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대선결과와 한국의 정치지형 변화

 역대 선거 결과와 한국의 정치지형 변화

 

김장민(정치경제학연구소 프닉스 연구위원)

 

 

I. 역대 대통령 선거결과와 한국의 정치지형 변화

 

한국도 미국이나 영국 같은 보수양당체제처럼 정권교체가 일반적인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정당지도부의 관심과 달리 일반 유권자의 시각에서 보면 이념이나 외교안보에서 두 거대 정당은 큰 차이가 없다. 따라서 국내 문제 특히 경제문제가 일반 유권자들의 관심이다. 또한 특정 정당에 계속 권력을 주는 것에 염증을 느끼는 심리가 정착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거대 양당은 40% 내외의 고정지지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20% 내외의 부동층에 의해 당선자가 결정된다. 다만 미국은 전국적인 총투표가 아니라 주별 투표의 승자독식에 의한 ‘대통령선거인단’에 의해 당선자가 결정된다는 점이 한국과 다르다.

 

한국의 경우 대선 구도는 자유주의(호남 + 부산 경남 일부) 대 보수주의(영남 대부분) 등 2자구도로 고착화됐다. 인구 구조와 지역투표로 인해 호남 출신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되기 힘들다. 따라서 거대 양당의 후보들은 대부분 영남출신으로 수도권에서 인지도가 높은 정치인들이었다. 2007년 정동영 후보가 참패한 이후 호남 출신 대통령 후보는 없다. 호남 출신의 유일한 대통령인 김대중은 뛰어난 역량과 지명도에도 불구하고 충청권의 김종필과 연립정권을 공약으로 제시하면서 간신히 당선됐다. 신한국당에서 이회창과 경선했던 이인제가 출마하지 않았다면 김대중은 당선되기 어려웠다.

 

김영삼 정권은 노태우, 김종필과 합당함으로써 탄생했다. 이는 일본식의 자유당과 민주당의 합당처럼 보수독재의 영구화를 노린 것이다. 김영삼 정권의 성과는 전두환과 노태우 처벌, 하나회 등 정치군인 퇴출, 금융실명제, 그리고 강력한 보수후보로서 이회창의 발굴이다. 김대중 정권의 성과는 연립정부 전략으로 호남정권 수립, 최초의 자유주의 정권 재창출, 6.15공동선언 등 남북관계 개선이다. 김대중은 일본과 미국에 망명하는 동안 양국의 정치인들의 신뢰를 획득하였으며, IMF 구제금융 사태를 계기로 집권하고 이후 찬미친일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한국에 도입했다. 노무현 정권의 실패는 호남 대선후보 발굴이나 노무현의 비극적 최후가 자유주의 세력의 동정을 얻으면서 김대중 - 노무현으로 이어지는 자유주의 추종그룹을 형성했다.

 

한국의 정치구도를 반영하는 대선결과를 보면 전반적으로 한국정치가 발전하고 있다. 1987년 대선 이후 군부독재 세력은 정치세력으로서 퇴출당했다. 이 부분은 하나회 등 정치군인을 일소하고 12.12 쿠데타와 광주학살을 처단한 김영삼 대통령의 성과라고 볼 수 있다.

 

군부독재 - 보수 문민정부 - 자유주의 정권으로의 정권교체가 반복되면서 한국정치에서 보수세력이 천천히 약화되고 있다. 보수정치는 박근혜 탄핵 이후 전통적인 지도자와 지지층을 확고히 하지 못하고 있다. 보수와 극우의 분열상도 보수정치의 취약 지점이다. 보수정치는 특정한 인물보다 영남지역, 기독교와 친미세력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윤석열의 경우처럼 지도자를 외부에서 빌려오는 형태이다. 전통적 보수가 단절되면서 과거 민주화 인사나 관료, 기업인 등을 새로운 지도자군으로 영입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역동적이라고 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리더십의 혼란 상태이며 그에 따라 결집력이 파괴적이지 못하다.

 

반면 자유주의세력은 양김 - 노무현 - 문재인 - 이재명 등 과거 자유주의 세력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다. 자유주의세력은 김종필의 도움과 이인제의 보수표 분열 덕분에 최초로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이후 자유주의 세력은 노무현, 문재인에서 보듯이 (호남+영남 일부)의 과거 민주화 운동 세력을 토대로 하여 연립정부가 아니라 1 : 1의 구도에서 자유주의 정권을 독자적인 힘으로 재창출하고 있다. 자유주의 세력은 2012년 대선에서 정권교체에 성공하지 못했지만 보수와 1대 1의 구도에서 동등한 세력을 과시했다. 특히 박근혜 탄핵 이후 자유주의세력이 대선에서 최초로 보수를 압도한 바 있다.

 

역대 대선에서 사회주의를 전면에 내건 후보들은 유권자들의 외면을 받았다. 사회주의를 내용적으로 순화시킨 대중적 진보정당들은 원내에 진입하여 소수정당으로서 간신히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진보정당의 대선후보는 비판적 지지를 점차 극복해왔다. 비록 무소속이지만 백기완 후보는 1987년 대선에서 투표일 이틀 전에 양김의 후보 단일화를 요구하며 사퇴한 바 있지만 1992년 대선에서 완주하여 1%를 얻었다. 민주노총이 1996년과 1997년의 총파업 투쟁으로 전국적인 정치투쟁을 이끌고 노동조합의 정치참여를 제도적으로 쟁취하고 나아가 자신의 위원장인 권영길을 내세워 1997년 대선에서 국민승리라는 정당을 만들고 대선에 조직적으로 참여한 것은 서구의 노동운동사에 비견되는 역사적 사건이다.


19

87

노태우

민주정의당

36.64

김영삼

통일민주당

28.03

김대중

평화민주당

27.04

김종필

신민주공화당

8.06

19

92

김영삼

민주자유당

41.96

김대중

민주당

33.82

정주영

통일국민당

16.31

박찬종

신정치개혁당

6.37

19

97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40.27

이회창

한나라당

38.75

이인제

국민신당

19.21

권영길

건설국민승리21

1.19

20

02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48.91

이회창

한나라당

46.59

권영길

민주노동당

3.9

김영규

사회당

0.09

20

07

이명박

한나라당

48.67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26.15

이회창

무소속

15.08

문국현

창조한국당

5.83

권영길

민주노동당

3.02

금민

한국사회당

0.08

20

12

박근혜

새누리당

51.55

문재인

민주통합당

48.02

김순자

무소속

0.15

김소연

무소속

0.05

20

17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41.09

홍준표

자유한국당

24.04

안철수

국민의당

21.42

유승민

바른정당

6.76

심상정

정의당

6.17

김선동

민중연합당

0.08

20

22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47.83

윤석열

국민의 힘

48.56

심상정

정의당

2.37

김재연

진보당

0.11

오준호

기본소득당

0.05

이백윤

노동당

0.02

허경영

국가혁명당

0.83

 

1997년 대선 당시 권영길 후보는 IMF 대량해고에 맞선 총파업에 대한 노동자민중의 지지, 김종필과 연합한 김대중의 당선가능성 때문에 비판적 지지의 압박을 적게 받았다. 2002년 대선과 2007년 대선에 있어 자유주의정권에 대한 심판 여론이 높았다. 2002년의 경우 노무현의 당선으로 자유주의 정권이 재창출됨으로써 선거 후 권영길에 대한 비판의 여지가 없었고, 2007년의 경우 처음부터 자유주의세력의 후보인 정동영의 낙선이 예상돼 비판적 지지 여론이 형성되지 않았다.

 

반면 2012년 대선의 경우 정권교체를 해야 한다는 광우병 촛불집회의 여론으로 인해 비판적 지지 압박이 높았다. 특히 앞선 4월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이 민주당과 전면적인 후보단일화를 했기 때문에 후보단일화 여론이 높아 완주하기 어려운 조건이었다. 결국 심상정은 본선에 가지 않았으며, 이정희는 1차 TV 토론 직후 사퇴했다. 민주당은 선거연합을 한 통합진보당의 부정선거 논란, 폭력사태, 종북 논쟁, 분당, TV 토론에서 이정희 후보의 박근혜에 대한 공격으로 인한 역풍, 이석기 의원 사태 등을 목격하면서 이후 진보당 계열과의 선거연합에 부정적인 입장을 지니게 된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민주당은 2020년 총선에서 진보당 계열뿐만 아니라 녹색당과도 선거연합을 거부했으나, 2024년 총선에서 진보당이 원내 정당이라는 선거연합 대상에 포함됐다.

 

2017년 대선은 문재인의 높은 당선가능성 때문에 비판적 지지 압박이 없었다. 그 결과 심상정 후보는 6%라는 놀라운 득표력을 보여줬다. 2022년 대선의 경우 박빙으로 인해 비판적 지지의 압박이 있었으나 문재인 정권 심판의 성격이 있어 비판적 지지의 압박이 일부 완화된 측면이 있다. 다만 선거 이후 윤석열의 당선을 심상정 후보 탓으로 돌리는 야당 여론이 팽배했다.

 

2020년 총선에서 정당명부 의석 중 30석 이내에서 정당 득표율의 50%를 의석점유율에 반영하는 연동형비례대표제가 최초로 도입됐다. 거대양당은 소선거구제에서 이미 득표율보다 더 많은 의석을 획득하는 구조이나 연동형비례대표제로 인해 정당명부 의석을 추가로 획득할 수 없었다. 이에 거대양당은 비례대표 위성정당을 창당했다. 특히 민주당의 경우 스스로 연동형비례대표제의 취지를 훼손한다는 비판 여론을 피하고자 친민주당 인사 이외에도 일부 시민진영, 진보정당 인사를 위성정당 후보로 내세워 당선시켰다. 민주당은 진보당과 녹색당에 대한 선거연합을 물 밑에서 논의하다 종북논쟁, 이념논쟁, 페미니즘 논쟁을 우려해 이들 양당과 논의를 중단시켰다.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통합진보당 사태를 겪은 문재인 정권의 판단이라고 볼 수 있다.

 

2024년 총선을 앞두고 위성정당 문제를 잉태하고 있는 연동형비례대표제를 없애려는 양당의 시도가 있었지만 민주당 내 일부 의원들의 반발이 있었고 이재명 대표가 결단의 방식으로 존치시켰다. 민주당은 비례 위성정당의 참여 기준으로 친민주당 인사, 시민진영, 원내 진보정당을 제시했다. 정의당은 지역구만 사안에 따라 후보단일화를 하겠다며 거부한 반면, 진보당은 비례, 지역구 모두 후보단일화를 하겠다고 수용했다. 그 결과 새진보연대, 진보당은 비례대표 당선권에 최소한 2명씩 보장 받았으며, 호남을 제외하고 후보단일화에 나섰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의 사례에서 이미 봤듯이 2024년 총선에서 일부 진보진영이 민주당과 연대를 한 조건에서 2027년 대선에서 선거연합이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박빙의 승부가 예상될 때 민주당으로 야권후보를 단일화하라는 비판적 지지의 압박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진보정당이 차기 대선에서 비판적 지지의 압박을 최소화하려면 평상시 진보정당이 정치투쟁과 정책선전을 통해 자신의 독자적 존재의 필요성을 유권자에게 각인시켜야 한다. 특히 대선 직전의 2026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과 전면적인 후보단일화에 신중해야 한다.

 

한국과 미국의 신구 보수주의 비교⓷ ㅡ 반공친미로서 뉴라이트의 탄생

한국의 극우단체와 보수단체의 이념은 표현방식과 과격함의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 본질적으로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하기 어렵다. 보수단체의 자유시장과 자유민주주의 강조는 극우단체의 반공의 다른 표현이고, 보수주의의 기업활동의 자유는 극우단체의 반노조와 같은 내용이다. 


한국 우익의 실체는 반공주의다. 민주화 이전 반공주의는 국가이데올로기였다. ‘재향군인회’, ‘새마을운동본부’, ‘자유총연맹’ 등 관변 단체가 융성했기 때문에 자발적인 민간단체로서 반공단체가 불필요했다. 이처럼 민주화 이전 과거의 반공파쇼는 주로 어용단체이기 때문에 자발성과 대중성이 부족하다. 


민주화 이후 노동자민중의 저항과 통일운동이 거세지자, 우익엘리트들이 세력화를 추진하면서 우익 대중의 각성을 촉구했다. 6월 항쟁으로 직선제 개헌이 이뤄진 직후인 87년 10월 박정희 정권 이후 첫 재야 우익 단체인 ‘자유민주총연맹’이 등장했다. 그 주도자는 이철승 신민당 의원, 이용택 무소속 의원 등 정치인이었다. 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모임(회장 정기승)은 1988년 4월에 창립되었다. 구성원은 전직 국회의원, 검찰, 안기부장, 시장, 정관계 출신 변호사들로서 주로 보수층을 대변해온 원로 변호사 들이 주축이 되고 있다. 


1988년 김용갑 총무처 장관이 보수세력의 연합을 촉구했고, 양동안 정신문화연구원 교수가 “이 땅에 우익은 죽었는가”라고 격분했다. 1989년 10월에는 대학총장, 학장을 역임한 박사급 원로, 장관, 차관, 경제계, 법조계 인사, 국회의원, 공익단체장 등 각계를 대표하는 인사들이 ‘자유지성 300인회’를 만들었다. 1990년 복거일 소설가가 “보수주의 논객을 기다리며”라는 칼럼을 발표했다.


자유민주민족회의(상임의장 이철승)은 1994년 7월 16일에 창립되었다. 자유민주총연맹, 건국청년협의회, 대한반공청년회, 자유민주수호애국연합, 한국기독교교회청년협의회 등 33개 보수단체들이 결성한 보수연합체로서 결성 계기는 김일성 조문 발언과 한총련 분향소 설치 반대이다. 


민주화 이후 최초의 자발적인 보수매체는 1989년 창간한 [한국논단]이다. 이 잡지는 [월간조선]보다 더 보수적으로 평가받았다. [한국논단]은 자유와 시장이라는 보수주의 가치를 다루기보다는 현대사의 민감한 문제를 반공의 시각에서 재해석하고 반공과 반북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면서 진보진영을 친북세력으로 규정했다.


1992년 김영삼의 문민정부, 97년 김대중의 국민의 정부, 2002년 노무현의 참여정부로 이어지면서 보수세력의 위기의식은 더욱 깊어갔다. 이들 중도 자유주의 정권이 기존의 반공단체에 대한 지원을 축소하고, 반공단체는 정권의 눈치를 보면서 과거의 영향력이 감소했다. 반면 야당으로 정권교체가 된 후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는 자발적인 반공단체들이 발생했다. 자유시민연대(2000년),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2002년) 등이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 


2000년 11월 자유시민연대(공동의장 정기승 변호사, 류기남 대한참전단체연합회 회장)가 창립됐다. 자유시민연대는 자유민주민족회의, 대한민국건국회, 헌변, 대한참전단체연합회, 전쟁방지국민협의회, 한국기독교교회청년연 합회, 실향민중앙협의회, 월남참전전우회 등 50여개 단체 소속 5000명으로 구성됐다. 


2002년 4월 26일 자유수호국민운동(상임의장 장경순 헌정회 원로회의 의장)이 김대중 정권 퇴진 등을 주장하면서 발족됐다. 이 단체의 중심인물들은 군 및 정계 원로, 보수 시민단체 대표 등 각계인사 150여명이다. 


2001년 서정갑이 주도하여 창설된 국민행동본부는 육해공군해병대 예비역 대령 연합회, 육사총동창회, 갑종동기회, 공군전우중앙회, 대한민국해군동지회, 베트남참전전우회 등 전역 군인단체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 단체에는 이밖에도 독립신문, 북한민주화협의회, 북핵저지시민연대 등의 극우파 단체들이 가입되어 있다. 서정갑은 조갑제와 밀접한 관계이며 이미 1995년 4월 7000여 명으로 이루어진 육해공군해병대 예비역 대령연합회를 창설한 바 있다.


자발적인 극우단체와 기존의 관변단체는 구별된다. 극우단체는 자유주의 정권에 대해 반정부적 성격을 분명히 하지만 관변단체는 그렇지 못하다. 극우단체는 김대중 정권 출범이후 인터넷에서 주로 햇볕정책을 비난하다가 2000년 남북정상회 담이 성사된 후 노골적으로 본색을 드러냈다. 특히 북핵문제 대두를 계기로 현재 활동 중인 대다수 보수단체가 창립되었다(신동아 2003. 10). 


노무현 대통령은 출범 직후 국가보안법, 사립학교법, 과거사 진상 규명법, 언론관계법 등 4대개혁, 세종시로의 수도이전을 추진했고, 이에 저항하는 보수정당은 국회에서 우위를 이용하여 대통령탄핵소추를 결정했다. 하지만 국민여론이 반발하면서 2004년 총선에서 보수정당은 참패하고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소추도 기각됐다. 각 분야에서 진보 대 보수 대결이 극심해지면서 이 시기에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대표적인 보수신문이 [한국논단]의 보수적인 기조를 수용했다. 2004년 11월부터 동아일보가 ‘뉴 라이트, 침묵에서 행동으로’라는 대형 연재 기획을 시작했고,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유사한 기획 기사를 연재했다. 


[신동아] 2008년 9월호에 따르면 2004년 말, 나중에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대변인, 윤석열 정부에서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한 당시 이동관 동아일보 정치부장과 우익 인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자유주의 운동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자유주의’가 어려우니 ‘뉴 라이트’라고 작명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이를 받아 동아일보가 뉴라이트를 다루는 기획기사를 실었다.


또한 2004년 10월부터 과거 민주화운동 경력이 있었던 전 조선일보 주필 유근일, 김진홍 목사, 신지호 서강대 겸임교수 등 10여 명이 수차례 모임을 가졌다. 이들은 과거 운동권 인사 중 자유민주주의 수호에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는 사람들을 조직화하여 김대중 - 노무현으로 이어지는 좌파정권에 대항하고자 했다. 이중 신지호 교수가 2004년 11월 「자유주의연대」를, 김진홍 목사가 2005년 「뉴라이트 전국연합」을 주도적으로 창설했다. 


[한국논단] 그리고 조중동의 ‘뉴 라이트 기획’의 핵심은 ‘현대사 바로 세우기’였다. 이승만, 박정희의 업적을 강조하면서 긍정적으로 재평가했으며, 이는 역사 논쟁으로 이어져 국정교과서 사태, 전교조 탄압을 불러일으켰다. 


뉴라이트 지식인들은 우익대중들을 조직화하고자 의도적으로 자극했다. 2009년 9월 이도형은 한국논단 20주년 기념식에서 “반공이라는 말도 꺼낼 수 없는 나라”가 됐다면서, “젊은 서북청년이 기대되는 바입니다”라고 주장했다.


[한국논단] 등 일부 공간에서 진행되던 엘리트들의 역사논쟁, 종북논쟁이 조중동과 종편을 통해 대중들에게 확산됐다. 초기에는 엘리트가 선동했지만 지금은 엘리트가 선동하지 않아도 우익 대중이 뭉치고 있다. 

한국과 미국의 신구 보수주의 비교2

⓶ 한국의 과거 극우세력인 반공파쇼


김장민(정치경제학연구소 프닉스 연구위원)


1948년 8월 15일까지 남한을 군사적으로 통지한 재조선미육군사령부군정청은 우익단체들을 육성했다. 그 이후 이승만과 군부 독재정권들은 이러한 우익단체를 기반으로 하여 민간 자율이라는 가면을 쓰고 국민들을 전국적으로 감시하고 통제하기 위해 관변단체들을 만들어 지원해왔다. 


1946년 11월 30일, 월남한 청년단체들은 서북청년단을 세웠다. 서북청년단은 1948년 4.3 항쟁 당시 제주도민을 학살해 사태를 악화시켰다. 서북청년단은 상당수가 미군정과 우파지도자에 의해 경찰과 군대에 편입됐으며 1948년 12월 대한청년단에 통합됐다. 남은 일부는 1949년 10월 18일에 단체등록이 취소되어 소멸됐다. 1949년 6월 당시 서북청년단 재건위원회 간부인 안두희는 백범 김구를 암살했다. 2014년 9월 28일 서북청년단 재건위원회를 자칭하는 무리들이 세월호 분향소를 철거하려고 난입했다. 그 며칠 뒤 재건위 위원장 배성관은 ‘일베’사이트에 “안두희의 김구 암살은 의거”라고 주장하는 글을 올렸다.


한국자유총연맹의 출발점은 1954년 당시 이승만대통령과 중화민국 장제스 총통이 주도하여 조직한 아시아민족반공연맹이다. 이 연맹의 한국 지부가 1956년 설립된 한국아시아민족반공연맹이다. 이 한국 지부가 1963년 '한국반공연맹법'제정으로 한국반공연맹으로 정식 출범했다. 반공연맹은 4.19 혁명 이후 자유당 외곽조진으로 지목되면서 해체 위기를 맞기도 하였으나 박정희 정권 출범 이후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시군구 지부를 둔 전국 조직으로 발전하였다.


1989년에는 반공연맹법이 폐지되고 ‘자유총연맹법’에 따라 한국자유총연맹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법에 따라 한국반공연맹의 모든 권리의무를 한국자유총연맹이 포괄 승계했다. 한국자유총연맹의 모태는 서북청년단, 대한청년단, 태극단동지회, 건국청년운동협의회, 실향민호국운동중앙협의회 등이다.  자유총연맹은 6·15 남북정상회담을 지지·환영하는 성명을 내는 등 스스로 ‘개혁적 보수’를 표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재향군인회는 1952년 예비역 장교들이 지역 내 징병 대상자와 기타 예비역 해당자를 관리하여 동원 체제를 구축하고 국방부 병무행정의 집행을 보조하는 예하 단체로서 출범했다. 1961년 ‘대한민국재향군인회법’은 재향군인회를 법인으로 하고 정부보조금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대신 국방부장관이 징집, 소집, 방위훈련에 관하여 재향군인회의 협력을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1963년 대한민국재향군인회법은 병역의무를 이행한 국민이 당연직 회원이 되도록 했으며. 회비 규정도 신설했다. 


1969년 박정희 정권이 3선 개헌을 추진하자 재향군인회는 정치개입금지 규정에도 불구하고 '250만 재향군인'의 이름으로 개헌 지지 성명을 발표했다. 1996년 3월 15일 자 <한겨레>가 보도한 기사 '여, 관변단체 총선 활용 조짐'에 따르면, 신한국당 직능위원회가 향군을 비롯한 9개 관변단체와 선거 협력을 추진했다. 재향군인회는 최대 천만 회원을 보유하고 국가보훈처로부터 100억 이상을 지원받으며 10여개의 회사를 운영한 바 있다. 하지만 2019년 1월 8일 자 <시사저널> 기사 '부실 경영 향군, 매번 정부 눈치만 본다'에 따르면 재향군인회는 "6000억 원이 넘는 부채를 지니고, 2017년 950억 원 손실을 봤다.


박정희 정권은 농촌근대화와 농민통제를 목적으로 1969년부터 새마을운동을 전국적으로 시행했고 1975년에는 도시와 공장으로도 확대됐다. 1973년 대통령령으로 내무부에 새마을 담당관실을 설치하고 대통령 비서실에 새마을 담당관실을 설치했다. 박정희 정권 말기인 1979년 당시 새마을운동에 대한 정부지원금은 4252억 원, 민간단체의 지원금은 2032억 원에 달했다.


전두환 집권 직후 1980년 ‘새마을운동조직육성법’에 따라 새마을운동중앙회가 법정 사단법인이 되고 대통령의 친동생인 전경환이 책임자로 선정됐다. 노태우 정권이 출범한 뒤 전경환이 비리 혐의로 구속되자 일시적으로 타격을 받았으나 1989년 4월24일 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로 이름을 바꾸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는 통, 리 단위에 23만여 명의 지도자를 두고 있으며, 전직 지도자까지 합하면 2백만여 명이 넘는다. 새마을 금고, 새마을 문고, 새마을 직장새마을 협의회까지 합하면 전국적인 최대 조직이다. 


전두환 신군부세력은 1979년 12월 12일 쿠데타 이후  초헌법기구인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를 출범시켰고 국보위는 사회정화위원회를 만들었다. 사회정화위원회는 정치인 등 5천여 명의 공직자를 구속하거나 퇴출시켰으며 3만 8천여 명을 삼청교육대에 강제 입소시켰다. 또한 사회악 일소라는 명목으로 5만 7천여 명을 검거했다. 사회정화위원회는 전두환 정권의 사회통제기구 역할을 하다가 1988년 내무부 산하업무로 흡수됐으나 1989년 4월 바르게살기운동중앙협의회라는 관변단체로 부활했다. 바르게살기운동중앙협의회는 노태우 정권의 사회통제기구로서 운영됐다. 바르게살기운동중앙협의회는 1992년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야당과 육박전을 펼치며 날치기 통과시킨 바르게살기운동조직육성법에 의해 공식적인 관변단체로서 출범했다.


1988년 163명의 의원들이 새마을운동조직육성법폐지법안을 발의했고, 그 이후 1993년, 1996년 등에도 이러한 관변단체 폐지 법안이 발의됐다. 김영삼 정부는 감사결과 관변단체 정리계획을 수립했으나 대선을 1년 앞둔 1996년 이들 3개 단체에 수십억 원씩 지원했다. 


김대중 정권에 의해 최초로 정권교체가 된 후 1999년 공익적 사업을 하는 비영리민간단체를 지원하는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이 제정됐다. 하지만 새마을운동중앙회, 한국자유총연맹, 바르게살기운동중앙협의회 등 세 단체는 별도의 특별법에 따라 다른 민간단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특혜와 지원을 받고 있다. 


해방 직후 우파들이 일본 통치 시기부터 존재해왔던 좌파성향의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에 대항하여 1945년 대한독립촉성전국청년총연맹을 결성했다.  이 연맹은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를 견제하려는 미군정청의 비호아래 1946년 대한독립촉성전국청년총연맹(대한노총)으로 전환됐다. 이 단체는 이승만과 김구 등을 고문으로 하여 반공과 노사협조를 지향하였다. 1948년 정부 수립 직후 이승만 대통령은 스스로 대한노총의 총재가 되어 그해 대한노총을 대한노동총연맹으로 전환토록 하였다. 


1959년 대한노총에서 전국노동조합협의회가 떨어져 나왔으나 반공과 노사협조 노선은 변함이 없었으며, 양 조직은 1960년 4.19혁명 이후 민주화 분위기 속에서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으로 통합하였다. 한국노총은 5.16군사정변으로 일시적으로 해산되었으나 바로 군사정부에 의해 재구성됐다. 한국노총은 1987년 민주화 이전까지 군사정부의 비호아래 민주노조운동을 방해하고 경우에 따라서 정부 및 사측과 협조하여 노동운동을 탄압하기도 했다. 

트럼프 내년 상반기에 북미정상회담 추진 가능성 높아

바이든과 트럼프 대선후보 확정, 대선공방 본격화



민주당과 공화당은 각각 3월 12일 조지아주와 미시시피주, 워싱턴주 등에서 대선후보를 선출하는 프라이머리를 진행했다. 바이든은 대의원 3천934명 중 2천101명을 확보했고, 트럼프 역시 2천429명 중 1천215명의 대의원을 확보해 대선후보로 사실상 결정됐다. 공화당은 오는 7월, 그리고 민주당은 오는 8월 각각 밀워키와 시카고에서 전당 대회를 열고 대선 후보를 공식 선출한다. 


양당의 대선후보가 조기에 결정됐기 때문에 트럼프와 바이든의 대선경쟁 역시 예년보다 빨리 시작된다. 트럼프는 선거캠프와 정책진을 구성한 후 불법이주를 차단하는 국경 관리,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에 대한 전쟁 지원, 북핵 문제 등에 대해 바이든에게 맹공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바이든 입장에선 이스라엘을 설득해서 전쟁을 빨리 마무리해야 하고 우크라이나 전쟁 역시 양측을 중재해서 협상국면으로 전환해야 한다. 미국경제가 좋은 것은 바이든에게 유리하지만 고금리로 인한 고통이 크기 때문에 금리인하 시기도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가 당선되면 2020년 퇴임 당시 정책기조를 유지하되 변화된 조건을 반영할 것으로 보인다. 일단 바이든의 정책을 대부분 뒤집을 것이다. 북미정상회담 등 적극적인 대북정책이 추진되고 그 결과 한미관계도 일정부분 혼란기를 거쳐 조정된다. 


트럼프의 대북정책라인인 프레드 플라이츠 (Frederick Fleitz, 전 백악관 NSC 비서실장)는 지난 3월 16일 방송 대담에서 “대선직후 2025년 초에 트럼프가 북미정상회담을 추진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2019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합의에 이르지 못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2020년 퇴임직전까지 추가적인 정상회담을 추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에 도움을 받고자 10월 깜짝쇼를 준비했지만 코로나 확진과 이후 코로나봉쇄로 인해 정상회담이 무산됐다. 당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코로나에 걸린 트럼프 대통령에게 위로의 전문을 보낸 것으로 볼 때 양측의 정상회담은 구체적인 준비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하노이 회담이 성과가 없었기 때문에 다시 북미정상회담이 열린다면 양측 모두 가시적인 성과를 얻어야 한다는 점이다. 또한 바이든 시기 북은 핵무력을 고도화, 다종화하고 대량화 단계에 진입했다. 또한 헌법에 핵무장국가로서 위상과 사용원칙을 명기했다. 


이런 사정으로 볼 때 하노이회담에서 논의된 북핵 폐기는 북이 수용할 수 없는 요구이므로 더 이상 정상회담의 의제가 될 수 없다. 북은 핵무장국가로서 지위를 내세워 미중러 수준의 핵통제, 즉 북미간 핵전쟁을 막는 국제법적 장치에 대한 논의를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로서는 일단 북미정상회담을 깜짝쇼로 해야 하는 입장이므로 북핵 폐기론은 국내 여론용으로 유지하되 협상의제는 북햭 폐기라는 빅딜에 도달하기 위해 과도기적 조치, 즉 스몰딜로 국한할 수 있다. 


북핵 인정한 군축 회담하면 남 핵무장론 수면 위로


트럼프의 입장에선 바이든 정부의 정책실패로 북이 완전한 핵무장국가가 됐다면서 바이든 정부에게 책임을 돌리면서 일단은 북미간의 핵전쟁 가능성을 원천봉쇄하는 합의를 의제로 제시할 수 있다. 여기에 북은 장거리미사일 등 핵관련 전략무기의 실험과 시험을 중단하고 핵탄두의 보유량을 제한하는 양보책을 내놓을 수 있다. 미국은 북미정상화 등 부담스런 의제를 피하는 대신 북에 대한 주요한 경제 제재를 풀 수 있다.


북의 핵군축과 미국의 경제제재의 완화는 최근 바이든의 백악관과 국무부에서 언급되고 있는 ‘중간단계’의 가능한 시나리오이다. 문제는 핵군축 협상이 되면 북을 핵무장국가로 인정하게 되는 것이므로 남한에서 핵무장론이 더욱 확산될 수 있다. 과거 박정희가 미국 몰래 핵무기 개발을 추진했다면 북핵이 공식화되면 남한의 보수정치권은 미국을 상대로 공개적인 핵무장의 필요성을 주장할 수 있다. 



미국은 남한의 핵무장에 절대적인 반대의사를 표명해왔다. 일본을 자극해 핵확산이 우려되고 타이완, 사우디아라비아 등 우방국가들의 핵무장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남북이 핵무장을 하게 되면 남한이 미국에 국방을 의존할 필요가 없어진다. 주한미군 철수 여론이 한국과 미국에서 대두되고 남한을 대중, 대러 봉쇄기지로 사용하려는 미국의 전략이 훼손된다. 


문제는 트럼프가 다른 대통령과 달리 남한의 핵무장에 대해 강력한 반대의사를 표시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동맹국이 핵무장을 해서 스스로 억제력을 갖게 되면 미국이 굳이 비용을 들여 핵우산을 제공할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6년 4월3일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 중이던 트럼프는 “한국·일본이 핵을 갖고 북핵에 대해 스스로 방어에 나선다면 상황이 더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같은 시기 <뉴욕 타임스>와의 외교·안보 분야 전화 인터뷰에서 “일본과 한국이 북한이나 중국으로부터 자국을 보호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핵무기를 개발·보유하는 것에 대해 ‘열린 생각’을 갖고 있다”며 “이것이 두 나라가 미국의 핵우산에 기대는 것보다 낫다고 본다.”고 말했다. 

북핵 인정하고 핵군축 협상 시작하나?

북조선이 대한민국을 국가로 인정하였으나 대한미국의 통치권이 북에 미치지 않으므로 남한이라고 지칭하고 같은 논리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통지권이 남한에 미치지 않으므로 북조선이라고 지칭합니다. 


대선 직전에 2개의 전쟁+ 2개의 대치에 몰린 미국

1. 북조선의 핵무기 다종화 고도화 대량화

북조선은 미국본토, 괌, 일본, 한반도, 항공모함을 타격할 수 있는 다양한 종류의 전략, 전술핵무기를 개발했다. 다탄두 각개 재돌입 발사체(Multiple Independently Targetable Reentry Vehicle), 극초음속미사일, 고체연료, 회피기동, 핵어뢰, 핵무인잠수정, 군사위성 등 고도화된 핵무기도 개발한 상태다.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은 이미 배치됐고 핵잠수함은 설계를 끝내고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략폭격기와 핵추진 항공모함은 지정학적 이유와 실효성을 볼 때 북에게 불필요한 무기이다. 

600㎜ 초대형방사포, 무인수중공격정 해일, 화살-2 순항미사일, 화살-1 순항미사일, 단거리 탄도미사일인 KN-24·KN-25, '미니'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  8종의 투발수단에 장착하여 실전에 사용할 수 있는 전술핵탄두를 화산-31로 표준화하여 대량생산체제가 예상된다. 

국내외 북조선 관련 전문가 단체는 북조선의 핵 탄두 숫자에 대해 2023년 기준 최소 30발 최대 90발로 추정하고 있다. 북조선의 핵탄두 목표량은 현재 중국의 4~5백 발 보다 다소 적은 300 발이며, 20230년까지 160 발을 보유할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속도라면 매년 7~8개의 핵탄두를 배치할 수 있으나 우라늄과 플루토늄의 농축 능력을 확장한다면 핵탄두 증가 속도를 더 높일 수 있다. 


2. 한미 북조선 핵무기 배치 기정사실화

윤석열 정부는 북조선의 핵무기 배치에 대응하여 미국에게 유럽식 핵공유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미국이 난색을 표한 것으로 보인다. 남한에 전술핵무기를 배치하라는 요구도 있으나 미사일이나 비행기를 이용해 한반도 인근에서 핵무기를 발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역시 미국은 소극적이다. 한미 양군은 3월 4일부터 14일까지 한반도에서 북의 핵무기 사용을 전제로 한 한·미연합군사연습 ‘프리덤실드’를 실시한다. 

미국의 북조선 비핵화가 실패했다는 점을 한미 모두 현실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핵무장을 한 북조선을 상대로 사용할 수 있는 카드는 단계적 핵무기 폐기, 핵군축, 핵 억제력 강화를 통한 핵 대결 유지 등이다. 트럼프가 대선에서 북핵 문제를 쟁점으로 삼을 것으로 예상되면서 바이든 정부의 고민이 깊어졌다. 


3. 미국 비핵화 정책 후퇴 가능성 시사

미국의 북핵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은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폐기(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ing, CVID)이다. 북조선이 핵무기를 폐기하는 것을 협상의제로 삼으며, 다만 단계적 폐기는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목표로 한 대북정책을 유지하면서, 그동안 북조선과 20여차례의 물밑 접촉을 하면서 조건 없는 대화에 나설 것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북조선은 미국과의 대화를 거부한 채 핵무기의 다종화, 고도화, 대량화에 전력을 쏟고 있다. 중국이나 러시아에 버금가는 핵무장 국가로 신속하게 전환하겠다는 구상이다. 

그런데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가 2023년 12월 13일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내년 대선을 통해 재집권하면 ‘북핵 동결’의 대가로 대북 경제제재 완화 등을 제공하는 거래를 추진한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고 보도했다. 협상의제가 핵 폐기 자체가 아니라 핵무기 개발 중단, 배치중단, 확산 중단 등 핵 군축일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즉각 부인했다. 

지난 3월 4일 서울에서 열린 ‘중앙일보-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포럼 2024’ 특별대담에서 온라인으로 참여한 미라 랩-후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동아시아-오세아니아 담당 선임보좌관은 “미국의 목표는 여전히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이지만 비핵화로 가는 과정에서 역내와 세계가 보다 안전해질 수 있다면 북핵의 위협을 감소하는 중간 단계(interim steps)를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음날 3월 5일 워싱턴DC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에서 개최한 세미나에서 정박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부차관보 겸 대북특별부대표가 전날 선임보좌관이 언급한 중간단계를 재확인했다. 특히 북조선에게 핵 폐기 이전에 핵동결 혹은 핵군축 의제로 삼을 대상에 대해 전술핵무기에 들어가는 고체 연료, 초음속 미사일, 무인잠수정(UUV, Unmanned Underwater Vehicle) 등을 구체적인 예로 들었다. 

미 백악관 NSC 대변인은 중간단계에 대한 중앙일보의 질의에 대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향해 노력하는 동안 북조선과 가치 있는 여러 대화를 모색할 것이며, 이는 한반도에서 우발적인 군사적 충돌의 위험을 줄이는 것을 포함한다."고 밝혔다. 미국 국무부 역시 북조선의 비핵화 과정에서 중간 조치를 고려할 수 있다는 발언과 관련해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정책이 달라진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4. 중간단계의 의미

중간단계는 최종 목표는 완전한 비핵화"라고 강조하지만 실제 협상에서 핵 동결에 보상을 제공하고 현상을 유지하는 스몰 딜이나 잠정 합의(interim agreement)이다. 최종 목표를 비핵화로 설정하지 않는 '위협 감축 논의'는 자칫 북조선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한 상태에서 이뤄지는 '군축 협상'이 될 수 있다. 

미국이 대통령부터 고위급 실무자까지 북조선과 전제조건 없는 대화를 하겠다고 북조선에 지속적으로 신호를 보낸다는 점을 볼 때 이러한 발언들은 미국의 목표는 북조선의 비핵화이지만 실제 협상테이블에 올라가는 협상의제는 그 전단계인 동결이나 군축이 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중간단계의 의미가 미국의 정책전환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에 워싱턴은 정책변화가 아니라고 파문을 축소하고 있다. 한국 외교부도 5일 "윤석열 정부의 비핵화 로드맵인 '담대한 구상'과 동일한 취지"라는 입장을 밝혔다.

미국의 기존 정책이나 한국정부의 입장도 북조선이 핵무기 폐기에 동의해야 협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처음부터 협상의제는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폐기(CVID)이며 이 원칙에 합의하면 이를 달성하는 단계별 조치를 취할 수 있다. 그런데 미국의 고위당국자들은 북조선의 핵무장 속도를 늦추거나 전쟁 위험을 감소시킬 수 있다면 핵 폐기가 의제가 아니라고 해도 그 부분에 대해 북조선과 협상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5. 전망

1) 핵전쟁 훈련과 미국 대선을 앞두고 북조선 달래기

북조선이 최근 남한을 주적으로 설정하고 전쟁가능성을 언급하는 등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또한 남한을 타격할 수 있는 각종 전술핵무기를 시험 발사하면서 미국과 외신들은 한반도에서 전쟁가능성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더욱이 한미가 핵전쟁을 대비한 군사훈련을 강행하면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군사적, 재정적으로뿐만 아니라 대선 여론에서도 곤혹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북조선이 군사적 행동을 할 경우 미국이 쓸 수 있는 여력이 별로 없다. 여기에 중국이 대만에서 충돌을 불사하면서 북조선과 보조를 맞추면 대선을 앞두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재앙이다. 트럼프가 국내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고 바이든의 개입정책을 비난할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미국의 고위층들이 잇따라 북조선의 군사행동을 방지하기 위해 유화적인 제스처를 보낸 것일 수 있다. 즉 미국이 실제로 핵동결이나 핵군축을 대가로 제재 해제, 군사훈련 중단 등 대가를 제공할 생각이 없으면서 위기를 모면할 꼼수일 수 있다. 


2) 핵동결 혹은 핵군축 회담 수용

북조선의 완전한 비핵화는 북조선이 그럴 의도가 처음부터 없었다는 점. 주한미군 철수와 체제보장 및 관계정상화 그리고 경제적 보상 등 북에 상응할 만한 대가를 줄 수 없다는 점, 북조선이 핵무력을 사실상 완성했고 적대적 조건에서 핵무기를 스스로 포기한 사례가 없다는 점에서 미국 조야에서 비핵화는 실패했고 단지 핵전쟁의 가능성을 통제하는 핵군축이 현실적이라는 주장이 최근 나타나고 있다. 

이와 별개로 재선가능성이 높은 트럼프가 북조선의 핵 문제를 다시한번 자신의 쇼를 위해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는 국내 문제는 불법이민자, 국외 문제는 명백한 보상과 국익이 없는 해외 개입에 반대하는 것이다. 특히 전임자의 대외정책을 비판하면서 반대의 노선을 택할 것으로 보인다. 즉 진척이 없는 바이든의 북핵에 대한 정책을 비판하고 적극적인 대북정책을 추진할 수 있다.

트럼프가 재선이 된다면 자기가 북과 조성한 협상분위기를 바이든 정부가 제대로 통제하지 못해 북조선이 핵무장을 완성했다고 바이든 정부를 비난하면서 미국의 목표는 북핵 폐기이지만 당장은 핵전쟁 위협을 없애야 한다면서 협상의제를 핵동결 내지 핵군축, 핵통제로 제시할 수 있다. 즉 빅딜은 현재로서 시기를 놓쳤기 때문에 당장 협상의제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북조선과 핵문제를 타결하려는 명분 중 가능성이 있는 것은 가망성이 없는 북핵 폐기보다는 북조선과의 ‘빅딜’을 통해 북미관계를 개선한 뒤 현재 중국의 편에 서 있는 북조선을 중국 견제의 첨병으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대중국에 집중하기 위해 중국의 동맹인 북조선을 관계개선을 통해 중립화하겠다는 것이다.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과 수교한 키신저의 해법이나 중국을 경제하기 위해 교전국이었던 베트남과 우호관계를 맺은 것도 같은 이치라고 볼 수 있다. 

북조선의 입장에선 미국이 우크라이나, 가자, 대만 문제로 강경책을 쓸 수 없는 지금 신속하게 핵무장을 완성하여 실질적으로 중러와 같은 핵무장 국가의 지위를 획득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이다. 그 이후 트럼프가 핵동결, 핵군축, 핵통제 협상을 제안해 온다면 실리를 택하면서도 핵무력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협상에 응할 가능성이 있다. 사실 북이 핵무장을 완성하여 미국 본토에 실질적인 위협이 된다고 미국 유권자에게 각인시킨다면 어떠한 미국 대통령도 핵전쟁을 통제하는 협상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 

한국과 미국의 신구 보수주의 비교1-⓵ 미국의 네오콘과 트럼프주의

김장민(정치경제학연구소 프닉스 연구위원)

1. 소련 붕괴 이후 신보수주의 노선 분화


공산주의 붕괴 이후 보수주의자들은 앵글로 섹슨, 개신교, 미국식 정치체제 중심의 세계 지배질서를 유지하고 확산하는 것을 공동의 목적으로 삼고 있지만 그 방법에 있어 약간 다른 입장을 지니고 있다. 


어빙 크리스톨과 진 컬크패트릭(Jeane Kirkpatrick)로 대변되는 현실주의(Realist)는 냉전 이후에도 미국의 세계경찰로서 역할이 유지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필요하다면 미국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동맹이 반대해도 국제분쟁에 미국이 개입해야 한다는 일방주의와 고립주의 노선을 채택한다. 


무라브직(Johshua Muravchik), 덱터(Midge Dector) 등 다수의 신보수주의자들이 속해 있는 민주적 세계주의자(democratic globalist)들은 미국의 역할을 미국식 민주주의를 세계에 확산하여 민주주의 제국을 건설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위해 필요하다면 미국은 십자군 전쟁을 수행할 수 있다. 공산주의 대신 권위주의를 인류의 적으로 삼아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 대결을 부추기는 바이든의 정책과 유사하다. 


마지막으로 민주주의 확산이 목표이지만 이를 달성하려면 서구의 민주주의 국가들이 민주주의 중심국가로서 제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하고 미국이 그 중심에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제3세계에 대한 개입정책보다는 유럽이나 전통적인 민주주의 동맹국가와의 관계를 중시한다. 



2. 네오콘의 역사적 진화


미국의 전통적인 보수는 반공산주의, 인종차별주의, 기독교 복음주의 운동이라고 볼 수 있다. 네오콘이라고 불리는 ‘신보수주의자(Neo-conservatives)’는 기존의 보수주의자들이 아니라 새롭게 등장한 보수주의자들을 의미한다. 따라서 대처, 레이건과 같이 전통적인 보수주의자들이 새로 부상하는 신자유주의, 신보수주의와 다른 개념이다. 보수적 유대인 집단, 기독교 근본주의, 군산복합체제론자 이외에 우파로 전향한 새로운 그룹이다. 


네오콘이 노선적으로는 레오 스트라우스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지만 네오콘의 인적 수혈은 반공좌파에 의해 가능했다. 트로츠키주의에서 전향한 어빙 크리스톨(Irving Kristol)이 네오콘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트로츠키주의 반공좌파는 노먼 포더리츠(Norman Podhoretz)가 편집자로 있던 친유대주의 저널 코멘터리(Commentary)에 학문적 뿌리를 두고 있다. 


남궁곤(2004)에 따르면 주로 트로츠키주의자였던 반공좌파들이 민주당 좌파를 거쳐 공화당 강경파로 개종하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이들의 등장 시기는 뉴딜 시기에 사회주의 정책을 주장하는 트로츠키주의가 미국에 수입되면서 스탈린주의와 대립했던 1930년대 말이다. 이때 어빙 크리스톨을 비롯한 트로츠키주의자들이 뉴욕시립대학에서 반소좌파 그룹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당시 뉴욕시립대학에 스탈린주의자들이 트로츠키주의자보다 세 배 정도가 많았기 때문에 트로츠키주의자들의 반스탈린 투쟁은 강경했다. 이들은 스탈린과 연합군을 형성하여 독일 및 일본과 전쟁을 치르던 루스벨트 대통령의 소련 지원 정책에 비판적이었다. 


이들의 첫 번째 개종 시기는 청년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사회에 진출하면서 사회주의를 포기하고 민주당 좌파로 진입하기 시작하던 1960년대 후반이다. 이들은 공공성을 강조하는 수정자본주의 정책을 주장하면서도 소련과 공산주의를 비판하지 않는 자유주의 지식인을 용공이라고 공격했다. 공산주의 세력에 대항하기 위해 중도 우파로 개종한 셈이다. 


이들은 한국전쟁, 월남전을 공산주의에 대한 십자군 전쟁으로 규정하면서 민주당 성향의 자유주의 지식인들의 베트남 반전운동에 염증을 느꼈다. 이들은 대외적으로 미국의 세계경찰 역할을 강조했을 뿐만 아니라 대내적으로 미국의 전통가치, 엘리트 역할, 시장 등의 보수적 가치를 주장했다. 


1976년 이들은 다른 민주당 보수진영들과 함께 헨리 잭슨(Henry Jackson) 후보를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지지하였지만 자유주의 성향의 카터에게 패배하였다. 카터 대통령 시기에 국내 경제가 어려워지고, 대외적으로 이란 인질사건, 니카라과 좌익 혁명, 소련의 아프간 침공 등 미국의 위상이 추락했다. 카터의 우유부단함에 실망한 이들은 공화당으로 다시 개종했다. 


공화당 내에서 이들은 레이건 시대에 행정부에 진입하면서 신보수주의 정책에 영향을 미친다. 네오콘 성향의 학자들이 정치에 입문하면서 고위직이 진출해 네오콘 세력을 형성한다. 어빙 크리스톨과 마찬가지로 유대계 시카고 출신인 리차드 펄(Richard Perle)과 폴 월포위츠(Paul Wolfowitz)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미 레이건 시대에 폴 월포위츠는 국무부 동아태 담당 부차관보, 리차드 펄은 국방부 지구전략 담당 부차관보를 지냈다. 


아들 부시 즉 조지 W. 부시 대통령 임기 초반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한 이후 네오콘들이 미국의 최고정책결정권에 영향을 미치면서 화려하게 등장했다. 2004년 부시 대통령의 재선 과정에서 신보수주의자들은 보수 기독교, 체니(Dick Cheney) 부통령이나 럼스펠드(Donald Rumsfeld) 국방장관 등 전통적인 보수주의자들과 연합했다. 신구 보수주의자들은 1997년 신보수주의 핵심 문서로 꼽히는‘새로운 미국세기를 위한 프로젝트(PNAC: Project for New American Century)’성명을 주도했다.  



3. 트럼프주의


트럼프주의는 우익 포퓰리즘, 국가 보수주의, 신민족주의, 신파시즘과 같은 광범위한 우익 이데올로기로 구성되어 있다. 청교도적인 금욕주의, 소수자와 외국인 혐오, 인종차별, 기독교 민족주의자, 보호무역, 반페미니스트, 주류 언론에 대항하는 음모론과 가짜 뉴스 등을 포함한다. 트럼프주의자는 권위주의를 따르며 대통령의 권한이 헌법이나 법치주의에 의해 제한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기존 매체를 혐오하고 소셜미디어 등 신매체에 의한 대중 선전을 중시한다. 엘리트 정치에 식상한 대중들을 선동하여 기존 정치권 전체를 공격한다. 


트럼프는 개인숭배와 집단최면의 대중전술을 구사한다. 2020년 10월 여론조사에서 공화당원과 공화당 성향 무소속자의 58%가 자신을 공화당보다는 트럼프 지지자로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화당원 4명 중 3명은 대선 개표 조작 등 음모론을 믿고 있으며 거의 절반이 대선 결과를 최종 발표하는 국회 공격에 대해 묵시적 지지를 표시했다. 


외교는 국익에 철저한 고립주의 노선이나 국익에 부합한다면 예외적인 개입을 허용한다. 따라서 외국 분쟁에 대한 개입을 반대하며, 나토와 아시아동맹에 대한 비용지출에 반대한다. 동유럽, 대만, 한국 등 외국에 개입할 때는 상대방에게 분명한 대가를 요구한다. 


미국에서 사양산업인 전통적인 굴뚝산업의 자본가와 노동자들이 트럼프를 지지한다. 백인의 블루칼라는 경공업은 중국, 첨단산업은 미국이라는 미국 기득권의 신자유주의 전략의 피해자이다. 따라서 국제분업에 반대하며 전통적 산업국인 중국, 한국 등 공업국가들이 미국의 일자리를 뺏고 있다고 본다. ‘마가’(MAGA)는 트럼프의 2016년 대선 구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의 약자이다. 이는 미국의 세계경찰의 지위를 강화하기 보다는 미국 국내 문제, 미국의 경쟁력을 강화하자는 의미이다. 


유럽에서 중동전쟁에 따른 난민 유입에 반대하는 외국인 혐오증이 증가하듯이 미국에서 중남미의 사회적 경제적 난민이 유입에 반대하는 외국인 혐오증이 증가한다. 이주민과 불법체류자는 저임금 노동시장에서 가난한 백인과 경쟁하기 때문에 저학력 백인들은 국경 봉쇄를 요구하는데, 트럼프가 강경론을 펼치면서 백인노동자의 지지를 얻고 있다. 엥글로색슨 계열뿐만 아니라 라틴계열 중 미국의 시민권을 얻어 백인노동자와 같은 사회적 지위를 가진 경우도 트럼프를 지지한다. 


트럼프는 미국의 기독교 전통을 옹호한다. 백인, 기독교, 육체노동자가 트럼프의 지지기반이다. 2016년 선거 출구 조사에 따르면 유권자의 26%가 자신을 백인 복음주의 기독교인으로 식별했으며 그 중 4분의 3 이상이 트럼프를 지지했다(Pew Research Center).


중동난민으로 몰살을 겪는 유럽에서 극우정당이 급성장하고 그 일부가 정권을 잡는 것에서 보듯이 트럼프주의는 신파시즘의 형태로 유럽에서 먼저 등장했다. 경제위기, 조직범죄로 정치경제적 위기에 직면한 남미에서도 트럼프와 유사한 신파시즘적인 극우정당들이 성장하고 있다. 


참고 

- 남궁곤. 2004. "미국 신보수주의의 정치적 의의와 연구경향."한국사회과학 제26권 제1∙2호(2004: 3~35) 서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북이 남에게 전술핵무기를 쏠 수 있다?

1. 핵무기에 대한 이해


1) 전략핵무기는 단 한발을 맞더라도 3-4백만의 아군과 적군의 민간인까지 모두 같이 공멸하는 무기이다. 내가 한 발도 안 맞고 상대방의 모든 핵무기를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제거해야 한다. 냉전 시대 미국과 소련은 핵탄두를 각각 2만 ~2만 5천개를 가졌고 단 한번으로 공격으로 상대방과 그 동맹국의 핵무기 및 식별이 의심스런 가짜 핵무기까지 제거하고자 했다. 미국의 입장에서 하늘, 땅, 바다 속에 24시간 발사체계를 갖추고 선제공격의 경우 소련의 발사 징후가 보이면 1500발을 한꺼번에 발사하도록 돼 있다. 소련에게 선제공격을 당했을 때 핵 무력의 1/3이 살아남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보복으로 남은 모든 핵을 발사하도록 돼 있다. 이런 공멸의 법칙으로 미소간에 핵전쟁은 일어날 수 없었다. 

실제로 미국의 핵미사일 1발이 소련을 향해 날아오고 있다는 경보가 울렸으나 소련의 방공사령관이 모스크바에 보고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핵전쟁에서 보복을 고려할 때 1발을 쏘는 바보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략핵무기는 쓰려고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공포용으로 만드는 방어용이다. 헨리키신저는 핵무기와 대외정책이라는 논문에서 전략핵무기를 지닌 국가는 모든 나라와 불가침조약을 맺은 것과 같다는 평가를 했다. 오늘날 미국과 러시아는 발사 가능한 핵탄두를 1500개 내외로 배치하고 있으며, 전쟁억지력을 지니려면 수소폭탄급이라도 미국에 대해서 최소 400여기를 배치해야 한다. 중국, 북이 10년 내 그 정도 비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한 상대방의 선제공격에 보복용 핵무기를 보전하려면 핵잠수함을 보유해야 한다. 


2) 전술핵무기의 등장과 퇴장


핵무기의 파괴력은 재래식 무기와 비교가 안 된다. 따라서 전투의 효율성을 고려해 실전에 쓸 수 있는 소규모 전술핵무기가 미소에 의해 개발됐다. 첫째 미소는 재래식 무장도 최강이라서 비핵무장국가에서 전술핵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 둘째 미소간에 전술핵을 사용하면 점점 더 큰 전술핵을 사용하고 결국 보복전으로 이어져 전술핵은 전략핵을 불러온다. 이는 공포용이라는 전략핵무기의 존재가치를 상실케 한다. 결국 미소는 서로에게 단 한번도 전술핵을 사용하지 않았으며, 전술핵의 이러한 위험성을 인식하고 점차 폐기하고 최소부분만 보유하게 됐다.


2. 북의 남에 대한 핵무기 사용가능성


전술핵무기로 주요 지휘부, 군사시설, 발전소 등을 공격하면 미국이 핵무기로 반격하지 않는 한 남은 전투의지를 상실하기 때문에 자기 이웃에 전략핵무기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 전략핵무기는 멸망시키는 무기이지 점령하거나 통일하려는 무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북의 전술핵무기에 미국의 전술핵무기로 대응하느냐는 북의 전략핵무기 능력에 달려 있다. 북이 최소 200여기 핵무기를 지하, 바다 속에 숨겨 놓고 미국의 대량공격에 그 중 몇 발이라도 살아남아 미국 도시를 공격할 수 있다면 미국은 북에 대해 전술핵무기도 사용하지 못한다. 미국의 최대 우방인 프랑스와 영국도 미국이 파리나 런던을 소련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뉴욕이나 LA를 포기하지 못한다고 봤다. 서울을 보호하려고 북에 전략핵무기를 사용할 수 없다. 

미국이 전략핵무기 전쟁을 두려워해 북에 대한 전술핵무기로 보복을 못한다면 북의 입장에선 재래식 무장이 뛰어난 남에게 전술핵무기를 사용할 군사적 이익이 있다. 북은 전술핵무기를 사용하여 전투에서 승리하지만 무력으로 남을 점령할 수 없다. 전술핵무기로 남의 월등한 재래식 무장능력을 전부 무력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점령이 가능하려면 육해군 즉 재래식 전력이 비슷해야 하기 때문이다. 남의 전투의지를 꺾고, 본때를 보여주고, 북 자신의 안위를 지킬 수 있을 뿐이다. 전술핵무기를 개발하는 단계에 이르자 북이 같은 동포에게 핵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과거의 입장을 번복한 것이다. 


3. 어떤 전술핵무기를 사용할 것인가?


러시아, 중국, 미국에게 전략핵무기 전쟁을 할 의사가 없다는 점을 확신시킬 수 있을 정도의 소형이어야 한다. 도심 등 대량살상이 발생하여 민족 내부의 비판, 국제사회의 비판을 최소화시켜야 한다. 남을 점령해 통치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반면 남 역시 북에 대해 재래식 무기로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전면전 의사가 없다는 정도의 피해를 줘야 한다. 한마디로 우리가 진짜 핵무기를 가졌고, 핵무기란 이런 것이니 까불지 말라의 수준이 돼야 한다. 결국 연평도 등 중화기 밀집지역 외 접경지역, 수백 명의 중형금 함정, 인명피해가 적은 상징적인 군사시설 등이 목표물이 될 수 있다. 결국 핵무기를 고성능의 재래식 무기 수준으로 최소화하여 재래식 무장의 열세를 극복하는 것이 남에 대한 중요한 군사목표이다. 


4. 실전에 사용가능한 최소형 핵무기


폭발이 일어날 수 있는 핵물질의 최소질량은 우라늄 235는 최소 15킬로로 직경 15센티, 풀루토늄 239는 최소 10킬로로 직경 10센티이며, 이론적으로 더 높은 수준의 기술을 확보하여 다른 핵물질을 사용하면 조금 더 변할 수 있다. 미국이 1962년 실전배치한 핵탄두 W54(Mark 54 or B54)가 플루토늄 239를 사용한 가장 최소형이다. 


155미리 포탄용 핵탄두

파괴력은 TNT 10톤까지 낮출 수 있다. 히로시마 원폭 15kt의 1/1500 정도의 소규모로서 폭발력이나 방사능 피해가 인근에 있는 아군에게도 우려할 정도가 아니다. 이걸 특수부대가 주요시설 파괴용으로 배낭에 넣거나 지뢰, 어뢰로 만들거나 155미리 이상 포탄으로 만들 수 있으며 무반동포 데이비 크로켓(M28, M29 Davy Crockett Weapon System)처럼 지프에 장착할 수도 있다. 남에도 이걸 포함하여 다양한 전술핵무기가 배치된 바 있다. 


2023년 3월에 공개한 전술핵탄두 화산 31은 직경 50센티, 길이 90센티, 500kg으로서 5kt의 폭발력으로 추정된다. 북은 ⟪화산-31⟫을 탑재할 수 있는 무기체계들도 동시에 공개했다. 해당 무기체계는 8종으로, 탄도미사일 5종, 순항미사일 2종, 그리고 수중공격무인정(해일) 1종이다.

이중 ⟪화성포-11라⟫ 신형전술유도무기와 600mm 초대형 방사포는 전방에 한정된 전술목표를 타격하는 반면, KN-23과 KN-24, ⟪화살⟫ 계열의 순항미사일, ⟪해일-1⟫ 수중무인공격정은 후방의 전략목표가 타격대상이다. 전부 유도기능, 변칙기동 기능을 구비한 것으로 알려져 정확도와 요격회피가능성을 높였다. 하지만 이 규모는 전면전 상황에서 지휘부, 공군부대 등 상당한 타격을 위한 것이므로 국지전이나 우발적 충돌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엄포용 전술핵이라면 이보다 더 소형화해야 한다. 북이 냉전시대 미소 수준으로 핵탄두를 소형화했는지 현재로선 알 수가 없다. 


https://www.youtube.com/watch?v=tLEAuapfwH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