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통합진보당 해산의 논리구조 만들기

1) 정부 논리의 문제점
 
(1) 정부의 논리
<표1> 정부가 제출한 주요 준비서면(2014년)
4월 15일 준비서면(⓹주체의 한국사회 변혁운동론 진정성립 관련)
5월 21일 준비서면(⓹해방 직후 진보적 민주주의 및 과거 정당의 민중 개념 관련)
5월 23일 준비서면(⑬을제156호증 증명력 관련-북한 적화통일노선변경여부)
6월 5일 준비서면(⓸진보적 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 등 비교)
6월 9일 준비서면(⓼당직공직후보선출, 1인다표제를 통해 발현되는 종북패권주의)
6월 17일 준비서면(NL계열의 당권장악에 따른 진보적 민주주의 도입과정)
7월 8일 준비서면(진보적민주주의 도입 및 종북논쟁 등 주요사건별 PD계열 입장)
7월 21일 준비서면(‘파벌’저자 정영태의 민주노동당 당내 인사 면담자료)
8월 14일 준비서면(진보적 민주주의와 북한대남혁명전략 비교)
8월 25일 준비서면(통합진보당이 추구하는 민중주권과 직접민주주의의 의미 등)
8월 29일 준비서면(NL계열의 통일전선전술에 따른 반미자주 대중투쟁)
9월 4일 준비서면(RO세력의 통합진보당 내 위치와 영향력)
9월 4일 준비서면(통일전선체의 개념과 이념적 전개)
9월 5일 준비서면(패권주의발현에 따른 비례대표부정경선 및 야권단일화여론조작)
9월 23일 준비서면(패권주의 및 종북주의에 관한 각 계파 핵심인사 발언 분석)
9월 23일 준비서면(피청구인의 대중투쟁 전략의 문제점)
10월 2일 준비서면(이0기 내란선동음모사건과 통합진보당의 관련성)
10월 6일 준비서면(민주노동자 전국회의와 통합진보당의 관련성)
11월 2일 준비서면(경기동부, 광주전남, 부울경의 세력분포 및 당권 장악 현황)
11월 2일 준비서면(민혁당 잔존세력들의 합법정당건설 및 입당 후 당권장악 현황)
11월 12일 준비서면(통합진보당의 연방제 통일방안 위헌성)

I.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의 배경

1. 냉전과 진보정당의 시지프스 운명
 
1958년 조봉암의 진보당 해산과 닮은꼴

대한민국에서 ‘통합진보당’이 처음 해산된 것은 아니다. 통합진보당이 해산되기 60여 년 전 ‘진보당’이 해산된 바 있다.
1954년 이승만 대통령이 자신의 임기연장을 위해 '사사오입 개헌'을 강행하자, 야당들이 통합하여 자유당 정권에 대항하고자 하였다. 처음에는 중도야당과 진보야당이 하나의 당을 만들라는 민심이 있었다. 당시 통합운동의 중심에는 과거 조선공산당 간부였다가 전향하여 이승만 정권에서 초대 농림부 장관을 역임한 조봉암이 있었다. 그런데 그 당시 반공정서 속에서 우파뿐만 아니라 일부 좌파들도 조봉암과 함께 창당하는 것을 주저하였다. 결국 우파들은 민주당을 따로 창당하였다. 서상일 등 좌파들은 논란 끝에 조봉암과 함께 하기로 하고 1955년 12월 22일 '진보당 창당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강령 초안을 공표하였다.

VIII. 결론 :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관계

이 논문은 반체제정당이 제도화된 이후, 이들의 전략은 체제변혁 노선을 유지한 채 제도권 내의 소수세력으로 남던지, 아니면 개량주의 노선으로 전환하여 제도권 내의 주요세력으로 성장하던지 2가지 길이 있다고 보았다. 이 논문은 초기의 사회주의정당이 사회민주주의와 공산주의로 분리되고 사회민주주의는 득표율을 높이려는 선거게임에 몰입하여 점차 탈이념화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주목하고 이러한 경향이 최상급노조에 있어서도 발견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이러한 역사적 추세 속에서 좌파정당과 최상급노조의 관계가 어떻게 이완되어 왔는가를 밝혔다.

2. 좌파정당의 제도화 진행에 따른 최상급노조와의 관계 비교

1) 양자의 관계 유사성
 
(1) 노조와의 조직적 연계
 
노동계급의 시민권 획득은 경제적인 측면에서 노동조합의 합법화 과정이며, 정치적인 측면에서 선거권의 획득과 정당결성의 과정이었다. 노동자들은 단결권을 획득하여 전국적인 노동조합 조직을 건설하였고, 이는 강력한 반체제세력으로 성장하였다. 노동조합의 정치세력화는 초기에는 반체제정당의 성격을 지녔으나 선거권의 확대로 인해 원내 계급정당으로 전환되었다. 제도화된 노동자정당은 노동자들의 선거권 획득으로 제도화의 문턱을 넘을 가능성이 높아졌고 나아가 보통선거권이 정착됨에 따라 노동자정당은 기존 정당들의 담합을 균열시켜 정착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보하였다.
반체제적인 노동자정당은 원내에서는 소수였지만 원외 노동운동과 결합하여 점차 주요한 정당으로 성장하였다.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제조, 자원개발, 운수통신 등 중공업은 대규모의 반숙련 노동자를 형성하게 되고 이들 노동자들을 토대로 최상급노조와 노동자정당이 상호 연대하면서 발전하였다.

1. 영국, 독일, 프랑스와 한국의 좌파정당 제도화 과정 비교

영국, 독일, 프랑스와 한국에서 좌파정당의 제도화에 영향을 미치는 객관적 요인으로서 산업혁명을 전후로 한 노동계급의 형성, 포드주의 시대의 대공장노동자의 결집, 후기산업사회의 노동의 지위 약화 등을 고려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총자본과 국가는 노동계급에 대한 부르주아민주주의의 허용, 노동계급과의 타협을 통한 복지국가 실현,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공세 등의 포섭전략을 구사하여왔다. 영국, 독일, 프랑스와 같은 발전된 자본주의 국민국가에서 노동조합과 좌파정당은 총자본과 국가의 이러한 전략에 포섭되어 매 시기마다 압박과 타협을 반복하면서 길게 보면 제도화에 점차 몰입되어 자본주의 국가권력에 편입되어왔다. 이러한 제도화 과정은 원내 진출과 다수 득표 및 권력 참여라는 의회주의로 규정될 수 있다.
비록 한국에서 민주주의 진전과 자본주의 발전이 서유럽에 비해 제한되었고 따라서 총자본과 국가가 제한된 포섭전략을 구사하였지만 민주노동당 역시 서유럽의 좌파정당과 유사한 객관적 요인을 배경으로 총자본과 국가의 전략에 포섭되면서 빠르게 의회주의에 빠져들었다. 이 논문은 먼저 이들 서유럽국가와 한국에서 좌파정당의 제도화 과정이 보편성을 띠고 있다는 것을 밝히고, 한국에서의 특수성이 어디에서 기인하였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4. 민주노동당의 조로화와 민주노총의 정치세력화 실패

민주노총의 정치세력화가 현상적으로 실패한 계기는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의 분열, 노동자정치세력화에 대한 민주노동당의 회피와 통합진보당의 외면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좌파정당과 ‘긴장적 협력관계’를 유지할 역량이 부족했던 노동운동의 한계로 인해 실패하였다.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의 의회주의를,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의 기득권 경향을 견제하지 못하였다. 노동자정당과 노동조합의 결합은 상호의존성을 증대시켜 양자의 단점도 상호작용하였다.

3. 민주노동당의 소멸(2008년 분당 - 2011년 합당) - 양자의 관계 파탄

1) 민주노동당의 의회주의 몰입
 
민주노동당은 2003년 말 임시당대회를 열고 의회주의 몰입을 차단하기 위해 지도부와 국회의원을 겸직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을 논의했는데, 이는 당의 지도역량을 원내외에 골고루 배치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하지만 2004년 총선을 앞두고 대표, 부대표, 사무총장 등 선거권이 없었던 부대표 1인을 제외하고 모든 대표단이 비례대표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총선이 끝난 후 주로 낙선한 지역구 출마자로 구성된 중앙위원회는 국회의원이 최고위원을 겸직하지 못하도록 하는 당규를 제정하였다. 이는 원내 진출이 가능한 명망가와 원내 진출이 막힌 지역 중견활동가들의 갈등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의회주의 몰입으로 인한 당의 갈등을 예고한 것이었다.

2. 민주노동당의 성장기(2004년 총선 이후 - 2007년 대선) – 긴장관계

1) 민주노동당의 민주노총과의 거리두기
 
(1) 국민의식과 조합원의식 및 당원의식의 괴리
 
국민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주노동당이 향후 추구해야 할 가치에 대해 성장이 21.3%, 분배가 15.3%, 인권이 15.7%, 정의가 13.8%로 나타나고, 민주노동당의 향후 주력해야 할 과제에 대해서는 서민경제 살리기와 빈부격차 해소가 53.6%, 비정규직 해소와 일자리창출이 22.8%로 높게 나타났다. 민주노동당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는 경직된 투쟁성이 21.3%, 급진적이 14.3%로 나타났으며, 민주노동당 지지도 하락의 원인으로 투쟁적이고 과격해서가 34.8%, 급진적이어서가 17.1%, 노동자의 이익만 대변해서가 20.2% 등으로 나타났다. 민주노동당이 대변하고 있는 계층에 대해서는 노동자 38.3%, 서민 18.9%, 소외계층 8.1%, 농민 6.6%로 나타났으며 대변해야 할 계층은 서민이 57.6%, 노동자 10.6%, 소외계층 10.6%, 농민 4.2%로 나타났다(민주노동당, 2008b; 47-49).

1. 민주노동당의 발생기(2000년-2004년 총선) – 전략적 동반성장 관계

1) 민주노총의 민주노동당 창당 주도
 
1970년 산업화 이전까지 사회균열은 민주와 반민주의 대립구도였다. 1954년 진보당이 사회민주주의와 남북평화통일을 들고 나와 계급균열과 지역균열을 반영하고자 하였으나 이승만 정권에 의해 해산되었다. 1960년 4.19혁명 이후 제2공화국에서 혁신계는 합법화되었지만 주요한 정치세력이 되지 못하였다. 이는 노동계급의 저성장, 반공이데올로기, 기존정당의 담합구조에 의한 것이었다. 1960년까지 광업, 제조업, 건설업 종사자는 전체 취업자의 5.8%로 50만여명에 불과하였다.

6. 결론 : 국제노동자협회에서 노동계급자기해방 원리의 형성

마르크스가 주도한 국제노동자협회의 활동을 주체의 측면에서 보면, 국제노동자협회는 노동조합과의 성공적인 연대투쟁을 통해 노동조합의 필요성과 파업의 중요성을 경시해왔던 프루동주의와 라쌀주의를 극복하였다. 국제노동자협회는 영국의 노동조합주의를 비판하면서 노동자들이 각국에서 대중적인 노동자당을 건설할 것을 제안하였다. 나아가 국제노동자협회는 스스로 다양한 정파조직들을 포괄하여 대중적이며 국제적인 노동자정치조직으로 발전하고자 하였다.