 기회이지만 조선의 독자적 발전전략에 치명타를 주는 전면전은 원하지 않는다. 

대만전쟁이 발생하면 남북 간에 즉시 저강도 전쟁상태에 돌입하고 조선은 아래의 최소한과 최대한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준전시상태 선포, 육해공군 접경지역에서 군대집결, 접경지역에서 군사훈련, 대만전쟁에 파병, 드론 등 소규모 침투, DMZ과 서해에서 소규모 충돌, 한미일에 대한 선언적인 선전포고.

조선이 정예부대를 대만전쟁에 파병하더라도 핵무기를 통해 남북미전쟁을 억제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면 실제로 파병이 일어날 수 있다. 이 경우 미국의 입장에선 한국군의 파병을 검토할 수 있으나 한국은 남북전쟁의 가능성과 종전 이후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파병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군의 전작권 환수가 불가능한 이유

1. 미국은 전작권 전환, 한국은 전작권 환수, 이재명 정부는 전작권 회복이라고 고집하는 이유는 뭔가?

각자의 의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은 유엔군사령관이 갖고 있는 전작권을 보유한 채 한미연합사령관만 한국군으로 바꿔주고 대신 주한미군을 한반도 밖에서 운영하려고 한다. 이른바 중국에 집중하려는 전략적 유연성의 일환이다. 한국은 유엔군은 사실상 기능을 상실했기 때문에 한미연합사령관을 맡으면 작전권이 환수된다고 본다. 회복은 미국의 입장을 고려하여 환수보다 완화된 표현이다.

2. 현재 한국군의 전작권은 누가 갖고 있나?

유엔군사령관이 갖고 있다. 형식상 유엔군사령관이 한미연합사령관에게 전작권을 위임했다. 설사 한미연합사령부가 사라진다고 해도 전작권은 여전히 유엔군사령관이 갖고 있다. 하지만 주한미군사령관이 한미연합사령관과 유엔군사령관을 겸하고 있다. 

3. 한국군 대장이 한미연합사령관이 되면 한국전쟁에 대한 전작권이 환수되는가?

아니다. 한미연합사령관은 한미연합사에 소속된 한국군과 미군의 지휘권만 갖는다. 한미연합사에 소속되지 않은 한국 내 미군과 유엔군에 대한 전작권은 없다. 

4. 실제로 제2 한국전쟁이 일어나면 누가 전작권을 갖나?

각각 다르다. 한미연합사 병력은 한미의 대통령, 국방장관, 합참의 조율에 따라 한미연합사령관이 최종적으로 행사한다. 한미연합사령부에 소속되지 않은 한국군과 주한미군은 한미가 각각 행사한다.하지만 유엔군사령부가 활성화되면 한미를 포함해 18개 참전국가의 모든 작전권은 유엔군사령관이 행사한다. 물론 유엔군사령관은 미군사령관이다. 

5. 사실상 껍데기인 유엔군사령관이 실제로 작전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나?

있다. 미국은 2015년부터 유엔군사령부의 참모기능를 활성화시켰다. 유엔군사령부에는 5명이 장성이 있으며 한국군도 준장이 상근직으로 부참모장이다. 미국은 독일을 새로 유엔군에 참여시키는 등 유엔을 아시아식 나토로 운영할 계획이다. 일선부대만 배속시키면 언제든지 작전권을 행사할 수 있다. 

6. 한미연합사처럼 미일연합사가 있나?

없다. 일본 자위대는 2024년 함참본부를 창설했고, 향후 주일미군과 마일연합사령부를 구성할 예정이다. 주일미군은 주한미군의 두 배 규모이고 더 최첨단 무기로 무장했지만 전투사령부가 아니고 사령관도 중장이다. 향후 주일미군은 주한미군처럼 통합전투사령부로 승격되고 사령관도 대장으로 승급하여 미일연합사령관을 겸하게 된다. 

7. 미일연합사령부가 창설되면 미래의 한미연합사령부와 어떤 관계가 되는가?

미래에 양 사령부 모두 조중러와의 전쟁에 대비하지만 주요 역할이 다르다. 미일연합사령부는 주로 중러 특히 대만전쟁을 대비한다. 한미연합사령부는 주로 대조선전쟁을 대비한다. 어느 전쟁이든 두 사령부의 작전권이 충돌될 수 있기 때문에 조정이 필요하다. 

미래에 한미연합사령관이 한국군 대장이라면 부사령관은 미군 대장이 아니라 주한미군사령관을 겸하는 중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 주한미군을 감축하고 중러 견제를 위해 한반도 밖으로 주력을 뺀다면 굳이 미군 대장이 한국군 대장의 지휘를 받을 이유가 없다. 미일연합사령관은 대장이 되는데, 주한미군사령관 겸 한미연합사부사령관까지 대장으로 한다면 태평양사령부에 미군 전체 대장 40명 중 6명이나 할당되는데 이는 미국 국방부의 장군 감축 정책과 배치된다. 

8. 주한미군사령관이 중장으로 격하된다면 유엔군사령관은 누가 겸하나?

주일미군사령관을 겸하는 일종의 극동사령관이 겸하게 될 것이다. 유엔군사령관은 한미를 포함해 18개 국가 군대를 지휘해야 하므로 미군대장이어야 한다. 이 경우 대장인 주일미군사령관이 미일연합사령관과 유엔군사령관을 겸할 수 있지만 전구가 달라 명분이 부족하다. 그래서 과거처럼 동북아를 담당하는 극동사령부를 창설하고 주일미군사령관, 미일연합사령관, 극동사령관, 유엔군사령관을 겸하는 것이다. 실제로 맥아더 이후 이런 체제였고 1957년 극동사령부가 태평양사령부에 흡수되고 주한미군사령관이 대장으로 승급될 때까지 이 체제가 지속됐다. 

9. 주한미군이 주일미군에 종속되나?

그렇다. 첫째 주한미군의 규모는 축소되고 주일미군의 규모는 확대되며 각각의 사령관도 중장으로 격하되고 대장으로 승급한다. 축소된 주한미군은 일종의 극동사령관인 주일미군사령관의 지시를 받는다. 극동사령관은 조중러와의 전쟁 모두를 관장하기 때문이다. 최근 주한미군사령관이 주한미군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주일미군과 위상 경쟁을 하는 건 주한미군의 위상 격하에 반발하기 때문이다.

10. 태평양사령부, 극동사령부, 유엔사령부, 미일연합사령부, 한미사령부의 관계들은 어떻게 정리되나?

현재 태평양사령부는 태평양 전부를 담당하고 있으나 과거 극동사령부는 조중러를 담당했고 태평양사령부는 나머지 태평양지역을 담당했다. 만약 극동사령부가 재설치된다면 과거처럼 병렬적이거나 태평양사령부의 예하 사령부가 된다.

미국은 유엔사령부를 조중러와의 전쟁을 담당하는 극동사령부차럼 운영할 것이다. 즉 아시아의 나토사령부이다. 미일연합사령부는 조중러와의 전쟁 전부를 담당하되 평상시는 주러 중러를 담당하고 한미연합사령부는 주로 조선을 담당한다. 즉 미일연합사령부는 태평양전구를 담당하고 한미연합사령부는 한반도 전구를 담당하는 위계적 체계를 갖는다. 결국 주한미군이 주일미군에 종속되고 한미동맹이 미일동맹에 종속되는 한미일군사동맹이 완성되는 것이다.

11. 한국의 전작권 환수가 불가능한 이유는?

한국의 전작권을 갖고 있는 유엔군사령부가 제2 한국전쟁이 발생하면 활성화되고 한미를 포함한 다국적군을 지휘한다. 한국전쟁이 공식적으로 종전되지 않는 한 유엔군사령부가 폐지되지 않으므로 미군은 유엔사를 통해 한국군의 전작권을 행사할 수 있다. 

한국이 유엔군사령관에 이양한 전작권을 환수하려면 유엔군사령부를 전투사령부가 아니라 휴전을 감시하는 기구로 성격을 전환해야 하는데, 미국은 그럴 의사가 없고 한국도 이에 대해 어떤 이의도 제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최근 미국은 유엔사를 확대강화하고 유엔사의 비무장지대에 대한 통제권을 강화하고 있다.

12. 유엔군사령부는 유엔과 관련이 있나?

아무 관련이 없다. 유엔이 인정하는 공식기구가 아니며, 유엔사무총장은 유엔군사령부는 미국정부의 지시를 받는 기구라고 공개적으로 답변한 바 있다. 유엔에서 선 한국전쟁 종결조치 후 유엔군사령부 해체라는 친미적 의결이 나온 적이 있고, 반대로 선 유엔군사령부 해체 후 한국전쟁 종결조치라는 반대의의결이 나온 적이 있으나 모두 구속력이 있는 건 아니다.

트럼프 불신이 키우는 한국과 일본 및 호주의 핵무장론

미국외교협회 잡지, 미국이 한국의 핵무장 지지해야 

미국외교협회(CFR)가 발행하는 포린어페어즈는 지난 6월 23일 한국 등 미국 동맹국들의 핵무장 가능성에 대한 장문의 공동 기고문을 실었다. 이 기고문에서 제니퍼 린드와 대릴 G. 프레스는 "트럼프 대통령 시대의  ‘미국 우선주의’에서 미국이 동맹을 보호하기 위해 핵전쟁에 개입할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한국과 일본 및 호주는 자체 핵개발을 선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이들은 "한국이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하고 자체 핵무장에 나설 경우 미국이 조선의 도발을 억제하고 한국을 지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 중국의 핵무력 증강, 조선의 핵무장 등 증가하는 핵위협에 직면한 미국의 동맹들에게 미국의 전술핵무기 도입, 나토식 핵 공유, 자체 핵무장 등 3가지 대안을 제시했다. 

또한 이들은 한국에 대해 탄도미사일 잠수함, 이동식 발사 시스템, 장거리 미사일 개발능력 등을 구비해 핵탄두만 개발하면 완벽한 핵무장국가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전략국제연구센터, 한국과 일본, 호주의 핵무장 가능성 논의

지난 6월 18일 전략국제연구센터(CSIS)는 한국과 일본, 그리고 호주의 핵무장 가능성에 대한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기조 발제를 맡은 빅터 차 지정학 및 외교정책 부서장 겸 한국 담당 석좌에 따르면 한일 모두 핵무장에 대해 일반인들은 60%~80%의 높은 지지를 보인다. 다만 전현직 관료, 학자, 의원, 최고경영자 등 전문가집단은 오히려 70%~80%가 핵무장에 반대하거나 그 실현가능성에 동의하지 않는다. 

일반인들의 핵무장에 대한 높은 지지는 한국과 일본이 피부로 느끼는 안보불안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조선의 핵무장, 중국의 핵무기 증강,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란 전쟁 등 안보 우려가 높지만 최근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때문에 미국의 확장억지력에 대한 불신이 높아서 한국과 일본에서 자구책으로서 핵무장론이 부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한일의 전문가들이 핵무장에 대해 부정적인 이유는 첫째 미국과의 동맹이 훼손되는 것을 우려하고, 둘째 NPT 체제 이탈로 인한 유엔 등 국제사회의 제재를 우려하기 때문이다. 

참가자들은 최근 호주도 핵무장 가능성에 대한 논의에 참여하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호주는 중국과 러시아 특히 중국의 위협에 대해 대응할 필요가 높아지고 있다. 또한 미국이 중국에 대항하는 취지에서 호주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하면서 호주의 핵무장도 동시에 거론되는 상황이다. 


미국에서 갈수록 커지고 있는 한국의 핵무장론

조선의 핵무장뿐만 아니라 최근 조중러의 군사적 협력은 특히 한국의 핵무장에 대한 논의를 확산시키고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전 발행인인 캐런 엘리엇 하우스는 2025년 9월 9일 동 신문에 "한국이 조중러의 군사동맹에 대항하기 위해 핵무장을 추진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1기와 2기 안보전략을 수립했던 콜비 정책담당 국방부 차관은 2024년 4월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을 논의 테이블에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주한미군 등 미국의 동북아 자산을 중국 억제에 집중하려면 한국이 스스로 안보를 책임지는 핵무장을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정학적 현실주의를 중시하는 국제분석가인 존 미어샤이머 교수는 조선의 핵무장과 중국의 핵무력 증강 및 대만전쟁의 우려 때문에 향후 10년 이내에 한국과 일본이 핵무장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미국우선주의, 중러가 아닌 조선과 공멸할 핵전쟁을 할 필요 없어

트럼프는 미국의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므로 동맹들의 지역전쟁을 미국이 공멸할 수 있는 세계대전으로 가져갈 생각이 없다. 즉 서울이나 도쿄, 대만, 우크라이나를 보호하기 위해 미국 대도시를 희생시킬 의사가 없다. 이는 확장억지력의 포기이다. 

확장억지력은 원래 소련이 유럽의 미국 동맹을 공격할 때 미국이 소련의 모스크바를 보복하겠다는 결의를 통해 핵전쟁을 막는다는 전략이다. 즉 미국 동맹에 대한 공격은 미소가 공멸된다는 공포를 소련에게 심어주는 것이다. 

문제는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와 중국이 미국과 공멸하는 핵전쟁을 할 의사가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러 사이엔 전면적 핵전쟁을 예방하기 위해 핵탄두와 운반수단을 대폭 감축했으며, 일상적인 핵전쟁 대비 태세 역시 대폭 해제했다. 

이런 조건에서 미국이 서울을 지키기 위해 조선과 서로 공멸할 핵전쟁을 하는 건 미국으로선 대학생이 초등학생과 같이 싸우다 죽는 것과 마찬가지다. 또한 미국이 조선과의 핵전쟁으로 치명상을 입을 때 중국과 러시아가 핵공격을 한다면 미국에겐 엄청난 재앙이다. 

즉 미국이 공멸하는 확장억지력은 과거 소련, 러시아, 중국에게 적용할 수 있지만 조선에게 적용한다면 이는  조선이 미국과 핵 대리전쟁을 하는 셈이기 때문에  러시아와 중국에게 큰 전략적 승리다. 또한 우크라이나 전쟁이나 한반도 전쟁, 대만 전쟁이 핵 전면전으로 비화되지 않게 관리하려면 국지적인 전술핵전쟁에 미국이 개입할 필요가 없다. 

콜비 차관 역시 2023년 4월 “기존 확장억지력에 따르면 조선이 한국을 핵공격할 때 미국이 이에 보복한다면 북미간의 핵전쟁으로 미국의 대도시가 괴멸될 수 있다.”면서 핵우산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실제로 조선의 핵전쟁 전략에 따르면 한국과 일본의 미군기지에 전술핵공격을 할 때 미국의 개입을 막기 위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미국 본토에 즉시 발사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한다. 


민주당 보다 국민의힘 인사들이 노골적인 핵무장론 제기

한국의 핵무장에 대해 민주당보다는 친미보수인 국민의힘 쪽 인사들이 더 강하게 언급하고 있다. 김문수, 홍준표, 유승민 등 과거 대권주자들은 미국이 경계하는 독자 핵무장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2023년 4월 28일 당시 윤석열 대통령 역시 "한국은 1년 내에 핵무장을 할 수 있지만 핵확산금지조약(NPT)을 준수하겠다."고 언급하면서 조선의 핵무장에 대응하는 미국의 후속조치를 압박했다.

친미보수세력이 핵무장론을 서슴없이 말하는 이유는 첫째 북미 핵전쟁이 일어나면 미국의 확장억지력 즉 한미동맹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는 것이며, 둘째 자신들의 친미적 성향으로 미국을 설득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며, 셋째 미국에게 전술핵 배치와 핵공유 등을 양보받기 위한 협상용 위협이며, 넷째 핵무장에 대한 여론이 높기 때문에 인기에 영합하려는 파퓰리즘 때문이다.

반면 민주당이나 중도인사들은 한국의 핵무장에 대해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 이는 미국 입장에선 민주당의 핵무장론이 국민의힘의 핵무장론보다 더욱 위협적이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6월 9일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한국이 핵무장을 하면 일본과 대만을 포함한 나라들도 핵무장을 하게 된다."면서 핵무장론을 비판했다. 

다만 국민들 다수가 핵무장에 정서적으로 지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민주당 인사들도 이러한 안보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미국의 동의 아래 제한적 대응조치를 추진하고자 한다. 즉 미사일 사거리 제한 해제, 초대형 재래식 보복미사일 배치, 제한적인 핵농축 권한 획득, 핵추진 탄도미사일 잠수함 개발 등을 추진하고 있다. 

호주의 핵잠수함 도입은 조선의 핵무장에 노출되고 있는 한국의 핵잠수함 도입 논의에 힘을 실어줬다. 또한 일본은 레이건 시대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핵연료를 재처리할 국제법적 지위를 지니고 있는데 한국정부 역시 일본 수준의 핵농축 권한을 미국에게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이하게도 상대적으로 민주당과 더 많이 교류하는 정성장 세종연구소 부소장은 일관되게 핵무장론을 제기하고 있다. 정 소장은 구체적으로 "미국을 설득하여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와 핵무장 기술 개발 등 핵무장을 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한 후 미국의 정권교체기에 전격적인 핵개발을 완료하면 국제제재의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밝혀왔다.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론, 역사적 경쟁의식과 긴장감

한미의 핵 전문가에 따르면 조선은 현재 50~90개의 핵탄두를 지니고 있으며, 매년 7~10개의 핵탄두를 만들 수 있다. 조선은 궁극적으로 미국에 대한 선제공격과 보복공격을 통해 상화확증파괴의 공포를 심어 줄 수 있는 300개의 핵탄두를 보유하고자 한다. 

반면 한국은 40개의 핵무기를 만들 원료는 있지만,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돼 있어 제조가 불가능하다. 미국에 의해 2번의 핵공격을 받은 일본은 전통적으로 핵무장에 대한 반대 여론이 높다. 하지만 조선의 핵무장, 중국의 핵무력 증강과 대만대치, 트럼프의 일방주의 이후 조심스럽게 핵무장론이 대두되고 있다. 

일본은 고농축의 재처리권한을 지니고 있으며, 2024년 말 기준으로 핵탄두 약 5,500기에서 6,000기를 제조할 수 있는 약 44.4~44.5톤의 플루토늄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일본은 극초음속미사일을 포함하여 조선과 중국 및 러시아를 타격할 수 있는 천 킬로 이상의 미사일을 배치한 상태이다.

핵무장을 초래하는 위협에 대해 한국은 조선의 핵무장을 최우선으로 보나, 일본은 겉으로는 조선의 핵무장을 핑계로 하지만 실제 본심은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대응이다. 최근 조중러의 연대는 특히 일본의 안보불안을 심화시켜 핵무장론에 불을 붙이고 있다.

아직까지 일본의 전문가들은 비핵3원칙을 강력하게 지지하고 있지만 핵무장에 대한 공개논의는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다카이치 총리의 정책을 자문하는 측근이 개인의견임을 전제로 일본의 핵무장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핵무장 여론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변수는 주한미군철수 여부이다. 반면 일본은 한국의 핵무장을 중요 변수로 보고 있다. 일본의 전문가들은 만약 한국이 핵무장을 한다면 일본도 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선회하고 있다. 물론 한국의 전문가도 일본의 핵무장이 가시화되면 한국도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안보환경의 차이로 일본의 핵무장이 한국의 핵무장보다 빠를 수 없다. 즉 한국이 핵무장에 먼저 나서고, 일본과 대만이 이에 따르는 수순이 될 수 있다. 중동에선 이란의 핵무장이 사우디아라비아의 핵무장으로 확산될 수 있다. 

동유럽에선 미국과 나토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지원을 줄이면 우크라이나가 핵무장에 나설 수 있다. 결국 조선의 핵무장으로 인해 미국 동맹 중 한국이 가장 먼저 핵무장에 나설 수 있는 여론의 압박을 받고 있다. 

이에 미국 정부와 전문가들은 미국의 확장억지력이 마비되고 핵무장 도미노 현상을 가져 올 한국의 핵무장에 대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런 조건에서 한국정부가 요구하는 핵추진잠수함이나 핵연료 재처리 권한을 미국이 당장 거부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글로벌 좌파와 21세기 사회주의 프로젝트

정치경제학연구소 프닉스 월례세미나


주제 : 글로벌 좌파와 21세기 사회주의 프로젝트

발표 : 원영수 프닉스 소장

일시와 장소 : 2026년 6월 20일(토) 오후 3시. 영등포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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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drive.google.com/file/d/1Ae8uUyKAi28pTaVAnCMbOqQwZijJcnef/view?usp=sharing

한국을 가장 잘 알고 가장 강경한 거물급 미국대사

스틸 대사 부부가 모두 공화당 거물급 정치인

지난 4월 13일 트럼프 대통령이 미셸 박 스틸(Michelle Park Steel) 전 공화당 연방 하원의원을 주한대사로 지명했고 미국 상원은 5월 20일 청문회를 거쳐 6월 4일 외교위원회에서 17일 전체 회의에서 찬성 55표 반대 39표로 스틸을 인준했다. 스틸은 트럼프 대통령의 임명장 서명과 한국 정부의 아그레망 절차를 거쳐 부임할 예정이다. 

지난 4월 20일 자주통일평화연대, 전국민중행동, 트럼프위협저지공동행동을 비롯한 422개 시민사회단체가 반중반북 행보, 극우세력과의 연계, 내정간섭 등의 이유로 스틸 대사의 지명을 철회하라고 요구한 바 있다. 이재명 정부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스틸 대사와 우호적인 한미관계를 유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첫째 1955년생인 그녀는 미국 대사 중 최초로 한국에서 태어나고 초등학교까지 졸업해 한국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등 한국을 속속들이 들여다 볼 수 있다. 과거 성 김 대사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유년시절에 미국으로 갔다.

둘째 스틸은 미국 대사 중 최초로 의원을 지낸 거물급 정치인으로서 트럼프의 최측근이라서 트럼프의 의중을 한국정부에 강하게 전달할 것으로 보인다. 그녀는 1992년 LA 폭동 직후 한인을 대변하기 위해 정계에 입문하여 2007년부터 2015년까지 캘리포니아주 조세총괄위원회 위원을 역임했으며 2015년부터 2021년까지 오렌지 카운티의 행정책임자(시장)를 역임했다. 

그녀는 이후 하원에서 4년간 활동했으며, 600여 표 차이로 3선에 실패하면서 주한미국대사로 임명됐다. 그녀는 하원에서 조세전문가로서 세입위원회에서 주로 활동했으며, 교육노동위원회, 중국공산당 특별위원회 (Select Committee on the CCP) 등에도 참여했다.

그녀의 남편인 숀 스틸(Shawn Steel) 변호사는 그녀를 정치로 이끈 공화당의 거물이다. 그는 2001년부터 2003년까지 캘리포니아주 공화당 위원장을 지냈으며 2008년부터 캘리포니아 공화당 전국위원회(RNC)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반공극우, 부정선거론자 폭동 옹호, 국내 극우와 교류

셋째 스틸은 트럼프의 미국우선주의(MAGA)를 추종하면서 국내정책에 있어 극우이며 외교적으로 반공이라서 국내 친미반중 극우인사들을 지원하는 등 한국의 내정에 간섭할 가능성이 높다. 스틸은 문재인 정부가 친북이라고 비난했으며, 방미한 윤석열을 환대하고 의회 연설을 주선했다. 이승만을 우상화하는 다큐 영화 〈건국전쟁〉의 미국 국회의사당 상영회를 주최했다. 

그녀는 부모가 북한에서 모든 것을 빼앗기고 남하했지만 외교관이 되고 자신은 아메리카드림을 실현했다면서 반공노선을 분명히 했다. 그녀는 실향민인 부모의 영향을 받아 조선의 인권문제에 강경한 입장을 견지하는데, 한국 내 반북단체들을 지원하고 탈북민들의 대북풍선을 금지하고 있는 한국정부를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스틸은 2024년 유엔이 중국 내 탈북민 강제 북송 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촉구했으며, 같은 해 하원에서 중국 내 탈북민 보호 결의안 통과를 주도했다. 반면 스틸은 자신도 이산가족임을 강조하면서 이산가족 상봉이 시급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스틸은 2020년 트럼프가 패한 미국 대선이 부정선거라는 주장과 트럼프 지지세력의 의사당 점령을 옹호해왔으며, 윤석열의 내란을 옹호하고 부정선거 등 음모론을 확산시키고 있는 황교안과 전광훈 등 부정선거론자들과 공감대를 형성해왔다. 실제로 이들 극우세력들은 스틸의 미국대사 지명과 인준에 전폭적인 환영의사를 표명했다. 


중국을 견제하는 한미일동맹 추진 최적임자인 셈

넷째 스틸은 일본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등 일본 문제에도 능통해 한미일 3자협력을 3자동맹 수준으로 강화하려는 트럼프의 동북아정책 전반에도 강력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그녀는 한국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 대학 1년까지 다니다가 미국에 이민갔다. 그녀는 부시 정부에 참여해 아시아계 미국인에 관한 정책을 자문하고 트럼프 정부에서 아시아계·태평양계 위원회의 공동위원장을 역임했다. 

마지막으로 스틸이 5월 20일 청문회에서 밝혔듯이 스틸은 통상문제보다 중국을 견제하는 안보문제를 더 우선시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스틸은 반중노선을 견지해왔기 때문에 한국을 중국으로부터 떼어 놓기 위해 한국정부를 압박할 가능성이 높다. 그녀는 한국이 미국과 함께 하지 않으면 고립될 것이며 미국이 한국을 위해 희생한 것을 고려하면 한국이 방위비 분담금을 더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2022년 대만을 방문했을 때 그리고 2023년 자이잉원 대만 총통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두 차례 대만 총통과 만나는 등 중국 공산당과 대만 정책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그녀는 2025년 인터뷰에서 중국이 대만을 점령할 경우 다음 타깃은 한국과 일본 등이 될 것이라며 대만 방어에 한국도 동참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녀에 따르면 미군을 대만에 투입하는데 한 두 주일 걸리기 때문에 그 동안 한국군과 일본 자위대가 중국군을 상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 인터뷰에서 그녀는 주한미국대사가 된다면 한미동맹이 중국을 견제하는 역할을 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5월 20일 청문회에서 스틸은 미국의 목적은 한국만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태평양 전체를 방어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존 커터스 공화당 상원의원은 주한미군을 한반도에만 묶어둘 수 없다면서 이 문제에 대해 한미 간에 긴장이 존재한다고 인정하고 스틸 대사의 역할을 강조했다. 

조선 문제에 대해 일부 상원의원들은 여전히 중국이 북핵문제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밝힌 가운데 팀 케인 민주당 상원의원은 조선의 핵문제를 다룰 북미협상이 오랜 동안 중단됐다면서 한국정부와 보조를 맞추면서 대북협상을 재개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또한 스틸은 한국이 미국에 대해 연간 500억 달러의 흑자를 보고 있다면서 한미FTA를 재협상하는 것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녀는 미국의 빅테크 기업과 쿠팡이 한국에서 차별받고 있다는 의원의 지적에 대해 대사로서 미국 기업의 불익에 대해 분명한 목소리를 내겠다고 밝혔다. 

이날 청문회에서 스틸과 상원의원들은 조중러를 견제하는 한미일 파트너십 강화, 한국의 국방비와 방위분담금 인상, 조선 등 국방산업 협력, 중국을 견제하는 공급망 협력, 농산물 등 미국 상품에 대한 한국시장 개방, 한국기업의 미국투자, 한국 내 미국 기업보호 등을 강조했다. 


 








강남서초가 보수에게 몰표 하는 이유

1. 강남서초는 묻지마 보수정당인가?

맞다. 2026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오세훈과 정원오가 전체적으로 1% 차이였지만 가장 격차가 큰 지역을 보면 강남구는 오세훈 66.0% vs 정원오 31.9%, 서초구는 오세훈 64.7% vs 정원오 33.2%이며 두 곳 모두 30% 차이가 난다. 반면 은평구는 정원오 54.7% vs 오세훈 42.3%, 강북구는 정원오 54.3% vs 오세훈 43.1%이며 두 곳 모두 10% 대의 차이다. 

최근 20년 동안 강남서초에서 민주당이 당선된 사례는 거의 전무하다. 박근혜 탄핵 이후 치러진 2018년 지방선거에서 강남구청장 승리가 유일하다. 이때도 서초에서 민주당이 낙선했다. 나머지 24개 구청장이 민주당에게 돌아갔다. 2016년 총선 당시 강남구을에서 민주당 전현희가 홍사덕 이후 24년만에 당선됐다. 1988년 이후 서초구에서 민주당 계열이 국회의원이나 구청장에 당선된 사례가 없다. 1988년과 1992년 총선에서 박찬종이 무소속이나 신정치개혁당 소속으로 당선됐다.


2. 강남서초에 영남 출신이 많나?

맞다. 통계청에 따르면 다른 23개 자치구에서 호남 출신이 1위다. 서울의 호남 출신 인구비율은 1970년대 23%까지 증가했으나 2020년 16%로 감소했다. 2020년대 강남서초의 영남출신 인구비율은 41% ~ 45%으로  추정되며 서울에서 최고 높다. 영남에서 서울로 유입되는 비율은 서울 전체가 4% 미만이지만 강남서초는 7% 미만이다. 서울에서 태어난 청년들도 부모의 고향에 따른 정치색에 영향을 받는다. 


3. 강남서초에 자기 집을 가진 부자가 많나?

그렇지 않다. 강남구 전체 가구 중 약 32%, 서초구는 43%만이 본인 소유의 집에 거주하고 있다. 반면 서울시 평균 자가보유율은 44~48% 수준이다. 강남서초에서 전월세로 사는 가구 중 상당수는 다른 지역에 집이 있지만 교육 문제 등으로 자기 집에서 살고 있지 않다. 


4. 강남서초는 아파트 정책에 민감하나

맞다. 강남서초엔 고가 아파트가 밀집돼 종부세 등 세금 정책에 민감하다. 다주택소유자가 많아 양도세 등 다주택중과세에 민감하다. 다주택보유자는 종로구를 제외하면 강남서초가 가장 비율이 높다. 서초구 자가 거주자 20%는 다른 곳에도 집이 있다. 강남구도 17% 수준이다. 서울 전체는 10.8%였다. 강남서초는 70년에 개발돼 오래된 아파트의 재건축 정책에 민감하다. 


5. 강남서초에 고학력자들이 많이 사나

맞다. 2020년 한국학연구에 따르면 서초구에서 부모 세대 69.9%, 자식세대 66.5%가 대졸 이상이다. 강남구에서 그 비율은 부모 세대 68.0%, 자식세대  63.3%이다. 반면 중랑구에서 부모세대의 16.4%, 강북구에서 17.3%만 대졸 이상으로서 강남서초와 4배 이상 차이가 난다. 즉 강남서초에선 고학력도 세습되고 있다. 고학력은 고위공무원, 기업체 임원, 전문직, 대기업 취업의 통로이기 때문에 정치경제사회적 특권의 기반이다. 고학력의 세습은 이런 특권의 세습으로 나타난다.


6. 강남서초의 고학력자는 왜 보수정당을 찍나

자녀와 관련된 교육정책 때문이다. 모든 지역의 고학력자가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강남서초의 고학력자는 자녀에게 고학력을 세습시키기 위해 엘리트 경쟁교육에 유리한 강남서초의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한다. 강남서초는 8학군이며, 학원이 발달돼 있어 특수목적고나 명문대학에 진학하거나 해외에 유학하기 유리하다. 그래서 강남서초는 엘리트 경쟁교육을 강화하는 보수정당을 지지한다. 


7. 강남서초의 보수화에 가장 큰 원인은?

엘리트 교육, 사교육이다. 강남서초가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건 최고 수준인 교육특구 지위를 지키기 위해서이다. 강남서초 거주의 가장 큰 이유는 교육문제다. 교육열 때문에 강남서초에 대한 주거 선호도가 높고 그 결과 아파트 값이 높다. 


8. 강남서초의 보수정치를 붕괴시키는 방법은?

강남서초는 재산, 교육, 문화 등 기득권을 유지하는 보수정치를 지지한다. 그 기득권의 핵심은 기득권을 세습하도록 하는 교육이다. 따라서 강남서초를 중심으로 한 학벌주의, 엘리트 교육, 명문대 교육을 위한 제도와 문화를 해체하면 보수의 지지기반이 무너진다.

경쟁 중심의 사회체제를 개편해야 한다. 즉 학력에 따른 차별 완화, 국공립대학 중심의 대학평준화, 특수목적고 등 엘리트 교육 폐지 등이 필요하다. 그러면 강남 거주의 욕망이 줄고 강남 아파트 값도 덜 오른다. 결국 교육문제와 아파트 정책 문제로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비율이 줄어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