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제국주의라는 맑스주의자, 레닌주의자에게

김장민(정치경제학연구소 프닉스 연구위원)


사상논쟁의 실천적 의의


오늘날 사회주의는 맑스주의자, 레닌주의자 이외에도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다양한 흐름을 포함합니다. 맑스주의자, 레닌주의자들은 자본주의 극복이라는 공동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다양한 사회주의자들과 불필요한 사상논쟁을 하지 않습니다. 실천적인 의미가 없는 사상논쟁은 반자본주의전선을 약화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미국제국주의자들이 동유럽에서 우크라이나 파쇼를 도구로 삼아 러시아와 대리전쟁을 하는 한편 동북아에서 대만과 한국의 도구로 삼아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전쟁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80여 년 동안 전쟁을 조성하고 있는 미국제국주의에 대한 집중적인 투쟁을  해야 하는 엄중한 시기에 자칭 일부 사회주의자들이 제국주의의 범위를 자의적으로 확대하여 자본주의 괴수인 미국에 대한 투쟁을 분산시키고 있습니다. 


모든 사회주의혁명의 성과를 부정하고 진정한 사회주의를 구호로서 외치는 신좌파들과, 트로츠키보다 더 악의적으로 러시아혁명을 모욕하는 잡다한 트로추키주의자들이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에 대한 맑스주의, 레닌주의의 개념을 멋대로 파괴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도 그리스공산당처럼 자칭 맑스주의자, 레닌주의자를 자칭하면서 러시아공포, 중국공포라는 제국주의 프로파겐다에 젖어 있는 서구 여론을 편승하고 미국 제국주의에 대한 집중타격을 분산시키는 것은 심각한 실천적 오류를 낳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에 대한 맑스와 레닌의 기본 개념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와 같은 사회구성체는 <생산양식과 경제생활이라는 토대와 그에 조응하는 상부구조>라고 규정했습니다. 즉 경제구조와 이에 조응하는 정치구조의 총합체가 사회구성체입니다. 


레닌 이전의 홉스의 제국주의론, 힐퍼딩의 금융자본론, 카우츠키의 초제국주의론, 로자의 자본축적론은 제국주의가 추상적인 자본주의의 구체적 형태이나 자본주의의 보편적 형태에 더해진 특수한 형태라는 점을 명확히 하지 못했습니다. 이에 반해 레닌은 제국주의가 정책이 아니라 시스템이라고 기존의 이론을 비판했습니다. 홉스나 카우츠키처럼 제국주의가 정책이라고 본다면 제국주의간의 전쟁은 정책을 변경함으로써 피할 수 있지만 시스템이라면 제국주의전쟁은 필연적이라는 것이 레닌의 요지입니다. 


레닌은 제국주의는 경제구조(상품과 자본수출, 금융자본의 우위)와 거기에 조응하는 정치구조(시장에 대한 독점적 지배, 영토식민지, 반식민지, 대리정권)의 총합체라고 규정했습니다. 이는 제국주의가 자본주의의 특수한 형태 즉 경제구조와 정치구조의 통합인 사회구성체라는 점을 명확하게 지적한 것입니다.


중국이 제국주의라는 주장의 모순


그리스공산당을 포함하여 중국이 제국주의라는 주장들은 그 근거로서 중국의 상품 수출과 자본수출을 제시합니다. 하지만 금융자본의 산업자본에 대한 우위, 금융자본의 정치 장악력, 특정 국가의 시장에 대한 독점적 지배, 경제적 착취를 강요하는 영토식민지, 반식민지, 대리정권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즉 제국주의를 금융자본과 상품자본의 수출을 통한 경제적 착취라는 경제적 측면으로만 규정합니다. 이들은 식민지적 지배에 대한 증거가 없자, 차관 등에 의한 정치적 영향력, 혹은 정치적 상호의존을 제시합니다. 


이들의 주장은 제국주의 사회구성체를 경제구조로만 보는 것입니다. 또한 식민지적 종속을 정치외교적 영향력으로 완화시키고 있습니다. 사회구성체인 제국주의를 이처럼 정책으로 보는 것은 맑스주의, 레닌주의와 인연이 없습니다.


수정주의와 기회주의에 대한 자의적 선동


수정주의란 맑스와 레닌의 기본 이론을 수정하는 것이니 그리스공산당과 같은 주장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기회주의란 이론 측면이 아니라 행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미국제국주의에 대한 집중 투쟁이 부담스러울 때 중국과 러시아도 제국주의라고 하면서 양비론을 취하는 그리스공산당의 형태입니다. 서구 자본주의 사회의 반공주의에 기생하면서 “나는 소련, 중국, 북한 같은 현실 사회주의국가를 진정한 사회주의라고 보지 않는다.” 고 자랑하는 우경화된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전형적인 기회주의자들입니다. 반공좌파, 반북좌파라는 해괴한 단어가 나오는 것이 이런 기회주의자들 때문입니다. 


그리스공산당 기회주의의 사회적 기반과 정치적 기반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선진 부르주아 민주주의 국가들은 러시아 제국이 자신들의 체제를 전복할 것이라고 우려해왔습니다. 러시아제국, 독일제국, 일본제국과 같은 전제국가들이 합세해 서구를 점령할 것으로 걱정했습니다. 독일과 일본이 패전한 후 부르주아민주주의를 수용한 이후에는 소련에 대한 공포가 지배했습니다. 


러시아와 중국이 부흥한 이후에는 이 양국이 서구 체제를 전복할 것이라고 걱정하고 있습니다. 유럽에선 이런 공포가 폭넓게 퍼져 있어 러시아와 중국을 옹호하는 정당은 부르주아선거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마치 한국에서 북을 비판하지 않는 진보정당은 빨갱이 정당으로 찍혀 유권자에게 외면당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그리스공산당 역시 그리스에서 10% 이상, 유럽의회에서 자국의 1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기득권정당입니다. 따라서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각 진보정당들에게 <십자가 밟기, 러시아 밟기>가 강요되는 상황에서 양비론을 취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그리스공산당의 이론을 한국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바로 반북좌파, 반공좌파, 반증좌파, 반러좌파의 기회주의적 속성 때문입니다. 맑스는 공산당선언에서 프랑스에서 유행하는 사회주의를 상황이 다른 독일에 적용하려고한 자들에 대해 <진정한 사회주의>라고 조롱한 바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있어 미국대사관과 러시아대사관을 똑같이 항의방문하는 등 균형을 가져야 한다는 양비론자들의 태도는 러시아가 우리와 실천적인 대립이 없다는 점에서도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나 조롱받을 일입니다.


철학의 기본 개념과 맑스주의를 왜곡하는 양비론자들


제국주의라는 사회구성체 개념은 5가지의 정치적 경제적 표지(속성)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 중 한두가지 표지만 지녔다면 제국주의적 속성을 지녔다고 할 수 있지만 제국주의라고 할 수 없습니다. 개념과 표지, 존재와 속성을 혼동하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양비론자들은 철학의 기본개념도 왜곡하고 있습니다.


맑스와 레닌은 자신의 이론이 경제주의, 경제결정론으로 환원되는 것에 결사코 반대했습니다. 자본주의와 제국주의를 경제구조로만 파악하여 사회구성체를 경제개념으로 축소시키는 것은 맑스나 레닌과 무관한 이론입니다. 하지만 이런 양비론자들이 항상 맑스와 레닌을 인용하면서 자신의 이론이 정통인 것처럼 대중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동유럽과 중동의 열전, 동북아의 저강도 전쟁, 3차 대전의 가능성은?

김장민(정치경제학연구 프닉스 연구위원)


1. 3차 대전이 시작됐나?




1) 미국을 정점으로 유럽의 나토, 중동의 이스라엘, 아시아의 한일과 호주 등이 한미일, 오커스, 쿼드 등으로 제국주의 동맹이 사실상 완성됐다. 이에 대항하는 북러, 북중을 중심으로 북중러와 이란이 대항동맹을 형성하고 있다. 




2) 동유럽과 중동에서 열전이 시작됐고 대만과 한반도에서 저강도 전쟁이 진행 중이다. 미러는 냉전이 아니라 우크라이나에서 열전의 대리전쟁을 하고 있으며, 나토개입에 따라 러시아는 전술핵 발사 훈련을 하고 있다. 미중은 경제전쟁 중이며, 대만과 남중국해에서 저강도 전쟁 중이다.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의 지시에 따라 토머스 파고 태평양 사령관과 미 국방부 작전 담당관들이 ‘작전계획 5030’을 수립했다. 작계 5030’은 저강도 전쟁계획으로서 전쟁 상황을 수시로 조성하여 적국의 자원을 고갈시키는 내용이다. 사전예고 없는 대규모 군사훈련 역시 북의 전면적인 대응태세를 유도하여 체제 피로도를 증가시키는 방법이다. 




또한 비공식적으로 영해와 영공을 침범하여 적국을 자극하여 우발적인 충돌을 유도한다. 공식적으로 미군이 정찰기와 전략무기를 적국에 근접시켜 레이더, 전투기 등 전쟁자원을 소모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베트남 통킹만 총격 사건,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 정찰기 EC-121 격추 사건., 고고도정찰기 SR-71 격추 실패 사건, 스텔스기 F-117과 F-22의 북 영공 침범 사건 등 전쟁을 유발하는 침략행위를 포함한다. 




최근에는 금융시스템 등 해킹. 반체제 정보 살포, 사회불안 조장 등이 추가되고 있다. 쿠바 출신 미국인을 동원하여 주요시설 파괴, 유원지에서 무차별 테러 등을 자행한 사보타지가 쿠바 요원 르네 곤잘레스에 의해 발각됐다. 




3) 죠티브라가 지적했듯이 2차 세계대전은 1938년 독일의 오스트리아 병합과 체코 점령 및 폴란드 분할 이전에 이미 1936년 스페인 내전, 1931년 일본의 만주 점령에서 시작됐다(20231105). 대만, 남중국해, 코리아반도에서 열전이 발생해 제3차 대전이 본격화되면 역사는 그 시발점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기록할 것이다. 




2. 냉전인가 열전인가?




미러는 열전 중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미중러의 글로벌 분업은 파탄나고 있다.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은 상대방의 국경에서 전쟁을 일으킨 적이 없다. 중동에서 미국의 대리정권과 반미이슬람 진영이 열전 중이다. 미중은 경제전쟁을 매듭짓지 못했으며, 대만과 남중국해에서 군사대치 즉 저강도 전쟁 중이다. 




코리아반도는 한미일의 대규모 침공훈련으로 재래식 전쟁의 위험이 높아지고 있으며, 이에 대응하여 북이 한미일을 겨냥하는 다양하고 고도화된 전략핵, 전술핵 미사일을 대량으로 공탄 발사하고 있다. 북은 미국 본토, 괌과 하와이, 주일미군기지, 용산, 계룡대, 미군기지, 항만과 공항, 항공모함을 모의 타격하고 있다. 한미는 이러한 공탄에 대해 즉각 발사원점을 타격하는 보복훈련을 하고 있다. 






현재 상태는 동유럽에서 열전이 시작하여 중동으로 파급됐고 동북아에서 저강도 전쟁 중이므로 미소의 냉전보다 훨씬 심각하다. 






1. 3차 대전이 시작됐나?




1) 우크라이나 전쟁은 핵무기 시대에 핵을 사용하지 않는 세계대전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핵무기 시대에 세계대전은 섬멸전이 아니라 소모전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미국을 정점으로 유럽의 나토, 중동의 이스라엘, 아시아의 한일과 호주 등이 한미일, 오커스, 쿼드 등으로 제국주의 동맹이 사실상 완성됐다. 이에 대항하는 북러동맹, 북중동맹을 중심으로 북중러와 이란이 대항동맹을 형성하고 있다. 




2) 동유럽과 중동에서 열전이 시작됐고 대만과 한반도에서 저강도 전쟁이 진행 중이다. 미러는 냉전이 아니라 우크라이나에서 열전의 대리전쟁을 하고 있으며, 나토개입에 따라 러시아는 전술핵 발사 훈련을 하고 있다. 미중은 경제전쟁 중이며, 대만과 남중국해에서 저강도 전쟁 중이다. 작계 5030’은 저강도 전쟁계획으로서 전쟁 상황을 수시로 조성하여 적국의 자원을 고갈시키는 내용이다. 사전예고 없는 대규모 군사훈련 역시 북의 전면적인 대응태세를 유도한다. 또한 베트남 통킹만 총격 사건,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 정찰기 EC-121 격추 사건., 고고도정찰기 SR-71 격추 실패 사건, 스텔스기 F-117과 F-22의 북 영공 침범 사건 등 전쟁을 유발하는 침략행위를 포함한다. 




3) 죠티브라가 지적했듯이 2차 세계대전은 1938년 독일의 오스트리아 병합과 체코 점령 및 폴란드 분할 이전에 이미 1936년 스페인 내전, 1931년 일본의 만주 점령에서 시작됐다(20231105). 대만, 남중국해, 코리아반도에서 열전이 발생해 제3차 대전이 본격화되면 역사는 그 시발점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기록할 것이다. 




2. 냉전인가 열전인가?




현재 상태는 동유럽에서 열전이 시작하여 중동으로 파급됐고 동북아에서 저강도 전쟁 중이므로 미소의 냉전보다 훨씬 심각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핵무기 시대에 핵을 사용하지 않는 세계대전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러는 열전 중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미중러의 글로벌 분업은 파탄나고 있다.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은 상대방의 국경에서 전쟁을 일으킨 적이 없다. 중동에서 미국의 대리정권과 반미이슬람 진영이 열전 중이다. 미중은 경제전쟁을 매듭짓지 못했으며, 대만과 남중국해에서 군사대치 즉 저강도 전쟁 중이다. 




코리아반도는 한미일의 대규모 침공훈련으로 재래식 전쟁의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대응하여 북이 한미일을 겨냥하는 다양하고 고도화된 전략핵, 전술핵 미사일을 대량으로 공탄 발사하고 있다. 북은 미국 본토, 괌과 하와이, 주일미군기지, 용산, 계룡대, 미군기지, 항만과 공항, 항공모함을 모의 타격하고 있다. 한미는 이러한 공탄발사에 대해 즉각 발사원점을 타격하는 보복훈련을 하고 있다. 


가자 전쟁과 세계대전의 위험

김장민(정치경제학연구소 프닉스)



I. 중동문제


1. 오늘날 중동의 탄생


오스만 제국(1299년~1922년)은 튀르키예의 전신으로 중동은 물론 스페인, 헝가리, 그리스, 알바니아, 불가리아, 세르비아 등 중부유럽까지 지배해왔다.  이에 오스만 제국은 제1차 대전에서 독일을 도와 1853년 크림 전쟁에서 러시아에게 빼앗긴 지역을 회복하고자 하였다. 

1차 대전 당시 중동을 점령한 영국은 오스만 제국을 분열시키기 위해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던 여러 민족들에게 “영국에 협력하면 전쟁 후에 독립시켜 주겠다”고 약속하고 이들 민족의 반란을 유도하였다. 이슬람의 성지인 아라비아 반도의 왕족들은 자신들이 술탄이 되어야 한다고 봤기 때문에 오스만 제국으로부터의 독립을 갈구하였다. 

영국은 무함마드의 고향인 아라비아의 이븐 사우드를 오스만제국의 술탄에 대항하는 종교적 지도자인 칼리프로 만들고자 하였다. 1916년 메카의 샤리프는 영국군의 지원 아래 아라비아 반도에서 오스만 제국을 몰아내고, 자기 자신을 헤자즈의 왕으로 선포하였다. 헤자즈 왕국은 1920년 세브르조약에 의해 독립을 인정받았다. ‘네지드 술탄국’을 세운 이븐사우드는 1925년 헤자즈 왕국까지 정복하고 1926년 ‘네지드-헤자즈 왕국’을 세웠다. 이븐사우드는 1927년 제다 조약을 통해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승인받았는데 이 나라가 사우디아라비아이다. 

1920년 세브르 조약에 따라 오스만 제국은 해체되어 소아시아와 유럽의 일부를 포함하는 지금의 터키로 축소되었다. 아라비아와 이집트는 영국의 보호령이 되었고 모로코와 튀니지는 프랑스의 보호령이 되었다. 지중해 동쪽 지역은 영국과 프랑스가 분할하여 점령하였다. 영국 위임통치령은 이라크와 팔레스타인에 설치되고 프랑스 위임통치령은 시리아 및 레바논에 설치되었다. 이밖에도 프랑스는 마라슈, 우르파, 안테플 등을, 이탈리아는 아나톨리아 남서부를 차지하였고 아르메니아는 독립하였지만 터키의 침공을 받은 후 소련에 복속되었다.

오늘날의 터키 ·이라크 ·이란에 걸친 쿠르디스탄 지역에 거주하던 쿠르드족은 세브르조약으로 자치정권이 약속되었으나 로잔조약으로 자치권이 취소되었다. 쿠르드족에 대한 독립 약속이 이행되지 않자 쿠르드족은 독립을 요구해왔다. 

그리스는 세브르 조약에 반대하면서 터키를 침공하였지만 1922년 케말 파샤가 그리스 군대를 격파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1923년 영국과 터키가 로잔 조약을 통해 오늘날의 터키 영토를 확정함으로써 세브르 조약의 효력이 다시 인정되었다.



2. 영미의 중동석유 장악


20세기 동안 석유자원을 지배해 온 British Petroleum의 모태는 1886년 인도의 유전을 개발하기 위해 설립된 영국의 랑군오일(Rangoon Oil)이다. 1908년 영국의 지질학자가 이란에서 유전을 발견하자 이란 군주 모하메드 알리 샤는 영국에 개발권을 주었다. 영국은 1919년 이란을 러시아혁명으로부터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보호령으로 삼았다. 영국은 1920년대 이후 이란의 원유를 100% 독점하는 대신 수익의 14%를 이란에게 주었다.

마이클 오렌(Michae Oren, 2007)에 따르면 미국은 건국 초기부터 오스만 제국과 무역을 해왔다. 또한 미국은 선교사를 파견하여 병원을 건설하는 등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왔다. 이런 배경으로 인해 윌슨대통령은 1차 대전 당시 의회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독일과 동맹국이었던 오스만 제국에 대해서는 선전포고를 하지 않았다. 

1928년 사우디에서 석유탐사가 시작됐을 때 압둘 아지즈 알사우드 국왕은 석유개발권을 미국 회사들에게 주었다. 알사우드 국왕은 1933년에는 미국의 석유 회사에게 전국의 석유 개발권을 부여하였다. 루스벨트대통령은 1945년 2월 얄타회담을 끝내고 수에즈 운하 근처의 미국 호위함 쿤시호에서 압둘 아지즈 알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국왕과 정상회담을 열었다. 이 회담에서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가 영국에서 완전히 독립하도록 지원하기로 하였고, 그 대가로 영국 대신 미국이 사우디아라비아의 원유를 제공받기로 하였다. 미국은 사우디에게 45%의 수익을 주었다. 알사우드의 후임자들도 이러한 노선을 계승하여 이집트의 사다트와 함께 친미, 친이스라엘노선을 따랐다.  

1949년 미국 연방통상위원회의 자료에 따르면 카르텔 기업들 일곱 자매가 미국과 공산권을 제외한 세계 석유 자원의 82%, 생산의 80%, 시설의 76%를 장악하였다. 이들 석유 대기업은 1960년대에 원유가격을 좌지우지하면서 세계 석유의 85%를 장악하였다. 



3. 이슬람에 대한 분열정책


미국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제국은 유라시아제국이다. 서방은 유라시아 제국을 건설한 흉노족, 몽고족, 이슬람의 침략을 받아왔다. 서방의 최대 목표는 중국, 러시아, 이슬람 세력이 유라시아 제국을 건설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중동에서 자신들에게 도전할 수 있는 거대한 이슬람제국의 탄생을 막는 것이었다. 서방과 백인의 대표자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은 수니파(Sunni)와 시아파(Shia)의 대립을 격화시켜 이슬람을 분열시키고 있다. 

시아파가 집권한 이란, 시리아는 러시아와 가깝다, 시리아 내전, 리비아 내전, 예멘 내전은 미국과 러시아의 대리전, 사우디와 이란의 대리전 양상을 띠고 있다. 미국은 시리아 사태에서 보듯이 시아파와 수니파의 갈등뿐만 아니라 중동 각국에 산재해 있는 쿠르드족의 독립 문제를 중동의 분열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미국은 종파갈등 이외에도 이슬람의 세속주의와 근본주의의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 미국은 사회주의나 세속적 민주주의에 대응하고자 사우디아라비아의 건국을 지원하는 등 이슬람근본주의를 활용하였다. 터키와 사우디는 오스만제국 시절부터 대립관계에 있었으며, 수니파 내부의 주도권 싸움을 하고 있다. 같은 근본주의 국가이자, 신정국가인 수니파 사우디 왕정과 시아파 이란 공화국의 대립 역시 중동을 분열시키는 중요한 이유이다. 

최초의 이슬람 테러조직은 미국에 의해 양성되었다. 카터 대통령은 CIA의 아프가니스탄 공작을 승인하였다. 미국은 반군들에게 월급을 주고 스팅어 미사일 등 중무기의 훈련까지 시켰다. 이때의 이슬람반군들이 무자헤딘이고 탈레반이다. 오사마 빈라덴은 사우디에서 아프가니스탄으로 가서 CIA의 지원을 받으며 내전에 참전하였다. 

1989년 소련이 물러난 후 친소정권이 붕괴하자 이슬람 세력들은 내전에 빠졌고 결국 1996년 탈레반이 정권을 잡았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끝난 후 자신들이 반군에게 준 중무기들을 다시 사들였지만 그 일부는 이슬람 무장조직에게 넘어갔다. 현재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통해 이슬람국가에 대한 자신의 개입을 정당화하고 있다. 미국은 이슬람 국가들로 하여금 이슬람 테러조직을 소탕하게 함으로써 이슬람간의 대립을 구조화시키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이 새롭게 네이션 빌딩을 한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정부 역시 이슬람 테러조직 소탕에 참여하고 있다. 

오사마 빈라덴 등 사우디의 급진 이슬람세력이 아프가니스탄의 내전이 끝난 후 사우디아라비아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 당시 미군은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이후 사우디에 주둔하고 있었다. 사우디의 급진 이슬람세력의 입장에선 이슬람의 성지인 사우디에 미군이 주둔하는 것은 아프가니스탄에 소련군이 주둔하는 것보다 더 큰 치욕이다. 결국 이들은 사우디에서 미군을 상대로 테러를 하기 시작하였다. 오사마 빈라덴 역시 미군에게 월급과 무기를 받던 전사들을 다시 모아 전 세계에서 미국을 상대로 하는 성전을 전개하였다. 



4. 중동 친미 국가들의 유래 


이란 왕조는 1차 대전에 이어 2차 대전에도 중립을 선언했으나 연합국에 점령됐다. 왕조를 간신히 유지한 이란의 팔레비는 1950년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였다. 1953년 미국은 전제군주제를 원하는 모하메드 레자 팔레비(Mohammed Reza Pahlevi) 왕을 회유하여 친위 쿠데타를 일으켜 이란의 모사데그 정부를 전복했다. 1958년 군주제를 타도하고 집권한 이라크의 카심은 이란, 터키, 파키스탄 등과 함께 참여했던 반소동맹에서 탈퇴하고, 소련으로부터 무기를 도입하였다. 카심이 원유 국유화를 추진하자 CIA가 1963년 이슬람 사회주의 정당인 바트(Baath)당의 친미쿠데타를 지원하여 카심을 몰아냈다.

바트당 출신의 수니파였던 후세인은 이란의 이슬람혁명이 국내의 시아파에게 확산되는 것을 막고자 미국의 지원 아래 1980년 이란을 공격하였다. 미국, 영국, 프랑스가 이라크에게 지원한 무기 중 생화학무기의 원료도 포함되었다. 1991년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점령하고 사우디를 군사적으로 압박하였다. 후세인이 친미국가들을 무력화시키고 석유를 통제하는 한편 자신을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적하는 이슬람 지도자로 부상시키고자 하였다. 미국은 후세인의 의지를 꺾기 위해 이라크를 침공하여 걸프 전쟁이 발생하였다. 미국은 시아파가 다수인 이라크에 이란의 시아파 회교혁명이 확산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따라서 미국은 수니파인 후세인이 이란을 계속 견제해주길 원하였기 때문에 후세인과 협상하여 전쟁을 중단하였다. 

2003년 미국은 대량살상무기의 개발을 저지한다는 명분으로 이라크를 다시 침공하였다. 미국은 2006년 후세인을 교수형시키고 시아파 친미정권을 세웠다. 미국은 2011년 철군하였으나 이후 이라크 정부가 쇠약해져 IS가 득세하자 2014년 다시 파병하였다. 그런데 시아파 이라크 정부는 미국의 직접적인 지배에서 벗어나자, 같은 시아파인 이란과 관계개선에 나서고 있다. 

1956년 쿠데타로 대통령이 된 나세르는 미소 등거리정책을 하고 알제리의 독립운동을 지원하는 등 독자노선을 걸었다. 1970년 나세르가 갑자기 사망한 이후 대통령직을 승계한 사다트 대통령은 1976년 소련과의 우호조약을 파기하고 소련 기술자들을 추방하였으며 친미노선으로 전환하였다. 그는 1977년 이스라엘을 방문하였으며 카터 대통령의 중재를 받아들여 시나이 반도를 돌려받고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었다. 1977년 사다트는 IMF의 요구대로 빵 보조금을 폐지하였으나, 폭동이 발생하였다. 사다트는 혼란 끝에 이슬람 극단주의자에 의해 암살되었다. 1981년 대통령이 된 무바라크는 2011년 민중봉기로 퇴임할 때까지 사다트의 노선을 승계하여 친미, 친이스라엘 정책을 추진하였다.

사우디는 한편으로는 미국의 압력 때문에, 다른 한편으로는 이란을 견제하려는 이유 때문에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는 등 이중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5. 테러와의 전쟁은 기독교와 이슬람의 문명충돌


수백 년이라는 미래를 놓고 보면 인종간의 경제적 차이는 줄어들고 패권은 인구의 규모로 정해질 가능성이 높다.  2015년 미국의 여론조사기관 ‘퓨 리서치 센터(Pew Research Center)’가 발표한 보고서 「세계 종교의 미래」에 따르면 기독교인에 대한 무슬림의 비중은 20세기 초에 1/3, 1970년대에 1/2이었지만 2010년에 76%까지 따라왔다. 지금과 같은 속도라면 무슬림과 기독교인은 2050년 28억과 29억으로 비슷해지지만, 2100년 전 세계 인구 중 무슬림이 35%로 기독교인보다 1% 더 많아진다. 

또한 기독교인 중 사하라 사막 남쪽의 아프리카인의 비중은 2010년 24%에서 2050년 38%로 높아진다. 반면, 20세기 초반 세계 기독교 인구의 과반을 차지했던 유럽인의 비중은 2010년 26%로 떨어진 데 이어, 2050년에는 16%까지 하락한다. 호주, 프랑스, 영국에서 기독교인의 비율이 50% 아래로 떨어질 전망이다. 반면 무슬림이 절반 이상인 나라는 2010년 49개국에서 2050년 51개국으로 늘어난다. 

유럽에서 무슬림 인구 비중은 2010년 5.9%에서 2050년 10.2%로 예상된다. 이런 속도로 간다면 몇 백 년 안에 유럽도 무슬림이 다수가 된다. 더구나 기독교인이 압도적인 유럽과 미국에서 무종교인이 다른 지역보다 빨리 늘게 된다. 그나마 미국인의 기독교인 비율이 2010년 78%에서 2050년 66% 수준을 유지하나 인구학적으로 보면 유색인종 기독교인의 증가에 따라 이 정도 수준을 유지하게 된다. 

기독교는 개종인구에 있어서도 무슬림을 따라 잡을 수 없다. 무슬림은 자신의 종교에 대한 충성심이 높기 때문에 기독교인으로 개종하는 경우가 드문 반면, 기독교인은 그 반대이기 때문이다. 2010년부터 2050년 사이에 전 세계에 걸쳐 약 4천만 명이 기독교로 종교를 바꾸는 반면, 1억600만 명이 기독교를 떠날 것으로 예상됐다. 

기독교의 운명은 인구가 증가하는 아프리카와 무종교인이 많은 중국의 종교 판도에 따라 결정된다. 특히 무슬림과 기독교인은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에서 충돌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지역은 인구변화, 종교변화가 가장 큰 지역이지만 종족갈등 역시 심각하기 때문에 종교와 종족 문제가 얽혀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인구학적으로 본다면 백인의 패권은 불가능해지고, 기독교의 패권은 아프리카와 중국에 대한 선교에 의해 그 운명이 정해진다. 현재 조건이 유지된다면 세계는 무슬림이 지배하게 되는 셈이다. 같은 연장선에서 백인들의 출산율이 낮기 때문에 인구학적으로 백인의 지배도 종식될 것으로 보인다.



II. 팔레스타인 문제


1. 이스라엘은 왜 미국의 보배인가?


이스라엘은 중동에서 기독교와 이슬람의 충돌을 일으켜 서방이 중동에 개입할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하고 있다. 즉 이슬람제국이 건설되지 못하도록 서방이 중동의 중앙에 ‘알박기’를 함 셈이다.

유대인은 유럽에서 차별받고 있었으나 상공업의 발전으로 유대인의 지위가 높아지면서 유대인 문제가 주목받았다. 나폴레옹은 1799년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들을 위한 나라를 건국하자는 제안을 했다. 1894년 프랑스에 일어난 드레퓌스 사건으로 유대인들이 이상향 건설을 염원하게 됐다. 오스트리아 태생 유대인 작가 테오도어 헤르츨이 팔레스타인에 유대인들의 국가를 세운다는 기치 아래 1897년 바젤에서 제 1차 시온주의 세계 대회를 열었다. 

빅토리아 여왕과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우드로 윌슨 역시 시온주의를 지지한 적이 있다. 오스만 제국 말기 팔레스타인 인구 50만 명 중 유대인들은 2만 명에 불과했다. 러시아 제국에서 포그롬(유대인 박해)이 일어나자 유대계 러시아인들 소수가 이스라엘로 귀화하면서 첫 알리야(가나안으로의 귀환)가 시작되었다.

1차 대전 중 중동을 점령한 영국의 처칠은 남시리아 지역을 요르단을 기준으로 분할하였는데 그 서쪽 지역이 오늘날 팔레스타인이다. 그런데 영국은 1915년 맥마흔 선언을 통해 이 지역을 아랍인에게 돌려줄 것을 약속하였는데, 동시에 1917년 벨푸어 선언을 통해 유대인들이 이 지역에서 국가를 건설하도록 허용하는 약속을 하였다. 

1922년 팔레스타인 지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유대인은 약 8만 명으로 무슬림의 1/7에 불과하였으나 점자 유대인의 이민이 증가하였다. 2차 대전 직후 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날 때까지 이 지역에서 아랍인의 반란이 자주 발생하였다. 영국은 이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유대인을 2만 명 이상의 하가나(Hahagana)라는 방위조직으로 무장시켜주었다. 따라서 아랍인과 유대인 간에 무력충돌이 발생하였다. 

1947년 유엔은 이 지역을 아랍인 지역, 중간지대, 유대인 지역으로 분할하였으나 아랍인들이 반발하였다. 유엔의 결정 이후 전 세계의 유대인들이 시온주의에 근거하여 팔레스타인 지역에 공동체 사회를 건설하려고 몰려들었다. 홀로코스트가 세상에 알려진 후 반유대주의는 약화되었는데,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건국과정에서 이를 적극 활용하였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과 이로 인한 팔레스타인 문제로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이라크 등 5개국 아랍 연합군과 이스라엘 간에 벌어졌다. 미국은 전쟁 초반에 유대인의 정착촌이 소비에트와 유사하다고 보아 이스라엘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지 않았다. 오히려 소련이 이스라엘을 반영국 국가로 만들 수 있다는 희망에서 체코를 통해 이스라엘에 무기를 지원하였다. 초기에는 이스라엘이 고전하였으나 스웨덴의 중재가 있는 동안 미국이 입장을 바꿔 이스라엘에 무기를 지원함으로써 전세가 역전되었다. 

1956년 제2차 중동전쟁은 수에즈운하를 지배하려는 영국과 프랑스의 사주를 받은 이스라엘이 이집트의 수에즈운하를 점령하면서 시작되었다. 이스라엘은 프랑스에게 핵무기 기술을 전수받는 대가를 얻었다. 이어 영국과 프랑스가 이집트를 침공하였지만 미국이 이집트의 편을 들면서 중재하였다. 수에즈 전쟁 이후 영국과 프랑스는 외교적으로 미국에 종속됐다. 1979년 이스라엘과 이집트가 국교를 정상화함으로써 수에즈 운하에 대한 이집트의 소유권은 확립되었다.

제3차 중동전쟁 중인 1967년 6월 8일 미 해군 6함대 소속 정보수집함 리버티호가 이집트 연안 공해상에서 1시간 이상 이스라엘 전투기의 폭격과 어뢰정의 공격을 받고 침몰, 34명이 죽고 172명이 다쳤다. 비행기로 10분 거리에 있는 항공모함 사라토가호와 아메리카호가 이스라엘의 전투기와 함정에 보복공격을 하려고 하였으나 존슨 대통령이 중단 명령을 내렸다. 1977년 비밀 해제된 CIA보고서에 따르면 다이얀 이스라엘 국방장관이 다른 장군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리버티호를 침몰시키라고 명령하였다. 미국 선박임을 알고 공격을 거부하였던 이스라엘 전투기 조종사는 명령불복종으로 구금되었다.

이 사건은 미국이 이스라엘을 얼마나 중시하는지 잘 보여주었다. 미국은 우방국인 이스라엘과의 전쟁을 원하지 않았다. 또한 그 당시 미국은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수출 금지를 해제할 예정이었는데, 미국 정부는 이 사건으로 무기 수출이 무산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카터 대통령 시절에 미국과 유가족에게 600만 달러를 보상하기로 합의하였다. 

사다트 대통령은 1973년 시리아 등 아랍국들과 연합군을 구성하여 이스라엘이 점령한 시나이 반도와 골란 고원을 침공하여 4차 중동전쟁이 발생하였다. 초기에 이스라엘이 밀렸지만 미국이 포위된 이스라엘을 도우면서 전세는 역전되었다. 소련은 이집트를 지원하였다. 미국은 봉쇄된 이스라엘을 위해 5,000번이 넘는 항공운송 작전을 폈다. 이스라엘군이 수에즈 운하까지 점령하려고 하자, 미소는 직접적인 전쟁 위기에 직면하였다. 전면전을 우려한 미소가 유엔을 통해 중재안을 관철시켜 전쟁은 중단되었다.



2. 팔레스타인 문제


팔레스타인은 요르단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로 구성됐다. 1848년 이스라엘 독립전쟁 직후 아랍연맹에 의해 팔레스타인 정부가 수립됐으나 1967년 6일 전쟁 당시 이스라엘은 서안 지구 및 가자 지구를 병합했다. 1988년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의 야세르 아라파트가 알제에서 팔레스타인국의 수립을 선포했다. 팔레스타인 해방기구 안에는 아라파트가 주도한 파타(팔레스타인 민족해방운동)와 하마스 등 여러 정당과 단체들이 있다. 아라파트 이후 하마스가 PLO에서 다수파가 됐다.

1993년 오슬로 협정(Oslo Accords)에 따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는 5년 내 팔레스타인 국가를 수립하기로 양측이 합의했다. 1995년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가 극우파에 의해 암살되고 1996년 하마스의 자살폭탄 공격이 발생하면서 추가적인 이행협상이 진행되지 못했다. 1996년 이스라엘 총선에서 베냐민 네타냐후가 총리로 당선되면서 미국의 압력에 의해서 평화협정에 서명하였으며, 이 때문에 그는 총리직을 사임하게 된다. 2009년 네타냐후가 다시 총리로 복귀하며, 평화협정 이행을 사실상 거부했다. 

2012년 11월 29일, 유엔 총회는 팔레스타인의 지위를 표결권 없는 옵서버 `단체(entity)'에서 옵서버 `국가(state)'로 격상하는 결의안을 표결에 부쳐 통과시켰다. 2024년 4월 19일 유엔에서 알제리에 의해 '옵서버 국가' 지위에 있는 팔레스타인에 대해, 정식 회원국 가입을 권고하는 결의안이 안보리에 제출돼 이사국 15개국 중 일본을 포함한 12개국이 찬성했으나 영국과 스위스가 기권하고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해 부결됐다. 미국은 헤즈볼라뿐만 아니라 하마스에 대해서도 테러조직으로 규정해 제재하고 있다. 미국은 유엔이 결정한 2개의 국가방안을 형식적으로 지지하고 있을 뿐이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우위가 확보된 이후 2개의 국가안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 미국의 태도 변화가 없는 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할 가능성이 없다. 

팔레스타인은 현재 유엔 회원국 136개국으로부터 승인받았다. 팔레스타인국은 대통령과 수상의 이원집정부를 채택하고 있다. 2005년 대통령선거에서 파타당 후보가 67%를 얻으며 압승했다. 하지만 2006년 총선에서 하마스당이 44%를 얻으며 파타당을 3% 차이로 승리했으며, 특히 가자지구에서 압승했다.

파타는 2개 국가안을 찬성하는 온건파로서 정교분리의 세속주의 노선이다. 반면 하마스는 수니파 이슬람주의 및 민족주의 정당이자자 준군사조직이다. 하마스는 양국안에 반대하고 이스라엘을 축출하고자 하며 이슬람국가로서 정교일치를 주장한다. 하마스는 1987년 결성돼 이스라엘에 대한 무장투쟁을 전개한 결과 여론의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PLO와 이스라엘은 206년 총선을 무효로 선언했고 팔레스타인 국가가 파타가 지배하는 서안지구와 하마스가 지배하는 가자지구로 분단됐다. 분단 이후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에 대해서는 정착촌을 철수시키고 장벽을 설치해 봉쇄했다. 이후 무력충돌이 계속되고 있다. 



3. 가자 전쟁의 배경과 제5차 중동전쟁가능성


하마스 특공대 500여명이 공중침투해 이스라엘의 방벽을 무력화하였으며 인질 220명을 가자지구로 압송했다. 이스라엘이 공식 발표한 하마스의 공격으로 사망자는 1200명이며 민간인이 대부분이다. 하마스는 지금까지 가장 큰 피해를 주면서 이스라엘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다. 하마스는 상비군 2만, 예비군 2만 수준이다. 이스라엘은 예비군까지 35만명을 동원했다. 2024년 1월 말 기준으로 개전 이후 팔레스타인은 2만8천여명이 사망했으며 이스라엘 군인이 219명 사망했다. 4차 중동전쟁에서 2600명의 이스라엘 군인들이 사망했다. 

가자 전쟁의 근원은 미국의 중동지배전략과 그에 기생하는 이스라엘 때문이다. 현상적인 배경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고사 작전에 대한 저항, 미국 - 이스라엘 - 파타 등 지배질서에 대한 도전과 하마스 위상 강화, 이스라엘 감옥에 갇혀 있는 5천5백명의 팔레스타인 정치범(아동 수감자 113명 포함)과 인질의 교환 등이다. 

미국이 주도하여 2020년 에이브람 협정을 통해 이스라엘이 아랍에미리트(UAE) 및 바레인과 외교관계 정상화를 위한 협정에 서명했으며, 사우디아라비아와도  같은 협정을 추진 중이다. 이스라엘이 중동국가와 관계정상화를 하면 이란, 하마스가 더 외교적으로 고립되므로 중동에서 반이스라엘 전선을 재구축해야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미국이 강경 대응할 수 없고 미국과 대립 중인 러시아와 중국의 측면 지원을 기대한 부분도 있다. 

전쟁이 확전된 것은 현재 이스라엘의 파시스트이자, 시온니스트 네타냐후 정권이 사법부를 탄압함으로서 사상 최대의 반정부집회로 실각할 우려가 높자 내부 단결을 위해 강경책을 쓰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의회 120석 중 네타냐후 집권당은 32석에 불과하여 극우정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여론은 초기 하마스 응징을 지지했으나 인질 석방이 늦어지고, 팔레스타인 측 피해가 커지면서 국제사회의 비난이 거세지자 기습공격을 막지 못한 정부의 책임을 규탄하고 전쟁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이스라엘 정부는 정권유지를 위해 전쟁을 유지할 필요가 있으나 국내외 여론과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국과의 경쟁에 주력하고자 하는 미국의 반대로 중강도의 전쟁을 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보복 수준이 아닌 하마스 섬멸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적군과 민간인이 섞여 있을 때 적으로 간주해 공급할 수 있도록 교전규칙을 완화시켰다. 하마스는 가자지구에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집권세력이며, 이슬람 근본주의와 반 이스라엘 정서를 토대를 한다. 따라서 하마스 근절은 이스라엘이 실현할 수 없는 목적이다. 극우파들은 가자지구의 마지막 하마스 근거지인 라파지역을 공격하길 원한다. 

확전은 서안지구, 레바논, 이란, 타 중동국가로 나눠 볼 수 있다. 가자전쟁은 비국가단체인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전쟁으로 시작됐고 역시 비국가단체인 레바논의 헤즈볼라와의 전쟁으로 확대됐다. 헤즈볼라는 레바논 정규군을 능가하는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의회 30석 중 11석을 차지하고 있다.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이란은 드론 185기, 순항미사일 36시, 지대지미사일 110기를 동원해 이스라엘을 공습했다. 이란은 탄도미사일을 3천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2천 킬로가 넘는 사거리로 인해 중동전역을 사정권으로 하고 있다. 이란은 친이란 무장세력에게 드론과 미사일을 제공하고 있으며, 러시아 및 중국과 합법적인 미사일 부품 및 기술 거래를 하고 있다. 이란과 이스라엘이 서로 본토를 공격함에 따라 중동에서 그림자 전쟁, 대리전쟁에서 국가 간 전쟁으로 비화됐으나 양측 모두 확전하지 않고 있다.

이란은 경제 제재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고 장기적으로 핵개발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지금 당장 이스라엘과 전면전을 할 생각이 없다. 다만 레바논와 시리아, 예맨의 친이란 무장단체를 통해 이스라엘과 대리전쟁을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이란이 서방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기 위해 직접 혹은 예멘의 무장단체를 통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면 유가 폭등이 예상된다. 

서안지구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가자지구에서 전쟁이 발발한 뒤 여러 차례 파업에 나선 바 있다. 4월 21일 총파업으로 서안지구 내 상점과 은행, 학교 등이 문을 닫고 대중교통 운행도 전면 중단됐다. 이스라엘 정부는 1993년 오슬로 협정에 따라 서안지구 점령지 반환과 이스라엘군 철수를 약속했지만, 그 이후에도 ‘이스라엘 정착민 보호’를 명분으로 군대를 철수하지 않았다. 2000년대 중반부터는 정착촌을 잇는 8m 높이의 콘크리트 분리 장벽을 세워 불법적으로 자국 영토를 확장해 왔다. 서안지구 내 유대인 정착촌 건설은 국제법 위반이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2016년 이스라엘에 정착촌 건설을 중단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네타냐후는 정착촌을 확대, 서안지구 내 유대인 인구는 50만명을 넘어섰다. 서안지구의 팔레스타인 인구는 270만명이다. 이타마르 벤그비르 이스라엘 국가안보부 장관 등 내각 내 극우 인사들은 서안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을 몰아내야 한다고 주장하며 유대인 정착민들을 무장시키는 등 폭력을 부추기고 있다. 

이스라엘 인질의 다수는 이중국적자이므로 각국은 가자전쟁의 당사자이다. 각국은 코로나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피로감이 높기 때문에 가자전쟁이 멈추길 바라고 있다. 서방은 일단 우크라이나 전쟁에 집중해서 러시아에 타격을 주고자 한다. 

이집트와 시리아가 최근 4차 중동전쟁의 주역이다. 하지만 이집트는 이스라엘과 1979년 평화조약을 맺고 공식적인 외교관계에 있다. 하마스나 헤즈볼라 모두 테러집단으로 규정돼 있어 이들을 지원하기 힘들다. 시리아는 오랜 내전으로 인해 이스라엘과 전쟁을 수행하기 힘들다. 중동 이슬람 국가들은 전쟁에 소극적이나 이에 반발하는 반정부 시위가 격화되면 이스라엘에 대해 강경책을 쓸 수 있다. 따라서 중동국가들은 난처한 상황에 빠지지 않도록 미국과 함께 전쟁을 중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4. 가자전쟁과 세계대전의 위험


세계대전은 동맹국들 간의 전쟁이다. 미국은 유럽의 나토 아시아에서 쿼드 등 군사동맹을 강화하고 있으며 양자를 결합시키고 있다. 반면 러시아, 중국, 북, 이란 등은 서로 동병상련과 협력을 확대하나 낮은 수준의 반미전선에 불과하고 동맹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또한 세계대전은 복수의 지역 전선을 필요로 하는데, 우크라이나 전쟁, 가자 전쟁은 이미 진행형이고, 대만과 코리아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의 작전계획에 따르면 대만과 북 등 적국 인접에서 치러지는 군사훈련은 저강도전쟁이다. 경제제재와 봉쇄 역시 저강도 전쟁이다.

미국은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와 대리전쟁을 치루고 있고, 중국, 북, 이란과는 경제전쟁과 대만 저강도 전쟁을 치르고 있다. 가자 전쟁의 본질 역시 이슬람 세력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기독교 세력의 대리전쟁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세계는 이미 저강도 세계전쟁에 돌입했으며, 대만과 코리아반도에서 냉전이 열전으로 돌변한다면 제3차 대전의 위험성도 존재한다. 다만 핵무기 존재와 상호의존성의 세계체제를 볼 때 미중러의 전면적인 열전의 가능성은 낮다고 볼 수 있다. 미중러의 전면전의 가능성이 낮다고 해도 코리아반도와 대만에서 열전이 발생할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미국 본토에서 전면전이 일어날 가능성과 코리아반도에서 전면전이 일어날 가능성은 비교조차 할 수 없다. 전쟁의 가능성은 단 1%라도 통제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코리아반도에서 군사적 대립은 매우 높은 전쟁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⓹ 뉴라이트 정치세력의 형성과 몰락

한국과 미국의 신구 극우 비교


김장민(정치경제학연구소 프닉스 연구위원)


뉴라이트전국연합은 2005년 창립선언문에서 연이은 좌파의 집권을 지적하면서 "우파는 지난 60년간 성과를 좌파에게 강탈당한 채 침묵해야 하는가?"라고 탄식했다. 실제로 노무현 정부시절부터 뉴라이트 인사들이 보수정권 출범을 위해 보수정당에 적극적으로 결합했다. 


김영삼 정부 시절 정책기획수석을 지낸 박세일 전 서울대 교수는 노무현 정부 초대 총리를 제안 받았으나 햇볕정책에 반발하여 한나라당에 영입돼 여의도연구소 소장과 정책위 의장을 역임했다. 박세일은 세종시 행정수도 추진에 반발하며 의원직을 사직했다. 박세일은 2012년 총선에서 국민생각당 대표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뉴라이트전국연합 창립을 주도한 김진홍 목사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동갑내기 친구이다. 2007년 12월 25일 자 <중앙일보> 기사 '이명박이란 대통령감 있어 2년 전 뉴라이트 운동 시작'에 따르면 뉴라이트전국연합이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 프로젝트의 일환이었음을 알 수 있고 김진홍 스스로 이를 시인했다. 


뉴라이트전국연합은 이명박 후보에 대한 지지선언을 했다. 뉴라이트전국연합의 제성호 공동상임대표는 외교통상부 인권대사, 이석연 변호사는 법제처장, 박영모 조직국장과 한오섭 기획실장은 청와대 행정관이 됐다. 장제원 부산연합 공동대표 등은 2012년 총선에서 당선됐다. 뉴라이트전국연합은 이명박  당선이라는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자 이렇다 할 활동을 하지 않았으며, 특히 2008년 금융위기로 신자유주의가 퇴조하자 뉴라이트전국연합의 친기업적인 노선도 대중에게 외면당했다.



이명박, 박근혜 당선 이후 조직 목표가 애매해져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은 노사모를 흉내 내면서 박근혜 의원이 한나라당 대표로 선출되던 2004년 3월 정광용 전직 CF 감독 겸 광고회사 사장에 의해 생겼다. 박사모는 처음부터 팬클럽보다는 정치조직의 성격을 지녔으며 2008년 총선 때 이재오, 이방호 등 친이명박계 '5적 낙선운동'을 벌여 4명을 낙선시켰다. 2008년 총선에서 한나라당 공천을 받지 못한 친박연대 소속 14명이 당선됐다. 2008년 6월 3일 박사모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집회에 가세했다.


2011년 4월 박사모 7주년 창립기념식에 한나라당 전·현직 최고위원 등 6천여 명이 참석했다. 박사모는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전국은 물론 해외지부까지 구성하고 선거운동에 참여했다. 하지만 박사모 역시 박근혜 당선이라는 목적을 달성한 후 쇠퇴해졌다. 특히 박사모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다수가 흩어지고 나머지는 탄핵에 반발하면서 과격한 행태를 보였다. 



박근혜 탄핵 이후 대규모 과격시위로 외면당해


여당인 새누리당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대한 입장 차이로 분당한 끝에 자유한국당으로 이름을 바꿨다. 이에 정광용 등 친박세력들이 새누리당 당명을 사용했다. 자유한국당을 탈당한 조원진 의원이 새누리당 대선 후보로 확정됐다. 새누리당 당권을 장악한 정광용의 친박사모계는 대선 이후 조원진을 제명했다. 조원진 의원 등이 탈당해 대한애국당을 창당하자 새누리당은 원외 정당이 되었다. 정광용은 2017년 12월 폭력집회 혐의로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으나 3개월 뒤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홍문종 의원은 대한애국당에 결합했다가 탈당하여 친박신당을 창당했으나 2020년 총선에서 원외정당이 됐다. 조원진의 대한애국당은 우리공화당으로 개명한 후 김문수와 함께 자유공화당을 창당했다가 김문수가 이탈하자 우리공화당으로 당명을 환원했다. 우리공화당은 2020년 총선에서 지역구 후보 41명, 비례대표 후보 15명이 출마하였으나 전원 낙선하여 원외정당이 되었다. 2022년 지방선거에서 기초의원도 당선시키지 못했다. 


정리하면 뉴라이트 정치세력은 이명박, 박근혜가 당선되자 조직목표가 애매해져 쇠퇴했으며,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사회적 영향력을 상실했다. 2020년 총선에서 이들이 만든 새누리당, 친박신당, 우리공화당 모두 양당제의 벽을 넘지 못하고 몰락했다.

북조선의 평화통일 폐기 이후 남한의 통일운동

I. 서론 : 남북 통일운동의 관계에 있어 문제점



외국에서 같은 민족 혹은 인접국 사이에 어떻게 평화공존과 자유교류가 정착됐는지 살펴본다. 

한반도에서 평화통일과 평화공존을 실현하는 조건이 다른지 살펴본다.

북조선이 평화통일 노선을 폐기한 것이 일시적 전술인지 돌이키기 힘든 전략인지 살펴본다. 

동독, 북조선과 같이 분단된 사회주의 국가에서 민족 개념의 변화에 따른 통일 노선의 변화에 대해 살펴본다. 

북조선과 달리 남한이 평화통일 노선을 폐기했다가 필요하면 다시 채택하는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는지 살펴본다. 

북조선과 구별되는 남한 사회의 독자적인 정치 경제 사회적 조건에 따라 북조선과 차별화되는 구체적인 평화공존 혹은 통일운동의 방향에 대해 알아본다. 



II. 평화통일은 전술인가


1. 평화통일과 평화공존의 해외사례


유럽은 민족과 국가형성 과정에 수많은 전쟁을 거쳤다. 1648년 베스트팔렌조약으로 오늘날 유럽의 민족과 국가가 대부분 형성되는 평화체제를 구축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1866년 전쟁 이후 서로 분리돼 평화조약을 체결하였으며 히틀러가 오스트리아를 병합한 적이 있었지만 2차 대전 이후 평화공존하고 있다. 오늘날 유럽연합이 하나의 공동체로 나아가니 민족통일이란 문제가 나올 수 없다. 


미국은 1775년 독립전쟁 당시 캐나다에게 “영국의 식민지가 아니라 미국과 통합된 아메리카 제국을 건설하자.”고 하면서 통일전쟁을 도발했다. 미국은 1812년 영국과 전쟁을 하면서 캐나다를 침공하는 등 캐나다 병합을 포기하지 않았다. 미국과 영국의 식민지 캐나다는 1846년 오리건 평화조약을 통해 전쟁상태를 끝내고 상호 체제를 존중하기로 했다. 하지만 미국과 캐나다 사이에 국경 분쟁이 이어지고 그때마다 미국은 캐나다 병합의 의지를 포기하지 않았다. 


미국은 1859년부터 12년 동안 샌환제도(San Juan Islands)에서 영국군과 대치한 끝에 결국 이 지역을 병합시켰다. 남북전쟁이 끝난 직후 1866년 아일랜드계 퇴역군인을 중심으로 결성된 페니언형제단 3천여 명이 미군 군복을 입고 영국령 캐나다를 침공하였고 미국 정부는 이들을 사실상 지원했다. 결국 영국이 1867년 캐나다를 독립시키면서 미국에게 침략명분을 주지 않았다. 이후 미국과 캐나다는 평화공존과 자유왕래를 정착시켰다.



2. 한반도에서 남북 2개 국가 평화공존의 허구성


남북이 가야할 길은 하나의 민족으로서 평화 통일이 되거나 각각 존재하면서 평화공존과 자유교류를 실현하는 것이다. 남북의 무장상태와 북미의 핵무기를 고려하면 전쟁에 의한 통일은 실현가능한 선택이 아니다. 전쟁은 논외인 것이다. 통일반대론자들은 같은 민족인 게르만족은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 여러 나라로 분리돼 평화롭고 유럽연합 이후 국경도 사라져 게르만족이 살아가는데 불편이 없으니 남북이 굳이 통일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미국과 캐나다가 같은 영어권이 민족 성분도 비슷한데 통일되지 않고 불편 없이 잘 살고 있다고 주장한다. 


한반도가 분단된 것은 일제의 식민지정책과 미소의 분할 통치 때문이다. 그리고 한반도에서 평화와 평화통일이 실현되지 못하는 이유는 남북이 서로 다른 체제이므로 상대방을 흡수하려는 체제경쟁을 한다는 점, 미국이 한미동맹과 한미연합사령부 및 유엔사령부를 통해 남한을 지배하면서 중러를 견제하는 군사기지로 삼고자 전쟁을 종결하는 평화협정(조약)을 거부하고 한반도에서 군사긴장과 분단을 고착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과 일본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도 통일국가의 불투명한 위상 때문에 분단 상태에서 전면전이 발생하지 않는 현재의 한반도 상태를 선호한다. 특히 미국이 군사긴장과 분단정책을 포기한다면 남북은 이미 다른 체제이지만 상호간의 존중과 공존을 약속했기 때문에 체제의 이질성으로 인한 불안요소를 극복할 수 있다. 체제이질성은 미국의 군사지배정책이 폐기된다면 점차 극복할 수 있는 부분이다. 정도가 다를 뿐 북 역시 외부의 위협이 없다면 중국 및 베트남의 사례에서 보듯이 유연한 체제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1950년 시작된 전쟁을 종식시키고, 군사적 대결을 강요하는 미국의 정책을 폐기하지 않는 한 통일은 물론 평화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통일할 필요 없이 남북이 평화롭게 살면 된다는 주장은 현 상태에서 불가능하다. 남북 2개 국가가 평화공존을 하려면 종전조약을 통해 상호 체제를 인정하는 외교관계를 수립하여 전쟁의지를 포기하고 육지의 군사분계선과 해상의 북방한계선 대신 국경을 확정해야 한다. 


미국, 중국, 북조선의 군대사령관이 전쟁을 일시적으로 중단시키는 정전협정을 정전 3개월 안에 국가 간의 종전조약을 협상하도록 했으나 이행되지 못했다. 1954년 제네바회담에서 소련, 중국, 북조선은 종전조약을 제안했지만 미국의 국무장관인 존 포스터 덜레스가 협상을 거부했다. 남한은 북조선을 타도해야 할 불법정부로 규정했으며 미국은 소련이 북조선을 괴뢰국가로 만들고자 한다며 한국의 입장을 지지했다. 이후에도 미국은 평화협정(조약)을 체결하기 위한 협상을 거부해오고 있다. 


결국 남북 간의 평화통일을 달성하던지 평화공존을 달성하던지 두 경우 모두 체제이질성과 군사대결을 극복해야 가능한 것인데 미국이 이를 반대하고 있다. 즉 평화통일의 조건과 평화공존의 조건이 동일하므로 이 조건이 성사되지 않는 한 둘 다 불가능하다. 결국 평화공조 운동과 평화통일 운동의 구체적인 경로는 전쟁종식, 상호체제 인정과 불가침 선언 등 동일하다. 이러한 평화가 구축돼야 이후 평화공존을 하던지 나아가 평화통일 논의를 하던지 가능한 것이다. 



III. 북조선의 평화통일 포기는 전략인가?


1. 동서독의 사례


독일공산당은 분단 직후 미군 철수, 평화협정 체결, 미국 주도 유럽동맹 반대, 저항권과 선거를 통한 친미정부 전복을 주장했다. 또한 독일공산당은 동독을 통일국가의 표본으로 삼았고 자유선거를 통해 이를 선택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공산당은 동독 집권당이 주도하는 민족전선(Volksfront)에 가입했다.


독일공산당은 통일이 된 이후에도 당분간은 의회주의적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존속할 것이며, 이 문제는 자유선거를 통해 선출된 전 독일을 위한 국회의원들이 결정할 사항이라고 봤다. 독일공산당은 자신의 집권 혹은 통일국가의 정부에 있어 연립정부의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브란트 수상은 지붕역할을 하는 형식적인 전체국가 아래 동서독이 실질적인 국가로서 존재한다고 봤다. 반면 동독의 울브라히트 수상은 독일국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양독은 별개의 국가라는 1민족 2국가를 주장했으며, 이런 입장을 반영하여 68년 헌법은 통일의 방식으로서 국가연합을 상정하였다. 나아가 호네커는 사회주의민족개념을 도입하여 2민족2국가로서 헌법의 통일조항을 폐기했다. 


브란트 수상은 동방정책을 추진하여 1970년 8월 12일 소련과 불가침조약을 맺었으며, 12월 7일에는 폴란드와 불가침조약을 체결하여 오데르 나이쎄선 국경을 인정하였다. 또한 1972년 11월 9일 기본조약의 가조인의 국제적 난관을 없애기 위해 전승 4대국 회의를 열게 하였다. 이 회의에서 4대국은 “4대국의 전 독일에 대한 권리와 책임은 동서독의 기본조약체결과 유엔동시가입 이후에도 존속하며, 제2차 세계대전의 전승국과 독일 사이에 평화조약이 성립될 때까지 독일과 서베를린에 관한 처리는 유보된다.”고 선언하였다.


1972년 ‘양 독일 관계의 기초에 관한 조약’(기본조약)은 양독 상호간의 독립과 주권을 인정하여 실질적인 1민족 2국가 인정하였다. 73년 양독은 유엔에 동시에 가입했으며, 이후 양독 사이에 17개의 조약이 체결되었다. 또한 교류가 급증하여 82년까지 3만명의 동독인이 서독을 이주하였다. 


1989년 가을 소련이 독일통일에 대해 무력행사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하였다. 1990년 1월 양독과 4대국이 회의를 열어 양독의 자결권을 인정하였다. 이들 외무장관들은 2월 13일 오타와 외무장관 회담에서 통일조약을 승인하고 통일독일의 주권을 보장하는 대신 나토의 잔류를 합의하였다. 


1990년 5월 18일 동독의 3월 18일 총선결과에 힘입어 제 1차 국가조약인  ‘화폐 경제 사회동맹을 창설하는 조약’이 체결되었다. 이에 따라 동독의 경제헌법이 실효되고 서독의 사회적 시장경제제도가 도입되었다. 또한 양독 마르크를 1대 1로 교환했으나, 결과적으로 서독의 상품이 동독에 범람하고 동독의 물가가 상승하는 부작용이 발생하였다. 8월 3일 양독의 연방의회 구성을 준비하기 위한 선거조약이 성립됐으며, 8월 23일 동독 인민의회회의는 기본법 23조에 따라 서독에 편입하는 것을 의결하였다. 


8월 31일 제2차 국가조약인 ‘독일통일달성에 대한 독일연방공화국과 독일민주공화국간의 통일조약’이 체결돼 동독헌법은 실효되고 서독의 독일민주공화국으로 흡수되는 통일이 완성되었다. 통일조약은 기본법 개정의 효력이 있어 기본법 개정의 절차에 따랐다. 9월 12일에는 2+4 국가들간에 ‘독일과 관련한 종결규정에 관한 조약’이 체결됐으며 이는 현 영토 확인과 무력포기, 대량살상무기 포기, 34만5천 병력유지, 소련 철군 등을 포함하였다.



2. 북조선의 평화통일 노선 후퇴


북의 입장변화는 2024년이 아니라 그 전에 핵무기를 완성해 가는 과정에서 형성돼 왔다. 미국에 의해 강제되는 전쟁상황을 근본적으로 전환하기 위해 핵 무력과 경제건설이라는 병용노선을 채택했다. 노동당 중앙위 전원회의는 2013년 3월 새로운 국가전략인 '핵·경제 병진노선'을 채택했다. 5년 후 2018년 4월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병진노선의 성공을 선언하고 '사회주의경제건설'을 새로운 전략으로 채택했다. 즉 핵무장으로 안보 문제를 해결한 상태에서 인민들의 삶 문제에 주력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내부 전략에 따라 대남전략, 대미전략도 수정됐다. 2021년 노동당 규약에 따르면 조선로동당은 남조선에서 미제의 침략무력을 철거시키고 미국의 정치군사적 지배를 청산하며 강력한 국방력으로 군사적 위협들을 제압하여 조국의 평화통일과 민족의 공동번영을 이룩하기 위하여 투쟁한다. 2010년 규약에 있던 “일본군국주의의 재침책동을 짓 부시며 사회의 민주화 생존의 권리를 위한 남조선인민들의 투쟁을 적극적으로 지지성원하며” 부분이 삭제됐다. 


또 ‘우리 민족끼리’라는 표현을 삭제하고 ‘강력한 국방력으로 평화통일을 앞당기겠다’는 표현을 추가했다. 북이 핵무기경제건설병진노선에 따라 핵무기 개발을 완료하고 실전에 배치함으로서 미국과의 전쟁공포에서 벗어나는 것은 물론 핵무기를 지렛대로 삼아 주한미군철수 나아가 통일까지 북미협상으로 이뤄내겠다는 의지를 보인 셈이다. 이와 함께 2021년에는 외무성 산하 조국통일국이 폐지됐으며, 노동당 통일전선부가 대남사업을 중단함으로서 민경련과 민화협도 폐지되고 6·15공동위와 아태평화위만 겨우 명맥을 유지하게 됐다. 


북조선의 태도변화는 통일문제보다는 미국과 핵 대결을 통해 안보문제를 풀고 내부 건설에 주력하겠다는 의지라고 볼 수 있다. 월간조선(2021.08)에 따르면 조선노동당의 규약에서 “민족해방민주주의”와 “남조선인민들의 투쟁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 부분이 삭제된 것에 대해 이종석과 정세현 두 통일부 장관,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연구센터장은 북이 대남혁명을 포기했다고 평가했다. 


2024년 초 북조선의 입장변화는 남한과 더 이상 평화통일 논의를 하지 않겠다는 점, 2개 국가로서 서로 교전국의 지위를 갖는다는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23년 12월 31일 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9차 전원회의에서 남북 관계를 동족이 아닌 ‘적대적이고 교전 중인 두 국가 관계’로 규정했으며, 지난 1월 열린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을 통해서는 “헌법에 있는 ‘자주’, ‘평화통일’, ‘민족 대단결’이라는 표현들이 이제는 삭제돼야 한다고 본다”고 말한 바 있다. 북은 이런 입장변화에 따라 남한에 대해 대한민국, 한국이라는 국호를 공식으로 사용했다. 호칭변화는 남한의 자주계열도 그래도 답습했다.


이날 회의는 '당중앙위원회 통일전선부를 비롯한 대남사업 부문의 기구들을 정리, 개편하기 위한 대책을 세우며 근본적으로 투쟁원칙과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실제로 북조선은 1월 12일 6.15공동선언실천 북측위원회, 조국통일범민족련합 북측본부, 민족화해협의회, 단군민족통일협의회 등 평화통일 담당기구를 정리했다. 노동당 통일전선부는 주요 기능을 외무성과 군 정찰총국으로 이관하는 등 축소 개편되고 있다. 2024년 1월 15일 제14차 최고인민회의 제10차 회의에서 조선조국평화통일위원회, 민족경제협력국, 금강산국제관광청 등 국가가 담당하는 통일 및 교류 기관을 폐지하기로 했다. 조국전선도 폐지하기로 했다. 



3. 사회주의민족 개념과 통일 노선의 변화


민족은 동질성과 동등성을 기반으로 한다. 동질성에 포함되는 것은 신체구조와 언어 같은 인종적 특성, 문화와 경제의 공동체, 동일한 지역기반 등이다. 유대인처럼 각지에 흩어져 있더라도 이스라엘과 같은 하나의 조국 혹은 가나안 지역처럼 하나의 향토를 가질 수 있다. 동등성은 민족공동체 안에서 무차별적인 형제애, 자매애로서 평등성이며 주로 신분적 평등, 형식적 평등을 의미한다. 


유럽의 경우 영토, 주권, 국민이라는 동질성은 근대 부르주아 형성기인 절대왕정시대에 형성됐다. 동등성은 부르주아 국가 시기에 국민의 개념과 함께 확립됐다. 한국, 일본과 같은 농경정주국가의 경우 동질성의 역사는 고대국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동등성은 유럽과 마찬가지로 근대 부르주아 국가 시기에 완성됐다. 중세시기에는 신분에 따라 언어와 법률이 다르고 신분적 종속관계가 남아 있어 민족공동체 내에 형식적 평등이 존재하지 않았다. 


자본주의 민족개념이 신분적 차별을 철폐했지만 경제적 차별은 수용하고 있다. 계급대립이 소멸된 사회주의국가에서 민족개념을 새롭게 정립했다. 중국은 한민족이 다른 민족을 지배하는 과거의 민족개념에서 중국사회주의 국가 내 구성원 전부를 중국사회주의민족에 포함시키는 새로운 민족개념을 정립하고자 한다. 중국은 고구려 등 한반도 북부 및 만주의 역사를 중국 역사에 포함시키는 동북공정을 비롯하여 중국 변방의 역사와 소수민족을 중국의 역사와 중국사회주의민족에 포함시키는 다양한 공정사업을 해오고 있다. 동독의 경우 서독이 통일정책으로 압박해 오자, 동독은 사회주의민족이므로 서독과 민족이 달라 1민족1국가 논쟁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즉 통일이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북은 김일성 주석 사망 당시부터 북을 김일성 민족, 혹은 태양민족이라고 호칭하고 있다. 북이 아직까지는 남북을 포함한 한민족 혹은 조선민족을 김일성 민족, 태양민족으로 호칭하고 있으나 만약 남을 김일성민족 태양민족에서 제외한다면 남북은 민족이 다르므로 통일이 아니라 2개의 국가로 남아야 한다. 


2024년 1월 15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 따르면 조선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에는 북조선은 대한민국을 완전히 점령, 평정, 수복하고 공화국령역에 편입시킨다. 즉 남북이 별개의 국가이므로 통일전쟁이 아니지만 북조선이 남한을 흡수하니 사실상 통일이 되는 것이다. 


또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이 연설에서 새 헌법 조문에 북반부, 자주와 평화통일 및 민족대단결 등 남북을 동족으로 오인하는 표현을 삭제할 것을 주문했다. 북조선은 특히 이 연설 직후 1월 중에 '조국통일3대헌장' 기념탑을 철거했다. '조국통일3대헌장'은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 7.4남북공동성명의 조국통일3대원칙(1972), 고려민주연방공화국 통일방안(1980), 전민족대단결 10대강령을 묶은 '민족공동의 통일강령'(1997) 등을 내용으로 한다. 



IV. 남한 통일운동의 운명


1. 남한 사회와 통일운동의 상대적 독자성 


남북합의서에 따르면 남북은 하나의 민족으로서 통일로 가는 과도기에서 각자 남북에 실질적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특수한 관계이다. 남북은 과거에 하나였고 미래에도 하나가 돼야 하지만 이질적인 체제 아래 80여 년을 따로 살아왔다. 남북은 한민족이라는 울타리에 속해 있지만 그 울타리 안에서 남북의 조건은 다르다. 남북은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구조로 다르고 계급구성도 다르므로 사회모순과 과제 및 해결방법도 다르다. 당연히 남북이 평화공존 혹은 평화통일로 나아가야 하나 그 경로와 방법이 동일할 수 없다. 따라서 북조선이 제기하는 과제는 북조선의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므로 북조선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을지언정, 북조선의 과제와 해결방법을 그대로 남한에 적용할 수 없다. 따라서 평화공존과 평화통일의 공동의 목적이 동일하더라도 북조선의 주장을 그대로 남한에서 적용할 수 없는 것이고, 남한은 남한의 상황을 반영한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북조선은 수령 중심의 당과 인민의 일체를 강조한다. 따라서 각종 법률과 헌법은 물론 조선노동당 강령까지 조직적 논의를 통해 상황에 맞게 일사불란하게 조정한다. 집단주의 사회로서 의사결정과 조직행동의 유연성을 발휘하고 있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미래에 세계정세와 남북미 정세의 변화에 따라 남북통일과 남북미 관계에 대해 급격한 입장변화를 취할 수 있다. 


하지만 남한은 각 조직과 개인의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기 때문에 남한 전체가 하나의 조직처럼 의사결정과 조직행동을 일사불란하게 할 수 없다. 노선과 정책을 정하는 것도 어렵고 그것을 수정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북이 정세에 따라 평화통일정책을 취했다가 폐기하고 다시 취할 수 있지만 남한이 평화통일노선을 폐기한다면 다시 채택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설사 그런 결정을 일부 단체들이 한다고 해도 그 결정을 대다수가 따르기 어렵고 조직행동도 갑자기 변화되기 어렵다. 


남한이 평화통일노선과 조직을 폐기한 후 정세 변화가 생길 때 역량 손실 없이 과거의 평화통일 역량을 회복할 수 없다. 기존의 평화통일단체를 갑자기 해산하고 다른 대안단체를 만든다면 대다수의 동의를 얻기 힘들고 과거의 동력을 새로운 대안단체나 대안운동으로 손실 없이 가져가기도 어렵다. 따라서 남한의 평화통일단체는 북과 달리 평화통일노선의 폐기에 대해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2. 통일운동단체의 발전적 해체


북조선이 평화통일 논의를 중단한다는 것은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목표로 하는 민족공동위원회로 발전할 수 있는 각종 남북해외의 협의체를 해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6.15남측위원회가 1월 31일 총회를 통해 운동방향과 조직의 변화를 확인하고 올 상반기 내에 새로운 연대조직을 내오기로 했다. 6.15공동선언실천 해외측위원회는 3월 12일 임시위원장회의를 열고 조직을 해산하고 각 지역, 단체마다 특성을 살려 반미, 반일, 반윤석열 투쟁을 전개해나가기로 했다.


범민련 남측본부는 2월 17일 총회에서 해산을 결정하고 한국자주화운동연합(가칭·자주연합)을 결성해 사업을 계승하기로 했다.  4월 26일 범민련 해산 당시 선임된 '새조직 건설을 위한 수임기구' 4명의 준비위원들이 '반미·반제'를 기본 과제로 하는 새로운 전국적 운동조직 건설에 대해 단체 참가자들에게 공식 제안하는 간담회를 열었다. 

북이 교전상태임을 확인함에 따라 당분간 종전을 위한 평화협정 논의도 중단되기 때문에 남한의 평화협정운동본부는 미군철수운동본부로 개칭됐다. 



3. 자주화 운동의 내용과 목적 그에 따른 자주전선 구축


1) 자주화 운동의 내용과 목적


인민대중의 자주란 노동자민중의 계급적 억압으로부터의 해방과 전 계급적인 전 계층적인 민족의 외세로부터 해방과 민족해방의 귀결로서 민족통일국가의 수립이다. 발전된 자본주의 분단국가로서 남한에서 인민대중의 자주란 조직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노동자민중의 자본주의 변혁이며, 역시 조직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노동자민중의 평화통일의 실현이다. 


최근의 입장변화는 평화통일을 평화공존으로 대체할 수 있냐의 문제이다. 북조선의 최근 입장은 남북이 별개의 국가로서 평화공존을 해야 하나 적대적인 교전관계에 있다는 것이고 원하지 않는 전쟁이 발생하면 남한을 정복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북의 입장 변화가 남한의 평화통일운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남한의 평화통일운동단체들은 그 명칭과 목적에서 통일을 빼고 평화공존과 평화통일을 가로막는 장애들을 철거하는 자주화운동을 전면으로 내세울 전망이다. 그 핵심은 미국의 한반도 지배정책과 군사긴장 정책, 구체적으로는 한미동맹과 한미일 군사공조에 대한 반대, 주한미군철수운동이다. 구호로서는 온건한 반전평화와 급진적인 반미반제이다. 온건한 반전평화 관점에서는 북미평화협정이 중요한 경로가 되지만 반미반제의 경우 북의 핵 역량을 강조하면서 힘에 의한 미국 등 제국주의 세력의 축출을 주장하면서 상대적으로 협상을 전제로 하는 평화협정 목소리를 약화될 것으로 보인다. 


자본주의 사회변혁과 반미를 중심으로 한 반제국주의 투쟁의 관점에서 무조건 모든 전쟁에 반대하고 이유 불문하고 평화를 절대선으로 내세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점에서 과거 대부분의 자주계열은 “반전평화 슬로건이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남한에서 반전평화 슬로건은 실천적으로 반미반제로 귀결되고 대중적인 포섭력이 반미반제보다 강하기 때문에 일부 자주계열이 이러한 온건한 슬로건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문제는 반미반제이든 반전평화이든 이러한 자주화 자체가 한반도에서 노동자민중의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노동자민중의 궁극적인인 목적은 낮은 차원에서 남북의 평화공존, 공동번영이고 높은 차원에선 평화통일이다. 따라서 자주화란 남북의 공존, 번영, 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경로이자 중간 목적이라고 볼 수 있다. 



2) 자주전선으로서 대중투쟁전선과 정치전선


첫째 자주화를 실현하기 위한 노동자민중 투쟁전선이 구축될 전망이다. 주로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준비해 오던 남북해외로 구성된 평화통일단체들이 발전적인 해체를 하고 새로운 자주전선을 형성하는 것이다. 


둘째 민주주의와 자주화를 실현하기 위한 대중 투쟁전선이 재정비될 전망이다. 평화통일 노선의 위상 변화와 새로운 노동자민중 중심의 자주적인 투쟁전선이 형성됨에 따라 이를 포용할 수 있도록 주체와 요구 측면에서 좀 더 포괄적인 대중 투쟁전선을 정비하고 확대하는 것이다. 민중연대, 진보연대, 민중공동행동 등 갈수록 유명무실해진 상설적인 투쟁공동체가 활성화되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 


셋째는 과거 민주노동당처럼 노동자민중의 자주적 권력을 창출하기 위한 진보적 정치전선을 구축해야 한다. 다만 대중적 진보정당으로서 민주노동당이 정파연합당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교훈에 비춰 단일정당보다는 연합정당 형태로 시도될 것으로 보인다. 연합정당이라도 원내 정당으로서 구심정당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과거 원내 진보정당인 정의당이 하지 못했던 구심 역할을 새로운 원내 진보정당인 진보당이 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진보당은 민주주의와 자주를 내걸고 민주당과 사안별 연대를 하면서 노동과 자주를 기반으로 하는 정치노선을 강화하여 궁극적으로 진보연합정당의 주축이 돼야 한다. 진보연합정당은 과거 민주노동당처럼 “노동자민중을 중심 주체로 삼아 우리사회의 자주와 평등을 실현하겠다.”는 목표를 분명히 해야 한다. 진보연합정당은 후기자본주의 사회와 저출산고령화사회의 다양한 계층의 요구도 반영해야 하지만 자주와 평등이라는 기조를 중심에 두어야 한다. 


진보당은 정의당 괴멸 이후 원내에서 진보정치의 대표주자로서 역할을 자임하던지 민주당과의 밀월관계를 강화하여 제도적 기득권을 구축하는 갈림길에 있다. 진보당의 우경화는 인천연합이 통합진보당을 집단 탈당하여 자유주의 세력과 원칙 없는 혼성정당을 만들고 의회정치로의 몰입 끝에 노선적으로 파탄나고 조직적으로 붕괴되는 전철을 밟을 수 있다. 


진보당이 3석을 얻은 것은 스스로의 노력은 기본이지만 노동자민중의 투쟁과 지원의 성과이다. 2012년 촛불집회 이후 반이명박전선의 요구가 전면적인 야권연대로 나타났고 2024년 총선에서 박근혜 탄핵 이후 듣보잡 윤석열의 집권과 이에 대한 저항이 야권연대로의 요구와 표심으로 나타났다. 2020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진보당과 비례연합정당을 반대했다. 


2027년 대선에서 민주당이 승리할 경우 2028년 총선에서 여당인 민주당은 국정개혁에 힘을 실어야 한다는 명분으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약화시키거나 위성정당을 통해 의석을 독점할 수 있다. 민주당에 의존하는 원내 진출 전술이 위험하다는 것이다. 즉 노동자민중의 단결된 지지를 기반으로 원내에서 독자적인 기반을 확대해야 한다. 


진보당이 원내에서 자리 잡으려면 우선적으로 과거 권영길, 노회찬, 심상정 의원의 사례처럼 민중의 호민관으로서 의정활동의 모범을 보여줘야 한다. 기본소득당의 용해인 의원은 이런 측면에서 어느 정도 호평을 얻고 있다. 스타 정치인만으로는 부족하므로 울산과 창원 등 노동자밀집지역에서 독자적으로 당선돼야 하고 선택적 야권연대를 통해 의석을 확대해야 한다. 또한 국회 내에서 자유주의 정당과 사안별 연대를 하는 조건으로 원내교섭단체 기준을 낮추고, 정당명부 의석을 확대하고, 정당명부 결합제도와 대통령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는 등 노동자민중의 정치적 자주권 실현에 도움 되는 정치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VI. 결론 : 남한 통일운동의 방향


남북의 평화공존을 당면한 과제로 삼아 궁극적으로 평화통일을 이뤄 남북이 모두 공동 번영하는 것은 여전히 노동자민중의 이상이다. 노동자민중이 이러한 전 인민적 요구를 지도적 지위에서 대중투쟁과 진보정치를 통해 관철해 나갈 때 자신의 계급적 해방과 자본주의 변혁도 실현할 수 있다. 


적대적인 국제정세의 변화와 북조선의 핵무장 완성으로 인해 북조선이 탄력적으로 평화통일 노선을 일시 후퇴시켰다. 남한의 경우 북조선과 같이 노선과 조직을 신속하게 유연하게 변화시킬 수 없다는 점에서 평화통일 노선의 성급한 폐기는 적절하지 않다. 


각 단체의 조건에 따라 낮게는 평화공존, 높게는 평화통일의 목적을 여전히 분명히 해야 한다. 또한 각 단체의 조건에 맞게 반전평화 혹은 반미반제로 슬로건을 조정하되 서로 연대하여 민주주의와 자주화를 실현하려는 폭넓은 대중투쟁 전선을 공동으로 구축하고, 노동자 민중이 주체되는 자주와 평등을 실현하려는 대중적인 진보정치 전선 즉 진보연합정당 건설에 나서야 한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남북해외의 3차 협의체의 재편과 이러한 재편 과정에서 역동성을 기반으로 하는 폭 넓은 상설투쟁체의 확대강화, 진보연합정당을 건설하기 위한 진보당의 원내 독자 기반 구축이 중요하다. 

⓸ 좌파에서 시작한 뉴라이트, 전 분야로 확산

좌파지식인의 우파 개종이 뉴라이트 대중화 선도


극우지식인은 냉전시대의 보수 지식인, 이재오와 김문수와 같은 반공좌파, 김영환, 황장엽과 같은 전향한 주사파들로 구성돼 있다. 김대중 정권 당시 뉴라이트 지식인이 과거 우익독재시대와 달리 떳떳하게 공론의 장에 나왔다. 극우지식인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는 보수로 전향한 죄파지식인에 의해 열렸다. 이들이 우파로 전향한 배경은 선진국 진입에 따른 북에 대한 압도적 경제력, 친미사회로의 심화에 따른 숙명론적 대미관, 북의 3대 권력승계에 대한 대중적 반감 등 한국사회의 변화이다. 이들은 우경화된 진화론적 지식인들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들의 개종은 극우지식인이 과감해지는데 일조했다. 


안병직은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하면서 뉴라이트재단 이사장, 시대정신 이사장, 자유한국당 여의도연구원 이사장을 역임했다. 김동길은 조갑제와 순회연설을 하였으며 이승만 광장에서 열린 극우집회에 참석하여 전광훈 목사와 함께 연설을 했다. 김지하는 박근혜를 지지했고 이문열은 윤석열을 지지했다. 이들은 친미반공이며, 미국숙명론을 수용하고 이승만과 박정희에 대한 재평가를 주장했다. 뉴라이트 지식인들은 대중들의 인기를 얻고 있다. 공병호 교수의 「10년후, 한국」이라는 저서는 50만 부 이상 팔렸다. 


2001년 4월 40-50대 교수들이 주도하여 ‘비전@한국’이 창설됐고 이 단체가 2002년 3월  ‘바른 사회를 위한 시민회의’로 확대됐다. 김성기 변호사, 송복 연세대교수, 봉두완 전 앵커, 김태련 한국어린이육영회 회장 등 다양한 인사들이 공동대표로 참여했다. 


2004년 11월 신지오 박사는 「자유주의연대」를 발족시켰다. 신지호는 인천과 울산 등지에서 노회찬 의원 등과 노동운동을 하다가 사회주의 붕괴를 목격한 후 우파로 전향했다. 자유주의연대는 기관지 「뉴라이트」를 발간하고 청년 우파를 교육하는 뉴라이트 리더스 아카데미를 운영했으며, 과거 운동권의  「북한바로알기 운동」를 반박하는 「신북한 바로알기 캠페인」을 펼치기도 했다.


「자유주의연대」의 집행위원장을 맡은 홍진표는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정책실장도 겸임했다. 그는 서울대 정치학과 출신으로 총학생회 사무국장,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부장, 조국통일범민족연합 간사, 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 조직국장 등을 역임한 속칭 주사파 출신이지만 “북의 인권 상황에 분노한다.”면서 우파로 전향했다. 역시 「자유주의연대」에 참여하고 있는 최홍재는 고려대 총학생회장과 한총련 조국통일위원회 정책실장, 전국연합 자주통일위원회 부장 등을 거쳤으며 북 인권 문제를 비판하는 「시대정신」 편집위원을 맡았다. 


연합체 형태로 시작해 각 분야별 단체로 발전해


「뉴라이트 전국연합」이 2005년 6월 김진홍 목사의 주도로 발족한 이후 2007년 대선 직전에 회원을 17만 명으로 늘렸다. 전국연합은 전국 시·군·구에 200여 개 조직을 건설했고, 종교·교사·기업인·문화체육·노동·의사·학부모·대학생 등 17개 부문조직도 만들었다. 김진홍 목사는 박정희 시대에 활빈교회를 세우고 반정부 투쟁을 했다가 긴급조치 1호 위반으로 투옥된 적이 있지만 이제는 전광훈 목사를 지지한다. 역시 공동대표인 류석춘 연세대학교 교수는 2019년 9월 수업 때 일본군 성노예를 매춘부에 비교했다. '아베 수상님'에 대해 사죄하는 마음을 갖고 살아가는 주옥순 대한민국엄마부대 대표도 이 단체의 조직위원장으로 활동했다. 뉴라이트재단은 전국연합 출범 7개월 뒤인 2006년 6월에 등장했다.


뉴라이트 언론들은 “좌파 인터넷매체에 대항한다.”는 목표 아래 2005년 6월 「한국인터넷언론협회」로 결집했다. 이 협회에 「독립신문」을 비롯해 「프런티어타임스」, 「뉴스앤피플」, 「코나스」, 「미래한국신문」, 「코리아리뷰」 등이 참여했다. 2000년 민주참여네티즌연대라는 보수우익단체를 만들고 인공기 화형식을 주도한 신혜식이 독립신문을 만들었다. 독립신문은 조갑제, 김동길, 지만원, 이철승의 극우정신 계승을 내걸고 있으며. 미국대사관과 함께 영어교육 프로그램 YES를 운영했다. 미국대사 부인이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9.11 테러 등 정치문제를 다루기도 했다. 


2005년 상반기에 정진영 경희대교수가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에 대항하기 위해 가칭 「자유주의 교수연대」를 추진했는데, 7월 중등학교 교사까지 참여하는 「자유주의 교육운동연합」으로 확대됐다. 이들은 전교조에 대항하여 고교 평준화정책과 소위 「3不 정책」,(본고사 반대, 기여입학제 반대, 고교등급제 금지)에 반대했다. 이들은 교총조차 「수구적」이라고 비판했다.


「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은 1997년 한국논단이 주최한 대선 후보 사상 검증 토론회가 계기가 돼 정기승 전 대법관이 주도하여 발족됐다. 2004년 행정수도 이전 위헌판결을 이끌어 낸 이석연 변호사는 참여연대 운영위원을 맡는 등 다소 진보적인 성향을 보인 적도 있었으나 보수법조인들을 모아 헌법포럼을 발족시켰다. 나아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에 대항하고자 2005년 1월 130여명의 변호사와 함께 「시민과 함께 하는 변호사들」를 결성했다. 


우파들의 역사관을 정통으로 만드는 작업은 성공적


2005년 1월 박효종 서울대 교수, 차상철 충남대교수가 “고교 근·현대사 교과서들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편향된 역사인식을 심어 준다.”고 주장하면서 교과서포럼을 창립했다. 12명의 운영위원에 안병직 서울대교수, 이성무 전 국사편찬위원장, 이동복 북한민주화포럼 대표 등이 포함돼 있다. 교과서 포럼은 현재의 교과서가 1980년대 운동권의 교과서였던 「해방전후사의 인식」과 다름없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교과서 포럼은 역사바로세우기 운동의 일환으로 각종 교과서를 분석 비판하고 우파적 견해를 제시하였으며, 실제로 다수의 교과서에 이들의 입장이 반영됐다. 우파들의 역사재편은 역사재평가 단계를 넘어 이승만 기념관, 박정희 기념관 사업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백선엽 동상 제막 등 계속 확대되고 있다. 


우익청년단체들도 결성되고 있는데, 이는 2000년대 들어 경제성장이 멈추면서 취업난이 계속되자, 청년들이 위기감을 느끼고 보수화되기 때문이다. 과거 운동권 기성세대가 각종 분야에서 주도권을 장악하면서 이들에 대한 반감이 깊어진 결과이다. 2003년 연세대 한정민 학생이 주도하여 결성된 시민과함께하는대학생연대는 조선 동아 중앙일보에 대한 언론탄압 중단, 퍼주기식 대북정책 폐기, 국가보안법 강화, 김정일 답방 반대 등을 주장했다. 


이명박 보수정권을 등에 업고 극우 돌격대가 공개 출범해


청년우파연대는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의해 사망한 여중생을 추모하는 촛불집회가 반미집회라고 비난하면서 창설됐으며, 1500여명의 회원이 가입됐다.

화형식 등 과격 시위를 주도하는 극우단체도 공개적으로 활동해왔다. 민주참여네티즌연대, 청년우파연대 등 청년 극우파들은 ‘반핵반김 국민대회 청년본부’를 결성했다. 이 단체의 행동대장은 북핵저지시민연대의 박찬성 대표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인 2009년 3월, 국민행동본부 산하에 ‘직접 행동’을 목표로 하는 ‘애국기동대’가 만들어졌다. 해병대·특전사 출신 90여 명으로 이뤄진 애국기동대는 출범식에서 “반헌법적 좌익 폭도들과 싸운다.”면서 무술시범을 보였다. 이들은 “연방제 통일을 주장하는 종북 반역 세력을 공동체의 적으로 규정하고 이들을 제거하는 일에 목숨을 바친다.” 선언했는데, ‘서북청년단 재건위’도 같은 주장을 해왔다.


민주노총은 134주년 노동절에도 탄압받는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함계남 국장의 집단괴롭힘 사태를 책임지고 해결하라!

 - 2023년 1월 : 의료연대본부 서울지역지부 내 직장 내 괴롭힘 신고함

- 2023년 1월~3월 : 녹색병원 적응장애 4주 진단. 3월 8주 진단

- 2023년 4월~6월 : 조직적인 사직강요(지부장. 사무국장, 국장, 부장. 증거1)

- 2023년 6월 : 노동청에 직장 내 괴롭힘 신고(2024년 4월 조사 중)

- 2023년 7월 : 민주노총에 직장 내 괴롭힘 신고

- 2023년 6월~7월 : 배우자 양규서 국장이 의료연대본부장 및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에게 사태 해결을 위한 면담을 요청했지만 거절 당함.

- 2023년 7월 11일~8월 25일 : 양규서 국장이 사태해결을 요구하며 공공운수노조 건물 옥탑농성을 46일 동안 진행함

- 2023년 7월 1차 보복징계 당함(감봉 2개월. 증거2)

- 2023년 9월 7일 : 옥탑농성 중단 당시 민형사상 조치 및 징계하지 않겠다는 구두 및 서면 보고에도 불구하고 양규서 국장, 함계남 국장에게 보복징계 추진(증거3)

- 2023년 9월 15일 : 함계남 양규서 국장을 지원했다는 이유로 방영환 열사가 택시지부에 징계 제소됨

- 2023년 9월 26일 : 사측의 탄압에 분신한 방영환 열사가 페이스북, 유서, 마지막 통화를 통해 공공운수노조와 택시지부의 처사를 원망함(증거4).

- 2023년 9월 27일 : 사직요구, 동료 갈등, 노조 대처 미흡 등의 사유로 함계남 국장에 대한 산재승인(증거5).

- 2023년 10월~12월 : 양규서 1차 보복징계(무급 정직 4개월). 함계남 2차 보복징계(조합원 제명)

- 2023년 11월 10일 : 민주노총이 공문을 통해 공공운수노조에 함계남 사건 조사를 진행하지 않은 것에 대해 <심히 유감>을 표하며 신속한 조사를 요구함(증거6).

2024년 1월 : 양규서 2차 징계(조합원 12개월 정권)

- 2024년 3월 : 공공운수현장활동가모임이 함계남, 양규서 국장을 제명함.

- 2024년 4월 현재 : 한여름 웃통 벗고 옥탑 농성한 양규서 3차 징계회부(성폭력). 방영환 투쟁 참여한 양규서 4차 징계(조합질서 문란)

 

함계남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지역지부 조직국장은 2019년 서울대병원 비정규직 노조인 민들레분회를 담당하던 당시, 121일간의 천막농성 끝에 614명에 대한 정규직화를 이루어 냈으며, 2020년 보라매병원 비정규직 담당자로서 120일 천막농성 투쟁을 통해 236명의 정규직 전환에 기여를 했다. 2021년에는 서울대병원 직원식당 임대업체와 체결하지 못한 임단협을 투쟁을 통해 10년만에 체결했다. 2022년에는 서울대병원 직원식당 고용승계 및 단협승계 투쟁에 있어 주말까지 집회. 밤샘 투쟁. 100여일을 아침 7시 30분부터 피켓팅하면서 11월 1일 고용승계 및 노사합의를 쟁취했다.

 

함계남 국장은 병원노조의 특성상 새벽출근, 야간근무, 주말근무를 지속적으로 하면서 정신적, 육체적 탈진상태에 도달했으나 투쟁의 성공 이후에도 시간외 노동에 시달리다 결국 양쪽 발목 산재승인을 받았다.

 

함계남 국장이 시간외 노동의 기준과 대체 휴식을 지부에 요구하자, 지부는 “활동가가 아프면 쉬어야 한다.”면서 사직을 권유했다. 지부는 이를 거부하는 함계남 국장에게 조직적으로 사직을 종용했으며, 집단따돌림을 자행했다. 함계남 국장은 직장 내 괴롭힘 신고 이후 수차례 보복징계를 당했으며, 시간외 근무를 강요하는 관행과 괴롭힘에 맞서 시간외 수당을 요구하자, 활동가가 “다른 활동가들의 명예를 훼손한다.”, “함계남이 오히려 가해자다.”고 매도했다(증거7).

 

의료연대본부의 이러한 매도는 노조를 상대로 내부투쟁을 하는 것에 불만을 가진 공공운수노조 일부 활동가와 상근자에게 확산됐다(증거8). 그 결과 함계남 국장에 대한 괴롭힘은 공공운수노조 중앙 차원으로 확대되고 함계남에 대한 가해가 정당하다는 집단적인 정서가 형성됐다. 심지어 이번 사태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활동가조직이 양규서 함계남 국장을 제명 징계했다. 그 결과 함계남, 양규서에 대한 2차 가해와 징계가 반복되었으며, 방영환 열사도 분신하면서 유언과 페이스북, 전화 등을 통해 사측의 탄압을 주로 언급했지만 자신과 양규서, 함계남의 억울함도 호소했다.

 

함계남 양규서 국장과 관련된 사태는 민주노조운동의 세대교체기, 황혼기에 나타나는 고질적인 문제들이 응축돼 곪아 터진 것이다. 조합원 수를 늘리기 위한 무리한 활동, 활동가들의 중장년화와 정신적 육체적 피로도 축적, 정파들의 집행부 장악을 위한 경쟁 심화와 자기 식구 감싸기와 같은 비상식적인 행위, 노조간부들의 ‘내로남불’식의 특권의식, 집행부의 형식적 귄위주의, 채용간부의 관료화,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집행부와 관료의 결탁, 대의원 구조를 통한 의사결정 장악, 조합원 민주주의의 실종 등이 근본원인이다.

 

현재 함계남 국장은 3차례 징계를 받았으며, 배우자 양규서 국장은 2차례 징계를 받고 추가적으로 2건의 징계가 추진 중이다. 함계남 국장은 중증우울증 진단으로 산업재해가 인정돼 치료 중이며, 양규서 국장 역시 공황장애 진단으로 치료 중이다. 이들 부부는 방영환 열사 분신이 자신들을 도와줘 징계 회부된 것과 관련이 있다는 점에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다.

 

 

1. 의료연대본부는 각종 대의기관의 결정 방식으로 함계남 국장에 대해 보복징계 등 가해행위를 계속 하고 있다. 즉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고 사태를 해결할 의지와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가해행위를 숨기고 함계남을 오히려 가해자로 모는 성명서를 발표해 왔다. 특히 우리 공공운수노조상근자노동조합 정책위원장에 대해 8가지 혐의로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으나 모두 무혐의 되고 오히려 무고죄로 수사를 받았다(증거9). 의료연대본부에 대해서는 대화할 조건이 아니라고 보고 관련된 모든 민형사상 조치를 순서대로 밟아 갈 것이다.

 

2. 이번 사태의 가해자들은 현정희, 안명자 등의 공공운수노조 전 집행부들과 의료연대본부와 택시지부다. 또한 방영환, 함계남, 양규서 국장을 징계하고 싶은 집행부를 위해 대신 징계제소, 즉 청부징계한 공공운수노조 중앙의 사무처 노동조합(분회)이다. 현재 엄길용 집행부가 직접적인 가해자가 아니지만 공공운수노조 차원에서 이번 사태에 대해 책임져야 하며, 특히 엄길용 집행부 아래에서 추가적인 보복징계가 반복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점에 대해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엄길용 집행부가 노조 내 현실적 조건을 내세우며 사태 해결에 소극적이기 때문에 추가적인 가해행위가 지속되고 있다. 향후 엄길용 집행부가 적극적인 해결방안을 내놓지 않는다면 불가피하게 엄길용 집행부에 대한 투쟁도 불사하겠다는 점을 밝힌다.

 

3.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은 공공운수노조의 일부 활동가와 간부들이 방영환 열사, 함계남, 양규서 국장에게 2차 가해를 하고 있는 점이다. 가해를 정당화하는 이들의 주장은 <징계 받을만하다>, <함계남이 가해자다>, <활동가답지 못하다>, <노조를 공격한다>, <진절머리가 나니 잠자코 있어라> 등이다. 방영환 열사, 함계남 양규서 국장에게 가해행위를 한 자들 중에서 심각한 경우 민형사상 조치를 취했으며 나머지 가해 행위자들에 대해서도 상황을 봐가며 적절한 조치를 취할 예정이다.

 

4. 민주노총 중앙은 이번 사태 발생과 무관하다. 양규서 국장이 옥탑농성을 할 때 민주노총 집행부는 양규서 국장의 가족이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도록 중집회의에서 15분간의 발언기회를 주었다. 또한 공공운수노조가 함계남 국장 사건을 신속하게 조사하도록 촉구하는 공문을 보냈다. 택시지부와 현정희 공공운수노조 집행부가 방영환 열사 투쟁을 민주노총 차원으로 확대하는 것에 소극적인 조건에서 민주노총이 방영환 열사 투쟁 초기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엄길용 집행부에 와서 적극적으로 투쟁에 참여해왔다.

 

하지만 이번 사태의 최종적인 책임은 민주노총에게 있을 수밖에 없다. 노조 내에선 공공운수노조 일이라고 변명할 수 있지만 민주노총 내 노동조합에서 일어난 일이므로 종국에는 민주노총이 조직적, 도의적 책임을 져야 한다. 민주노총은 민주노조 운동 전체의 수치스런 사건으로 비화되기 전에 사태 해결을 위해 방관자적 태도를 버리고 적극 나서야 한다.

 

지난 134년 동안 노동절은 장시간 노동과 사업장 내 인권탄압에 맞서는 투쟁의 과정이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탈진될 때까지 헌신적인 활동을 강요하고 이를 거부하면 활동가 자질이 없다고 집단따돌림조차 마다하지 않는 노동조합의 조직문화를 바꿔야 한다. 그 시작은 함계남 양규서 국장에 대한 집단괴롭힘과 보복징계를 멈추도록 민주노총이 자기 책무를 다하는 것이다.

 

 

2024년 5월 1일

 

공공택시실천단

공공운수노조상근자노동조합

미국 대학생,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았던 반전 정서, 가자전쟁에서 폭발해

김장민(정치경제학연구소 프닉스)



콜롬비아 대학에서 시작된 반전 집회 확산


미국 뉴욕주 뉴욕 시에 있는 아이비 리그 사립 대학인 컬럼비아 대학교가 전국적인 반전 대학생 집회의 발원지이다. 동부 명문 사립대학들은 유대계의 영향력을 많이 받는데, 4월 17일 네마트 샤피크 콜롬비아 대학 총장이 워싱턴에서 열린 하원 교육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하여 “우리 대학에 반유대주의가 발을 붙이지 못할 것”이라고 아부성 발언을 했다.


이에 학생들이 샤피크 총장실 근처 잔디밭에 밤사이 천막 수십 개를 설치하고 총장과 이스라엘의 학살을 규탄하는 농성을 시작했다. 다음날 18일 유대계를 의식한 총장이 교내에 진압경찰을 불러 학생 100여명을 연행하도록 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당연히 일반 학생들까지 집회에 가세해 대학의 자치와 전쟁중단을 요구했다. 


콜롬비아 대학은 베트남 전쟁 당시 1968년에도 학생들이 건물 5곳을 점거하면서 반전시위를 주도했던 곳이다. 또한 다른 대학에 비해 유대인과 아랍인 학생들이 많아 중동 문제는 항상 폭발적인 이슈로 여겨졌다. 



민주당 당세가 강한 동부에서 시작된 대학생들의 반전 집회는 서던캘리포니아 대학 등 서부의 대학뿐만 아니라 텍사스 대학처럼 공화당 당세가 강한 남부까지 전국을 휩쓸고 있다. 각 대학에서 학생들이 학내에 텐트를 치면 학교 측이 경찰을 불러 철거와 진압을 하는 콜롬비아 대학 양상이 반복되고 있다. 즉 학내에 최루탄 등으로 무장한 진압경찰, 기마경찰, 심지어 자전거경찰까지 수백명이 진입하여 학생들과 충돌하고 있어 반전정서와 무관한 대학생들까지 학교와 경찰을 비난하며 집회에 가세하고 있다. 


이런 양상은 부상자와 체포자를 양산시키고 있어 학생들이 거리로 나와 시민들까지 합세할 경우 전국적인 대규모 충돌이 확산될 수 있다. 이미 24일 기준으로 뉴욕대에서 140명, 텍사스대에서 34명, 서던캘리포니아 대학에서 50명이 체포 구금됐으며 계속해서 그 수자가 급증하고 있다.

24일 기준으로 미네소타 대학교, 하버드 대학교, 오하이오 주립 대학교,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 텍사스 대학교 오스틴, 미시간 대학교, 에머슨 칼리지, MIT, 터프츠 대학교, 예일 대학교, 뉴 스쿨, 뉴욕 대학교, 컬럼비아 대학교 등에서 반전집회가 있었으며,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반전이 대선 핵심이슈로 등장하면 베트남 전쟁처럼 미국이 양분돼


공화당은 반전 집회가 자신들의 본거지까지 확산되자 공화당 소속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이 반전집회의 진앙지인 콜롬비아 대학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주 방위군을 풀어 진압할 수 있다.”고 협박하면서 학생들과 실랑이를 벌였다. 


반면 반전운동에 동조하는 젊은층, 노조, 아랍계의 지지를 받는 바이든 대통령은 격앙된 집회를 진정시키는 한편, 이스라엘을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공화당 지지층의 반성을 촉구하고 있다. 


트럼프 역시 바이든에 맞서 반전집회를 폭동이라고 비난하면서 이스라엘에 대한 지지를 공언함으로써 공화당 지지세력을 결집시키고 있다. 이스라엘을 편드는 공화당 지지층들은 반전집회 인근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지원을 확대할 것을 요구하는 맞불집회를 열고 있어 양측의 대립이 전국적으로 확산될 조짐이다.



포스트 코로나 이후에도 계속되는 인플레이션, 고금리, 전쟁에 불만 터져


이번 대학생들의 폭발적인 반전 집회는 경제난과 관련이 있다. 시민들은 코로나의 고통에서 벗어나 밝은 미래를 희망했지만 이어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물가난을 겪었다. 이어 고금리 충격이 수년째 계속되고 있다. 미국이 완만하게 성장한다고 하지만 인플레, 고금리로 서민들은 어려운데, 미국 정부와 의회는 엄청난 재정을 우크라이나 전쟁에 쏟고 있다. 


이미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피로감이 높은데, 가자전쟁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재정지원도 폭증하자, 민심이 요동치기 시작한 것이다. 다만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에 대한 대리전쟁이므로 애국심에 호소할 수 있었다. 문제는 이스라엘에 대한 지원은 그동안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탄압 문제로 민심의 동의를 얻을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우크라이나 전쟁부터 잠복해 있던 반전정서가 이스라엘의 민간인 학살에 자극받아 젊은층에서 폭발한 것이다. 



자기 앞날이 컴컴한 한국의 대학생들에게 반전 집회가 호사


한국은 남북관계, 북미관계가 악화되면서 그 어느 때보다 전쟁의 위험이 높아졌다. 한반도에서 연일 한미일은 북을 겨냥해 핵전쟁 연습을 하고 북도 이에 대항해 핵미사일 타격 시험을 하고 있다. 윤석열 정권은 자기 땅에서 전쟁의 가능성이 높아지는데, 미국의 압력에 굴복해 우크라이나에 포탄 등 살상무기를 지원하고 있다. 한국의 군산복합체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폴란드 등 동유럽에 엄청난 무기 수출을 하며 거의 로또 맞은 상태이다. 


반면 한국의 서민들은 전쟁가능성, 물가난, 고금리 와중에도 민생보다는 미국의 압력에 끌려 다니는 윤석열 정권으로 인해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윤석열 정권은 중국이 북을 지원해준다는 핑계로 미국의 중국 포위정책에 가담하고, 러시아에 적대적인 정책을 펴면서 중국 및 러시아와의 경제관계를 악화시키고 있다.


대부분의 사회에서 대학생들은 비교적 부조리에 제일 먼저 맞서는 계층이다. 진리탐구와 양심에 민감한 반면, 직접 경제활동을 하지 않기 때문에 특정한 계급의 이해를 대변하지 않고 비교적 일반 시민의 이해관계를 위해 행동에 나서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의 대학생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사회 문제에 둔감해져 있다. 대부분이 일자녀 가정 출신으로 부모의 과보호 속에 자랐지만 저출산고령화 사회의 희생자로서 암울한 미래, 고액의 등록금, 졸업 이후에도 이어지는 취업 준비, 취업난을 뚫는다고 해도 대부분의 비정규직과 저임금 구조 등으로 한국의 대학생들은 자기코가 석자이다. 자기 살기도 힘드니 민생고나 반전에 관심을 갖고 집회를 할 여력이 없다는 것이 그들의 변명이라고 볼 수 있다.

외국인노동자(건설현장, 범죄율, 해외사례, 노조의 대응)

 1. 들어가는 글


자본가와 자본권력이 이주노동자를 정주노동자의 지위를 위협하는데 활용하는 것은 오래된 역사적 사실이다. 이주노동자를 정주노동자의 임금인상이나 파업을 방해하는 수단으로 활용해왔다. 노동 강도가 심하거나 사회적 편견이 심하거나 생산성이 낮은 사양산업에서 저임금구조를 가능케 하는 것도 이주노동자들이다. 특히 불법체류노동자는 스스로 인권보호를 주장할 수 없어 악질자본의 먹이감이 돼어 정주노동자를 견제하는데 악용되고 있다. 


따라서 이주노동자와 경쟁하고 있는 정주노동자들이 이주노동자를 곱게 보지 않는 것은 잘못된 노동시장구조 아래에선 자연스런 현상이다. 영국의 노동조합이 폴란드의 이주노동자 때문에 골치가 아팠는데, 마르크스의 국제노동자협회 즉 제1 인터내셔널 창립에 도움을 준 이유 중 하나가 이주노동자 문제를 국제적으로 해결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2. 8개의 기획기사를 낸 KBS [팩트체크K] 핵심 요약


외국인노동자는 2020년대 85만명 내외이며, 전체 노동자 중 3%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단 미등록 외국인노동자 즉 불법체류자가 2023년 기준으로 42만명 수준이므로 이들까지 합치면 외국인노동자의 비율은 4.5% 수준이다. 외국인노동자들이 주로 일하는 분야는 경쟁력이 부족한 저임금 사업장이 대부분이다. 이들 분야에는 내국인노동자가 취업을 꺼려한다는 점에서 보면 전체 산업 일반에서 외국인 노동자가 국내 노동자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은 아니다. 영세사업장을 제외한 정규직노동자, 공공서비스, 대리운전처럼 내국인을 선호하는 직종에선 외국인노동자를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식당 아르바이트와 같이 내국인노동자도 취업하는 일부 직종에선 내국인노동자는 이주노동자에 대해 경쟁의식이 생길 수 있다. 또한 건설분야의 외국인 노동자의 비율은 12.4%로 다른 분야에 비해 월등히 높다. 건설업에서 내국인 노동자가 고령화되면서 젊은 외국인 노동자가 고강도 노동이 필요한 핵심 분야를 담당하고 있다. 이 분야에서 외국인 노동자가 팀장을 맡아 일정 부분 채용, 근로조건 협상 등 인력관리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 외국인 노동자가 없다면 건설업을 유지하기 힘든 정도이니 건설현장을 장악한 것은 사실이다. 특히 건설 분야에서 외국인 노동자 중 90%가 불법체류자이다. 


독일, 일본, 캐나다는 내국인 보호를 위해 내외국인 차등 최저임금제를 폐지했다. 튀르키예와 러시아는 일부 업종에 대해선  임금이 낮은 외국인에게 내국인 일자리가 뺏기는 걸 보호하기 위해 외국인의 최저임금을 오히려 내국인보다 높게 보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헌법상 국적을 이유로 임금차별을 할 수 없다. 


지난 10년(2011~2020)간 외국인의 10만 명당 범죄자 검거 인원지수는 내국인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외국인의 인구 10만 명당 범죄자 검거 인원지수를 범죄유형별로 뜯어보면 성폭력·폭력·절도 등 대부분 범죄유형에선 모두 내국인 범죄가 훨씬 높았다. 


하지만 '강도'는 내국인과 비슷하거나 높은 수준을 보였는데, '살인'은 분석 기간(2011~2020) 내내 내국인보다 2배 이상 높았다. 불법체류자의 경우 특별히 범죄율이 높은 것은 아니나 무면허운전 검거자가 많았다. 특히 내·외국인을 포함한 국내 마약범죄 피의자에서 불체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2018년 이후 7.6%로 급격하게 증가했다.


2018년부터 2021년까지 경기도 5대 범죄로 검거된 전체 외국인 비율이 평균 3.7%였지만 안산시 단원구는 12.7%, 시흥시가 6.3%였다. 서울은 전체 평균이 4% 수준이었는데 구로구가 14.8%, 영등포구는 11.5%였다. 이들 지역에 사는 내국인들은 상대적으로 외국인 범죄 비율이 높다고 체감할 수 있다. 


독일에서 보듯이 인구구조로 인한 노동력 부족 문제는 이주노동자 문제가 아니라 이주민 문제 즉 정주방식으로 풀어야 임금차별, 내국인 보호 등의 문제가 해결된다. 즉 이방인이 아니라 사회구성원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동력만 수입하여 쓰다가 방출하는 것이 아니라 국내에 장기적으로 이주하도록 가족이민을 받아들이거나 장기체류 혹은 귀화의 문호를 넓혀야 한다. 불법체류자를 양산하는 엄격한 외국인 노동자 제도를 바꿔 외국인 노동자를 우리사회의 성원으로 수용하도록 해야 한다.



3. 민주노조의 대응방안


노동조합이 설사 불법체류 노동자라고 해도 이들 자체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을 취한다면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이들에 대한 차별에 묵인 방조하는 것이며, 자본의 노노 갈등에 이용당하는 것이다. 더구나 심각한 저출산고령화사회에서 매우 근시안적이며, 폐쇄적인 태도이다. 


노동조합은 국내노동자와 외국인노동자를 경쟁시키는 노동정책과 사회재생산정책을 변화시키는 운동을 통해 외국인노동자에게 즉흥적으로 반감을 지니는 조합원들의 시각을 개선할 수 있다. 나아가 외국인노동자를 조합원으로 받아들이도록 하는 동의를 얻을 수 있다. 내외국인노동자가 하나의 노동조합을 구성하여 단일한 단체교섭에 나선다면 내국인은 일자리와 좋은 임금을 지킬 수 있고 사업장에서 필요하다면 동일한 조건에서 외국인을 고용하므로 국적차별 문제도 생기지 않는다.


노조는 조합원이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올바른 관점을 지닐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금속노조는 20여 년전부터 조직 규약을 고쳐 이주노동자를 가입 대상에 포함시켰고, 간부의 일정 비율을 이들에게 할당하게 해두었다. 이주노동자들의 노조 가입은 이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전기가 될 뿐 아니라, 노동조합의 교섭력을 키우는 데도 큰 구실을 할 수 있다. 


금속노조는 2007년부터 소속 사업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전면적인 실태조사를 하고 있는데 금속노조의 노력으로 내국인 노동자의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적 시각이 점차 개선되고 있다. 2023년 금속노조 보고서에서 조선업종 노조 간부 126명을 대상으로 이주노동자 고용 확대에 노조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질문한 결과 “이주노동자 총 고용규모를 제한해야 한다”는 응답(17.8퍼센트)은 “안전한 작업환경 조성”(27.1퍼센트), “이주노동자 동일노동 동일임금 주장”(20.4퍼센트)에 이어 세 번째였다.(복수응답)


금속노조 삼우정밀 지회는 2007년부터 이주노동자를 적극적으로 조합원으로 가입시켰다. 당시 이 회사의 한국인 조합원은 41명에 불과했다. 그런데, 사원 모두 입사하면서 바로 노조원이 되는 ‘유니언숍’을 지난 7월 도입해 이주노동자 22명을 조합원으로 가입시켰다. 그 뒤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크게 개선됐고 고용도 안정됐다. 전사원이 조합원이 되면서, 조합의 교섭력은 매우 커졌다. 이주노동자와 내국인노동자 모두 불만이 없는 편이다.



4. 정책방안 


이주노동자, 불법체류노동자의 노동권 보호, 임금차별 금지 등 인권보호는 인류의 보편가치이고 헌법상 요구이다. 하지만 자본은 국경이 없는데, 자본권력은 노동에 국경을 만들어 놓고 차별적인 이주노동자 제도로 노동계급을 분열시키고 비열한 추가 이윤을 얻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비록 일부이지만 국내노동자가 불이익을 보고 있다. 또한 불안정한 외국인노동자 제도가 외국인 노동자의 정주를 방해하고 불안정한 외국인노동자의 생활조건 때문에 국내인의 시각도 좋지 않다. 


일단 국내노동력이 충분한데, 국내노동자를 차별하기 위한 외국인노동자 정책은 허용돼선 안 된다. 국내외 자본이 초과이윤을 얻기 위한 악랄한 착취수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방법은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임금차별 등 잘못된 제도를 폐지하여 자본들이 외국인노동자를 굳이 선호할 필요가 없게 만드는 것이다.


국내노동력이 부족하다면 이는 인구구조 문제이므로 외국인 노동자를 쓰고 방출하는 악순환을 확대하는 노동력 문제로 접근해선 안 되고 사회재생산 구조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노동자만 단기 체류하는 방식이 아니라 이민, 가족이주, 불법체류자의 단계적 합법화 등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정주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단기 체류하는 독거 외국인 노동자는 생활비를 줄여, 본국의 가족을 부양하려는 경우가 많아 내국인노동자보다 저임금을 받아도 취업을 선호한다. 본국 가족의 생활비가 국내의 저임금에 비교하더라도 매우 낮기 때문이다. 특히 단기 체류하는 젊은 독거 노동자는 국내인이든 외국인이든 지역사회에 통합되지 못하고 범죄율도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외국인노동자 혹은 그 가족이 정주하면 그들이 사회에 통합되고 정착되면 노동력재생산 비용이 내국인과 비슷해져 내국인에 비해 낮은 임금을 수용하려는 경향이 줄어든다. 외국인노동자에게 내국인과 동일한 대우를 해야 한다면 사업주는 반드시 필요한 경우만 외국인노동자를 고용하게 될 것이다. 


불법체류노동자를 환영할 수는 없고 이들에 대한 차별을 방치할 수도 없다. 불법체류 노동자를 차별적으로 대우하는 사업주를 엄벌한다면 불법체류 노동자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 것이다. 불법체류 노동자를 강제 출국시키는 것보다 중한 범죄자가 아니라면 사회에 정상적으로 정주하도록 지원하는 것이 인권정책이나 한국의 사회재생산 정책에 부합한다. 





2024년 총선 평가 - 표심이 윤석열 탄핵은 아니지만 혐오 수준

윤석열 정권의 참패원인은?

임기초반의 윤석열 정권에 대한 혐오 수준의 민심을 보여주었다. 이번 선거는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힘을 실어주었던 윤석열 정권에 대한 심판의 성격을 지닌다. 처음부터 여소야대는 필연적이었고 그 정도만 문제가 되는 선거였다. 그럼에도 단순한 패배가 아니라 참패 수준이다. 

보수진영이 차별화된 아젠다를 제시하지 못하고 지도자 실종, 지지세력 분열 등 2017년 박근혜 탄핵의 여파를 극복하지 못했다. 탄핵으로 보수세력은 극우와 보수로 분열됐고 보수도 유승민 등 신보수와 구보수로 분열됐다. 2017년 5월 대선 4자구도에서 문재인 후보는 41%를 얻었으며, 홍준표와 유승민은 24%, 6.7% 합 30.7%를 얻었다. 안철수는 21%를 얻었다. 탄핵 직후 2018년 지방선거에서 경북 대구를 제외하면 14개 광역단체장이 민주당에게 돌아갔다. 2020년 총선에서 보수세력은 103석을 차지했다. 

윤석열과 한동훈은 위기에 처한 보수진영의 땜방에 불과하다. 양자 모두 듣보잡 검찰 출신으로서 검찰 정권에 대한 피로도가 높은 상태이다. 이태원 참사는 박근혜 때 세월호 참사와 닮아 임기초반부터 민심이반이 컸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물가인상, 고금리로 인한 경제난은 문재인 정권 때 아파트 가격 폭등보다 더 고통을 주고 있다. 경제난이 윤석열 정권의 직접 책임은 아니지만 대응에 있어 무능한 면을 보여주었다. 대북 문제에 전혀 대응하지 못하고 미국과 일본에 끌려 다니는 윤석열 정권의 외교안보 노선으로 국민적 자존심도 많이 상한 상태이다. 윤석열에 대해 민심이 떠난 조건에서 김건희, 채상병 사건 등은 때리고 싶은 민심에게 돌을 준 격이라고 볼 수 있다. 구조적인 부분이 더 크다는 것이다. 


보수진영이 붕괴됐나?

의석수로 보면 임기 말의 박근혜보다 더 안 좋은 성적표를 받았다. 2016년 총선에서 집권당인 보수세력은 122석을 얻었고 안철수 국민의당은 38석을 얻었다. 탄핵 이후 첫 총선인 2020년 총선을 제외하면 보수세력이 가장 패배한 선거이다. 특히 집권당의 지위에서 가장 패배한 선거이다. 지금까지 의석이 273석이던 2000년 총선에서 집권당인 새천년민주당이 115석을 차지한 것이 집권당의 최악의 성적표이다. 

하지만 보수세력이 붕괴한 수준은 아니다. 정당 득표율로 보면 국민의힘은 이번 선거에서 37%를 얻었다. 반면 탄핵 직전 2016년 총선의 3자구도에서 새누리당은 33%를 얻었다. 탄핵 직후 2018년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의 광역의원 정당명부 득표율은 27.76%, 민주당은 51.42%를 얻었다. 정의당이 8.97%, 바른미래당이 7.81%를 얻었다. 2020년 총선에서 미래통합당 역시 33%를 얻었다. 

사상 최악의 2020년 선거보다 의석이 오히려 7석이 늘었다. 특히 보수의 핵심층은 견고하다는 것을 확인해주었다. 서울과 부산, 경남에서 상대적으로 선전했다. 국민의힘은 서울에서 2020년 8석보다 더 많은 11석을 얻었다. 2016년 총선에서 민주당은 35석, 새누리당이 12석, 국민의당은 2석을 가져갔다. 분당, 강남, 서초 등 부자동네의 계급투표가 고착화되고 인근의 용산, 마포갑, 동작을까지 보수로 넘어갔다. 부자동네가 한강라인인 마포 용산 성동으로 확대되면 이후 보수화가 우려된다. 국민의힘은 도봉갑에서 값진 승리를 얻었다. 

국민의힘은 부산에서 1석을 제외하고 17석을 독식했는데, 2020년 선거에선 6석을 잃었던 것에 비하면 약진한 셈이다. 부산 민심이 조국과 국민의힘으로 나눠졌다. 이번 선거에서 경남에서 민주당이 3석, 국민의힘이 13석을 얻었는데 2020년 선거에서 4석을 잃었다. 결국 탄핵을 전후로 성적표나 더 나은 성적표를 받았지만 탄핵의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범야권의 탄핵 및 개헌 가능 200석은 왜 실패했나?

의석수는 2016년 박근혜 집권당은 122석, 2020년 2자구도에서 미래통합당은 103석이다. 정당득표율로 보면 2018년 지방선거에서 보수진영은 27.76%, 2016년과 2020년 선거에서 33%를 얻었다. 200석 획득은 탄핵 수준에서나 가능한 의석이므로 애초부터 불가능한 목표였다. 본인 역시 선거 전날 110석 내외를 예상했었다. 


진보정당은 패배했나?

노동당과 녹색당은 지지기반이 원래 적어 투표결과가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일단 진보정치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측면에서 정의당과 진보당 모두 패배했다. 하지만 진보당은 실리 면에서 대성공이다. 

정의당은 통합진보당 강제해산 이후 민주노동당을 계승하는 대표성을 지녀왔지만 이번에 진보의 대표성을 상실했다. 지난 2022년 지방선거에서 정당득표율이 이미 4.1%로 추락한 바 있다. 정의당의 붕괴는 정체성 혼란, 분당 수준의 대규모 탈당 사태, 구심점 실종, 비판적 지지 등 구조적인 것이라서 이후에도 당세를 회복하기 어렵다. 특히 진보당이 민주당에 흡수되지 않고 진보정당으로서 자처할 경우 더욱 그렇다. 

진보당에게는 민주당 우당이냐, 아니면 민주노총의 기반을 갖고 진보정당의 대표를 자처하느냐의 갈림길에 있다. 진보당은 호남에서 민주당과 경쟁하는 관계이고, 노동기반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민주당과 사안별로 연대할 것으로 보인다. 이후 진보당이 2026년 지방선거나 2028년 총선에서 자기 중심의 진보통합을 추진하겠지만 여의치 않으면 민주당과 선거연합을 답습할 것으로 보인다. 향후 민주노총의 정치사업이 상당한 위기에 처한 셈이다. 


2027년 5월 정권교체는 가능한가?

윤석열은 레임덕을 피할 수 없지만 커다란 실책이 없는 한 탄핵의 위험성이 낮아졌다. 탄핵 사유는 중대한 법률위반과 같이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한동훈은 패배했지만 개헌선을 저지하고 의석도 늘렸다. 특히 한동훈은 전통적 지지층을 결집시켰다. 한동훈은 점차 참패의 충격에서 벗어나 퇴출보다는 대표를 맡으면서 대선까지 갈 가능성이 높다. 

2026년 6월 초에 지방선거가 있고 1년 후 대선이 있다. 2022년 지방선거에서 여당은 12개 광역단체장을 얻는 압승을 했다. 2026년 지방선거는 임기 말의 선거로서 무조건 여당의 참패이고 그 기조가 대선으로 이어진다. 한동훈은 윤석열의 아바타라는 점이 이번 선거에서 드러났다. 대선주자로서 치명적이다. 

그렇다고 윤석열이 파괴력이 있는 대안을 찾기도 어렵다. 한동훈 카드를 유지한 채 이재명, 조국 등 경쟁자를 제거하려고 할 것이다. 선거가 없는 2년 동안 대선주자에 대한 형사처벌에 주력하고 공안사건 등 검찰정치에 의존할 것으로 보인다. 사법리스크가 정권교체에서 제일 중요한 변수가 된다. 

조국은 이재명과 통합 후 후보단일화를 하려고 하겠지만 양자 모두 상대방의 사법리스크에 기대를 걸 수 있다. 즉 상대방이 낙마하기를 기다린다는 것이다. 이재명은 의석 과반수를 얻었기 때문에 조국과 불확실한 당내 경선을 하기보다는 정국의 주도권을 쥐고 통합에도 소극적일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은 별도로 출마한 후 선거과정에서 조국에게 후보단일화를 요구하면서 조국에게 차기를 노리라고 강변할 수 있다. 변칙적인 후보단일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출구조사와 실제의 차이는 왜 발생하나?

출구조사는 여당이 최대 100석이라고 했지만 110석을 얻었다. 과거에도 대선의 출구조사는 정확하지만 총선과 지방선거는 많은 오차를 보여주었다. 대선은 단일선거구라서 응답자의 수가 많아 모집단을 대표하지만, 총선과 지방선거에서는 각 선거구마다 응답수가 적어 오차가 발생한다. 특히 보통 여론과 반대되는 투표자는 투표 답변을 회피하거나 오답을 제시하는 경우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