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반에 항복한 미국 지상군, 이스라엘 지원하러 가나

김장민(정치경제학연구소 프닉스)



바이든의 아프가니스탄 철군을 대선 쟁점으로 삼고자 청문회 개최


지난 9월 24일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는 바이든 정부의 굴욕적인 아프가니스탄 철군을 부각하는 청문회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참석하지 않아 이날 청문회는 양당의 설전으로 끝났다. 


트럼프와 공화당에 따르면 트럼프는 텔레반이 평화조치를 준수할 경우만 미군이 철수한다고 약속했는데, 바이든이 텔레반이 미군에게 적대행위를 계속하는데로 미군을 졸속적으로 철수시켰다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 민주당의 대선후보인 해리스 부통령도 이 문제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하원의 다수당인 공화당이 대선을 40일 앞두고 민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청문회를 강행한 것이다. 하지만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소환장을 발부받고도 청문회장에 나오지 않았으며, 공화당이 주도하여 외교위원회는 블링컨 장관을 의회모독죄로 기소했다.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영국, 러시아, 소련, 미국 그 어느 나라도 아프가니스탄을 식민지로 삼지 못했다. 아프가니스탄은 무장한 부족들의 연합국가이고 민간인들도 무장하고 있다. 종교 등 아프가니스탄과 정체성이 다른 외부세력이 특정세력을 꼭두각시로 삼아 전국을 지배하는 중앙집권 국가를 수립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미 의회의 ‘아프가니스탄 재건을 위한 특별 감찰 기구(SIGAR)’에 따르면,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 총 186억달러(약 24조원)의 무기 지원을 했고 2021년 철수 당시 71억2000만달러 가치의 무기와 장비들을 두고 왔다. 또한 미군과 미국인, 미국에 협력했던 아프가니스탄인들이 긴급 탈출하는 과정에서 카불공항에서 IS의 테러로 미군 13명을 포함하여 100명 이상이 사망했다. 


미국의 트럼프행정부와 텔레반은 2020년 ‘아프가니스탄에 평화를 가져다주는 협정(도하협정)’을 체결했다. 그런데 베트남 평화협정에서 남베트남이 서명한 것과 달리 미국이 세운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협정 주체에서 배제됐다. 즉 이 협정에 따르면 미국과 텔레반은 아프가니스탄을 합법정부로 합의한 바가 없기 때문에 텔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정부를 공격하더라고 미국은 개입할 근거가 없다. 



베트남의 굴욕이 2021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재연


이 협정에 따르면 미국과 그 동맹은 2021년 5월 1일까지 단계적으로 완전히 철수하며 영토의 통일, 정치적 독립 등 아프가니스탄 내부 문제에 무력개입을 하지 않기로 했다. 이는 베트남평화협정에 포함된 내용과 같다. 또한 미국은 텔레반에 대한 경제 제재를 해제하는 절차에 착수하기로 했다. 아프가니스탄 정부와 텔레반은 상호 포로를 교환하기로 했다. 


협정 이후 아프가니스탄 내부의 협상에도 미국과 그 동맹국은 개입하지 않기로 했으며, 이런 협상 결과 새로운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들어서면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그 정부를 승인하고 경제 재건에 협력하기로 했다. 이 협정은 미국과 텔레반의 양자협정이나 미국이 유엔안보리에 이 협정에 대한 승인과 지지를 요청하기로 했다. 


반면 텔레반은 자신과 그 어떤 세력에게도 아프가니스탄 내에서 미국 및 그 동맹에 대한 적대행위를 금지하고 그러한 행위를 지원하거나 은신처나 훈련장소를 제공하지 않기로 했다. 테러 관련 인사들의 입출국도 금지하기로 했다. 


텔레반은 아프가니스탄 정부를 장악한 후 이 협정을 준수하여 아프가니스탄 내의 알카에다와 IS세력을 축출하고 있다. 미군 철수 당시 테러를 지시한 IS 지도자와 그 세력들도 소탕했다. 텔레반은 미군의 재개입을 차단하고자 테러와의 연계를 자제하고 있고 이러한 조건에서 미군 역시 아프가니스탄 문제에 개입하지 않고 있다. 


간단히 평하면 미국의 안보를 보장받는 대신 아프가니스탄 정부를 협상 주체로 인정하지 않았을 뿐더러 동맹관계를 폐기했다. 자신이 세운 국가를 국제법적으로 포기한 셈이다. 이는 형식적으로 남베트남의 국제적 지위를 인정한 것보다 더 후퇴한 내용이다. 


미군, 텔레반과 전투를 피하고자 몸만 빠져 나와


이 협정 이후 아프가니스탄은 내전에 돌입했으며, 미국은 이에 개입하지 않아 결국 텔레반이 승리했다. 2021년 바이든 행정부 초반 아프가니스탄이 탈레반의 수중에 넘어가자, 미국은 텔레반과의 충돌을 피하고자 군 장비, 대부분의 아프가니스탄 협력 인사들을 방치한 채 도망치듯 몸만 빠져 나왔다. 


미국의 중동전쟁에서 철수는 중국과 러시아의 부상을 견제하려는 오바마 행정부 시절에 이미 결정된 것이다. 하지만 알카에다, IS의 저항으로 인해 철군을 질질 끌어왔다. 그런데 동맹국을 보호하기 위해 미군을 희생시킬 수 없다는 고립주의 노선을 천명한 트럼프 행정부 때 비로소 텔레반과의 협상이 타결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텔레반이 내전에서 승리하여 재집권하자, 트럼프가 체결한 협정을 파기하여 텔레반과의 전쟁을 다시 하는 것보다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군사적 압박에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즉 아시아 태평양 중시정책을 명분으로 졸속적인 철군이라는 굴욕을 감수했다.


미국이 스스로 탄생시킨 동맹국 아프가니스탄을 버림으로써 베트남에 이어 미국의 동맹 약속은 준수되지 않았다. 바이든을 공격하는 트럼프 진영에 따르면 이는 미국의 동맹국들이 미국이 언제든지 자신들을 버릴 수 있다는 불신을 심어줬다. 나아가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와 ‘특별군사작전’이라는 과감한 행동으로 나아가도록 미국이 스스로의 약한 면을 노출시켰다는 비판을 받았다.


네이션빌딩 불가능한 중동에서 지상전 대신 공중전만 선호


미국은 베트남과 아프가니스탄에서 사실상 무조건 항복을 하면서 몸만 빠져 나왔다. 시리아에선 반미국가를 전복시키지 못했으며, 리비아와 예멘에서 끝없는 내전 사태를 만들었다. 미국이 이라크에서 친미국가를 수립한 듯 보였으나 시아파 정부가 이란과 밀접해지면서 미군 철수를 요구하고 있다. 


미국은 1차 이라크 전쟁 이후 30여년에 걸쳐 이러한 친미국가 수립(네이션 빌딩)을 위해 대규모 지상군을 투입했으나 수만 명의 사상자를 내고 재정적자와 국론분열에 시달려 왔다. 


현재 미국은 현지 권력을 장악하는 지상군 파견 대신 공군과 해군을 통해 폭격을 선호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이스라엘이 전면적인 중동전쟁을 일으켜도 미국은 지금처럼 해군과 공군을 중심으로 이스라엘을 방어하기 위한 제한 전쟁을 할 것으로 보인다. 


즉 지상군을 파견하지 않고 중동의 해역과 우방국의 영공에서 이스라엘로 향하는 미사일이 이스라엘 본토에 도달하기 전에 요격하고 예멘, 시리아, 레바논, 이라크 내에서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준군사조직을 폭격하는 것이다. 미국이 이란을 직접 공격한다면 이란은 단기적으로 국제유가에 충격을 주면서 러시아, 조선과 군사적 협력을 강화하고 결국 핵무장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미국은 왜 이시바 총리의 아시아식 나토에 반대하나

 위험천만한 이시바 총리의 아시아식 나토 추진 발언


김장민(정치경제학연구 프닉스)


이시바 총리가 아시아에 나토를 추진하자고 제안하여 그 구상의 기본 내용과 취지에 대해 각국이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먼저 유럽의 나토는 소련 - 러시아의 위협에 대응하고자 미국 중심으로 서유럽의 대부분의 국가들이 참여하고 있다. 최근에는 북유럽과 동유럽도 참여하고 있다. 터키의 사례에서 보듯이 군사적 협력인 나토 가입은 상대적으로 쉬운 반면, 경제적 협력인 유럽연합 가입은 서유럽의 기득권 보호 때문에 더 어렵다. 


나토와 유럽연합 양자 모두 만장일치로 운영되고 있다. 나토의 경우 미국의 유럽사령관이 나토사령관을 겸하고 있다. 각국의 군대는 독자적인 작전지휘권을 지니고 있으며, 다만 자신의 일부 군대를 나토에 배속시킨 경우 나토사령관의 지휘를 받는다. 하지만 실제로는 각국 정상들의 협의를 거쳐 나토 사령관이 작전권을 행사한다. 


미국은 유럽에서 핵전쟁이 날 경우 유럽의 핵무기를 사용해 반격함으로서 미국 본토가 핵전쟁에 휘말리는 것을 차단하고자 한다. 이른바 전역전쟁 개념이다. 따라서 유럽에서 미국 핵무기의 공유라는 개념은 미국 핵무기를 유럽의 항공기 등에 배치하되 최종 사용은 유럽 각국 정상의 의견을 참조하여 미국 대통령이 독단적으로 핵무기 사용을 지시하는 것이다. 


이시바 일본 총리가 아시아식 나토를 제안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나토식 핵 공유를 통해 일본에 미국의 핵무기를 배치하여 중러뿐만 아니라 최근의 조선의 핵무기에 대한 일본 내 불안을 해소하자는 것이다. 또한 일본의 재무장에 대한 명분을 확장하고 아시아에서 일본의 군사적 지도력을 보장받으려는 것이다. 이를테면 미국의 중거리핵미사일, 전술핵, 아시아 나토의 사령부 등이 일본 안에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미국이 쿼드, 오커스, 한미일동맹 추진 등 자국 중심의 대중, 대러 아시아 동맹을 확대하고 있기 때문에 이시바총리에 대한 미국의 반응이 가장 중요하다. 


첫째 미국은 신임 일본 총리가 미국과 상의 없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중요 의제인 집단안보체제 문제를 제기한 것에 대해 기분이 상한 상태다. 동생이 형님을 제치고 설레발을 친다고 보고 백악관, 국무부, 전문가 모두 이시다 총리의 제안 내용, 시기, 방식에 대해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둘째 미국 역시 아시아에서 미국 주도의 집단안보체제가 구축되면 반가운 일이나 유럽과 다른 환경의 아시아에서 나토 수준의 다자동맹을 구축하는 것은 너무나 먼 이야기라서 구체적인 논의가 불가능한 상태다. 일단 주변국의 반응을 살필 것도 없이 일본 내부의 절차도 이시바 총리가 감당할 수준이 아니다. 일본이 집단안보체제에 가입하려면 자국방어에 한정한 평화헌법을 수정하고, 자위대가 아닌 국군을 창설해야 한다. 


비핵 3원칙(非核3原則)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일본 총리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고 선언한 것을 말한다. 이 원칙은 지금까지 일본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아왔기 때문에 핵무기를 공유하는 아시아식 나토를 창설하려면 이 원칙을 폐기해야 한다는 여론의 지지가 필요하다. 


미국 입장에서도 올해 들어 주일미군사령부를 행정본부에서 하와이에 있는 아태사령부 산하에서 독자적인 작전권을 갖는 전투사령부로 승격했다. 일본 역시 육해공군의 자위대를 통솔하는 함참사령부를 올해 창설했다. 다음 수순은 한미연합사령부처럼 일본에도 미일연합사령부를 만드는 것인데,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 이외에도 제반 조건 마련이라는 점에서 현재로서는 속도조절이 불가피하다. 


중국이 대만전쟁이 일어나면 주일 미군기지와 괌을 타격하기 위해 중거리미사일을 개발하여 배치해오고 있다. 원래 미국과 러시아는 과거 쿠바와 터키에서 중거리미사일 분쟁을 겪은 후 탐지와 요격을 위한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는 중거리미사일을 상호 돌발적인 핵전쟁을 방지하기 위해 폐기했다. 하지만 중국이 미사일 군축을 거부하는 상황에서 미국 역시 대만전을 겨냥해서 토마호크 중거리 미사일을 재배치했다. 2023년 극초음속 미사일극초음속미사일 다크 이글(Dark Eagle, LRHW)을 배치했다. 


미 육군의 다영역기동부대(MDTF) 토마호크 미사일을 운영하는 타이푼(Typhon) 포대와 극초음속 미사일 대대를 포함한다. 2023년 4월 미국이 극초음속미사일 다크 이글(Dark Eagle, LRHW)을 실전배치하였다. 미국은 필리핀에 다영역기동부대를 훈련 중 임시로 배치했으나 영구 배치를 필리핀과 논의 중이다. 일본에 배치하기 위해 협의 중이다. 


중국과 러시아를 위협하는 중거리미사일을 동유럽과 동아시아에 배치하면 중국과 러시아도 미국 인근에 중거리미사일을 배치할 수 있다. 현재로서는 쿠바가 제일 유력하며 실제로 러시아는 최근 쿠바 아바나에 핵잠수함을 입항시켜 공동훈련을 했으며, 중국도 쿠바와 밀접한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처럼 미국 입장에서 아시아식 나토를 논의하기 전에 일본 내 절차와 중러의 반발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섣불리 논의하다가 일본, 주변국의 반발만 초래하고 기존의 단계적 조치들로 무산될 수 있기 때문에 이시바 총리의 발언이 경솔하다고 보는 것이다. 


셋째 중러뿐만 아니라 집단방위체제에 편입될 아시아 각국들이 일본의 침략을 받았기 때문에 일본이 추진하는 아시아 식 나토에 반대한다. 일본이 과거사 문제에 해결할 의지가 없는데, 아시아의 군사 맹주로서 나서는 것을 주변국이 찬성할 리가 없다. 또한 중국과 안보 문제, 경제 문제가 걸려 있는 주변국들이 반중국을 표명하는 아시아 식 나토를 환영할 리가 없다. 최근 친미노선을 강화하고 있는 필리핀도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특히 아세안 국가들은 동아시아에서 자신들의 역할과 지위가 축소되는 일본 주도의 집단방위체제에 협력할 의사가 없다. 


마지막으로 아시아식 나토가 미국의 국익에 맞는지 미국조차도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한 상태이다. 현재 미국은 아시아에서 인종적, 역사적 문제로 유럽과 같은 통합 수준이 어렵기 때문에 다자동맹, 집단방위체제를 추진하지 않고 있다. 대신 미국은 한미동맹, 미일동맹, 미국 - 인도, 미국 - 필리핀, 미국 - 호주 및 뉴질랜드, 미국 -베트남과 같은 양자 관계를 필요에 따라 다자협력관계로 운영하고 있다. 


미국 - 호주 및 뉴질랜드 - 일본 - 한국의 동맹수준은 매우 높으나 다른 나라의 경우 미국과의 안보협력에 대한 수준이 천차만별이다. 한미일동맹의 난제인 한일동맹은 이제 겨우 첫걸음을 뗀 수준이지만 한국의 정권교체 이후 한일관계는 후퇴할 가능성이 높다. 인도까지도 미국의 대중전략에 대해 자신의 국익에 따라 일부만 협력하고 있다. 사회주의국가 베트남은 물론 다른 아시아국가들도 중국의 군사력 강화를 경계하면서도 중국과의 경제적 협력을 원하고 있다. 


이런 조건에서 미국은 현재로서 잡음만 일으키는 아시아식 나토 대신, 미국 중심의 한미일동맹+호주 및 뉴질랜드 방식을 중심에 놓고자 한다. 미국은 그 외 각국과 양자동맹, 혹은 양자협력을 조건에 따라 또는 사안별로 다자간협력을 운영하고 있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묵시적으로 중국을 겨냥하는 미국 주도의 다국적 군사훈련이 대표적이다. 


결론적으로 아시아식 나토는 너무 경솔한 의제이고 미국의 복잡한 아시아 태평양에서 추진하는 동맹전략마저도 혼란에 빠지게 할 수 있다. 미국이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욕심을 너무 내면 현재 가진 것도 망칠 수 있다는 것이다.

조선은 러시아에 전투병을 파병할까?

 조선은 러시아에 전투병을 파병할까?


최근 우크라이나와 친서방 언론들은 도네츠크에서 6명의 조선인민군 장교들이 러시아 군대의 훈련을 참관하다 우크라이나 미사일에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반면 러시아와 조선은 관련 사실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도네츠크 인민공화국은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에 합병당한 러시아 내 자치공화국으로서 조선은 러시아의 요청에 따라 이 공화국을 가장 먼저 승인한 나라 중 하나이다. 러시아는 도네츠크 인민공화국의 국제적 위상을 견고히 하기 위해 조선 등에 도네츠크 인민공화국과 외교협력을 요구한 바 있어 조선인민군이 도네츠크에서 훈련을 참관했다는 사실은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서방 언론과 전문가들은 향후에 조선인민군이 러시아의 전선에 파견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하고 있다. 서방에서 조선인민군 장교의 사망을 기정사실화하고 조선의 파병설까지 흘리는 것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외국군 파병설은 서방의 선전전이자 위기 조성


첫째 서방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고전하고 있어 푸틴이 곤란한 처지라는 여론이 러시아까지 파급되기를 원한다. 서방이 좀 더 노력하면 우크라이나가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서방 내 여론이 필요하기도 하다. 


둘째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점령되거나 친러정부가 들어설 정도로 위험해지면 나토를 중심으로 서방은 파병을 고민해야 하는데, 이런 여론형성에 조선인민군의 파병이 유리하다. 조선과 중국이 러시아를 도우니 서방도 우크라이나를 도와야 한다는 논리이다. 


셋째 폴란드처럼 러시아의 침략을 받은 동유럽의 나토국가들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넘어오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한 국가안보이기 때문에 우크라이나 서부를 지키기 위해 실제 강력한 군사지원이나 파병을 고려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를 동서독이나 남북한처럼 두 세력의 완충지대로 분단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서방의 선전과 속내에도 불구하고 현재 조건에서 조선인민군이 전선에 파견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전쟁 아닌 군사작전에 외국군 파병은 러시아와 푸틴의 굴욕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특별군사작전”이라고 평가절하하고 있다. 과거 러시아의 속국이나 다름없던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국가안보를 심각하게 위협한다는 사실에 동의하지 않는다. 또한 우크라이나 점령이 아니라 우크라이나의 친서방정부가 동부에서 러시아계 주민을 학살했기 때문에 이 지역을 해방시키는 것이 이번 무력충돌의 목적이므로 전쟁이 아니라 제한적인 군사작전이라는 것이다. 


물론 푸틴 대통령은 개전 초기에 키에프에 친러정부를 세우기 위해 공수부대를 파견하려다 패배하고, 전선을 4개 지역으로 펼치다 동부전선으로 후퇴했다. 즉 우크라이나 전쟁은 군사작전 수준으로 시작하지 않았다. 또한 현재 서방이 병력을 제외하고 모든 전쟁 자원을 지원하고 있기 때문에 대리전쟁의 성격을 지닌다. 


소련이 10년간 텔레반을 상대로 전쟁하다 패배한 아프가니스탄 전쟁보다 지금의 우크라이나 전쟁이 훨씬 고강도 전쟁이다. 러시아의 병력이나 전쟁자원도 아프가니스탄 보다 더 빨리 소진되고 있다. 즉 현재 사태는 군사작전이 아니라 전쟁이라고 봐야 한다. 


그럼에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무력사태를 전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러시아는 서방의 무기를 통한 러시아 내륙 깊숙한 인구밀집지역의 공격, 서방의 전투병 파병 등 추가적인 상황이 발생하지 않으면 전쟁으로 확대할 생각이 없다. 푸틴은 러시아 국민들에게 우크라이나쯤은 별 문제없이 처리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과시하고 있는 상태이다. 


그런데 조선인민군이나 다른 외국의 군대가 전투에 참가하면 핵강대국 러시아가 약소국 우크라이나와 대등한 전쟁을 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고, 그것도 스스로 승리할 수 없어 외국군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이니 러시아 입장에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사태이다. 


조러 모두 병력보다는 간접 지원의 민간인 송출이 이익


조선의 입장에서도 전투병의 러시아 파병은 원하는 바가 아니다. 한국은 미국의 압력과 유엔의 요청에 따라 공식적으로 분쟁지역에 파병을 해왔다. 하지만 일단 조선은 해외분쟁에 공식적으로 개입하지 않는다. 한미의 위협에 고전하는 조선이 해외 전쟁에 조선인민군을 희생한다는 것이 조선 인민들에게 설득력이 없기 때문이다. 


베트남 전쟁 당시 조선은 비공식적으로 공군만 파견한 것으로 알려졌고, 이러한 사실은 2012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베트남전 참전 사망자 묘지를 언급하면서 공식적으로 인정됐다. 


따라서 설사 특별군사작전이 공식적으로 전쟁으로 전환된다고 해도 조선인민군의 공식파병은 조러 양국 모두 원하는 바가 아니다. 비공식적 파병은 서방과 조선 인민들에게 노출이 안 되는 공군을 고려할 수 있지만 최고 전력을 자랑하는 러시아에 조선의 열악한 공군이 파견될 리가 없다. 


오히려 서방 언론에서 보도된 대로 조선의 미사일이 러시아에 공급됐다면 이 미사일의 운용과 기술적 문제 등을 지원하는 비전투병력의 비공식적 파견은 가능하다. 하지만 러시아가 운용능력 때문에 조선에 지원을 요청할 리가 없고 조선 입장에서도 미사일 운용에 관한 정보만 공유하면 되지 굳이 병력을 파견할 필요가 없다. 


러시아와 조선이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조선의 지원은 눈에 띠지 않고 전투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러시아의 군사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안이다. 기존의 전쟁무기의 지원 이외에도 병참과 기반시설에 대한 인력 지원이다. 조선의 노동력이 병참이나 산업기반, 사회간접시설에 투하된다면 러시아는 여분의 인력을 군사작전에 동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력송출은 이미 진행되고 있는 사안이었지만 유엔의 제재로 인해 러시아 내 조선의 인력은 송환되고, 새로운 인력의 송출도 중단된 상태였다. 하지만 유엔에서 러시아와 중국의 비협조로 유엔 제재의 이행과 감시가 이완된 상태이다. 


그렇다면 전쟁 기간 부족한 민간 인력의 충원을 위해 전쟁 직후 복구사업을 위해 러시아는 우수한 조선의 인력을 필요로 하고 조선은 경제 제재로 인한 외환부족을 일부 해결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인력송출도 유엔결의 위반이고 러시아가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이기 때문에 비공식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한일군수지원협정 논란의 배후 김태효 안보1차장

김장민(정치경제학연구소 프닉스)


김태효의 현실주의는 일본과 미국의 지배를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것


김태효는 국가안보실 실무를 총괄하며 외교안보, 경제를 담당했는데, 2024년부터는 경제분야는 신설된 제3차장이 맡고 있다. 김태효가 주력하고 있는 사안은 이명박 때 공론화하지 못한 한일상호군수지원협정 체결 문제이다. 


2024년 8월 27일 김선호 국방부 차관이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오전에 한일군수지원협정 체결을 주장하다 오후에는 정부 차원에서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말을 바꿨다. 김 차관은 입장 번복에 김태효의 개입이 없다고 밝혔지만, 이명박 때 지소미아 추진에 대한 반발로 사임한 김태효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 이른바 김태효식 속도조절론인 것이다. 


김태효의 아버지가 박정희 때부터 노태우 때까지 검사장을 지냈으며, 김태효의 부인은 조중건 전 대한항공 부회장의 막내딸이다. 김태효 부자는 소위 SKY 출신이 아니지만 현실에 적응하고 열심히 노력해서 상류층 계열에 올라섰다. 한마디로 미일의 지배를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미일의 지배에 협력하면서 부귀영화를 누려온 관료와 재벌가 출신이라는 것이다. 


김태효의 시카고 대학 박사 논문 지도교수는 국제관계에서 이념이나 가치보다는 국가들의 현실적인 조건과 이해관계를 중시하는 존 미어샤이머 교수이다. 김태효의 문제는 일본과 미국의 지배를 받는 한국의 현실을 현실주의라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를테면 미어샤이머 교수는 북핵문제에 대해서도 미국이라는 강자와 조선이라는 약자에 서기보다는 핵무기가 전쟁 억지와 체재유지수단이므로 조선이 핵무기를 폐기할 리가 없다고 보는 반면 김태효는 강자 지배의 현실주의 입장에서 한미일 동맹이 힘을 합하면 북의 핵무기도 폐기하고 체제도 바꿀 수 있다고 본다. 조선이 핵을 포기할 경우, 1인당 국민소득을 3,000달러로 높이는 경제지원을 한다는 이명박 정권의 '비핵-개방 3,000'도 그의 작품이다.



가치동맹은 미국이 중심 되는 반공동맹을 변태적으로 계승


김태효의 1993년 코넬대 석사 논문 주제는 일본 정책이었고(The politics of environmental policy in Japan : With a focus on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center and the locality). 1997년 박사 논문 역시 전후 일본의 안보정책이었다(The origins of Japan's minimalist security policy in postwar period : a designed strategy).


김태효가 2004년 미국의 보수적인 싱크탱크 전략국제연구센터(Center for Strategic and International Studies, CSIS)의 지원을 받아 제출한 논문이 한미일 동맹에 관한 김태효의 정리된 입장이라고 볼 수 있다(The Future of U.S.-Korea-Japan Relations: Balancing Values and Interests). 즉 한국에 대한 미일지배를 현실로 인정하고 한미일의 이해관계 공동체를 추진하며 그 가치는 과거 반공동맹이었다면 지금은 민주주의동맹이다. 


즉 미국이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확대하기 위해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한미일이 과거는 공산국가이자 현재는 독재국가인 북중러를 봉쇄하고 견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이한 2023년 4월 한미정상회담은 핵협의그룹 설립 등을 포함한 ‘워싱턴 선언’을 발표했다. 윤석열을 수행한 김태효는 이를 두고 한미동맹이 가치동맹을 기반으로 하여 안보동맹, 산업동맹, 기술동맹, 문화동맹, 정보동맹 등 5개의 기둥을 세웠다고 자평했다. 


김태효는 친일파가 아니라 친미파로서 미국의 한일정책을 관철 중


김태효는 부친과 이명박의 인연 등으로 인해 2004년 이명박이 서울시장에 재직할 때부터 외교 분야 가정교사의 역할을 했으며, 인수위를 거쳐 청와대에서 대외전략기획관, 대외전략비서관을 역임하면서 이명박 정권의 외교실세로 군림했다. 김태효의 외교노선의 핵심은 미국 중심의 한미일동맹을 완성시키는 것이고, 그 핵심은 미국이 해방 이후 꿈꿔왔던 한일동맹을 성사키는 것이다.


김태효는 본질적으로 친미파이나 미국의 한일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친일파로 인식되고 있다. 이명박의 외교정책을 장악한 김태효의 역작은 일본과의 군사정보보호협정(통칭 지소미아(GSOMIA)) 및 상호군수지원협정(ACSA) 추진이다. 이중 지소미아는 2012년 체결 직전까지 갔으나 김태효 주도의 졸속적인 밀실협정이라는 여론에 막혀 좌절됐다. 지소미아는 박근혜 때 미국의 압력에 밀려 일본군대 위안부 문제 합의와 함께 체결됐다.



윤석열과의 악연으로 이어지는 김태효의 한미일동맹 신념


친미파로서 한미동맹을 주로 다루던 김성한은 윤석열의 초등학교 동창이며, 외교안보연구원 시절에 김태효와 같이 재직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에서 외교통상부 제2차관으로서 업무상 청와대 비서관인 김태효의 지시를 받는 입장이었다. 윤석열 정부의 국가안보실장을 맡은 김성한이 김태효를 인수위원으로 끌어들였고, 그 인연으로 김태효는 청와대에서 국가안보실 제1차장과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처장을 맡고 있다. 


김성한 실장은 윤석열의 방미 당시 한국 걸그룹 블랙핑크와 미국 가수 레이디가가의 합동 공연이 무산되고, 김태효와의 갈등으로 한미정상회담을 한달 앞두고 2023년 3월 말 사임했다. 김성한 사임 후 윤석열의 김태효의 독주를 염려해 조태용 주미대사를 후임 국가안보실장으로 임명했다. 


그러나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을 비롯하여 현재 청와대의 외교안보 라인의 고위급 상당수가 이명박 시절 김태효의 휘하에 있었다. 김태효가 이명박 시절 퇴임 후 국방자료를 사적으로 보관하다 받은 벌금형을 윤석열이 사면까지 해주면서 곁에 두면서 김태효가 외교안보 실세로 군림하는 것을 조태용 실장의 견제 아래 묵인하고 있다. 


김태효는 김성한 실장 사임 이후 2023년 4월 한미정상의 워싱턴 선언, 동년 8월 한미일정상의 캠프 데이비드 선언을 도출하면서 큰 그림인 한미일동맹을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작은 그림인 한일동맹을 실질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한미일동맹, 한일동맹 모두 민주주의동맹을 기반으로 중러를 제1의 적으로 조선을 제2의 적으로 상정하여 군사안보, 정치외교, 경제, 산업기술.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공동보조를 강화하는 것이다. 


김태효는 이명박 때와 마찬가지로 한일동맹 추진을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고 있다. 국민여론상 한일동맹으로 직행하기 어렵기 때문에 다수의 협정으로 동맹의 효과를 내는 다시 말해 한일간의 군사정보협력, 군수지원협력 등 잔가지로 기둥을 만드는 방식을 선호하고 있다. 김태효의 논리는 한일관계의 과거사 문제를 덮어두고 한일동맹을 추진하자는 것이다. 


김태효는 2015년 8월 3일자 조선일보 칼럼 "사과 받는 나라와 사과하는 나라"에서 과거사에 대한 사과를 한일관계 개선의 전제로 삼는 국민여론을 비판했다. 2017년 9월 18일자 "한·미·일 안보 협력 말고 다른 길은 없다"라는 제목의 조선일보 칼럼에서는 한일 상호군수지원협정(ACSA) 체결을 주장했다. 




핵을 보유한 국가는 어떤 행동을 할 것인가?

 마크 벨의 모델에 따라 핵보유국으로서 조선(북한)의 향후 행동을 유추해볼 수 있다. 먼저 조선의 입장에서 한미일 동맹이 조선에 대해 전면적인 공격을 한다면 핵무기를  사용할 것이다. 하지만 조선이 수천대의 방사포와 수십기의 핵무기로 인해 심각한 전쟁의 가능성이 없다고 본다면 즉 자신의 억지력이 작동하고 있다고 본다면 조선은 후원자 동맹인 러시아와 중국으로부터 대등한 독자노선을 선택할 수 있다. 


미국의 경우를 보면 미국은 심각한 안보위협을 느끼지 않고 있으며, 후원자동맹도 없고 새롭게 급부상하려는 의지도 없다. 이 경우 미국은 핵무기를 통해 나토, 일본, 한국과 같은 하위 동맹들에게 핵무산을 제공하는 등 안보협력을 통해 핵확산을 막고 자신의 지도적 지위를 유지하려는 정책을 취할 것이다. 


중국의 경우를 보면 대만 문제를 핵무기를 사용하는 심각한 안보위협으로 볼 것인지에 대해 논란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최근의 미중 비공식 모임에서 중국은 재래식 무기를 통해 대만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고 밝혔다. 따라서 중국의 경우 심각한 안보위협이나 상위의 후원자동맹도 없다. 그렇다면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미국과 대등한 지위로 급부상할 의도와 그런 객관적 경향이 있냐고 문제될 수 있다. 


중국은 핵탄두를 2030년까지 천기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장기적으로 미러와 같은 수준을 목표로 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의 경제력에 부합하는 강대국의 지위를 최대한 빠르게 획득하고자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중국은 강력한 핵무장을 전제로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대만 통일에 대한 확고한 입장을 유지하고, 조선과 같은 주변 하위 동맹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려고 할 것이다. 


러시아의 경우 우크라이나 전쟁을 중대한 안보위협으로 본다면 핵무기를 사용하겠지만 러시아는 특별군사작전으로 보면서 그 의미를 축소하고 있다. 다만 나토가 직접 개입하면 전술핵무기 사용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러시아는 심각한 안보위협이 없으면 상위의 후원자 동맹도 없다. 러시아는 새로운 강대국으로서 급부상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 냉전 시대에 비해 추락한 국제적 지위를 회복하려고 한다. 즉 러시아는 라이벌인 미국에 대해 대등한 지위에 서려는 한도 내에서 강경한 현상유지 정책을 선택하고, 과거 소련의 영향 아래에 있던 하위 동맹국들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고자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처럼 소련, 독립국가연합 소속 국가에 대해 미국과 나토의 영향력이 확대될 때 즉 서방의 동진에 대해 러시아가 재래식 전쟁을 불사한다. 


국제질서 다극화 경향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20세기 국제질서 체제에 대한 이해


미국은 양차대전을 승리로 이끌면서 또 다른 세계대전을 막고자 국제연맹과 국제연합을 추진했습니다. 국제연맹은 제안 국가인 미국의 고립주의 때문에 성사되지 못했지만 국제연합(UN)은 지금까지 세계대전을 저지하는데 나름 역할을 해왔습니다. 루스벨트의 유엔구상은 미소가 양극이 되고 중국, 프랑스. 영국 등 5대 강대국이 세계를 운영하는 것이었습니다.


소련의 붕괴 이후 세계는 미국 단극체제를 유지해왔으나 푸틴의 러시아가 재부상하고 있으며, 미국과의 세계분업으로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중국이 미국의 강한 견제를 받고 있습니다. 인구대국 인도 역시 빠른 경제성장과 미중러의 경쟁 속에서 독자노선으로 4강 체제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 중동전쟁, 대만 긴장, 북미대결전에서 보듯이 친미동맹에 저항하는 러시아, 중국. 조선. 이란의 협력이 강화되고 있습니다. 미국 패권에 저항하는 반제반미전선이 형성되는 기세입니다. 


이런 조건에서 최근 국제질서 다극화에 관한 담론이 활성화되고 최근에는 다극화 포럼이 결성됐습니다. 이런 다극화 담론이 반제반미전선, 유엔의 다극체제(5대 상임안보리국가). 혹은 과거 소련의 평화공존론, 비동맹노선과 어떻게 다른지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향후 다극화가 4강 중심의 블록화로 나타날 것인지, 남북분단을 강요하는 미국의 전쟁정책에 저항해야 하는 우리 입장에서 다극화를 어떻게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할 것인지도 중요합니다. 다극화 담론은 결론과 현상만을 논의하지 다극화의 원인과 비판적 발전 경로, 그리고 강대국 관점이 아닌 약소국 입장의 대응전략이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 


다극화는 미국 일극 패권에 저항하는 중러의 주체적 노력에 의한 결과가 아니라 미국이 일극 패권을 유자하기 위해 중러를 견제한 결과 중러가 피동적으로 적응한 결과이다. 


소련의 미소 평화공존론은 미국과 적대적인 관계에 있었던 중국. 조선에 의해 거부됐다. 소련 붕괴 이후 엘친의 러시아는 미국 단극체제에 종속당한 채 나토의 동진에 굴욕적으로 감수해왔다. 푸틴의 러시아는 유럽연합과 나토 등 서방공동체에 편입하고자 했으나 유럽에서 독점적 패권을 유지하려는 미국에 의해 배척당해왔다. 러시아는 신자유주의 분업 체제에서 에너지와 자원을 중심으로 제한적인 세계분업의 혜택을 받아왔다. 러시아가 오일달러를 기반으로 동진하는 미국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미국으로부터 제한적인 세계분업 조차 차단당함으로써 미러 공존은 파탄 났다. 


1954년 중인 정상회담. 1955년 반둥회의에서 저우언라이(주은래)의 중국은 비동맹 결성을 주도했지만 중소분쟁과 미중수교, 미중분업체제를 거치면서 비동맹과 멀어져 갔다. 미국은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중소분쟁에서 중국 편을 들면서 중국과 세계분업 체제를 구축했고, 그 결과 중국은 친미 신자유주의 세계분업 체제의 가장 큰 수혜자였다. 미국은 일본과 독일을 견제하고자 중국을 세계의 경공업 공장으로 삼았으나 중국이 경제력을 기반으로 미국을 추격하자 중국의 세계분업 참여를 저부가가치 영역으로 제한하고자 미중밀월 관계를 종식시켰다. 


중러가 미국에 대항하면서 독자적인 역량으로 다극화란 결과를 도출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미국이 세계분업 체제를 제한적으로 복구하면서 중러를 일부 포용할 경우 중러는 다시 미국과 평화공존 노선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즉 현재 미국에 저항하는 중러 중심의 다극화가 미국과 협력하여 세계를 분할하는 미국과 평화공존하는 다극화로 변질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즉 미중러인의 국익에 따라 다극화의 핵심 내용인 미국과의 관계가 유동적이다. 


다극화의 이런 한계를 고려할 때 미국의 지배전략에 저항해야 하는 코리아의 입장에선 미국의 중러 포용정책에 따라 중러가 미국과 마찬가지로 한반도 분할 정책을 현상유지정책으로 수용할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따라서 코리아의 입장에선 다극화가 미국의 대코리아정책에 저항하는 전선이 되도록 중러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견인할 필요가 있다. 


이런 면에서 미국에 저항하는 조러관계의 근본적 변화는 다극화의 미국 견제라는 긍정적 방향을 이끌고 있다. 오히려 중국이 미국 견제라는 포지션에 대해 자신의 국익적 관점에서 동요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과 군사적으로 대등해질 때까지는 물론, 그 이후에도 대만 문제 등 중국의 핵심 이익을 미국이 건드리지 않는다면 미중 평화공존. 공동번영이라는 세계분업 체제의 혜택을 누리고자 의지가 있다고 봐야 한다. 


결국 국제관계에서 이념이나 우정보다는 국익과 힘이 우선한다는 점에서 미중러의 틈바구니에 있는 나라들 역시 미중러에 줄서기보다 국익을 위한 을들의 동맹이 필요하다. 특히 한국은 남북공동체뿐만 아니라 미중러 한쪽 편을 들 수 없는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동아시아 경제공동체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미중러에 종속당하지 않는 독자적인 역량이 있을 때 미중러와 공평하게 공동번영할 수 있다.

미국, 한반도에서 세계대전 준비 중. 독일과 일본 유엔사 가입 추진

김장민(정치경제학연구소 프닉스)


유엔군사령부는 유엔의 상설기구가 아니다. 한국전쟁 때 임시로 꾸려진 사령부다. 정전협정이 지속되기 때문에 이름만 남은 사령부이다. 가끔 정전협정 준수에 관한 업무를 하지만 사실은 주한미군이 대부분 담당하고 있다. 주한미군사령관이 한미연합사령관과 유엔군 사령관을 겸하고 있다. 한국군에 대한 작전권도 한미사령관에게 위임했기 때문에 작전지휘 기능도 없다. 


그런데 미국이 한국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유엔사를 확장하고 있다. 주한미군. 한미연합사로 한국의 군사주권을 지배하는데, 이것도 부족해 연합사를 통해 한국의 군사주권을 3중으로 통제하겠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유엔사에서 유럽, 아시아. 이스라엘의 친미동맹을 통합할 계획


첫째 비무장지대 관리. 월경에 대한 권한을 유엔사령부가 갖고 있는데, 미국이 유엔의 이름으로 남북철도. 금강산, 개성 등 남북의 평화교류를 통제하려는 정치적 목적이다. 즉 한반도 평화와 통일 추진을 방해하려는 목적이다. 


둘째 미국이 직접 한국의 군사주권을  통제하는 것에 부정적인 여론이 높아가기 때문에 한국전쟁 때 피를 흘려서 한국을 도와준 유엔의 이름으로 한국을 통제하려는 것이다. 


셋째 미국이 중국, 러시아에 대한 군사적 대항 사령부를 지구적 차원에서 구성해야 하는데 한국전쟁 때 구성돼 유지되고 있는 유일한 유엔사령부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결국 한국전쟁과 마찬가지도 북중러 동맹을 상대로 한 세계사령부를 한반도에서 출범시키려는 것이다. 미국의 세계사령부의 완성은 유럽의 나토와 아시아의 친미동맹을 합치는 것이고 이 작업이 한반도의 유엔사령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유럽 나토의 핵심은 독일이며. 아시아 친미동맹의 핵심은 일본이다.


따라서 미국은 독일과 일본을 한반도의 유엔사령부에 편입시키고자 노력해왔다. 이것이 성사되면 일본도 유사시에 한반도에 자위대를 파견할 수 있는 것이다. 독일과 일본은 2차대전의 전범국이며, 한국전쟁 때 공시적으로 유엔사에 결합한 바가 없다. 독일과 일본을 유엔사에 편입하는 행위는 유엔사의 설치 취지에 반하는 것이며, 전범 국가를 재무장하도록 하는 평화파괴행위이다. 


한일이 참여하는 다자동맹을 강화하여 한일동맹 효과를 노려


미국은 문재인 정부 시절에 독일과 일본을 유엔사령부에 편입하려다 국민여론을 고려한 문재인 정부의 반대로 성사시키지 못했다. 지난 8월 2일 독일 국방장관이 내한하여 공식적으로 독일이 유엔사에 편입하는 절차를 진행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오히려 적극적이다. 일본과의 군사정보협정을 강화하고 한미일 군사동맹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7월 28일 한미일 국방장관은 “미국 국방부, 일본 국방부, 대한민국 국방부(TSCF) 간의 3국 안보 협력 프레임워크에 대한 협력 각서(MOC)”에 서명하고, 서명과 즉시 발효되었다고 발표했다. 협력각서(MOC: Memorandum of Collaboration)는 국가 간 조약이나 정부 간 협정이 아니지만 정부 부처간 협력 문서로서 양해각서(MOU: Memorandum of Understanding)와 동일한 법적 효력을 갖는다.


이 각서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3국이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3국 성명에 따르면 3국안보협력 프레임워크(TSCF)는 고위급 정책 협의, 정보 공유, 3국 훈련, 국방 교류 협력을 포함한 국방 당국 간의 3국 안보 협력을 제도화하여 한반도, 인도-태평양 지역 및 그 너머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한다.


최근 한미일의 군사협력 강화를 통해 본 미국의 전략은 다음과 같다. 


“이승만 정부 때부터 추진한 한일동맹은 과거사 문제 등 양국의 여론에 비추어 성사되기 어렵다. 따라서 한일 양자동맹 대신에 한국과 일본이 참여하는 다자동맹을 먼저 추진한다. 한국군과 자위대가 양자 훈련을 못하더라도 한미일 군사훈련을 통해 한일 군사훈련의 목적을 달성한다. 한국과 일본은 동맹을 맺지 않더라도 양자 군사협력을 확대 강화한다.”


이러한 다자동맹이 쿼드. 오커스, 한국과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 이른바 인도·태평양 4개국(IP4)이며. 이들 정상들은 나토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나토 회원국 일부는 한반도와 대만 등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한미일과 합동군사훈련을 해오고 있다.


아시아 태평양 전쟁을 위한 친미동맹의 약점은 한일 관계


중동의 미국 맹방인 이스라엘이 아시아 태평양에서 한미일 해군과 함께 군사훈련을 해왔다. 미국 3함대 사령부 주관으로 격년마다 실시되는 다국적 해상훈련 ‘환태평양훈련(림팩·RIMPAC)’이 2024년 6월 26일부터 8월 2일까지 열린다(한국시간). 1971년에 시작되어 올해로 29회째를 맞는 림팩 훈련은 ‘세계 최대의 해상 군사훈련’으로 올해는 미국 하와이 근방 바다에서 진행된다. 이 훈련에 이스라엘이 참가한다. 유럽. 태평양 아시아. 중동 등 미국이 지휘하는 세계대전을 대비하는 전쟁 훈련을 하는 셈이다.


만약 유엔사에 독일에 이어. 일본과 이스라엘까지 가입한다면 미국은 꿈에 그리던 세계대전을 위한 사령부는 한국 땅에서 출범시키는 것이다. 북한을 핑계로 대만. 남중국해, 일러 분쟁 지역에서 중러를 견제하고 유사시 중러에 대한 대규모 전쟁에 대비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의 이런 전쟁계획에서 약한 고리는 한일관계이다. 양국이 군사적 협력을 하지 않는다면 미국 중심의 세계사령부가 완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한일의 군사협력이 확대 강화되고 있지만 아직은 군사동맹 수준이 아니다. 따라서 현재의 양국 관계를 군사동맹으로 속단하기보다는 군사동맹으로 나아가는 과정으로 보면서 이를 무산시킬 수 있는 국민여론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⓻ 탈북자를 극우세력으로 육성하는 한미의 보수진영과 정보기관

 탈북자를 극우세력으로 육성하는 한미의 보수진영과 정보기관


김장민(정치경제학연구소 프닉스)



정치적, 경제적 목적 이외에도 속아서 탈북하기도 


첫 번째 탈북자 그룹은 1990년대 사회주의 붕괴기에 정치적 목적으로 조선을 탈출했다. 1997년 황장엽 노동당 비서가 탈북한 이후 주도한 탈복자동지회가 시초이다. 2000년대 들어서 미국 등이 조선인권 문제를 공론화하면서 국내외 보수진영의 지원을 받는 탈북단체들이 결성됐으며 2007년 탈북단체 연합체로서 북한민주화위원회가 발족됐다.


두 번째는 경제적 목적으로 한국으로 입국한 2000년대 이후 탈북한 경우이다. 이들은 탈북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극복하기 위해 한국 내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하면서 정치적 중립을 내세우지만 정치활동도 조심스럽게 하고 있다. 


일부 탈북지식인들이 탈북민들이 단순히 관리대상으로 전락하고 정치적으로 이용당하는 것에 반발했다. 이들은 보수진영이 운영하는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을 비판하면서 탈북자지원사업에서 탈북민을 대등한 주체로서 인정해줄 것을 요구했다.


세 번째는 주로 중국에 거주하다가 탈북기획단체의 적극적인 공작에 의해 한국에 입국한 경우이다. 국내외 인권단체나 한미의 정치공작부서는 조선의 체제를 압박하는 수단으로서 조선의 경제난과 인권 문제를 부각시키기 위해 원래 한국에 입국할 의사가 없었던 이들을 대상으로 공작을 해왔다. 


탈북자 지원금의 일부를 수수료로 받으려는 목적으로 한국 입국을 주선하는 브로커 조직도 이에 가담해왔다. 이들은 중국 주재 외교공관에 무단 진입하거나 브로커의 안내로 제3국을 경유하는 방식으로 한국에 입북한 경우가 많다. 심지어 유경식당 조선 종업원의 집단 입국처럼 한국행을 모르고 브로커에게 속기도 한다. 


기획탈북이 폭증하자, 중국은 조선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체포된 탈북자 일부를 북송하기도 했으며, 이 과정에서 한국정부가 적극적인 대처를 하지 않았다는 비난 여론이 형성됐다. 보수진영은 이런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주로 민주당 정권에 대해 친북정권이라고 비난했다. 



핵 개발하는 조선에 대한 체제전환 정책으로 정치적으로 육성돼


조선이 2006년 1차 핵실험을 한 이후 한미의 보수진영은 조선을 압박하기 위해 “인민이 굶어죽는데, 핵무기 개발에만 혈안이 돼 있다.”는 식으로 조선의 인권문제를 부각시켰다. 또한 이들은 김대중, 노무현의 대북사업이 조선의 핵무기 개발 자금줄이라는 비난을 이어갔다. 북한민주화위원회는 이러한 보수진영의 논리와 지원 속에 출범했으나 2010년 황장엽 비서가 사망한 후 내분이 발생해 2012년 ‘북한민주화추진 연합회’가 발족됐다. 


이 단체에 북한민주화운동본부, 북한전략센터, 북한인민해방전선, 성공적인 통일을 만들어가는 사람들, 자유북한 운동연합, 자 유북한방송, 정치범수용소 해체운동본부, 탈북여성인권연대, 통일을 준비하는 탈북자 협회, 세계탈북인총연합회, 정치범생존자 유족회, 탈북난민인권연합, 평화통일탈북인 연합, 탈북문화예술인 총연합회, 탈북민 자립센터, 탈북인총연합회, 탈북청년연합 등이 참여했다. 북한민주화추진 연합회는 황장엽의 그늘에서 벗어나려고 독자사업으로서 통일항아리운동, ‘임진각 풍선보내기 행사’를 추진했다.



조선규탄 집회, 풍선보내기, 기혹탈북에 자금 제공돼


첫째는 조선의 핵 개발과 인권 탄압. 한국의 대북협력 정책을 비난하는 집회에 참석하는 탈북자에 대한 금품지원이다. 연평도 포격전, 천안함 침몰사건 등 남북현안이 있을 때마다 일부는 자발적으로 일부는 동원돼 이러한 집회가 반복됐다. 집회가 보수진영의 기획단체에 의해 추진되면 탈북자 단체에 참석 요구를 하고 다시 주로 탈북여성 네트워크 의해 참가자가 조직되는 방식이다. 참가자는 참가비를 받고 탈북자단체는 운영비를 챙기면서 공생관계가 형성됐다. 2012년 사단법인 비전코리아와 탈북난민인권연합의 계좌이체 내역으로 이러한 금전거래 관계가 폭로된 바 있다.


둘째는 풍선보내기, 기획탈북 등 대북 선전사업에 대한 한미 보수진영과 정보기관의 지원이다. 한미의 정보기관과 보수교회가 `북한인권시민연합,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좋은 벗들`, ‘탈북난민유엔청원운동본부’, ‘탈북난민유엔청원운동본부’ 등 대북 기획단체를 지원한다. 


그러면 이들 단체들이 독자적으로 대북 사업을 하거나 휘하에 탈북자동지회, 숭의동지회, 자유를 찾아온 북한인협회, 통일을 준비하는 귀순자협회, 한백회, 진달래회, 통일연구회, 탈북자봉사단과 같은 네트워크를 두고 자금을 지출하는 방식이다. 심지어 두리하나선교회나 예랑선교회 등 일부 교회는 중국에서 직접 기획탈북이나 대북 선교를 하고 있다.


해외에는 일본의 `북한민중구조긴급행동네트워크(RENK)`와 `북조선 귀국자의 생명과 인권을 지키는 회`, `북한난민구원기금`, 미국의 `북한인권위원회`와 `세계난민과 인권 재단(EAGIS)`, 벨기에의 `국경없는 인권회`가 있다.



탈북자 단체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는 미국 정부


미국의 ‘국립민주주의기금(NED)'은 사실상 국무부 산하 기관이며, 미국 중앙정보국(CIA)와 협력하고 있다. 이 기구는 미국의 적대국에서 민주화와 인권 명분으로 매년 수백 원을 지출하고 있다. 특히 미국 국무부 내 민주인권노동국의 '인권과 민주주의 기금(HRDF)'은 탈북단체를 재정 지원한다. 


한국의 NAUH(나우), 북한인권시민연합, 북한인권정보센터, 열린북한방송, 자유북한방송, 데일리NK 등의 단체가 매년 NED 자금을 받고 있다. NED 홈페이지에 게시된 2019년 내역에 따르면 김정은 위원장 '건강이상설' 오보 사태의 진원지인 데일리NK에만 40만 달러가 지원됐다. 북한개발연구소에 28만 달러, 북한인권정보센터에 22만 달러, NK워치에 21만 달러, 나우에 12만8000달러, 국민통일방송에 60만 달러의 자금을 댔다. 


대북전단 살포를 주도한 자유북한운동연합(대표 박상학)도 미국으로부터 자금을 공급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북 풍선 관련  단체들은 북으로 풍선이 날아가지 않는 겨울철에도 풍선을 날리고 이 사진을 찍어 미국으로부터 재정지원을 받는다. 파주 접경지역의 이적 목사는 '디펜스포럼재단(DFF)' 대표인 수잔 숄티(Suzanne Scholte)가 박상학에게 돈을 전달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조선에 들어가 선전사업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대북방송과 함께 대북풍선을 조선의 체제전환 프로그램으로서 높게 평가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때 대북풍선을 제한하는 입법을 하자 미국 정부가 직접 나서 한국정부에 법을 철회하도록 압박했다.


일부 탈북자단체들이 미국 정부나 교회의 자금을 운영비로 쓰면서 자금 유용문제도 발생한다.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온 탈북자 출신인 지성호 미래통합당 의원은 'NAUH(나우)'의 회계투명성 문제를 거론했다. 통일부는 탈북자 예술단체의 자금 유용을 감사했다. 심지어 기획탈북자금으로 지출된 정부 예산을 빼돌리는 경우도 적발됐다.



⓺ 개신교 내 극우세력 한기총과 전광훈 목사

한국과 미국의 신구 극우세력 비교


개신교 교단, 진보에서 극우까지 포진했으나 보수가 지배적


에큐메니컬 운동은 모든 기독교 교회를 통합하자는 것으로서 1924년 발족된 조선예수교연합공의회에서 시작되었으며, 1946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The National Council of Churches in Korea. NCCK)로 이어졌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 8개의 개신교와 한국 정교회(동방기독교) 등 총 9개 교단이 가입해 있다. NCCK는 군부독재 시절 민주화운동에 참여해 상대적으로 진보적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광복절, 제주4.3, 광주5.18 등을 기념해 대규모 합동기도회를 열고 있다. 


NCCK가 1988년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 기독교의 선언'을 통해 기독교의 반공주의를 비판하고 평화통일 운동에 기독교가 기여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보수적인 개신교 교회들이 NCCK에 반발해 1989년 월남한 개신교들을 중심으로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를 출범시켰다.


한기총은 개신교 최대 규모의 연합체였으나 2012년 부정선거 등 내분이 발생하여 일부가 탈퇴해 보수적인 한국교회연합(한교연)을 창설했다. 한교연은 2017년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의 통합 문제로 분규가 발생하여 한교연의 대부분의 교회들이 탈퇴해 중도보수 성향의 한국교회총연합을 만들었다. 현재 한교총은 예장 통합, 합동, 백석, 고신, 기독교대한감리회,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등 30여개 교단으로 구성돼 있으며 전체 개신교 교인의 95%가 가입돼 있다.


한기총은 전광훈이 2019년 1월부터 2020년 5월까지 회장을 맡으면서 극우화됐다. 전광훈이 극우정치에 참여하고 이단 교회를 자의적으로 이단에서 해제하자. 주요 교단들이 탈퇴했다. 이후 전광훈은 선거절차 문제로 법원에 의해 직무정지를 당했고 2022년 12월 이단으로 규정돼 제명이 추진되기도 했다. 현재 한국기독교총연합회에서 예장합동, 예장통합,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기독교대한감리회, 예장백석,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예장개혁, 예장고신, 예장합신, 한국기독교장로회에 이르는 교인 수 1위부터 10위까지 대규모 교단이 모두 탈퇴한 상황이다. 


한국 개신교는 진보적인 NCCK, 중도보수적인 한교총, 보수적인 한교연, 극우적인 한기총으로 분할돼 있으나 한교연과 한기총의 규모는 유명무실한 정도이다. 2023년 한기총과 한교총의 통합이 논의되기도 했으나 성사되지 못했다. 



개신교의 뿌리는 보수적인 미국 개신교의 선교활동


가톨릭과 달리 개신교는 19세기 말에 미국의 선교사들에 의해 전파됐다. 선교사들은 미국 개신교 중에서도 금주법 운동을 주도한 보수적인 교단에 속했다. 일제하에서 미국 선교사들은 서울과 평양에서 의료기관과 교육기관을 설립하여 선교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등 교세를 확대했다. 평양에서 1907년 대부흥운동이 성공하면서 개신교가 널리 퍼졌으며, 이들 청년운동의 일부가 해방 후 월남하면서 서북청년단으로 발전한다. 


일본이 청나라를 조선에서 내쫓고 동학군도 진압하면서 조선 침략이 노골화되고 있을 때인 1901년 조선예수교장로교공의회가 '교회의 정부 사이에 교제할 몇 가지 조건'이라는 결의안을 통해 “교회는 나랏일을 하는 곳이 아니니, 정부 일에 간섭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1905년 가쓰라-태프트 밀약에 의해 미국은 필리핀을, 일본은 조선을 식민지로 삼기로 양측이 합의했다. 이 때문에 미국은 일본이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할 때 다른 나라보다 가장 먼저 서울의 공사관을 철수하는 등 일본의 조선점령에 사실상 협력했다. 미국 선교사들도 미국 정부의 지침에 따라 정교분리, 내정불간섭이라는 미명 아래 일본의 조선 지배에 협력했다. 그나마 조선에 우호적인 선교사들도 조선이 식민지로 전락한 것은 조선인들이 미개하기 때문이고 그래서 기독교 선교와 교육으로 계몽운동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친미 이승만과 군사독재 시절에 개신교가 폭발적으로 증가


미국 개신교가 한국에서 폭발적인 성장을 하게 된 것은 한국전쟁을 전후로 미국이 한국을 정치경제적으로 지배하면서부터이다. 해방 직후 미군청이 남한을 지배하면서 새로운 선교사들이 대거 입국했으며 기존의 선교사들이 조선의 실정을 잘 알고 있어 미군정에 참여하면서 영향력을 확대했다. 미국의 원조물자 중 상당수는 개신교 교단에 기부됐으며, 개신교는 이 물자들을 배급하면서 교세를 확장할 수 있었다. 또한 원조물자 일부는 교회 운영비 등 교세 확장에 사용됐다. 


미국의 지원으로 미국에서 돌아 온 감리교인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이 되면서 개신교도들이 주요부처를 장악했고 미국은 이들을 후원했다. 배덕만 교수에 따르면 제1공화국이 만들어질 때까지, 한국 기독교는 인구의 5%도 되지 않았지만 장관급 40%가 기독교인이었다. 미국의 원조물자가 한국경제를 지탱해주면서 미국의 국교인 기독교 역시 마치 한국의 국교인양 대접받았다. 이때 크리스마스가 공휴일로 지정됐다. 


박정희 대통령은 자신에 대한 공산주의자라는 의심의 딱지도 떼고 미국의 환심도 살 겸 개신교에 대해 관대한 정책을 펼쳤다. 이때 이미 미국의 온갖 개신교 교단들이 한국에서 자리를 잡았다. 집회를 금지하던 유신헌법 시절인 1973년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여의도에서 100만 명을 모아놓고 한국전도대회를 열도록 허용했다. 박정희 정권은 집회 참여자에게 통행금지령을 면제해주었으며, 예배 때 경찰 군악대가 와서 연주까지 해주었다. 한국대학생선교회(CCC)를 창립한 보수적인 김준곤 목사가 주도한 '엑스플로74'에 10일간 100만 명가량이 모였다. 이 시절 개신교는 5%에서 20%로 성장했다.



개신교는 이승만, 김영삼, 이명박 등 세 명의 장로 대통령을 배출하는 등 한국의 지배집단이다. 2004년 10월 2일 방영된 KBS의 ‘한국사회를 말한다’의 내용에 따르면 상장사 기업 임원의 43%, 국회의원 중 120명이 기독교인이다. 한국은 미국 다음으로 세계 2위 선교대국이다. 총 신자 수는 1200만 명이고, 교회 규모로 볼 때 세계 1 위(80만명), 2위의 교회가 모두 한국의 교회이다. 



개신교와 보수단체가 자발적인 보수 집회 개최 


2002년 당시 기독교 재단은 사립학교의 80%를 소유하고 있었는데 노무현 대통령이 대선을 전후로 사학재단의 부패와 특혜를 개혁하자는 정책을 추진했다. 이에 개신교 교단들은 거리로 뛰쳐나오고 목사들은 삭발투쟁을 감행했다. 한기총이 보수단체와 연대해 처음 대규모 집회를 한 것은 2003년 6.25 대회 때부터이다. 과거 군사정부 때 반공적인 관제데모와 달리 이들의 집회를 어느 정도 자발적이라고 봐야 한다. 


한기총이 최초로 대규모 집회를 개최한 것은 2002년 1월 ‘’나라와 민족을 위한 평화기도회‘이다. 한기총은 2003년 1월에도 ‘나라와 민족을 위한 평화기도회’를 열었으나 반공, 주한미군 철수반대, 반미반대 등 보수적인 주장을 내걸었다. 이러한 대규모 집회는 2003년 3.1절 국민대회로 연결되었다. 이때 한기총은 여의도 한강 시민공원에서 10만 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나라와 민족을 위한 구국 금식기도회’를 가졌다. 


개신교와 보수단체의 대규모 국민대회 개최 비용은 한 회당 2억~3억 수준이다. 이들은 신문광고를 통해 비용을 모금했다고 하나 실제로는 기업과 경제단체로부터 지원을 받았다. 2003년 6.25 대회 때 삼성 이 1억 원, 전경련이 4천만 원, 대한상공회의소가 3천만 원, 대한무역협회가 3천만 원을 지원하였다. 대회비용이 적자가 나자 당시 재정위원장 봉두완이 삼성의 이학수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8.15 대회 때는 경제단체들로부터 1억3천만 원을 지원 받았다. 경제단체들은 보수집회 지원뿐만 아니라 대학에 보수적이고 친자본적인 강좌를 위한 재정을 후원하고 있다. 


보수 개신교 집회 때 태극기와 성조기가 거리를 뒤덮고 이스라엘 국기도 흔히 보인다. 집회 참여자들은 한국이 이스라엘, 미국처럼 선민이라고 생각하고 반공국가, 기독교 국가라는 것을 자랑스러워한다. 최근에는 미국의 반중국 정책에 동조하는 구호도 등장한다. 이들은 코로나를 ‘중국 우한 폐렴’이라고 부르며 중국의 실험실을 코로나의 진원지로 지적하고 중국 공산주의 정권과 거리를 두라고 정부에 요구한다. 



극단적인 행동과 주장으로 개신교 보수 집회가 분열돼


2003년 한기총과 보수집단의 공동집회에서 반공 극우세력들이 인공기를 소각하는 등 과격한 포퍼먼스를 감행하자, 자유총연맹, 대한민국재향군인회 등 관변단체들이 노무현 정권의 눈치를 보면서 8.15  ‘건국 55주년 반핵반김 국민대회’에 불참했다. 한기총 역시 교단 내부의 반발로 대회에 불참했다. 


보수집회는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활발했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자 극우세력들은 활동의 동기가 약해지면서 쇠퇴해졌다. 박근혜 대통령의 집권으로 보수진영들은 거리에 나올 일이 별로 없었지만 박근혜 탄핵 이후 다시 보수진영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태극기 집회는 친박진영이 주도했는데, 보수적인 개신교 목사들은 박근혜 탄핵 반대에 직접 신도들을 이끌고 참여하지 않았지만 개별적인 참여를 독려하기도 했다. 


2016년 11월부터 박근혜 탄핵 추진에 반대하는 보수진영의 집회가 본격화됐다. 이들 태극기 집회는 박근혜가 탄핵된 이후에도 계속됐다. 이들은 박근혜 탄핵에 반대하며 2017년 대선에 조원진 후보를 내세웠으나 0.1% 득표에 그쳤다. 

2017년 대선 이후 친박진영은 정치적으로 파산되고 태극기 부대도 힘을 잃었다. 전광훈 목사 역시 기독자유당의 후원회장에 나서는 등 극우정치를 지원했으나 선거에서 참패했다. 2020년 코로나 직후 교회 예배를 통한 집단감염이 이어지자 정부는 예배를 제한했고 이에 대해 일부 교회가 반발했다. 예배를 하지 않으면 성금이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전광훈 목사는 2020년 광복절에 태극기 부대와 함께 집회를 강행했다. 사랑제일교회에 대한 압수수색 결과에 따르면 전광훈 목사 측은 126만 명을 대상으로 총, 1천 3백만 건이 넘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서 광화문 집회 참석을 독려했다. 전광훈 목사는 교회 건물이 있는 재개발조합 측에 500억 원을 요구하며 건물철거에 저항하는 폭력시위를 배후조종하기도 했다. 


2020년 전광훈 목사는 한기총 회장직을 직무정지를 당했으며, 결국 사퇴했다. 한기총은 2022년 전광훈 목사에 대한 이단여부를 조사한 후 임원회의에서 제명하기로 결정했으나 여러 차례 논란 끝에 제명 조치가 완료되지 못한 상태이다. 

전쟁과 생활고에 시달린 유럽 유권자, 탈미 강조하는 극우 선택

김장민(정치경제학연구소 프닉스)


중동과 우크라이나에서 난민 양산하는 미국과 나토의 전쟁정책에 반발


유럽연합(EU) 선거에서 기존 좌우정당과 녹색당이 패배하고 극우 진영이 약진했다. 녹색당-유럽자유동맹(Greens/EFA)은 2019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71석을 얻었으나, 이번 선거에선 53석 확보에 그쳤다. 반면 유럽보수와개혁(ECR)과 극우인 정체성과민주주의(ID)는 각각 73석, 58석으로 2019년보다 총 12석 늘었다. 


각국 극우정당들이 공통적으로 내건 슬로건이 반이민이지만, 그 본질은 전쟁으로 인한 생활고이다. 극우는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난민 유입, 극단주의 테러 증가 등으로 인한 사회불안을 아젠다로 활용했다. 좌파는 생활고가 미국의 전쟁 정책으로 인한 것임을 각인시키는 것에 실패함으로써 유권자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결국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한 본질적인 원인은 경제난에 대한 각 정당의 정책에 대한 심판이다. 전쟁의 후유증으로 유럽에서 난민 증가, 물가인상, 고금리 등 생활고가 높아지자, 집권당에 대한 불만이 표로 나타난 것이다. 


실제로 이번 선거 직전 설문조사에서 독일의 30대 미만 젊은이들은 인플레이션(65%), 비싼 집값(54%), 노후 빈곤(48%), 사회 분열(49%), 불법이민 및 난민 증가(41%)을 현안으로 선택했다. 이밖에 고금리와 연금도 표심에 영향을 미쳤다. 생활고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좌우 정당들이 우크라이나 전쟁, 친환경 정책에 예산을 배정하는 것에 유권자들이 불만을 지니고 있는 셈이다.


일반 유권자들은 생활고 해결, 금리인하, 전쟁반대, 난민 유입을 막는 국경폐쇄 등을 요구하고 있다. 실제로 유럽중앙은행(ECB)이 선거 직전 6일 기준금리를 1년 11개월 만에 0.25%포인트 내렸다.



경제난 겪는 서민들 “친환경 정책은 한가로운 소리”


녹색당의 부진 역시 전쟁으로 먹고 살기 힘든데, 기후 문제, 산업전환 문제가 너무 한가롭다고 여기는 유권자가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후 유럽 각국은 재생에너지 확대와 2035년까지 신규 내연차 판매 금지 등 친환경정책이 속도를 조절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 중단으로 가격이 치솟은 가스발전소를 폐쇄하고 원자력발전소를 늘려 대체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농민들은 유럽연합(EU)의 친환경 규제에 항의해왔다. 경제성장 둔화, 물가 상승에 따른 생활비 위기 등으로 재정 압박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친환경 규제, 세금 부담까지 농민의 불만이 크다.


유럽의회 선거결과가 국내 선거에 반영되면 이탈리아에 이어 프랑스와 독일에도 극우세력이 집권할 수 있다. 프랑스 집권정당인 중도우파가 패배의 충격으로 조기총선을 선언했다.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이번 선거에서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이끄는 사회민주당(SPD)을 누르고 제2정당으로 발돋움했다. AfD는 2017년 총선에서 제3정당으로 부상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극우정당이 최초로 원내에 진출했다. 



미국에 종속된 유럽공동체, 해체냐 독자노선이냐


유럽의 민심은 미국의 중동과 동유럽에서 전쟁정책 반대, 미국으로부터 거리두기, 미국을 따르는 나토와 유럽연합에 대한 실망 등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런 기조에서 프랑스의 RN이나 독일의 AfD가 이탈리아 극우정당인 이탈리아형제들(FdI) 등 전 유럽에서 독자노선이 강화될 수 있다. 


프랑스 국민연합(RN)을 이끄는 마린 르펜은 물론 극우 당선자들 중 일부는 러시아, 중국과 밀접한 사이다. 이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반대하고, EU의 국방비를 증가시키려는 미국의 정책에 저항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유럽 각국은 미중 경제전쟁에서 미국 편에 서기보다는 사안별로 중국과 협력하는 등 유럽의 이익을 추구하는 독자노선을 걷을 수 있다. 미국이 유럽연합과 나토에 계속 미국을 위한 경제정책과 안보정책을 강요할 경우 유럽공동체가 이완되거나 독자노선을  걷을 수 있다. 미국의 전쟁 정책이 유럽공동체를 위기로 몰고 가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미국의 전쟁정책 반대, 난민 유입반대라는 민중들의 주장이 극우로 평가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전쟁정책으로 인한 난민 증가 반대가 극우로 볼 수 없다. 유럽의 좌파들도 일반적인 이주반대와 전쟁으로 인한 난민 폭증 반대를 구별하지 못하고 극우로 폄하하면서 유권자의 정서를 읽지 못했다. 결국 이러한 전통적인 우파와 좌파의 한계로 인해 극우가 민심을 얻은 것이라고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