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조선의 평화통일 폐기 이후 남한의 통일운동

I. 서론 : 남북 통일운동의 관계에 있어 문제점



외국에서 같은 민족 혹은 인접국 사이에 어떻게 평화공존과 자유교류가 정착됐는지 살펴본다. 

한반도에서 평화통일과 평화공존을 실현하는 조건이 다른지 살펴본다.

북조선이 평화통일 노선을 폐기한 것이 일시적 전술인지 돌이키기 힘든 전략인지 살펴본다. 

동독, 북조선과 같이 분단된 사회주의 국가에서 민족 개념의 변화에 따른 통일 노선의 변화에 대해 살펴본다. 

북조선과 달리 남한이 평화통일 노선을 폐기했다가 필요하면 다시 채택하는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는지 살펴본다. 

북조선과 구별되는 남한 사회의 독자적인 정치 경제 사회적 조건에 따라 북조선과 차별화되는 구체적인 평화공존 혹은 통일운동의 방향에 대해 알아본다. 



II. 평화통일은 전술인가


1. 평화통일과 평화공존의 해외사례


유럽은 민족과 국가형성 과정에 수많은 전쟁을 거쳤다. 1648년 베스트팔렌조약으로 오늘날 유럽의 민족과 국가가 대부분 형성되는 평화체제를 구축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1866년 전쟁 이후 서로 분리돼 평화조약을 체결하였으며 히틀러가 오스트리아를 병합한 적이 있었지만 2차 대전 이후 평화공존하고 있다. 오늘날 유럽연합이 하나의 공동체로 나아가니 민족통일이란 문제가 나올 수 없다. 


미국은 1775년 독립전쟁 당시 캐나다에게 “영국의 식민지가 아니라 미국과 통합된 아메리카 제국을 건설하자.”고 하면서 통일전쟁을 도발했다. 미국은 1812년 영국과 전쟁을 하면서 캐나다를 침공하는 등 캐나다 병합을 포기하지 않았다. 미국과 영국의 식민지 캐나다는 1846년 오리건 평화조약을 통해 전쟁상태를 끝내고 상호 체제를 존중하기로 했다. 하지만 미국과 캐나다 사이에 국경 분쟁이 이어지고 그때마다 미국은 캐나다 병합의 의지를 포기하지 않았다. 


미국은 1859년부터 12년 동안 샌환제도(San Juan Islands)에서 영국군과 대치한 끝에 결국 이 지역을 병합시켰다. 남북전쟁이 끝난 직후 1866년 아일랜드계 퇴역군인을 중심으로 결성된 페니언형제단 3천여 명이 미군 군복을 입고 영국령 캐나다를 침공하였고 미국 정부는 이들을 사실상 지원했다. 결국 영국이 1867년 캐나다를 독립시키면서 미국에게 침략명분을 주지 않았다. 이후 미국과 캐나다는 평화공존과 자유왕래를 정착시켰다.



2. 한반도에서 남북 2개 국가 평화공존의 허구성


남북이 가야할 길은 하나의 민족으로서 평화 통일이 되거나 각각 존재하면서 평화공존과 자유교류를 실현하는 것이다. 남북의 무장상태와 북미의 핵무기를 고려하면 전쟁에 의한 통일은 실현가능한 선택이 아니다. 전쟁은 논외인 것이다. 통일반대론자들은 같은 민족인 게르만족은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 여러 나라로 분리돼 평화롭고 유럽연합 이후 국경도 사라져 게르만족이 살아가는데 불편이 없으니 남북이 굳이 통일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미국과 캐나다가 같은 영어권이 민족 성분도 비슷한데 통일되지 않고 불편 없이 잘 살고 있다고 주장한다. 


한반도가 분단된 것은 일제의 식민지정책과 미소의 분할 통치 때문이다. 그리고 한반도에서 평화와 평화통일이 실현되지 못하는 이유는 남북이 서로 다른 체제이므로 상대방을 흡수하려는 체제경쟁을 한다는 점, 미국이 한미동맹과 한미연합사령부 및 유엔사령부를 통해 남한을 지배하면서 중러를 견제하는 군사기지로 삼고자 전쟁을 종결하는 평화협정(조약)을 거부하고 한반도에서 군사긴장과 분단을 고착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과 일본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도 통일국가의 불투명한 위상 때문에 분단 상태에서 전면전이 발생하지 않는 현재의 한반도 상태를 선호한다. 특히 미국이 군사긴장과 분단정책을 포기한다면 남북은 이미 다른 체제이지만 상호간의 존중과 공존을 약속했기 때문에 체제의 이질성으로 인한 불안요소를 극복할 수 있다. 체제이질성은 미국의 군사지배정책이 폐기된다면 점차 극복할 수 있는 부분이다. 정도가 다를 뿐 북 역시 외부의 위협이 없다면 중국 및 베트남의 사례에서 보듯이 유연한 체제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1950년 시작된 전쟁을 종식시키고, 군사적 대결을 강요하는 미국의 정책을 폐기하지 않는 한 통일은 물론 평화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통일할 필요 없이 남북이 평화롭게 살면 된다는 주장은 현 상태에서 불가능하다. 남북 2개 국가가 평화공존을 하려면 종전조약을 통해 상호 체제를 인정하는 외교관계를 수립하여 전쟁의지를 포기하고 육지의 군사분계선과 해상의 북방한계선 대신 국경을 확정해야 한다. 


미국, 중국, 북조선의 군대사령관이 전쟁을 일시적으로 중단시키는 정전협정을 정전 3개월 안에 국가 간의 종전조약을 협상하도록 했으나 이행되지 못했다. 1954년 제네바회담에서 소련, 중국, 북조선은 종전조약을 제안했지만 미국의 국무장관인 존 포스터 덜레스가 협상을 거부했다. 남한은 북조선을 타도해야 할 불법정부로 규정했으며 미국은 소련이 북조선을 괴뢰국가로 만들고자 한다며 한국의 입장을 지지했다. 이후에도 미국은 평화협정(조약)을 체결하기 위한 협상을 거부해오고 있다. 


결국 남북 간의 평화통일을 달성하던지 평화공존을 달성하던지 두 경우 모두 체제이질성과 군사대결을 극복해야 가능한 것인데 미국이 이를 반대하고 있다. 즉 평화통일의 조건과 평화공존의 조건이 동일하므로 이 조건이 성사되지 않는 한 둘 다 불가능하다. 결국 평화공조 운동과 평화통일 운동의 구체적인 경로는 전쟁종식, 상호체제 인정과 불가침 선언 등 동일하다. 이러한 평화가 구축돼야 이후 평화공존을 하던지 나아가 평화통일 논의를 하던지 가능한 것이다. 



III. 북조선의 평화통일 포기는 전략인가?


1. 동서독의 사례


독일공산당은 분단 직후 미군 철수, 평화협정 체결, 미국 주도 유럽동맹 반대, 저항권과 선거를 통한 친미정부 전복을 주장했다. 또한 독일공산당은 동독을 통일국가의 표본으로 삼았고 자유선거를 통해 이를 선택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공산당은 동독 집권당이 주도하는 민족전선(Volksfront)에 가입했다.


독일공산당은 통일이 된 이후에도 당분간은 의회주의적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존속할 것이며, 이 문제는 자유선거를 통해 선출된 전 독일을 위한 국회의원들이 결정할 사항이라고 봤다. 독일공산당은 자신의 집권 혹은 통일국가의 정부에 있어 연립정부의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브란트 수상은 지붕역할을 하는 형식적인 전체국가 아래 동서독이 실질적인 국가로서 존재한다고 봤다. 반면 동독의 울브라히트 수상은 독일국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양독은 별개의 국가라는 1민족 2국가를 주장했으며, 이런 입장을 반영하여 68년 헌법은 통일의 방식으로서 국가연합을 상정하였다. 나아가 호네커는 사회주의민족개념을 도입하여 2민족2국가로서 헌법의 통일조항을 폐기했다. 


브란트 수상은 동방정책을 추진하여 1970년 8월 12일 소련과 불가침조약을 맺었으며, 12월 7일에는 폴란드와 불가침조약을 체결하여 오데르 나이쎄선 국경을 인정하였다. 또한 1972년 11월 9일 기본조약의 가조인의 국제적 난관을 없애기 위해 전승 4대국 회의를 열게 하였다. 이 회의에서 4대국은 “4대국의 전 독일에 대한 권리와 책임은 동서독의 기본조약체결과 유엔동시가입 이후에도 존속하며, 제2차 세계대전의 전승국과 독일 사이에 평화조약이 성립될 때까지 독일과 서베를린에 관한 처리는 유보된다.”고 선언하였다.


1972년 ‘양 독일 관계의 기초에 관한 조약’(기본조약)은 양독 상호간의 독립과 주권을 인정하여 실질적인 1민족 2국가 인정하였다. 73년 양독은 유엔에 동시에 가입했으며, 이후 양독 사이에 17개의 조약이 체결되었다. 또한 교류가 급증하여 82년까지 3만명의 동독인이 서독을 이주하였다. 


1989년 가을 소련이 독일통일에 대해 무력행사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하였다. 1990년 1월 양독과 4대국이 회의를 열어 양독의 자결권을 인정하였다. 이들 외무장관들은 2월 13일 오타와 외무장관 회담에서 통일조약을 승인하고 통일독일의 주권을 보장하는 대신 나토의 잔류를 합의하였다. 


1990년 5월 18일 동독의 3월 18일 총선결과에 힘입어 제 1차 국가조약인  ‘화폐 경제 사회동맹을 창설하는 조약’이 체결되었다. 이에 따라 동독의 경제헌법이 실효되고 서독의 사회적 시장경제제도가 도입되었다. 또한 양독 마르크를 1대 1로 교환했으나, 결과적으로 서독의 상품이 동독에 범람하고 동독의 물가가 상승하는 부작용이 발생하였다. 8월 3일 양독의 연방의회 구성을 준비하기 위한 선거조약이 성립됐으며, 8월 23일 동독 인민의회회의는 기본법 23조에 따라 서독에 편입하는 것을 의결하였다. 


8월 31일 제2차 국가조약인 ‘독일통일달성에 대한 독일연방공화국과 독일민주공화국간의 통일조약’이 체결돼 동독헌법은 실효되고 서독의 독일민주공화국으로 흡수되는 통일이 완성되었다. 통일조약은 기본법 개정의 효력이 있어 기본법 개정의 절차에 따랐다. 9월 12일에는 2+4 국가들간에 ‘독일과 관련한 종결규정에 관한 조약’이 체결됐으며 이는 현 영토 확인과 무력포기, 대량살상무기 포기, 34만5천 병력유지, 소련 철군 등을 포함하였다.



2. 북조선의 평화통일 노선 후퇴


북의 입장변화는 2024년이 아니라 그 전에 핵무기를 완성해 가는 과정에서 형성돼 왔다. 미국에 의해 강제되는 전쟁상황을 근본적으로 전환하기 위해 핵 무력과 경제건설이라는 병용노선을 채택했다. 노동당 중앙위 전원회의는 2013년 3월 새로운 국가전략인 '핵·경제 병진노선'을 채택했다. 5년 후 2018년 4월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병진노선의 성공을 선언하고 '사회주의경제건설'을 새로운 전략으로 채택했다. 즉 핵무장으로 안보 문제를 해결한 상태에서 인민들의 삶 문제에 주력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내부 전략에 따라 대남전략, 대미전략도 수정됐다. 2021년 노동당 규약에 따르면 조선로동당은 남조선에서 미제의 침략무력을 철거시키고 미국의 정치군사적 지배를 청산하며 강력한 국방력으로 군사적 위협들을 제압하여 조국의 평화통일과 민족의 공동번영을 이룩하기 위하여 투쟁한다. 2010년 규약에 있던 “일본군국주의의 재침책동을 짓 부시며 사회의 민주화 생존의 권리를 위한 남조선인민들의 투쟁을 적극적으로 지지성원하며” 부분이 삭제됐다. 


또 ‘우리 민족끼리’라는 표현을 삭제하고 ‘강력한 국방력으로 평화통일을 앞당기겠다’는 표현을 추가했다. 북이 핵무기경제건설병진노선에 따라 핵무기 개발을 완료하고 실전에 배치함으로서 미국과의 전쟁공포에서 벗어나는 것은 물론 핵무기를 지렛대로 삼아 주한미군철수 나아가 통일까지 북미협상으로 이뤄내겠다는 의지를 보인 셈이다. 이와 함께 2021년에는 외무성 산하 조국통일국이 폐지됐으며, 노동당 통일전선부가 대남사업을 중단함으로서 민경련과 민화협도 폐지되고 6·15공동위와 아태평화위만 겨우 명맥을 유지하게 됐다. 


북조선의 태도변화는 통일문제보다는 미국과 핵 대결을 통해 안보문제를 풀고 내부 건설에 주력하겠다는 의지라고 볼 수 있다. 월간조선(2021.08)에 따르면 조선노동당의 규약에서 “민족해방민주주의”와 “남조선인민들의 투쟁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 부분이 삭제된 것에 대해 이종석과 정세현 두 통일부 장관,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연구센터장은 북이 대남혁명을 포기했다고 평가했다. 


2024년 초 북조선의 입장변화는 남한과 더 이상 평화통일 논의를 하지 않겠다는 점, 2개 국가로서 서로 교전국의 지위를 갖는다는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23년 12월 31일 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9차 전원회의에서 남북 관계를 동족이 아닌 ‘적대적이고 교전 중인 두 국가 관계’로 규정했으며, 지난 1월 열린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을 통해서는 “헌법에 있는 ‘자주’, ‘평화통일’, ‘민족 대단결’이라는 표현들이 이제는 삭제돼야 한다고 본다”고 말한 바 있다. 북은 이런 입장변화에 따라 남한에 대해 대한민국, 한국이라는 국호를 공식으로 사용했다. 호칭변화는 남한의 자주계열도 그래도 답습했다.


이날 회의는 '당중앙위원회 통일전선부를 비롯한 대남사업 부문의 기구들을 정리, 개편하기 위한 대책을 세우며 근본적으로 투쟁원칙과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실제로 북조선은 1월 12일 6.15공동선언실천 북측위원회, 조국통일범민족련합 북측본부, 민족화해협의회, 단군민족통일협의회 등 평화통일 담당기구를 정리했다. 노동당 통일전선부는 주요 기능을 외무성과 군 정찰총국으로 이관하는 등 축소 개편되고 있다. 2024년 1월 15일 제14차 최고인민회의 제10차 회의에서 조선조국평화통일위원회, 민족경제협력국, 금강산국제관광청 등 국가가 담당하는 통일 및 교류 기관을 폐지하기로 했다. 조국전선도 폐지하기로 했다. 



3. 사회주의민족 개념과 통일 노선의 변화


민족은 동질성과 동등성을 기반으로 한다. 동질성에 포함되는 것은 신체구조와 언어 같은 인종적 특성, 문화와 경제의 공동체, 동일한 지역기반 등이다. 유대인처럼 각지에 흩어져 있더라도 이스라엘과 같은 하나의 조국 혹은 가나안 지역처럼 하나의 향토를 가질 수 있다. 동등성은 민족공동체 안에서 무차별적인 형제애, 자매애로서 평등성이며 주로 신분적 평등, 형식적 평등을 의미한다. 


유럽의 경우 영토, 주권, 국민이라는 동질성은 근대 부르주아 형성기인 절대왕정시대에 형성됐다. 동등성은 부르주아 국가 시기에 국민의 개념과 함께 확립됐다. 한국, 일본과 같은 농경정주국가의 경우 동질성의 역사는 고대국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동등성은 유럽과 마찬가지로 근대 부르주아 국가 시기에 완성됐다. 중세시기에는 신분에 따라 언어와 법률이 다르고 신분적 종속관계가 남아 있어 민족공동체 내에 형식적 평등이 존재하지 않았다. 


자본주의 민족개념이 신분적 차별을 철폐했지만 경제적 차별은 수용하고 있다. 계급대립이 소멸된 사회주의국가에서 민족개념을 새롭게 정립했다. 중국은 한민족이 다른 민족을 지배하는 과거의 민족개념에서 중국사회주의 국가 내 구성원 전부를 중국사회주의민족에 포함시키는 새로운 민족개념을 정립하고자 한다. 중국은 고구려 등 한반도 북부 및 만주의 역사를 중국 역사에 포함시키는 동북공정을 비롯하여 중국 변방의 역사와 소수민족을 중국의 역사와 중국사회주의민족에 포함시키는 다양한 공정사업을 해오고 있다. 동독의 경우 서독이 통일정책으로 압박해 오자, 동독은 사회주의민족이므로 서독과 민족이 달라 1민족1국가 논쟁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즉 통일이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북은 김일성 주석 사망 당시부터 북을 김일성 민족, 혹은 태양민족이라고 호칭하고 있다. 북이 아직까지는 남북을 포함한 한민족 혹은 조선민족을 김일성 민족, 태양민족으로 호칭하고 있으나 만약 남을 김일성민족 태양민족에서 제외한다면 남북은 민족이 다르므로 통일이 아니라 2개의 국가로 남아야 한다. 


2024년 1월 15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 따르면 조선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에는 북조선은 대한민국을 완전히 점령, 평정, 수복하고 공화국령역에 편입시킨다. 즉 남북이 별개의 국가이므로 통일전쟁이 아니지만 북조선이 남한을 흡수하니 사실상 통일이 되는 것이다. 


또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이 연설에서 새 헌법 조문에 북반부, 자주와 평화통일 및 민족대단결 등 남북을 동족으로 오인하는 표현을 삭제할 것을 주문했다. 북조선은 특히 이 연설 직후 1월 중에 '조국통일3대헌장' 기념탑을 철거했다. '조국통일3대헌장'은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 7.4남북공동성명의 조국통일3대원칙(1972), 고려민주연방공화국 통일방안(1980), 전민족대단결 10대강령을 묶은 '민족공동의 통일강령'(1997) 등을 내용으로 한다. 



IV. 남한 통일운동의 운명


1. 남한 사회와 통일운동의 상대적 독자성 


남북합의서에 따르면 남북은 하나의 민족으로서 통일로 가는 과도기에서 각자 남북에 실질적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특수한 관계이다. 남북은 과거에 하나였고 미래에도 하나가 돼야 하지만 이질적인 체제 아래 80여 년을 따로 살아왔다. 남북은 한민족이라는 울타리에 속해 있지만 그 울타리 안에서 남북의 조건은 다르다. 남북은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구조로 다르고 계급구성도 다르므로 사회모순과 과제 및 해결방법도 다르다. 당연히 남북이 평화공존 혹은 평화통일로 나아가야 하나 그 경로와 방법이 동일할 수 없다. 따라서 북조선이 제기하는 과제는 북조선의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므로 북조선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을지언정, 북조선의 과제와 해결방법을 그대로 남한에 적용할 수 없다. 따라서 평화공존과 평화통일의 공동의 목적이 동일하더라도 북조선의 주장을 그대로 남한에서 적용할 수 없는 것이고, 남한은 남한의 상황을 반영한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북조선은 수령 중심의 당과 인민의 일체를 강조한다. 따라서 각종 법률과 헌법은 물론 조선노동당 강령까지 조직적 논의를 통해 상황에 맞게 일사불란하게 조정한다. 집단주의 사회로서 의사결정과 조직행동의 유연성을 발휘하고 있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미래에 세계정세와 남북미 정세의 변화에 따라 남북통일과 남북미 관계에 대해 급격한 입장변화를 취할 수 있다. 


하지만 남한은 각 조직과 개인의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기 때문에 남한 전체가 하나의 조직처럼 의사결정과 조직행동을 일사불란하게 할 수 없다. 노선과 정책을 정하는 것도 어렵고 그것을 수정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북이 정세에 따라 평화통일정책을 취했다가 폐기하고 다시 취할 수 있지만 남한이 평화통일노선을 폐기한다면 다시 채택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설사 그런 결정을 일부 단체들이 한다고 해도 그 결정을 대다수가 따르기 어렵고 조직행동도 갑자기 변화되기 어렵다. 


남한이 평화통일노선과 조직을 폐기한 후 정세 변화가 생길 때 역량 손실 없이 과거의 평화통일 역량을 회복할 수 없다. 기존의 평화통일단체를 갑자기 해산하고 다른 대안단체를 만든다면 대다수의 동의를 얻기 힘들고 과거의 동력을 새로운 대안단체나 대안운동으로 손실 없이 가져가기도 어렵다. 따라서 남한의 평화통일단체는 북과 달리 평화통일노선의 폐기에 대해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2. 통일운동단체의 발전적 해체


북조선이 평화통일 논의를 중단한다는 것은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목표로 하는 민족공동위원회로 발전할 수 있는 각종 남북해외의 협의체를 해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6.15남측위원회가 1월 31일 총회를 통해 운동방향과 조직의 변화를 확인하고 올 상반기 내에 새로운 연대조직을 내오기로 했다. 6.15공동선언실천 해외측위원회는 3월 12일 임시위원장회의를 열고 조직을 해산하고 각 지역, 단체마다 특성을 살려 반미, 반일, 반윤석열 투쟁을 전개해나가기로 했다.


범민련 남측본부는 2월 17일 총회에서 해산을 결정하고 한국자주화운동연합(가칭·자주연합)을 결성해 사업을 계승하기로 했다.  4월 26일 범민련 해산 당시 선임된 '새조직 건설을 위한 수임기구' 4명의 준비위원들이 '반미·반제'를 기본 과제로 하는 새로운 전국적 운동조직 건설에 대해 단체 참가자들에게 공식 제안하는 간담회를 열었다. 

북이 교전상태임을 확인함에 따라 당분간 종전을 위한 평화협정 논의도 중단되기 때문에 남한의 평화협정운동본부는 미군철수운동본부로 개칭됐다. 



3. 자주화 운동의 내용과 목적 그에 따른 자주전선 구축


1) 자주화 운동의 내용과 목적


인민대중의 자주란 노동자민중의 계급적 억압으로부터의 해방과 전 계급적인 전 계층적인 민족의 외세로부터 해방과 민족해방의 귀결로서 민족통일국가의 수립이다. 발전된 자본주의 분단국가로서 남한에서 인민대중의 자주란 조직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노동자민중의 자본주의 변혁이며, 역시 조직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노동자민중의 평화통일의 실현이다. 


최근의 입장변화는 평화통일을 평화공존으로 대체할 수 있냐의 문제이다. 북조선의 최근 입장은 남북이 별개의 국가로서 평화공존을 해야 하나 적대적인 교전관계에 있다는 것이고 원하지 않는 전쟁이 발생하면 남한을 정복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북의 입장 변화가 남한의 평화통일운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남한의 평화통일운동단체들은 그 명칭과 목적에서 통일을 빼고 평화공존과 평화통일을 가로막는 장애들을 철거하는 자주화운동을 전면으로 내세울 전망이다. 그 핵심은 미국의 한반도 지배정책과 군사긴장 정책, 구체적으로는 한미동맹과 한미일 군사공조에 대한 반대, 주한미군철수운동이다. 구호로서는 온건한 반전평화와 급진적인 반미반제이다. 온건한 반전평화 관점에서는 북미평화협정이 중요한 경로가 되지만 반미반제의 경우 북의 핵 역량을 강조하면서 힘에 의한 미국 등 제국주의 세력의 축출을 주장하면서 상대적으로 협상을 전제로 하는 평화협정 목소리를 약화될 것으로 보인다. 


자본주의 사회변혁과 반미를 중심으로 한 반제국주의 투쟁의 관점에서 무조건 모든 전쟁에 반대하고 이유 불문하고 평화를 절대선으로 내세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점에서 과거 대부분의 자주계열은 “반전평화 슬로건이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남한에서 반전평화 슬로건은 실천적으로 반미반제로 귀결되고 대중적인 포섭력이 반미반제보다 강하기 때문에 일부 자주계열이 이러한 온건한 슬로건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문제는 반미반제이든 반전평화이든 이러한 자주화 자체가 한반도에서 노동자민중의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노동자민중의 궁극적인인 목적은 낮은 차원에서 남북의 평화공존, 공동번영이고 높은 차원에선 평화통일이다. 따라서 자주화란 남북의 공존, 번영, 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경로이자 중간 목적이라고 볼 수 있다. 



2) 자주전선으로서 대중투쟁전선과 정치전선


첫째 자주화를 실현하기 위한 노동자민중 투쟁전선이 구축될 전망이다. 주로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준비해 오던 남북해외로 구성된 평화통일단체들이 발전적인 해체를 하고 새로운 자주전선을 형성하는 것이다. 


둘째 민주주의와 자주화를 실현하기 위한 대중 투쟁전선이 재정비될 전망이다. 평화통일 노선의 위상 변화와 새로운 노동자민중 중심의 자주적인 투쟁전선이 형성됨에 따라 이를 포용할 수 있도록 주체와 요구 측면에서 좀 더 포괄적인 대중 투쟁전선을 정비하고 확대하는 것이다. 민중연대, 진보연대, 민중공동행동 등 갈수록 유명무실해진 상설적인 투쟁공동체가 활성화되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 


셋째는 과거 민주노동당처럼 노동자민중의 자주적 권력을 창출하기 위한 진보적 정치전선을 구축해야 한다. 다만 대중적 진보정당으로서 민주노동당이 정파연합당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교훈에 비춰 단일정당보다는 연합정당 형태로 시도될 것으로 보인다. 연합정당이라도 원내 정당으로서 구심정당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과거 원내 진보정당인 정의당이 하지 못했던 구심 역할을 새로운 원내 진보정당인 진보당이 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진보당은 민주주의와 자주를 내걸고 민주당과 사안별 연대를 하면서 노동과 자주를 기반으로 하는 정치노선을 강화하여 궁극적으로 진보연합정당의 주축이 돼야 한다. 진보연합정당은 과거 민주노동당처럼 “노동자민중을 중심 주체로 삼아 우리사회의 자주와 평등을 실현하겠다.”는 목표를 분명히 해야 한다. 진보연합정당은 후기자본주의 사회와 저출산고령화사회의 다양한 계층의 요구도 반영해야 하지만 자주와 평등이라는 기조를 중심에 두어야 한다. 


진보당은 정의당 괴멸 이후 원내에서 진보정치의 대표주자로서 역할을 자임하던지 민주당과의 밀월관계를 강화하여 제도적 기득권을 구축하는 갈림길에 있다. 진보당의 우경화는 인천연합이 통합진보당을 집단 탈당하여 자유주의 세력과 원칙 없는 혼성정당을 만들고 의회정치로의 몰입 끝에 노선적으로 파탄나고 조직적으로 붕괴되는 전철을 밟을 수 있다. 


진보당이 3석을 얻은 것은 스스로의 노력은 기본이지만 노동자민중의 투쟁과 지원의 성과이다. 2012년 촛불집회 이후 반이명박전선의 요구가 전면적인 야권연대로 나타났고 2024년 총선에서 박근혜 탄핵 이후 듣보잡 윤석열의 집권과 이에 대한 저항이 야권연대로의 요구와 표심으로 나타났다. 2020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진보당과 비례연합정당을 반대했다. 


2027년 대선에서 민주당이 승리할 경우 2028년 총선에서 여당인 민주당은 국정개혁에 힘을 실어야 한다는 명분으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약화시키거나 위성정당을 통해 의석을 독점할 수 있다. 민주당에 의존하는 원내 진출 전술이 위험하다는 것이다. 즉 노동자민중의 단결된 지지를 기반으로 원내에서 독자적인 기반을 확대해야 한다. 


진보당이 원내에서 자리 잡으려면 우선적으로 과거 권영길, 노회찬, 심상정 의원의 사례처럼 민중의 호민관으로서 의정활동의 모범을 보여줘야 한다. 기본소득당의 용해인 의원은 이런 측면에서 어느 정도 호평을 얻고 있다. 스타 정치인만으로는 부족하므로 울산과 창원 등 노동자밀집지역에서 독자적으로 당선돼야 하고 선택적 야권연대를 통해 의석을 확대해야 한다. 또한 국회 내에서 자유주의 정당과 사안별 연대를 하는 조건으로 원내교섭단체 기준을 낮추고, 정당명부 의석을 확대하고, 정당명부 결합제도와 대통령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는 등 노동자민중의 정치적 자주권 실현에 도움 되는 정치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VI. 결론 : 남한 통일운동의 방향


남북의 평화공존을 당면한 과제로 삼아 궁극적으로 평화통일을 이뤄 남북이 모두 공동 번영하는 것은 여전히 노동자민중의 이상이다. 노동자민중이 이러한 전 인민적 요구를 지도적 지위에서 대중투쟁과 진보정치를 통해 관철해 나갈 때 자신의 계급적 해방과 자본주의 변혁도 실현할 수 있다. 


적대적인 국제정세의 변화와 북조선의 핵무장 완성으로 인해 북조선이 탄력적으로 평화통일 노선을 일시 후퇴시켰다. 남한의 경우 북조선과 같이 노선과 조직을 신속하게 유연하게 변화시킬 수 없다는 점에서 평화통일 노선의 성급한 폐기는 적절하지 않다. 


각 단체의 조건에 따라 낮게는 평화공존, 높게는 평화통일의 목적을 여전히 분명히 해야 한다. 또한 각 단체의 조건에 맞게 반전평화 혹은 반미반제로 슬로건을 조정하되 서로 연대하여 민주주의와 자주화를 실현하려는 폭넓은 대중투쟁 전선을 공동으로 구축하고, 노동자 민중이 주체되는 자주와 평등을 실현하려는 대중적인 진보정치 전선 즉 진보연합정당 건설에 나서야 한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남북해외의 3차 협의체의 재편과 이러한 재편 과정에서 역동성을 기반으로 하는 폭 넓은 상설투쟁체의 확대강화, 진보연합정당을 건설하기 위한 진보당의 원내 독자 기반 구축이 중요하다. 

⓸ 좌파에서 시작한 뉴라이트, 전 분야로 확산

좌파지식인의 우파 개종이 뉴라이트 대중화 선도


극우지식인은 냉전시대의 보수 지식인, 이재오와 김문수와 같은 반공좌파, 김영환, 황장엽과 같은 전향한 주사파들로 구성돼 있다. 김대중 정권 당시 뉴라이트 지식인이 과거 우익독재시대와 달리 떳떳하게 공론의 장에 나왔다. 극우지식인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는 보수로 전향한 죄파지식인에 의해 열렸다. 이들이 우파로 전향한 배경은 선진국 진입에 따른 북에 대한 압도적 경제력, 친미사회로의 심화에 따른 숙명론적 대미관, 북의 3대 권력승계에 대한 대중적 반감 등 한국사회의 변화이다. 이들은 우경화된 진화론적 지식인들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들의 개종은 극우지식인이 과감해지는데 일조했다. 


안병직은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하면서 뉴라이트재단 이사장, 시대정신 이사장, 자유한국당 여의도연구원 이사장을 역임했다. 김동길은 조갑제와 순회연설을 하였으며 이승만 광장에서 열린 극우집회에 참석하여 전광훈 목사와 함께 연설을 했다. 김지하는 박근혜를 지지했고 이문열은 윤석열을 지지했다. 이들은 친미반공이며, 미국숙명론을 수용하고 이승만과 박정희에 대한 재평가를 주장했다. 뉴라이트 지식인들은 대중들의 인기를 얻고 있다. 공병호 교수의 「10년후, 한국」이라는 저서는 50만 부 이상 팔렸다. 


2001년 4월 40-50대 교수들이 주도하여 ‘비전@한국’이 창설됐고 이 단체가 2002년 3월  ‘바른 사회를 위한 시민회의’로 확대됐다. 김성기 변호사, 송복 연세대교수, 봉두완 전 앵커, 김태련 한국어린이육영회 회장 등 다양한 인사들이 공동대표로 참여했다. 


2004년 11월 신지오 박사는 「자유주의연대」를 발족시켰다. 신지호는 인천과 울산 등지에서 노회찬 의원 등과 노동운동을 하다가 사회주의 붕괴를 목격한 후 우파로 전향했다. 자유주의연대는 기관지 「뉴라이트」를 발간하고 청년 우파를 교육하는 뉴라이트 리더스 아카데미를 운영했으며, 과거 운동권의  「북한바로알기 운동」를 반박하는 「신북한 바로알기 캠페인」을 펼치기도 했다.


「자유주의연대」의 집행위원장을 맡은 홍진표는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정책실장도 겸임했다. 그는 서울대 정치학과 출신으로 총학생회 사무국장,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부장, 조국통일범민족연합 간사, 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 조직국장 등을 역임한 속칭 주사파 출신이지만 “북의 인권 상황에 분노한다.”면서 우파로 전향했다. 역시 「자유주의연대」에 참여하고 있는 최홍재는 고려대 총학생회장과 한총련 조국통일위원회 정책실장, 전국연합 자주통일위원회 부장 등을 거쳤으며 북 인권 문제를 비판하는 「시대정신」 편집위원을 맡았다. 


연합체 형태로 시작해 각 분야별 단체로 발전해


「뉴라이트 전국연합」이 2005년 6월 김진홍 목사의 주도로 발족한 이후 2007년 대선 직전에 회원을 17만 명으로 늘렸다. 전국연합은 전국 시·군·구에 200여 개 조직을 건설했고, 종교·교사·기업인·문화체육·노동·의사·학부모·대학생 등 17개 부문조직도 만들었다. 김진홍 목사는 박정희 시대에 활빈교회를 세우고 반정부 투쟁을 했다가 긴급조치 1호 위반으로 투옥된 적이 있지만 이제는 전광훈 목사를 지지한다. 역시 공동대표인 류석춘 연세대학교 교수는 2019년 9월 수업 때 일본군 성노예를 매춘부에 비교했다. '아베 수상님'에 대해 사죄하는 마음을 갖고 살아가는 주옥순 대한민국엄마부대 대표도 이 단체의 조직위원장으로 활동했다. 뉴라이트재단은 전국연합 출범 7개월 뒤인 2006년 6월에 등장했다.


뉴라이트 언론들은 “좌파 인터넷매체에 대항한다.”는 목표 아래 2005년 6월 「한국인터넷언론협회」로 결집했다. 이 협회에 「독립신문」을 비롯해 「프런티어타임스」, 「뉴스앤피플」, 「코나스」, 「미래한국신문」, 「코리아리뷰」 등이 참여했다. 2000년 민주참여네티즌연대라는 보수우익단체를 만들고 인공기 화형식을 주도한 신혜식이 독립신문을 만들었다. 독립신문은 조갑제, 김동길, 지만원, 이철승의 극우정신 계승을 내걸고 있으며. 미국대사관과 함께 영어교육 프로그램 YES를 운영했다. 미국대사 부인이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9.11 테러 등 정치문제를 다루기도 했다. 


2005년 상반기에 정진영 경희대교수가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에 대항하기 위해 가칭 「자유주의 교수연대」를 추진했는데, 7월 중등학교 교사까지 참여하는 「자유주의 교육운동연합」으로 확대됐다. 이들은 전교조에 대항하여 고교 평준화정책과 소위 「3不 정책」,(본고사 반대, 기여입학제 반대, 고교등급제 금지)에 반대했다. 이들은 교총조차 「수구적」이라고 비판했다.


「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은 1997년 한국논단이 주최한 대선 후보 사상 검증 토론회가 계기가 돼 정기승 전 대법관이 주도하여 발족됐다. 2004년 행정수도 이전 위헌판결을 이끌어 낸 이석연 변호사는 참여연대 운영위원을 맡는 등 다소 진보적인 성향을 보인 적도 있었으나 보수법조인들을 모아 헌법포럼을 발족시켰다. 나아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에 대항하고자 2005년 1월 130여명의 변호사와 함께 「시민과 함께 하는 변호사들」를 결성했다. 


우파들의 역사관을 정통으로 만드는 작업은 성공적


2005년 1월 박효종 서울대 교수, 차상철 충남대교수가 “고교 근·현대사 교과서들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편향된 역사인식을 심어 준다.”고 주장하면서 교과서포럼을 창립했다. 12명의 운영위원에 안병직 서울대교수, 이성무 전 국사편찬위원장, 이동복 북한민주화포럼 대표 등이 포함돼 있다. 교과서 포럼은 현재의 교과서가 1980년대 운동권의 교과서였던 「해방전후사의 인식」과 다름없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교과서 포럼은 역사바로세우기 운동의 일환으로 각종 교과서를 분석 비판하고 우파적 견해를 제시하였으며, 실제로 다수의 교과서에 이들의 입장이 반영됐다. 우파들의 역사재편은 역사재평가 단계를 넘어 이승만 기념관, 박정희 기념관 사업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백선엽 동상 제막 등 계속 확대되고 있다. 


우익청년단체들도 결성되고 있는데, 이는 2000년대 들어 경제성장이 멈추면서 취업난이 계속되자, 청년들이 위기감을 느끼고 보수화되기 때문이다. 과거 운동권 기성세대가 각종 분야에서 주도권을 장악하면서 이들에 대한 반감이 깊어진 결과이다. 2003년 연세대 한정민 학생이 주도하여 결성된 시민과함께하는대학생연대는 조선 동아 중앙일보에 대한 언론탄압 중단, 퍼주기식 대북정책 폐기, 국가보안법 강화, 김정일 답방 반대 등을 주장했다. 


이명박 보수정권을 등에 업고 극우 돌격대가 공개 출범해


청년우파연대는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의해 사망한 여중생을 추모하는 촛불집회가 반미집회라고 비난하면서 창설됐으며, 1500여명의 회원이 가입됐다.

화형식 등 과격 시위를 주도하는 극우단체도 공개적으로 활동해왔다. 민주참여네티즌연대, 청년우파연대 등 청년 극우파들은 ‘반핵반김 국민대회 청년본부’를 결성했다. 이 단체의 행동대장은 북핵저지시민연대의 박찬성 대표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인 2009년 3월, 국민행동본부 산하에 ‘직접 행동’을 목표로 하는 ‘애국기동대’가 만들어졌다. 해병대·특전사 출신 90여 명으로 이뤄진 애국기동대는 출범식에서 “반헌법적 좌익 폭도들과 싸운다.”면서 무술시범을 보였다. 이들은 “연방제 통일을 주장하는 종북 반역 세력을 공동체의 적으로 규정하고 이들을 제거하는 일에 목숨을 바친다.” 선언했는데, ‘서북청년단 재건위’도 같은 주장을 해왔다.


민주노총은 134주년 노동절에도 탄압받는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함계남 국장의 집단괴롭힘 사태를 책임지고 해결하라!

 - 2023년 1월 : 의료연대본부 서울지역지부 내 직장 내 괴롭힘 신고함

- 2023년 1월~3월 : 녹색병원 적응장애 4주 진단. 3월 8주 진단

- 2023년 4월~6월 : 조직적인 사직강요(지부장. 사무국장, 국장, 부장. 증거1)

- 2023년 6월 : 노동청에 직장 내 괴롭힘 신고(2024년 4월 조사 중)

- 2023년 7월 : 민주노총에 직장 내 괴롭힘 신고

- 2023년 6월~7월 : 배우자 양규서 국장이 의료연대본부장 및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에게 사태 해결을 위한 면담을 요청했지만 거절 당함.

- 2023년 7월 11일~8월 25일 : 양규서 국장이 사태해결을 요구하며 공공운수노조 건물 옥탑농성을 46일 동안 진행함

- 2023년 7월 1차 보복징계 당함(감봉 2개월. 증거2)

- 2023년 9월 7일 : 옥탑농성 중단 당시 민형사상 조치 및 징계하지 않겠다는 구두 및 서면 보고에도 불구하고 양규서 국장, 함계남 국장에게 보복징계 추진(증거3)

- 2023년 9월 15일 : 함계남 양규서 국장을 지원했다는 이유로 방영환 열사가 택시지부에 징계 제소됨

- 2023년 9월 26일 : 사측의 탄압에 분신한 방영환 열사가 페이스북, 유서, 마지막 통화를 통해 공공운수노조와 택시지부의 처사를 원망함(증거4).

- 2023년 9월 27일 : 사직요구, 동료 갈등, 노조 대처 미흡 등의 사유로 함계남 국장에 대한 산재승인(증거5).

- 2023년 10월~12월 : 양규서 1차 보복징계(무급 정직 4개월). 함계남 2차 보복징계(조합원 제명)

- 2023년 11월 10일 : 민주노총이 공문을 통해 공공운수노조에 함계남 사건 조사를 진행하지 않은 것에 대해 <심히 유감>을 표하며 신속한 조사를 요구함(증거6).

2024년 1월 : 양규서 2차 징계(조합원 12개월 정권)

- 2024년 3월 : 공공운수현장활동가모임이 함계남, 양규서 국장을 제명함.

- 2024년 4월 현재 : 한여름 웃통 벗고 옥탑 농성한 양규서 3차 징계회부(성폭력). 방영환 투쟁 참여한 양규서 4차 징계(조합질서 문란)

 

함계남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지역지부 조직국장은 2019년 서울대병원 비정규직 노조인 민들레분회를 담당하던 당시, 121일간의 천막농성 끝에 614명에 대한 정규직화를 이루어 냈으며, 2020년 보라매병원 비정규직 담당자로서 120일 천막농성 투쟁을 통해 236명의 정규직 전환에 기여를 했다. 2021년에는 서울대병원 직원식당 임대업체와 체결하지 못한 임단협을 투쟁을 통해 10년만에 체결했다. 2022년에는 서울대병원 직원식당 고용승계 및 단협승계 투쟁에 있어 주말까지 집회. 밤샘 투쟁. 100여일을 아침 7시 30분부터 피켓팅하면서 11월 1일 고용승계 및 노사합의를 쟁취했다.

 

함계남 국장은 병원노조의 특성상 새벽출근, 야간근무, 주말근무를 지속적으로 하면서 정신적, 육체적 탈진상태에 도달했으나 투쟁의 성공 이후에도 시간외 노동에 시달리다 결국 양쪽 발목 산재승인을 받았다.

 

함계남 국장이 시간외 노동의 기준과 대체 휴식을 지부에 요구하자, 지부는 “활동가가 아프면 쉬어야 한다.”면서 사직을 권유했다. 지부는 이를 거부하는 함계남 국장에게 조직적으로 사직을 종용했으며, 집단따돌림을 자행했다. 함계남 국장은 직장 내 괴롭힘 신고 이후 수차례 보복징계를 당했으며, 시간외 근무를 강요하는 관행과 괴롭힘에 맞서 시간외 수당을 요구하자, 활동가가 “다른 활동가들의 명예를 훼손한다.”, “함계남이 오히려 가해자다.”고 매도했다(증거7).

 

의료연대본부의 이러한 매도는 노조를 상대로 내부투쟁을 하는 것에 불만을 가진 공공운수노조 일부 활동가와 상근자에게 확산됐다(증거8). 그 결과 함계남 국장에 대한 괴롭힘은 공공운수노조 중앙 차원으로 확대되고 함계남에 대한 가해가 정당하다는 집단적인 정서가 형성됐다. 심지어 이번 사태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활동가조직이 양규서 함계남 국장을 제명 징계했다. 그 결과 함계남, 양규서에 대한 2차 가해와 징계가 반복되었으며, 방영환 열사도 분신하면서 유언과 페이스북, 전화 등을 통해 사측의 탄압을 주로 언급했지만 자신과 양규서, 함계남의 억울함도 호소했다.

 

함계남 양규서 국장과 관련된 사태는 민주노조운동의 세대교체기, 황혼기에 나타나는 고질적인 문제들이 응축돼 곪아 터진 것이다. 조합원 수를 늘리기 위한 무리한 활동, 활동가들의 중장년화와 정신적 육체적 피로도 축적, 정파들의 집행부 장악을 위한 경쟁 심화와 자기 식구 감싸기와 같은 비상식적인 행위, 노조간부들의 ‘내로남불’식의 특권의식, 집행부의 형식적 귄위주의, 채용간부의 관료화,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집행부와 관료의 결탁, 대의원 구조를 통한 의사결정 장악, 조합원 민주주의의 실종 등이 근본원인이다.

 

현재 함계남 국장은 3차례 징계를 받았으며, 배우자 양규서 국장은 2차례 징계를 받고 추가적으로 2건의 징계가 추진 중이다. 함계남 국장은 중증우울증 진단으로 산업재해가 인정돼 치료 중이며, 양규서 국장 역시 공황장애 진단으로 치료 중이다. 이들 부부는 방영환 열사 분신이 자신들을 도와줘 징계 회부된 것과 관련이 있다는 점에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다.

 

 

1. 의료연대본부는 각종 대의기관의 결정 방식으로 함계남 국장에 대해 보복징계 등 가해행위를 계속 하고 있다. 즉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고 사태를 해결할 의지와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가해행위를 숨기고 함계남을 오히려 가해자로 모는 성명서를 발표해 왔다. 특히 우리 공공운수노조상근자노동조합 정책위원장에 대해 8가지 혐의로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으나 모두 무혐의 되고 오히려 무고죄로 수사를 받았다(증거9). 의료연대본부에 대해서는 대화할 조건이 아니라고 보고 관련된 모든 민형사상 조치를 순서대로 밟아 갈 것이다.

 

2. 이번 사태의 가해자들은 현정희, 안명자 등의 공공운수노조 전 집행부들과 의료연대본부와 택시지부다. 또한 방영환, 함계남, 양규서 국장을 징계하고 싶은 집행부를 위해 대신 징계제소, 즉 청부징계한 공공운수노조 중앙의 사무처 노동조합(분회)이다. 현재 엄길용 집행부가 직접적인 가해자가 아니지만 공공운수노조 차원에서 이번 사태에 대해 책임져야 하며, 특히 엄길용 집행부 아래에서 추가적인 보복징계가 반복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점에 대해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엄길용 집행부가 노조 내 현실적 조건을 내세우며 사태 해결에 소극적이기 때문에 추가적인 가해행위가 지속되고 있다. 향후 엄길용 집행부가 적극적인 해결방안을 내놓지 않는다면 불가피하게 엄길용 집행부에 대한 투쟁도 불사하겠다는 점을 밝힌다.

 

3.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은 공공운수노조의 일부 활동가와 간부들이 방영환 열사, 함계남, 양규서 국장에게 2차 가해를 하고 있는 점이다. 가해를 정당화하는 이들의 주장은 <징계 받을만하다>, <함계남이 가해자다>, <활동가답지 못하다>, <노조를 공격한다>, <진절머리가 나니 잠자코 있어라> 등이다. 방영환 열사, 함계남 양규서 국장에게 가해행위를 한 자들 중에서 심각한 경우 민형사상 조치를 취했으며 나머지 가해 행위자들에 대해서도 상황을 봐가며 적절한 조치를 취할 예정이다.

 

4. 민주노총 중앙은 이번 사태 발생과 무관하다. 양규서 국장이 옥탑농성을 할 때 민주노총 집행부는 양규서 국장의 가족이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도록 중집회의에서 15분간의 발언기회를 주었다. 또한 공공운수노조가 함계남 국장 사건을 신속하게 조사하도록 촉구하는 공문을 보냈다. 택시지부와 현정희 공공운수노조 집행부가 방영환 열사 투쟁을 민주노총 차원으로 확대하는 것에 소극적인 조건에서 민주노총이 방영환 열사 투쟁 초기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엄길용 집행부에 와서 적극적으로 투쟁에 참여해왔다.

 

하지만 이번 사태의 최종적인 책임은 민주노총에게 있을 수밖에 없다. 노조 내에선 공공운수노조 일이라고 변명할 수 있지만 민주노총 내 노동조합에서 일어난 일이므로 종국에는 민주노총이 조직적, 도의적 책임을 져야 한다. 민주노총은 민주노조 운동 전체의 수치스런 사건으로 비화되기 전에 사태 해결을 위해 방관자적 태도를 버리고 적극 나서야 한다.

 

지난 134년 동안 노동절은 장시간 노동과 사업장 내 인권탄압에 맞서는 투쟁의 과정이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탈진될 때까지 헌신적인 활동을 강요하고 이를 거부하면 활동가 자질이 없다고 집단따돌림조차 마다하지 않는 노동조합의 조직문화를 바꿔야 한다. 그 시작은 함계남 양규서 국장에 대한 집단괴롭힘과 보복징계를 멈추도록 민주노총이 자기 책무를 다하는 것이다.

 

 

2024년 5월 1일

 

공공택시실천단

공공운수노조상근자노동조합

미국 대학생,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았던 반전 정서, 가자전쟁에서 폭발해

김장민(정치경제학연구소 프닉스)



콜롬비아 대학에서 시작된 반전 집회 확산


미국 뉴욕주 뉴욕 시에 있는 아이비 리그 사립 대학인 컬럼비아 대학교가 전국적인 반전 대학생 집회의 발원지이다. 동부 명문 사립대학들은 유대계의 영향력을 많이 받는데, 4월 17일 네마트 샤피크 콜롬비아 대학 총장이 워싱턴에서 열린 하원 교육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하여 “우리 대학에 반유대주의가 발을 붙이지 못할 것”이라고 아부성 발언을 했다.


이에 학생들이 샤피크 총장실 근처 잔디밭에 밤사이 천막 수십 개를 설치하고 총장과 이스라엘의 학살을 규탄하는 농성을 시작했다. 다음날 18일 유대계를 의식한 총장이 교내에 진압경찰을 불러 학생 100여명을 연행하도록 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당연히 일반 학생들까지 집회에 가세해 대학의 자치와 전쟁중단을 요구했다. 


콜롬비아 대학은 베트남 전쟁 당시 1968년에도 학생들이 건물 5곳을 점거하면서 반전시위를 주도했던 곳이다. 또한 다른 대학에 비해 유대인과 아랍인 학생들이 많아 중동 문제는 항상 폭발적인 이슈로 여겨졌다. 



민주당 당세가 강한 동부에서 시작된 대학생들의 반전 집회는 서던캘리포니아 대학 등 서부의 대학뿐만 아니라 텍사스 대학처럼 공화당 당세가 강한 남부까지 전국을 휩쓸고 있다. 각 대학에서 학생들이 학내에 텐트를 치면 학교 측이 경찰을 불러 철거와 진압을 하는 콜롬비아 대학 양상이 반복되고 있다. 즉 학내에 최루탄 등으로 무장한 진압경찰, 기마경찰, 심지어 자전거경찰까지 수백명이 진입하여 학생들과 충돌하고 있어 반전정서와 무관한 대학생들까지 학교와 경찰을 비난하며 집회에 가세하고 있다. 


이런 양상은 부상자와 체포자를 양산시키고 있어 학생들이 거리로 나와 시민들까지 합세할 경우 전국적인 대규모 충돌이 확산될 수 있다. 이미 24일 기준으로 뉴욕대에서 140명, 텍사스대에서 34명, 서던캘리포니아 대학에서 50명이 체포 구금됐으며 계속해서 그 수자가 급증하고 있다.

24일 기준으로 미네소타 대학교, 하버드 대학교, 오하이오 주립 대학교,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 텍사스 대학교 오스틴, 미시간 대학교, 에머슨 칼리지, MIT, 터프츠 대학교, 예일 대학교, 뉴 스쿨, 뉴욕 대학교, 컬럼비아 대학교 등에서 반전집회가 있었으며,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반전이 대선 핵심이슈로 등장하면 베트남 전쟁처럼 미국이 양분돼


공화당은 반전 집회가 자신들의 본거지까지 확산되자 공화당 소속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이 반전집회의 진앙지인 콜롬비아 대학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주 방위군을 풀어 진압할 수 있다.”고 협박하면서 학생들과 실랑이를 벌였다. 


반면 반전운동에 동조하는 젊은층, 노조, 아랍계의 지지를 받는 바이든 대통령은 격앙된 집회를 진정시키는 한편, 이스라엘을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공화당 지지층의 반성을 촉구하고 있다. 


트럼프 역시 바이든에 맞서 반전집회를 폭동이라고 비난하면서 이스라엘에 대한 지지를 공언함으로써 공화당 지지세력을 결집시키고 있다. 이스라엘을 편드는 공화당 지지층들은 반전집회 인근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지원을 확대할 것을 요구하는 맞불집회를 열고 있어 양측의 대립이 전국적으로 확산될 조짐이다.



포스트 코로나 이후에도 계속되는 인플레이션, 고금리, 전쟁에 불만 터져


이번 대학생들의 폭발적인 반전 집회는 경제난과 관련이 있다. 시민들은 코로나의 고통에서 벗어나 밝은 미래를 희망했지만 이어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물가난을 겪었다. 이어 고금리 충격이 수년째 계속되고 있다. 미국이 완만하게 성장한다고 하지만 인플레, 고금리로 서민들은 어려운데, 미국 정부와 의회는 엄청난 재정을 우크라이나 전쟁에 쏟고 있다. 


이미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피로감이 높은데, 가자전쟁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재정지원도 폭증하자, 민심이 요동치기 시작한 것이다. 다만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에 대한 대리전쟁이므로 애국심에 호소할 수 있었다. 문제는 이스라엘에 대한 지원은 그동안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탄압 문제로 민심의 동의를 얻을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우크라이나 전쟁부터 잠복해 있던 반전정서가 이스라엘의 민간인 학살에 자극받아 젊은층에서 폭발한 것이다. 



자기 앞날이 컴컴한 한국의 대학생들에게 반전 집회가 호사


한국은 남북관계, 북미관계가 악화되면서 그 어느 때보다 전쟁의 위험이 높아졌다. 한반도에서 연일 한미일은 북을 겨냥해 핵전쟁 연습을 하고 북도 이에 대항해 핵미사일 타격 시험을 하고 있다. 윤석열 정권은 자기 땅에서 전쟁의 가능성이 높아지는데, 미국의 압력에 굴복해 우크라이나에 포탄 등 살상무기를 지원하고 있다. 한국의 군산복합체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폴란드 등 동유럽에 엄청난 무기 수출을 하며 거의 로또 맞은 상태이다. 


반면 한국의 서민들은 전쟁가능성, 물가난, 고금리 와중에도 민생보다는 미국의 압력에 끌려 다니는 윤석열 정권으로 인해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윤석열 정권은 중국이 북을 지원해준다는 핑계로 미국의 중국 포위정책에 가담하고, 러시아에 적대적인 정책을 펴면서 중국 및 러시아와의 경제관계를 악화시키고 있다.


대부분의 사회에서 대학생들은 비교적 부조리에 제일 먼저 맞서는 계층이다. 진리탐구와 양심에 민감한 반면, 직접 경제활동을 하지 않기 때문에 특정한 계급의 이해를 대변하지 않고 비교적 일반 시민의 이해관계를 위해 행동에 나서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의 대학생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사회 문제에 둔감해져 있다. 대부분이 일자녀 가정 출신으로 부모의 과보호 속에 자랐지만 저출산고령화 사회의 희생자로서 암울한 미래, 고액의 등록금, 졸업 이후에도 이어지는 취업 준비, 취업난을 뚫는다고 해도 대부분의 비정규직과 저임금 구조 등으로 한국의 대학생들은 자기코가 석자이다. 자기 살기도 힘드니 민생고나 반전에 관심을 갖고 집회를 할 여력이 없다는 것이 그들의 변명이라고 볼 수 있다.

외국인노동자(건설현장, 범죄율, 해외사례, 노조의 대응)

 1. 들어가는 글


자본가와 자본권력이 이주노동자를 정주노동자의 지위를 위협하는데 활용하는 것은 오래된 역사적 사실이다. 이주노동자를 정주노동자의 임금인상이나 파업을 방해하는 수단으로 활용해왔다. 노동 강도가 심하거나 사회적 편견이 심하거나 생산성이 낮은 사양산업에서 저임금구조를 가능케 하는 것도 이주노동자들이다. 특히 불법체류노동자는 스스로 인권보호를 주장할 수 없어 악질자본의 먹이감이 돼어 정주노동자를 견제하는데 악용되고 있다. 


따라서 이주노동자와 경쟁하고 있는 정주노동자들이 이주노동자를 곱게 보지 않는 것은 잘못된 노동시장구조 아래에선 자연스런 현상이다. 영국의 노동조합이 폴란드의 이주노동자 때문에 골치가 아팠는데, 마르크스의 국제노동자협회 즉 제1 인터내셔널 창립에 도움을 준 이유 중 하나가 이주노동자 문제를 국제적으로 해결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2. 8개의 기획기사를 낸 KBS [팩트체크K] 핵심 요약


외국인노동자는 2020년대 85만명 내외이며, 전체 노동자 중 3%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단 미등록 외국인노동자 즉 불법체류자가 2023년 기준으로 42만명 수준이므로 이들까지 합치면 외국인노동자의 비율은 4.5% 수준이다. 외국인노동자들이 주로 일하는 분야는 경쟁력이 부족한 저임금 사업장이 대부분이다. 이들 분야에는 내국인노동자가 취업을 꺼려한다는 점에서 보면 전체 산업 일반에서 외국인 노동자가 국내 노동자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은 아니다. 영세사업장을 제외한 정규직노동자, 공공서비스, 대리운전처럼 내국인을 선호하는 직종에선 외국인노동자를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식당 아르바이트와 같이 내국인노동자도 취업하는 일부 직종에선 내국인노동자는 이주노동자에 대해 경쟁의식이 생길 수 있다. 또한 건설분야의 외국인 노동자의 비율은 12.4%로 다른 분야에 비해 월등히 높다. 건설업에서 내국인 노동자가 고령화되면서 젊은 외국인 노동자가 고강도 노동이 필요한 핵심 분야를 담당하고 있다. 이 분야에서 외국인 노동자가 팀장을 맡아 일정 부분 채용, 근로조건 협상 등 인력관리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 외국인 노동자가 없다면 건설업을 유지하기 힘든 정도이니 건설현장을 장악한 것은 사실이다. 특히 건설 분야에서 외국인 노동자 중 90%가 불법체류자이다. 


독일, 일본, 캐나다는 내국인 보호를 위해 내외국인 차등 최저임금제를 폐지했다. 튀르키예와 러시아는 일부 업종에 대해선  임금이 낮은 외국인에게 내국인 일자리가 뺏기는 걸 보호하기 위해 외국인의 최저임금을 오히려 내국인보다 높게 보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헌법상 국적을 이유로 임금차별을 할 수 없다. 


지난 10년(2011~2020)간 외국인의 10만 명당 범죄자 검거 인원지수는 내국인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외국인의 인구 10만 명당 범죄자 검거 인원지수를 범죄유형별로 뜯어보면 성폭력·폭력·절도 등 대부분 범죄유형에선 모두 내국인 범죄가 훨씬 높았다. 


하지만 '강도'는 내국인과 비슷하거나 높은 수준을 보였는데, '살인'은 분석 기간(2011~2020) 내내 내국인보다 2배 이상 높았다. 불법체류자의 경우 특별히 범죄율이 높은 것은 아니나 무면허운전 검거자가 많았다. 특히 내·외국인을 포함한 국내 마약범죄 피의자에서 불체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2018년 이후 7.6%로 급격하게 증가했다.


2018년부터 2021년까지 경기도 5대 범죄로 검거된 전체 외국인 비율이 평균 3.7%였지만 안산시 단원구는 12.7%, 시흥시가 6.3%였다. 서울은 전체 평균이 4% 수준이었는데 구로구가 14.8%, 영등포구는 11.5%였다. 이들 지역에 사는 내국인들은 상대적으로 외국인 범죄 비율이 높다고 체감할 수 있다. 


독일에서 보듯이 인구구조로 인한 노동력 부족 문제는 이주노동자 문제가 아니라 이주민 문제 즉 정주방식으로 풀어야 임금차별, 내국인 보호 등의 문제가 해결된다. 즉 이방인이 아니라 사회구성원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동력만 수입하여 쓰다가 방출하는 것이 아니라 국내에 장기적으로 이주하도록 가족이민을 받아들이거나 장기체류 혹은 귀화의 문호를 넓혀야 한다. 불법체류자를 양산하는 엄격한 외국인 노동자 제도를 바꿔 외국인 노동자를 우리사회의 성원으로 수용하도록 해야 한다.



3. 민주노조의 대응방안


노동조합이 설사 불법체류 노동자라고 해도 이들 자체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을 취한다면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이들에 대한 차별에 묵인 방조하는 것이며, 자본의 노노 갈등에 이용당하는 것이다. 더구나 심각한 저출산고령화사회에서 매우 근시안적이며, 폐쇄적인 태도이다. 


노동조합은 국내노동자와 외국인노동자를 경쟁시키는 노동정책과 사회재생산정책을 변화시키는 운동을 통해 외국인노동자에게 즉흥적으로 반감을 지니는 조합원들의 시각을 개선할 수 있다. 나아가 외국인노동자를 조합원으로 받아들이도록 하는 동의를 얻을 수 있다. 내외국인노동자가 하나의 노동조합을 구성하여 단일한 단체교섭에 나선다면 내국인은 일자리와 좋은 임금을 지킬 수 있고 사업장에서 필요하다면 동일한 조건에서 외국인을 고용하므로 국적차별 문제도 생기지 않는다.


노조는 조합원이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올바른 관점을 지닐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금속노조는 20여 년전부터 조직 규약을 고쳐 이주노동자를 가입 대상에 포함시켰고, 간부의 일정 비율을 이들에게 할당하게 해두었다. 이주노동자들의 노조 가입은 이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전기가 될 뿐 아니라, 노동조합의 교섭력을 키우는 데도 큰 구실을 할 수 있다. 


금속노조는 2007년부터 소속 사업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전면적인 실태조사를 하고 있는데 금속노조의 노력으로 내국인 노동자의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적 시각이 점차 개선되고 있다. 2023년 금속노조 보고서에서 조선업종 노조 간부 126명을 대상으로 이주노동자 고용 확대에 노조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질문한 결과 “이주노동자 총 고용규모를 제한해야 한다”는 응답(17.8퍼센트)은 “안전한 작업환경 조성”(27.1퍼센트), “이주노동자 동일노동 동일임금 주장”(20.4퍼센트)에 이어 세 번째였다.(복수응답)


금속노조 삼우정밀 지회는 2007년부터 이주노동자를 적극적으로 조합원으로 가입시켰다. 당시 이 회사의 한국인 조합원은 41명에 불과했다. 그런데, 사원 모두 입사하면서 바로 노조원이 되는 ‘유니언숍’을 지난 7월 도입해 이주노동자 22명을 조합원으로 가입시켰다. 그 뒤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크게 개선됐고 고용도 안정됐다. 전사원이 조합원이 되면서, 조합의 교섭력은 매우 커졌다. 이주노동자와 내국인노동자 모두 불만이 없는 편이다.



4. 정책방안 


이주노동자, 불법체류노동자의 노동권 보호, 임금차별 금지 등 인권보호는 인류의 보편가치이고 헌법상 요구이다. 하지만 자본은 국경이 없는데, 자본권력은 노동에 국경을 만들어 놓고 차별적인 이주노동자 제도로 노동계급을 분열시키고 비열한 추가 이윤을 얻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비록 일부이지만 국내노동자가 불이익을 보고 있다. 또한 불안정한 외국인노동자 제도가 외국인 노동자의 정주를 방해하고 불안정한 외국인노동자의 생활조건 때문에 국내인의 시각도 좋지 않다. 


일단 국내노동력이 충분한데, 국내노동자를 차별하기 위한 외국인노동자 정책은 허용돼선 안 된다. 국내외 자본이 초과이윤을 얻기 위한 악랄한 착취수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방법은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임금차별 등 잘못된 제도를 폐지하여 자본들이 외국인노동자를 굳이 선호할 필요가 없게 만드는 것이다.


국내노동력이 부족하다면 이는 인구구조 문제이므로 외국인 노동자를 쓰고 방출하는 악순환을 확대하는 노동력 문제로 접근해선 안 되고 사회재생산 구조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노동자만 단기 체류하는 방식이 아니라 이민, 가족이주, 불법체류자의 단계적 합법화 등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정주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단기 체류하는 독거 외국인 노동자는 생활비를 줄여, 본국의 가족을 부양하려는 경우가 많아 내국인노동자보다 저임금을 받아도 취업을 선호한다. 본국 가족의 생활비가 국내의 저임금에 비교하더라도 매우 낮기 때문이다. 특히 단기 체류하는 젊은 독거 노동자는 국내인이든 외국인이든 지역사회에 통합되지 못하고 범죄율도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외국인노동자 혹은 그 가족이 정주하면 그들이 사회에 통합되고 정착되면 노동력재생산 비용이 내국인과 비슷해져 내국인에 비해 낮은 임금을 수용하려는 경향이 줄어든다. 외국인노동자에게 내국인과 동일한 대우를 해야 한다면 사업주는 반드시 필요한 경우만 외국인노동자를 고용하게 될 것이다. 


불법체류노동자를 환영할 수는 없고 이들에 대한 차별을 방치할 수도 없다. 불법체류 노동자를 차별적으로 대우하는 사업주를 엄벌한다면 불법체류 노동자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 것이다. 불법체류 노동자를 강제 출국시키는 것보다 중한 범죄자가 아니라면 사회에 정상적으로 정주하도록 지원하는 것이 인권정책이나 한국의 사회재생산 정책에 부합한다. 





2024년 총선 평가 - 표심이 윤석열 탄핵은 아니지만 혐오 수준

윤석열 정권의 참패원인은?

임기초반의 윤석열 정권에 대한 혐오 수준의 민심을 보여주었다. 이번 선거는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힘을 실어주었던 윤석열 정권에 대한 심판의 성격을 지닌다. 처음부터 여소야대는 필연적이었고 그 정도만 문제가 되는 선거였다. 그럼에도 단순한 패배가 아니라 참패 수준이다. 

보수진영이 차별화된 아젠다를 제시하지 못하고 지도자 실종, 지지세력 분열 등 2017년 박근혜 탄핵의 여파를 극복하지 못했다. 탄핵으로 보수세력은 극우와 보수로 분열됐고 보수도 유승민 등 신보수와 구보수로 분열됐다. 2017년 5월 대선 4자구도에서 문재인 후보는 41%를 얻었으며, 홍준표와 유승민은 24%, 6.7% 합 30.7%를 얻었다. 안철수는 21%를 얻었다. 탄핵 직후 2018년 지방선거에서 경북 대구를 제외하면 14개 광역단체장이 민주당에게 돌아갔다. 2020년 총선에서 보수세력은 103석을 차지했다. 

윤석열과 한동훈은 위기에 처한 보수진영의 땜방에 불과하다. 양자 모두 듣보잡 검찰 출신으로서 검찰 정권에 대한 피로도가 높은 상태이다. 이태원 참사는 박근혜 때 세월호 참사와 닮아 임기초반부터 민심이반이 컸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물가인상, 고금리로 인한 경제난은 문재인 정권 때 아파트 가격 폭등보다 더 고통을 주고 있다. 경제난이 윤석열 정권의 직접 책임은 아니지만 대응에 있어 무능한 면을 보여주었다. 대북 문제에 전혀 대응하지 못하고 미국과 일본에 끌려 다니는 윤석열 정권의 외교안보 노선으로 국민적 자존심도 많이 상한 상태이다. 윤석열에 대해 민심이 떠난 조건에서 김건희, 채상병 사건 등은 때리고 싶은 민심에게 돌을 준 격이라고 볼 수 있다. 구조적인 부분이 더 크다는 것이다. 


보수진영이 붕괴됐나?

의석수로 보면 임기 말의 박근혜보다 더 안 좋은 성적표를 받았다. 2016년 총선에서 집권당인 보수세력은 122석을 얻었고 안철수 국민의당은 38석을 얻었다. 탄핵 이후 첫 총선인 2020년 총선을 제외하면 보수세력이 가장 패배한 선거이다. 특히 집권당의 지위에서 가장 패배한 선거이다. 지금까지 의석이 273석이던 2000년 총선에서 집권당인 새천년민주당이 115석을 차지한 것이 집권당의 최악의 성적표이다. 

하지만 보수세력이 붕괴한 수준은 아니다. 정당 득표율로 보면 국민의힘은 이번 선거에서 37%를 얻었다. 반면 탄핵 직전 2016년 총선의 3자구도에서 새누리당은 33%를 얻었다. 탄핵 직후 2018년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의 광역의원 정당명부 득표율은 27.76%, 민주당은 51.42%를 얻었다. 정의당이 8.97%, 바른미래당이 7.81%를 얻었다. 2020년 총선에서 미래통합당 역시 33%를 얻었다. 

사상 최악의 2020년 선거보다 의석이 오히려 7석이 늘었다. 특히 보수의 핵심층은 견고하다는 것을 확인해주었다. 서울과 부산, 경남에서 상대적으로 선전했다. 국민의힘은 서울에서 2020년 8석보다 더 많은 11석을 얻었다. 2016년 총선에서 민주당은 35석, 새누리당이 12석, 국민의당은 2석을 가져갔다. 분당, 강남, 서초 등 부자동네의 계급투표가 고착화되고 인근의 용산, 마포갑, 동작을까지 보수로 넘어갔다. 부자동네가 한강라인인 마포 용산 성동으로 확대되면 이후 보수화가 우려된다. 국민의힘은 도봉갑에서 값진 승리를 얻었다. 

국민의힘은 부산에서 1석을 제외하고 17석을 독식했는데, 2020년 선거에선 6석을 잃었던 것에 비하면 약진한 셈이다. 부산 민심이 조국과 국민의힘으로 나눠졌다. 이번 선거에서 경남에서 민주당이 3석, 국민의힘이 13석을 얻었는데 2020년 선거에서 4석을 잃었다. 결국 탄핵을 전후로 성적표나 더 나은 성적표를 받았지만 탄핵의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범야권의 탄핵 및 개헌 가능 200석은 왜 실패했나?

의석수는 2016년 박근혜 집권당은 122석, 2020년 2자구도에서 미래통합당은 103석이다. 정당득표율로 보면 2018년 지방선거에서 보수진영은 27.76%, 2016년과 2020년 선거에서 33%를 얻었다. 200석 획득은 탄핵 수준에서나 가능한 의석이므로 애초부터 불가능한 목표였다. 본인 역시 선거 전날 110석 내외를 예상했었다. 


진보정당은 패배했나?

노동당과 녹색당은 지지기반이 원래 적어 투표결과가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일단 진보정치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측면에서 정의당과 진보당 모두 패배했다. 하지만 진보당은 실리 면에서 대성공이다. 

정의당은 통합진보당 강제해산 이후 민주노동당을 계승하는 대표성을 지녀왔지만 이번에 진보의 대표성을 상실했다. 지난 2022년 지방선거에서 정당득표율이 이미 4.1%로 추락한 바 있다. 정의당의 붕괴는 정체성 혼란, 분당 수준의 대규모 탈당 사태, 구심점 실종, 비판적 지지 등 구조적인 것이라서 이후에도 당세를 회복하기 어렵다. 특히 진보당이 민주당에 흡수되지 않고 진보정당으로서 자처할 경우 더욱 그렇다. 

진보당에게는 민주당 우당이냐, 아니면 민주노총의 기반을 갖고 진보정당의 대표를 자처하느냐의 갈림길에 있다. 진보당은 호남에서 민주당과 경쟁하는 관계이고, 노동기반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민주당과 사안별로 연대할 것으로 보인다. 이후 진보당이 2026년 지방선거나 2028년 총선에서 자기 중심의 진보통합을 추진하겠지만 여의치 않으면 민주당과 선거연합을 답습할 것으로 보인다. 향후 민주노총의 정치사업이 상당한 위기에 처한 셈이다. 


2027년 5월 정권교체는 가능한가?

윤석열은 레임덕을 피할 수 없지만 커다란 실책이 없는 한 탄핵의 위험성이 낮아졌다. 탄핵 사유는 중대한 법률위반과 같이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한동훈은 패배했지만 개헌선을 저지하고 의석도 늘렸다. 특히 한동훈은 전통적 지지층을 결집시켰다. 한동훈은 점차 참패의 충격에서 벗어나 퇴출보다는 대표를 맡으면서 대선까지 갈 가능성이 높다. 

2026년 6월 초에 지방선거가 있고 1년 후 대선이 있다. 2022년 지방선거에서 여당은 12개 광역단체장을 얻는 압승을 했다. 2026년 지방선거는 임기 말의 선거로서 무조건 여당의 참패이고 그 기조가 대선으로 이어진다. 한동훈은 윤석열의 아바타라는 점이 이번 선거에서 드러났다. 대선주자로서 치명적이다. 

그렇다고 윤석열이 파괴력이 있는 대안을 찾기도 어렵다. 한동훈 카드를 유지한 채 이재명, 조국 등 경쟁자를 제거하려고 할 것이다. 선거가 없는 2년 동안 대선주자에 대한 형사처벌에 주력하고 공안사건 등 검찰정치에 의존할 것으로 보인다. 사법리스크가 정권교체에서 제일 중요한 변수가 된다. 

조국은 이재명과 통합 후 후보단일화를 하려고 하겠지만 양자 모두 상대방의 사법리스크에 기대를 걸 수 있다. 즉 상대방이 낙마하기를 기다린다는 것이다. 이재명은 의석 과반수를 얻었기 때문에 조국과 불확실한 당내 경선을 하기보다는 정국의 주도권을 쥐고 통합에도 소극적일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은 별도로 출마한 후 선거과정에서 조국에게 후보단일화를 요구하면서 조국에게 차기를 노리라고 강변할 수 있다. 변칙적인 후보단일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출구조사와 실제의 차이는 왜 발생하나?

출구조사는 여당이 최대 100석이라고 했지만 110석을 얻었다. 과거에도 대선의 출구조사는 정확하지만 총선과 지방선거는 많은 오차를 보여주었다. 대선은 단일선거구라서 응답자의 수가 많아 모집단을 대표하지만, 총선과 지방선거에서는 각 선거구마다 응답수가 적어 오차가 발생한다. 특히 보통 여론과 반대되는 투표자는 투표 답변을 회피하거나 오답을 제시하는 경우도 있다. 

역대 진보정당 선거 결과와 정치지형의 변화


역대 진보정당 정당명부 득표율

선거종류

당선자/득표율

02년 지선

민주노동당 지지율 : 8%(134만 명)

04년 총선

지역구 2명, 비례대표 8명(정당득표율 13%(277만))

06년 지선

81명(출마자 799명), 광역비례득표율 12.10%(2,263,051명)

08년 총선

지역2,비례대표3(득표율 5.7%) 창조한국 3.8 진보신 2.94

10년 지선

민주노동당 정당명부 7.1 국참 6.4 진보신당 3

12년 총선

통합진보당 10.3, 진보신당1.1, 창조한국당 0.4

14년 지선

통합진보4.15, 정의3.61, 노동1.17, 녹색0.75, 국제녹색0.03

16년 총선

정의당 7.23 노동당 0.38, 녹색당 0.76 민중연합당 0.61

18년 지선

정의 8.97, 민중 0.97, 노동 0.24, 녹색 0.7, 국제녹색당 0.01

20년 총선

정의당 9.67 민중당 1.05 노동당 0.12, 녹색당 0.21

22년 지선

국민 52, 민주 41, 정의 4.1, 진보 0.92, 기본 0.43, 녹색 0.23

 

 민주주의가 발전한 서구에서 노동자민중의 진보정당이 원내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정당명부 비례대표선거이다. 이 경우 저지선을 넘기 위해 정당명부결합이나 정당연합이 시도된다.

 

소선거구제 양당제에서 진보정당이 원내에서 3자 구도를 형성하기는 어렵다. 영국노동당은 자유당과의 비공식적인 후보단일화, 자유당과의 연립정부, 아일랜드 독립 문제로 인한 자유당의 분열과 쇠퇴 등을 계기로 제2당으로 성장했다.

 

독일의 경우 1874년 지역구 선거에서 마르크스파가 3%(7석), 라살파가 3%(3석)를 얻었으며 양당이 통합한 이후 1877년 9%(12석)을 얻었다. 1881년 6%(12석), 1884년 9%(24석), 1887년 10%(11석)을 얻었으나 사회주의자탄압법이 폐지되기 직전 1890년 19%(35석)을 얻어 득표율 기준으로 제1당이 됐다. 제국의회가 연방제이며, 실권이 없었기 때문에 강력한 양당제가 형성되지 않아 사민당이 성장할 수 있었다. 1912년 사민당은 34%(110석)을 얻어 397명의 의회에서 제1당이 됐다.

 

프랑스 1881년 총선에서 양강을 이루던 왕당파들이 몰락하고 사회주의 경향의 후보가 545석 중 46석을 얻었다. 이후 마르크스파를 비롯하여 다양한 정당들이 10% 미만의 의석수를 차지하면서 난립하다가 제2인터내셔날의 결정으로 1905년 노동자 인터내셔널 프랑스 지부로 통합된다. 이 정당은 1906년 10%(54석), 1910년 13%(75석), 1914년 17%(103석), 1919년 21%(67석)을 득표한다.

 

서구의 경우 진보정당이 성장한 비결은 단일정당으로 표 집결이 필수적이며, 노동당은 자유주의 세력과 연합, 독일과 프랑스는 강력한 양당제 형성 이전에 원내 진입 등이다.

 

노동자민중이 민주노동당으로 결집한 이후 진보정당이 원내에서 유의미한 세력으로 인정받았다.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은 13%를 얻었고 2008년 총선에서 5.68%를 얻어 5(2/3)석을 얻었다. 민주노동당에서 분당하여 창당한 진보신당은 2.94%를 얻고 노회찬, 심상정이 낙선해 원내진입에 실패했다. 유한킴벌리 대표이사 문국현이 창당한 진보적 색채의 창조한국당은 3.8%를 얻었다. 3정당의 득표율은 여전히 12% 수준이었다.

 

민주노동당의 분열과 통합진보당의 강제해산, 정의당의 쇠퇴에도 불구하고 원내 진보정당은 유지되고 있으며 10%의 지지층을 공정하게 의석으로 배분받는다면 언제든지 제3세력으로 등장할 수 있다. 다만 광역단체장 선거 승리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대통령 선거에서 유의미한 득표를 얻지 못하고 있다. 2017년 자유주의 정권이 압승할 것이 분명한 조건에서 진보성향의 유권자들이 사표심리에서 해방돼 심상정 후보를 지지함으로서 역대 최고의 대선 득표율을 기록했다.

 

통합진보당의 강제해산으로 진보의 대표성을 얻었던 정의당은 2024년 총선을 앞두고 2008년 진보신당 당시로 후퇴했다.

 

유권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소선거구 양당 독점체제에서 진보정당에 대한 표는 사표가 된다. 또한 진보정당은 사회의 소금, 목탁, 등대는 될 수 있지만 아직은 국가를 운영할 능력이나 경험이 없다고 본다. 따라서 대선에서 득표율은 총선에서 득표율보다 낮다. 총선에서 진보정당들의 정당명부 득표율은 합해 10% 내외이다. 반면 문재인 후보가 당선이 확실해 비판적 지지가 무의미했던 2017년 대선을 제외하면 대선에서 진보정당 후보의 득표율은 3% 내외이다.

 

진보정당의 성장과정은 창당 - 원내진입 - 주요정당(원내교섭단체) - 집권의 순서이다. 집권은 의원내각제에서 연립정부, 대통령제에서 영웅적인 지도자를 전제한다. 한국에서 현실적인 성장과정은 원내 진입 - 교섭단체라고 볼 수 있다.

 

민주노동당의 집권프로젝트는 실패했지만 창당과 원내진입 프로젝트는 성공했다. 양당제에서 교섭단체 즉 20석 이상을 얻으려면 민주노동당의 사례에서 보듯이 단일한 대중적인 진보정당 건설이 불가피하다. 다만 민주노동당의 교훈과 현재 진보정치의 상황에서 단일정당은 어렵고 연합정당이 현실적이다. 연동형비례대표제는 기존의 진보정당이 존치하면서 선거시기 비례대표 선거연합을 제도화할 수 있는 제도이다. 궁극적으로는 기존 정당의 지위를 갖고 정당간 연합을 허용하는 정당명부결합제도, 혹은 정당연합 제도를 실현시켜야 한다.

 

민주노동당은 분당 이후 견고한 양당제에서 지역구 돌파의 방법으로서 진보대통합과 선택적 야권연대를 선거전술로 확정했다. 하지만 2011년 자유주의 정당인 국민참여당과 통합함으로써 진보대통합 노선에서 벗어났으며, 민주당과 전국적인 묻지마 후보단일화를 하면서 선택적 야권연대 방침을 스스로 훼손했다. 그 결과 민주노동당 후신인 통합진보당은 금배지를 달기 위한 무한경쟁과 편법의 도구로 전락하면서 13석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폭력사태와 분당사태로 치달아 오늘날 진보정당의 분열과 퇴행을 초래했다.

 

향후 양당제를 돌파할 선거연합정당으로서 노동시민진보연합의 형성이 필요하다. 일부 진보정당이 2024년 총선에서 민주당과 선거연합을 한 조건에서 이 진보정당들은 향후 민주당과 선거연합, 혹은 진보정당들의 선거연합 사이에서 심각한 고민을 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선거연합이 고착화되면 민주노총 등 노동자민중의 정치적 기반이 약화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